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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학 [THE EASTERN CLASSIC STUDIES]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지
  • 발행기관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INSTITUTE FOR EASTERN CLASSIC STUDIES]
  • ISSN
    1598-1452
  • 간기
    계간
  • 수록기간
    1995~2019
  • 등재여부
    KCI 등재
  • 주제분류
    인문학 > 기타인문학
  • 십진분류
    KDC 910 DDC 950
제36집 (12건)
No

일반논문

1

정극인의 유교적 대동공동체의 삶의 추구

유육례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36집 2017.02 pp.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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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극인은 자기수양과 덕을 함양하여 인간과 자연이 조화롭게 살아가는 유교의 대동공동체를 지향하였다. 그는 태인 향약을 설치하여 자연과 더불 어 살아가고 주변의 사람들과 형제애를 갖고 살아가는 삶을 일생동안 추구 한 시인이고 유학자이었다. 그는 향음주례인 향약을 고현동에 설치하여 후 학들에게 유교의 근본원리와 사상을 교육시키고, 일반사람들에게는 더불어 살아가는 유교적 대동 공동체의 중요성을 자각하도록 만들어 인간의 근원적 인 삶이 무엇인지를 실제 생활에서 체득하도록 강조하였다. 그는 이렇게 살 아가는 사람들을 ‘붕우’(朋友)라고 칭하면서 유교의 인의예지(仁義禮智)를 몸 소 실천하였다. 그의 이러한 삶은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유교의 대동학적 공 동체의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주고 있다. 정극인은 자연과 타자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실천하기 위하여 태인 향약을 만들었다. 이 향약은 사람들이 자연이나 타자와 조화를 이루며 살아 가는 이상세계를 건설하고자 하는 그의 꿈이 발현이었다. 그는 태인의 무성 리에서 벗과 이웃을 사랑하고 임금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유교이념에 기초를 둔 대동 공동체를 만들어 이웃들과 공동체의식을 직접 실천하였다. 그는 이 공동체에서 타자를 배려하고 돌보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아름다운 사회를 추구하였다.
Jeong Geuk-In pursued a confucian dadongcal community based on Confucianism where humans worked in harmony with nature through self-training and the cultivation of merit. He was a poet and confucian scholar who published Tain Hyangyak through which he had a life of brotherhood with the common people in nature. He created Dongjunghyangeumjoorye and Hyangyak to educate junior scholars and common people in the fundamental principles and ideals of Confucianism and encourage them to be aware of the importance of an dadongcal community. Therefore, the people could acquire what a basic life of humans is for themselves. He called the people who lived such a life 'Bungwoo' and lived a life based on benevolence, justice, manners and wisdom. His life as such has made us become aware of how important a confucian dadongcal community life is.

5,800원

2

율곡의 禮學思想에 대한 문화적 의미 연구

김희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36집 2017.02 pp.3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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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새로운 사회를 향한 율곡의 개혁의지가 투영되어 있는 『擊蒙要訣』을 중심으로 율곡의 禮學思想에서 부각되고 있는 인간 행위의 동기성과 실천성에 대한 문화적 의미를 고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것은 儀禮의 일상화 논리 속에 전제되어 있는 자발적인 행위의 동기 성에 대한 의미를 율곡의 철학체계 속에서 분석하는 것인 동시에 인간 의 행위의식에 관계하는 禮의 심리적 기제를 문화의 관점에서 고찰하는 과정이 된다. 율곡은 理氣의 절충적 세계관을 토대로 인간 행위의식에 대한 개혁의 필요성을 『擊蒙要訣』을 통해 제시한다. 그리고 『擊蒙要訣』에서 율곡이 강조하는 새로운 사회의 창출을 위한 儀禮의 일상화는 인간의 기질 변 화를 통한 새로운 생활문화의 형성을 통해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와 같 은 율곡의 禮學思想은 군주 중심의 敎學的질서체계와 다른 차이성을 가진다. 다시 말해 율곡의 禮學思想을 대변하는 『擊蒙要訣』에서 강조되 는 것은 儀禮의 일상적 실천을 위한 행위의 동기성과 時宜에 기초한 務 實의 능동성이다. 또한 율곡에게 있어 儀禮는 일상의 생활문화 속에서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성인이 되기 위한 修身의 과정이다. 그러므로 율곡의 禮學思想에 대한 문화적 의미를 고찰하는 것은 율곡 의 철학체계에 기초한 禮學思想을 새로운 사회에 대한 이념성과 연계하 여 살펴보는 과정이 된다.
This paper seek out to understand Yulgok’s ideas through his books; the Study of Rites deals with not only meaning of practicability and motivation of human beings but also his will for reformation towards building up an ideal society. Such ideas with his will of reformation are reflected on Gyeokmongyogyeol. Centered on the latter book, this study aims to understand a psychological mechanism of Ye in terms of a cultural perspective. In the latter work, Gyeokmongyogyeol, Yulgok tries to routinize the rites in a cultural aspect in order to develop the new society through changing human beings’ disposition. However, it is different with the idea that emphasizes establishment of the educational and scholarly order to inherit sages’ Ye. In Gyeokmongyogyeol, motives of action for the routinized practice as well as active practicability for being true are underlined. Further, the book is in collusion with an ideology of the Communication Society to the extent that practicability of the rites is a sort of process where human beings try becoming a sage voluntarily in the everyday life culture. Therefore, understanding the meaning of Ye’s practical motivation and willful action emphasized in Gyeokmongyogyeol as a psychological mechanism influent over human behavior and consciousness is a process of considering Yulgok’s the Studies of Rites from the cultural psychology.

