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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학 [THE EASTERN CLASSIC STUDIES]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지
  • 발행기관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INSTITUTE FOR EASTERN CLASSIC STUDIES]
  • ISSN
    1598-1452
  • 간기
    계간
  • 수록기간
    1995~2019
  • 등재여부
    KCI 등재
  • 주제분류
    인문학 > 기타인문학
  • 십진분류
    KDC 910 DDC 950
제19집 (17건)
No

기획특집 : 현암 이을호의 한국철학

1

한국철학 연구사에서 본 玄庵 李乙浩의 위상 ― 주체적 韓國思想史觀의 정립과 관련하여 ―

최영성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19집 2010.10 pp.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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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철학 연구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현암 이을호(1910∼1998)는 1960∼80년대에 정열적으로 학술 활동을 하 면서, 한국사상의 정체와 본질을 밝히고 이를 철학적으로 정립하는 데 앞장섰다. 중국적 사유방식이 만연하였 던 한국사상사의 흐름 속에서 ‘한국적인 것’, ‘주체적인 것’을 발굴하여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높이고 정신적 사상적으로 독립하는 것을 평생 화두로 삼았다. 이을호는 한민족 철학의 고유성과 독자성을 탐구하고 그 정통성을 확립하는데 크게 기여한 학자이다. 그의 주 체적 사상사 연구는 이전에 보기 어려운 것으로서, 주자학과 중화사상(中華思想)에 찌든 한국사상사, 한국철 학사를 우리 고유사상을 중심으로 한 주체적인 것으로 바꾸어 서술함으로써 생기와 활력을 불어넣으려 했다 는 점에서 큰 의의를 부여할 수 있다. 이을호가 끝까지 추구했던 것은 한국사상의 원형이요 본질이었으며 제대로 된 한국사상사의 집필이었다. 이 을호의 학술사적 업적은 올바른 한국사상사의 정립으로 귀결된다. 한국사상의 정체성을 밝히려는 그의 고집 스런 노력은 평생에 걸쳐 일관된 것으로, 그에 비교될 만한 학자를 쉽게 찾기 어렵다. 이 글에서는 ‘주체의식’ 과 ‘한국사상사 정립’을 두 기둥으로 이을호의 학문과 사상을 조명하였다.
Leaving a huge mark on the history of studies in Korean philosophy, Hyunam Lee Eul Ho (1910∼1998), with his energetic academic activities from the 1960's to 80's, took the lead in clarifying the identity and essence of Korean Thought and philosophically defining these. Throughout the history of Korean Thought over which Chinese ways of thinking were widespread, he placed discovering things that were 'Korean' and 'independent' to lift our people's self-esteem and achieving mental and ideological independence in the first place all his life. Lee Eul Ho is a scholar who made a great contribution to exploring the uniqueness and identity of philosophy of the Korean people and establishing its legitimacy. His independent studies of the history of thought have important significance; his studies are rare and he described the History of Korean Thought and the History of Korean Philosophy based on our own thoughts, shifting from neo-confucianism of Zhu Xi and Sinocentrism, giving vitality and energy to them. What Lee Eul Ho sought to the last was the original form and essence of Korean Thought and writing about the proper history of the Korean Thought. His scholarly historical achievements ended in the establishment of the right history of Korean Thought. His persistent efforts to examine the identity of Korean Thought continued on throughout his life and there is no other scholar who can be compared to him. This writing shed light on Lee Eul Ho's studies and thoughts based on a 'sense of sovereignty' and the 'establishment of history of the Korean Thought' as the two main pillars.

6,700원

2

현암의 한국실학연구와 그 관점

김인규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19집 2010.10 pp.3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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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현암(玄庵) 이을호(李乙浩)의 ‘한국실학연구와 그 관점’에 관한 글이다. 주지하다시피 현암은 다산( 茶山) 경학연구의 대가(大家)로, 그동안 우리 학계의 다산 연구에 있어서 ‘경세학(經世學)’ 위주의 연구풍토에 ‘경학(經學)’을 접목시켜 ‘다산학(茶山學)’이라는 새로운 학술용어를 학계에 정착시킨 인물이다. 그는 이러한 작업을 통해 한국 실학 연구에 있어서도 그동안 ‘경세학’ 일변도의 연구 풍토에 실학의 철학적 본질을 밝혀내 는 데 경주하였다. 따라서 현암은 실학을 뚜렷한 구분 없이 통시대적(通時代的)으로 이해하는 것에 반대하면서도 역사학적 관점 에서 영⋅정조 시기의 학문사조로 국한시키는 것도 반대하였으며, 기존의 실학 연구가 지나치게 경세학적 관 점에 치중한 것에 대해 비판하였다. 그가 실학을 규정하는데 있어서 제일 중요하게 여긴 논거는 ‘탈성리학(脫 性理學)’ 또는 ‘탈주자학(脫朱子學)’ 이었으며, 개념 규정에 있어서도 한국 실학을 ‘수기치인의 수사학적 개신 유학’으로 설정하였다. 특히 현암은 유학의 본령이 ‘수기치인’인 만큼 한국 성리학이 인륜도덕과 내면적 수양 인 ‘수기’에만 치중해 여러 가지 사회 문제를 소홀히 다루었다고 보고, ‘수기’와 ‘치인’이 조화를 이루어 유학의 본령으로 돌아가자는 것이 ‘한국실학의 표어’라고 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현암은 서계, 다산, 운암, 동무 등의 학문에 대해 탈성리학적 경향과 아울러 이론 탐구에만 치우친 성리학을 온전한 유학으로 되돌리기 위한 자연스런 현상으로 이해하였으며, 반계, 성호, 다산의 경세 학도 한국 실학의 한 지류임을 강조하였다. 그의 실학연구 관점은 경세적 관점과 경학적 관점을 체용의 논리 로 설명하였다.
This paper handled the subject that the views and study on Korean Silhak of Hyun-Am(Korean modern philosopher). Hyun-Am was a distinguished scholar who had studied the knowledge about the scriptures of Confucianism of Dasan(茶山), and produced and settled down the academic name, ‘science of Dasan( 茶山學)’. He disagreed on that the concept, Silhak, could been applied for whole historic era, would limited in the academic tendency of Young-Chung dynasty from historical view, and criticized for that the past studying on Silhak had laid excessive stress on the problem of administrating and governing the society. He thought it was the most important logical basement that getting rid of views from the doctrines of Chu- tzu in defining the concept, Silhak. Especially he insisted that even though ‘cultivating self and governing people’ had been the essence of Confucianism, but the teachings of Chu-tzu in Korea had emphasized the just part of ‘cultivating self’, neglected for the various problems of society. So he expressed the view that we have to consider as a slogan it make Korean Silhak come back to the essential Confucianism letting harmony in the aspects of ‘cultivating self’ and ‘governing people’.

