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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한인의 ‘대한인국민회’ 설립과 독립운동 고찰 : ‘신한민보’ 보도기사 내용 분석을 중심으로 KCI 등재

임영언, 김재기

재외한인학회 재외한인연구 제68호 2025.02 pp.147-175

...한인의 ‘대한인국민회’ 조직화 과정과 독립운동 활동을 살펴보는 데 있다. 국가 없는 디아스포라의 관점에서 쿠바 한인 1 세대의 독립운동 활동에 초점을 두었다. 연구 방법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총회본 부를 둔 대한인국민회의 기관지 ‘신한민보’의 보도자료를 중심으로 분석하였다.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쿠바 한인 이주는 1921년 3월 멕시코 유카탄에서 쿠바 마나티 사탕수수 농장으로 이주하면서 시작되었고 멕시코에서 대한인국민회 16년 활동은 쿠바에 서 대한인국민회 조직화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 둘째, 쿠바 한인들은 새로운 일자 리를 찾아 마나티에서 마탄자스로 이동하게 되었는데 마탄자스 거주 한인들을 일 본 영사관에서 일본 재외국민으로 등록하도록 강제하자 대한인국민회 지방회를 설립하기 시작했다. 셋째, 쿠바 한인은 ‘대한인국민회’ 지방회를 총 4곳이 설립하 여 독립운동을 지원하거나 민족 교육을 시행하였다. 넷째, 쿠바 한인의 ‘대한인국 민회’의 주요 활동은 회장을 중심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지원, 북미지역 국민회 와 연대, 쿠바동포 권리보장, 한국 독립 승인 외교선전 활동, 독립 후원금 자금모 금 활동 등을 전개하였다. 결론적으로 쿠바 한인은 나라없는 디아스포라로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국민 회 회관, 교회, 학교를 설립하고 한인들의 권익 보호와 한인들의 단합, 독립운동 의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힘쓴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대한인국민회’ 지방회를 설 립하여 독립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국민회 의무금과 인구세를 비롯하여 광복비, 의 연금 등 독립운동 기금 등을 모금하여 한국의 독립에 크게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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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디아스포라의 관점에서 쿠바 한인의 ‘대한인국민회’ 조직화 과정과 독립운동 활동을 살펴보는 데 있다. 국가 없는 디아스포라의 관점에서 쿠바 한인 1 세대의 독립운동 활동에 초점을 두었다. 연구 방법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총회본 부를 둔 대한인국민회의 기관지 ‘신한민보’의 보도자료를 중심으로 분석하였다.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쿠바 한인 이주는 1921년 3월 멕시코 유카탄에서 쿠바 마나티 사탕수수 농장으로 이주하면서 시작되었고 멕시코에서 대한인국민회 16년 활동은 쿠바에 서 대한인국민회 조직화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 둘째, 쿠바 한인들은 새로운 일자 리를 찾아 마나티에서 마탄자스로 이동하게 되었는데 마탄자스 거주 한인들을 일 본 영사관에서 일본 재외국민으로 등록하도록 강제하자 대한인국민회 지방회를 설립하기 시작했다. 셋째, 쿠바 한인은 ‘대한인국민회’ 지방회를 총 4곳이 설립하 여 독립운동을 지원하거나 민족 교육을 시행하였다. 넷째, 쿠바 한인의 ‘대한인국 민회’의 주요 활동은 회장을 중심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지원, 북미지역 국민회 와 연대, 쿠바동포 권리보장, 한국 독립 승인 외교선전 활동, 독립 후원금 자금모 금 활동 등을 전개하였다. 결론적으로 쿠바 한인은 나라없는 디아스포라로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국민 회 회관, 교회, 학교를 설립하고 한인들의 권익 보호와 한인들의 단합, 독립운동 의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힘쓴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대한인국민회’ 지방회를 설 립하여 독립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국민회 의무금과 인구세를 비롯하여 광복비, 의 연금 등 독립운동 기금 등을 모금하여 한국의 독립에 크게 기여하였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activities of the Korean National Association of Cuban Koreans in the independence movement. The research method was to analyze press releases from the Korean National Association’s official journal, Shinhanminbo. The results of the research are as follows. First, Korean immigration to Cuba began in March 1921 when they moved from Yucatan, Mexico to the Manati sugarcane plantation in Cuba. Second, Koreans in Cuba moved from Martini to Matanzas in search of jobs, and when the Japanese consulate in Havana forced them to register as Japanese nationals living abroad, they began to establish the ‘Korean National Association.’ Third, Koreans in Cuba established four local chapters of the Korean National Association to support the independence movement and provide national education. Fourth, the main activities of the ‘Korean National Association’ included supporting the Shanghai Provisional Government, supporting the activities of ethnic groups, supporting the Provisional Government including the formation of the Korean Association in Cuba, defending the National Association, ensuring the stability of compatriots in Cuba, promoting recognition of the independent nation of Korea, and raising funds for independence. In conclusion, it was revealed that Koreans in Cuba established a local chapter of the Korean National Association in the Americas and worked to build a foundation for the lives of Koreans and the independence movement by establishing a local national center, church, and sch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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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한인문학회 10대 임원진(2024.5.)] 외 KCI 등재

국제한인문학회

국제한인문학회 국제한인문학연구 제40호 2024.12 pp.275-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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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중앙아시아 고려인과 사할린 한인의 설화 비교 연구 KCI 등재후보

