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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학 [THE EASTERN CLASSIC STUDIES]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지
  • 발행기관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INSTITUTE FOR EASTERN CLASSIC STUDIES]
  • ISSN
    1598-1452
  • 간기
    계간
  • 수록기간
    1995~2019
  • 등재여부
    KCI 등재
  • 주제분류
    인문학 > 기타인문학
  • 십진분류
    KDC 910 DDC 950
제31집 (13건)
No
1

중화주의의 시원과 화이공조(華夷共祖)론 비판

장현근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31집 2014.08 pp.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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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중국인들의 화이지변(華夷之辨)이 한족(漢族)이 자기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해 펼치는 논의가 아니라 중화의식의 확장을 통해 관념적으로 주변을 모두 중화화시키려는 문화제국주의적 발상이었음을 밝히고자 한다. 나는 그 내밀한 이면에 화이공조(華夷共祖) 즉 중화와 이적이 같은 조상이라는 근거 없는 주장이 근거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사기』라는 text에 갇혀 중화주의를 구성하는 context에 대한 이해를 결여했기 때문이다. 이 글은 또한 중화주의라는 문화우월의식이 중국의 보수적 정치전통을 형성하는데 기여한 가장 중요한 인자 가운데 하나였음을 밝히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나는 이 글을 통해 중화주의는 범주가 정해지지 않는 모호한 개념일 뿐만 아니라 의도된 기획이며 주변문화를 먹어치우는 확장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이러한 결론에 이르기 위해 華夷의 어원에서 출발하여 초기 중화주의 형성과정을 살펴보고, 역사적으로 어떻게 전개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형성된 화이공조 관념이 무비판적으로 수용된 사실을 비판적으로 고찰하는 순서로 진행하였다.
This article point to define Sino-centrism and Sino-Barbarian dichotomy as a Cultural Imperialism in relation to Sinicize non-Han(漢) people, not simply as a identification of Han nationality. I think Sino-centrism include an unsubstantiated claim for Hua-Yi's Sharing the Common Ancestor. Especially in Records of the Grand Historian, Si Ma Qian(司馬遷) emphasize this unfounded claims, and a battery of later Confucian in Chinese History blindly follow the claim of Si Ma Qian's text, and miss the constructive context of Sino-centrism. Originally the concept of Han nationality and Yi nationality are quite distinct from each other, not use to cultural superiority. I think Chinese cultural superiority or culture chauvinism has always contributed to Chinese political conservativeness historically.

8,100원

2

조선 전기 중화주의와 내치ㆍ외교 관계

안외순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31집 2014.08 pp.4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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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연구들에서 강조되었듯이 중국에서 중화주의의 출발은 지역성, 종족성, 문화우월주의의 성격을 지녔다. 하지만 이러한 문화제국주의적 요소의 중화주의는 유교와 만나면서 轉變이 일어났다. ‘유교적 중화주의’는 철저하게 도덕적/문화적/덕치적 기준을 중화의 척도로 삼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유교적 중화주의’는 반패권 /반군사 /반전쟁 논리를 속성으로 하게 되었고, 덕분에 공존적/평화적/도덕적 성격을 띠면서 유교 문화권에서 약소국의 안전을 보장받는 보편적 문명관이 될 수 있었다. 그래서 동북아의 약소국인 한반도의 통치자들 역시 고대부터 적극적으로 ‘유교적 중화주의’는 물론 그 현실태인 사대질서체제, 곧 조공책봉 관계를 수용했던 것이다. 조선의 건국자들 및 전기의 통치자들은 이를 더욱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내치와 외교에서 각각 기자조선과 동주건설을, 외천의 사대와 낙천의 사대를 이상으로 표방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는 강대국을 주변국으로 둔 약소국 조선이 자존감을 지키면서 현실적 실리를 취할 수 있는 보편문명의 지향노선이면서도 전략적 선택이었던 것이다.
As existing studies have stressed, the beginning of Sinocentrism was characterized by regionality, ethnicity and cultural supremacy. However, Sinocentrism with these elements of cultural imperialism mutated through encounter with Confucianism. It is because ‘Confucian Sinocentrism’ thoroughly took ethical / cultural / benevolent government standards as its criteria of Sinocentric idea. Thus, ‘Confucian Sinocentrism’ was based on antihegemony / antimilitary / antiwar logic, which contributed Confucian Sinocentrism to be a universal view of civilization that secured safety of small and weak states within Confucian culture. For these attributes of ‘Confucian Sinocentrism,’ rulers of the small Korean Peninsula in East Asia were deeply fascinated with it and since unified Silla dynasty, they actively adopted not only Confucian Sinocentrism but also toadyism which presented the reality of Confucian Sinocentrism, in other words, the tribute-investiture relation. ‘Confucianism as a national policy’ and ‘Ming-Friendly toadyism’ that founders of Joseon actually put up for their domestic and foreign political line was also the result of ‘Confucian Sinocentrism,’ which was orientation toward ideal and universal civilization available at that time.

