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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베리아연구 [SIBERIAN STUDIES]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지
  • 발행기관
    배재대학교 한국-시베리아센터 [PAICHAI UNIVERSITY KOREAN-SIBERIAN CENTER]
  • pISSN
    1975-0145
  • 간기
    반년간
  • 수록기간
    1996 ~ 2020
  • 주제분류
    사회과학 > 기타사회과학
  • 십진분류
    KDC 309 DDC 306
제12집 제2호 (6건)
No
1

시베리아 돌날석기 문화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한반도 자갈돌석기 전통의 연속성

이헌종, 임현수

배재대학교 한국-시베리아센터 한국시베리아연구 제12집 제2호 2008.12 pp.1-29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최근 시베리아에서는 지난 20여 년간의 돌날석기 문화연구 결과 까라봄 문화와 까라꼴 문화가 동시에 후기구석기시대의 시작단계에서 나타나게 되었다. 까라봄 문화은 돌날석기 문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까라꼴 문화는 돌날석기 문화 기반위에 세형돌날 문화가 동시에 나타나는 양상을 보인다는 점이다. 이것은 기존의 석기문화에 대한 문화연속성에 대한 틀을 바꾸는 새로운 개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자갈돌석기 전통을 근간으로 하는 석기 문화가 후기구석기시대 중기까지 이어진다. 시베리아 기원의 돌날석기 문화는 우리나라 자갈돌석기 전통의 유적들 가운데 돌날석기 문화 기반의 양상이 공반 되는 양상이 보인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자갈돌석기 전통이 중기구석기시대로 부터 계승되면서 후기구석기시대에 정착되었을 뿐 아니라 그와 더불어 돌날석기 문화의 환경의 영향을 함께 받았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후기구석기시대에는 자갈돌석기 전통의 유적들이 한반도에 남아있을 때 외래로부터 돌날석기 문화가 들어와 정착했으며, 돌날석기 문화가 확산되는 시점에 세형돌날 문화가 나타나는 다양한 문화양상이 전개되었다.

Recently Kara-Bom and Karakol culture appeared at the same time of the first stage of Upper Paleolithic in Siberia at the result of the 20 years research. Kara-Bom culture is based on the blade technique and Karakol culture is characterized blade and microblade technique. This is new concept to understand the chronology of the Upper Paleolithic in Northeast Asia. Pebble Tool tradition persisted middle Upper Paleolithic in Korea. Altai origin's Blade tool culture had effected to the paleolithic sites of Pebble Tool tradition. It means that Pebble Tool tradition was persisted from Middle Paleolithic of Northeast Asia and effected from the cultural environment of the Blade tool culture in contiguous territories. Blade Tool culture was spreaded and fixed, and co-existed with Pebble Tool tradition and Microblade Culture from 30ka B. P. to 25ka i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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쁘리바이칼 지역의 신석기문화