강현모

한남대학교 한남어문학회 한남어문학 제45권2호 (통권 46집) 2024.12 pp.1-30

...한인의 동일성과 차이성을 설화를 통해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고려인들은 북한 지역에서 출발하여 연해주에서 살다가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한 북한을 고국으로 인식하던 사람들이고, 사할린 한인들은 한반도의 남쪽에서 출발하여 일본을 통해 사할린으로 징용을 갔던 한국을 고국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다. 구비전승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사할린 한인들의 교육상황을 살펴보면, 선생님들이 처음에는 일본 교육을 받은 한인들이 담당하였고, 나중에는 대학을 졸업한 큰땅치와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이 담당하였다. 그래서 초기 교사들이 나중에 학교에서 물러났다. 학교를 장악한 중앙아시아 고려인 선생님들에 의한 구비전승이 많았으리라 추정되지만, 실제로 조사된 자료 는 사할린 한인 선생님이나 조부모님에게서 들었던 자료들이 많았다. 사할린 한인 설화와 중앙아시아 고려인 설화의 비교는 인물 설화 유형, 사실적 전승 유형, 전통적 전승 유형으로 나누어 검토하였다. 각 유형은 고려인 자료와 동일한 것도 있고, 사할린 한인 특유의 소재도 보여주고 있다. 사할린 한인 설화에는 중앙아시아 고려인 설화와 같거나 다른 내용이 있다. 고려인과 사할린 한인은 한반도의 서로 다른 곳에서 출발하였고, 일정 기간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런데 전승이 같은 것에서는 같은 문화 의 뿌리에서 출발한 한민족의 정서적 동질성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사 할린 한인의 독특한 특징을 드러내거나 일상적인 공간에서 전승될 수 있는 자료가 있다. 특히 전자는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에게 들을 수 없는 한반도 남쪽을 기반으로 한 사할린 한인 선조들의 자료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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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중앙아시아 고려인과 사할린 한인의 동일성과 차이성을 설화를 통해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고려인들은 북한 지역에서 출발하여 연해주에서 살다가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한 북한을 고국으로 인식하던 사람들이고, 사할린 한인들은 한반도의 남쪽에서 출발하여 일본을 통해 사할린으로 징용을 갔던 한국을 고국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다. 구비전승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사할린 한인들의 교육상황을 살펴보면, 선생님들이 처음에는 일본 교육을 받은 한인들이 담당하였고, 나중에는 대학을 졸업한 큰땅치와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이 담당하였다. 그래서 초기 교사들이 나중에 학교에서 물러났다. 학교를 장악한 중앙아시아 고려인 선생님들에 의한 구비전승이 많았으리라 추정되지만, 실제로 조사된 자료 는 사할린 한인 선생님이나 조부모님에게서 들었던 자료들이 많았다. 사할린 한인 설화와 중앙아시아 고려인 설화의 비교는 인물 설화 유형, 사실적 전승 유형, 전통적 전승 유형으로 나누어 검토하였다. 각 유형은 고려인 자료와 동일한 것도 있고, 사할린 한인 특유의 소재도 보여주고 있다. 사할린 한인 설화에는 중앙아시아 고려인 설화와 같거나 다른 내용이 있다. 고려인과 사할린 한인은 한반도의 서로 다른 곳에서 출발하였고, 일정 기간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런데 전승이 같은 것에서는 같은 문화 의 뿌리에서 출발한 한민족의 정서적 동질성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사 할린 한인의 독특한 특징을 드러내거나 일상적인 공간에서 전승될 수 있는 자료가 있다. 특히 전자는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에게 들을 수 없는 한반도 남쪽을 기반으로 한 사할린 한인 선조들의 자료라 하겠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clarify the identities and differences between Central Asian Koreans and Sakhalin Koreans through folktales. Central Asian Koreans are those who recognized North Korea as their mother country, which started from North Korea and migrated to Central Asia. Sakhalin Koreans are those who recognized South Korea as their mother country, which started from the south of the Korean Peninsula and was conscripted to Sakhalin When looking at the Korean language curriculum of Sakhalin Koreans to understand the actual state of oral tradition, teachers were in charge of those who had received Japanese education at first, and later, Koreans from mainland and Central Asia who graduated from the university were in charge. So early teachers withdrew from school. It is estimated that there were many oral transmissions of Korean teachers in Central Asia who took over the school, but many materials passed down from Korean teachers were showing. The comparison between the Sakhalin Korean folktales and the Central Asian Korean folktales was reviewed by dividing them into character folktales, realization transmission types, and traditional transmission types. Each type is the same as the data from Central Asian Korean, and it also shows the unique material of Sakhalin Koreans. Sakhalin’s Korean folktales are the same as or different from those of Central Asian Koreans. The Koreans and Sakhalin’s Koreans started elsewhere on the Korean Peninsula, and they could not be reached for a certain period of time. However, the emotional homogeneity of the Korean people, which stems from the same cultural roots, can be found in the same way. And there are materials that can reveal the unique characteristics of the Sakhalin Koreans or be passed on in everyday spaces. In particular, the former can be said to be the data left by the Korean ancestors of Sakhalin based on the south of the Korean Peninsula, which cannot be heard by the Koreans in Central 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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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에서 선택과 혼종으로, 한인 정체성 변화의 예술적 양상 - 변월용에서 로만 자카로프까지 KCI 등재