6,600원

3

손문의 ‘중화주의적’ 민족주의의 본질과 한계

김현주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31집 2014.08 pp.7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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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말 중국의 국부로 추앙받고 있는 손문은 청조의 전복을 도모하기 위해 만주족을 배척하는 한족중심의 민족주의를 주장하였는데, 청조가 몰락한 이후 소수민족을 모두 포섭하고자 하는 의도로 오족공화라는 포용적 민족주의로 입장을 전환하였다. 그의 민족주의는 한족중심의 편협성에서 탈피하여 중국인민을 하나로 묶어줄 수 있는 ‘새로운’ 민족주의로 전환되었다는 점에서 현재 중국 정부가 개혁개방이후 전면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중화민족주의의 원형으로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손문은 한족의 문화적 우월성을 기반으로, 소수민족을 한족중심의 문화로 동화시킴으로써 국가의 민족적 통일성을 유지하고자 하였고, 평등주의적인 민족주의가 아니라 차별주의적 민족주의(즉 ‘중화주의적’ 민족주의)를 지향하였다. 손문의 민족주의 발전 단계는 근대중국이 다민족 국가로서, 하나의 근대적 국가를 성립하기 위한 정신적 도구로서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를 활용하여 중국의 다민족이 하나의 새로운 민족, 즉 중화민족이라는 민족적 동질감을 형성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은 대외적으로는 ‘아세아주의’로 나타나는데, 그 성격상 중국을 중심으로 한 주변국가의 동화에 대한 요구로 나타날 우려가 있다. 그러므로 현대중국이 전면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제 민족의 평등한 관계를 기반으로 한 포용적 중화민족주의를 실현하기위해서, 그리고 아시아 주변 국가들과의 평화로운 공존을 위해서는, 손문의 중화민족주의를 철저하게 비판하고, 그 한계에서 벗어나야 함을 알 수 있다.
Sun-wen's nationalism is positively evaluated by Chinese government today, for it is put up as the prototype of Chinese nationalism since the Open Policy in China. So Studying Sun-wen's nationalism can provide some clue to let us understand how modern China can be established focusing on nationalism, and what is its limitation. To grasp the real meaning of Sun-wen's nationalism, we devide its development process into three stages. The first stage can be defined as Anti-Manchuism and Han-centrism, which is asked to attempt to overthrow the Qing dynasty. It was definitely ethno-centered and exclusive. The Second stage is "the theory of five people's republic", Sun-wen changed his position into accepting five ethnic groups into one nation and to establish a tolerant unity after the overthrow of the Qing Dynasty. Though this position lasted for 16 years from 1912, it was still Han-centered as its character. The last stage can be said to establish Chinese modern nationalism named as the 'new' Sinocentrism. Sun-wen tried to keep the national unity by assimilating the minority ethnic groups into Han nation, not to pursue egalitarian nationalism. He claimed Han nation's excellence compared with other nations, and asked them to accept Han culture voluntarily. As a result, nationalism was used as a tool to create one nation state in modern China, and to build the national identity. But the character of Sun-wen's nationalism was so exclusive and oppressive. If it can be extended to apply foreign relations, it is called Asianism by Sun-wen. It has possibility to force neighboring countries to accept Chinese culture. So while forming peaceful relations with other countries, China government must criticize it more thoroughly and go beyond the bounds of it in order to realize the inclusive and egalitarian nationalism.

