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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악미술사학 [Dongak Art History]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지
  • 발행기관
    동악미술사학회 [Dongak Art History]
  • ISSN
    1598-1851
  • 간기
    반년간
  • 수록기간
    2000~2018
  • 등재여부
    KCI 등재
  • 주제분류
    예술체육 > 미술
  • 십진분류
    KDC 910 DDC 951
제22호 (6건)
No
1

雪松門中 출신 畵僧 慈雲堂 指演의 활동과 助力者

이용윤

동악미술사학회 동악미술사학 제22호 2017.12 pp.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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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조선후기 불교계에 존재했던 화승과 승려문중의 상호 관계를 해석하기 위해 慈悲畫師이자 禪德으로 칭송받았던 慈雲堂 指演을 주목해 보았다. 18세기 후반-19세기 전반 영남에서 활동한 지연은 任閑의 화풍을 계승한 화승으로 은해사와 통도사에는 그가 조성한 불화와 참여한 불사가 뚜렷하게 남아있으며 후대의 영향도 상당하였다. 이처럼 수화승이자 선덕으로 이름이 높았던 지연의 활동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 이 글에서는 그의 출신 문중인 설중문중과 연결하여 살펴보았다. 18세기 후반 지연은 道峰有聞의 제자로 雪松門中의 일원이 되었다. 四溟門中과 鞭羊門中의 법맥을 계승한 설송문중은 지연이 화승으로 은해사와 통도사에서 활동하는데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이를 반증하듯 1786년 도봉유문의 세거사찰인 백흥암 영산전 불사에서 수화승으로 두각을 나타낸 후 同門의 도움 속에 <은해사 거조암 영산회상도>를 조성하고 은해사의 산내암자인 普德窟과 彌陀庵을 창건·중수하여 은해사에 세거하는 설송문중으로써 역할을 다하였다. 한편 1792년에는 통도사에 진출하여 <통도사 괘불도>와 <통도사 삼장보살도>를 조성하면서 영남의 대표적인 수화승으로 부상하였다. 이러한 지연의 행보는 은해사 설송문중과 연결된 통도사 설송문중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통도사 불화 제작에서 주목되는 점은 지연이 문중에만 의존하지 않고 화주와 공덕주로 나서 조성비용을 마련하는 등 불사의 실질적 주체로 활동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연의 의지와 공덕은 1764년에 조성한 <통도사 괘불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1792년에 새롭게 괘불도를 제작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으며, 아울러 사명유정의 후손으로 <통도사 삼장보살도>에 진신사리를 수호하고 사찰을 중창한 사명유정을 호법신으로 그릴 수 있는 배경이 되었다.
This study focuses on Monk Jaun Jiyeon(慈雲智演), who obtained fame as a virtuous monk-painter, in an attempt to determine the nature of the relationships between monkpainters and Cians of monk-artists during the late Joseon period (1392-1910). Jiyeon(智演), who was active in Yeongnam province from the late eighteenth to early nineteenth century, inherited the painting style of his master Imhan. Both Eunhaesa Temple and Tongdosa Temple keep Buddhist paintings made by him, while some of their buildings contain traces left by him. He exerted a great influence on his followers. In the late eighteenth century, Jiyeon joined the Seolsong(雪松) Clan as a disciple of Dobongyumun(道峰有聞). Having inherited the Buddha’s teachings from the Samyeong(四溟) and Peonyang(鞭羊) Clans, the Seolsong Clan provided the basis for Jiyeon’s activities as a monk-painter at Eunhaesa and Tongdosa Temples. He came to distinguish himself as a monk-painter in his work on Yeongsanjeon Hall at Baekheungam Hermitage in 1786. At the recommendation of the same Clan, he did a Buddhist painting (The Vulture Peak Assembly) for Geojoam Hermitage at Eunhaesa Temple. He also took part in the work of building and rebuilding the Bodeokgul Grotto and Mitaam Hermitage of Eunhaesa Temple, thus fulfilling his role as a monk-painter. In 1792, he moved to Tongdosa and made a hanging painting and a painting of Three Bodhisattvas there. By then, he had become a monk-painter of Yeongnam Province. It can be said that he owed much to the assistance of the Seolsong Clan at both Eunhaesa and Tongdosa for his successful career as a monk-painter. One notable thing about his production of Buddhist paintings at Tongdosa is that he played a leading role in the construction of some buildings at the temple, raising funds for the work, without relying on the help of the Clan to which he belonged. Thanks to such efforts, he was able to start the work of making a new hanging painting for Tongdosa in 1792, in addition to the existing one made in 1764. Such a background enabled him, as a descendant of Samyeong Yujeong(四溟惟政), to portray his ancestor, who protected the genuine sarira of Sakyamuni Buddha and rebuilt the temple, as a guardian deity of Buddhism in his painting of the Three Bodhisattvas now kept at Tongdosa.