7,000원

3

조선 후기 사대부의 일일지침서 연구 : 성리학적 공부론을 중심으로

정환희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36집 2017.02 pp.6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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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이르러 성리학적 원리를 ‘하루’ 생활 속에서 규율한 일일 지침서가 본격적으로 출판되었다. 본 논문에서는 일일지침서에 담지된 성리학적 공부론을 논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본 논문은 안정복의 『下學 指南』「日用」, 윤최식의 『日用指訣』, 최동익의 「齋居日用三十五首」을 분 석 대상으로 삼고, 이들 지침서의 특징을 개괄적으로 정리하였다. 이들 일일지침서에서 담지된 성리학적 공부론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범도 덕주의적 관점을 채택하고 있다. 2) 도덕적 실천공간이 가(家)에 집중되 어 있다. 3) 경 공부, 4) 격물 공부, 5) 성 공부가 강조되었다. 본 연구는 조선 후기의 수양론의 그 실제적 모습을 파악하려 했다는 점에서 그 의 의가 있다.
In late Josen dynasty, lots of daily manuals based on principles of neo-confucianism was published. This thesis discusses educational factors in these daily manuals. In order to this, I use An jeong-bok, Yun choi-sik, Choi dong-ik’s articles as objects of this thesis. This thesis summaries some contexts in these manuals and concludes that neo-confucianism theory of education is based on pan-moralism and family structure, putting emphasis on sincerity(cheng), mindfulness(jing), investigations of things(gewu). This research has its significance in the sense that it can understand the theory of cultivation and its practical appearance in the late Joseon Dynasty.

7,600원

4

『列子』에서 꿈과 환상에 관한 소고

고은강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36집 2017.02 pp.95-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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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자』에서 주된 내용을 이루는 환상(幻)과 꿈(夢)을 통해 깨닫게 되는 것은 변화(化)에 기반을 둔 삶(生)인데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방법론으로 서 노님(遊)의 중심에는 자기가 있다. 외물을 관찰하기보다는 자기의 변 화를 관찰하고 유흥으로든 업무로든 몸이 상하지 않도록 자기 몸을 다 스리며 이를 기반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만물을 다스린다는 방법론이 『열자』에서 제시된 삶의 기술, 즉 도(道)다. 이러한 삶의 기술이 함축하는 자유는 환상과 꿈의 경험을 통해서 化 와 不化, 生과 死의 구별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깨달음으로부터 출발한다. 『열자』에서 주목할 점은 환상과 꿈이 자유를 상징하거나 환상 여행 그 자체가 자유로운 상태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비유하자면 환상 과 꿈은 자유를 향한 징검다리라 할 수 있다. 삶의 본질이 化임을 깨달 아 生과 死의 구별로부터 자유로워짐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자신에게서 모든 것을 취하는” 자기중심적이고 자족적인 遊의 경지에서 경험하는 자유에 도달하기 위한 매개체다.
This article explains illusion and dream with a special focus on freedom in Liezi. Liezi is called one of the three early Daoist texts with Daodejing and Zhuangzi. Compared with Daodejing and Zhuangzi, Liezi is not much regarded as classics and therefore there are not many studies on Liezi. Liezi is similar to Zhuangzi largely in style. They both consist of stories, which deliver philosophy. Some stories are similar in terms of plots and ideas. However, unlike Zhuangzi, Liezi is not much studied with a special focus on freedom. In this article, freedom is reinterpreted in the context of Liezi. The comparison of freedom in between Liezi and Zhuangzi will be meaningful to understand the concept of freedom in early Chinese text further and deeper.