8,200원

4

『맹자』와 관용 - 소통과 동락(同樂)을 통한 공감과 치유 -

이기원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31집 2014.08 pp.11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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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맹자』에 나타난 관용의 정신을 타자 및 타문화와의 소통을 위한 다양성과 차이의 수용과 인정, 공감의 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 고찰하고 있다. 다양성의 인정과 수용에서 중요한 것은 무한히 확장되는 자기 욕망을 어떻게 줄일 수 있는가에 있다. 맹자가 추구한 것은 욕망을 줄이는(寡欲) 것이다. 욕망을 줄이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마음속에 내재해 있는 도덕성의 확인과 확충이 필요하다. 그러한 상태가 되었을 때에 비로소 타자와의 소통도 가능해진다. 『맹자』에서 볼 수 있는 자타간 경계 유지를 위한 방법이 갖는 특징은 경제적 측면에서 경계 유지까지 강조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 구성원에게 일정한 경제 활동과 그것을 통한 소유를 가능하게 해주는 경계의 유지는 팽창하는 욕망을 줄일 수 있는 방법으로 기능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맹자가 최종적으로 추구하는 관용의 세계는 측은지심을 바탕으로 하는 함께 즐기는 동락(同樂)하는 세계이며 그것이 바로 맹자가 지향하는 세계관이다. 이러한 점에서 『맹자』를 통해서 알 수 있는 유가철학이 지향하는 관용은 호혜적 관용을 넘은 공감적 관용이다. 이러한 관용 담론에서는 마음의 치유와 함께 시대와 문화의 병리적 현상을 치유할 수 있는 한 방법론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This thesis aimed at considering the spirit of tolerance in 『Mencius』 in the aspect of the possibility of the acceptance of diversity, recognition and sympathy for the communication with others and other culture. The important point in the recognition and acceptance of diversity is how to reduce infinitely expanding self desire. Mencius pursued reduction of desire(寡欲). In order to reduce desire, first, it is necessary to confirm and expand morality inherent in our mind. When we get that condition, at last we can communicate with others. The characteristic that the method to maintain the boundary between self and others that can be seen in Mencius is the emphasis of boundary maintenance in the economic aspect. Boundary maintenance which enables social members' regular economic activities and possession through that can be achieved through the method of reducing the expanding desire. Through this process, the world of tolerance which Mencius eventually pursued is the world of enjoyment(同樂) based on compassion, and that is the view on the world that Mencius aimed at. In this respect, tolerance, which can be known through Mencius, that Confucian philosophy pursues, is empathic tolerance beyond reciprocal tolerance. In this discussion on tolerance, the possibility of a methodology, which can cure the period and pathological phenomena along with mind healing, can be found through philosophy.

7,600원

5

순자(荀子) 윤리학의 이성주의적 특성

강지연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31집 2014.08 pp.145-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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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순자(荀子)윤리학 구조에서 이성주의적 특성에 대해 분석하면서 이 중 감정의 역할에 대해서도 분 석하였다. 방법론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덕 윤리학을 분석하는 도구와 참고 대상으로서 사용했다. 도덕실 현을 위해 인간의 이성활동을 인간 삶의 소명으로 삼은 것, 이 부분에서 순자의 생각도 근본적으로 아리스토 텔레스 견해와 상통한다고 본다. 순자는 인간을 인간이라 규정지을 수 있는 것은 “판별하는 능력(以其有辨也)”에 달려 있다고 하면서, 인간의 본질을 규정하는 이성주의 특징을 드러내고 있다. 여기서 참고한 만한 이론적인 형태가 있다. 그것은 아리스 토텔레스의 덕 윤리학인데, 그도 도덕성 실현에서 이성의 역할을 강조한다. 순자에게 지혜(智)란 도덕 행위 주 체의 한 가지 능력이자 활동으로서, 선과 악, 시(是)와 비(非), 당(當)과 부당(不當)에 대해 인식하고 판단하는 실천적인 이성을 가리키는데,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천적 지혜와 유비될 수 있다고 본다. 자연적인 덕성 역시 총괄적으로 사물을 파악하는 능력인 실천적 지혜를 떠난다면 도덕적일 수 없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좋은 덕성이란 끊임없는 도덕 실천을 통해 얻을 수 있다. 이를 통해 순자는 끊임없는 습관, 지속적 노력을 통한 실천 을 통해서야 도덕적 인성이 가능함을 주장한다고 판단된다. 또한 순자 윤리학 구조에서 인간의 감정의 역할은 소홀이 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윤리학 구조에 서 감정의 역할이 맹자(孟子)윤리학에서 가지는 감정의 의미만큼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는지 의문이다. 감정보 다 이성을 중시하고 강조한 것은 순자 윤리학의 독특한 이론 특색이다.
While exploring the rationalist characteristics embedded in the context of fundamental structure of Xunzi’s theory of ethics, the article also analyzes the role of emotion. As a methodology, this article uses the frame resorted to in analyzing the virtue ethics of Aristotle. The constructure of rationalizing acts of humans as the ultimate goal of human lives in fulfillment of moral cultivation is also shown in Xunzi. Thus, Xunzi’s thinking appears to be in accord with Aristotelian thinking. As to Xunzi’s view of ethics, the question of the fundamentals of morality is given full attention. These questions ranging from “understanding of humans,” to “construction of fundamentals of ethics”, to” the emotion question,” to “ importance of virtues in practices” are fully discussed and analyzed in illuminating the rationalist characteristics of Xunzi’ theory of ethics. Furthermore, in theoretical structure of Xunzi’s ethics, the role of human emotion should not be overlooked. Notwithstanding this, however, it is quite questionable whether the role of emotion in Xunzi’s theory of ethics has been addressed as importantly as that of emotion in Mencius’ theory of ethics. According to Xunzi’s theory of ethics, virtues may not be expanded or even developed out of natural emotions. Xunzi acknowledges that humans and animals alike possess natural emotions. However, he does not view them as having any moral worth. This point is the watershed that distinguishes Xunzi’s theory of ethics from Mencius’ theory of ethics.

