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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料와 考古學 자료로 본 백제 王都 益山’에 대한 檢證
한국전통문화대학교 한국전통문화연구소 한국전통문화연구 제9권 2011.12 pp.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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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都 益山의 세계문화유산 등재와 관련해 개최된 국제학술대회에서「사료와 고고학 자료로 본 백제 왕도 익산」題下의 논문에 대해 검증을 시도했다. 이 논문은 백제 무왕대 익산 천도가 가능하지 않다는 결론을 도출하였다. 그러나 이 논문에 대한 면밀한 검증을 통해 그 논지가 타당하지도 않을뿐 아니라 기존의 연구 성과도 제대로 공부하지 않고 작성한 논문임을 밝히게 되었다. 그 결과 사료나 고고학적 자료를 놓고 볼 때 한국의 전라북도 익산 지역은 백제의 王都였던 사실을 다시금 확인함으로써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수 있는 자격을 지녔음을 밝혔다. 세계문화유산 등재의 가장 암적인 문제는 偏見이라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었다.
Verification has been tried for the paper of the title of “Baekje‘s Capital Iksan from the View of Historical Records and Archaeological Materials “ at an international symposium regarding the registration of the ancient city of Iksan on World Cultural Heritage. This dissertation concluded that the transfer of Iksan during the period of King Mu could not be possible. But a careful investigation of it shows that such a point is not appropriate, and the author fails to thoroughly refer to existing researches. When studying from historical and archaeological records, I could surely identify the fact that Iksan, Jeonrabuk-do, Korea was clearly the capital of Baekje and which means it has a good reason for the registration on the World Cultural Heritage. And from this, we could again point out that prejudice of poorly qualified scholars is the main obstacle to the registration for the World Cultural Heritage.
백제 왕흥사의 기와 공급에 대한 일고찰 - 출토 수막새를 중심으로 -
한국전통문화대학교 한국전통문화연구소 한국전통문화연구 제9권 2011.12 pp.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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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왕흥사 사역과 가마터에서 출토된 수막새의 양상을 토대로 시간의 흐름에 따른 기와의 공급양상에 대해논하였다. 왕흥사 가마는 가장 이른 단계에 구릉의 남단부터 점유되기 시작하여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차 북편으로 이동해 가며 조업과 폐기를 반복한 양상이 확인된다. 이러한 양상은 왕흥사 사역에서 출토되는 각 유형별 수막새의 제작 및 공급양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왕흥사가 창건되는 이른 단계에는 111D형 수막새가 제작·공급되었으며, 이후 드림새의 회전성형을 특징으로 하는 111C형 수막새가 왕흥사 가마에서 제작·공급되었음을 추정하였다. 7세기 전반 이후에는 111B형·111F 형·112H형 등 소수의 수막새가 보수용 기와로 공급되었을 것으로 파악하였다. 한편, 왕흥사 창건과 대대적인 보수가 이루어졌을 시기에는 왕흥사로의 공급을 위한 전용수막새가 제작·공급되었으나, 7세기 이후부터 왕흥사의 기와 수요가 줄고 소비처가다른 곳으로 확대되면서 왕흥사 뿐 아니라 복수의 소비처를 대상으로 기와가 공급되었을 가능성을 추정하였다.