6,100원

3

茶山의 庸學⋅孟子에 대한 이을호의 洙泗學的 硏究

이형성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19집 2010.10 pp.5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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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암(玄庵) 이을호(李乙浩)는 일찍이 사상의학(四象醫學)을 배워 한의학(韓醫學) 부흥에 노력하였다. 더욱이 향리(鄕里)에서는 암울한 현실을 극복하고자 민족운동청년단체를 조직하여 항일의지 및 민족의식을 고취시 키기도 하였다. 그의 민족의식 고취는 일본 경찰에 피체되는 원인이 되어, 이을호는 1년 반 동안 수감의 고초 를 당하였다. 그는 고초의 기간 동안 불굴의 의지로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를 탐독하면서 그 책 속에 정약용의 자주적 정신이 내재하였음을 일견(一見)하고 자신의 학문방향을 다산학 (茶山學) 연구로 선회하였다. 이을호는 다산학을 강의하면서 더욱 정약용의 경학사상에 몰두하여, 그의 경학사상을 수사학적(洙泗學的) 측 면에서 연구하였다. 이을호가 말한 ‘수사학(洙泗學)’은 정약용이 자주 언급하였던 ‘수사(洙泗)’에서 원용한 것 이지만, 그것은 불교를 수용한 주자학적 세계관을 벗어나 보다 더 유학(儒學)의 본원적(本源的) 세계관 즉 공 맹학을 갈구하는 용어라 할 수 있다. 즉 ‘수사학’은 정약용이 본연(本然)의 유학을 복원하여 참다운 유교적 실 천윤리관을 확립하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내려는 신조어이다. 본 논문은 정약용의 용학(庸學)⋅맹자(孟子)에 대한 이을호의 수사학적 연구를 살펴본 것이다. 정약용은 ‘수기 치인(修己治人)’의 토대 위에서 자신의 학문을 확립하였다. 이을호는 『중용』⋅『대학』⋅『맹자』 연구에서 정약용의 ‘수기치인’이 바로 ‘수사학적 인간학’에 있다고 하고 이를 충실히 드러내고자 노력하였다. 이러한 연 구방향은 정약용의 학문의 핵심이자 또한 사회윤리의 기초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즉 이을호는 정약용이 본연 의 유학을 회복하여야 당시 학문과 사회의 잘못된 폐단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그의 학문경향을 ‘ 수사학’으로 정의하고 경전(經典)을 연구하였다고 볼 수 있다.
Hyunahm Lee, immersed in Jung Yak-yong’s Thought on Confucian Classics (經學思想), examined it in the aspect of Susa learning(洙泗學). Lee’s ‘Susa learning’ was quoted from ‘Susa (洙泗)’ that Jung Yak- yong often referred to; it, however, is a terminology that thirsted for more fundamental world of Confucianism, or Confucius and Mencius learning, beyond the world view of Neo-Confucianism which accepted Buddhism. This thesis looks into Lee Eul-ho’s studies on Jung Yak-yong’s Yong Learning(庸學) and Mencius in the aspect of Susa learning. Jung Yak-yong established his studies on the basis of ‘Sugichiin(修己治人: Governing others after one cleanses his body and mind).’ Lee Eul-ho, in his studies of 『The Doctrine of the mean』, 『The Great Learning』, and Mencius, stated that Jung Yak-yong’s ‘Sugichiin’ lay in the ‘humanics in the aspect of Susa learning’ and devoted himself to making this known. In other words, his studies, through the study of Confucian classic of ‘Sugichiin,’ sought to clarify the true human character (the human character in the aspect of Susa learning that Jung Yak-yong pursued). Lee Eul-ho tried to express the Confucian Thought on Confucian Classics in the aspect of Susa learning in Jung Yak-yong’s The Doctrine of the mean, The Great Learning, and Mencius because it was the basis of the social morality as well as the core of Jung’s studies. Because Jung Yak-yong believed that the restoration of true Confucianism would correct the indictment of the society and studies of those days, Lee Eul-ho defined the tendency of Jung’s studies as ‘Susa learning’ and examined the scriptures.

7,000원

일반논문

4

한국 한시에 나타난 인어 상징물 고찰

강민경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19집 2010.10 pp.89-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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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한국 한시에 나타나는 인어관련 상징물을 통해 옛 사람들의 인어에 대한 생각을 살피고, 인어의 형상을 이해하고자 한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이 작업을 통해 오늘날 인어 관련 서사를 마련하고 문화콘텐츠를 만드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하였다. 한국 한시에서 가장 빈번히 등장하는 인어 관련 상징물은 교주(鮫珠)와 교초(鮫綃), 교실(鮫室)이었다. 교주는 인어의 구슬이다. 인어가 눈물을 흘리면 그 눈물이 바로 구슬이 된다. 인어의 눈물인 교주는 가장 아름다운 것을 비유할 때 쓰였다. 또한 진실성의 부각을 위해 인어 눈물을 사용하기도 했다. 교초는 인어가 짜는 비단으로써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상징을 갖고 있었다. 영원토록 간직하고픈 말, 절대 잊거나 잃어서는 안 될 것들은 교초에 적어 보관하고자 하였다. 또한 가장 깨끗하고 아름다운 비단을 교초로 비유하기도 하였다. 교실은 인어가 사는 곳이다. 시인들은 인어가 사는 곳을 호화롭고 찬란하면서 비밀스런 공간으로 묘사했다. 은밀하여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고, 인간 세계에서는 볼 수 없는 각종 보화로 꾸며져 있었다. 인어가 사는 교실은 신선의 세계와 다르지 않았다. 선계와 용궁, 교실은 살고 있는 주체만 다를 뿐 그 이미지는 비슷했다. 그곳은 인간의 꿈이 만들어놓은 상상의 공간이지만 옛 사람들은 그곳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러면서 삶이 힘겨울 때, 혹은 미지의 세계를 그리워할 때면 그 공간을 염원했다. 인어가 사는 교실 또한 인간의 꿈이 맞닿아 있는 비밀스럽고 신비한 공간이었다. 교주와 교초, 교실을 잘 활용하면 서구의 인어 이야기와 대비되는, 우리 고유의 인어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고, 문화콘텐츠로 활용할 수가 있다고 본다.
The present paper aims to study thoughts about the mermaid of the old people and understand mermaid's figures through the mermaid's symbol of Korean Chinese Poetry. This work ultimately will lead to help which manufactures the cultural contents week boil a mermaid relation narration today. Kyoju, Kyocho, Kyosil were used in Korean Chinese poetry most frequently. Kyoju is mermaid's tears. When mermaid cries, the tears becomes to beads. Kyoju was written to express the most beautiful things. And they were used to focus veracity. Kyocho is the silk which the mermaid forms, it has the symbol of unchangeable thing. People wanted to keep the most important words, landscapes by writing on Kyocho. And They likened clean, whie and beautiful silk to Kyocho. Kyosil is the palace of mermaids. Poets described Kyosil to a luxury, brilliant and secret place. Koysil was covert and was decorated with a lot of jewelry. So Kyosil is not different from Taoist hermit's world. Taoist hermit's world, the sea King's palace and Kyosil were all much the same in images but different in living main agent. The old ancient people believed in Kyosil, but it was made by mankind's dream. When they were burdened by life or missed an unknown world, they desired that space. If we make good use of Kyoju, Kyocho, Kyosil, we can make our own mermaid narratives and use then as cultural contents.