6,900원

6

17세기 조선을 바라보는 박세당의 역사인식 - 인조반정과 일련의 사건을 중심으로 -

주영아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31집 2014.08 pp.175-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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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17세기 인조조의 역사는 물론이거니와 조선 전반에 걸쳐 완전하게 정립되지 못했던 역사에 대한 고찰을 심화하여 박세당의 역사인식을 살폈다. 조선은 전대의 역사인 삼국과 고려에 비해 표면적으로는 비교적 짧은 시간에 왕권이 안정되고 문화의 융성이 이루어졌다. 특히 왕권의 강화와 유지를 위해 초기에는 명나라의 힘을 빌리기도 하였고, 중반을 넘어서면서 정치적으로 붕당의 세력을 강화 또는 약화시키기도 하면서 역사가 이루어졌다. 단종, 세조, 선조, 광해군, 인조에 이르는 시기에는 왕권의 정통성 문제에 대한 갈등으로 조선의 왕권과 정치력이 파국을 치닫게 되었다. 쿠데타와 반정으로 옹립된 불완전한 왕위계승은 왕권의 정통성 문제와 직결되었고, 왕권의 약화에 직접적인 계기이기도 하다. 본고에서 이번 연구의 중심에 인조 집권기 일련의 사건 두고 있는 것도 이러한 문제가 극명하게 나타나는 시기가 인조조이기 때문이다. 혼란의 시기에 발생하게 되는 국내외의 문제는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상반된 경향으로 나타난다. 혼란이 극에 달했던 인조 집권기를 중심으로 국내외 정황을 파악하고 그에 관련하여 명분보다는 실리를, 과거보다는 현재를 중심에 두고자 했던 박세당의 역사인식을 살폈고, 아울러 17세기 지식인이 갖는 조선조 역사에 대해 정통성 찾기의 실체를 구명하였다.
This study examined Park Se-dang's historical consciousness by deepening a consideration on history, which had failed to be perfectly established over the whole of Joseon as well as history in Injo Dynasty of the 17th century. Joseon was formed the stability in royal authority and the prosperity in culture superficially in the relatively short time compared to the Three States and Goryeo, which are the history of previous generation. Especially to reinforce and maintain royal authority, it ever borrowed power of Ming Dynasty in early days. The history was formed while strengthening or weakening a clique politically with getting over the middle phase. The royal authority and the political power in Joseon came to head for a ruin owing to a conflict on legitimacy of royal authority in the times of reaching king Danjong, king Sejo, king Seonjo, Gwanghaegun(Prince Gwanghae), and king Injo. The incomplete royal succession, which was enthroned by coup and anti-politics(反正), led directly to a problem about legitimacy of royal authority and is also a direct opportunity of being weakened sovereign power. Even what this study has its focus on the sequence of events during the period of seizing power in king Injo is because the period of being clearly this problem is the Injo Dynasty. Issues at home and abroad, which come to take place in the period of confusion, are shown to be contrary tendency depending on perspective of looking at history. It grasped the circumstances at home and abroad focusing on the period of seizing power in king Injo when confusion had reached its climax, figured out the historical consciousness of Park Se-dang, who aimed to focus on profit rather than justification and on the present rather than the past with regard to it, and also closely examined the truth of seeking the legitimacy on history of Joseon Dynasty that intellects have in the 17th century.

6,700원

7

『묵자』와 『원론』의 기하학적 내용 비교

이광연, 설한국, 이유호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31집 2014.08 pp.203-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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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원론』은 초등수학의 기초를 논리적으로 순서 있게 해설하여 서양수학의 기초가 되었다. 『묵자』는 중국에서 기원전 500년경의 춘추전국시대에 활동했던 묵자의 사상을 엮은 책이다. 이 책에는『원론』과 같은 수학적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묵자』와 『원론』의 수학적 내용은 정의가 같은 것도 있고 비슷한 것도 있지만 완전히 다른 것은 거의 없다. 이 논문에서는『묵자』와 『원론』을 통하여 고대 동양의 수학과 고대 그리스의 수학 차이점과 공통점을 비교한다. 『묵자』는 수학적 내용 자체에 중점을 두었고, 『원론』은 수학적 내용을 전개하는 논리적인 방법에 중점을 두었다. 이는 동양이 수학적인 내용도 철학과 사상으로 해석하려 했던 반면 서양에서는 수학적 내용 자체를 연구하였기 때문이다.
Euclid had given a logical explanation for elementary mathematics in Elements. So Elements became the basis of modern Western mathematics. Mojia is a book published about BC 500 years in China’s Warring States Period. Mojiacontains the mathematical details the same as Elements. In this paper, we compare the differences and similarities of Ancient Orient and Greece mathematics from Mojia and Elements. Mojia is focused on mathematical content, but Elements is focused on a logical way to develop mathematical content. The reason is that the mathematical content of the Orient dealt philosophically while, in the West, has studied the mathematical content itself. This is the biggest difference of the mathematical point of view between ancient Orient and ancient Greece.