高句麗 · 契丹 關係史 - 4세기 말기에서 6세기 후기까지 -
한국전통문화대학교 한국전통문화연구소 한국전통문화연구 제9권 2011.12 pp.36-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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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契丹이 동몽골, 즉 遼河의 서쪽 상류인 西拉木倫河 유역에서 정치적 집단세력으로 서 史上에 등장하는 4세기 말기부터 479년 高句麗의 契丹 侵攻을 계기로 형성된 ‘勿于契丹’이 553년 北齊의 공격으 로 해체된 이후 거란의 지배권을 둘러싸고 高句麗와 突厥이 충돌하는 6세기 후반까지 약 200여 연간의 高句麗 와 契丹의 關係史 에 관한 고찰이다. 제1장은 契丹의 高句麗 侵入과 그에 대응한 廣開土王의 碑麗 親征에 관한 것이다. 거란과 고구 려의 관계는 378 년(小獸林王18년) 가을에 거란이 고구려의 北邊을 침입하여 8部落을 함락하고 邊境民을 포로로 잡아가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에 대한 대응으로 고구려는 391년(廣開土王元年)에 九月에 고구려가 거란을 토벌 하여 거란인 500명 과 함께 이전에 거란에게 포로로 잡혀간 1만 여 명을 데리고 귀환한다. 이 사건은 <廣開土王碑 文>에 새겨져 있는 永樂5年, 즉 395년에 廣開土王이 碑麗를 친정하여 그 부락 600~700營을 격파하고 수많은 소, 말, 양 등 가축을 전리품으로 몰고 귀환하는 사건과 동일한 사건으로서 연대가 다르게 표기되었던 것이다. 碑麗 는 5세기 중반에 형성 된 ‘契丹古八部聯盟’의 하나인 『魏書』와 『遼史』에 보이는 匹黎部로서, 『魏書』와 『通典 』에 보이는 匹黎爾部, 匹 絜部, 匹黎尒國과 동일한 세력이다. 그리고 이 세력은 『魏書』「勿吉傳」에 의하면 勿吉과 이 웃하고 있었다는 기재되 어 있는데, 필자는 이 기사를 중요 전거로 삼아서, 碑麗=匹黎尒國란 세력은 廣開土王이 征討에 나선 4세기 말경에 는 지금의 遼河의 동쪽 지류로서 吉林省 서부, 遼源 부근의 哈達嶺에서 發源하는 東遼河 유역에 서 유목생활을 영 위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고 추론하였다. 제2장은 長壽王의 契丹 侵攻과 그로 말미암아 발생한 ‘勿于契丹’의 形成과 解體에 관한 내용이 다. 5세기 초반 부터 契丹部는 北燕 및 北魏와의 對外交易을 통하여 정치·경제적으로 크게 성장한 契丹部는 5 세기 중반 경에 이 르러 그 주변의 7部가 연맹하여 ‘契丹古八部聯盟’을 형성하였다. 이후 이 聯盟體는 北魏와의 활 발한 교역을 통해 서 더욱 세력을 신장함으로써, 당시 北魏를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인정을 받게 되 었다. 한편 北魏가 439년에 華北을 통일함으로써, 동북아시아의 새로운 강자로 등장하였다. 이에 북위를 둘러싸고 동방의 高句麗, 북 방의 柔然, 서방의 吐谷渾, 남방의 南朝는 環狀的으로 연결하여 공동으로 북위에 대처하려고 하 였다. 