양정애, 김동일

재외한인학회 재외한인연구 제67호 2024.11 pp.73-111

...한인 디아스포라 역사와 그 역사와의 교차점에 서 드러나는 고려인 정체성의 예술적 양상들을 살펴보고자 했다. 이를 위해 연구 자는 한인 디아스포라의 문화적 전형성을 추적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몇 개의 주 제를 다루었다. 첫째, 한인이주의 역사 속에서 이주의 문화적 의미와 고려인의 문 화적 대응을 검토했다. 한반도에서 극동 연해주를 거쳐 1937년 스탈린 정권에 의 한 중앙아시아로의 강제이주, 그리고 1991년 소련연방 해체 이후 연해주 귀환의 궤적에서 ‘고려인’은 거주국과 모국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 경계와 거 리 속에서 차별적인 정체성을 획득해 왔다. 둘째, 국공립미술관과 비엔날레를 중 심으로 한 공공전시이벤트를 중심으로 한인-고려인 디아스포라의 표현 양상을 살펴본다. 2000년을 전후로 본격화된 2002 광주비엔날레 ≪저기, 이산의 땅≫, ≪아리랑꽃씨≫(국립현대미술관, 2007), ≪코리안디아스포라, 이산을 넘어≫ (2018) 등은 한인-고려인의 차별적 정체성 변화와 문화적 대응을 동시대 미술의 지평에서 주제화하는 데 성공했다. 셋째, 그러한 정체성 변화의 역동적 양상을 개 별 고려인 예술가의 작업을 통해 검토했다. 1세대 고려인 작가 변월룡, 신순남, 안 일 등은 고려인의 집단적 경험, 장소적 경험, 문화·언어적 경험을 드러낸다. 아 울러 후속 세대 예술가들은 세계의 변화에 대응하며 다양한 정체성의 양상을 보여 준다. 넷째, 최근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젊은 고려인 예술가 로만 자카로프 (Roman Zhakarov)의 사례를 통해 선택과 혼종으로서의 동시대 고려인 예술가 의 정체성 양상을 검토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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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는 본고에서 중앙아시아 한인 디아스포라 역사와 그 역사와의 교차점에 서 드러나는 고려인 정체성의 예술적 양상들을 살펴보고자 했다. 이를 위해 연구 자는 한인 디아스포라의 문화적 전형성을 추적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몇 개의 주 제를 다루었다. 첫째, 한인이주의 역사 속에서 이주의 문화적 의미와 고려인의 문 화적 대응을 검토했다. 한반도에서 극동 연해주를 거쳐 1937년 스탈린 정권에 의 한 중앙아시아로의 강제이주, 그리고 1991년 소련연방 해체 이후 연해주 귀환의 궤적에서 ‘고려인’은 거주국과 모국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 경계와 거 리 속에서 차별적인 정체성을 획득해 왔다. 둘째, 국공립미술관과 비엔날레를 중 심으로 한 공공전시이벤트를 중심으로 한인-고려인 디아스포라의 표현 양상을 살펴본다. 2000년을 전후로 본격화된 2002 광주비엔날레 ≪저기, 이산의 땅≫, ≪아리랑꽃씨≫(국립현대미술관, 2007), ≪코리안디아스포라, 이산을 넘어≫ (2018) 등은 한인-고려인의 차별적 정체성 변화와 문화적 대응을 동시대 미술의 지평에서 주제화하는 데 성공했다. 셋째, 그러한 정체성 변화의 역동적 양상을 개 별 고려인 예술가의 작업을 통해 검토했다. 1세대 고려인 작가 변월룡, 신순남, 안 일 등은 고려인의 집단적 경험, 장소적 경험, 문화·언어적 경험을 드러낸다. 아 울러 후속 세대 예술가들은 세계의 변화에 대응하며 다양한 정체성의 양상을 보여 준다. 넷째, 최근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젊은 고려인 예술가 로만 자카로프 (Roman Zhakarov)의 사례를 통해 선택과 혼종으로서의 동시대 고려인 예술가 의 정체성 양상을 검토해 보고자 한다.

In this paper, we examine the artistic aspects of Korean identity that emerge at the intersection of the history of the Korean diaspora in Central Asia. To this end, we address several topics to trace the cultural typicality of the Korean diaspora. First, we explore the cultural significance of migration and the cultural response of the Korean people in the history of Korean migration. In the trajectory of their forced migration from the Korean Peninsula to Central Asia by Stalin’s regime in 1937, and after the dissolution of the Soviet Union in 1991, the ‘Koryo’ people belong neither to their country of residence nor their homeland, but instead have acquired a differentiated identity within the boundaries and distances between these places. Second, focusing on public exhibition events at the National Museum of Art and the Biennale, we examine the patterns of the Korean diaspora. Exhibitions such as ≪The 2002 Gwangju Biennale, There≫, ≪The Korean Diaspora Artists, in Asia≫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2007), and ≪Korean Diaspora, Beyond the Diaspora≫ (Gyeonggi Museum of Modern Art, 2018) successfully thematized the changes in identity and cultural responses of Koreans and ‘Koryoin (Koryo people)’ from a contemporary art perspective. Third, we analyze the dynamics of these identity changes through the works of individual ‘Koryoin’ artists. First-generation ‘Koryoin’ artists Byun Wol-ryong, Shin Soon-nam, and Ahn Il reveal the collective, spatial, cultural, and linguistic experiences of the Korean people. In addition, the next generation of artists responds to global changes, showcasing various aspects of identity. Finally, we examine the identity of contemporary ‘Koryoin’ artists as expressions of ‘choices’ and ‘hybrids’ through the case of Roman Zhakarov, a young Koryo artist who has been actively engaged in recent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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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 한인 디아스포라의 한글 표기법 ― 1900~1960년대 국민회 규정과 『국민보』를 중심으로 ― KCI 등재

안예리

국어사학회 국어사연구 제39호 2024.10 pp.203-231

...한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민족적 정체성의 문제와도 긴밀히 연관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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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수천 명의 한국인들이 하와이로 이주해 갔을 때 한글 역시 그들과 운명 을 함께했다. 하와이의 한글 표기는 20세기 초 관습적 표기법에서 출발해 독자적인 변화를 겪었다. 본고에서는 그 변화 과정을 밝히기 위해 1910년대~1960년대 국민회 규정들과 국민회의 기관지인 『국민보』(1913~1968)의 한글 표기법을 분석하였다. 하와이에서는 20세기 중엽까지도 아래아나 합용병서를 사용하는 등 이민자들이 한국을 떠나던 당시의 표기법이 수십 년간 유지되었다. 그러다 광복 이후부터 서서히 국내 표기의 영향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그 과정에서 각자병서의 분리 표기나 겹받침의 분리 표기 등 독특한 표기를 보였다. 이러한 표기 양상과 그 변화 과정은 하와이 이주 한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민족적 정체성의 문제와도 긴밀히 연관되어 있었다.