8,100원

8

『金鰲新話』에 나타난 宗敎性과 敍述技法 - 傳奇小說 글쓰기의 特性 立場에서 -

이학주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31집 2014.08 pp.241-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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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금오신화』에 나타난 종교성과 서술기법에 대한 논의이다. 이는 傳奇小說이라는 장르에서 나타나는 글쓰기의 특성을 밝히는 작업이다. 한마디로 말해 전기소설의 서술기법이 종교성을 바탕으로 했다는 것이다. 『금오신화』가 종교성을 바탕으로 서술됐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 주변상황을 먼저 살폈다. 전기소설의 奇異 와 神異, 당대의 일상과 종교에 대한 未分化, 김시습의 종교에 대한 思惟를 볼 때 이미 김시습은 종교성을 바탕 으로 글을 쓸 준비가 되어 있었다. 종교성을 바탕으로 『금오신화』가 서술된 상황은 작중인물, 서술범주, 서술장치, 서술의도 등에서 알 수 있 었다. 작중인물은 인간과 鬼와 神이 교류를 갖고, 서술범주는 죽음이후까지 이어지며, 서술장치는 幻實을 기 본으로 인연, 운명 등의 종교성 단어와 종교적 질서를 유지하고 있으며, 서술의도는 종교성에 의탁하여 기이 와 신이 등으로 일상의 저촉에서 벗어나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하며 현실계 외에 다른 세계가 있음을 알리고 자 한데 있었다.
This is a study on religious features and describing techniques in Geum-o-sin-hwa. Also, it is a kind of work to figure out the characteristics of writing in the genre of Asian fiction(Romance). The describing techniques of Asian fiction are based on religion. Circumstances were looked over to confirm the fact Geum-o-sin-hwa is based on religion. Geum-o-sin- hwa was ready to be written based on religion when we regard the strangeness and mystery, the undifferentiation of life and religion, and Kim Siseup's thought on religion. Characters, describing criteria, describing device and describing intention give clues of the reason why Geum-o-sin-hwa was written based on religion. The characters are men, ghost and god. The describing criteria is extended to the other world of after death, and the describing device sets up two worlds and keep them in order, and describing intention is a little out of reality with the strangeness and mystery based on religion.

6,700원

9

溫達의 주제적 수용 양상과 의의

박종훈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31집 2014.08 pp.269-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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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식의 『삼국사기』에 수록된 「온달전」과 이후 문인들의 온달 관련 설화의 주제적 수용 양상을 살펴보았다 . 온달과 관련된 설화들이 『삼국사기』의 기록을 수용한 것으로 생각되었지만, 실제 후대 문인들의 언급을 통해 민간에 지속적으로 구전되는 온달 관련 설화가 있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또한 온달의 이름이 ‘于溫達’이 었고 온달이 놀림의 대상이 되자, 온달의 姓인 ‘于’를 동일한 발음인 ‘愚’로 바뀌어 불렀다는 언급도 확인했다. 선행연구에서도 온달의 충과 공주의 열행 및 신의를 다룬 성과가 있었지만, 이들 논의는 『삼국사기』 「온달 전」만을 대상으로 하거나 온달과 공주라는 소재 측면에서의 접근만 이루어졌을 뿐, 후대 문인들의 주제의 수 용 양상까지 그 편폭을 넓히지 못했다. 온달의 忠에 초점을 맞춘 언급은 공주의 신의와 열행 등의 내조에 대한 부분을 소략하게 다루거나 아예 생략 한 채, 온달의 용맹에만 초점을 맞추었다. 공주의 열행과 신의에 초점을 맞춘 언급에서는 온달을 성공시킨 공주의 내조에 초점을 맞추어 공주의 열행과 신의를 강조했다. 비록 온달이 공을 세웠다는 언급도 있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공주를 칭송하기 위한 장치 였다. 온달 관련 작품을 지은 작가들을 시대적으로 조망해 보면, 18세기에 집중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공 주의 열행과 관련된 작품이 이 시기에 집중된 것은, 열이라는 여성 윤리의 강조가 최고점에 이른 시기와 맞물 려 있다.
I looked around accommodated aspect about subject that was mentioned at Samguksagi of Kim, busik and was associated Ondal of literary men at after that time. Normally, People thought related narrative, that Ondal was admitted record of Samguksagi, But, I confirmed that there continuously was informed by word of mouth a tale which be related to Ondal among the people through lasting literary men reference in posterity. Besides, Ondal`s name was ‘U,ondal[于溫達]’, Ondal was become a laughing- stock. Then, at first, I noticed that Ondal`s frist name called ‘U[于]’. which was conscious of same pronunciation, ‘U[愚]’. Secondly, I looked around accommodated aspect about subject centering around Ondal`s loyalty, a royal princess` chastity and faith. At preceding study, It was a result that Ondal`s loyalty and a royal princess` chastity, faith. But, this argument was formed that intended for aimed at of Samguksagi, or a material part that ondal and Princess. At a leading study, It was the fruit that deal with Ondal`s loyalty and a royal princess` chastity, faith. But, this argument was formed that became the object at of Samguksagi, or was formed that a subject matter ondal and princess. That’s all there is to it, it wasn`t exerted influence that reception- aspect of the theme. It was focus Ondal`s loyalty that an reference of Shinjeungdonggukyeojiseungram and an argument of Yu, deug-gong and Lee, Hak-kyu. These argument was simply handled that a part of help one’s husband that faithfulness and chastity of princess. Moreover, these focused on intrepidity and nationalism of Ondal. It was focus Princess` chastity, faith that an reference of Myungsimbokam, Lim, chang-taek, An, jung- bok, Shin, Kwang-su, Yu, Han-jun, Lee, bok-hu, Yoon, ki, Woo, ha-young. These works were emphasized princess` faithfulness and chastity that focused princess` help to which Ondal success. But, It was equipment that praise princess. An, jung-bok had a doubt that princess` faithfulness and chastity. and he scolded princess` action. however, It was true that heavy at princess`s conduct.

