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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학 [THE EASTERN CLASSIC STUDIES]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지
  • 발행기관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INSTITUTE FOR EASTERN CLASSIC STUDIES]
  • ISSN
    1598-1452
  • 간기
    계간
  • 수록기간
    1995~2019
  • 등재여부
    KCI 등재
  • 주제분류
    인문학 > 기타인문학
  • 십진분류
    KDC 910 DDC 950
제24집 (13건)
No

기획특집 : 율곡 이이의 인간, 교육, 문학 사상

1

율곡의 인간 이해에 대한 일고찰

임헌규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24집 2012.08 pp.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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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에서 16세기는 성리학의 이론적 정착기였다. 그런데 성리학을 이론적으로 완성하는 데에 있 어서는 사단-칠정, 인심-도심과 같은 개념에 대한 이기론적 정초가 요구되고 있었다. 이 문제에 대 해서는 우선 퇴계와 고봉이 ‘四端七情論爭’을 통해 그 실마리를 제공했다. 퇴계와 고봉의 논쟁을 지 켜본 우계는 이제 인심과 도심의 문제를 이기론과 연관하여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율 곡에게 제기하였다. 우계의 질문에 대해 율곡은 화담의 主氣論, 퇴계의 互發說 및 主理論, 그리고 整菴의 理氣渾淪說 등을 비판적으로 극복하고, ‘理通氣局說’, ‘氣發理乘一途說’, ‘人心道心終始說’, ‘ 心性情意一路說’ 등을 내세우며, 주자의 이기론 및 인심도심설을 창의적으로 재구성하여 제시하였 다. 이러한 율곡의 인심도심설에 대한 이기론적 정립과 그 의의를 살펴보려는 이 논문은 우선 문제의 인심도심논쟁이 있게 된 배경으로 주자의 인심도심설이 지니는 한계와 우계의 질문을 살펴보는 것 으로 출발하여, 율곡의 이 문제에 대한 이기론적 해명과 정당화를 살펴보았다. 그런 다음 우리는 율 곡의 인성론이 지니는 철학적, 인성론적 의미를 탐색해 보았다. 여기서 우리는 율곡의 이론을 인간 본성에 대한 이론은 1) 인간 본성의 내용, 2) 보편적 인간 본성과 현실적 인간의 차이 규명, 3) 인간 의 내적 갈등, 그리고 4) 인간본성과 인류의 관계(政體) 등에 대한 해명으로 확대하여 살펴보면서 그 해석을 시도하였다.
This article discusses Yulgok's' Theory of Mind-Body Relation and Theory of the human mind and moral mind. The Counsels of the Great YU of The Shoo King written : the Human mind is restless, - prone to err, the Moral mind small. Be discriminating, be undivided, that you may sincerely hold fast the Mean. ChuHsi(1130-1200)'s the Theory of the human mind and moral mind is based on Tradition of Tao. ChuHsi insists that the human mind is to be controlled by the moral mind. Yulgok(1536- 1584) had developed and advanced ChuHsi's the Theory of the human mind and moral mind on the bases of Li-Ki. Yulgok argument that the human mind and moral mind coexist as a servant and a master. Yulgok's's account, each concrete event and thing falls under two level, called LI and KI. mind & body are two aspects of a single event and thing. Mind as distinguished KI is difined by it's intentionality and presidency. Yulgok's theory of mind & body relation differs from the R. Descarete's theory of two substance.

7,300원

2

율곡 교육론의 구조와 성격 — 「격몽요결」과 「학교모범」의 비교 —

신창호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24집 2012.08 pp.3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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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 이이(栗谷 李珥, 1536∼1584)는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정치가이며 교육학자이다. 그의 교육이론은 유학이 추구하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의 길에 충실하기 위한 내용을 진지하게 담고 있다. 그의 저서 중 『격몽요결』은 초학자(初學者)를 위한 교육과 율곡 자신의 자기반성과 배려를 위해 지은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초학자를 위한 학문이론서이면서도 자기 성찰을 위한 수양서의 성격을 지닌다. 『격몽요결』의 핵심 내용인 「입지(立志)」에서 「처세(處世)」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은 일종의 학문 단계로 볼 수도 있고, 교육과정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 시작과 종결은 개인이 어떤 뜻을 정립하여 자기교육을 정확하게 실천하느냐에서 출발하여 세상에서 타자와 더불어 삶을 누리는 처세에서 마무리 된다. 이러한 격몽(擊蒙)의 요점은 기본적으로 ‘수신(修身)’과 ‘제가(齊家)’의 차원에서 수기치인의 양식을 담보한다. 『학교모범』은 『격몽요결』과 달리 교육을 왜하는지, 그 본질을 전반적으로 열거하고 있는 ‘교육학개론’ 내지 ‘교육학원론’에 해당한다. 『학교모범』은 교육의 원칙과 위상 정립, 현실 인식과 교육의 역할, 교육 현실의 성찰과 미래 교육의 지침, 그리고 그것의 활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격몽요결』과 『학교모범』은 공통적으로 유학이 추구하는 교육이상을 포괄하고 있다. 그러나 『격몽요결』은 개인교육 차원의 수기치인에 대해 제시하였고, 『학교모범』은 공동체 교육 차원의 수기치인에 대해 정돈하여 그 영역을 확장하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두 저작은 저술 동기와 내용 구성의 측면에서 그 구조와 성격을 달리한다.
Yul-Gok Lee Yi is a philosopher, politician, and educator representing Joseon Dynasty. His educational theory includes contents for honestly practicing Sugichiin(修己治人, cultivating oneself and governing others). Gyeok Mong Yo Gyeol of his books was written for educating beginning scholars, reflecting on oneself, and considering others. It is an academic theory book for beginning scholars and has characteristic as a cultivating book for reflecting on oneself as well. The process from Ipji(立志, taking a goal) to Cheose(處世, discerning things) as the core content of Gyeok Mong Yo Gyeol could be arranged in a kind step of study and understood as an educational curriculum. As for the beginning and ending of it, it starts where one takes a goal and then educates oneself, and ends at Cheose where one lives with others harmoniously. This Yo Gyeol(要訣, an essential key) of Gyeok Mong(擊蒙, enlightening a foolish or stupid person) basically assures the mode of Sugichiin in the dimension of Susin(修身, cultivating oneself) and Jega(齊家, governing a family). Hak Gyo Mo Beom different from Gyeok Mong Yo Gyeol is relevant to the introduction of education which mentions the essence of education by and large or the theory principles of education. Hak Gyo Mo Beom includes diverse contents from the principle of education and establishing its status, recognizing reality and the role of education, to reflecting educational reality, guidelines of future education and its utilization. Both Gyeok Mong Yo Gyeol and Hak Gyo Mo Beom include the educational ideal which confucianism seeks. They, however, differ from characteristic in that Gyeok Mong Yo Gyeol mentions Sugichiin as the dimension of personal education and that Hak Gyo Mo Beom refers to Sugichiin as the dimension of community education and is expanding its field.

