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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학 [THE EASTERN CLASSIC STUDIES]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지
  • 발행기관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INSTITUTE FOR EASTERN CLASSIC STUDIES]
  • ISSN
    1598-1452
  • 간기
    계간
  • 수록기간
    1995~2019
  • 등재여부
    KCI 등재
  • 주제분류
    인문학 > 기타인문학
  • 십진분류
    KDC 910 DDC 950
제30집 (16건)
No
1

17세기 전쟁서사의 소설사적 특성과 의의

서신혜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30집 2014.02 pp.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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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17세기의 전쟁서사가 이전의 작품과 어떻게 다른지 살피 고, 그것의 의미를 살펴본 것이다. 첫째, 17세기에는 이전 시기 낭만적 사랑을 그린 작품은 사라지고, 전쟁서사가 주로 나타나는데 이들은 공 통적으로 고통의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여러 사람들이 고통에 공감하 는 방향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둘째, 이전 시기의 서사에서는 추상적, 전체적으로 다른 나라 사람을 이해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 시 기 서사에서는 구체적인 인간 개개인에 주목하여 그들의 심리를 그렸다. 셋째, 성리학적 교훈과 윤리를 서사에 견고히 표현했던 이전 서사와 달 리 이 시기 서사에는 국가 이데올로기가 흔들리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담았다. 나아가 국가나 이념을 넘어서는 공동체 형성의 모습까지 이 시 기 서사에 드러난다. 이런 17세기 전쟁 서사의 특성은, 함께 한 시대의 지난한 삶을 살며 서로 공감하고 함께 거처하기도 했던 역사적인 경험이라는 점에서, 현 대에 이루어지고 있는 동아시아 공동체 논의에서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
In this paper, I explained war novels of 17th century, how it differs from previous novels. Its features are as follows. The novels that were written about love was gone, the novels that were written about suffering appeared. The novels that were written about abstract representation of the mind is gone, the novels that paid attention to an individual’s sentiment inside. Previous period, confucian scholars and politicians used novels to popularize the philosophy and ethics of Confucianism. But the novels of 17th century war novels expressed a community Beyond ideology and nationality. Those novels are important when we discuss a East Asia community. Because it is a historical example that East Asia had become one of the people despite of the difference of nationality.

6,300원

2

<심청전>에 나타난 가장의 표상과 역설적 실체

서경희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30집 2014.02 pp.3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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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심청전>의 심봉사를 중심으로 가장, 가족구성원, 가족이데 올로기의 문제에 대한 향유층의 인식을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심봉사는 가장으로서 그 어떤 자질도 갖추지 못하였고, 또 무능력과 성적 욕망을 여과없이 드러내면서 빈약한 내면을 노출시킨다. 이는 동 정을 유도하여 이야기가 가장을 재건하도록 추동하고, 신분상승과 안씨 와의 혼인이라는 서사의 귀결을 통해서 권위있는 가장을 호명한다. 비약적 결말로 보수적 가족이데올로기가 재현되는 과정에서 심학규 는 그 어떠한 역할도 하지 않지만, 문제가 모두 해결되고 자신의 신분도 수직 상승을 이룬다. 이러한 결말은 <심청전>이 신분제의 동요와 자본 의 대두로 변화하는 시기에 무기력한 가장에 대한 신랄한 비판도 현실 적인 대안도 제시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며, 오히려 막연히 가부장 의 권위가 회복되고 유지되기를 바라는 향유층의 내면화된 이념성을 확 인시켜 준다. 또한 역설적으로 격동기에 적응하지 못한 무능한 가장을 더 이상 위기의 가정을 견고하게 지켜낼 수 있는 주체로 인식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심청전>은 책임을 다 하지 못한 가장일지라도 가족구성원에게는 관념적으로 권위가 견고하게 존속되며, 그 구성원들은 가장을 위한 자 기 소진이 유일한 생존전략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가족제도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심청전>이 보여주는 가족 이데올로기의 문학적 형상화는 충족된 결론과 달리 공고한 이념적 자장 속에서 가족구성원의 새로운 지위와 역할을 제시하지 못했다.
This thesis is aimed to know how people think of their breadwinner, family members and family ideology through Simbongsa and his family in Simcheongjeon. We will review the way the story show how Simbongsa and his family rebuild their disbanded family to us. Simbongsa in Simcheongjeon is far from the traditional vision of a breadwinner, but he is served by his wife and child just because he is the head of the family. Simbongsa’s authority as the head of his family seems very firm because Ms. Gwak and Simcheong―his wife and his daughter―are willing to sacrifice themselves for their head and worry about him even after their death. The story is caricaturing him by showing his disability and sexual desire, which make us feel sympathy for Simbongsa rather than blame the incompetent and selfish breadwinner. Not only does the sympathy encourage Simbongsa to rebuild his family but also the story result in get him on a better social status to be an authoritative breadwinner by getting married to Ms. Ahn. Luckily, Simbongsa solves the family problem with any decising-making or efforts. It is just done by a leap in the story which represents conservative family ideology. The story shows people have in mind that the authority of their breadwinners could be revived and kept alive, who neither blame nor make any realistic counter-offer to the heads of their family―even though the incompetent breadwinner cannot stand still in the rapidly changing world teased by agitation of status system and capitalism. It also tells us that incompetent breadwinners cannot protect their family from any crises. Simcheongjeon is a story about paradox of the family system by showing that self-sacrifice of family members for their breadwinner is the only way to survival although the head of their family doensn’t deserve the authority physically and ethically.