6,4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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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畵僧 일섭 佛畵의 신도상과 표현기법 - 송광사성보박물관 소장 <제존집회도>와 <치성광여래도>를 중심으로 -

최엽

동악미술사학회 동악미술사학 제22호 2017.12 pp.3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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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전하는 일섭의 불화들을 살펴보면, 대체로 전통적인 조선시대의 불화들과 차별성을 가지는 밑그림이 눈에 띠며, 능숙한 서양화법을 두드러지게 사용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본 글에서는 근현대기의 화승 일섭의 불화 중 송광사성보박물관에 소장된 <제존집회도>와 <치성광여래도>에 대해 집중적으로 살펴보았다. 그간 일섭과 그의 불교미술에 대한 선행 연구들이 있었고 근현대 불교미술을 다룬 논문들에서 부분적으로 다루어지기도 하였으나, 이 두 작품은 그 중요도에 비해 덜 알려지고 상세히 다루어진 적이 없어 이번 기회를 빌려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이러한 불화를 제작할 수 있었던 일섭의 다양한 활동영역과 기량에 대해 알아보았다. <제존집회도>와 <치성광여래도>는 각기 범종교적 존상과 다국적 인물표현을 비롯한 독특한 도상들과 전반적으로 사용된 서양화법은 물론 판화기법까지 도상과 기법에 있어 매우 특이점을 가지고 있는 불화로 그 시기성과 예술적 가치로 보아 의미 깊은 불화들이다. 이 작품들에서 보이는 다양한 기법과 도상, 그리고 그가 남긴 그의 작업일지적 성격의 『연보』의 내용을 통해 그가 불교미술 뿐 아니라 서양화와 조각, 디자인 등 다른 분야의 미술은 물론 당시 학문과 예술의 조류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김제 금산사 미륵본존의 공모입찰 때 함께 응모했던 김복진과의 영향관계도 엿보여 흥미롭다. 일섭의 <제존집회도>와 <치성광여래도>는 시대적 상황은 물론 그의 다양한 관심사와 예술관, 그리고 그것을 잘 녹여낸 그의 뛰어난 예술적 기량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 작품이라 할 수 있다.
Upon viewing Buddhist paintings made by Ilseop, one finds the underdrawing clearly differentiated from paintings by other monk-painters made during the Joseon period (1392- 1910). His works exhibit the skillful use of Western painting techniques. This study focuses on the paintings entitled the Assembly of Deities(諸尊集會圖) and Tejaprabha(熾盛光如來圖) that he produced during the modern period and which are currently kept at the Songgwangsa Museum. Though there have been studies on Ilseop and his Buddhist paintings, and various theses have dealt with his paintings, the two works mentioned above remain little known despite their importance and have never been dealt with in detail. As such, this study attempts to sheds light on them in detail and review Ilseop’s capabilities and activities as a painter. The paintings of the Assembly of Deities and Tejaprabha are important paintings as they depict unique-looking, pan-religious and multi-national figures using Western painting and engraving techniques. The diverse techniques and images displayed by the pieces and the content of his work diary reveal that he took a deep interest in not only Buddhist fine arts, but also Western paintings, sculptures, and designs, and even the trend of academic learning and arts of his time. It is interesting to see how he and Kim Bok-jin, who competed with him at the time of bidding for the commission to produce the main Maitreya Buddha of Geumsansa Temple in Gimje, influenced each other. His two paintings are among his most representative works as they exhibit his artistic skills, his interest, his perspectives as an artist, and his view of the period in which he lived.