6,700원

5

權榘의 <屛山六曲>에 나타난 공간 인식과 연작성

김상진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19집 2010.10 pp.117-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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屛谷 權榘의 <屛山六曲>은 18세기에 제작된 육가계 연시조로, 육가의 맥락을 18세기로 이어갔다는 의미를 지 닌다. 육가계 연시조는 이별의 <장육당육가>로부터 비롯되지만, 이황의 <도산십이곡>이 선구적 역할을 하여 이후의 작품들은 대부분 <도산십이곡>의 정신을 본받게 된다. <병산육곡>이 <도산십이곡>을 효방한 육가 계 연시조란 사실은 出處觀, 강호의 공간, 修己의 자세, 유기적 구조물이란 내용을 포함함을 환기한다. 아울러 18세기의 작품이란 점은 이러한 제반 요소를 변용하여 수용했을 것이란 짐작을 가능케 한다. 본 연구는 이런 점들에 유념한 <병산육곡>의 본격적인 작품론 이다. 본고에서는 작자가 알려지지 않은 채 전 해지던 <병산육곡>의 작자가 권구임이 밝혀진 과정을 밝히고, <병산육곡>의 여섯 수에 대하여 구체적인 분 석을 하였다. 작품을 조망함에 있어서는 ‘육가’ ‘연시조’ 그리고 ‘18세기’라는 세 가지 요소를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였다. 이를 토대로 첫째로는 강호의 공간을 어떻게 인식하는지에 대해 분석하였다. 다음으로 연시조로 서 기능하기 위하여 작품의 유기적 연결성과 함께 그것의 연작성에도 주목하였다. 아울러 육가계 연시조의 전 통을 어떻게 18세기로 이어갔는지도 살펴보았다. 그 결과, <병산육곡>은 전반적으로는 육가계 연시조의 전통을 따르지만 강호인식과 연작성 모두에서 변화된 모습을 지닌 것으로 나타났다. 즉 강호를 修己의 공간임과 동시에 삶의 공간으로도 인식하였다. 이는 물의 공 간과 육지의 공간으로 변별되는데 물의 공간에서는 평온을, 육지에서는 갈등을 하게 된다. 연작성 또한 전반 적으로는 연시조의 흐름을 따르지만 낱낱의 연결은 유기적으로 구조화되지 못하여 한계를 지닌다.
Gwongu's is Yukgagye-Yeonsijo(六歌系 연시조). This was created in the 18th century. This is a value that 'Yukga(六歌)' continued until the 18th century. Yukgagye Yeonsijo was succeeded a ToeyGae(退溪)'s . This means that was relation to Chulcheogwan(出處觀), Space of mountains and rivers(江湖), the positions of Sugi(修己), Organic structure. This research is work study of . This work 'Yukga', ‘Yeonsijo', '18 Century' is noted for three terms. Based on this, as the first investigated the perception of space. The second was focused on the continuity. In front of the works is to study the Yeonsijo as a means. And also examines the influence of the 18th century. As a result, The as a whole followed a tradition of Yukgagye Yeonsijo. But, recognition of mountains and rivers and continuity, both were changed. In other words, recognized mountains and rivers with two kind is a space of sugi and a space of life. In addition, the water space and land space was recognized separately. Namely, the water space to feel the comfort and in the space of land was the conflict. Also, in general followed the flow of the Yeonsijo. But were not structured organically. This is a limitation of .

7,000원

6

호남의 근대 누정 작가⋅작품 연구 — 奇宇萬, 吳駿先, 高光善을 중심으로 —

권수용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19집 2010.10 pp.147-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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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지역에는 대단히 많은 누정이 건립되었으며, 그중 광주⋅전남지역에 세워진 누정 수는 2500개가 넘는 것 으로 나타났다. 이 숫자는 누정주나 누정소재지가 밝혀진 것만을 추출한 것이고, 아직 누정주나 소재지가 파 악되지 않은 누정도 부지기수인데, 이것은 포함시키지 않았다. 이중 전체 누정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숫자가 근대기 약 100년 동안에 세워진 것이다. 이 시기에는 누정 건립의 성황에 걸맞게 많은 누정 작가들이 탄생하였다. 주요 작가들만도 100명을 꼽을 수 있 을 정도이다. 이는 광주⋅전남지역에 인물이 많아졌음을 뜻한다. 근대기 누정이 이처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 는데도 이에 대한 연구는 거의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것이 현 실정이다. 근대기에 들어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누정을 건립하고 시문을 남긴 것은 호남지역에 학문이 크게 활성화된 것 과 무관하지 않다. 호남지역에는 특별한 사승관계 없이 독자적으로 학문을 형성한 奇正鎭이라는 인물이 나타 나서 유학을 크게 진흥시켰는데, 그 결과 그의 수많은 문인들이 곳곳에 누정을 경영하고 시문을 남기게 되었 다. 이런 관계로 대다수의 누정은 賞景의 장소보다는 강학의 공간으로 지어진 것이 특징이다. 그 대표적인 사 람으로는 기우만, 오준선, 고광선 등을 들 수 있다.
There was built so many arbors in Honam area, and it is estimated the number of arbors built in Gwangju and Chonnam province at over 2,500. This number includes the arbors that the host and the place of arbors is certain; and there are so many arbors that the host and the place of arbors is uncertain yet. A 3rd part among these was built at the modern age. This age produced many arbor writers for a prosperity of arbor building. It estimates only the number of the important writers at over 100. This means that a talented man was more and more. But, despite an important meaning of the modern arbors, a study on it is very rare. On the other hands, it is related with the fact that the learning in Honam area became prosperous for many people to build arbors and write poems. Gi Jeong-Jin, who established his own independent learning without unique master, promoted Confucianism in Honam area; as an effect of him, his many desciples manage arbors here and there, and write poems. So, it is characteristic that the greater part of arbors was built not for sightseeing, but an educational institute. The typical persons are Gi Uoo-Man, Oh Jhun-Sun, Go Gwang-Sun.