6,700원

3

율곡시에 나타난 산수유람 체험의 형상화 방식과 지향

손유진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24집 2012.08 pp.6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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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栗谷) 이이(李珥: 1536-1584)는 문학과 철학을 겸한 손꼽히는 작가로서, 특히 이기일원론(理 氣一元論)이라는 독자적 이론을 내세운 그의 철학은 문학을 바라보는 시각도 바꾸어 놓아 문학 자 체의 존재 양상과 가치에 주목할 수 있게 하였다. 율곡은 문학론에서, 도(道)와 문(文)을 밀접한 관 계로 인식하고 그 관계를 규정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는 다양한 용어를 사용하며 도와 문의 관계 를 설명하였는데, 특히 문이형도(文以形道)는 그가 독자적으로 제안한 용어이다. 특히 율곡은 생애의 전 시기에 걸쳐 산수유람을 즐겼던 율곡은 이러한 유람의 체험을 시로 남겼는 데, 그는 유람의 목적을 ‘참됨의 진원’을 찾기 위한 것으로 이는 주마간산 식으로 유람하는 자가 얻 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또 그 과정에서 기다림이 수반되고, 리(理)가 성숙할 시간이 필요했다. 곧 미발의 시간에 야기(夜氣)를 회복하여 스스로를 충만하게 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율곡은 어 느 구절에서도 직접적으로 구도(求道)와 탐리(探理)의 바람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다만 담담한 서 술적 어조로 거기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을 택했을 뿐이다. 곧 율곡이 산수시에서 추구했던 바는 천지자연에 내재한 순선한 본성을 발견하여 그것을 온전히 체득하려던 것이 아니라, 자연에 내재한 본성을 통해 각각의 존재가 다르게 부여받은 기질을 균등한 수준으로 연마하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기발리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을 주장한 것과 같이, 그는 천지자연의 이치를 체득하 는 데 있어서도 산수로 인해 개인이 지닌 기가 발발하게 되면, 그 이치는 자연히 따라 갖추어진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율곡시에 나타난 산수유람 체험의 형상화 방식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 는, 자신이 내세운 주기론적이기론(主氣論的理氣論)의 문학적 구현이라고 할 수 있다.
Yul-gok Yi Yi(1536-1584), a leading author proficient in both literary and philosophy of the time, is well known for his intrinsic philosophical ideas based on a theory called “Monistic Ju-ki-ron(主 氣論)” which had extensive impact to shift the viewpoints on the literature to focus on the existential modality and values of literature itself. Yi Yi’s mentions on literature reveals that he had recognized the close correlation between morality(道) and literature(文) and had endeavored to define their relationship. Among the diverse vocabularies that Yulkok made uses of to explain the relationship between morality and literature, ‘Mun-yi-hyung-do(文以形道)’ is notable for being the original vocabulary he proposed. ‘Mun-yi- hyung-do’ means the innate ‘Li’(truth, character) of an object can be shown by intactly embodying the phenomenon and not through notional depiction. To Yi Yi, the landscape became an object in which morality was embodied and ‘observed’. Having enjoyed landscape sightseeing in all his life, Yi Yi left poems about his sightseeing experience, and those reveal the purpose and contents of sightseeing well. The purpose was to find ‘the origin of truthfulness’ and certainly it could not be obtained through a cursory tour. The sightseeing experience required patience and enough time for ‘Li’ to mature. That means to say it was an effort to fulfill oneself by recovering ‘Ya-ki’(night energy) in the time of patience. However, in no single line Yul-gok had directly mentioned his desire to find ‘Li’, rather he chose to speak about the process of accomplishing it in serenely descriptive tone. What he truly pursued in landscape poems was not to discover and fully acquire the innate nature of the earth and sky, but to equally polish up the disposition of individual existence given through the innate nature of each. As he argued in ‘Ki-bal-li-seung-il-do-sul’(氣發理乘一途說), he believed that if the disposition of individualis is realized through landscape, the nature of the earth and sky is acquired itself. The Method and Pursuit to Embody Landscape Sightseeing Experience Revealed in Yul-gok’s Poetry would be more clearly distinguished if compared with other authors of the time.