정석배

배재대학교 한국-시베리아센터 한국시베리아연구 제12집 제2호 2008.12 pp.29-89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쁘리바이칼 지역의 신석기문화는 원저 토기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동쪽의 아무르 강 유역의 신석기문화에는 토기가 모두 평저인 점을 감안하면 이는 매우 특징적인 현상이라 하겠다. 이와 관련하여 한 때 한반도의 신석기시대 빗살무늬토기의 기원지로 쁘리바이칼 지역의 세로보 문화가 지목되기도 하였으나, 지금은 연대의 차이, 토기에 보이는 여러 요소들의 차이 등에 의해 더 이상 주장되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쁘리바이칼 지역의 고고학은 한반도의 고고학을 북방유라시아대륙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하기 위해 그 연구가 반드시 필요한 지역이라 하겠다. 일찍이 A. P. 오끌라드니꼬프는 쁘리바이칼 지역의 선사문화를 후기 구석기시대(중석기시대), 이른 신석기시대(힌스끼 단계), 이사꼬보 단계, 세로보 단계, 끼또이 단계, 글라스꼬보 단계, 쉬베라 단계로 나누고, 이사꼬보 단계는 기원전 4천년기, 세로보 단계는 기원전 3천년기, 끼또이 단계는 기원전 3천년기 후반~기원전 2천년기초로 각각 편년하여, 이 지역의 신석기문화가 이사꼬보, 세로보, 끼또이 순서로 변화해 나가는 것으로 파악한 바 있다. 하지만 오늘날 절대연대 자료의 축적과 함께 쁘리바이칼 지역의 신석기문화는 끼또이, 이사꼬보, 세로보라는 순서로 변화한 것으로, 또한 끼또이 문화는 가장 늦은 세로보 단계까지 공존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으며, 절대연대도 끼또이 문화는 기원전 7천년기 후반~기원전 2천년기 초, 이사꼬보 문화는 기원전 6천년기 초~기원전 5천년기 전반, 세로보 문화는 기원전 5천년기 후반~기원전 2천년기로 각 편년되고 있는 실정이다. 쁘리바이칼 지역의 신석기문화들은 서로 구분되는 뚜렷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 끼또이 문화는 녹옥으로 만든 마제석부, 청람석 혹은 점판암질 편암으로 만든 양 끝이 버섯 모양으로 되어 있는 결합식 낚시바늘 끈을 연결하는 부위에 구멍을 내놓은 , 골제 작살, 골제 인물형 표현물, 무덤에 보이는 붉은 색은 황토 등이, 이사꼬보 문화는 장란형 혹은 포탄형에 가까운 토기, 암회색의 편암으로 만든 석기류, 석인과 뼈를 결합하여 만든 결합식 창과 칼 등이, 세로보 문화에는 무덤의 위를 고리 모양으로 판석으로 덮은 점, 석인 결합식 창, 활, 화살촉, 작살, 물고기 모형 등이 각각 특징적이었다. 유물들의 제작방법 혹은 기능에 대한 A. P. 오끌라드니꼬프의 추론과 민족지적 연구 결과들, 예를 들어, 이사꼬보 문화의 토기는 땅을 파서 만든 틀에서 만들었을 것이라는, 세로보 문화의 물고기 모형은 어로에서 미끼로 사용되었을 것이라는, ‘귀’가 달린 토기 중에서 작은 것들은 연기를 피워 해충을 쫒는 데 사용되었을 것이라는 등의 의견은 다른 지역에서 출토되는 유물들의 기능 추정에도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 생각한다. 쁘리바이칼 지역의 신석기문화들은, 비록 쁘리바이칼 지역과 한반도의 관련성 문제가 아직 구명될 수 없다하더라도, 몇몇 유사한 문화요소들과 쁘리바이칼 지역 신석기문화들의 내용 그 자체로 인해, 우리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할 것이다.

The characteristic of Neolithic cultures in Baikal region is pottery with spherical bottom. It’s very special if it is remembered that in Neolith of Amur region in the east all vessels were flat-bottomed. In view of this fact, earlier there was an intended theory that the Neolithic pottery with pectinate ornamental pattern in Korean peninsula descends from Serovo culture of Baikal region. But now this supposition doesn’t advance because of differences in chronology and elements of vessels. In spite of this, we have to study the archaeology of Baikal region to understand the Korean archaeology in relation to Northern Eurasia. A. P. Okladnikov divided prae-historical cultures in Baikal region into late Paleolithic (Mesolithic), early Neolithic (Chin stage), Isakovo stage, Serovo stage, Kitoi stage, Glazkovo stage and Shivera stage and dated them so: Isakovo stage IV millennium B.C., Serovo stage III millenium B.C., Kitoi stage the latter half of III millennium B.C to the beginning of II millenium B.C. Thus, he supposed that on that territory the Neolithic cultures replaced in series: Isakovo, Serovo, Kitoi cultures. However, recently thanks to accumulation of absolute dates is offered the other series, namely Kitoi, Isakovo, Serovo. Besides, the Kitoi culture coexisted with the latest Serovo culture. The absolute dates determine otherwise for Kitoi culture, from VII millennium B.C. to the beginning of II millennium B.C., Isakovo culture, from the beginning of VI millennium B.C. to the first half of V millennium B.C, Serovo culture, from the latter half of V millenium B.C. to II millennium B.C. The Neolithic cultures of Baikal region differ neatly, e.g. for Kitoi culture are characteristic adzes from green jade, composite fish hooks in the form of little shanks with fungi form end, bone harpoons having a hole to joint it to the shaft, bone antroph-amorphous images, use of ochre in graves; for Isakovo culture . egg-shaped vessels, stone tools from dark-grey slate, composite spears and knifes from plates and bone; for Serovo culture . stones put over the grave in the shape of a ring, composite spears, bows, arrow-heads, harpoons, stone imaged of fish and others. Suppositions and results of ethnographic studies of A. P. Okladnikov about methods of production or destination of artifacts (e. g., manufacture of Isakovo vessels in frame of a pit, utilization of fish images as a bate in Serovo culture, utilization of little vessels with "ears" for smoke puffing to scare away insects) help us to understand destination of artifacts from other regions, too. Although the questions of correlation of Baikal region and the Korean peninsula aren't solved, some analogical elements and the content of the Neolithic cultures suffice to attract our atten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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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부랴트, 야쿠트족 공동 작업의 관습 비교(19세기 관습법 중심으로)

