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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음악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지
  • 발행기관
    서울대학교 동양음악연구소 [The Asian Music Research Institute]
  • ISSN
    1975-0218
  • 간기
    반년간
  • 수록기간
    1977~2018
  • 주제분류
    예술체육 > 음악학
  • 십진분류
    KDC 670 DDC 780.95
제43집 (7건)
No
1

발간사

김우진

서울대학교 동양음악연구소 동양음악 제43집 2018.06 pp.4-5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에 따라 개인회원에게 무료로 제공됩니다.

<일반논문>

2

안확의 조선무용사 서술내용 및 인식태도

김은자

서울대학교 동양음악연구소 동양음악 제43집 2018.06 pp.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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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에서는 안확이 1930년에 잡지 󰡔조선󰡕에 기고한 「조선음악의 연구(4)」 무용편을 중심으로 조선무용사에 대한 그의 서술방식과 인식태도를 살펴보았다. 안확은 「조선음악사」와 마찬가지로 조선무용사를 왕조별로 삼한시대, 삼국시대, 고려시대, 이조시대, 근경의 다섯 시기로 구분하여 각 시기의 춤을 소개하였다. 왕조사관에 입각하여 사료 중심적으로 내용을 기록한 안확의 서술방식은 현행 한국무용사에서도 주요하게 쓰이는 서술방식이라는 점에서 그의 글이 무용사 연구의 시작점에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조선무용에 대한 안확의 인식태도는 무용 용어 사용, 사료 중심적 서술, 춤에 대한 시각, 이왕직아악부 비판의 네 가지 측면에 주목하였다. 첫째, 안확은 조선음악의 범주에서 음악과는 별개의 갈래임을 강조하는 서구적 개념의 ‘무용’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어서, ‘악’에 대한 전통적 개념을 바탕으로 당대의 변화된 인식을 수용한 측면을 보여주었다. 둘째, 안확의 무용사 인식은 철저하게 사료 중심적 서술에서 이루어졌음을 확인하였다. 셋째, 안확은 관념적 상징성보다 춤 자체의 아름다움을 더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어서 악무가 정치를 위해 복무한다는 효용적 시각에서 벗어나 점차 예술 그 자체로 인식하게 되는 변화의 한 지점을 보여주었다. 넷째, 이왕직아악부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안확이 어느 시기보다 당대의 무용을 엉성하게 기술하게 된 방해물로 작용하였다. 안확의 조선무용사 기술은 사료나 목차 구성, 서술 내용 등에 있어 이후 전개된 한국무용사의 시발점이라는 측면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왕조사관의 사료중심적 서술이 갖는 학문적 한계와 당대의 무용에 대한 소략한 기술은 아쉬움을 남겼다.
In this article, I examined the narrative style and attitude of recognition concerning Korean dance history focusing on ‘Dance of Joseon Music(4)’ written by Ahn Hwak in the magazine of “Joseon Dynasty” in 1930. Ahn Hwak introduced the dance of each period by dividing periods such as the Three Hans period, Three Kingdoms period, the Goryeo period, the Yi dynasty, and the Modern period as in “Joseon Musical History”. It was found that his narrative method on the basis of the historical records of Joseon dynasty, was the starting point of the research of Korean dance history similar to the narrative method of current Korean dance history. Ahn Hwak’ attitude of recognition on Joseon Dance focused on the four aspects such as the use of dance terminology, the narrative on the basis of historical records, the view point of dance, and the criticism of ‘Yi-wang Jik’ traditional musical band. First, Ahn Hwak used the term ‘dance’ as a western concept that emphasized the separation from the category of Joseon music. From this point of view, it showed the changed recognition of that era based on the traditional concept of ‘music 樂’. Second, it was confirmed that Ahn Hawk’ recognition of dance history was completed thoroughly by the narrative centered on historical records. Third, Ahn Hwak considered the beauty of dance itself was more important than ideological symbolism. So it showed the changing point that gradually became the consideration of art itself, away from the practical view of the service of political affairs. Fourth, due to the negative viewpoint of ‘Yi-wang Jik’ traditional musical band, Ahn Hwak could not describe the music and dance of that era from an objective standpoint. The description of Ahn Hwak’ Joseon dance history was meaningful in the aspects of starting point of description on Korean dance history reviewing the composition of narrative order and contents. On the other hand, however, his narrative on the basis of historical records and his attitude on dance of that era showed clear limits.