7,800원

3

조선후기 가사에 형상화된 ‘평양(平壤)’의 지리ㆍ문학적 표상과 그 변모 양상

김윤희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30집 2014.02 pp.6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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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조선후기 가사 문학에 형상화된 ‘평양(平壤)’의 표상에 주 목하여 그 지리․문학적 변모의 양상을 고찰해 보고자 한 것이다. 평양이 관념적 층위에서는 ‘기자의 도읍’, 가시적 층위에서는 절경지들이 연속 된 공간으로 주로 인식되어 왔다는 점은 16~18세기 작품 속에 나타난 표상들을 통해 확인되었다. 이 때 형상화의 특질은 ‘기성’의 경우에는 관념적․회고적이고 여타 명승지들은 주로 초월적․이상적 심상이 주를 이 루고 있었다. 그런데 19세기 작품들에 이르면 점차 평양의 역사적 의미보다는 상업 도시로서의 면모가 중점적으로 형상화되고 있었다. 나아가 선유놀음이 나 기녀와의 애정 서사가 삽입되는 등 평양의 공간성이 점차 유락화(遊 樂化)․향락화(享樂化)된 양상이 확인되었다. 이 과정에서 문학적 형상화 의 특징 또한 구체적이고 감각적으로 변모하였고 평양 내의 개별 공간 들에 대한 묘사가 확장되면서 단위별 공간 특징이 전면화된 특징도 포 착할 수 있었다. 특히 고전문학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이러한 변모의 양상은 회화, 지도, 야담 등과 같은 여타 예술 영역들과도 유사성을 보이고 있어 평양을 재 현하고자 한 조선후기의 문화적 경향성에 대한 이해 지평을 보다 확장 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본 연구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
This study examined the transformation features of geographical and literary representation by paying attention to the representation of Pyeongyang embodied in the Gasa from the late Joseon period. It was confirmed that Pyeongyang had been recognized as a ‘town of Gija(箕 子)’ in terms of ideological level and a consecutive place of magnificent view in the works in the 16th ~ 18th centuries. Features of literary embodiment are ideological and retrospective as for Giseong(箕城), and other magnificent sceneries mainly had transcendental and ideal image. However, in the 19th century, works on Pyeongyang had been gradually embodied as a commercial city rather than historic meaning. Furthermore, the spatial features of Pyeongyang were transformed as an entertaining and pleasure-seeking place such as insertion of boating play and romantic Gasa with Ginyeo(妓女). In the process, features of literary embodiment were changed to specific and sensual features, and description of individual space in Pyeongyang had been expanded which showed all-inclusive spatial features by section. In particular, such transformed features found in this classic literature had similarity in other art areas. Therefore, this study is significant in that it expanded its horizon on the cultural tendency of late Joseon that attempted to represent Pyeongyang.

6,400원

4

『청구야담』의 한글번역 양상과 의미

남궁윤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30집 2014.02 pp.95-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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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천예록』과 『동패락송』의 한글번역본 연구의 연장선에서 『청구야담』한글번역본의 번역양상과 특징을 밝혔다. 현전하는 한글번 역본 야담에는 『어우야담』, 『천예록』, 『동패락송』, 『청구야담』의 4종이 있다. 이 중 『청구야담』은 십여 종의 많은 이본이 전하지만, 번역본은 서울대규장각본과 가람문고본의 두 본이 있다. 그동안 『청구야담』과 관 련한 연구는 상당한 업적을 축적하였지만, 한글번역본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이에 본고에서는 『청구야담』한글 번역본의 저본 문제와 실제 작품의 번역양상 및 특징을 밝히고자 하였다. 『청구야담』의 이야기 매 편은 원작과 출전을 달리한다. 번역본은 그 원작을 토대로 새롭게 『청구야담』만의 색채로 구성되며 집필되었다. 『청구야담』의 한문본 편자가 변이를 통해 전대 작품들을 한문으로 전재 하며 이야기를 편자의 의식에 맞게 쓴 것이라면, 번역본의 번역자는 이 이야기들을 읽고 번역하며 다시 읽는 과정을 거쳤다. 그리고 매 작품의 이야기를 잘 전달하고 표현하기 위해 일련의 방식을 선택하였다. 이는 번역과정에 천착하며 살핀 것으로, 서술지문의 표현방식, 서사간의 개연 성을 부여하기 위해 취한 방식, 그리고 이야기를 현재 상황에서 진행되 게끔 한 방식에서 그 특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번역양상을 살피다 보니 『청구야담』의 번역자가 그 이야기들을 번역하는데 얼마만큼의 공력을 들였는지 충분히 가늠할 수 있었다. 본 연구는 조선후기 야담번 역본에서는 물론 한문서사류에 대한 한글번역의 양상과 흐름을 살피는 단초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In this paper, the translation aspect and feature of the hangul translation of Chunggu-unofficial historic stories from an extension of study on Cheonyerok and Dongpaeraksong was clarified. The Cheonyerok, Dongpaeraksong, Au-unofficial historic stories and Chunggu-unofficial historic stories is the existing the hangul translation in our country. Among the above unofficial historic stories, Chunggu-unofficial historic stories have large different version of approximately ten kind but the whole translation is in the Seoul National University and Garam bookstore. The study of related with the Chunggu-unofficial historic stories have accumulate a significant achievement in the meanwhile, but the problem with the hangul translation is rather to be retracted. Hence, in this paper, the original problem of hangul translation of the Chunggu-unofficial historic stories was clarified, and the translation aspect and feature of actual book was clarified. Each side of the story of Chunggu-unofficial historic stories is different from the original version. On the basis of the original version, the hangul translation was afresh written as color of the Chunggu-unofficial historic stories. A complier of the written in chinese of the Chunggu-unofficial historic stories reproduced the literature of a previous generation according to the complier's opinion. However, a translator of hangul translation was read and translated the chines version. Also, they went through the process of reading again. And they have selected a series of way in order to deliver and represent well of the each story. This study will be made the basis of study on the flow of the hangul translation of a chinese short writing narration as well as the translation of the unofficial historic stories in Latter Period Chosun Dynasty.