원석범

배재대학교 한국-시베리아센터 한국시베리아연구 제12집 제2호 2008.12 pp.91-114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러시아의 시베리아 점령이 시작된 후 이백년이 더 지난 19세기에 새로운 생활 조건, 새로운 구성원과 상업의 발전 등의 영향 하에서 시베리아 토착민족들의 오랜 전통과 규범은 다양한 변화를 겪게 된다. 또한 부랴트, 야쿠트를 포함한 여러 시베리아 토착민들이 러시아인들에게 동화되기 이전에는 아직 계급사회 단계가 아닌 공동체 구조가 지배적이었다. 사회적으로는 소유의 분화가 이미 발생하였으나, 전반적으로 명확하게 사회구조가 성립된 것은 아니었다. 이 논문에서는 당시 시베리아 야쿠트, 부랴트족의 성문화된 관습법 사료를 바탕으로 그들의 공동 생업과 관련된 규범들이 어떻게 변화하였는지, 또한 이러한 변화가 공동 생업과 상호 원조 관습에서 그들의 공동생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살펴보았고, 두 시베리아 토착민들을 통해 사회 지배층으로부터의 관습법적인 관점과 동시에 사회적으로 과거 공동생활의 관습이 어느 정도 지켜져 오고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이는 특히 오랫동안 생업에서 상호 원조와 공동작업에 동등하게 참여하여 동등하게 분배되어온 것을 말하는데, 이 오랜 원칙을 위반하는 것은 실제 관습에서 개인의 소유권이 새롭게 정착되었음을 입증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В XIX в., спустя более 200 лет после начала освоения Сибири русскими, под влиянием новых условий жизни, нового населения, развития торговли и т. д., уавтохтонных народов произошли значительные изменеия, повлиявшие на старые коллективистские порядки и нормы. Предметом изложения в данной статье является попытка проследить на материале записей обычного права якутов и бурят, а также по свидетельствам авторов исследований, как такие изменения повлияли на те сяеры деятельности, в которых коллективистские нормы держались особенно прочно - на коллективные работы и обычаи взаимопомощи.в нормативной практике бурят и якутов в XIX в. можно встретить ряд противоречивых установлений, отражающих переход от коллективистских порядков к частнособственническим. Совместный труд для добывания средств ксуществованию, действительно, являлся наиболее распространенной формой кооперации на ранних ступенях развития этнических сообществ. Самым древним видом коллективного труда была охота. Охотничий коллектив можно считать исходным вариантом для дальнейших видоизменений и сочетаний разноуровневых черт экономического строя в условиях разделения и усложнения труда. В течение ранних периодов существования этносов традиционной культуры члены общества имели общие занятия. Разделение труда, классификация профессий и ихраспределение между различными индивидуумами присущи уже более развитому строю. Будучи условием существования первобытнойэкономики, коллективныйтруд, однако, явился источником возникновения и развития целого ряда нравственных и юридических норм, которые часто на многие столетия переживают вызвавшую их ксуществованию общественно-экономическую организацию итем ясно доказывают значение лежащих в ее основании начал. Система первобытного сложения труда отразилась всамой физической и ментальной организации социума иего членов. Среди подобных этносоциальных структур индивидуальности почти не было места. Все племя втечение целого ряда поколений эксплуатировало одни ите же