고구려는 북 방 유목국가인 유연과의 연합을 통하여 북위를 견제함과 아울러 당시 新興한 勿吉이 고구려의 北邊을 위협하는 상 황을 타개하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고구려는 유연과 연합하여 북위의 세력권에 들어간 거란 북 방의 地豆于를 분할 하려고 하였다. 이에 479년에 고구려 長壽王은 동몽골에 군대를 파견하여 地豆于에 이어 契丹 을 공격하였다. 그 결과 ‘契丹古八部聯盟’은 해체되고, 일부 거란 세력, 즉 族長 莫賀弗 勿于가 거느리는 약 1만 명 집단, 즉‘ 勿于契 丹’은 大陵河 동방지대, 즉 遼河 中流 西部地帶로 남하하였다. 북위는 이들을 보호하여 그 세력 권에 두고 이들을 통해서 고구려를 견제하려고 하였다. 이후 契丹史는 553년에 北齊 文宣帝의 ‘勿于契丹’에 대한 親征으로 ‘勿于 契丹’이 해체될 때까지 약 70여 년 동안 遼河 중류 서부지대의‘ 勿于契丹’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제3장은 6세기 후반 突厥과 高句麗의 衝突과 그에 따른 일부 契丹 세력이 돌궐의 지배를 거부하 고 고구려 영내 로 이동하여 寄託한 사건 등에 관한 고찰이다. 552년 柔然을 격멸하고 몽골리아의 새로운 覇者 로 등장한 突厥第 一可汗國(552~630)은 제3대 木汗可汗의 치세인 555~557년경에 동몽골의 契丹과 庫莫奚 등을 정복하고 遼河를 건너서 고구려를 침공하였다. 이때 돌궐군은 고구려의 新城과 白巖城을 공격 하였지만, 고구려 장군 高紇의 분전 으로 패하여 퇴각하였다. 그리고 『隋書』「突厥傳」에 기재되어 있는 隋文帝의 詔書 중에 ‘往 年에 利稽察이 高句麗 와 靺鞨에게 패했다’는 기사가 있는데, 이것은 돌궐군이 또다시 고구려와 말갈의 연합군과 전쟁 을 벌여서 패했다는 사실을 전해주는 것이다. 이 詔書가 작성된 시기는 582년(開皇2년, 平原王24년) 十二月이기 때 문에, 詔書 중의 ‘往 年’은 581년(開皇元년, 平原王23년)을 포함한 그 이전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555~557년경에 거란의 대부분은 돌궐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그러나 『隋書』「契丹傳」에 의하면, 그와 함께 상당수의 거란인 들이 돌궐의 지배를 거부 하고 그 故地를 떠나서 고구려 영내로 들어가서 寄託했음을 알 수 있고, 『北齊書』「高保寧傳 」 및 『隋書』「陰壽傳」 에 의하면, 일부 거란인들은 北周가 北齊를 정복한 577년 이후에도 북제의 舊臣인 營州刺史 高 保寧을 도와서 북 주에 대항하고 있었다. 따라서 555~557년경에 거란의 대부분은 돌궐의 지배하에 들어갔지만, 6 세기 말에 老哈河 유역에서 契丹 ‘十部聯盟’이 형성될 때까지, 거란의 일부는 그 故地를 떠나서 高句麗에 寄託하 였고, 다른 일부는 北齊 營州刺史 高寶寧과 협력하여 北周에 대항하는 등 독자적인 행동을 취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本稿是從四世紀末期到六世紀後期關于高句麗與契丹 的關係史之一篇硏究論文. 第一章考察了在四世紀末期契丹侵入高句麗和高句麗 廣開土王親征契丹(碑麗). 