6,900원

10

松廣寺 樓亭題詠詩 硏究

林俊成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31집 2014.08 pp.299-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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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사는 고려시대 보조지눌 이래로 16국사가 배출되는 등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사찰이며, 다수의 禪 僧를 배출한 사찰이기도 하다. 본고는 송광사의 수많은 전각 중에서 특히 누정건축에 주안점을 두고 이들 누 정을 읊은 시가 다수 남아 있음을 착안하여 송광사 누정제영시를 살펴보기에 이르렀다. 현재 송광사에는 三淸僊閣, 曹溪樓, 枕溪樓, 水石亭 등 네 곳의 누정이 남아 있으며, 이는 여타 사찰보다 높은 수치이다. 이들 누정을 읊은 제영시를 현존 문헌기록인 『松廣寺誌』, 『韓國佛敎全書』, 『韓國文集叢刊』 등에서 모두 28명 57수가 수록되어 있음을 밝혔다. 세부적으로는 삼청선각 23수, 조계루 10수, 침계루 10수, 수 석정 14수 등 총 57수이며, 창작계층으로는 스님 12명에 32수, 사대부 16명에 25수이다. 이로써 보면 송광사 누정제영시는 작자층에서 스님뿐만 아니라 사대부층에서 골고루 분포하는 등 儒佛과 聖俗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창작되어 문학적 공간으로 기능하였음을 알 수 있다. 분석 결과 송광사 누정제영시는 주로 禪定, 禪心, 禪趣, 修行, 探勝, 脫俗, 隱逸, 懷古의 공간으로 인식하는 경 향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찰 누정제영시의 특성상 한시 주제 안에서 송광사의 景物과 작가가 표출한 특정한 意味들이 문학적으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으며, 이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형상화 했는지에 대한 분석을 시도했으나 보다 정밀하게 하지 못한 점이 본고의 한계이다. 본고는 송광사 누정제영시를 분류하면서 목록화 작업을 병행하였다. 향후 사찰문화콘텐츠자료로써 DB화의 기초로 삼기 위함이다. 누정제영시는 사찰의 명소를 소개하는 자료로써 활용도가 높을 것이다.
Considering the age of sixteen Songgwangsa priest is emitted by such a long history and tradition paragraph. This paper presents a number of buildings in particular sperm songgwangsa placed on the core. Sing the sperm remains a lot of work to look at the work was poetry. There are Songgwangsa '三淸仙阁', '曹溪楼', '枕溪楼', '水石亭' pavilion are four places remain. This is relatively a lot more than the other temples. The Singing pavilion left in the current literature is poetry 『松 广寺志』, 『韩国佛敎全书』, 『韩国文集 丛刊』 like. 57 names left side, where all said 28. More specifically, 三淸仙阁 23 pieces, 曹溪楼 10 pieces, 枕溪楼 10 pieces, 水石亭 14, including all 57 pieces of mail. 32 artist name and number distribution of the 12 monks, 25 name and number 16 is the gentry. Thus, the authors Songgwangsa pavilion separated from my midnight monk and evenly distributed in the ruling class, as well as it can be seen that this is a Songgwangsa Temple regardless of religious identity and free literature says that it was a space. Meditation is primarily a result Songgwangsa literature sightsee, my free, recall that the space tend to be recognized. Due to the nature theme in literary works of the temple Songgwangsa landscape and literary writers have expressed a certain sense of how connected and how it shaped specifically the part about whether it is not precisely the limit. This is supplemented by later research will continue. In this paper, the classification of the work table, made ​​separately. This is based on the future work of the temple of cultural contents that can be used as a database because they expect. Pavilion temples, especially those of my midnight visit to introduce the material utilization is high, as it is expected.