In the early 20th century, when thousands of Koreans migrated to Hawaii, the Hangul accompanied them on this journey. The Hangul spelling system in Hawaii originated from the conventional spelling methods of the early 20th century but underwent unique changes within the Korean diaspora in Hawaii. To thoroughly investigate this process of transformation, this paper analyzed the use of Hangul in the documents produced by the Korean National Association (KNA) from the 1910s to the 1960s. Additionally, I examined The Korean National Herald (1913-1968), a newspaper also published by the KNA. The results show that the the Korean spelling used in Hawaii preserved the spelling conventions from the time of the immigrants’ departure from Korea for several decades, such as the use of ‘ㆍ’ and combined phonetic blocks (hap-yong byeongseo). It was not until after Korea’s independence that the domestic spelling conventions in Korea began to penetrate the spelling system of the Korean diaspora in Hawaii. During this process, unique spelling phenomena specific to Hawaii, such as the separation of syllabic blocks or complex final consonants, were also observed. Moreover, these spelling conventions and their changes were closely related to the issues of ethnic identity among the Korean immigrants in Hawa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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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한인문학회 10대 임원진(2024.5.)] 외 KCI 등재

국제한인문학회

국제한인문학회 국제한인문학연구 제39호 2024.08 pp.30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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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독신 여성 선교사의 선교경험과 돌봄 KCI 등재

문성일

장로회신학대학교 세계선교연구원 선교와 신학 제62집 2024.02 pp.143-171

...한인 독신 여성 선교사의 영적, 정신 적, 사회적 자원을 비롯한 강점(Strength)과 취약성(vulnerability)에 대해 탐색하고 전인적이고 체계적인 목회 돌봄과 멤버케어를 위한 효과적인 개 입을 다루고자 한다. 효과적인 연구 진행을 위해 독신 여성 선교사의 사역 경험과 삶을 보고하는 다양한 문헌을 분석하고 고찰하는 문헌연구방법론 을 사용하였다. 이에 따라 독신 여성 선교사의 선교적 자원과 취약성을 목 회 신학적으로 성찰하고 효과적인 심리적 지원과 체계적 돌봄을 위한 방향 을 제시하고자 한다. 한인 독신 여성 선교사는 헌신성과 전문성, 유연성의 장점을 지니고 있으며 독신 여성 선교사에 대한 타인의 편견, 정서적 불안 정에 노출되어 있다. 켈리 오도넬과 로라 매 가드너의 멤버케어 이론은 선 교사의 선발부터 은퇴까지 선교사와 가족, 지원스텝을 포괄하여 영적, 신 체적, 정서적, 관계적, 실현적 지원을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자 원투자로 보았다. 래리 그래함은 심리체계적 돌봄 이론에서 경험, 개인, 가 족, 사회, 자연, 문화의 6가지 요소가 상호적이고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 음을 강조하였다. 독신 여성 선교사를 위한 멤버케어와 심리체계적 돌봄을 실천적으로 적용하기 위해서 멤버케어 시스템 안에서 전 생애 과정에 걸친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돌봄을 한국교회와 선교기관이 제공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태동기부터 성장과 함께 타문화권 선교에 특별한 관심과 선교사 파송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한국교회와 선교단체에서 파송된 독신 여성 선교사들의 활발한 선교활동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후원과 관심, 돌봄에서 소외되어 왔다. 본 연구는 한인 독신 여성 선교사의 영적, 정신 적, 사회적 자원을 비롯한 강점(Strength)과 취약성(vulnerability)에 대해 탐색하고 전인적이고 체계적인 목회 돌봄과 멤버케어를 위한 효과적인 개 입을 다루고자 한다. 효과적인 연구 진행을 위해 독신 여성 선교사의 사역 경험과 삶을 보고하는 다양한 문헌을 분석하고 고찰하는 문헌연구방법론 을 사용하였다. 이에 따라 독신 여성 선교사의 선교적 자원과 취약성을 목 회 신학적으로 성찰하고 효과적인 심리적 지원과 체계적 돌봄을 위한 방향 을 제시하고자 한다. 한인 독신 여성 선교사는 헌신성과 전문성, 유연성의 장점을 지니고 있으며 독신 여성 선교사에 대한 타인의 편견, 정서적 불안 정에 노출되어 있다. 켈리 오도넬과 로라 매 가드너의 멤버케어 이론은 선 교사의 선발부터 은퇴까지 선교사와 가족, 지원스텝을 포괄하여 영적, 신 체적, 정서적, 관계적, 실현적 지원을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자 원투자로 보았다. 래리 그래함은 심리체계적 돌봄 이론에서 경험, 개인, 가 족, 사회, 자연, 문화의 6가지 요소가 상호적이고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 음을 강조하였다. 독신 여성 선교사를 위한 멤버케어와 심리체계적 돌봄을 실천적으로 적용하기 위해서 멤버케어 시스템 안에서 전 생애 과정에 걸친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돌봄을 한국교회와 선교기관이 제공해야 한다

The Korean church has demonstrated special interests in cross-cultural missions and has actively sent missionaries since its early and developmental stages. Despite the dedicated efforts of Korean single women missionaries, they have often faced marginalization in terms of the Korean church’s supports, attention, and care from the Korean church and mission organizations. This study aims to explore the spiritual, mental, and social resources, as well as the vulnerbilities of single Korean female missionaries. It seeks to address the need for holistic and systematic pastoral care and member care intervention. To conduct effective research, a literature review methodology was employed, analyzing and reflecting on various documents reporting the ministry experiences and lives of single female missionaries. Consequently, this study examines their strengths and vulnerbilities from a pastoral and theological perspective, aiming to propose directions for effective and systematic member care. Single Korean female missionaries possess strengths such as dedication, professionalism, and flexibility; however, they also face biases from others and emotional instability. Kelly O’Donnell and Laura Mae Gardner’s member care theory views the provision of spiritual, physical, emotional, relational, and practical support as a systematic and ongoing investment from the selection of missionaries to their retirement, encompassing missionaries, families, and support staff. Larry Graham’s psychosystematic care theory emphasizes the interconnectedness of six factors: experience, person, family, society, nature, culture, and nature. To practically implement member care and psychosystematic care for single female missionaries, the Korean church and missionary organizations should offer continuous and systematic support throughout their entire life cycle within the member care sys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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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외교가 브라질 한인사회에 끼친 영향 - 이민 60주년 기념행사를 중심으로 - KCI 등재