7,600원

7

전기소설에 나타난 환상적 경계공간의 양상과 의미

안민정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19집 2010.10 pp.18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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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계를 공간에 따라 분류하면, 크게 천상계(선계), 저승계, 지하계, 수궁계 네 가지 영역으로 나뉜다. 하지만 환상성이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공간을 무엇보다도 환상세계에 뿌리를 두고 있으면서 환상계의 속성과 현실계 의 속성을 모두 지니고 있는 곳이 ‘경계공간’이다. 본고는 ‘경계공간’과 ‘경계성’을 통하여 전기소설에 나타난 환상성의 특징을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경계공간은 신화와 고소설 특히, 전기소설 모두에 활용되는 공간분할 방식이다. 하지만 신화에서는 신성성 강 화의 수단으로 사용된 경우가 많으며, 환상성 강화의 수단으로 논의하기 어렵다. 물론 신화나 고소설 모두 ‘경 계공간’의 이동으로 인한 존재론적인 변화, 세계관의 변화가 수반되지만 그것이 환상성의 강화라는 서사방식 상의 기법으로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경계공간’의 왕래와 소통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허용되거나 특정 시간 에만 일어나며, 주인공은 이 두 세계를 넘나들며 체험한다. 때로는 초자연적인 힘의 작용에 의해, 때로는 주인 공이 길을 잃거나 특별한 심리상태 속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루어진다. 의지나 계획에 반하기 때문에 반복되지 않는 일회성으로 끝나는 사건이 많다. 이러한 이유로 경계공간을 설정하여 이질적이며 함께 공존할 수 없는 공간을 양립시키기 위함인 것이다. 경계성은 처음부터 주어진 것이 아니라 환상계의 경험을 통해서 주어진 것이며, 이를 통해 독자는 서술자가 환상성의 창출을 위해 처음부터 의도한 공간분할이었다는 점을 깨 닫게 된다. 주목할 점은 이와 같은 공간에 대한 사유 형식이 ‘경계’의 개념과 그것의 메커니즘이 가질 수 있는 훨씬 더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잠재성을 유념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두 세계사이의 경계가 모호하며, ‘경계 공간’의 서사를 통해 환상성은 강화된다.
Spatially, the astral world can be largely divided into four areas: the celestial world (hermit world), afterworld, under world, and water world. However, if a space exhibits distinctive fantasy and is highly rooted in the astral world but also has attributes of both astral and real worlds, it is the ‘borderline space’. This article aims to analyze the characteristics of fantasy shown in biographic novels based on ‘borderline space’ and ‘boundariness’. ‘Borderline space’ is a type of spatial division used in both myths and old novels, especially the biographic novels. However, myths mostly use it as a means to strengthen divinity, and it can hardly be considered as a means to solidify fantasy. Both myths and old novels, too, surely accompany ontological or world view changes due to the transition of ‘borderline space’, but it is not used as a narrative method to strengthen fantasy. The come-and-go and communication between ‘borderline spaces’ are permitted to a special person or occur in a specific time. The main character comes and goes to the two worlds and experiences. At times, by the operation of supernatural power, the main character gets lost, and this happens before noticing within a specific psychological status. This often contrasts to their will or plan, so it may not repeat or end as a one-off thing. Because of this reason, by setting up a borderline space, it is intended to establish heterogeneous and incompatible spaces simultaneously. Boundariness is not given from the beginning but is provided by experiences in the astral world. And through this, readers come to realize that the spatial division was intended by the narrator from the start to create fantasy. What is to be focused on is that our form of thinking of such space should keep inside the concept of ‘boundariness’ and far more active and creative potentiality which the mechanism has. In conclusion, the borderline between the two worlds are obscure, and the narration of ‘borderline space’ solidifies fantasy.

7,000원

8

다산의 仁論 연구 ― 주자와의 비교를 중심으로 ―

김상래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19집 2010.10 pp.21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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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洙泗學’ 즉, 공자 학문의 근본정신을 현실에 실현하는 것이 다산의 학문적 목표였다고 할 수 있다. 그의 경전에 대한 다양한 주석과 해석, 그리고 경세학적인 저술도 이러한 정신의 표출이다. 유학의 핵심개념은 ‘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윤리도덕적 개념에 대해서 주자와 다산은 다른 학문적 경향성을 보인다. 주자는 ‘仁’을 인간의 윤리도덕을 해명하는 개념으로 사용함은 물론 만물의 존재원리를 설명하는 논의에도 이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는 ‘仁’을 마음의 덕’, ‘사랑의 이치’, ‘마음에 있는 이치’, ‘생성의 도리’, ‘천지를 생성하는 마음’ 등으로 정의하였다. 이러한 주자의 사유에는 인간이 윤리적 행위를 하게 되는 본질적 근거를 해명하고 동시에 같은 사유문법에 의해 천지자연의 물질적 원리까지도 설명해 내려는 학문적 경향성이 자리하고 있다. 반면에 다산은 천지자연의 원리로 ‘仁’을 원용하는 것을 지양하고 이 개념을 오직 윤리적 문제를 해명하는데 집중하여 논의를 전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그는 공자로부터 윤리도덕적 개념으로 인정된 ‘仁’로 사물의 존재에 대한 원리를 설명하는 것을 비판한다. 그렇다고 다산이 주자의 학설을 전면적으로 부정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리이다. 그는 여러 차례 주자의 학문적 공적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내리고 있다. 바로 다산은 儒學의 이론에 대해 원리, 근거, 본질의 차원에서의 접근과 해명이 공리공론으로 흐를 가능성을 매우 경계하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 그는 ‘仁’에 대한 논의를 전개하면서, 인간의 기본적 윤리 행위의 근거보다도 실제 행위가 이루어지는 방법과 장소, 목적에 관심을 둔다. 이 때 다산이 주로 사용하는 용어가 ‘윤리도덕적 일(work)과 사건(event)을 실행, 실천하는’ 의미를 지닌 ‘行事’이다. 다산은 주자와 달리, 다양한 고증학적 근거를 토대로 현실사회에서의 윤리도덕의 실천의 문제에 집중하여 ‘仁’ 개념을 설명하는 학문적 경향성을 보여준다.
The academic goal of Dasan was that attaining the essential spirit of Confucius in real society. Ren(仁) has been considered as the most important concept in the system of Confucius thinking. The conception of ren(仁) in Dasan(茶山)’s understanding was mainly achieved by and connected with 'doing moral work or events(行事)'. While Chu-Hsi was interpreting the concept of ‘xing’(性, human nature), 'li'(理, principle), and 'xin'(心, mind) as explaining ren(仁, humanity), Dasan had shown the concept of ‘ren’ that based on the empirical and practical concept of man. He underlines that ‘ren’ should be understood as some concrete out-put of moral action within human relationship. He defines ‘ren’ as ‘love toward human beings’ and as the concrete virtues to practice the morality within concrete human relationship. I want to make a small conclusion of this academic paper as next. Dasan asserts that we have to make sure 'ren' in connection with ‘doing moral work or event’(行事), the concept underlined as the result of morality in human relation.