5,800원

일반논문

4

漁村 沈彦光 시의 자연 인식과 상징성 연구 — 動植物 소재에 具現된 특성을 중심으로 —

김형태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24집 2012.08 pp.89-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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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漁村 沈彦光(1487~1540)의 󰡔國譯 漁村集󰡕을 대상으로 그가 지녔던 자연 인식의 태도 를 확인해보는 데 그 목표가 있다. 다만 분량 상, 그 연구 대상은 그의 시 중 빈번하게 사용된 동식 물로 그 범위를 국한시키도록 한다. 이를 바탕으로 시와 상징성과의 연관성은 물론, 그만이 독특하 게 해석해낸 자연물의 의미를 살펴봄으로써 그가 자연을 바라보았던 작가 의식의 일단에 접근해보 았다. 우선 심언광의 시 세계는 현실적이다. 농가에서 흔히 쓰는 농기구까지 세심하게 관찰하여 그 모양 과 재료까지 자세히 밝혔을 정도이다. 즉, 자연물의 관습적 상징성을 활용함은 물론, 藥材로 친숙한 덩굴식물에서 소박한 의복의 심상을 새롭게 도출해낼 만큼 늘 현실성을 추구했다. 또한 소나무 등의 자연물에서 확인되듯 마을이나 무덤 주변의 흔한 자연물을 시적 소재로 활용해 기존의 심상을 초월한 그리움의 공간으로 확장시키고 있다. 이를 통해 확보된 고향이라는 공간은 변방의 심상들과 맞물려 어촌의 우국애민적 가치관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심언광에게 자연은 삶 그 자체로 인식되었다고 할 수 있다. 즉, 어촌은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고 이용할 수 있었던 친근한 자연물들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자 노력함으로써 다른 시인들 이나 작품들과 차별화될 수 있는 生氣를 획득하고 있다. 아울러 그 저변에는 늘 우국애민을 전제로 삼아 진정한 목민관이 되고자 했던 어촌의 웅대한 포부가 담겨 있다. 그러므로 시를 통한 어촌의 자 연 인식 속에는 실제 생활이 가득 찬 세계, 서민의 고단한 삶을 적극 이해하고자 했던 지식인의 태 도가 무르녹아 있는 것이다.
The subjects of this paper is the Sim, eon-gwang(沈彦光)’s 『Guk-yeok(國譯) Eo-chon-jip(漁村 集)』. The objective of the study confirm that he is possessed by the attitude of the natural perception. Because of the limited amount of only those subjects of his poems as animals and plants that are used frequently asks to limited range. Based on this, Looking into the relevance of his poetry and symbolism. And unique natural that he did interpret the meaning of the writer looked at by examining the nature of consciousness that he was approached. First, his poetry is realistic world. Commonly used in farms and farm equipment were carefully revealed in detail the shape and materials. In other words, take advantage of natural symbolism of the customary, and vines in the familiar pine rustic enough to derive a new image of clothing always sought reality. Also, Town or around the grave to the advantage of common natural objects existing in a poetic image of a timeless longing has extended into the space. This is his poems in natural materials can be found at. This home is secured with an image of the border has highlighted the value of his patriotism and love people. Therefore, to him life itself was recognized as the natural. Around the common touch, he was available and gives new meaning to familiar natural objects by trying to work with other poets or novelty were obtained which can be differentiated. In addition, management always wants to be a true patriotism and love people presupposes that he has a bunch of his grand ambitions. Therefore, the poems recognized his natural through a world filled with real life people who want to understand the hardships of life, an active attitude of intellectuals is included.