7,000원

3

『시용향악보』간행 배경 재고(再考)

윤아영

서울대학교 동양음악연구소 동양음악 제43집 2018.06 pp.3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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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용향악보』에 수록된 새로운 민요 중 일부는 이미 고려시대부터 유행했던 속요로서 민간의 연향뿐 아니라 궁중에서도 불렸던 음악인데, 이는 당시 민간 기악인 현수(絃首, 絃手)의 활동 무대와 일치한다. 또한 나례가(儺禮歌)를 비롯해 무가계열로 알려진 곡들은 기존에는 궁중 기은(祈恩)때 명산대천에서 무녀로 하여금 부르게 한 음악으로 추정되었으나, 다른 곡들과 함께 이 역시 현수가 궁정나례(宮庭儺禮) 중 관나(觀儺) 때 불렀던 것을 기록한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기타 한문가사의 생가요량과 쌍화곡 같은 고취악 계열의 음악은 주로 어가 환궁시에 불렸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 역시 현수가 포함된 여기(女妓)들에 의해 불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연산군은 12년 3월 17일 대규모 산대희 공연을 준비하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연산군은 여기들이 정확한 음높이로 노래하기를 원했으므로 한문과 언문 가사에 음고를 표기해서 연습하도록 했으며, 한번 부른 곡은 다시 부르지 못하도록 지시했다. 이 때문에 연방원은 현수가 민간에서 부르던 곡들을 포함한 모든 향악을 모아야 했고, 대규모 공연을 위해 여기들이 부를 수 있도록 악보로 만들어야만 했을 것이다. 특히 연산군 때 궐내에 상주하고 있던 현수의 민간음악은 운평여기들에게 전수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악보화 작업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시용향악보』에 수록된 다양한 계층과 시대를 아우르는 음악은 연산군 때 궁중과 민간을 오가며 현가 위주의 음악활동을 했던 현수의 음악들이 포함된 악보다. 무가나 나례 관련 음악을 수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수의 음악일 수밖에 없는 배타적 특수성이 증명된다고 하겠다. 따라서『시용향악보』는 관찬악보로서 당시 연방원의 총율(總律)이 기록했을 가능성이 높고, 간행 시기는 연산군 11년 11월 18일부터 12년 3월 17일까지의 대략 4개월 사이일 것으로 추정된다.
Most musics on the music book Singyonghyangakbo are the original version or the first editions. Some of them are interpreted as Hyeonsu’s folk banquet or shaman musics, who had played in the royal court yard at the year ending banquet, Gwanna, one of Narye. Yeonbangwon which was a national organization for the royal music during the year of king Yeonsangun’s reign, had collected the songs for the banquet on the 17th March, 1506, which was Sandaehui, the biggest royal banquet at the Gyeonghoeru with mountain-shaped stage and three thousand musicians including Hyeonsu by the order of king Yeonsangun. Also, king Yeonsangun had banned female musicians to repeat one song ever, therefore Yeonbangwon would have made every effort to make and collect new songs for the banquet. In addition to that, king Yeonsangun ordered the officials of Yeonbangwon to record the songs with exact pitch marks, and to train female musician to sing songs to the accurate pitch in 17th november 1506. As all these king Yeonsangun’s commands, Yeonbangwon would have recorded those song on the music book, and named as Singyonghyangakbo which means current folk musics. Under the circumstances, the songs on the music book Singyonghyangakbo would have come to be ranged from high to low classes. And the conjectured period of record would be between the late 11th and the early 12th year of the king Yeonsangun’s reign.