способности, так что последние обращались внаследственные стереотипы поведения членов данного социума. У бурят в прошлом существовали различные виды коллективной охоты, которая, по мнению ряда авторов, строилась на основе равного участия всех членов рода впромысле и распределении добычи. Наиболее древнейформойохоты была облавная: у западных . зэгэтэ аба, у восточных . аба хайдак. Облавная охота имела огромное экономическое значение в жизни кочевников и потому представляла собой хорошо разработанный общественныйинститут со своей сложившейся системой социальных отношени. У якутов подобной традиционной коллективнойохоты не было. Охотничий промысел по значимости составлял у них третью после скотоводства ирыболовства, гораздо менее важную отрасль хозяйства. В дальнейшем, по мере истощения пушных богатств края, удельный вес охотничьего промысла в хозяйстве якутов все более и более уменьщался. И буряты и якуты в XIX в., прошли определенныйпуть изменения архаических коллективистских порядков, двигаясь в направлении разложения традиционных институтов. Но, возможно, в силу названных причин якутское общество изменения затронули в несколько большейстепен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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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에서 우리는 신라어에서 중간에 있는 -t- 가 -r-로 변하는 법칙을 제시하고 있다. 이 법칙을 통해 볼 때, 많은 경우에 있어서 현대 한국어 -r- 은 현대 일본어 -t- 와 대응하고 있으며(A 집단), 현대 일본어는 그 직접적인 조상인 고구려어나 혹은 고조선어를 넘어서 한국어 조어(proto-Korean)인 -t- 를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B 집단 경우의 약 1/3에 있어서 이 관계는 뒤바뀌게 되는데, 즉 한국어 -t- 가 일본어 -r- 과 대응하게 된다. 이것은 -r- 을 갖고 있는 신라어 형태 역시 문어체 형태로 열도 지역에 들어갔으며, 또한 한국어 조어 -*t- 가 구어체 형태로 유입된고구려어 형태를 거쳐 -t- 로 보존돼왔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C 집단의 몇몇 경우에 있어서 -r- 과 -t- 양자는 한국어에서 표준어 형태 도표 1. A. Pen -r-: Ins -t-~-d-, (-r-11) 62 친족어 B. Pen -t-: Ins -r-, (-t-~-d- 7) 28 친족어 C. Pen -r-, -t-: Ins -r-, -t-, -Ø- 8 친족어 Total: 98 친족어 다음으로 우리는 한국어 어원사전 파일에서 발견된 62개 친족어의 어원을 찾기 위해 우리의 연구작업 리스트인 “알타이어 어근 500+”와 “고구려어 어근 100+”을 찾아보았다. 그 결과 우리는 거기에서 62개 어근 중 50개를 찾아내었고, 다음은 그것을 요약한 것이다. 도표 2. 1. pA -*t/*d- roots (25 어근) 2. pA -*r-/-*l- roots (21 어근) 3. pA -*r-/-*l- roots? ( 4 어근) Total 50 어근 결과적으로 Table 2 에 있는 50개 어근은 두 개의 다른 집단으로 나뉘어 다뤄져야 한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이 논문은 알타이 조어(proto-Altaic) 어원으로 두 번째 자음에 -*t/d- 를 갖고 있는 25개의 어근에 집중하고 있다. 원래 자음이 -*t- 혹은 -*d- 이므로, -r- 을 갖고 있는 형태들은 변화된 형태임에 틀림없으며, 그 법칙은 한국어 조어(proto-Korean) *t/d- ( > 반도 한국어 조어(proto Peninslar Korean) *t-) > 신라어 -r- 이어야 한다. 그렇게 변화의 방향은 결정되었고, 이제 문제는 변화가 일어난 시점이다. 통계학적 이유를 고려하면, 우리는 그 변화가 반도 한국인의 역사시대 초기에 일어났다고 생각하고 있다. 즉 신라어에서 -r- 을 갖고 있는 변화된 형태들이 또한 나중에 열도 한국인에게로 넘어갔던 것이다. 알타이어 어원으로 C²(두번째 자음)에 -*t/d- 를 갖고 있는 한국어 어근의 실례들을 보면, 첫 번째 유성대응이 사라지고 이 -*t/d- 가 반도 한국어에서 단독적인 -*t- 가 되고 있다.