5,800원

5

「허생전」 이상사회의 사상적 토대

최천집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24집 2012.08 pp.11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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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허생전」이 이상사회에 대한 건설에 시종일관 관심을 두고 있으며 사상적 근거로 원시유가를 중시함을 밝혀보려고 한다. 「허생전」에는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이상사회가 설정되고 이상사회가 하나만의 고정된 사회가 아니라 둘 또는 그 이상의 여러 단계를 거치는 유동적 사회임을 보여준다. 작품을 지배하는 서사는 이상사회에 대한 탐색과 좌절 그리고 그것에 대한 재탐색이 이루어지므로 작품을 이상사회의 건설이라는 관점으로 보아야 한다. 「허생전」의 이상사회는 󰡔예기󰡕에서 제시한 것과 일정하게 관련되어 있다. 「허생전」에는 허생이 출가하여 무인공도에 건설한 1차적 이상사회와 그곳에서 돌아와 이완에게 이상사회를 이루기 위해 제시한 원칙을 따른다면 건설 가능한 2차적 이상사회가 설정되어 있다. 전자가 소강의 이념이라면, 후자는 대동의 이념에 따른 것이다. 허생은 이상사회에서 덕만 있으면 사람들이 저절로 찾아들 것임으로, 먼저 이상사회가 덕에 기초하여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2차적 이상사회는 올바른 정치의 수행으로 미래의 현실 사회에서 구현해야 할 당위라고 한다. 허생이 주장하는 이상사회의 기본적 특징이 실학을 표면으로 하고 원시유가를 이면으로 한다는 생각은 주자학의 이론적 편향성을 극복하기 위한 점에서는 일정한 의의를 갖고 있는데 유학의 이념체계에 머문다는 한계가 있다. 시대적 한계를 뛰어넘고 사상적 혁신을 도모하려 한다면 유학의 테두리를 뛰어넘어 새로운 사상으로의 방향 전환을 이룩해야 하지만 작품에 나타난 이상사회는 그렇지 못한 점이 많다. 허생이 가진 사상적 대안으로 제시한 원시유가를 속으로 하고 실학을 겉으로 한 이상사회에 대한 건설 기반은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그 한계는 이상사회에 대한 추구에서 소강과 대동의 사이에서 방황하는 작자의 의식의 갈등 양상에서 포착해 낼 수 있다.
In this work, frustration and seeking are consistent for establishing ideal society. As the method to solve actual problems, the process setting ideal society and suggest it with the developed form is dominating the whole work. The narration dominating the work is exploration, frustration and reexploration for ideal society. The ideal society of the work is resemble to what 『Yegi』(예기) suggested. If the first ideal society was set by the concept of Sogang(소강), the second ideal society was set by the concept of daedong(대동). The society showed differences such as successful fulfillment and failed fulfillment in the work, but it's natural that it is related the context to the society of sogang(소강) and daedong(대동) in 『Yegi』(예기) generally. Heosaeng, a hero of the work, insists that the second ideal society must be established by fulfillment of correct politics after the first ideal society fulfilled by virtues while mentioning that the worry is few virtues, not few people as people will visit the ideal society naturally if there are virtues in ideal society. The mention of ideal actualized stage and concept is certainly related to the mention of virtue's training process and goal in primitive Confucianism whose ideal is to cultivate morality, participate in politics and share the benefits to general people. The thought he supports, Silhak(실학), has a certain significance for enduring Jujahak's(주자학) theoretical bias and also has a limitation that it stays in conceptual system of yuhak(유학) originally. If intending to beyond periodical limitation and promote ideological innovation and changing the direction to new ideology beyond the limitations, effects or innovation can be more efficient. But, it cannot but help meeting limitation with the setting of direction to the ideal society based on seongrihak(성리학) of primitive Confucianism, suggested as his ideological alternative. The limitations are accepted to the awareness of scholar who wonders between sogang(소강) and daedong(대동) while pursuing the ideal society.

7,300원

6

19세기 한강 이북 도읍의 문학적 형상화와 의미

정선희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24집 2012.08 pp.143-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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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19세기 영남의 한미한 문인 목태림이 전국 여행을 하면서 쓴 기행문 <서유록(西遊錄)>에서 한강 이북의 도읍지 네 곳, 즉 한양, 송도, 평양, 의주에 관한 기록과, 이곳들을 장편의 부(賦)로 형 상화한 <설경부(雪京賦)>, <송경부(松京賦)>, <기성부(箕城賦)>, <용만부(龍灣賦)> 네 편을 집중 적으로 살핀 연구이다. 이 도읍들은 모두 한강 이북 지역으로, 사행(使行)의 경로이면서 옛 왕도(王 都)였고 국경 인접 지역이며 유배나 파견이 잦았던 곳이다. 소설에서는 전쟁터에 나가는 경로로 설 정되거나 일상적인 공간과는 다른 색다른 공간으로 형상화되기도 하는 등 그 중요성이 인정되는 곳 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관한 글이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현재의 정치적인 상황으로 말미암아 연구 에서 소외되었던 곳이다. 특히 영남지역에 세거하면서 그곳의 문화만을 향유하던 향촌의 문인이 경 험한 도읍들의 모습을 고찰함으로써 그 도읍들의 실상과 특성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당시 사람 들의 생활 모습, 전승되던 신화와 설화 등의 양상도 알 수 있다. ‘한양’은 조선왕조의 왕도(王都)이기에 그 웅장함과 번성함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고 왕조를 칭송 하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 특히 <설경부>에서는 도읍의 질서 있고 풍성하고 도회적인 면모를 사실 적으로 그려내었으며, 궁궐과 관청 주변의 활기찬 분위기와 대신들의 호기롭고 영화로운 모습을 실 감나게 묘사하였다. ‘송도’에서는 옛 왕조를 위해 순절(殉節)한 사람들의 단심(丹心)에 눈물 흘리기 도 하고 왕조가 망했음을 안타까워하였다. 또한 고려 태조 왕건의 아버지 작제건 탄생 설화, 고려 망국의 주범 신돈 설화, 최영 장군 설화 등을 채록하였고, <송경부>에서도 이런 내용들을 시화(詩 化)하면서, 이곳의 정기(精氣)가 좋아 충신과 의사(義士), 효녀가 많이 났다고 칭탄하는 등 지역적 특색도 이야기하였다. ‘평양’에 대해서는 단군이 내려왔고 기자가 창업한 곳이면서도 풍광이 아름 다운 곳이라고 하였다. 또 동명왕 신화, 온달 장군에 대한 이야기, 임진왜란과 관련된 이야기 등 역 사에 대한 관심을 표명했으며, 연광정, 을밀대, 능라도, 대동강 등 승경(勝景)을 노래하기도 하였고, 상인과 물화가 번성한 곳임을 말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내용을 ‘연광정 8경’, ‘기성 10승’을 포함한 <기성부>로 형상화하였는데, 이는 고려나 조선의 문인들이 송도, 평양, 울주, 한양 등지에서 짓던 팔경시의 전통을 잇는 것이었다. ‘의주’는 청나라와 접한 땅이어서 그곳 사람들을 볼 수가 있고 상 인들이 북적이는 곳, 사신들이 연경에 가기 전에 대기하는 곳으로서의 특징이 있었다. <용만부>를 지어 이곳이 고구려의 수도였음을 이야기하고 승경 여덟 곳을 ‘용만 8경’이라고 하여 읊기도 하였다 . 임진왜란 때에 왕이 피해 있던 곳이라는 비감함도 함께 담았지만, 지배적인 이미지는 부유하고 상 인이 많은 곳, 사신과 관리가 왕래하는 국경지대라는 점이었다. 아직은 여행이 어려웠던 시기인 19세기 초에 영남의 평범한 선비가 전국을 여행하면서 자신이 본 대도읍들의 특징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유적과 역사에 얽힌 설화들을 적극적으로 채록하였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특히 한강 이북 지역인 관서지역 도읍들에 대한 기록이 희소하기에 더욱 주목할 만하였다.
This paper aims to explore the context about four big capitals ; Hanyang, Songdo, Pyongyang, Uijoo of written by Mok Tae Lim, a novel writer of Kyung-Nam. This book is about a trip from Kyung-Nam to Uijoo in the early nineteenth century. These cities were on the north of the Han river. They were the paths of envoys and the old royal capitals, and were of importance as border areas. The author wrote what he had seen and heard and expressed his heightened feelings by writing long Boos in these cities. He described Hanyang as the Royal capital with affluence while Songdo as an old, lonely capital out of luck. He described Pyungyang as a beautiful capital founded by Dangun and Gija and Uijoo as a border capital that envoys and merchants passed by. It is significant in the sense that an ordinary scholar of Kyung-Nam described the features of capitals he traveled realistically and recorded tales related to relics and history when it was difficult to travel.