6,300원

5

근대 동아시아의 ‘天’과 ‘進化’ - 嚴復과 加藤弘之의 진화론 수용양상 비교연구 -

김도형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36집 2017.02 pp.12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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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근대 동아시아의 진화론 수용상에 나타나는 ‘천’이라는 전통적 관념의 작동 및 변용의 양상을 고찰한 것이다. 특히 중국과 일본에서 진 화론을 가장 적극적으로 도입하였던 옌푸와 가토 히로유키의 진화론이 해 및 수용의 양상을 비교함으로써 이들 모두 전통적인 ‘천’관념의 강력 한 영향으로부터 진화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 었다. 이들은 모두 ‘천’관념의 ‘불가지성’이라는 측면으로부터 서구사상 을 수용하는 단서로 삼고 있었으나, 옌푸의 경우는 그 불가지성을 기반 으로 ‘천연’이라는 원리 안에서 ‘임천’과 ‘승천’을 함께 공존시키며 종합 하는 방향으로 나아갔고, 가토의 경우는 그 불가지성으로부터 출발한 ‘천부’의 관념이 자기모순에 빠지자 ‘천’의 초월성을 해소하고 철저한 자 연의 법칙, 즉 ‘천칙’으로 나아가는 방향으로 자기 이론을 전개하였다.
This study considers the influence and transformation of the traditional idea of 'heaven(天)' in the acceptance of evolutionary theory in modern East Asia. In particular, as comparing the aspects of Yanfu and Kato Hiroyuki’s understanding and acceptance of evolution theory, who had most actively introduced evolution theory in China and Japan, we can recognize that they understood and accepted the theory from the strong influence of the traditional notion of ‘heaven(天)’. In the case of Yan-Fu, in the principle of 'Tienyan(天演)' based on the invisibility it went towards comprehension while coexisting 'nature' and 'acting' together. On the other hand, the idea of 'A Natural Human right' departing from the invisibility became self-contradictory, Kato resolved the transcendence of 'heaven (天)' and developed through a nature's law, 'Tensoku(天則)' claim. Until now, research on the acceptance of Western European ideas including evolutionary theory in East Asia has been performed with reference to Western European ideas.