6,100원

9

茶山 丁若鏞의 관용(tolerance) 관념 : 서(恕) 개념을 중심으로

안외순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19집 2010.10 pp.235-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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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조선 유교의 관용 관념을 고찰하기 위한 일환으로 조선 후기 새로운 유교적 문명공동체 재건을 고민하였던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의 서(恕) 개념을 통해서 작금의 관용론에 대한 재인식의 토대를 모색하는 데 목적이 있다. ‘자신과 타인의 동등 고려(忖他心如我心)’ 원칙이 적용되는 다산의 서(恕) 개념은 ‘타인과의 호혜적 공존 추구(人與人之至也)’를 인(仁)으로 규정한데 기초한 것으로, 기존의 소극적 의미의 서(恕) 개념을 넘어 보다 적극적이고 포괄적인 함의를 지니는 것으로 재해석한 것이었다. 요컨대 다산의 경우 기존의 서(恕) 인식은 ‘소극적 배려’ 차원의 관용으로서 결국 공맹 원시유교의 서(恕) 개념을 왜곡한 것으로 이해하고 그 대안으로 ‘적극적 배려’의 준칙으로서의 서(恕)에 대한 이해를 회복할 때 인(仁)의 진정한 이상도 구현할 수 있다고 보았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운위되는 ‘관용’ 혹은 ‘똘레랑스’가 본질적으로 ‘단지 싫지만 참아준다’는 것을 의미한다면 너무나 다양한 ‘차이’의 주체들과 공존해야 하는 다문화시대 갈등을 치유하는 적절한 관계윤리로서의 준칙이 될 수 없다. 대신 인간의 상호 호혜적 공존을 추구[仁]한다는 궁극적인 목표 하에 타인을 진정으로 자신의 처지에서 이해하려는 적극적인 서(恕) 윤리가 필요하다는 다산의 주장이야말로 다문화시대에 가장 필요한 관용의 개념의 대안이라고 본다.
This thesis, as part of a study into the idea of tolerance especially in the Joseon Dynasty's Confucianism, aims to search for the basis of new understanding about the recent theory of tolerance through the concept of 'Seo (恕: equal consideration of myself and others, tolerance)' of Dasan Jung Yak-Young (丁若鏞, 1762-1836), who struggled to reconstruct a community for the new Confucian civilization in the late Joseon Dynasty. With the principle of 'equal consideration of myself and others' applied, the concept of 'Seo' was based on 'In (仁: benevolence)' determined as 'pursuing reciprocal coexistence with others'; this contains more active and comprehensive implication than the original, passive concept of 'Seo' and reinterpreted the older concept. In short, Dasan recognized the original idea of 'Seo' as tolerance only at the level of 'passive consideration' which after all distorted the concept of 'Seo' of Confucius and Mencius primitive Confucianism and he believed that the true ideal of 'In' would be realized when understanding on 'Seo' as a rule of 'active consideration' that can replace the original concept is restored. Likewise, if 'tolerance' just fundamentally means 'enduring yet unwillingly,' it cannot be a standard of appropriate relational morality that can heal the conflicts of the multicultural age at which so many 'different' individuals must coexist. Instead, under the ultimate goal of pursuing mutual, reciprocal coexistence of humans [仁], Dasan's persuasion that the active morality of Seo (恕) under which one truly understands others by putting himself in their place is needed and this can be presented as an alternative for the concept of tolerance, which is most needed especially for the multicultural 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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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족주의의 역사 분석을 위한 이론서설

김영란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19집 2010.10 pp.263-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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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근대 이전부터 현대사회에 이르기까지 오랜 역사적 변화과정을 거쳐 온 한국민족주의의 역사과정을 분석적으로 접근하기 위한 이론적 방법론을 모색하는 글이다. 그 동안 학계에서 민족주의 연구는 근대 이전과 이후를 불문하고 주로 사상사적 접근이나 민족운동사적 접근방식의 연구가 이루어진 반면 민족과 민족주의 형태의 역사적 발전과정에 대한 체계적이고 분석적인 연구는 거의 전무했다. 한민족은 19세기 이후에 '발명'된 어떤 '상상의 공동체'가 아니라 19세기 이전부터 혈연적 유대를 기반으로 동일한 언어와 관습 등을 지닌 하나의 문화공동체로서, 동북아에서 독자적 단일한 민족공동체를 유지해 왔다. 즉 한국 민족은 근대에 새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근대 이전부터 역사적 현상으로 존재해 왔으며, 역사적으로 각 사회단계의 사회형태에 조응하는 형태로 형성되고 발전하여 왔다. 그리고 19세기 후반 개항을 계기로 세계경제체제에 편입되면서 민족주의 형태도 전근대적 형태에서 근대적 형태로 변화하게 되었다. 이는 한국민족주의가 어떤 고정된 가치규범으로서가 아니라 분석적 고찰의 대상으로서 연구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이 글의 목표는 민족주의 분석방법론으로서 사회구조와 민족주의의 관계적 분석시각을 제기하고, 민족주의를 사회구조와 접목시켜 고찰할 수 있는 분석틀을 세워보는 것이다.
This article seeks to develop an analytical approach that will underlie theory into research on Korean nationalism. It presents an analytical framework for identifying the types and features of nationalism peculiar to each historical stage of society from the analytical perspective of the relationship between social structures and nationalism. Rather than being an 'imagined community' that was 'invented' after the 19thcentury, Korean nationalism is a historical reality that, in a blood-tied community with homogeneous culture, had preserved a system of an independent state of kingdom even prior to the 19th century. Accordingly, the nationalism of Korea underwent a historical evolution as the nation shifted from a Pre-Modern era society to a modern one, and evolved and developed in such a way that it is inseparably connected with the social forms of each societal stage. After its entry into the world economic system following the opening of its ports in the late 19th century, Korea turned from a feudal society to a modern capitalist society. This suggests that Korean nationalism must be viewed as a subject of analytical study rather than as a fixed value norm. As an analytical methodology for the study of Korean nationalism based on an analytic concept definition, this article aims to present an analytical perspective on the relationship between social structures and nationalism and to develop a framework for the study of nationalism and its connection with social struc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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百濟 金石文과 書藝文化

이영철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19집 2010.10 pp.29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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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石文에 대한 기존의 연구는 주로 명문기록과 문헌기록과의 비교에 집중되었고, 그 연구 성과도 대체로 정치 사의 영역에 집중되었다. 기존 연구의 또 다른 방법상의 한계는 개별 유물의 성격을 파악하는데 머물러 백제 금석문 자료를 전체적으로 조망하고자 하는 시도가 부족하였다. 이에 본문에서는 기존 연구의 바탕에서 백제 금석문 전체를 조망하고자 했다. 먼저 백제의 한문자 유입과정과 백제 금석문의 자료를 살펴보았다. 아울러 최근까지 발굴된 금석문 자료를 중 심으로 백제시대의 명문유물을 시기와 재질 또한 명문의 기법과 서체 등에 따라 백제서예의 선결문제를 살피 고 이에 따른 백제 서예문화의 발전과 특징을 고찰하였다. 백제 書藝는 주변문화를 받아들여 이들을 융합하면서도 독자적인 정체성은 잃지 않았다. 그리고 백제 금석문 에 나타난 서예는 크게 두 가지 경향이다. 木簡과 土製품명문은 隨意的이고 자유스러운 가운데 치기어린 미감 이 보인다. 石文과 靑銅⋅철제명문은 대체로 표준적이며 정규적인 엄격한 법도가 있다. 백제의 서예유물은 대부분 내구성이 강한 금석문과 단편적인 土製品과 목간에 남아 유전되고 있다. 종이나 비 단의 서사자료는 아직은 발견되지 않은 상태이다. 물론 그 당시에 사용된 자료는 비단이나 종이 등에 서사된 것이 훨씬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대체로 인멸되는 등의 원인으로 지금은 볼 수가 없다. 차후에 새로운 자료가 발견된다면 더 깊게 백제 서예를 연구할 수 있을 것이다.
Precedent studies about epigraph have been mainly focused on comparison between inscribed slates and documentary literature, and the results were almost all concentrated on fields of political history. Most of these studies have limits of research methods to be focused on grasping each of characters about remains and were not try to prospect widely. Accordingly the present study purposed to investigate extensively epigraph. Firstly, the present study purposed to look for acceptance of chinese characters and material for Paekche epigraph. In addition, this study considered the prior problems for epigraph in Paekche calligraphy following the periods, qualities of material, techniques and calligraphic styles for inscribed slates focused the discovered data of epigraph in the age of Paekche until a recent. And then this study drew out characteristic following to development of Paekche calligraphy. Paekche calligraphy had been kept their own identities, accepting neighboring cultures. There are two kinds of main trends of calligraphy in Paekche epigraph. Wooden split bamboos and earthenwares are self-centered and free to express, but epigraph and metalwares are mostly standard and strict regularity. Most remains of Paekche calligraphy were not discovered as recordings on paper and descriptions on silk but were left as epigraph with strong durability, earthenwares and wooden split bamboos. Even though things in the former case seem to be used generally at that time, there is nothing to see these days. Consequently, it is looking forward these material to be recove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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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 양반의 술 문화 — 조선 초기 잡록의 술 관련 일화를 중심으로 —