최금좌

재외한인학회 재외한인연구 제64호 2024.02 pp.41-69

...한인사회는 2013년을 전후로 한국 공공외교 정책의 수혜자가 되었다. 그것은 브라질 한인사회가, 경기침체 속에서, 한인사회가 한류를 앞세워 중추 산 업인 여성의류 제조업과 판매업의 유지 및 신장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노력했기 때 문이다. 그 결과 오늘날 브라질 한인사회는, 한국 공공외교 정책의 진화와 함께, 초기의 문화 한류를 경제 환류로 승화 중이다. 본 논문은, 이민 60주년을 맞은 2023년 브라질 전 지역에서 다양한 주체들에 의해서 개최된 다양한 기념행사들이 한국 공공외교의 결과였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그리고 그것의 근거로 최근 10년 동안 개최된 다양한 기념 행사들이 과거의 관 중심에서 오늘날 민·관 협동의 다중심적 구조로 변했음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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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외교부는 2010년을 공공외교의 원년으로 선포하고, 2011년 공공외교를, 정치 및 경제 외교와 함께, 외교정책의 한 축으로 공식화했다. 초기 공공외교의 목 표가 자국의 “매력”이나 국가이미지 개선이었으나, 점차 국가의 이익 증진으로 전 환되었다. 브라질 한인사회는 2013년을 전후로 한국 공공외교 정책의 수혜자가 되었다. 그것은 브라질 한인사회가, 경기침체 속에서, 한인사회가 한류를 앞세워 중추 산 업인 여성의류 제조업과 판매업의 유지 및 신장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노력했기 때 문이다. 그 결과 오늘날 브라질 한인사회는, 한국 공공외교 정책의 진화와 함께, 초기의 문화 한류를 경제 환류로 승화 중이다. 본 논문은, 이민 60주년을 맞은 2023년 브라질 전 지역에서 다양한 주체들에 의해서 개최된 다양한 기념행사들이 한국 공공외교의 결과였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그리고 그것의 근거로 최근 10년 동안 개최된 다양한 기념 행사들이 과거의 관 중심에서 오늘날 민·관 협동의 다중심적 구조로 변했음을 제시한다.

The Korean Ministry of Foreign Affairs declared 2010 as the first year of public diplomacy, and formalized public diplomacy in 2011 as one of the pillars of foreign policy, along with political and economic diplomacy. Initially, the goal of public diplomacy was to improve the country’s “attractiveness” or national image, but it gradually shifted to promoting national interests. The Korean community in Brazil became a beneficiary of Korea’s public diplomacy policies around 2013. This is because, amidst the economic downturn, the Korean community in Brazil actively worked to maintain and expand the women’s clothing manufacturing and sales industry, its key industry, by taking the Korean Wave to the forefront. As a result, Korean community in Brazil is sublimating the early cultural Korean Wave into an economic trend along with the evolution of Korea’s public diplomacy policy. Therefore,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prove that the various commemorative events held by various entities throughout Brazil in 2023, making the 60th anniversary of immigration, were the result of Korean public diplomacy. The basis for this is that the various commemorative events held over the past 10 years have changed from the government-centered structure of the past to today’s polycentric structure of public-private coope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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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과이의 한인사회 - 수도 아순시온과 국경도시 시우닷 델 에스떼의 비교분석 - KCI 등재

박진영

재외한인학회 재외한인연구 제64호 2024.02 pp.191-225

...한인동포사회는 이 민 60주년 그리고 파라과이의 국경도시 시우닷 델 에스떼(Ciudad del Este)의 한 인사회는 50주년을 맞이한다. 따라서 본 연구의 목적은 남미 파라과이 한인사회 의 형성과정, 현황과 차이점을 서술하는데 있다. 한인 이민자들은 1965년과 1975년에 각각 수도와 국경도시에 정착했다. 도시 의 특수한 점에 따라 한인사회의 형성과 이민자의 생활방식에 영향을 끼쳤다. 또 한, 파라과이는 육지로 둘러싸인 내륙국가로 국경을 형성하는 아르헨티나와 브라 질의 경제상황에 영향을 받았다. 그리하여 이를 고려하여 한인사회의 사회·경제 적 및 문화적 측면을 비교하였다. 그리고 오늘날 모국과의 관계를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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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기준 남미 파라과이의 수도 아순시온(Asunción)의 한인동포사회는 이 민 60주년 그리고 파라과이의 국경도시 시우닷 델 에스떼(Ciudad del Este)의 한 인사회는 50주년을 맞이한다. 따라서 본 연구의 목적은 남미 파라과이 한인사회 의 형성과정, 현황과 차이점을 서술하는데 있다. 한인 이민자들은 1965년과 1975년에 각각 수도와 국경도시에 정착했다. 도시 의 특수한 점에 따라 한인사회의 형성과 이민자의 생활방식에 영향을 끼쳤다. 또 한, 파라과이는 육지로 둘러싸인 내륙국가로 국경을 형성하는 아르헨티나와 브라 질의 경제상황에 영향을 받았다. 그리하여 이를 고려하여 한인사회의 사회·경제 적 및 문화적 측면을 비교하였다. 그리고 오늘날 모국과의 관계를 살펴보았다.

As of 2025, the Korean community in Asunción, the capital of Paraguay, South America, will celebrate its 60th anniversary of immigration, and the Korean community in Ciudad del Este, a border town in Paraguay, will celebrate its 50th anniversary. Therefore,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describe the formation process, current status, and differences of the Korean community in Paraguay. Korean immigrants settled in the capital and the border city in 1965 and 1975, respectively. Depending on the city’s special characteristics, it influenced the formation of the Korean communities and the lifestyle of immigrants. Additionally, Paraguay is a landlocked country and was affected by the economic conditions of Argentina and Brazil, which form its borders. Therefore, taking this into consideration, the socio-economic and cultural aspects of the Korean communities were compared. And the relationship with the motherland today was examin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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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후반 한인들의 북만주 이주와 벼농사 경영 및 생활 KCI 등재