7,900원

6

중국 종교설화에 나타난 여성상의 반유교주의적 심상과 중국적 정체성 - 한국 전통적 여성상과의 차별성을 통해 -

권도경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36집 2017.02 pp.157-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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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중국 종교설화의 역사적 전개사에 나타난 여성상을 검토하 여 한국 종교설화에 나타난 그것과과 비교해 봄으로써 한국과 차별화 되는 중국 여성관의 정체성을 규명해 보았다. 일반적으로 한·중의 여성 상은 19세기 이후의 페미니즘 운동의 결과 서구에서 정착된 주체적·독립 적 여성상에 대비되는 오리엔탈적 여성상의 공통 분모 속에 묶여 있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지만, 본 연구의 결과 한·중의 여성상은 유교·불교의 세례 속에서 원래의 모습으로부터 변동되었다는 공통점만큼이나 큰 차이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고대의 중국 불교설화에는 사회주의 혁명에 의해 타파 대상이 되었던 유교적 여성상과는 전혀 다른 여성적 이미지가 확인되는데, 이러한 비 (非) 유교적 여성상은 근대 이행기 중국 종교설화 속까지 지속적으로 나 타나는 현상을 보여준다. 이처럼 근대 이행기 중국 종교설화까지 이어 지는 고대 중국 불교설화의 여성상은 문화혁명을 기점으로 형성된 것으 로 여겨지고 있는 현대 중국의 여성이미지와 상통하는 지점이 있다. 중국의 경우와 반대로 한국 종교설화에서 확인되는 여성상은 종속성· 수동성·객체성·대상성이 상대적으로 강하게 나타난다. 지금까지 선행연구사에서 주도적·영웅적이라고 평가되어온 무속설화의 여성상마저도 텍스트의 궁극적인 종결방식과 전개방식을 중국 종교설화의 그것과 비교 해 보면 가부장제의 존속과 유지를 위한 종속적인 대상성이 강화 되어 있다는 차이가 확인된다. 이러한 한국설화 속 여성상은 유교이데올로기가 전면적으로 내면화 된 결과물이 된다고 할 수 있겠다.
This study investigated the chinese woman's identity differentiated to the korean woman’s identity by comparing the woman image in the historical development of the chinese religious folktale with the woman image in the historical development of the korean religious folktale. Generally, the woman image of Korea and China has been recognized as being tied up in the common denominator on the oriental woman image contrasted with independent woman image established in the west since the 19th century as the result of the feminist movement. On the other hand, this study has come to check the fact that there exists difference as big as the common thing which was changed from its original shape in the baptism of Buddhism and Confucianism. In the ancient religious folklore of China, the confucian woman image completely different from the confucian woman image to be target to be overthrown by the socialist revolution is confirmed. This anti-confucian woman image in the ancient Buddhist folklore of China has something in common with the modern chinese woman image formed after the Cultural Revolution. In this point, it can be that the woman image in the ancient religious folklore of China is a kind of the archetypical image of the modern chinese woman image. On the contrary with China, the woman image in the korean religious folktale relatively strongly has the dependency, the passivity, and the objectivity. So far, in even the korean woman image of shamanistic folktale that has been assessed leading and heroic in the existing study, the subordinate objectivity are strengthened relatively for the continuation and maintenance of the patriarchal system. It can be said that this woman image of the korean religious fokltale is results that the confucian ideology has been internalized beyond religion.

9,900원

7

인제 마의태자설화의 문화적 의미와 관광문화콘텐츠 방안 - 시공세계(時空世界)글쓰기와 고전의 현대적 활용 -

이학주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36집 2017.02 pp.207-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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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시공세계(時空世界)글쓰기를 통해서 관광문화콘텐츠와 스토 리텔링을 만드는 방법과 실제에 대해서 고찰했다. 관광에 있어 장소는 중요하므로 지역과 연계하여 논의를 하였다. 그 대상은 인제지역에 전 승하고 있는 마의태자였다. 마의태자는 신라의 마지막 태자이다. 그가 아버지 경순왕이 고려에 바친 나라를 찾고자 경주에서 떠나 머물러 있던 곳이 인제이다. 이는 인 제에서 문화적 의미로 볼 때, 전설과 지명과 유적으로 전하고 있다. 이 로 볼 때 인제인들은 마의태자를 구국이라는 측면에서 향토인물로 마음 속에 향유하고 있었다. 곧 인제사람들은 이미 천 년 전의 마의태자를 21 세기 현재 시공에 현현시켜서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에 이 글에 서는 시공세계글쓰기기법을 덧입혀 관광문화콘텐츠와 스토리텔링을 기획했다. 시공세계글쓰기는 3차원의 시공에 4차원의 시간을 끌어들여 글을 쓰 는 기법이다. 가상현실을 활용한 방법 중의 하나이다. 사실 시공세계글 쓰기기법은 이미 고대에서부터 현재까지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글쓰기방법이다. 이를 글쓰기를 통한 현재적 가치창출이라는 측면에서 필자가 글쓰기 방법으로 체계화 시켰다. 그 대상으로 삼은 것이 인제와 마의태자이다.
This paper deals with the practice and making of tourism cultural contents and storytelling through the skill of time space writing. It develops its study in relation with the place important in tourism. Its subject is Prince Maeui whose story lives in Inje. Prince Maeui is the last prince of Shilla Dynasty. He left Gyeongju and stayed in Inje to recover his state his father King Kyeongsoon handed over to Korea Dynasty. His story is descending in Inje through the legend, the names of places and the historic sites. Inje considers Price Maeui as a local person who had a wish to recover his state or country. Inje lives with Prince Maeui whom they manifested from a thousand old days into 21 century. The writing method of time space has adopted to plan the tourism cultural contents and storytelling. The skill of space time writing uses 3 dimensional space and time together. And it is one of skills utilizing virtual reality. And also it is popular skill used from ancient days to these days. It is systemized as a way of value recreation as-of-now through the story of Prince Maeui and Inje.