류정월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19집 2010.10 pp.335-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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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음주 행위가 단순히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주체들의 취향을 분류하고 위계화하는 ‘구별짓기’의 기호가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이를 위해 본고에서는 조선 초기 잡록에 나타나는 술 관련 일화를 대상 으로 하였다. 조선 초기의 지배적⋅공식적 시각으로 볼 때 음주는 그 자체로 ‘악’이었지만 잡록에서 호음(豪飮) 과 대식(大食)은 내적⋅외적으로 긍정적 평가를 수반한다. 이렇게 호음이 긍정되는 데에는 그것이 내면의 크기 와 강함을 드러낸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음주의 행위와 내면적 자질을, 크기와 강함이라는 물리적 유사성 하에 관련짓는 것은 문화적으로 독특한 방식 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본고에서는 두 가지 시각을 제공한다. 하나는 같은 시⋅공간에서 다른 계층의 음주 행위를 살펴보는 것(공시론적 방법)인데, 이때 천민의 호음은 비웃음의 대상으로 그려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른 하나는 다른 시⋅공간에서 이루어진 음주 행위를 살펴보는 것(통시론적 방법)인데, 조선 중기는 음주의 양보다는 질을, 그리고 무엇보다 음주의 방식을 중시한다. 조선 초기와 중기의 음주 문화 차이는 조선 초기 음주가 가졌던 경제적⋅정치적 효용을 설명하면서 보충된다. 술과 음식의 경제적 희소성으로 인해 음주의 양이, 세조 시대라는 정치적 불안정으로 인해 음주인의 내면적 크기와 강건함이 중시되었던 것이다. 이후 본고는 조선 초기 경제적⋅ 정치적 효용을 가졌던 음주가 조선 중기 이후 변화하는 모습을 설명할 수 있는 틀로 ‘중(中)의 원리’를 설정한다. 조선 초기와 중기는 모두에서, 음주는 단순히 먹고 마시는 문제가 아니라 내면을 유추할 수 있는 기호이자 그러한 내면이 정당화될 수 있는 가치들 을 함축하는 유의의미한 기호라고 할 수 있다.
Pierre Bourdieu shows how social class tends to determine a person's likes and interests, and how distinctions based on social class get reinforced in daily life. This paper assumes that drinking alcohol is a kind of sign for distinctions. The object of study is some anecdotes which were written by yangban. They are contained by miscellaneous records in the early period of Choseon dynasty. Official discourse said that drinking alcohol was morally wrong at that time. The drinkers who were expressed in the records drank a lot (some of them even drank himself to death) ) and ate a lot. But the evaluations on them were positive. It is believed that heavy drinking reveals the inner side of drinkers which is great and strong. Next, This paper studies this phenomenon in the cultural context. I apply two terms to examine culture, one is 'synchronic' and the other is 'diachronic'. For the 'synchronic' study, this paper compares the drinking of yangban with that of other class, especially chenmin[賤民], the lowest class of Choseon dynasty. Chenmin's drinking bares no relation to his great and strong inner side and it is considered negatively. For the 'diachronic' study, this paper compares the drinking in the early period with that in the middle period of Choseon dynasty. In the middle period of Choseon, People had a tendency to consider the people who drank little to be positive. This means heavy drinking doesn't function the sign of distinctions anymore. The middle period put emphasis on the way of drinking while the early period put emphasis on the amount of drinking. Finally this paper examines the reason why the culture had changed at the level of economy and politics. As a result, the taste of drinking is not individual but cultu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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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 유형별 書堂의 敎育方法을 활용한 韓國傳統文化 수업

함정현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19집 2010.10 pp.365-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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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반만년의 유구(悠久)한 역사와 자랑스러운 민족문화를 간직하고 고유(固有)한 전통문화를 키워 온 문화 선진국이며 또한 교육에서도 삼국시대부터 지금까지 뿌리 깊은 역사를 가지고 우리 고유의 학문적 전 통을 전수하고 있다. 최근 급증하는 외국인 인구에 따라 한국어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여 각 지자체의 복지 시 설 및 대학등의 교육기관에서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교육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대세 속에 한국어 교육에 있어 언어의 기능적 역할은 물론 민족의 얼을 담고 있는 전통문화를 언어와 함께 교육 할 수 있는 방안 을 모색해야 한다. 본 논문은 이러한 방안의 기초자료를 제공하고자 학습자의 학습유형을 고려하여 전통적인 서당식 교육방법을 활용한 한국문화수업을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에 적용해 보며 그 활용가능성을 알아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2장에서는 서당의 교육방법 및 학습유형에 대해 알아보고 학습유형에 따른 서당의 교육방법의 적용가능 성을 탐색해보았다. 3장에서는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에 있어 문화교육 현황 및 교과과정을 검토하였다. 4 장에서는 2장과 3장의 논의를 토대로 학습 유형별 서당의 교육방법을 활용하여 외국인을 위한 한국전통문화 수업을 외국인 유학생의 학습유형에 따라 활동을 달리하여 적용해보았다. 본 실험을 통하여 교재 교육만을 활 용하여 한국어를 학습한 비교집단보다 학습유형에 따라 서당의 교육방법을 활용하여 다양한 활동을 통해 한 국전통문화를 학습한 실험집단이 한국어의 기능 중 듣기와 읽기능력부분 향상에 있어 긍정적인 효과를 보이 는 결과를 도출하였다. 5장에서는 4장의 실험결과를 토대로 학습자의 학습유형에 따른 서당식 교육방법을 활 용한 외국인을 위한 한국전통문화 교육이 적극적으로 보급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주장하며 다문화 속 한국전 통문화 발전의 기초자료를 제공하였다.
The goal of learning the foreign language is communicative competence of a situational practicable language, but still Korean teaching has practiced follows the Korean textbooks which are centered around grammar or structure.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work out a plan for a Korean culture lesson through Seodang's educational method based on students' learning style to help an understanding of language background. However, the opportunity for students learning the Korean language to exposed to Koreans and the Korean culture are very limited. In chapter 2, I classified the Seodang's educational method and learning style to explore the possibility of adapting it for a Korean culture lesson. In chapter 3, I explored the Korean culture education as a foreign language. In chapter 4, I experimented with Korean culture lessons through Seodang's educational method based on students' learning style. Based on the results, reached the conclusion that Korean culture lessons through Seodang's educational method based on students' learning style is a very effective way to improve students' understanding of the Korean listening and reading skills. In chapter 5, this paper intends to suggest the directions for the teaching of Korean which need to be conducted through teaching Korean culture lessons using Seodang's educational methods based on students' learning sty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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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中國 大學生의 父母 扶養意識 比較에 관한 硏究