6,100원

4

이보형의 삼현육각 현장조사와 그 성과

최선아

서울대학교 동양음악연구소 동양음악 제43집 2018.06 pp.63-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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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의 목적은 이보형 소장 민속악 자료를 중심으로 이보형의 삼현육각 현장조사 과정과 그 성과를 밝히는데 있다. 이보형의 삼현육각 조사는 맨 처음 민간 무용 조사(1966년, 1976년)에서 확인된다. 그리고 1979년부터 1982년까지『삼현육각』(1984) 조사보고서 작성을 위한 현장조사에 앞서 사전 조사가 있었다. 사전 조사로는 전남․전북 지역의 국악실태 조사(1979), 경기 시나위 조사(1980), 경기 새남굿 조사(1981), 황해도 배뱅이굿 조사(1982), 통영 수륙 새남굿 조사(1982) 등이 있었다. 이러한 삼현육각 사전 조사에서 발굴한 삼현육각 악사 및 민속악 전승자의 증언을 바탕으로 한 본격적인 삼현육각 현장조사(1983)가 진행되었고, 조사내용은 정리되어 『삼현육각』 조사보고서로 작성되었다. 1984년 이후에도 이보형은 계속해서 여러 지역을 방문하여 삼현육각을 조사하였고, 동시에 시나위․산조․풍류․판소리․굿․무용․연희 등을 조사하면서 사용된 삼현육각 음악과 연주 계기 및 명인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해왔다. 그 결과 1984년 이후에 이보형의 삼현육각 현장조사의 진일보한 성과는 ①민간 삼현육각 조사 지역이 경기, 호남, 해서, 통영에서 서울, 충남, 부산․울산, 대구․경북으로의 확장, ②기존 조사 지역에서 새로운 삼현육각 전승자 발굴, 처음으로 ③줄타기에서의 삼현육각과 ④삼현걸립에 대한 조사 등에서 찾을 수 있겠다.
The goal of this study is to clarify the process and outcomes of Lee Bohyung’s fieldwork on Samhyeon yukgak(三絃六角) based on the Minsokak(Korean folk music) research data collected by him. Lee Bohyung’s fieldwork on Samhyeon yukgak was first conducted during his folk dance research(1966, 1976). From 1979 to 1982, preliminary study was conducted before he published the report of his fieldwork on Samhyeon yukgak(1984). The preliminary study included factual survey on gukak in Southern & Northern Jeollado(1979), Gyoenggi Sinawi(1980), Gyeonggi Saenamgut(1981), Hwanghaedo Baebaengigut(1982), Tongyeong Sooryook Saenamgut(1982), etc. Based on the findings from these preliminary investigations, the fieldwork on Samhyeon yukgak was conducted through which responses from musicians of Samhyeon yukgak and practitioners of folk music were collected(1983) and eventually the results were put together in the report of Samhyeon yukgak. After 1984, Lee Bohyung continued researches on Samhyeon yukgak as he traveled around the country. While he conducted studies on Sinawi, Sanjo(散調), Pungnyu(風流), Pansori, Gut, dance, and plays, he ceaselessly interviewed musicians to learn what kind of Samhyeon yukgak music was played in varied genres, why they started to play it, who was the master of it, etc. Consequently, Lee Bohyung’s fieldwork on Samhyeon yukgak after 1984 made a great step forward in musicology as 1) the research area was expanded to Seoul, Southern Chungcheongdo, Pusan, Ulsan, Daegu, Northern Gyeongsangdo when it had been remaining only in the area around Gyeonggi, Honam, Haeseo, Tongyeong before he conducted that research, 2) he discovered new performers who tried to inherit the tradition of Samhyeon yukgak from the area of his preceding research, 3) he first studied Samhyeon yukgak used in tightrope walking, 4) it was the first research on Samhyeon geollip(三絃乞粒) as well.

8,700원

<번역문>

5

힌두교와 음악

거이 벡, 이용식

서울대학교 동양음악연구소 동양음악 제43집 2018.06 pp.107-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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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00원

6

육자배기

이혜구, 윤영해

서울대학교 동양음악연구소 동양음악 제43집 2018.06 pp.147-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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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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