7,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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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지 소재 손진태 채록 무가의 성격과 의의 - <祖上푸리>와 <龍船歌>를 중심으로-

박상란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31집 2014.08 pp.335-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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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조상푸리>와 <용선가>를 중심으로 『불교』지 소재 손진태 채록 무가의 성격과 의의를 규명하기 위한 것이다. 우선 이들 무가는 불교적 성격을 강하게 띠는데 이는 당시 동래 지역에 전승되는 무속 및 무가의 성격에 기인한 것이다. 따라서 이들 무가는 독경무라는 전승집단의 측면에서 볼 때 불교의 영향을 받은 일종 의 무가라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이들 무가는 같은 유형의 무가로서는 최초의 채록본이자 1930년대 전승본 이다. 이런 점에서 이들 무가는 당시 전승되던 것으로서 이들 무가가 속해 있는 축원굿 및 오구굿의 양상을 시 사한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들 작품의 채록을 통해 손진태는 민속자료 수집 초기에 관서, 관북 지역뿐 아니라 동래 지역을 중심으로 동해안지역 무가를 수집하고 정리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요컨대 『불교』지 소재 손진태 채록 무가는 당시 전승되던 동래 지역 무가의 영향으로 산출된 것이다. 따라 서 이들 무가는 동래 지역에 전승되는 축원굿 및 오구굿을 중심으로 1930년대 초반 동해안지역 무가의 판도를 재구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I attempted to study the characteristics and significance of recorded Shaman's songs published in Buddhism, recorded by Son Jintae, and I mainly discussed about and in this essay. First, These songs' strong Buddhist nature has their genesis in the characteristics of Shamanism and Shaman's songs which have been handed down in Tongrae region at that time. Therefore, these songs are a kind of Shaman's songs influenced by Buddhism in terms of transmission group called ‘Shaman reciting sutras’. Next, these songs are the first recorded texts as the same type of Shaman's song and 1930's handed down texts. On this respect, these songs have significance that they indicate the aspects of praying exorcism and Ogu exorcism where these Shaman's songs are belonged as being handed down at that time. Last, Son Jintae has significance that he collected and classified the Shaman's songs not only handed down in Kwanbuk and Kwanseo region, but especially which were originated in the East Sea at the early stage of folk-data collecting by recording of these songs. In short, Shaman's songs published in Buddhism, recorded by Son Jintae, are produced by influence of Shaman's songs that had been handed down in the Tongrae region at that time. Therefore, these Shaman's songs have significance that they give hint of the landscape of Shaman's songs of the East Sea mainly about the praying exorcism and OGu exorcism that had been handed down in the Tongrae region in the early 1990's.

8,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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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 천황사 목조삼세불좌상과 조각승 마일