6,4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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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西省 繁峙縣 巖山寺의 金代 <鬼子母經變相圖> 연구

황선우

동악미술사학회 동악미술사학 제22호 2017.12 pp.57-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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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山西省 繁峙縣에 위치한 巖山寺 文殊殿의 동벽에는 金代에 그려진 <鬼子母經變相圖>가 현전한다. 九子母, 訶利帝, 歡喜母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는 鬼子母는 본래 인도 간다라 지역의 민간신이었으나 이후 불교에 유입되어 아이의 출산과 보호를 관장하는 호법신 가운데 하나로 편입되었다. 중국에서는 일찍이 5세기 무렵부터 중앙아시아와 雲崗石窟 일대에서 귀자모상이 조각과 회화로 제작되었으며 다양한 문헌기록을 통해서도 귀자모가 널리 신앙되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이 벽화는 중국에서 귀자모 인연 설화를 서사의 형식으로 표현한 작품들 가운데 시기가 가장 이르며 동시에 가장많은 이야기를 도해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巖山寺 벽화가 학계에 소개된 이래 이 벽화에 관한 연구는 주로 건축 표현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방제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귀자모경변상도>의 도상을 보다 명확하게 규명하고자 하는노력은 최근에 이르러 중국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이러한 연구 성과를 토대로 본 작품의 도상을 보다 구체적으로 밝히고자 하였다. 그리고 소의 경전 및 방제를 토대로 巖山寺 <귀자모경변상도>의 도상을 면밀히 살펴본 결과 본 작품은 경전의 기본적인 내용을 따르고 있으되 보다 풍부한 내용이 도해된 것을 알 수 있었다. 특히 수월관음과 같이 관련 경전에 등장하지 않는 새로운 도상이 작품 속에 표현될 수 있었던 데에는 당대에 성행했던 통속 서사문학뿐만 아니라 보편화된 관음신앙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하였다. 이와 더불어 많은 장면을 하나의 화면 속에 표현하고 있는 본 작품은 설화의 전개에 따른 순차적인 화면구성을 보이기보다는 이야기가 일어나는 장소에 따라 관련 도상을 배치하여 유기적으로 화면을 구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巖山寺 <귀자모경변상도>는 이민족이 세운 왕조인 金代의벽화이지만 宋代의 화풍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선행 연구에서는 漢族의 복식표현, 청록산수화를 연상케 하는 배경산수의 표현 그리고 뛰어난 건축 표현에서 北宋代 회화 전통을계승하고 있음을 밝혔다. 이밖에도 인물의 상호 표현에서 北宋代 사찰 벽화와의 유사성을 확인할 수있었으며 긴 꼬리가 특징적인 구름의 형상은 동시기 南宋代 불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본 벽화는 중국에 현전하는 귀자모 관련 작품들 가운데 서사화로 표현된 가장 이른 시기의 작품이자 기존의 작품에서 찾아볼 수 없는 귀자모 도상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처럼 巖山寺 <귀자모경변상도>는 金代 사찰벽화의 일면을 파악하고 나아가 중국 귀자모 도상의 다양성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 작품으로 그 의의가 매우 크다.
This study examines a Jin Dynasty (1115-1234) Illustration of the Mother of Demons Sutra (鬼子母經變相圖) painted on the east wall of Manjusri Hall in Yanshan Monastery (巖山寺) located in Fanshi County (繁峙縣) of Shanxi Province (山西省), China. The Mother of Demons (鬼子母, Guizimu), also known as Hārītī (訶利帝), Jiuzimu (九子母), or Huanximu (歡喜母) was originally a local goddess of Ghandara but later converted into a guardian deity of Buddhism as the bestower and protector of children. The tradition of depicting the Mother of Demons can be found as early as the fifth century in Yungang Grottoes (雲崗石窟) and Central