依據三國史記, 高句麗與契丹 的交涉開始了, 從在小獸林王十八年(378年)秋季, 契丹侵 入高句麗北邊, 陷落八部落而捕捉多數的高句麗人. 以其 對應, 在廣開土王元年(391年), 高句麗討伐契丹, 捕捉契 丹人五百人, 而帶來從前契丹捕捉一萬餘高句麗人歸還 了. 把這個事件現在學界大槪認爲同一與在廣開土王碑文 被彫刻的一個事件, 就是永樂五年(395年)廣開土王親征 了碑麗的事件. 當時廣開土王擊破了其部落六百或七百 營, 而帶來了牛馬羊等畜群的, 但事件發生時機的記載是兩者不一致的. 碑麗是在五世 紀中以契丹部中心形成的‘契丹古八部聯盟’中的一個集 團, 他們就是在魏書契丹傳和遼史的‘匹黎部’, 而魏書本 紀和通典的‘匹黎爾部’·‘匹絜部’·‘匹黎尒國’. 依據 魏書勿吉傳, 他們在勿吉的傍邊, 在廣開土王征討他們的 時候的四世紀末葉(391年或395年), 他們在東遼河流域營 爲了遊牧活動的可能性很大. 第二章考察了在五世紀後半高句麗長壽王侵攻契丹和 由于這個事件在大陵河東部發生的‘勿于契丹’的形成以 及解體. 東蒙古 西剌木倫河流域的契丹部, 因爲從五世紀 初期與北燕以及北魏展開交易, 其勢力很大成長了. 到五 世紀後半, 以契丹部爲中心的其周邊的七部結成聯盟, 形 成了‘契丹古八部聯盟’. 以後契丹與北魏的關係更加密接 的. 另一方面, 在太武帝太延五年(439年), 由于北魏統一 了中國華北, 以東北亞洲的新强者登場了, 所以其周邊諸 國的高句麗·柔然·吐谷渾以及南朝(劉宋·南齊)對北魏 的侵攻担懮了. 而他們四國一起構築聯合的勢力, 要對處 北魏的威脅. 高句麗與其北方的柔然瓜分在北魏的勢力下 的地豆于, 對他們要削減北魏的威脅. 終于長壽王六十七 年(479年), 高句麗軍進擊東蒙古, 攻擊了地豆于以及其南 方的契丹, 所以契丹古八部聯盟解體了. 然而一部契丹集團, 卽以莫賀弗勿于爲首的一萬餘人集 團‘( 勿于契丹’), 南下了在現在的大陵河東部地帶. 北魏把 他們要使用對高句麗的防壁, 保護了他們. 以後到六世紀 中盤(553年)北齊文宣帝攻破‘勿于契丹’, 契丹的歷史以 ‘勿于契丹爲中心展開的. 而我判斷‘勿于契丹’的駐牧地 的大陵河東部地帶, 恐怕可能比定現在的遼河中流西部地 帶. 第三章考察了在六世紀後半突厥與高句麗的衝突, 從 而一部契丹集團拒否突厥的支配, 移動于高句麗領內而 寄託高句麗的. 在高句麗陽原王八年(552年), 突厥擊滅柔 然, 以新蒙古遊牧世界的覇者登場了. 其第三代木汗可汗 在陽原王十一年(555年)~十四年(557年)頃, 征服東蒙古 的契丹以及庫莫奚等, 終于渡遼河而侵攻了高句麗. 然而 依據三國史記, 在新城和白巖城, 以高句麗軍擊破突厥軍, 突厥不能不退却了. 而隋書突厥傳有‘往年利稽察大爲高 麗·靺鞨所破’之隋文帝的詔書, 筆者論證了, 這場突厥 軍與高句麗·靺鞨軍的衝突發生了在五八一年以前, 突厥在六世紀中葉進出東蒙古, 而大部份的契丹部落下 落了于突厥的支配. 然而依據隋書契丹傳, 在這個時候不 小的契丹人拒否突厥的支配, 而移動到高句麗的領內, 寄 託了高句麗朝廷. 另一方面, 依據北齊書高保寧傳和隋 書陰壽傳, 也有另一部契丹勢力, 他們北周征服北齊的 五七七年以後, 幇助北齊的營州刺史高保寧, 繼續抵抗北 周了. 總之, 從五五三年, 北齊文宣帝親征大陵河東方地 帶(遼河中流西部地帶)駐牧的‘勿于契丹’, 到六世紀末期, 在老哈河流域被形成的‘契丹十部聯盟’大部份失陷了于 突厥的支配下, 一部分移動于高句麗領內而寄託了于高 句麗, 另一部分形成獨自勢力, 與北齊營州刺史高保寧協 力, 而抵抗北周了.
