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 <노자> 주석은 주자성리학이 절정에 오름에 따라 그 형이상학적인 기반을 가지고 치열하게 정쟁을 벌 이는 것에 대한 반성 곧 율곡 이이의 <순언>에서 시작된다. 이후 <노자> 주석은 서계 박세당의 혹독한 성리 학 비판인 <신주도덕경>을 거쳐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예컨대 보만재 서명응의 <도덕지귀>는 내단사상⋅ 상수학 등으로, 연천 홍석주의 <정로>는 주자성리학에서 성리학을 제외하고 주자학만으로, 초원 이충익의 < 초원담로>는 유가가 아닌 도가의 시각으로 <도덕경>을 주석하였다. 이충익이 독존유술의 시대에 <노자> 주석에 유가가 아닌 도가의 시각으로 통치이데올로기를 부정했다는 것 은 경이로운 일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그 바탕이 되는 이광려의 선행작업 곧 <독노자오칙>이 있다. 이광려는 <노자> 1장⋅2장⋅39(9)장에서 필요한 구절들과 논어에서 공자의 미생고 비판 구절을 가지고 도가의 시각 으로 유학의 ‘이름’[名:文]을 비판하는 동시에 무위 등을 압축하여 설명했다. 이충익이 <노자> 전체를 도가의 시각으로 주석할 수 있던 것은 <독노자오칙>이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