8,100원

5

박지원의 「楚亭集序」 다시 읽기 - 「序」와 교차 읽기를 토대로 -

박은정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30집 2014.02 pp.133-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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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이 박제가에게 써준 서문은 『貞蕤閣集』에 실린 「序」와 『燕巖集』에 실린 「楚亭集序」 두 가지가 있다. 박지원이 1768년에 쓴 「서」에서는 “만약 능히 옛 것을 배우되 변화할 줄 알고, 창신 하되 능전할 수 있다면 지금의 글이 옛날의 글과 같다[苟 能學古而能變剙新而能典今之文猶古之文也].”는 주제를 말하고, 이어지 는 같은 구조의 네 단락에서는 “같음”에 대해 부연한다. 이로 볼 때 「서 」에서는 “만약 능히 옛 것을 배우되 변화할 줄 알고, 창신 하되 능전할 수 있다면 지금의 글이 옛날의 글과 같다.”는 주제 중에서도 “지금의 글 이 옛날의 글과 같다[今之文猶古之文也].”에 힘이 실려 있다. 박지원이 1772년에 쓴 「초정집서」는 내용과 표현에서 「서」보다 상당 히 다듬어진 글이다. 그런데 「서」와 「초정집서」를 교차하여 읽어보면, 「 초정집서」는 의도적으로 순서를 바꾸고 단락을 삭제 또는 보강함으로 인해 주제 중에서 “지금의 글이 옛날의 글과 같다.”는 부분을 희석시키 고 “능히 옛 것을 배우되 변화할 줄 알고, 창신 하되 능전할 수 있어야 한다.”를 부각시켰다. 이는 박지원이 박제가에게 초점을 맞추어 다듬었 기 때문이다. 박제가에게 초점을 맞춘 「초정집서」가 「서」에 비해 “능히 옛 것을 배우되 변화할 줄 알고, 창신 하되 능전할 수 있어야 한다.”의 논의가 강 화되기는 했으나, 두 글 모두 주제를 읽을 때 “만약 능히 옛 것을 배우 되 변화할 줄 알고, 창신 하되 능전할 수 있다면 지금의 글이 옛날의 글 과 같다.” 중에서도 “지금의 글이 옛날의 글과 같다.”에 힘을 실어 읽어야 할 것이다.
Park Jiwon gave Park Jega two letters which were Seo(序) in Jeongyugakjib(貞 蕤閣集) and Chojeongjibseo(楚亭集序) in Yeonamjib(燕巖集). Periodically Chojeongjibseo written four years after Seo was focused on Park Jega. Seo was a book that Park Jiwon expressed his opinion to anybody including Park Jega. Searching whole frame of Seo written in 1768, on introduction of that work, he asked how you deal with sentences and expressed the theme “To know doing changes with learning old things, while creating new things, making up for old things, writings in the present and archaic writings were the same.(苟能學古而 能變剙新而能典今之文猶古之文也)” In following next four paragraphs, he expatiated on the same. From this point, the themes of Seo were “To know doing changes with learning old things, while creating new things, making up for old things, writings in the present and archaic writings were the same” and it emphasized on “writings in the present and archaic writingst were the same.” Chojeongjibseo written in 1772 more elaborated than Seo in contents and expressions. However Chojeongjibseo elaborated for not only surveying contents or exquisite expressions but also themes comparing Seo. Inter-reading between Seo and Chojeongjibseo, Chojeongjibseo highlighted “To know doing changes with learning old things, while creating new things, making up for old things” and attenuated “writings in the present and archaic writings were the same” from the themes “To know doing changes with learning old things, while creating new things, making up for old things, writings in the present and archaic writings were the same” through intentional changing order of sentences and deleting or adding paragraphs. Because of this point, the theme of Chojeongjibseo was read into “To know doing changes with learning old things, while creating new things, making up for old things.” However Park Jiwon imposed the theme, “To know doing changes with learning old things, while creating new things, making up for old things”, on whole respects of Chojeongjibseo, while he remained original episodes about “writings in the present and archaic writings were the same” in Seo at the same time. Through this point, we knew that Park Jiwon attenuated the theme, “writings in the present and archaic writings were the same” but he did not intend to delete. In other words, Park Jiwon located “To know doing changes with learning old things, while creating new things, making up for old things” on the front, and hid “writings in the present and archaic writings were the same” on the other side in Chojeongjibseo at the same time. From this point, the theme of Chojeongjibseo was not only “To know doing changes with learning old things, while creating new things, making up for old things.” While Chojeongjibseo reinforced a discussion, “To know doing changes with learning old things, while creating new things, making up for old things” than Seo, the themes of two writings were “To know doing changes with learning old things, while creating new things, making up for old things” and “writings in the present and archaic writings were the same”, and highlighted on “writings in the present and archaic writings were the same” in two themes.

7,300원

6

「이화전」에 나타난 임진전쟁의 기억과 상상적 존재들의 의미 : 19세기 말의 시대상을 통해 본 시론적 고찰

이종필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30집 2014.02 pp.165-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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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기존의 「이화전」 연구가 작품의 설화적 요소 자체만을 주 목해 왔음을 문제로 제기하면서, 작품에 구현된 설화적 상상력을 역사 적 사건과의 관련성 속에서 분석해 보고자 기술되었다. 「이화전」 서사 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요괴의 출현과 퇴치의 화소들을 텍스트의 서두 를 장식하고 있는 임진전쟁의 기억과 관련해 재해석한 것이다. 논의 과 정을 통해 「이화전」에 등장하는 요괴는 전쟁으로 인한 사회적 불안과 공포의 상징적 기표이며, 주인공에 의한 요괴 퇴치는 그와 같은 사회적 불안감에 대한 상상적 해결의 모색으로 규정하였다. 나아가 본고에서는 작품 창작의 시대적 배경으로 19세기 말의 청일 (淸日)전쟁에 주목했다. 갑오농민전쟁의 여파로 조선에서 벌어진 청일전 쟁과 그로 인한 사회적 동요가 「이화전」에서 강조하고 있는 ‘재조지은’ 의 기억과 그에 대한 상상적 보상의 추구 그리고 ‘요괴’로 표상된 전쟁 의 공포 등을 산출해 낸 역사적 동인이었을 것으로 추론하였다. 끝으로 「이화전」의 중세 지향성과 그것이 지니는 시대적 의미를 짚어 보았다. 「이화전」은 전쟁의 기억과 공포를 설화적 환상성의 지평 속에 서 재배치하는 방식으로 일정한 문학적 대응을 모색하고자 했던 텍스트 이다. 하지만 모색의 과정 속에서 표출된 강한 중세 지향성은 근대의 도 래라는 시대적 격변 속에서 커다란 의미를 지닐 수 없었고, 이에 「이화 전」 자체가 당대의 독자들에게 큰 관심을 받지 못했던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이상의 논의가 기본적으로 창작 시기의 추론에 의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본고는 시론적 성격을 띨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닌다.
This paper aims to analyze literary imagination reflected on LeehwaJeon(李華傳) in relation to the memory for the Imjin war, supplementing the limit of previous research which has been only restricted on the analysis of the elements of tales. LeehwaJeon is seen as a work that embodies the social unrest caused by the memory for wars, through the narration about the appearance and eradication of a monster and also tries to address this unrest with an imaginary way. This paper focus on the Sino-Japanese war in the late 19th century as the background of the creation of the work. Joseon was enormously damaged by the war which took place in the territory of Joseon in the process of suppression of the Donghank Movement. These circumstances would provide a chance to remind people of the Imjin war. In addition, the tyranny of the Cheng dynasty also would evoke a sense of nostalgia for Myeong dynasty. Therefore, it could be concluded that the monster appearing in LeehwaJeon can be considered as a symbol for the social unrest and anxiety. In this context, the eradication of the monster by a hero would be an imaginary solution to deal with the issues. However, propensities strongly aspiring for the Middle ages, which can be seen in LeehwaJeon, would not seem to have a significance under the circumstances of the rapid social changes toward the modern era. Accordingly, it would result in little attention from the public of the day.