Asia. In addition, various written records also attest to the popularity of Guizimu cult in China. The Illustration of the Mother of Demons Sutra from Yanshan Monastery is especially significant in that it is the earliest representation of Guizimu in narrative format among the surviving works in China. In studying the murals of the Yanshan monastery, previous studies were largely focused on certain motifs such as architecture and landscape elements. This focus on certain pictorial elements are partly due to the severe loss of inscriptions on the east wall which have made it difficult to fully understand the painted scenes. However, recent studies by Chinese scholars have made efforts to identify individual scenes to better understand the mural as a whole. Following these recent studies, this paper aims to further investigate the mural by looking into previously overlooked scenes. Further, by comparing the painted scenes with the remaining inscriptions and scriptural sources, this paper has reaffirmed that Buddhist scripture is not the only iconographic source for the mural. In particular, the representation of Water-Moon Avalokiteśvara which does not appear in the relevant scriptures is presumed to have been influenced by the widespread belief in Avalokiteśvara as well as the vernacular narrative literature. One of the major characteristics of the Illustration of the Mother of Demons Sutra is that each scene is organically restructured as a pictorial narrative representation rather than simply following a sequential narrative. Furthermore, the painting follows the style of the Song Dynasty although it is the work of Jin Dynasty. As previous studies have mentioned, the architectural renderings, the landscape setting done in the blue-green style and the depiction Han Chinese clothing all reflect the painting style of the Song Dynasty. Stylistic similarities can also be found in the facial representations between the Yanshan Monastery mural and the Kaihua Monastery (開化寺) mural of the Northern Song Dynasty. Further, the portrayal of long tapering clouds bears a marked resemblance to the clouds depicted in Buddhist paintings of the Southern Song Dynasty. Lastly, the mural is particularly significant in that it is not only the earliest representation of the Mother of Demons in narrative format among the surviving works but also the greatest number of scenes are painted in the mural exhibiting the diverse iconography of the Mother of Demons. In sum, the Illustration of the Mother of Demons Sutra of Yanshan Monastery is a significant work of art in understanding the Buddhist mural tradition of Jin Dynasty and the diverse iconography of Guizimu in China.