류정려, 장세철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19집 2010.10 pp.393-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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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 한국과 중국의 노인부양에 관한 비교 문화적 연구는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이것을 계기로 본 연구는 같은 문화권 내 한국 대학생과 중국 대학생들의 노인부양의식에 대한 가치지향성을 비교 연구하였 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생활하는 대학생들이 노인부양의식에 대하여 일부 공통적인 특성이 존재하기도 하겠 지만 문화 사회적인 요인의 영향에 따라 서로 다른 특성을 보이는 부분도 존재하기 때문에, 한 나라의 사회문 제에 대하여 같은 문화권 국가의 문제양상, 문제특징을 파악하여 문제해결의 대안을 찾고자한다. 그래서 본 연구는 한국 대학생과 중국 대학생의 노인부양의식의 비교를 통하여 향후 한국과 중국의 부양행동의 실마리 를 찾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본 연구는 한국 대학생 150명과 중국 대학생 150명 총 300명을 대상으로 2009년 6월1일부터 2009년 10월1일까 지 설문조사를 실시하였으며, 양국의 대학생이 가지고 있는 부모부양의식의 차이를 비교 분석하였다. 본 연구 를 통해 얻어진 결과는 다음과 같다:첫째, 한국 대학생과 중국 대학생의 특성의 차이를 살펴본 결과, 사회 인 구학적 특성에서는 종교, 한 달 용돈, 생활수준, 주거형태, 거주지역에서 유의미한 차이가 나타났다. 한국 대 학생과 중국 대학생의 조부모 관계의 차이에서는 ‘조부모 수’에서만 유의미한 차이가 나타났으며, 한국 대학 생의 ‘조부모 수’가 중국 대학생의 조부모 수 보다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둘째, 한국대학생과 중국대학생의 부모 부양의식에 관한 세부 문항별 차이 비교에서 한국 대학생과 중국 대학 생은 모두 부양의식 점수가 상당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셋째, 한국과 중국대학생의 사회 인구학적 변인에 따른 부양의식의 차이를 살펴본 결과, 한국은 유의미한 차 이를 나타내지 않은 반면, 중국 대학생의 사회 인구학적 특성에 따른 부양의식의 차이를 살펴본 결과 나이, 한 달 용돈, 거주 지역에서만 유의미한 차이가 나타났다. 넷째, 한국 대학생과 중국 대학생의 부모 부양의식에 대한 영향변인을 살펴본 결과 한국 대학생의 사회 인구 학적 변인과 부양의식과의 차이에서는 유의한 변수가 하나도 나오지 않아, 중국 대학생의 사회 인구학적 변인 과의 차이에서 유의했던 변수를 동일하게 사용하여 회귀분석을 실시하였으나 유의미한 영향변인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상의 연구결과는 한국과 중국 양국 노인부양의 발전하는 경향을 이해함에 있어 도움이 되고자 한다. 더 나 아가 양국의 노인복지 정책을 제정 및 개정 할 때 학문적 보조 자료를 제공하여 심각한 노인문제를 해결해 나 가는데 도움이 되고자한다.
So far there are not so many studies which compare the cultures of supporting the elderly between Korea and China. Therefore I did a comparative study on consciousness of supporting the elderly between Koran university students and Chinese university students in this magisterial thesis. Therefore, by comparing different countries' specific problems in the same culture circle, we can find the characteristics and solutions of the social problems. The results of this magisterial thesis are as follows: First, we found the data of religion, living expenses, living standard, welling house and residential district have a significant difference in the characteristic of social demography in terms of the result of the difference between Korean and Chinese university students. Second, when comparing the material question's difference of consciousness of supporting parents between Korean university students and Chinese university students, we found that the scores of Korean university students and Chinese university students are both very high. Third, we found the data with Korean university students don't have a significant difference, and the data of age, living expenses and residential district with Chinese university students have a significant difference in terms of the result of the difference of consciousness of supporting the old age, that is followed by social demography's variable, between Korean and Chinese university students, Fourth, we found the data of social demography's variable, consciousness of supporting the old age with Korean university students don't have a significant variable in terms of the result of the effect variable, that is in regard to the consciousness of supporting the old age, between Korean and Chinese university students. The analysis of Chinese university students is complicated than Korean university students, the difference of social demography's variable has a significant variable, and the effect variable of consciousness of supporting the old age don't have a significant variable. We hope these results can help us to comprehend the development trends of supporting the elderly and provide the reference documentation to enact a law or regulation of Elderly Welfare so that can help to solve the problem of the elderly for both China and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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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의 추나와 西洋의 카이로프랙틱에 대한 비교 고찰