In this study we present a rule that an inter-vocalic -tchanged to -r- in Silla language. Through this rule the Modern Korean -r- corresponds to the Modern Japanese -t- in many items (Group A), the latter having kept the proto-Korean -tover its direct ancestor the Koguryo language, or over Old Chosun language. But in about a third of the cases(Group B), this relation is reversed, that is Korean -t- corresponds to Japanese -r-, indicating that Silla language forms with -r- also entered the Insular Area as written forms and that Silla language has also retained proto-Korean -*t- as -t- through the inflow of the Koguryo forms in its spoken forms. In a few items (Group C) both -r- and -t- forms are found in Korean, both as standard forms or one in oral, dialectal forms. Table 1. A. Pen -r-: Ins -t-~-d-, (-r-11) 62cognates B. Pen -t-: Ins -r-, (-t-~-d- 7) 28cognates C. Pen -r-, -t-: Ins -r-, -t-, -Ø- 8cognates Total: 98cognates Next we searched our list of "Altaic roots 500+" and of "Over 100 Koguryo roots" for the possible origin of the 62 cognates found in the Korean etymological dictionary file. As a result 51 of the 62 roots have been found there, with the details as summarized below. Table 2. 1. pA -*t/*d- roots (25 roots) 2. pA -*r-/-*l- roots (21 roots) 3. pA -*r-/-*l- roots? ( 4 roots) Total 51 roots As a result it became clear that we have to deal with the 51 roots in Table 2 in two different groups. This paper is devoted to those 25 roots with the second consonant of proto-Altaic -*t/d- origin. Since the original consonant is -*t- or -*d- the forms with -r- must be considered as changed forms, and the rule should be proto- Korean *t/d- ( > proto Peninslar Korean *t-) > Silla -r-. Thus the direction of change having been determined, it is now the time point at which this change took place. For statistical reason we consider that the change occurred early in the history of Peninsular Korean, that is in Silla language, from which the changed forms with -r- later went into Insular Korean, too. In the examples of Korean roots with the C² of Altaic -*t/d- origin, first the voice contrast is lost and this -*t/d- becomes one single -*t- in Peninsular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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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에너지 전략과 동북아 국제정치의 변화 - 러시아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이용권

배재대학교 한국-시베리아센터 한국시베리아연구 제12집 제2호 2008.12 pp.189-217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러시아의 에너지 자원이 러시아 사회를 안정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1990년대 옐친 정부의 친서구주의 전략에 의한 외국자본의 유입정책도, IMF 등 국제적인 권위 있는 기관의 경제정책 조언의 수용, 급진적인 가격 자유화 정책, 다양한 국가 프로젝트의 발표 등으로도 러시아 사회를 정상화하는 데 성공하지 못하였다는 점을 고려할 때, 유가의 급격한 상승과 그에 따른 재정의 안정은 그 모든 정치, 경제, 사회적 문제를 일시에 해결해 주는 역할을 했다. 그래서 러시아의 에너지 정책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국가 발전 전략의 핵심이며, 대외 조건을 러시아에 우호적으로 만드는 중요한 매개체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2000년대 동북아 국제정치는 러시아의 에너지 자원에 의해 새로운 형태로 변화되었다. 우선 에너지 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역내 국가들 간의 외교적 경쟁 요인이 발생하였고, 그 요인이 강화되면서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협력 관계가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로, 러시아와 일본이 에너지 협력의 틀 내에서 정부 간 대화와 우호적 분위기를 조성하였고, 한국이 러시아와 전략적 협력관계로 전환하였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러시아와 동북아 내에서 경쟁관계에 있었으나, 에너지 자원을 중심으로 정치, 군사, 외교, 경제 등 거의 전 분야에서 협력 하는 매우 긴밀한 관계가 되었다.