7,000원

7

<두꺼비 신랑>설화 속 인정욕구와 변신의 대응양상

이원영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30집 2014.02 pp.195-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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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비 신랑>설화 속 두꺼비는 노부부를 만나면서 연못에서의 자 연적 삶을 벗어나고 인간적 존재로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자신을 발견 한다. 두꺼비가 만난 타자적 존재인 노부부는 부모로, 셋째 딸은 아내로, 장자집사람들은 처가식구들이 되어가고 주체적 존재인 두꺼비는 아들과 신랑, 사위의 존재로 변화되어 간다. 즉 자연적 욕구에서 시작된 두꺼비 의 삶의 발달과정이 신인적 존재라는 잠재적 자기실현에 이르는 것이다. 그 가운데 두꺼비→사람→신인이라는 변신과정을 거치는데 먼저 배우자 (여성)를 통해 상징적 죽음과 재생을 겪으며 변신하고, 이후 능력 있는 사위로서의 과업증명을 통해 신인적 존재로 인정받고 승천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은 두꺼비의 주체적인 인정욕구를 통해 적극적으로 진행되 며 그 모습도 단계적 모습을 띈다. 공격적인 동물로서의 속성에서, 조건 거래방식의 인간적 속성을 거쳐, 증여적인 방식의 신성적 속성에 이르 기까지 성숙되어가는 과정을 나타낸다. 또한 익숙한 공간에서 분리되어 새로운 집단으로 편입되고, 그 가운데 고난과 시련을 겪다가 끝내 과업 을 인정받는 서사구조는 보편적인 영웅 신화의 일대기 순서(분리-시련- 극복-회귀)와도 유사하기에 <두꺼비 신랑>은 서사적 맥락으로도 신화 적 성격을 충분히 지닌다 할 수 있다. 이때 두꺼비의 변신양상은 구체적 으로 아들로서의 인정받기, 신랑으로서 인정받기, 사위로서의 인정받기 라는 세 층위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자기인식을 가능케 하는 타자적 존 재들의 욕망을 욕망하게 된 두꺼비의 인정 욕구와 변신(變身)은 곧 욕망 충족행위의 결과로서 그 존재적 변이와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As the toad appearing in folk tale meets an old couple, he escapes from natural life in a pond and find himself, as a humane existence, to be related with them. The old couple, an other existence he met, becomes his parents, their third daughter marries with him, and people in Jaja's(a wealthy man) house become his wife's family members. And a status of the toad, a subjective being, is elevated as son, bridegroom and son-in-law. In other words, a development of his life derived from natural need leads him to achieve a potential self-fulfillment as a godlike person. Meanwhile, he undergo the metamorphosis from toad through human to godlike person: At first, he is transformed through symbolic death and rebirth by his partner(woman) and then approved as a godlike person through his mission complete, indicating that he is a competent son-in-law. This process proceeds actively through subjective approval of the toad, which consists of several steps. It shows some steps to maturity from aggressive animal's trait through humane one of exchanges depending on conditions to divine one of donation. In addition, may have sufficient mythological feature based on narrative context, in that its narrative plot in which he is segregated from a familiar space and then incorporated into a new group, meanwhile he suffer from distresses and adversities, and eventually his efforts are approved, is similar to a biography of general hero myth: segregating-overcoming-returning. The metamorphosis modes of the toad are examined by categorizing them into three layers: approval as son, bridegroom and son-in-law. In this process, as a narrative subject, the toad's response to a relationship is transformed from exclusive through reciprocal to altruistic style in the last. The metamorphosis is contrived through the approval need of subject desiring other existences' needs that make him develop self awareness, leading to the narrative conclusion: the elevation from toad through human to godlike person. Thus, the approval need derived from relationships with others and the response style of metamorphosis can be seemed to be coincided with an existence variation as a result of the toad's satisfying his desire.

7,600원

8

『순자(荀子)』에서 수행성과 禮에 관한 일고찰

고은강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30집 2014.02 pp.229-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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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버틀러의 수행성 개념을 통해 『荀子』의 禮 개념에 대한 재 해석을 시도한다. 버틀러의 수행성 개념은 인간 본성의 일부로서 禮를 해석하거나 사회제도의 관점에서 禮를 이해하는 기존의 관점에서 벗어 나, 禮를 '행동의 통제'라는 기본적인 관점에서 재조명하는 데 도움이 된 다. 『荀子』에서 禮란 행동을 '적절'하게 통제하는 수단이다. '반복의 과 정'을 통해 체현되는 수행성에 주목하는 버틀러의 관점은 『荀子』의 禮 개념에서 강조되는 수행성과 일치한다. 禮에서 강조되는 '반복의 과정을 통해 체현되는 수행성'은 『荀子』의 첫 장에 나타난 學 개념에 함축되어 있다. 단지 일회적인 앎에 그치지 않고 연습과 훈련을 거쳐 익숙해 진 결과물이 몸에 축적되는 과정을 강조하는 學 개념은 몸에 쌓여 몸을 통 해 표현되는 버틀러의 수행성이 주목하는 바다. 學에서 몸의 중요성은 禮의 실천과 연결되어 있다. 小人과 차별화된 인격을 갖춘 君子는 禮를 단지 능숙하게 실천할 수 있는 지식을 갖추는 데 그치지 않고 禮가 '몸 에 밴' 사람이다. 『荀子』에서 몸은 인간의 욕망을 긍정하고 윤리의 출발 점으로 삼는 『荀子』특유의 관점과 관련하여 더욱 중요하다. 禮는 몸의 欲을 적절히 부양하기 위해 필요하다. 禮가 몸의 欲을 적절히 부양할 수 있는 이유는 心이 있기 때문이다. 心이 欲을 제어(止)하고자 하는 시도 와 긴장 속에 행동(行)이 위치할 때라야만 몸의 욕망을 부양하며(養體) 살아갈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일상에서 禮의 수행성이 포착되는 장'이다. 禮의 실천을 통해 몸을 구성하고, 몸의 구성을 통해서 인격을 구성하는 과정이『荀子』에서 ‘반복의 과정’으로서 禮의 실천, 즉 禮의 수행성이 의미하는 바라고 할 수 있다.
This article focuses on the Confucian concept of li using Judith Butler's term, performativity. Performativity is the process of self-construction through repetitive behavior. The concept of li in Confucian philosophy,the system of right behavior that Confucian saints established, can be explained through performativity. Performativity provides a useful lens to examine the concepts of learning, body, and mind, which play a significant role in the process of self-construction in Xunzi. Since Confucius stressed the significance of practice in Confucian Analects, applied learning has been established as one of the core concepts in Confucian philosophy. Learning is not simply acquiring knowledge. It includes the process of putting that knowledge into practice. The concept of applied learning is elaborated in Xunzi. In Xunzi, learning is the process of constructing personhood. After acquiring knowledge about something, a person puts what he has learned into practice. Whether his practice is successful or not, the result of his practice affects his behavior and his personhood in the future. Thus, a person tries to prepare himself for right behavior. In Xunzi, the ideal person has the appropriate body for li, the system of correct behavior. He is able to realize li through his behavior at any place and anytime. This is because he always maintains a placid and tranquil heart. Since the mind-body distinction is not clear in Xunzi, the appropriate body includes the placid and tranquil state of heart. The placid and tranquil state of the heart is a necessary condition of realizing li.