7,200원

8

친정방문 관련 여성가사에 나타난 유람의 양상과 의미

최은숙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36집 2017.02 pp.239-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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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의 목적은 경남지역 여성기행가사에 나타난 유람의 양상과 의미 를 살피는 것이다. 이를 위해 먼저 경남지역에 전승하는 여성기행가사 의 존재양상을 개관하고 친정방문을 목적으로 하는 작품 가운데에 유람 과 기행의 성격이 나타난 가사를 본격적으로 살폈다. 친정방문을 목적으로 한 가사에 나타난 유람의 목적은 두 가지이다. 친정 방문 자체가 유람의 과정인 경우와 친정 방문 이후의 유흥이 목적 인 경우이다. 전자의 여정이 ‘친정으로 가는 과정-친정 방문-산이나 유흥 지-유흥-귀로’로 정리될 수 있다면 후자는 친정 방문 이후 유람의 여정 과 유흥에 집중되어 있다. 친정 방문 자체가 목적인 경우 유람은 동질감의 확보와 치유의 과정 으로서 의미를 지닌다. <고원화류가>, <진식모형제사십년후기천가>, <사향가>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친정 방문 이후 유람과 유흥이 목적인 경우는 <갑오열친가>와 <열친답가>가 있다. 작품 내에서 가문을 상징 하는 장소가 이들 작품에서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유흥의 분위 기를 조성하는 장소로 변환된다. 여기서 벌어지는 윷놀이는 승부욕을 자극하면서 서로에 대한 조롱과 경계를 유발하는 유흥의 장이 된다. 한 편 이러한 놀이성은 가사를 창작하고 서로 주고받는 과정을 통해 더욱 강화된다. 이로써 가사 창작과 유통은 현장의 즐거움을 강화하고 서로 소통하게 하는 중요한 문화적 행위가 되고 있다. 이상의 연구는 여성 가사 전승의 지역적 확대 및 새로운 작품 발굴 을 통한 여성 기행가사 정체성 연구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This article is aiming at looking into the aspects and meanings of sightseeing represented in female travel lyrics in Gyeongnam area. For that, this article outlined existence aspects of female lyrics in Gyeongnam area, in earnest examining lyrics related to visiting married woman's parents's home. The purpose of the travel indicated in lyrics related to visiting married woman's parents' home is two. That is, the one aiming at visiting the parents' home itself and another aiming at entertainment after visit to the parents' home. Supposing the travel of the former can be summarized as "the process of going to the parents' home - visiting the parents' home - entertainment in a mountain or a resort, the latter is concentrated on itinerary of travel and entertainment after visiting the parents' home. In case of the travel whose only goal is visiting the parents' home, it is significant in that the visit becomes a process of securing a sense of kinship and healing. In case of the travel whose goal is to going sightseeing and entertainment after visiting the parents' home, it is significant in that the creation of distribution of lyrics reinforce playfulness and promotes communication with each other. This study will greatly contribute to regional extension in transmission of female lyrics and the study on identity through discovery of new literary works.