8,500원

7

20세기 초 대일 기행가사와 東京 표상의 변모 — <유일록>, <동유감흥록>을 중심으로

김윤희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24집 2012.08 pp.183-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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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반에 창작된 대일 기행가사 두 편 <유일록>과 <동유감흥록>에 형상화된 동경(東京)의 표상을 살펴보면 주목할 만한 변모 양상이 발견된다. 조선후기 기행가사의 전통과 맞닿아 있기 때문에 두 작품에서 표현 특질의 유사성은 확인되기도 하지만 동경을 바라보는 시선의 기준이 ‘근대성’으로 변모하게 되면서 묘사 대상의 범위와 방식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유일록>에서 동경을 형상화한 부분을 살펴보면 근대화된 도시로서의 위상에 감탄하되 그 지각과 묘사의 범위는 대체로 시각적 층위로 한정되어 있다. 당시 국제 정세에서 소외된 대한제국 사신의 일원으로서 동경을 유람했기에 지각할 수 있는 대상과 범위도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동유감흥록>의 화자는 식민지국의 일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찰단원’이었기 때문에 ‘조선’이 아닌 ‘일본’의 시선에서 동경을 관찰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동경’이라는 도시에 한정해서 <유일록>과 <동유감흥록>을 분석해 보면 후자의 경우에 근대성에 대한 경탄의 시선이 더욱 부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화자는 ‘일선융화’ 정책에 의식이 경도됨으로써 세계적인 대도시로 성장한 동경을 흠모하는 감정이 보다 직접적으로 표면화되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 특징적인 점은 일본인들에 대한 편견의 시선이 사라지고 그들의 일상성을 포착한 열린 시선이 발견된다는 점이다. <유일록>의 화자는 부분적으로 ‘이적’, ‘금수’ 등의 어휘를 통해 일본인들의 풍속에 대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음은 물론 동경 시내의 ‘기생’들에 대해서도 보수적 시선으로 판단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런데 <동유감흥록>에 이르면 일본인들을 화이관의 틀로 인식하는 구도가 완전히 소멸된 것은 물론 위의 사례와 같이 그들의 일상성에 주목하는 현상까지도 확인된다. 동경이라는 도시를 적극적으로 관찰하고 탐색하면서 ‘개별적’인 이해를 시도하였으며 일상적 풍경까지 가사 문학으로 형상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학사적 의의가 있는 작품이 비러 <동유감흥록>인 것이다.
The two works of GiHaengGaSa written about the journey to Japan in the early 20th century, Yu Il Lok and Dong Yu Gam Hung Lok reveal a significant change in the representation of Tokyo. While the tradition of GiHaengGaSa during the late Chosun dynasty accounts for the expressional similarity, the range of observation and the way of description differ in the two works as the perspective towards Tokyo has shifted its focus on "modernity."Yu Il Lok describes the admiration towards Tokyo as a modernized city, however its recognition and range of description is confined to visual representation. The narrator has limits in the subjects of his observation for he travels Tokyo as one of Korean empire's envoys isolated in the international political scene. On the contrary, the narrator of Dong Yu Gam Hung Lok is an official inspectorate who could observe Tokyo in the perspective of Japan as opposed to that of Chosun despite his Korean nationality. He is able to describe not only the city's appearance but also the modernized system, function of each government office and details of legal process. In their perspective towards Tokyo represented in Yu Il Lok and Dong Yu Gam Hung Lok, the latter emphasizes the awe evoked by modernity. Abolishing the biased view on the Japanese, it accepts a more open-minded perspective to embrace everyday life as well. Dong Yu Gam Hung Lok claims its significance in the history of Korean literature as it attempts "individual" comprehension from proactive observation of the modern city and also visualizes the scenes of everyday life in the genre of Gasa.