함주현, 정한석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19집 2010.10 pp.423-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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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의 목적은 대체의학의 개념과 현재 국내에서의 대체의학의 범주에서의 의미를 비교하고자 하였다. 대 체의학이란 서양의학을 제외한 한의학, 척추교정요법, 물리요법, 운동요법, 아로마테라피, 음악치료, 미술치 료, 원예치료 등의 자연요법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과거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민간자연요법의 효과를 과학 적으로 입증하고 임상실험을 거쳐 부작용 없이 인체 내 치유의 힘을 향상시켜 질병을 치료하고 예방하는 분야 라 할 수 있으며, 그 대표적인 예로는 동양에서의 한방의학과 서양에서의 카이로프랙틱을 들 수 있다. 하지만 같은 대체의학의 범주 내에서도 국내의 제도권이라는 틀 안에서의 문제점들과 함께 카이로프랙틱과 추나의 현재의 의미가 아닌 과거로부터의 의미를 비교하였다. 첫째, 카이로프랙틱의 역사적 의미 및 기원과 치료 방법을 통해 서양에서의 주요 대체의학인 카이로프랙틱을 바라보았다. 카이로프랙틱은 질병의 근본원인을 약물이나 수술을 사용하지 않는 대체의학으로써 병의 증상 치료에 얽매이기 보다는 근본적인 원인을 찾고 인체의 국소부위에 치우쳐지지 않고 몸 전체의 밸런스에 초점 을 두어 연구하고 치료하는 학문이다. 카이로프랙틱은 예방(Prevention)과 최적의 건강상태(Homeostasis) 유 지 측면에 역점을 두어 영양과 운동을 병행함으로써 신경(Neuro), 근육(Muscular), 골격(Skeletal)을 치료하는 의학의 한 분야이다. 둘째, 추나는 동양수기요법 중 대표적인 것으로 그 근원은 진한(秦漢)시대의 한의학 고서 『황제내경(黃帝內 經)』에서 그 자취를 발견할 수 있다. 안교⋅안마(按摩)라고 불렸던 수기요법이 명나라시기에 추나로 바뀐 것 이다. 또한, 청(淸)대에 이르러 발간된 『의종금감(醫宗金鑑)』이라는 총서 가운데 정골 심법요지(正骨 心法 要旨)는 정골팔법(正骨八法)이라 하여 8가지 수기법이 기록되어 있다. 그 후, 국내에서는 오랜 세월이 지나 1980년대 후반, 한의사들이 수기치료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수기치료 기술을 집대성하고 미국의 카이로프 랙틱 기술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수기치료에 대한 재조명 작업이 이루어졌다. 본 연구에서는 학문적으로나 임상적인 부분에서 한방의 추나요법과 서양의 카이로프랙틱 사이에서 공통적인 요소와 서로 다른 기원에서의 의료적인 측면을 통해 그 차이점을 알아 보고자하였다. 국내의 의료체계를 비롯 해 많은 분야에서 선진국의 앞선 문물이나 기술을 도입하고 발전시키고 있지만 부분적으로 선진국의 반열에 있으면서도 조금 더 앞선 문화에 대한 폐쇄성을 가지고 있는 것 또한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카이로프랙틱과 추나는 비수술적 요법이라는 공통점을 토대로 서로의 분야를 인정하며 선진국에서의 지난 수십 년간의 의료 세분화처럼 국내 의료 서비스에 있어 환자들의 보다 나은 의료서비스를 위해 세분화된 의료분야로 서로 상생 하여야 하는 기초 자료를 제시 하였다.
Complementary and alternative medicine, including many kinds of unconventional, but traditional therapies, such as oriental medicine, chiropractic, aroma therapy, music therapy, art therapy and horticultural therapy, is a supplement health care other than allopathic medicine which is primary health care. Chiropractic was invented by D. D. Palmer in 1985 and has been developing with the efforts of many chiropractors and chiropractic researchers over last 100 years to explore its effects and scientific mechanisms. Chiropractic therapy, like other holistic therapies, is focused on improving human’s self- healing ability and makes a balance between body and mind through working on the neuromuscular system. By these processes, people can keep their optimal health state to deal with any kind of illness. Therefore, Chiropractic physicians can be described as neuromusculoskeletal specialists. Chuna is an oriental manual therapy which originates from China more than 2,000 years ago. Chuna was adopted by oriental medical doctors (OMD) in Korea especially around 1980s to treat the patients with musculo-skeletal aliments. Based on its origin and history, Chuna is more close to the massage; by increasing the motion of body, Chuna can reduce pain and improve blood circulation. However, some OMDs often confuse the difference between chiropractic manipulation and Chuna, and adopt part of chiropractic techniques in their practice. The lack of regulation or legislation of Chiropractic in Korea makes this situation even worse. The main purpose of this study is to make the comparisons of the differences, such as origin, history and growth, on manual therapies, between Chuna and Chiropractic in the hope to make the recommendations on the potential collaboration between Chuna and Chiropractic therapies for the purpose of establishing a world widely leading health care system in Korea and providing a superb health care to the publ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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韩国的敦煌学研究概况与辑目

韩云珍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19집 2010.10 pp.451-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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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에 돈황의 장경동이 열리고, 중국인들이 분통하여 말하는 상심 의 역사가 시작된다. 문화유산의 가치를 발견한 Stein, Peliot 등을 선두로 영국과 프랑스, 러시아, 일본 등 각국에서 대량의 자료를 수집 반출한다. 뒤늦게 중요성을 깨달은 중국은 중국정부의 지지를 기반으로 다수의 연 구자들을 발굴 돈황의 유물과 전적을 발굴하고 연구하였다. 근 100연간 에 걸쳐 괄목한 성과를 이루어 근대 중국학에 홍학과 더불어 敦煌學이 라는 한 분야를 이룩하였다. 한국의 돈황학 연구는 중국을 비롯한 기타 국가에 비해 비교적 홀시 되어 왔다. 프랑스, 영국, 러시아, 일본 등이 반입된 원본 자료를 기반으 로 연구를 진행할 수 있었지만 국내는 그럴 수 없었다는 것을 원인으로 들 수 있다. 본고의 연구 목적은 근래 한국에서의 돈황학 연구 성과를 검토함으로 써 향후 방향성을 모색하는 기초를 마련하는데 있다. 시기적으로 두 가 지로 구분하여 고찰하였는데 그 분기점은 한국과 중국이 공식적 외교를 성립했던 1992년으로 잡았다. 이 시기를 중심으로 연구의 성과도 확연하 게 차이가 드러나는데 공식외교 수립후의 성과가 풍성하며 지속적인 것 을 알 수 있었다. 단지 학자 개인의 지향과 관심으로 지속돼오던 연구는 1987년에 한국돈황학회라는 학회의 창립으로 조직적인 기초를 마련한 다. 한중수교 이후에 중국돈황투르판학회와 학술교류를 벌이는 등 활발 한 활동을 보인다. 그러나 2004년에 4권의 논문집을 단행본으로 출판한 것을 제외하고 한국돈황학회에서 논문을 게재하는 공식적인 학회활동은 없었다. 연구된 논문의 편수를 살펴보면 1979년에서 2010년 3월 까지 돈황을 키워드로 하는 학위논문 150여 편, 학술지 논문이 280여 편이다. 그 중에서 돈황의 문학 관련 학위 논문은 33 편, 학술지 논문이 약 250여 편이 다. 건축·미술·복식·음악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가 가능하다는 특징상 기타 미술과 미술사, 또는 불교와 철학관련 논문이 학위논문으로 다수 발표되었다. 돈황문학 연구의 성과 중에서 논자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서사문학의 발전과정으로 변문이라고 불린 돈황유서들은 강창문학이 화본소설로 전 환되는 과정적 양식을 보여주고 있으며 서사문학사 연구에 방향키 역할 을 제시한 것이다. 본고에서 미흡했던 문학적 내용과 형식에 대한 연구는 중국·대만·일 본 기타 서방국가에서 이룩한 문자와 문헌의 교감학 부분의 성과를 기 반으로 향후 지속적인 연구를 진행하고자 한다.
Since the cavity in Dun-Huang was opened in 1900 and Stein and Peliot started to take out the relics, lots of them were shipped from china to United Kingdom, France, Russia, Japan, and so on. China belatedly realized the value of importance of these relics and has studied and excavated the relics and records of Dun-Huang with government support. For 100 years China has accomplished astonishing achievement in the Dun-Huang Studies which has become an important part of modern Sinology with Red-ology. But in Korea, the Dun-Huang Studies is disregarded as compared with other countries like as France, UK, Russia, Japan, etc which can use the relics for studies.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check outcomes of the Dun-Huang Studies in Korea and find new direction of studies. It is divided by two parts at the point of 1992 when Korea and China started official diplomatic relations, because after that year studies are done plentifully and continuously. The Dun-Huang Studies in Korea laid foundation in 1987 when ‘Korea Society for Dun-Huang Studies’ was established and activated by exchange of Scholarship with ‘China Dun-Huang Turpan Society’. But there is no official activity since 2004 when they published four collections of learned papers. The number of papers from 1979 to March of 2010 in search with the key word, Dun-Huang is 150 dissertations and 280 papers for academic journal. Among them, the papers for the literature of Dun-Huang are only 33 dissertations and 250 papers for academic journal and recently many dissertations for art, history of art, Buddhism, and philosophy are published. Study will be continued in the following thesis focused on the process of development of narrative literature in Dun-Huang Stu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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