Energy Resources of Russia have played a pivotal role in social stability. In 1990 policies of russian government, pieces of advice apt for the occasion of IMF, many governmental plans to stimulate the economy were not successful in social stability and development. But a sharp rise in energy prices and national financial stability gave Russian society the opportunity to make a social stability and development. In this point of view, energy policy of Russia has a particular point for establishment of national strategy, furthermore, they function as a core of direction of Russian foreign policy. In 2000 Russian energy resources made a new relationships with inter-government of Northeast Asia. Because competitive factors occurred in Northeast Asia for getting Russian energy resources, and intensifying competition become the cause of making a new policies direction of countries in Northeast Asia. This paper examines that considering energy resources as a important factor made change of political and economical situation in Northeast Asia. The study explains Russian energy policy and tries to demonstrate a change of interrelations of countries in Northeast 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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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관광 한국인의 관광동기와 만족 및 충성의 관계에 대한 실증적 연구

이상건

배재대학교 한국-시베리아센터 한국시베리아연구 제12집 제2호 2008.12 pp.219-243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본 연구는 시베리아를 방문하는 한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관광동기요인을 파악하고 또한 관광동기요인과 시베리아 관광의 전반적인 만족 및 충성의 관계를 측정한 연구이다. 분석방법은 문헌고찰을 통해 시베리아 관광동기의 요인을 고찰하였고, 실증분석을 통해 관광동기요인과 관광 후 전반적인 만족 및 충성과의 영향관계를 규명하였다. 특히, 관광동기요인은 관광자의 심리에 내재되어 있는 추진요인과 시베리아 관광지가 관광객을 유인하는 유인요인으로 구분하여 관광 후 전반적인 만족과 충성의 관계를 측정하였다. 표본은 지난 1년간 시베리아를 관광한 경험이 있는 한국인을 대상으로 측정하였다. 표본추출기법은 임의표본추출기법을 이용하였으며, 설문지는 서울에 50부 그리고 대전에 50부 총 100부의 설문지가 배포되었다. 최종 분석에 쓰인 설문지는 88부로 88%의 회수율을 보였다. 분석결과 관광동기의 추진 동기는 향수, 모험욕구, 일탈, 흥취, 이국적인 체험, 단순여행으로 요인화되었고, 유인 동기는 이국적인 문화 및 유적지, 쇼핑 및 현지음식, 호텔 및 기후조건, 바이칼 호수 및 학술대회, 경관 및 현지인으로 요인화 되었다. 관광동기가 전반적인 만족에 미치는 영향관계를 분석한 결과 유인동기요인은 전반적인 만족에 유의한 영향을 미치지 못하였다. 반면에 추진요인의 일탈동기와 이국적인 체험동기요인이 전반적인 만족에 유의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분석결과를 토대로 시베리아 관광활성화에 대한 마케팅 시사점을 제시하였다.

Siberia has been an important destination for Koreans economically as well as historically. This paper examined the relationship between Korean tourists' motivation and satisfaction and loyalty of Siberia. From the literature review, Korean tourists' motivation push and pull factors had been developed. Factor analyses were adopted to identify underlying dimensions of both push motivation and pull motivation. Push motivation was identified as nostalgia, adventuresome, escape, exciting, exotic experience, and simple tour. And pull motivation was identified as exotic culture & relics, shopping & local cuisine, hotel & climate, Baikal lake & academic conference, landscape & local people. Regression analyses were employed to verify the relationship between Korean tourists' motivation and general satisfaction after tour. Research findings revealed that both escape and exotic experience factors of push motivation affected general satisfaction after tour. On the contrary, there was no significant relationship between pull motivation and general satisfaction after tour. And marketing implications of these results were examin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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