7,6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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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형 복식착용 보살상의 등장과 전개 - 청담사지 자씨각 보살상을 중심으로 -

정성권

동악미술사학회 동악미술사학 제22호 2017.12 pp.9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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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은 크게 여래상과 보살상으로 구분된다. 일반적으로 여래상은 착용하고 있는 복식 이외에보관이나 장신구 등을 갖추지 않는다. 이에 반해 보살상은 화려한 보관과 천의, 영락을 비롯한 각종장신구로 신체를 치장한다. 불교미술에서 보관과 장신구를 착용한 여래상이 존재하나 우리나라에서는 크게 유행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말여초이후 여래형 복식을 착용한 보살상이 등장하고 있어 주목된다. 여래형 복식착용 보살상에 대해서는 일부 작품을 제외한 경우 구체적인 조성시기와 조성배경등이 알려지지 않았다. 본 논문에서는 고려 초 등장하는 여래형 복식착용 보살상의 제작시기와 배경등에 대해 살펴보았다. 여래형 복식착용 보살상은 크게 머리에 방형의 보개를 착용한 보살상과 그렇지 않은 보살상으로나누어진다. 본고에서는 여래형 복식을 착용 보살상을 면류관형 보개착용 석조보살상과 여래형 대의착용 석조보살상으로 분류해 고찰하였다. 면류관형 보개착용 보살상으로는 안성 매산리 석조보살입상, 논산 관촉사 석조보살입상, 부여 대조사 석조보살입상, 포천 구읍리 석조보살입상, 당진 안국사지 석조보살입상 등이 있다. 여래형 대의착용 석조보살상은 원주 매지리 석조보살입상, 우리 옛돌박물관 석조보살입상, 원주 봉산동 신선암 석조보살입상, 서울 광진구 상부암 석조보살입상, 황해도 금천군 영파리 석조보살입상, 서울 은평구 청담사지 자씨각 석조보살입상 등이 있다. 면류관형 보개착용 보살상은 고려 광종대 처음 등장한 불상이다. 이러한 형태의 보살상에 대한연구는 비교적 많이 축적되어 있다. 본문에서는 면류관형 보개착용 보살상의 조성시기와 조성배경등을 검토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여래형 대의착용 보살상의 조성시기를 유추하였다. 960년 경 조성된 안성 매산리 석조보살입상이 여래형 복식착용 보살상 중 가장 먼저 등장하는 불상이다. 본문에서는 원주 매지리 석조보살입상과 옛돌 박물관 석조보살입상의 조성시기 역시 이와 비슷한 때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였다. 원주 봉산동 신선암 석조보살입상과 광진구 상부암 석조보살입상은 조성시기를 추정할 수 있는 청양 석조삼존불입상과의 비교를 통해 10세기 후반 경에 건립된 것으로 보았다. 영파리 석조보살입상과 자씨각 석조보살입상은 서로 매우 닮은 모습이다. 이 두 불상의 조성시기는 11세기 전반기로 추정하였다. 자씨각 석조보살입상의 조성시기를 파악하는데 있어 황해도 금천군 영파리 석조보살입상의 존재가 주목되었다. 두 불상이 서 있는 장소는 개성에 진입하는 개성 북쪽과 남쪽의 교통로가 수도 진입 직전 모두 모이는 장소에 건립된 것으로 파악하였다. 이 보살상과면류관형 보개착용 보살상 등을 통해 여래형 복식착용 보살상은 중앙정부의 관심 하에 조성된 불상으로 파악하였다. 면류관형 보개착용 보살상은 10세기 중·후반 경에 유행하다 11세기 들어와 거의제작되지 않았다. 반면 여래형 대의 착용 보살상은 11세기경부터 주로 건립되었는데 그 이유는 요와의 외교관계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였다.
Buddha is the religious teacher and founder of Buddhism. Buddha statue usually wear Buddha costume which doesn't have any ornament. On the contrary, Bodhisattva statue have many ornateness. This article studied about Bodhisattva which wear Buddha costume in early Goryo dynasty. This kind of Bodhisattva divided into two type. One is the Bodhisattva that wear square holy hat. The other is the Bodhisattva which wear Buddha costume without square holy hat. The first type Bodhisattva are Ansung maesanri standing stone Bodhisattva, Nonsan Kwonchoksa standing stone Bodhisattva, Buyeo Daejosa standing stone Bodhisattva and Pocheon gueumni standing stone Bodhisattva. All of them wear Buddha costume and square hat. The second type bodhisattva are Wonju maejiri standing stone Bodhisattva, Wori stone museum standing stone Bodhisattva, Wonju bongsandong standing stone Bodhisattva. Kwangjingu Sangbuam standing stone Bodhisattva, Hwanghaedo geumcheongun yeongpari standing stone Bodhisattva and Eunpyonggu Cheongdamsaji standing stone Bodhisattva. Those two type standing stone Bodhisattva wear Buddha costume and located near important traffic routes. It means that When those Bodhisattva made, the central government support the making of Bodhisattva. Around late 10th century the first type Bodhisattva were made, after 11th century the second type Bodhisattva were made. This article studied that why wearing square hat Bodhisattva didn’t made after 11th century. This study presumed the reason. It had diplomatic relations with Liao Dynasty.

8,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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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齊 道敎 造像 硏究 - 명문과 제재 분석을 통한 지역성의 탐색 -