6,100원
본 연구는 중층건물 중 2층 마루가 형성되어 있는 평면 공간구성에서 계단의 위치와 의장적 변화에 관한 연구이 다. 석조계단은 목조계단에 비해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풍부한 유구들이 남아있어 건물양식 및 시대를 판단하 는 하나의 자료로써 사용되고 있다. 목조계단은 재료 내구성이 약하여 교체 시기가 빠르고, 원형에 대한 자료가 부 족하여 그동안에 연구가 미비하였다. 목조계단은 중층건축에서 2층으로 오르기 위해 설치되는 기능적인 요소로 그 평면구성 및 건물 기능에 따라 다양 한 형태가 나타나고, 의례 및 동선에 따라 계단위치가 결정되는데, 특히 의례를 동선보다 중요시 여겨 계단위치를 결 정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좁은 공간에서 계단을 설치하기 위하여 어떤 구조 수법이 나타나는가를 분석해 보았다. 본 연구를 통하여 난간하엽은 초기에는 형태가 크고, 다양하며 세부초각이 정교하게 되어 있는데 반하여 18C이 후 팔달문부터는 갈수록 크기도 작아지면서, 정형화 되어가는 것을 찾아 볼 수 있었다. 또한 계단난간 안상의 풍혈 도 초기에는 보이지만 후기로 갈수록 음각형태로 변화되고 있다. 화성성역의궤의 편찬으로 이후 조성되는 난간은 세부수법 양식이 정형화 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This study is about the wooden staircase, which is installed at a flat space on the 2ndfloor among medium-rise buildings, which has floor. The stone staircase is used as one of the historical materials for judging architectural style or age, because there are more abundantobjects of historical significance than wooden staircase from The Period of three States to Chosun Dynasty. There has been lack of studies on wooden staircase, because there have not been enough information regarding original from due to a weak durability. The wooden staircase is a basic element to climb to 2nd floor in the middle rise building construction and the forms of wooded staircase differs according to structures of flat space and functions of building. In addition, the position of wooden staircase is also determined by a certain ceremony or moving line and it is usually focused on a certain ceremony rather than moving line. In this study, we have investigated the method of installing staircase at a narrow space by analyzing various structural techniques. Through this study, he size of lower part of rail was big and diversified with a sophisticated detailed carvings at the beginning, but those have started to become smaller and standardize from 18c Paldalmoon(gate). Also the elephant shaped Poonghyul(air hole) of the staircase railings was existing, but latterly it changed to be engraved. (It can be identified) After the compilation of the Hwaseong songyouk eugye(building techniques and methods of the Hwaseong castle), the detailed techniques of the construction of railings has become standardized.
18世紀 古地圖로 살펴 본 朝鮮時代 官衙樓의 立地에 관한 硏究
한국전통문화대학교 한국전통문화연구소 한국전통문화연구 제9권 2011.12 pp.9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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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18세기 조선의 고문헌과 고지도의 기록을 통하여 당시 관아 루의 입지를 연구하는데 목적이 있다. 현 재 남아있는 관아 루의 개체 수는 통계를 내어 분류하기엔 그 개체수가 너무 적고 남아 있는 것 또한 최근 들어 복 원 된 것이거나 그 자리가 옮겨진 것이 많기 때문에 현존하는 관아 루로 입지 특성을 연구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 러나 본 논문에서는 18세기 지리서인 여지도서의 조선8개도 부·목 지역의 관아 루의 문헌상 위치를 조사하고 18 세기 고지도인 여지도와 해동지도를 통해 그 위치를 확인하였다. 이를 토대로 주변 자연 요건과 객사와의 관계를 조사하여 입지적 특성을 분류하고 객사 건물과의 연관성 및 입지 요인을 밝혀 보고자 하였다. 그 결과 관아 루의 입 지를 7가지 유형으로 분류 할 수 있었고, 관아 루의 입지와 주변 자연경관의 관계가 밀접했음을 알 수 있었다. 고려시대와는 다르게 조선시대의 객사는 접대 및 향연의 기능이 다소 약화되어 그 해결방안으로 누각을 세웠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관아시설의 누각 건축은 정자 건축과 더불어 조선시대 선조들의 풍류를 엿볼 수 있 는 중요한 건축물이다. 비록 고지도가 회화 형식이라 정확도 면에 있어서 미진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관아 건축 연 구에 있어서 하나의 연구 방향을 제시하는 의의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This study aimed to examine the location of Gwanaru from old documents and maps in the 18th century Joseon. It is hard to figure out the exact number of remaining Gwanbangru because they are too few, and even remaining ones are those recently restored or relocated that make it difficult to study geographical characteristics of Gwanbangru.. This study investigated documentary location of Gwanbangru in towns and districts of 8 counties in Joseon with reference to Yeojidoseo, a 18th century geographical book. Then, their locations were double-checked from Yeojido and Haedongjido, two old maps in the 18th century. Based on it, it investigated the relation between surrounding environmental conditions and official inn to classify geographical characteristics, and finally attempted to figure out the relevance between official inn building and geographical condition. Different to the Goryeo period, reception and entertainment function of the official inn in Joseon was slightly weakened. Thus, a pavilion seems to be built to complement it. Accordingly, together with pavilion (gazebo building), the pavilion building in the public office is an important object in understanding the entertainment of ancestors in Joseon. Although old maps lack accuracy for their painted type, this study is expected to suggest a plausible research theme for the study of public building construction.