강수종

숭실대학교 역사문물연구소(구 숭실사학회) 숭실사학 제51집 2023.12 pp.121-159

...한인 인구 분포는 대략 5개 지역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먼저 첫 번째로 하얼빈과 綏芬河로 이어지는 賓綏線 지역으로 북만주에서 한인이 가장 밀집하여 거주하는 지역이다. 두 번째로 목단강, 동녕현, 수분하 지역이다. 세 번째로 중국과 소련 접경 지역이었던요하, 호림, 밀산 등의 지역이다. 네 번째로 당시 길림성과 흑룡강성의 경계였던 송화강 인근 지역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흑룡강성 내부 지역이다. 이들 지역의 거주 한인들은 정착시기와 인구수에 있어 간도 지역과 요녕성 일대의 남만 지역에 비하기 어려우나, 철도와강변의 저지대를 중심으로 한인 거주 지역을 형성하였다는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북만주 수전농업은 대략 1916년경 영안현 해림과 영고탑 인근 지역에서 시작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렇게 시작한 북만주의 수전 농업은 조선 내에서의 경작 과정에 비해 제초 작업에서 노동력이 덜 필요했고, 수전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인 파종 이후 추수까지의 기간 즉 5월부터 9월까지의 평균기온, 강수량 등 기후적 요건의 경우 장춘과는큰 차이가 없었다는 이점이 있었다. 이외에 이른 서리에 대비할 필요성만이 있었으나, 이는빠른 수확이 가능한 품종의 사용을 통해 해결되는 문제였다. 그리고 수전 사업에 종사하는이들 역시 한인이 매우 많은 수를 차지하여 사실상 한인의 독점사업이라고 할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북만주에서 수전 농업을 경영한 한인의 경제적 상황이 낙관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수전 농업의 유망함과 관계없이 북만주 거주 한국인 중 빈농 계층이 다수를점하고 있었다. 이주 한인의 대부분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기초 재산이 없는 상황에서자신들에게 불리한 소작계약을 감수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단순한 소작료의 부담뿐만 아니라 지주와 한인 소작인과의 직접적인 관계 이외에도 중간 지주로 인한 문제도 한인의 만성적인 적자를 야기하는 요인이었다. 1930년을 전후한 시기 길림성과 흑룡강성의 한인 구축 정책 역시 한인들의 생활에 큰위협으로 작용하였다. 북만주의 주요 곡물 거래시장이었던 하얼빈에서 1930년을 전후한 시기의 전체적인 곡물 가격 하락에도 불구하고 단위 무게당 가격은 1931년에 이르러서도 쌀이 가장 고가였다. 따라서 1930년을 전후한 시기 가격 하락에도 불구하고 대두, 조와 같은다른 곡물에 비한 수전 경영과 쌀 생산이 가져오는 이익은 분명하였다. 이와 함께 북만주 의 수전 경영에 있어 한인이 가지는 독점적 지위에도 불구하고 길림, 흑룡강성의 정부는강경한 한인 구축정책을 실시하였다. 이것의 원인은 동북 정부가 가지고 있던 한인의 이주와 일본의 침략을 연관시키는 관점때문이었다. 1920년대 후반 북만주 한인 사회에는 이주 한인의 대부분이 만성적인 적자를 보고 있어경제적 생활이 어려웠으며, 아울러 길림·흑룡강성 두 성의 한인 구축 정책도 심화되는 상황이었다. 먼저 한인의 경제상활과 관련해서 1920년대 후반 북만주의 한인들의 소작계약은구조적으로 적자를 반복할 수 밖에 없는 형태였다. 이에 대한 북만주 한인들은 토지의 취득과 공동 농장 경영을 통해 소작 계약의 구조적 문제에서 벗어나거나, 소작료 인하, 소작권의 획득을 통해 문제를 타개하고자 하였다. 이뿐만 아니라 동북 군벌의 한인 구축정책에대해서는 주민회 등의 단체 설립, 자치운동과 더불어 귀화 운동을 통해 대응했던 것으로보인다. 특히 민족주의 계열의 한인들은 공산주의 운동의 탄압이라는 명분으로 한인들을압박하는 상황에 대해 자위책을 강구하였고 이에 각 지에서 주민회를 조직하여 중국 관헌들에 협조하거나 현 정부에 탄원서를 제출하는 등의 활동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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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만주 한인 인구 분포는 대략 5개 지역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먼저 첫 번째로 하얼빈과 綏芬河로 이어지는 賓綏線 지역으로 북만주에서 한인이 가장 밀집하여 거주하는 지역이다. 두 번째로 목단강, 동녕현, 수분하 지역이다. 세 번째로 중국과 소련 접경 지역이었던요하, 호림, 밀산 등의 지역이다. 네 번째로 당시 길림성과 흑룡강성의 경계였던 송화강 인근 지역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흑룡강성 내부 지역이다. 이들 지역의 거주 한인들은 정착시기와 인구수에 있어 간도 지역과 요녕성 일대의 남만 지역에 비하기 어려우나, 철도와강변의 저지대를 중심으로 한인 거주 지역을 형성하였다는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북만주 수전농업은 대략 1916년경 영안현 해림과 영고탑 인근 지역에서 시작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렇게 시작한 북만주의 수전 농업은 조선 내에서의 경작 과정에 비해 제초 작업에서 노동력이 덜 필요했고, 수전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인 파종 이후 추수까지의 기간 즉 5월부터 9월까지의 평균기온, 강수량 등 기후적 요건의 경우 장춘과는큰 차이가 없었다는 이점이 있었다. 이외에 이른 서리에 대비할 필요성만이 있었으나, 이는빠른 수확이 가능한 품종의 사용을 통해 해결되는 문제였다. 그리고 수전 사업에 종사하는이들 역시 한인이 매우 많은 수를 차지하여 사실상 한인의 독점사업이라고 할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북만주에서 수전 농업을 경영한 한인의 경제적 상황이 낙관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수전 농업의 유망함과 관계없이 북만주 거주 한국인 중 빈농 계층이 다수를점하고 있었다. 이주 한인의 대부분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기초 재산이 없는 상황에서자신들에게 불리한 소작계약을 감수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단순한 소작료의 부담뿐만 아니라 지주와 한인 소작인과의 직접적인 관계 이외에도 중간 지주로 인한 문제도 한인의 만성적인 적자를 야기하는 요인이었다. 1930년을 전후한 시기 길림성과 흑룡강성의 한인 구축 정책 역시 한인들의 생활에 큰위협으로 작용하였다. 북만주의 주요 곡물 거래시장이었던 하얼빈에서 1930년을 전후한 시기의 전체적인 곡물 가격 하락에도 불구하고 단위 무게당 가격은 1931년에 이르러서도 쌀이 가장 고가였다. 따라서 1930년을 전후한 시기 가격 하락에도 불구하고 대두, 조와 같은다른 곡물에 비한 수전 경영과 쌀 생산이 가져오는 이익은 분명하였다. 이와 함께 북만주 의 수전 경영에 있어 한인이 가지는 독점적 지위에도 불구하고 길림, 흑룡강성의 정부는강경한 한인 구축정책을 실시하였다. 이것의 원인은 동북 정부가 가지고 있던 한인의 이주와 일본의 침략을 연관시키는 관점때문이었다. 1920년대 후반 북만주 한인 사회에는 이주 한인의 대부분이 만성적인 적자를 보고 있어경제적 생활이 어려웠으며, 아울러 길림·흑룡강성 두 성의 한인 구축 정책도 심화되는 상황이었다. 먼저 한인의 경제상활과 관련해서 1920년대 후반 북만주의 한인들의 소작계약은구조적으로 적자를 반복할 수 밖에 없는 형태였다. 이에 대한 북만주 한인들은 토지의 취득과 공동 농장 경영을 통해 소작 계약의 구조적 문제에서 벗어나거나, 소작료 인하, 소작권의 획득을 통해 문제를 타개하고자 하였다. 이뿐만 아니라 동북 군벌의 한인 구축정책에대해서는 주민회 등의 단체 설립, 자치운동과 더불어 귀화 운동을 통해 대응했던 것으로보인다. 특히 민족주의 계열의 한인들은 공산주의 운동의 탄압이라는 명분으로 한인들을압박하는 상황에 대해 자위책을 강구하였고 이에 각 지에서 주민회를 조직하여 중국 관헌들에 협조하거나 현 정부에 탄원서를 제출하는 등의 활동을 펼쳤다.