6,300원

9

조희룡의 「장오복전(張五福傳)」에 대한 시론적 검토

김경회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36집 2017.02 pp.265-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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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조희룡의 「장오복전」을 유협과 왈짜의 특성을 비교하며 장오 복과 관련된 일화들을 고찰하였고, 그의 행적 또는 형상을 바탕으로 조 희룡의 작가 의식을 살펴보았다. 우선 각 일화를 분석하면서 장오복은 유협이 아니라 왈짜임을 확인하였다. 장오복은 마을의 걱정거리로 인식 된 인물로 제멋대로 분풀이했을 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이 지향하는 방 식보다는 일방적으로 또는 마음대로 다툼을 중재하였고, 유협이 추구하 는 신의 또는 인간적 상결과 거리가 먼 언행을 보였기 때문이다. 다음 으로 조희룡은 자신이 처한 현실에 대한 울분을 해소하고자 왈짜인 장 오복을 유협으로 입전하였음을 추론하였다. 즉 그는 신분 제도의 질곡 으로 인해 현실 속에서 실천하고 싶었던 행동들을 장오복의 행적을 근 간으로 묘사하여 심적 괴로움을 달랬다. 더불어 조희룡이 왈짜를 유협 으로 입전하여 자신의 욕구를 해소할 수 있었던 것은, 왈짜를 유협으로 미화하는 것이 묵인되는 당대의 사회적 분위기 덕분에 가능하였다. 이 와 같이 「장오복전」은 작가 조희룡의 욕구 해소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었고, 장오복의 행적이 비판적으로 수용될 때 왈짜와 유협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는 전으로서의 가치가 있음을 입증하였다.
Comparing characteristic of a chivalrous person with one of a walja, I considered anecdotes in 「Jang O-Bok jeon」 by Cho Hee-Ryong. And then I examined writer consciousness of Cho Hee-Ryong based on figuration of Jang O-Bok. First, analyzing anecdotes that were related to Jang O-Bok, I confirmed Jang O-Bok was not the chivalrous person but the walja. Jang O-Bok who was community concerns arbitrarily wreaked his anger upon other persons, arbitrated in a dispute or a quarrel not on way which people aimed but in unilateral or his own method. His word and deed were also so far from behavior of the chivalrous person who sought faith and humane relationship. Seond, I inferred that Cho Hee-Ryong wrote the biography of Jang O-Bok regarding the walja Jang O-Bok as the chivalrous person from the facts above. Due to ordeal of a status system Cho Hee-Ryong described behaviors that Cho Hee-Ryong wanted to practice in reality on the basis of the past of Jang O-Bok, so Cho Hee-Ryong soothed his mental distress. Because glorifying the walja as the chivalrous person was acquiesced in those days, Cho Hee-Ryong was able to solve his desire writing the biography of Jang O-Bok regarding the walja Jang O-Bok as the chivalrous person. Third, 「Jang O-Bok jeon」 was useful accepted critically difference between the chivalrous person and the walja.

6,900원

10

魏晉및 16國時代河西地域의 교역기반 - 서역경영 및 소그드인의 활동을 중심으로 -

金炳模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36집 2017.02 pp.295-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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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魏晉및 16國時代河西지역의 교역기반에 관하여 西域經營 및 소그드인의 활동을 중심으로 살펴본 것이다. 검토 결과 위진시대 하서지역은 중원문화의 유입 및 발전이 심화되고 중앙아시아 소그드 상인의 유입 및 활동도 크게 증가한 것으로 확인된 다. 특히 대 서방 교역 거점으로서 돈황의 새로운 대두 및 역할이 간과 할 수 없는 특징으로 나타난다. 16국시대 하서지역은 중앙정부에서 이탈한 지방정권의 대두가 무엇보 다도 주목되며, 이들의 남다른 교역 의지 역시 교역기반 파악과 관련하 여 간과할 수 없는 요인으로 나타난다. 특히 위진시대에 주목을 받기 시 작한 돈황은 16국시대를 거치면서 刺史의 治所로서, 그리고 國都로서 발 전을 거듭하며 하서지역 교역을 주도하는 핵심 거점의 하나로 새롭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16국시대 하서지역은 전량, 전진, 후량, 서량, 북량 등 여러 정권의 지 배를 거치지만 교역기반의 전체적인 흐름은 위진시대에 비해 훨씬 견고 하고 발전적인 양상으로 진일보하며, 소그드인의 유입 규모와 활동 지 역 역시 위진시대에 비해 크게 증가하는 것으로 확인된다. 특히 상당 규 모로 일가를 이루어 새로운 분야 및 지역으로 진출을 확대해가는 모습도 확인된다.
This study analyzes the trade foundation of the HeXi Region of Wei & Jin Dynasties and sixteen Kingdoms of China focusing on the opening up the countries to the Western Regions and the activity of Sogdians. During the Wei-Jin Era, the Hexi Region saw intensified influx and development of central culture and significant increase in the activities and influx of merchants from the Central Asia Sogdiana. Especially, the Western Regions as the trading hub, the new rise and role of Dunhuang is a feature that cannot be overlooked. Above all, the rise of local governments deviating from the central government of the Sixteen Kingdoms Era in the Hexi Region is noticeable, and their understanding in relation to the trade foundation is an exceptional factor that cannot be overlooked. In particular, Dunhuang which had begun to attract attention in the Wei-Jin Dynasties Era newly established itself as the core of trade in the Hexi Region as administrative capital of local government through Sixteen Kingdoms Era, and developed again as the national capital. Though the Sixteen Kingdoms Era was governed by many regimes like Former Liang Kingdom, Former Qin Kingdom, Later Liang Kingdom, Western Liang Kingdom, Northern Liang Kingdom, etc, and the overall flow of the trade foundation was much more strong and progressive in developmental aspects than the Wei-Jin Dynasties Era, also, it is found that the influx size of Sogdians and their activities in the region increased significantly in comparison to Wei-Jin Dynasties Era. Especially, there was expansion into new fields and regions with the substantial increase in scale of family relations.