고비-알타이 아이막의 히르기수르 검토 - 2009~2010 한·몽 공동조사 결과를 중심으로 -
한국전통문화대학교 한국전통문화연구소 한국전통문화연구 제9권 2011.12 pp.108-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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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문화재연구소와 몽골 과학아카데미 고고학연구소는 2009년부터 공동으로 고비-알타이 아이막의 고고유적 지표조사를 실시하고 있으며, 본고에서는 조사 유구 중 청동기시대~초기 철기시대의 대표적인 유구 형식인 히르기 수르를 대상으로 그 분포상황과 형식 검토를 시도하였다. 10기 이상의 히르기수르가 분포한 유적은 모두 6개 유적으로 솜 중심지에서 10㎞ 단위로 확인된다. 이후 시대의 무덤 형식이 계속 확인되어 묘역으로 기능이 계속 유지되고 정주하는 세력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2기만 확인된 경우는 솜 중심지에서 일정한 거리에 집중적으로 분포하는 경향이 있으며, 모두 25개 유적으로 이후 시대의 무덤 형식이 계속 만들어진 유적은 2개소이다. 그 외 히르기수르만 확인된 경우는 19개 유적에 달해 단기간, 혹은 소수 의 집단이 정주했음을 알 수 있다. 형식 검토를 통해 원형 적석부와 그 외곽에 방형 또는 원형 경계석렬이 설치됨을 알 수 있으나, 경계석렬이 없는 형식도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제사유구인 순장묘는 경계석렬 외곽으로 일직선으로 시설된 경우가 일반적이며 배장 묘는 원형 또는 호형을 그리며 구축되었고, 경계석렬 상에는 제사유구나 선돌 등이 시설되었다.