7,000원

9

초기 중국불교 법신론(法身論)에 나타나는 실체론적 사유경향의 원인 고찰

허인섭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30집 2014.02 pp.259-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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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불교의 법신론의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국에 불교가 전래 된 초기 상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초기 중국불교 형성기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국가는 중앙아시아의 쿠샨제국이었다. 쿠샨제국은 유목민이 었던 아리안 민족이 중심이 되어 세워진 국가로 그들이 발전시킨 불교 에는 그들 본래의 종교였던 조로아스터교의 특성이 크게 반영되어 있다. 조로아스터교는 마후라 마즈다를 절대선신으로 믿는 유일신적 종교 이다. 현세의 질곡으로부터 인간을 구원하는 구제신적 성격이 강한 조 로아스터교는 불교의 교조 붓다를 유사한 구제신적 성격을 지닌 미륵불 혹은 아미타불과 같은 존재로 이해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절대신적 요 소를 지닌 미륵불과 아미타불에 대한 광범위한 대중적 믿음은 법신론과 같은 불교이론 정립에도 크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 글이 절대신 개념 은 어떻게 성립되는 가에 대한 뇌과학적, 종교철학적, 불교철학적 이해 방식을 요약한 까닭은 절대신적인 붓다에 대한 믿음의 특성을 보다 더 분석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글은 이와 같은 요약을 통해 개념적으로 정위된 신(神)이 실체적으 로 닫힌 존재로 이해될 때 생기는 문제가 초기 중국불교의 법신론에도 재현되고 있음을 혜원의 대승대의장(大乘大義章)을 중심으로 분석해 보았다. 특히 같은 시대의 많은 불교학자들이 형이상학적 위진현학의 사고방식으로 불교를 이해하듯이, 혜원은 무형적인 순수기 개념을 원용 하여 법신 개념을 중국적인 실체론의 틀에 의해 이해하고 있음을 보이고 있다.
In order to understand properly the characteristics of theory of dharmakāya in early Chinese Buddhism, it is essential to examine the historical background, of which the Buddhism was transmitted in earlier time in China. The Buddhism in the Kushan empire is the most influential factor on the formation of early Chinese Buddhist Society. Kushan empire had been built by the Central Asia Aryan who were originally nomadic people. Their main religion was Zoroastrianism and it gave a great influence on the formation of central Asian Buddhism. The Zoroastrianism is a kind of monotheistic religion which people believe Ahura Mazda as one absolute God having the goodwill. Ahura Mazda is a salvational god who saves people from the distress of this world. The salvational characteristics of this God is thought to be the most influential factor to form the concepts of Maitreya and Amitabha Buddha in Central Asia. The strong belief in these Buddhist gods and the commercial success of the Kushan empire through the international trade of silk road enhanced to build giant Buddha statues in their territory. The popular belief in Maitreya and Amitabha Buddha as an absolute being is thought to be an important factor to develop the theory of Buddhadkāya or Dharmakāya. The reason that this paper summarize the explanations of brain science, mordern philosophy of religion, and modern Buddhist philosophy regarding the concept of god is that those explanation is necessary to understand more analytically the concept of an absolute Buddha. The concept of an absolute god is thought to be formed by the process of ‘Agenticity’ in extreme in terms of brain scientist like Shermer, to be formed by the substantial understanding of the overwhelming power of nature surrounding us in terms of philosopher like van Peursen, and to be formed even in Buddhist theories by the permeation of the Vedic concept of absolute god into Buddhism in terms of Buddhist philosopher like Kalupahana. This paper analysed the text Dachengdayizhang 大乘大義章 of Huiyuan(慧遠), one of the representative Chinese Buddhist monks in Wei-Jin(魏晉) period of China. The arguments of dharmakāya based on the substantial understanding of Buddha are frequently shown in this text. This tells us that the phenomena which are occurred when the god is understood as a closed being are also appeared in the early Chinese Buddhist dharmakāya theory. In addition, this text shows that Huiyuan(慧遠) understood the substantiality of dharmakāya by the concept of an immaterial pure Chi(純粹氣) as most of Buddhist scholars in Wei-Jin period utilizing the metaphysics of Xuanxue(玄學).

8,800원

10

장자와 칸트 미학의 미술 교육 방법론적 함의

노은임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30집 2014.02 pp.30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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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우선 장자의 미학을 좌망미학으로 칸트의 미학을 선험미학 으로 규정하고 두 미학 사상의 차이성과 동일성을 해명한다. 그리고 여 기서 도출할 수 있는 새로운 미술 교육 방법론을 제안하는 것을 목적으 로 한다. 제 1장에서 칸트가 사용하는 ‘선험적’이라는 개념과 장자가 말 하는 ‘좌망’이라는 개념을 분석한다. 제 2장에서는 두 미학의 차이와 유 사는 두 철학자가 활용하는 방법론에 있다는 것을 해명하면서, 장자의 철학방법론을 직관적 내성법으로 칸트의 철학방법론을 논리적 내성법으 로 특성화한다. 제 3장에서는 사물과 언어의 관계에 대한 양자의 입장을 비교하면서, 칸트의 선험적 논리적 방법과 장자의 경험적 직관적 방법 사이의 장단점을 해명한다. 이때, 논자는 칸트가 구성주의적 관점에서 사물, 세계, 인간 등에 대한 일종의 새로운 형이상학을 구성하는 입장에 있다면, 장자는 해체론적 관점에서 칸트적인 이러한 일체의 구성주의적 관점들을 해체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양자의 철학이 최종적으로 의존하는 방법론은 직관적 방법이라는 것을 해명하면서, 두 미학 사상은 실천미학이라는 공동지반을 가진다는 것을 강조한다. 제 5장에서는 장자의 좌망미학에서 도출할 수 있는 미술 교육 방법론적 함의를 직관의 방법이라고 특성화하고, 제 6장에서는 칸트의 선험미학에서 도출할 수 있는 미술 교육 방법론적 함의를 추론의 방법 이라고 특성화한다. 마지막 제 7장에서는 미술 교육의 새로운 방법론을 위해 칸트의 비판적 방법과 장자의 좌망적 방법은 종합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을 역설한다.
In this study would I like to explain the similarity and the difference between the aesthetics of Kant and that of Chuang-Tzu, describing the former as a transcendental and the latter as a sitting-forgetting. And I will than lead to the methodological implication for a fine art education which we could deduce from the two aesthetics. In order to accomplish theses aims, in the first chapter would I like to analyse the concept, ‘transcendental’, which Kant uses, and the concept, ‘sitting-forgetting’, which Chuang-Tzu uses. And than in the second chapter would I like to justify that it is the methodology which makes the similarity and the difference between the two aesthetics, specifying Kant’s methode as the logical introspection, and Chuang-tzu’s one as the intuitive. And in third chapter would I let you see the merit and the short of the two aesthetics, comparing the positions of the two philosophers about the relation between a thing and a language. I will accent that Kant holds in the viewpoint of constructivism a new metaphysics on thing, world and human being, while Chuang-Tzu is trying to deconstruct all the ideas that Kant has constructed. However, the two philosophers have a same ground in the sense that their aesthetics lead eventually to practical ones. From the fifth chapter to the seventh, I would like to justify the methodological implication for the fine art education which we can read form the two aesthetics. In conclusion, Chuang-Tzu’s aesthetics supposes the intuitive and forgettable methode for fine art education, Kant’s one the critical and inferential methode. I finally insist that the two ways should be synthesized.