6,300원

8

古典과 現代 悼亡詩에 나타난 슬픔의 치유방식

이명희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24집 2012.08 pp.209-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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悼亡詩는 유교시대의 덕목인 이성중심주의 사회에서 감정표현이 자유롭지 못했던 남성이 아내를 여읜 슬픔을 유일하게 표출할 수 있던 장르로 중국과 한국 고전작품에서 다수 드러나고 있다. 본고는 박남수와 이은영 및 悼亡詩의 연구자가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대표적 한시인 김정희, 박광훈, 이용휴, 이달, 채팽윤의 작품과 현대시인 도종환, 박남수, 신경림, 김영랑, 김관식, 그리고 김소월의 작품을 비교하고, 이들의 슬픔의 처리방식과 哀悼的 언술(elegiac distichs)이 정서 치유 와 상관관계가 있음을 밝히고자 한다. 사별의 체험은 인간이 겪는 지극한 상실감으로 사별 직후 가 족의 겪는 감정은 극할 수밖에 없다. 사별 직후는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부정의 단계에서부터 애 도의 과정은 죄책감, 그리움, 비탄, 그리고 亡者와의 합일에 대한 욕망을 경험하게 된다. 문제는 산 자가 亡者와의 관계를 어떻게 정리하느냐에 따라 건강한 삶이 다시 시작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 서 아내에 대한 남편의 죄책감과 후회, 그리움의 정조를 드러내는 정도에 따라 1. 共鳴 혹은 울음을 통한 動的 哀悼 2.절제를 통한 그리움의 靜的 哀悼 3. 대상과의 합일을 위한 타나토스(Thanatos)적 애도 4.주체 회복을 위한 발전적 哀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이 연구의 궁극적인 목적은 지인과 가족과의 사별을 경험한 한국 시인들의 생사관을 밝히는 것으로 아내와의 사별 후 조선시대의 남성의 억압적 글쓰기는 悼亡詩에서는 예외적으로 정서 표출이 자유 로웠다. 표현 정도에 따라 위의 세 가지로 나누어 살폈을 때, 이는 궁극적으로 亡者와 못다 한 사랑 과 그리움을 나눔으로써 건강한 여생을 이끌어낸다. 따라서 悼亡詩는 치유의 문학 장르이다. 이는 서정성이 본령인 詩文學이 발전적 애도를 통해 슬픔의 미학이 건강한 정서치유와 문학치료의 가능 성을 내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Domangsi is a genre that was written by the widowers who could not freely express their emotion in the society where was focused on reason that is a virtue of Confucianism, which it was only way to express their sorrow for losing their wives. It can be found on the classic works of poetry in China and Korea. This article compares the works of Kim jeonghee, Park gwanghun, Lee yonghyu, Lee dal and Chaepaengyun that were the representative Chinese poetry which has been pointed out in common by Park namsu, Lee eunyeong and the researchers for Domangsi with the works of Do jonghwan, Park namsu, Shin gyeong rim, Kim yeong rang, Kim gwansik and tries to find that their processing method of sorrow and the elegiac distiches are related with the healing of emotion. As the experience of bereavement is an extremely sense of loss that mankind experiences, the feeling what the family experiences immediately after bereavement has to go extremes. Immediately after bereavement, they may experience from the step of denying the death to the step of mourning such as the sense of guilty, longing, grief and the desire of unifying with the dead. The thesis that We have to consider is in that the healthy life may be restarted depending on how the living can break up with the dead. Therefore, it can be examined by dividing as follows depending on the degree of which a husband shows the sense of guilty and regrets and the longing atmosphere. First, it is a dynamic mourning with crying, which he cries aloud his great sorrow, second, the silence mourning with self-control- the longing atmosphere, third, the unified sorrow with the dead –as a thanatos urge, this is the developmental sorrow for recovering a main agent following the great sorrow, with this, a husband may return to the positive life, not a surplus life. This article has the final aim to find the idea of life and death in the Korean poets who had the experience to lose their wife or friends. In the Joseon dynasty period, the writing of men was under the suppressed atmosphere, but in Domangsi, as it was the exception, it was freely expressed the emotion. When it is examined by dividing into three items depending on the degree of expression, this can draw the rest of healthy life as they can ultimately share an unfulfilled love and longing with the dead. Therefore, Domangsi is a genre of healing literary. We can understand that the poetic literature that has the lyricism as its proper function may involve an aesthetics of sorrow that has a possibility to heal the emotion in good condition through the developmental mourning.

7,000원

9

근대 계몽기 독본류 교과서의 교재 연구 — 역사 인물 텍스트를 중심으로 —

허재영, 김경남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24집 2012.08 pp.239-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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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적인 의미에서 영웅이란 “지혜와 재능이 뛰어나고 용맹하여 보통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해 내는 사람”을 의미한다. 사전의 풀이를 고려할 때 영웅은 교육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왜 냐하면 교육이란 피교육자로 하여금 지식과 태도 및 행동과 가치관의 변화를 유도하고자 하는 활동 이기 때문이다. 이 연구는 근대 계몽기의 교과서에 등장하는 역사적인 인물을 조사하여, 이 시기 교육이 지향했던 바가 무엇인지를 살피는 데 목적이 있다. 이 연구에서는 1895년부터 1910년까지 출판된 독본류 교 재 10종을 대상으로 101개의 인물 출현 단원을 찾아내었다. 이를 대상으로 역사적 인물의 국내외 분포, 인물의 행적의 특징, 인물 텍스트가 갖는 교훈적인 의미 등을 기술하였다. 그 결과 이 시기 선 정된 역사 인물로 을지문덕, 양만춘, 서희 등과 같은 자주 독립과 관련된 인물이 많았음을 확인하였 다. 이는 이 시기 인물 텍스트가 애국 계몽이라는 시대 상황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음을 의미한다 . 그러나 통감시대 이후의 교과서에서는 학정 잠식과 함께 애국심을 고취할 수 있는 인물 선정이 미 흡하고, 인물에 대한 서사 방식도 간결한 설명 위주로 변화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The dictionary definition of a hero is "outstanding man compared to an ordinary person". It is important for education because historical people influenced students. This study aims to survey these historical people through textbooks in the modern enlightenment times. I found 101 units in 10 books. I divided these people into nationality, whereabouts and lessons or morals. These historical people focused on the thought of patriotism, enlightenment and moral lessons. But the textbooks did not mention whether these people were controlled by the Residency- General. This distorted selection indicated the limitation of colonial period. I think that these material of historical people has changed and been influenced for the purpose of education, the times and circumstance.