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in Korea and Institute of Archaeology, Mongolian Academy of Sciences, has conducted surface surveys to the archeological site at Gobi- Altai Aimac since 2009. This essay has tried to determine the spread and forms of the Khirigssur, a major form of features prevalent from the bronze age to the early iron age There were 6 Sites with 10 or more Khirigssurs and they were identified at a radius of 10 kilometers from the central area of Sum. Other forms of tombs from subsequent periods continue to be identified, and their function as tombs were still maintained, letting it be known that a settlement had been there. In cases where only one or two Khirigssurs were identified, they were concentrated at a certain distance from the central area sum, totalling 25 sites, while only two of them were maintained in the form of tombs in subsequent periods. The remaining Khirigssur we were able to confirm were 19, which implied that short period or small groups had settled there. By examining their form, we were able to know the a form of Khirigssur with no line of boundary stone. These were mostly composed in square or circular shapes. Tombs practiced to bury the living with the dead were generally built in a straight line outside the boundary stones, while arounded tombs were built in a circular or arced shape. The sites of ancestral rites, monoliths, tombs that buried the living with the dead were confirmed to be built on the boundary stone line itself. Examination of the spread and form of the Khirigssur was attempted as stated in the above, and these attempts will be able to be used subsequently as data for comparative studies on Mongolian ru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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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에서는 한강변에 남아있는 초기 백제시기의 토축 성곽인 풍납토성에서 발굴된 화재주거지 내 출토된 탄 화유기물 종분석을 실시하였다. 주거지 내 탄화유기물에 대해 전수조사(총 204점)하였으며 광학현미경과 전자현미 경을 사용하여 분석하였다. 분석결과, 총 6종이 식별되었다. 탄화목은 참나무과 상수리나무아속 상수리나무류 147 점, 참나무과 상수리나무아속 졸참나무류 39점, 소나무과 소나무속 소나무류 2점, 가래나무과 가래나무속 2점, 옻 나무과 옻나무속 2점, 초본류로 추정되는 유기물(2점)은 벼과 대나무아과로 확인되었다. 시료 10점은 매우 작아 단 면을 확인할 수 없거나 토양화가 진행되어 표층만 남아있어 식별이 불가능하였다. 본 분석에서 밝혀진 탄화목 수종은 주로 상수리나무아속(91%)으로 분석되었으며 지붕재료로 추정된 초본류는 대 나무아과로 확인되었다. 분석 결과, 낙엽성 참나무과가 자생한 것으로 보아 유적이 형성된 시기는 소나무가 번성하 고 있는 현재의 기후보다 다소 한랭하고 습윤한 기후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This study analyzed the species of 204 carbonization organic of fired dwelling excavated from the Pungnaptoseong, Baekje. Many charcoals and herbaceous plants of roofing material distinguished from fired dwelling. Microscopic features were observed with an stereoscopic microscope and SEM(Scanning Electron Microscope). Total of 6 species were found; 91% of Lepidobalanus , 1% of hard pine(Diploxylon), 1% of Juglans spp., 1% of Rhus spp and 1% of bamboo. However the 10 of charcoals could not analyzed since samples are very small or decay. Most of species from analysis identified oak tree(Lepidobalanus ) and herbaceous plant as the bamboo. Species composition indicates that the climate of central Korean peninsula at around Baekje period was damp and cool con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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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화재로 훼손된 숭례문의 복구를 위하여 단청 복원 시 사용하고자하는 천연안료에 대한 안정성 및 보존 성을 검증하기 위한 연구이다. 내후성 및 내공해성 실험을 통해 천연안료의 내구성을 알아보고, 현재 문화재에 적용 하여 사용 중인 합성안료 및 합성 교착제와의 내구성 비교를 통해 숭례문 단청 복원에 적합한 재료 선정에 참고하 고자 한다. 실험 대상 시료로는 숭례문 복구단에서 사전 조사를 통해 확보한 천연안료 및 아교와, 대조군 시료로 국 내에서 통용되고 있는 합성안료와 합성 교착제로 시편을 제작하였으며, 실험으로는 촉진내후성시험기와 가스부식 시험기를 사용하였다. 내구성 평가를 위한 측정으로는 색차 측정 및 현미경 관찰을 실시하였다. 실험결과, 내후성 실험에서는 전반적으로 합성안료가 천연안료에 비해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으나, 천연안료 중 적색 계열을 제외한 나머지 안료에서 일부 변색 정도가 낮거나, 물리적 상태가 양호한 종류가 있었다. 내공해성 실험에서는 전반적으로 천연안료가 합성안료와 색 변화 정도가 비슷하거나 더 안정적인 것으로 조사되었으며 특히 일본안료가 내공해성이 우수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This study investigated the stability and conservative property of natural pigments and which are using for Sungreymun Dancheong conservation. The material durability examined through weather resistance and pollution resistance of natural pigments with animal glue, compared with that of synthetic materials which were applied on the cultural properties at the present. Furthermore, this examination is going to be referred for Sungreymun Dancheong conservation. The samples of natural pigments were collected from T,F, team of Sungreymun, and the synthetic samples as controls were made. All the samples were accelerated aged with artificial weathering test and gas-corrosion test. The colour differences and microscope examination were measured for the durability. As a result, the synthetic pigments are more stable than natural pigments. However, there was a kind of natural pigments had lower color difference except red pigment and stable of physical state which of compared with synthetic pigments. On the other hands, as a result of pollution resistance examination, natural pigments had a lower color difference than synthetic pigments, in particular japanese pigments had been seen unstable.