소현숙

동악미술사학회 동악미술사학 제22호 2017.12 pp.13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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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天統元年(565) 姜纂造老君像碑>, <武平7年(576) 孟阿妃造老君像碑>, <무평9년(578) 馬 天祥等八人造像記>, 명확한 연대를 알 수 없는 <道民大都宮主馬寄造像碑> 등 4건의 북제 도교 조상에 대한 분석을 통해 이 시기 도교 조상의 특징을 살펴본 것이다. 분석은 문자기록인 명문, 그리고 조상의 제재 등 두 방면에서 진행했다. 남북조시대 도교 조상은 대부분 섬서 일대에 집중적으로 분포한다. 그러므로 북위 멸망 이후 도교 조상은 대부분 서위 ・ 북주 영역 안에서만 조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북제에서는 文宣帝의도교 탄압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북제의 도교는 절멸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현존하는 유물을 통해 비록 소량이지만 북제 후기 낙양을 중심으로 도교 조상이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먼저 명문에 나타난 불교적 어휘에 대한 분석을 통해 낙양 일대의 불교관념을 그대로 반영하고있는 도교 조상의 존재를 확인했다. 그리고 3건의 섬서지역 도교 조상 명문과의 비교 분석을 통해 북제 도교 조상이 북위 구겸지에 의해 창안된 北天師道의 전통 속에서 제작되었음을 살펴보았다. 현존하는 북제 도교 조상이 대부분 낙양 일대에 분포하는 것은 바로 구겸지의 중심적인 활동 지역이 숭악을 중심으로 하는 낙양이었던 점과 통하는 것이라 하겠다. 북제 도교 조상은 존상이 도교인물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제재 등에서 당시 낙양을 중심으로 하는 하남지역 불교 조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북위 말기 도성 낙양을 중심으로 유행하기 시작해동위 ・ 북제시기 불교미술에서 크게 유행한 雙樹文 형식이 출현하고 있는 반면, 섬서지역 도교 조상에서 유행하는 일월 등은 출현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북제 도교 조상은 관중지역 도교 조상들과 다르며, 낙양지역 불교 조상과 강한 친연성을 가지고 있다. 결론적으로, 북제의 도교 조상은 섬서 지역의 도교 조상과 차이가 크며, 북위 구겸지 이래 낙양의 도교 신앙, 그리고 북위 낙양의 불교 신앙 및 예술 전통 속에서 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This paper examines the characteristics of Taoist sculptures in the Northern Qi(北齊) dynasty through analysis of four Taoist sculptures of this Dynasty. The analysis proceeded in two ways, inscriptions and motifs of these Taoist sculptures. Taoist sculptures in the Southern and Northern dynasties in China are mostly concentrated in the Shaanxi(陝西) province. Therefore, it is known that Taoist sculptures had been made only in the area of the Western Wei(西魏) and Northern Zhou(北周) dynasties since the fall of the Northern Wei(北魏) Dynasty. Moreover, because the Taoist repression of the Emperor Wen-Suan(文宣帝) was accomplished in the Northern Qi Dynasty, the Taoism in this area was known to had been exterminated. However, a small amount of Northern Qi Taoism remains. This shows that Taoist sculptures were made in Luoyang(洛陽) area in the late Northern Qi period. First, I analyzed the Buddhist vocabulary in the inscriptions of these Taoist sculptures, it was confirmed that the Taoist sculptures of the Northern Qi reflects the idea of Buddhism established in the Luoyang area. Secondly, comparative analyzes of the three Taoist sculptures in Shaanxi province, demonstrating that the Taoist sculptures in Northern Qi period were made in the tradition of Northern Tienshi Taoism(北天師道), which was invented by the Kou-Qianzhi(寇謙之) in the Northern Wei dynasty. Currently, most of the pieces of Taoist sculptures in Northern Qi period are distributed in the area of Luoyang because Luoyang was the central activity area of Kou-Qianzhi was active in. The Taoist sculptures of Northern Qi are very similar to the Buddhist sculptures of Hanan(河南) area at that time, except that the figure is a Taoist icon. For example, Buddhist motifs, such as the lion and censer, all appeared in the these Taoist sculptures. Especially, the appearance of the double-tree motif(雙樹文) is more so. This motif does not appear in Taoist sculptures in Shaanxi province, but it began to be prevalent in the Luoyang area of the Northern Wei dynasty, and it was very popular in the Eastern Wei(東魏) and Northen Qi dynasties. Therefore, the Taoist sculptures of Northen Qi dynasty is different from the Taoist sculptures in Shaanxi province, and it has strong affinity with Buddhist sculptures in Luoyang area. In conclusion, the Taoist sculptures of Northen Qi dynasty are very different from Taoist sculptures in Shaanxi province, and it can be said that it had been produced in Luoyang faith and art tradition since the Northern Wei dynasty.

5,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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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회소식 외

동악미술사학회

동악미술사학회 동악미술사학 제22호 2017.12 pp.154-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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