6,300원

10

오뢰천의 기독교와 유교 비교 연구 — 논어, 중용 해석을 중심으로 —

강지연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24집 2012.08 pp.265-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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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뢰천(吳雷川)은 20세기 중국의 대표적인 기독교사상가, 교육자로서 동양 고전과 기독교 사상을 중국의 역사적 상황에 녹여 내어 매우 독창적인 중국 기독교 사상을 형성했다. 오뢰천은 성령와 인( 仁)의 개념, 기도(祈禱)와 유교의 수양론을 유비하고, 성경과 유교경전의 특징 등을 비교했었다. 오 뢰천은 ‘도를 닦음(修道)’을 중요시하며 “주경(主敬)”, “주정(主静)”설을 제출하였다. 오뢰천은 이것 을 도덕 수양의 방법으로 간주하며 기독교의 기도와 비교하여 착안점을 자기 반성, 자기 수양에 두 었다. 오뢰천은 불교, 墨子의 “兼愛”만이 아니라, 공자의 “仁”, “天”, “性”개념과 기독교의 “聖靈” “자기를 사랑하듯 남을 사랑하라”, “원수를 사랑하라” 등의 교리를 연결하여 설명했다. 1910년대에서 1040 년대까지 오뢰천은 동서 윤리사상 사이를 횡단하면서 매개하고 새로운 윤리관을 구축하여 중국의 신사회건설에 이바지하려고 했다. 오뢰천의 기독론은 형이상학적이고 이론적인 설명보다 실제 생활과 연관된 구체적인 가르침과 실 천적인 언급을 위주로 하고 있다. 유가의 수양론과 결합시킨 오뢰천의 기독론은 사회 윤리로서 기 독교의 실천적 역할을 부각시킨 것이라고 평가된다.
Wu Leichuan is one of representative Chinese thinkers of Christianity and educators in Republican China. He applied traditional understanding of Chinese classics to the historical conditions of the time China faced to formulate a unique, original Chinese way of theorizing Christian thought. Wu Leichuan attempted to compare the concepts of the "holy spirit" and "benevolence (ren)", and "prayer" and " theory of self-cultivation", and to analyze the distinction between the Bible and Confucian classics. While Wu's theory of Christianity focuses on "self- cultivation," he put forth such stances as "on respecting God" or "on "keeping the pure of heart.' Wu took these as a way of self-cultivation and drew an analogy with the prayer of Christianity, thus centering on self-reflection and self-cultivation. Wu's comparative perspective, indeed, embraces not only Mozi's "universal love)" and Buddhism, but also Confucian concepts such as "benevolence" "heaven (Tian)", and "human nature (Xing)." By encompassing and comparing these concepts with their Christian counterparts such as " the Holy Spirit" " Do onto others as you would have them do to you" and " Love your enemies, do good to those who hate you." Wu attempted to fuse Christianity- inspired understanding with his well-grounded understanding of Confucianism. During the period of Republican China in the 1900s, Wu traversed what appears to be the two extremes: the Asian ethical thought and its Western counterpart and attempted to engage the two lines of ethics. And his ultimate purpose was to constitute a new ethical view and render it instrumental in the service of building a new China. Rather than being oriented toward metaphysical and theoretical inclinations, the distinction of Wu's theory of Christianity lies in its focus on correlating specific and practical teachings with real, ordinary lives. Wu's theory of Christianity, thought to be fused with Confucian self- cultivation, may be construed as a compelling theory of social ethics according to which the Christianity as a frame of social ethics is expected to play a certain measure of pragmatic role.