사찰벽화 보존실태 조사연구 - 충청도 지역 사찰벽화를 중심으로 -
한국전통문화대학교 한국전통문화연구소 한국전통문화연구 제9권 2011.12 pp.156-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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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충청지역에 사찰 중 공주 마곡사, 논산 쌍계사, 청원 월리사를 대상으로 주요 건축물 내 벽화의 손상상 태 및 보존 환경을 조사함으로써 벽화의 보존실태를 고찰해 보고자 하였다. 환경조사를 위해 온·습도 및 자외선량, 조도량을 측정하였고. 육안조사 및 현미경관찰로 물리적 손상상태를 조사 및 기록하였다. 또한 채색층 색도를 측정 하여 명도 및 채도의 비교를 통해 광학적 손상상태를 분석 하였다. 온·습도 환경은 건물 내부가 고습하고 내·외 부의 온도 편차가 심한 환경으로 조사되었으며 특히 마곡사 대광보전의 경우 외부 벽화에 대한 자외선 및 조도량이 과다하여 전반적으로 벽화에 직·간접적인 손상이 발생할 것으로 판단되었다. 손상상태 조사 결과 벽화의 여러 손 상 유형 중 균열, 박리·박락 및 안료의 변·퇴색 손상이 가장 많이 발생하였고, 색도 측정 결과 북측면 벽화의 손 상이 동, 서측면 벽화에 비해 좀 더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번 조사를 통해 현재 국내의 다수의 비지정 벽화 문화 재 보존 실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향후 벽화 문화재 보존을 위해서는 이러한 기초 조사에 대한 체계적이고 통일적인 국내 기준을 마련하여 지속적으로 수행되어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금번 조사 결과 조사대상 사찰벽화의 보존실태가 양호하지 못한 결과를 확인 할 수 있었으며, 이는 향후 국내 다 수의 사찰벽화 문화재의 보존을 위해서 이러한 기초 조사에 대한 체계적인 기준을 마련하고 관련 연구가 지속적으 로 수행되어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In the past, there was little awareness of the fact that Buddhist Mural paintings are artefacts for conservation and management in Korea. At present, it was incomplete that understanding the current state and investigating condition of Buddhist Mural painting's conservation. Therefore, this study discussed the problem and conservation plan for a long-range conservation of Buddhist Mural painting. They carried out some research into conservation environment Buddhist Mural paintings in Magoksa, Ssanggyesa, Wollisa out of Chungcheongdo's Temples The item of investigation about conservation environment is deterioration main factor: temperature, relative humidity, light. And it measured Thermo-humidity change for internal and external space environment in Temple and illuminance and ultraviolet for outside mural painting during a day. The method of investigating murals' condition was macrography and micrography by portable microscope and naked eyes. Damage type recorded to diagram and measuring the degree of damage by grouping. Also, it measured chromaticity and analyzed the pigments condition by comparison with brightness and chroma. The conservation environments for Buddhist Murals was high humidity and variable thermo-humidity deviation in internal-external space. It is too much ultraviolet and illuminance for outside Murals. Overall, its environment bring about deterioration of murals to direct or indirect. Most Buddhist mural paintings have a lot of cracks, exfoliations, discoloration. According to this result, northern murals are deteriorated than easthern and westhern murals. It is verified that most Buddhist mural paintings were in bad condition. Buddhist mural painting needed to more research into a field conservation plan on the basis of this res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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