최윤숙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31집 2014.08 pp.373-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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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진안군에 위치한 천황사 대웅전에는 1680년에 조성한 목조삼세불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삼세불좌상은 혜희의 불상양식을 반영하고 있지만, 마일이 조성한 칠장사·은하사 삼존불상과 친연성이 높다. 이에 마일과 연관성이 있는 불상 11건 18점에 대해 양식과 신체비례를 분석한 결과, 법주사 관음보살상에서는 혜희의 양식 이 주를 이루고 있으나, 그 밖의 불상에서는 마일의 독특한 양식이 주를 이루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마일의 불 상은 전체 크기에 비해 머리가 크고 얼굴 폭이 넓다. 그리고 겨드랑이를 드러내며 오른쪽 어깨에 살짝 걸친 대 의, 튀어나온 입, 사선으로 뾰족하게 접거나 S자형으로 접은 하반신 옷자락 끝단, 펼친 각도가 크면서 깊게 조 각된 주름 등 같은 시기에 활동한 조각승의 양식과 다른 특징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특징과 신체비를 보이는 천황사 삼세불상과 봉곡사 불상은 마일이 조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마일의 불상양식은 17세기 중반 봉곡사 석가상에서 성립하고, 17세기 후반 천황사 삼세불상에서 정형 화되며, 칠장사 삼존불상에서 절정을 이루고, 은하사 삼존불상에서 형식화 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금문이 제작한 칠장사 지장보살상에서는 마일의 불상 양식이 엿보인다. 따라서 천황사 삼세불상은 마일의 조각양식 이 확립되어가는 시기에 조성한 작품이며, 마일은 법령의 양식을 계승한 혜희의 계보에 속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 마일의 불상 조각양식은 17세기 불상양식을 수용하여 자신의 독특한 양식을 확립하고, 18세기 초반 불상양식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조선후기 불교조각사에서 차지하는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The Seated image of Wooden Three Buddha built in 1680 has been enshrined in the precious hall of Chonwhangsa Temple at Jinan-gun, Jeollabuk-do. Even though the Seated image of Samjonbul reflects the mode of Buddhist statue of Hyehui, it has the high affinity with the statue of Buddha Triad created by Mile at Chiljangsa Temple and Eunhasa Temple. Hence, as a result of analysis for the style and the body proportion for the statue of the Buddha created by Mile and presumed piece of 11 cases and 18 works, the style of Hyehui forms the main in the statue of Avalokitesvara Bodhisattva at Beopjusa Temple, but the distinctive style of Mile has been identified in other statues of the Buddha. The statue of the Buddha of Mile has the big head and the wide width of face compared to the whole size. And the different characteristics from the style of monk sculptor in the same period of time is shown such as the big clothes draped around the right shoulder slightly with exposing the armpit, the protruded mouth, the skirt of large clothes folded like the edge of knife or folded in S charter type, the wrinkle of deeply sculpted and spread big angle, etc. Accordingly, the statue of Buddhas of Samsebul at Chonwhangsa Temple and the statue of Buddha at Bonggoksa Temple showing these characteristics and the body proportion are assumed to have been built by Mile. Accordingly, the statue of Buddhas of Three Periods at Chonwhangsa Temple is the masterpiece built in the period the style of sculpture of Mile is established, the possibility that Mile belonged to the pedigree of Hyehui who succeeded the mode of Beopryeong is high. Mile is the monk sculptor occupying the big meaning in the Buddhist sculpture history in late Joseon Period in the point that Mile established the mode of his own by accepting the mode of sculpture of Buddhist statue in the 17th century, he has the effect on the mode of statue of the Buddha in the early phase of 18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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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관제묘건축의 편액과 주련에 관한 연구 - 공간적 의미와 특성을 중심으로 -

곽항걸, 이건하, 김영은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31집 2014.08 pp.41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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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공신앙은 중국 민간에서 큰 영향력이 있는 민속 문화이고 오늘까지도 충실한 신자들이 있다. 관제묘건축에도 이러한 민속 문화들이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본 논문에서는 관제묘건축을 전도공간(前导空间), 제례공간(祭禮空间), 후속공간(后续空间)으로 나누어 편액과 주련의 공간적 의미와 그 특성을 밝히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아래와 같은 결론을 도출하게 되었다. 관제묘건축의 각 공간 편액은 관우의 충성, 의리, 인자함, 용감, 기세 등을 찬양하는 내용이 대부분이고 존경을 표현하는 내용 및 장소성을 알리는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다. 중국 관제묘건축 전도공간의 주련은 관우의 생전 이야기를 찬양하고, 관우의 성품을 찬양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또한 주변의 경치와 결합하여 관우의 절개를 표현하고, 관우 신세를 한탄하는 내용도 나타났다. 그러나 제례공간에서는 전도공간 및 후속공간과 달리 주변 경치와 결합된 주련의 내용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후속공간의 주련은 어제(御製) 편액의 내용에 부합시켜서 주련을 써 내려간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The faith to Guangong is an influential folk culture among the people, and there are many worshipers so far. This kind of folk culture is also reflected in the Guandi Temple.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clarify the characteristic of horizontal inscribed boards and phrases on the board of the pillar by dividing Guandi Temple into Conducting Space, Ritual Space and Subsequent Space. Thus, the following conclusion is deduced. The texts of the horizontal inscribed boards in each space are about praising Guanyu’s sincerity, loyalty, benignancy, bravery and spirit mostly, and there’s no big difference in expressing the respect to Guanyu or introducing the region. The phrases on the board of the pillar in Conducting Space of Guandi Temple in China is about praising the story of Guanyu’s life and his character mostly. It express Guanyu’s mettle by combining with surrounding scenery. And there’s also the story of lamenting Guanyu’s misfortune. However, the characteristic of Ritual Space is that there’s no phrases on the board of the pillar which combines with surrounding scenery, and that is the point which differs from Conducting Space and Subsequent Space. And the characteristic of Subsequent Space is that there are phrases on the board of the pillar written according to imperial horizontal inscribed boards sometimes.

7,9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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