8,200원

11

12세기 高麗 · 北宋 · 金 황제릉의 비교 연구

장경희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30집 2014.02 pp.339-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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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기 고려와 금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였다. 그것은 금의 始祖가 고려에서 왔다는 민족적 동질성에서 비롯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 러나 그동안 고려나 금 황제릉에 대한 연구는 소외되어 있었다. 이에 본고는 고려와 금 황제릉에 관심을 갖고 북송 황제릉과 비교하여 시대 적․양식적으로 친연성이 있음을 다음과 같이 밝혀 보았다. 첫째, 고려와 북송 및 금 황제릉을 선정할 때 당시 유행한 풍수사상을 따랐다. 고려와 금 황제릉의 陵地는 북쪽이 높고 동서쪽으로 산들이 둘 러싸고 남쪽이 낮은 곳에 정하는 ‘藏風得水’가 공통되었다. 송 황제릉은 ‘五音姓利說’에 의해 남쪽이 높고 북쪽이 낮은 평지에 陵地를 선택하여 고려나 금의 것과는 달랐다. 둘째, 고려와 북송 및 금 황제릉은 규모나 구조에서 차이를 보였다. 고려와 금 황제릉은 산 위에 작은 규모로 조영하였고, 제사용 香殿이나 국왕이 머무는 行宮등만 배치하였다. 반면 송 황제릉은 비교적 넓은 평 지에 궁궐처럼 다종다양한 다수의 건물을 웅장하게 배치하였다. 셋째, 고려와 북송 및 금 황제릉 석조물의 양식은 달랐다. 전자보다 후자의 석조물은 종류가 4배, 수량이 5배, 크기가 2배 이상이었다. 전자 는 생략적이고 해학적인 반면 후자는 정교하고 사실적이었다. 이처럼 고려와 금 황제릉은 양식적으로 친연성이 강하며, 시기적으로 볼 때 금 황제릉이 고려 황제릉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금의 조상들이 고려에서 왔다는 민족적인 동질성이 황제릉 양식에 반영 된 것이라 여겨진다.
In the 12th century, Goryo and Jin dynasties kept a friendly relationship each other. It was because the founder of Jin dynasty came from Goryo. However, the focus about imperial tombs has been so far concentrated on the ancient times and modern times by Korean and Chinese historians, and Goryo and Jin dynasties have been alienated. Thus, this study compared Goryo and Jin’s imperial tombs and then examined their architectural characteristics. The study results are as follows; First, when Goryo, Jin and Northern Song dynasties selected the imperial tombs, they followed Chinese Geomantic principles. Goryo and Jin dynasties’ imperial tombs had a common feature that their north sides were located at high places, their east and west sides were surrounded by mountains, and their south sides were located at low places. On the other hand, Northern Song dynasty’s imperial tombs showed the characteristic that their south sides were high, and their north sides were low, thus they showed a difference in comparison with Goryo and Jin dynasties’ imperial tombs. Second, Goryo and Jin dynasties’ imperial tombs were built on the mountains in small scale. The buildings for memorial service or emperor’s rest were simply placed in front of both dynasties’ imperial tombs. However, Northern Song dynasty’s imperial tombs were magnificently placed with various buildings like a palace. Third, Goryo and Jin imperial tombs’ statues were small in their kind, quantity and size. Both countries’ stone carvings consisted of 12 pieces in 3 kinds, while Northern Song imperial tombs consisted of 64 pieces in 13 kinds, thus Northern Song dynasty had 4 times more pieces in kind and 5 times more in quantity. Even in size, Goryo and Jin imperial tombs’ human-shape stone statues were 2m high and animal-shape stone statues were 1m high, while Northern Song imperial tombs’ human-shape stone statues were 3.8m high and animal-shape stone statues were 2m high, thus the latter was 2 times bigger than the former. Fourth, Goryo and Jin imperial tombs’ carving style was mainly centered on embossing, and their details tended to be omitted and humorous. On the other hand, Northern Song imperial tombs’ carving style was sophisticated in detail description and realistic. Like this, Goryo and Jin’s imperial tombs have a strong similarity in their statue style. Considering this fact, we can know that Jin’s imperial tombs were influenced by Goryo dynasty’s imperial tombs. Probably, it may be due to the fact that the racial homogeneity was reflected on both countries’ imperial tombs since the ancestors of Jin dynasty came from Goryo dynasty.

9,400원

12

부석사 입지의 풍수환경과 좌향에 관한 연구

박정해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30집 2014.02 pp.385-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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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부석사 입지와 축선이 꺾인 모습 속에 나타난 풍수적 특징 을 밝혀 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부석사는 우리 전통건축이 가지는 특 징 중에서도 입지환경에 따라 건축물 배치의 축이 다른 모습으로 나타 나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찰이다. 부석사의 주산과 안산은 아름다운 형상으로 서로 잘 어우러지는 모습 이다. 또한 핵심적인 의미를 가지고 사찰의 지향점과 특징적인 의미를 가진 혈처에 자리한 무량수전은 가장 건축적 특징을 간직한 모습이다. 부석사의 좌향은 호순신의 지리신법과 부합하지 않는 모습으로, 마치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모습과 닮아 있어 봉황포란형이라 할만하다. 이 와 같이 부석사는 다양한 지형조건을 반영하여 자연과 하나 되는 공간 구성을 이루어냈다. 특히 중요건축물을 혈처에 배치하고 자연지형에 순 응토록 축선에 변화를 실천하는 모습 속에는 당시의 시대상과 경제적 특징까지를 반영하는 모습이다. 더 나아가 입지가 갖는 특징을 실천하 는데 있어 풍수는 가장 중요한 의미를 차지하고 있다.
In this study, the reason why the axis of Muryangsu-jeon(無量壽殿) which is deflected from main axis of Buseoksa Temple(浮石寺) is traced with the view of Feng shui features. Buseoksa Temple is a typical one that supports the possibility of setting different building axis based on its location environment in Korean traditional architecture. The front and backward mountains, so called Ju-san and Ahn-san in Feng shui have gorgeous shape and coordination with each other. And Murangsu-jeon is located on the most accurate acupuncture point of backward mountain chain, which was implicitly pursued as ideal temple location. The aspect of Buseoksa is not applied to the principle,Jirishinbeop (地理新法) written by Ho Sun-shin. But the entire shape of mountain chain is, so to speak, Bong-hwang-po-rahn(鳳 凰抱卵) which means that the oriental phoenix incubates egg. According to topography environment, Buseoksa Temple is located on the acupuncture point of ground and positively applied to a curved axis. So, by considering various environment conditions, Buseoksa Temple was planned to coordinate with nature, and Feng shui was one of the most important factors to select location, to set aspect and to organize architectural space.