7,800원

11

조선 태조 이성계의 4대조 ‘북도팔릉’ 연구

장경희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36집 2017.02 pp.331-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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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릉은 조선을 다스린 국왕과 왕후 및 추존 국왕과 왕후의 무덤 이다.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조선 왕릉 40기가 등재되었다. 그러나 그중 북한에 위치한 왕릉 10기는 제외되었는데, 이 글은 북한에 있는 태조 이성계의 4대조 무덤인 ‘북도팔릉’을 연구하였다. 1392년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왕이 된 10일 뒤 자신의 4대 조 부모를 왕과 왕후로 추존하였고, 20일 뒤 그들의 무덤에 능호를 올렸다. 이후 1398년부터 1416년까지 조선 왕실에서는 함경도와 강원도 등지에 위치한 8기의 무덤을 왕릉으로 추봉하였고, 이것이 ‘북도팔릉’이다. 이것은 고려나 송 및 명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창업군주인 제1대 황 제는 공통적으로 자신의 조상들을 황제로 추존하고 그들의 무덤을 황제 릉으로 조성하였다. 그것은 건국의 정당성과 왕위 계승의 정통성을 시 각화하려는 의도가 반영된 것이다. 이에 조선의 왕릉을 전자의 것들과 비교한 결과 조선만의 독자성을 엿볼 수 있었다. 우선 조선의 북도팔릉은 무덤의 숫자에서 다른 나라와 큰 차이를 보 였다. 고려나 송은 태조의 부모를 합장하여 昌陵이나 永安陵1기씩에 모 셨고, 명은 태조의 부모를 모신 皇陵과 3대 조상은 함께 모신 祖陵2기 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조선의 북도팔릉은 왕 뿐 아니라 왕후에게도 별 도의 왕릉을 조성해 주었는데, 이것은 고려 왕릉의 전통을 계승한 조선 왕릉만의 특징을 갖고 있어 주목된다. 따라서 향후 북도팔릉이 조선왕 릉과 마찬가지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길 기대해 본다.
Royal tombs of the Joseon Dynasty refer to graves for kings and queens who ruled the Joseon Dynasty in addition to posthumous kings and queens. 40 royal tombs of the Joseon Dynasty were registered with UNESCO World Heritage in 2009. Of them, 10 royal tombs located in North Korea were excluded. This study is focused on examining Bukdopalleung, the eight royal tombs for ancestors of King Taejo of the Joseon Dynasty in North Korea. 10 days after King Taejo Lee Seong-gye founded the Joseon Dynasty in 1392, he honored the four generations of his ancestors as posthumous kings and queens and designated them as royal tombs in 20 days. From 1398 to 1416, the Joseon Dynasty designated eight graves located in Hamgyeong-do and Gangwon-do as royal tombs, and it is known as Bukdopalreung. It was influenced by the Goryeo Dynasty, the Song Dynasty and the Ming Dynasty. It was customary for the first emperor who founded a kingdom to honor his ancestors and build royal tombs for them. It aims to visualize legitimacy of foundation of a kingdom and succession to the throne. However, compared to precedents, the royal tombs of the Joseon Dynasty had originality. More than anything else, there was a great difference in the number of tombs. The Joseon Dynasty built separate royal tombs for the four generations of ancestors of King Taejo, and the number of the tombs was eight. On the other hand, the Goryeo Dynasty and the Song Dynasty built Changreung or Yongan Ling, one royal tomb where parents of King Taejo (the founder of the dynasty) were buried together. The Ming Dynasty built only one imperial tomb for parents of the King Taejo and two tombs of the three generations of ancestors of the emperor. In particular, Bukdopalreung of the Joseon Dynasty was intRoyal tombs of the ended to uphold the tradition of the Goryeo Dynasty that built a separate royal tomb not only for a king but also for a queen. Stone sculptures in Bukdopalreung reflected styles of the late Goryeo Dynasty and the early Joseon Dynasty. Accordingly, it is hoped that they will be registered with UNESCO World Heritage as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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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경묘ㆍ영경묘 산도에 대한 비교 연구