The distribution of the Korean population in North Manchuria can be divided intoapproximately five regions. First, it is the area that connects Harbin and Suifenhe(綏芬河), and is the most densely populated area in Bukmanju. The second is theMokdan River(牧丹江), Dongning(東寧), and Suifenhe(綏芬河) areas. The third isthe area such as Hulin(虎林), and Mishan(密山), which were bordering China andthe Soviet Union. Fourth, there was an area near the Songhua River, which was theboundary between Jilin and Heilongjiang provinces at that time. Lastly, it is thearea inside Heilongjiang Province. It is difficult for Koreans living in these areas tocompare them to the Gando area and the southern Manchuria area of LiaoningProvince in terms of the time of settlement and the number of population, but it canbe confirmed that the residential area of Koreans was formed around the low-lyingareas of the railroad and river. Rice farming in North Manchuria is believed to have started around 1916 in thearea near the sea Hailin and Yeonggotap in Ningan. The advantage was that thewater supply farming in North Manchuria, which started in this way, required lesslabor in weeding than in the process of cultivation in Joseon, and that there was nosignificant difference from Changchun in climatic requirements such as averagetemperature and precipitation from sowing to harvest, which is the most importantperiod in water supply management, from May to September. In addition, there wasonly a need to prepare for the early frost, but this was a problem solved throughthe use of varieties that could be harvested quickly. And it can be said thatKoreans accounted for a very large number of those engaged in the water supplybusiness, so they were in an advantageous position to be virtually monopolized byKoreans. However, the economic situation of Koreans who ran water farming in North Manchuria was not optimistic. In fact, regardless of the prospects of water farming,the poor peasants occupied the majority of Koreans living in North Manchuria. Most of the migrant Koreans had no choice but to bear tenanting contracts againstthem in the absence of basic assets to live their lives. In addition to the simpleburden of tenanting fees, the problem of intermediate landlords in addition to thedirect relationship between landlords and Korean tenant farmers was a factor thatcaused chronic deficits in Koreans. Around 1930, the policies to establish Koreans in Jilin and Heilongjiang provincesalso acted as a great threat to the lives of Koreans. In Harbin, the main graintrading market in North Manchuria, despite the overall decline in grain pricesaround 1930, the price per unit weight of rice was the highest even until 1931. Therefore, despite the decline in prices around 1930, the benefits of water supplymanagement and rice production compared to other grains such as soybeans andmillet were clear. In addition, despite the monopoly position of Koreans in watersupply management in North Manchuria, the governments of Jilin and Heilongjiangimplemented a strong policy to expel Koreans. The cause of this was the view oflinking the migration of Koreans and Japanese invasion of Korea by the Northeastgovernment. In the late 1920s, most migrant Koreans suffered chronic deficits in the Koreancommunity in North Manchuria, making it difficult to live economically, and thepolicy of deporting Koreans from both Jilin and Heilongjiang provinces wasintensifying. First of all, in relation to the economic life of Koreans, the tenantingcontracts of Koreans in North Manchuria in the late 1920s were structurally in aform that had no choice but to repeat the deficit. In response, Koreans in NorthManchuria tried to overcome the structural problems of tenanting contracts throughthe acquisition of land and joint farm management, or by lowering tenanting feesand acquiring tenanting rights. In addition, it seems that the government respondedto the policy of deporting Koreans from the northeast warlords throughnaturalization movements along with the establishment of organizations such asresident associations. In particular, nationalist Koreans sought defense measuresagainst the situation of pressuring Koreans in the name of the oppression of thecommunist movement, and organized community meetings in each district tocooperate with the Chinese government constitution or submit petitions to the current govern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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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팬데믹 시대 하와이 한인이 경험하는 건강 위기유형과 위기대응 전략에 관한 연구 KCI 등재