6,000원

11

한국과 중국의 문화 교류현황과 소프트파워 — ‘한풍(漢風)’ ‘한류(韓流)’ 현상을 중심으로 —

장금, 안외순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24집 2012.08 pp.289-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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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한류(韓流)’와 ‘한풍(漢風)’으로 명칭되는 한국과 중국의 대중문화 혹은 현대문화의 상호 교류 현황과 그 소프트파워적 성격을 고찰하였다. 오늘날 아시아를 넘어 유럽대륙까지 강타한 한류 의 시작은 사실 중국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의 한풍 역시 그 어느 곳보다 한국 의 수요가 가장 강하다. 하지만 양국의 한류와 한풍의 내용은 각기 다르다. 한류가 드라마 및 K- pop 등 대중문화의 전파라면 한풍은 중국어의 파급과 관광문화가 그 골자이다. 국경을 넘는 한국 대중문화의 대외적 확장, 엄청난 경제적 파급력, 한국의 국위 상승력으로 집약되는 한류 소프트파 워는 중국내 한류의 그것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한편 중국어와 관광으로 대표되는 한국내 한풍(漢 風)의 소프트파워는 한류처럼 직접적인 문화전파력은 약한 듯하다. 하지만 중국어를 학습하고자 하 는 동기가 경제적인 측면이라는 점은 일면은 문화적 수요보다 더 강한 동기가 되며, 다른 일면 언어 학습은 사실 문화의 가장 기층 요소라는 점에서 궁극적으로는 문화적 전파력도 무관할 수 없게 된 다. 아울러 유적지 혹은 명승지 관광을 통한 중국문화 확인과 수용은 한국인들에게 특히 과거 중국 역사 문화를 통한 동질적 문화의식을 공유토록하는 측면이 있다.
Here we find out Chinese winds and Korean winds consciousness by doing research on each soft power of culture’s method and culture communication and the developments of communication. Korean winds is the strongest cultural soft power of Korea, Korean winds does not only spread to China, Vietnam, Thailand and other Asian countries, but also spreads to Europe and the United States. Especially in China, Korean winds has the biggest impact, for instance, Korean TV drama and movie is very popular in China. First, the most typical character is the combination between Korean winds and a lot of products. Second, in other countries, Korean winds promotes Korean culture well, it means that Korean winds does not only promote the output of Korea cultural product, but also improves the international image of Korea. Third, Korean winds promotes the spread of Korean popular culture. In Korea, the most typical character of Chinese winds is that enthusiasm for Chinese. In Korea, because of the influence of the Chinese winds, a lot of Korea universities opened Chinese language subject. Second, the combination of Chinese winds and cultural product could help Korean to understand Chinese culture. Third, the wind of Chinese language does not only spread Chinese popular culture but also improve the international image of China. According to the researching, because of difference areas that Chinese and Korean people interest in, so it is also different in the impact on the condition and character of culture exchanges. The result of this researching is a good reference for the foreign development strategy of culture exchange between China and Korea.

7,600원

<해제>

12

南溪 朴世采의 편록서『隨筆錄』해제

金鍾秀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24집 2012.08 pp.323-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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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란 이후인 17세기 중후반을 활동기로 삼았던 남계 박세채는 황폐해진 조선사회의 제반 여건을 적 극 재조하려는 방향으로 삶의 궤적을 조정했던 인물이다. 박세채가 필생의 과업으로 설정했던 도통 계승에의 노력과 더불어, 숙종에게 주달한 일련의 변통적 처방책 등은 바로 그의 충정어린 고심이 구체화된 결과였다. 그런 점에서 편록서 『수필록』 은 박세채가 생전에 기울였던 모든 관심사를 빠짐없이 증언해 주고 있기에, 매우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확보한 저술로 평가된다. 박세채는 37세에 『수필록』 저술에 착수하여 61세 때에 이 작업을 마감하고, 그 이듬해 무렵에 해 당 기록들을 편집해서 저술 명칭을 『수필록』 으로 확정했던 듯하다. 물론 『수필록』 은 현대적 의미에서의 에세이류와는 다소 구분되는 장르의 작품이다. 오히려 『수필록』 은 저자인 박세채가 25여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에 임의수시 격으로 분작한 논평과 단상들을 종합한 일종의 자유 평론 서의 성격이 더 짙은 저술로 규정된다. 즉, 박세채는 자신이 관심을 쏟았던 정치‧경제‧사회‧문화‧도 덕 등과 같은 제반 영역들은 물론이고, 역대 한국과 중국의 주요 인물들을 대상으로 하여 수시로 논 평을 남겼고, 61세 이후에 이 기록들을 『수필록』 이라는 이름의 완결된 저술로 편집했던 것이다. 때문에 『수필록』 은 박세채가 구축한 사상 체계의 윤곽과 개성을 파악하는 작업의 도정에서 매우 긴요한 자료적 가치를 발휘할 만한 저술로 예상된다. 또한 『수필록』 에서 남계학의 개성을 대변 하는 ‘절충’적 특성과 관련한 소재들은 박세채가 견지했던 사유 체계의 일단을 생생하게 전시해 주 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기실 박세채가 채택한 절충적 방법론은 주희가 구축한 통섭적 학문 세 계에서 연원한 것인바, 이 점 종합‧취사를 추구했던 남계학의 개성을 가장 잘 드러내 주고 있음을 『수필록』 은 확인시켜 주고 있다.
Park Sechae(朴世采) who was a descendant from a famous noble family is a figure who was active in the mid and late 17 century. The Joseon society in this period was faced with an unprecedented crisis in which they had to establish new societal systems of order after wars enduring aftereffects of two wars(兩亂). Needless to say, Parck Sechae's pursuit in life was also constructed in the direction of trying to cope actively with the needs of the times, and 『Supilok(隨筆錄)』 is a book which displays the trajectory of his life well. It can be said that 『Supilok』 as a form of pyunrokseo(編錄書)[that is a book of editing records written frequently] is a book which is characteristic of being a liberal critique, in which Park Sechae made comments about a variety of themes and issues rather than being a kind of essay in a modern sense. In other words, Park Sechae not only evaluated leading figures in history of China and Korea, but also performed critical reviews of the overall areas including politics, economy, society, and culture at that time through 『Supilok』 . It is conceived that as Park Sechae wrote this book for over 24 years, the value as a literary material that 『Supilok』 has, which is a chronicle book is very high.

5,500원

부록

13

4,6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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