7,300원

13

義安大君李和의 功臣歷에 대한 고찰

천성래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30집 2014.02 pp.417-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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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여말 선초 의안대군 이화의 공신력’에 대한 고찰로서, 고 려 말에서 조선 초기는 왕조의 폐망과 개국으로의 변화가 극심했던 시 기로서 공신 의안대군 이화의 활동을 중심으로 공신력을 살펴 본 것이 다. 여말선초 위화도 회군과 조선의 개국, 제1차, 제2차 왕자의 난으로 국내외적으로 위기 상황에서 이화는 결정적인 공을 세웠고 그것은 그가 여말선초 4대공신이라는 기록적인 의미로 남게 되었다. 고려의 멸망과 조선의 건국이라는 미명아래 많은 공신들이 탄생할 수밖에 없었고 공신 도감을 설치하여 공신에 대한 업무를 관장하게 하였을 정도이다. 여말 선초의 최대 공신인 이화는 태조 이성계의 이복동생으로서 회군 공신, 개국공신, 정사공신, 좌명공신 등 4대 공신에 책봉되며, 당대 최대 의 특혜를 누린 인물이다. 그는 이성계의 최측근에서 여러 환난을 슬기 롭게 극복하고 행동하는 왕족으로서 고려 말 조선 초기의 실제적 힘이 되었다. 그는 영삼사사를 지내고 마침내 영의정이 되었으나 그에 대한 연구는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따라서 본 연구는 의안대군 이화의 행적을 통해 여말선초의 공신에 대해 살펴보고, 공신에 대한 특혜와 공신의 위차 등에 대한 차이를 살펴 보는데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이를 통해 우리 역사 속에 숨어 드러나지 않았던 태조 이성계의 이복동생 의안대군 이화에 대한 생애를 더듬어 보고, 왕족으로서 위기의 순간에 역동적인 행동을 통해 성리학으로 무 장한 신흥사대부와 더불어 조선의 정통성 확립을 이룩한 이면의 무인정 신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As a part of examination into vassals of merit from the late era of Goryeo Dynasty to the early era of Joseon Dynasty, this study sought to investigate history about vassals of merit primarily in terms of Euian Daegun Yi Hwa's meritorious activities during such period of transition where extreme changes occurred with collapse of former dynasty as well as foundation of new dynasty. Yi Hwa rendered his distinguished services even under critical situations - whether national or international - accompanied with troop withdrawal at Wihwado, foundation of Joseon dynasty and two prince revolts (1st and 2nd). And his services gave a historical implication that he was one of 4 great vassals of merit during such a period of transition in Korean history. Under the guise of Goryeo Dynasty's collapse and Joseon Dynasty's foundation, it was inevitable that there were many vassals of merit produced during this critical period, and royal family granted proper favors to those vassals with stipend for vassals of merit. In particular, Joseon Dynasty installed even a governmental office for vassals of merit to supervise general affairs about vassals of merit. It may be definitely to say that Euian Daegun Yi Hwa was the greatest vassal of merit during the period of transition from Goryeo to Joseon. He was a half-brother of Taejo Yi Seong-gye, the founder of Joseon Dynasty. Yi Hwa was invested as the vassal of 4 great merits in contribution to troop withdrawal, new dynasty foundation, affairs of state and assistance in making Yi Seong-gye the first king of Joseon dynasty, so he could enjoy the greatest favor granted by the governmental authority of his contemporary dynasty. Yi Hwa was a royal family member who stood nearest by Yi Seong-gye and got over a series of hardships wisely with bold actions, so he could play a role as real contributor to founding Joseon Dynasty after collapse of Goryeo Dynasty. According to historical documents, he took up Yeongsamsasa and was finally appointed as Yeong-euijeong, the prime minister of Joseon Dynasty, but there was very few studies focusing on his presence in the history. Therefore, this study has its implications in that it addresses the historical activities of Euian Daegun Yi Hwa to examine vassals of merit from the late era of Goryeo Dynasty to the early era of Joseon Dynasty, and determine any differences in special favors and order of ranks for the vassal of merit. Thus, it is expected that we will be able to explore the lifetime of Yi Hwa, a covered half-brother of Taejo Yi Seong-gye in Korean history, and will be able to examine Yi Hwa's dynamic actions as royal family at critical moments of historical transition, so that we may find out the military spirit of a vassal behind his meritorious contribution to establishing the legitimacy of Joseon Dynasty in collaboration with emerging gentry armed with the philosophy of Neo-confucianism.

6,600원

14

함화진(咸和鎭)의 저술서 연구 - 『朝鮮音樂通論』을 중심으로 -

김수현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30집 2014.02 pp.445-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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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일제강점기에는 이왕직아악부의 아악사장으로 해방직후에 는 국악원대표로서 근대시기 전통음악계의 중요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 는 함화진(1884~1949)의 저술서에 대한 연구이다. 이 논문은 함화진의 여러 저술들 중에 『조선음악통론』(1948)을 주목하여 이 책이 탄생하게 된 시대적 배경과 다른 함화진의 연구저작물들과 비교 및 그 내용 분석을 통해 국악학에서 어떤 위치를 점하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조선음악통론』은 함화진의 연구 성과가 총집결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자신의 변화된 음악관을 보여주는 중요한 저서이다. 함화진은 65년 평생의 대부분을 궁중음악에 몸담았다. 이왕직아악사장직을 사퇴한 이 후 그의 생애 말년인 10년간은 민속음악인 들과 결합하여 전혀 다른 삶을 살았고 그 삶을 대변하는 책이 『조선음악통론』이다. 기존의 음악사가 특정한 계층, 즉 궁중음악만을 중심으로 서술되었다면 궁중 밖의 음 악과 음악인, 즉 민속음악에 대한 분야를 확대하였으며 그 음악의 전통 과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서술을 하였다. 또한 대외관계에서도 기존 의 수동적인 음악사 서술이 아닌 우리음악의 우수성을 드러내려는 주체 적인 관점을 보였다. 『조선음악통론』은 함화진 이전에 저술된 전통적인 음악사 서술, 즉 관찬 역사서의 ‘악지(樂志)’류나 조선시대 실학자들의 문집류에 포함된 음악사 항목의 서술과는 다른 근대적 저술서로서의 면모를 보인 음악사 저서라는 점에서 그 학문적 의의를 둘 수 있다.
This is a study on a book written by Ham Hwa-jin(咸和鎭) known as an important figure in traditional music circles in the modern times, who was Aak-sajang (雅樂師長, chief master) in YiwangjikAakbu (李王職雅樂部, Royal Music Institute of Yi Household) during the period of Japanese forced occupation, also a representative of National classic music institute(國樂院) just after the liberalization from Japan. The study gave attention on Intoduction To Korean Music(『朝鮮音樂通論』)(1948) among his some writings and investigated a position of the book in the 'Korean Musicological' through era’s background for writing the book, comparison with his other writings and its analysis. Intoduction To Korean Music has its academic meaning in that the book is a writing of music history showing aspects of modern one differently from traditional writing’s describing style of musical history written out before Ham Hwa-jin. Intoduction To Korean Music first was classified by era for whole history and then it was classified to division of music for systematic description. And if existing musical history was written focused on a specific class, that is, court music, the music was expanded to field of folk music, that is, music outside court and its musicians, and its tradition and value was highly evaluated.