황인혁, 정석원, 이창환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36집 2017.02 pp.367-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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族譜는 한 姓貫전체 또는 그 중 한 계파에 속하는 자손의 혈통과 혼 인관계를 선후 代數와 항렬별로 일정한 도표와 서식에 따라 기록한 家 系記錄을 말하며, 山圖는 자연 지형을 풍수적 명당공간으로 묘사한 그 림지도를 말한다. 족보는 가계기록에 대한 체계적 관리를 목적으로, 산 도는 특정 공간의 지형정보를 그림으로 담아낼 목적으로 각각 별개의 영역에서 독자적으로 제작되어 왔다. 특히 산도는 대상지에 대한 사실적 묘사보다 제작자의 주관에 의한 과장이 심하고 회화적 표현이 거칠어, 회화 또는 지도 등 유관분야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그런데 조선후기에는 예학의 심화와 종법적 인 가족제도의 정착 등으로 족보의 구성에도 변화가 보이는데,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산도의 수록이다. 이는 선영에 대한 자연경관을 묘사할 때, 기록자료만으로는 다양한 정보를 수록할 수 없는 표현의 한계를 극 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시각자료 즉 산도를 도입하였다고 생각된다. 이 와 같이 족보와 산도는 태생적 배경과 표현 방법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家系情報에 대한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 서로를 필요로 하게 된 것이다. 조선왕조 전시기에 걸쳐 관심과 논란의 대상이었던 준경묘ㆍ영경묘 산도에는 이러한 정보들이 다양하게 집약되어 있다. 본 연구는 이러한 차이와 특징을 규명하는 과정을 통해 산도에는 산도 나름의 독특한 圖 法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수록된 정보에도 진정성과 합리성 이 풍부하여 학술적 가치가 있음을 확인하였다.
Jokbo (族譜) refers to a book containing genealogy records - lineage, marriage, etc. -of people sharing a same family name, or members of a certain clan among those sharing the family name in the order of their generations under a certain format and/or style. Sando (山圖) refers to a map portraying a natural topography as a propitious site according to the rules of feng shui. Jokbo and sando were created separately in different domains for different purposes: jokbo for systematical management of genealogy records in a family; and sando for depiction of topographical information of a certain space. Within the relevant academic fields including painting and map, sando has not been treated in a serious manner due to its characteristics such as the subjective, exaggerated expressions rather than realistic portrayal and coarseness of artistic qualities. However, some changes are observed in the composition of jokbo during the late Joseon Dynasty due to the advancements in study of rye (禮) and formation of clan rules, and one of the most significant among these changes is the inclusion of sando. It is thought that sando is introduced as a visual reference to overcome the limits of written references in describing the natural landscapes of the family's burial sites. Thus, jokbo and sando had been used together for efficient managements of family's genealogy information despite their differences in origins and expression methods.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sando of Junkyung and Youngkyung Tombs, which have been a subject of historical/academic interests as well as controversy among such sando created during Joseon Dynasty. Junkyung and Youngkyung Tombs have caused much controversy with its existence but, many clans in Jeonju Lee family started creating sando during the late Joseon Dynasty and Japanese colonial era. Such creation of sando of a single site in various perspectives within a short period of time can be a good case to examine the intention and information of the relevant persons because, the different expressions and portrayals reflecting the various circumstances of clans can be a good source in examining of the techniques and intentions of the creators. Through the process of examining such different characteristics in this study, it was learned that there certainly is a unique method of pictorialization for sando, and that the information contained are correct enough to prove the academic value of sando. It is thought that continued research on sando can be a good alternative to overcome the limits of written resources on spatial data of topography/ge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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