8,100원

15

대학 교양교육에서 고전 활용에 대한 연구 - 한국 · 일본 · 미국 대학의 교양 고전교육 사례 비교 -

함정현, 민현정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30집 2014.02 pp.483-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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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교양교육에서 고전교육은 소외되고 있던 인문학의 부활과 인재 가 갖추어야 할 인성의 중요성이 대두되며 대학생에게 필요한 교육 중 하나로 점차 확대되고 있다. 한국 대학의 경우 교양필수 또는 교양선택 강좌에서 고전읽기·고전세미나·주제로 읽는 고전 등 고전을 활용한 교 양교육이 점차 증가 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메이지 유신 시기 왕성했던 고전교육은 이 점차 사라져 현대의 교양교육에서는 고전교육의 활용을 찾아보기 어렵다. 미국 대학의 고전교육은 1900년대 시작되어 현대까지 대학 교육의 중심에서 다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논문은 교양교육의 목적 달성을 위해 높은 교육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 고전을 ‘사고와 표현’ 강좌에 적용하여 실질적 고전교육뿐만이 아 니라 쓰기와 말하기라는 현대적 활용 단계까지 발전시킬 수 있는 방안 을 찾아보고자 하였다. 기존의 ‘사고와 표현’ 강좌가 대학생에게 필요한 일반적인 기술적 교 육이었다면 이를 개선할 수 있는 방안으로 고전을 활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고와 표현 : 쓰기’의 경우 ‘동호문답을 통한 문답식 글쓰기’, ‘난 중일기를 통한 자기성찰 글쓰기’, ‘목민심서를 통한 정보전달 글쓰기’ 등 을 구성하여 고전탐구를 통해 다양한 종류의 쓰기 활동을 제안할 수 있 다. ‘사고와 표현 : 말하기’의 경우 또한 ‘논어와 정서표현 말하기’, ‘맹 자와 지성적 말하기’, ‘도덕경과 논리정보 말하기’, 한비자와 말하는 설 득과 토론’등으로 말하기 활동을 적용할 수 있다. 그러나 시간적·범위적 여건의 제한으로 각 고전의 일부를 선정하여 집중 탐구해야 하는 제약 은 대학별 학사일정에 따라 점차적으로 개선해야 할 필요가 있다.
Recently, classical literature has been slowly gaining in popularity and classical literature’s greatest skill is its ability to teach humanism and good characteristics to university students. This research was designed to find out how Japan, America, and Korea teach classical literature to university students to achieve the goals of general education. Classical literature has educational value, and we can apply it to thinking and expression classes in general studies. We can also look for a way to develop classical literacy in modern subjects. On Hanseo University’s cases, it designs into two classes: thinking and expression writing, thinking and expression speaking. In writing class, there is interrogatory writing through Donghomoondab, and persuasion writing through Baekbumilji. In speaking class, there is sentimental speaking through Noneo, logical information speaking through Dodukkyung, rational speaking through Mookja, persuasion and debate speaking through Hanbija. The value of classical literature for thinking and expression class can give a change to think through the history and events of philosophy and it is a guide to solve problems, it can also help one to develop wisdom to see more out of live. For the limitation of this research, the range of classical literature is huge and the academic schedule is short so the class must be adaptable and flexible.

6,600원

16

毅堂朴世和의 『昌東日記』 解題

김종수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30집 2014.02 pp.51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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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당 박세화는 구한말의 유종·사표로 추앙받았던 인물로서, 당시 화 서학파·간재학파 등과 정족의 세를 형성한 의당학파를 창시한 학자이기 도 했다. 이북에서 남하한 이후 좌호권인 월악산 일대를 주요 활동 무대 로 삼았던 박세화는 일제의 침략에 맞서 이른바 “인의절립(引義絶粒)”을 감행하기에 이른다. 77세의 고령의 나이에 박세화가 선택한 단식을 통한 자진행위는, 그가 평소에 견지하였던 자정노선의 일환으로 평가된다. 정 동휘가소장본인 『의당집』 권9에 수록되어 있는 『창동일기』의 표제 가 『자정록』으로 표기된 이유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다. 경술합병이 직접적인 배경으로 작용한 저술 『창동일기』는 약 한 달 여 동안에 걸쳐 진행된 박세화의 단식·절명의 전 과정을 그의 사후에 문 인들이 채록·편집한 결실이다. 충북 음성의 창동정사에서 진행된 단식 기간 동안에 박세화는 내알한 문인·손님 등을 대상으로 하여 호흡의 가 닥이 유지된 마지막 순간까지 강론활동을 병행하였던바, 이 점 『창동 일기』의 가장 특징적인 국면을 형성하고 있다. 또한 『창동일기』는 박세화가 보여 준 진리[道]에 대한 무한한 외경심과 고결한 정신세계를 동시에 확인시켜 준다. 특히 박세화가 회고담 형식으로 토로한 일부 내 용들은 『의당집』에서 등재되지 않은 다수의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기 에, 이 저술의 자료적 가치를 더욱 증장시켜 주고 있다. 한편 후미에 수록된 상·장례 기록인「신종록」은 문인록이 부재한 당 시 의당학단의 주요 구성원들의 면면을 살피기에 매우 유익한 자료로 평가된다.
Park Se-hwa, a Confucian scholar in the late Joseon period, was a great scholar, who founded the Yidang School(毅堂學派). He committed suicide(自靖) by fasting at the age of 77 in resistance to the annexation of Japanese imperialism(日帝). Changdongilgiis a diary, in which he recorded everything happened during his 23 days of fasting. It includes the content of lectures, which Park Se-hwa gave to his pupils, and the descriptions on his health status. The main stream of lectures is the discourse on the ‘do’ (道, way to truth). It also includes some special anecdotes in the past, which had not been disclosed till then. On the other hand, the list of literary people in the 「Shinjongrok(愼終錄)」, which is a record on the funeral ceremony and rites of Park Se-hwa accompanying a miracle(異蹟), has important value as an information because it and the list of the persons who visited Park Se-hwa in fasting tell the names of Yidang School members; while there is no formal pupil list(門人錄) in Yidang school. The 「Jejajeongrokhu(題自靖錄後)」 in the later part of the book is the reminiscence written by Shin Hyeon-guk(申鉉國) on the learning and virtue of teacher Park Se-hwa.

6,9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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