박창범

한국스포츠인류학회 스포츠인류학연구 제18권 4호 2023.11 pp.155-175

...한인들이 경 험한 건강 위기유형을 파악하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어떤 전략을 활용하였고 그 과정은 어떠했는지를 탐색하여 의미있는 결과를 도출하 고자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이 연구는 2020년 에서 2022년 현재 하와이에 거주하고 있는 10명의 한인 들을 정보제공자로 선정하여 심층면접을 한 후, 개방코딩과 선택코딩을 통해 범주들간의 관계를 분석하여 팬데믹시대 하와이 한인이 경험하는 건강 위기유형과 위기대응 전략 모형을 건강신념모델을 적용하여 분석 하였다. 연구결과로 첫째, 하와이 한인이 경험하는 건강 위기의 유형은 신체적 건강의 의기(건강활동공간의 폐쇄로 인한 위기, 건강유지지공간 의 폐쇄로 인한 위기), 심리적 건강의 위기(고립으로 인한 외로움, 불안, 우울, 두려움, 분노와 공격성의 발현), 사회적 건강의 위기(대인관계의 단절, 개인 평판의 위기), 가족 관계적 위기, 경제적 위기(실직과 보조금 생활)의 5가지로 나타났다. 둘째, 위기대응전략은 위기 유형에 따른 대응 전략들을 통합하여 크게 부인하기, 축소하기, 재건하기의 세 가지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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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코로나팬데믹 시대의 하와이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들이 경 험한 건강 위기유형을 파악하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어떤 전략을 활용하였고 그 과정은 어떠했는지를 탐색하여 의미있는 결과를 도출하 고자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이 연구는 2020년 에서 2022년 현재 하와이에 거주하고 있는 10명의 한인 들을 정보제공자로 선정하여 심층면접을 한 후, 개방코딩과 선택코딩을 통해 범주들간의 관계를 분석하여 팬데믹시대 하와이 한인이 경험하는 건강 위기유형과 위기대응 전략 모형을 건강신념모델을 적용하여 분석 하였다. 연구결과로 첫째, 하와이 한인이 경험하는 건강 위기의 유형은 신체적 건강의 의기(건강활동공간의 폐쇄로 인한 위기, 건강유지지공간 의 폐쇄로 인한 위기), 심리적 건강의 위기(고립으로 인한 외로움, 불안, 우울, 두려움, 분노와 공격성의 발현), 사회적 건강의 위기(대인관계의 단절, 개인 평판의 위기), 가족 관계적 위기, 경제적 위기(실직과 보조금 생활)의 5가지로 나타났다. 둘째, 위기대응전략은 위기 유형에 따른 대응 전략들을 통합하여 크게 부인하기, 축소하기, 재건하기의 세 가지로 나타났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identify the types of health crises experienced by 10 Koreans living in Hawaii during the COVID-19 pandemic, and to explore what strategies were used and what the process was like to derive meaningful results. to achieve this goal, this study applied the health belief model. as a result of the study, there are five types of health crises experienced by Koreans in Hawaii: physical health crisis (crisis due to the closure of health activity space, crisis due to the closure of health maintenance space), psychological health crisis (expression of loneliness, anxiety, depression, fear, anger and aggression due to isolation), social health crisis (disruption of interpersonal relationship, personal reputation crisis), family relations crisis, and economic crisis (losing job and subsidies). Second, crisis response strategies were largely denied, reduced, and rebuilt by integrating response strategies according to crisis typ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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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의 예술 활동 비교 연구 : 독일의 한인무용단과 북한이탈주민 예술단을 중심으로 KCI 등재

현주, 안지호

한독사회과학회 한독사회과학논총 제33권 제2호 2023.06 pp.103-131

...한인무용단의 경우 남한 공연계와의 교류를 통해 전통성과 전문성을 확보하는 반면, 북한과의 교류가 단절된 북한이탈주민 예술단은 동영상, 남한무용수 고용 등을 통해 전문성과 경쟁력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독일 한인무용단의 단원들은 간호사라는 안정적인 경제생활을 통해 무용단 활동을 여가활동의 일환으로 인식하는 반면, 북한이탈주민 단원의 경우 예술단 활동을 생계 또는 부업의 경제 활동으로 간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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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파독간호사와 북한이탈주민이 만든 예술단체를 연구 대상으로 하였다. 두 집단은 이주 시기, 이주 대상 국가는 다르지만, 남한과 북한의 전통무용을 계승하고 발전시키고자 하는 목적은 비슷하였다. 두 예술단체 모두 초기에는 남한과 북한의 전통 공연예술을 알리며 친목을 도모하는 차원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들 단체는 점차 공연 중심의 무용단 혹은 예술단으로 발전하면서, 이들이 처한 이주사회 환경과 단원들의 공연활동 목적의 다름으로 인해 단원 및 작품관리와 공연구성 등에서 차이가 발생하였다. 특히 남한과의 교류가 가능한 독일 한인무용단의 경우 남한 공연계와의 교류를 통해 전통성과 전문성을 확보하는 반면, 북한과의 교류가 단절된 북한이탈주민 예술단은 동영상, 남한무용수 고용 등을 통해 전문성과 경쟁력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독일 한인무용단의 단원들은 간호사라는 안정적인 경제생활을 통해 무용단 활동을 여가활동의 일환으로 인식하는 반면, 북한이탈주민 단원의 경우 예술단 활동을 생계 또는 부업의 경제 활동으로 간주한다.

The study was an art group created by Korean nurses dispatched to West Germany and defectors from North Korea. The two groups had different migration periods and destination countries, but the purpose of inheriting and developing the traditional dances of South and North Korea was similar. In the early days of the two arts groups, they started to develop friendship by promoting the traditional and arts of South and North Korea. However, as these organizations gradually developed into dance or art groups, differences arose in the management of members, works, and composition of performances due to the migratory social environment they faced and the purpose of performing activities of the members. In particular, in the case of Korean dance groups can exchanges with South Korea, traditionality and expertise are secured through exchanges with the South Korean performing arts community, while expertise and competitiveness are enhanced through videos of North Korean defector art groups that have been cut off from exchanges with North Korea and employment of South Korean dancers. wanted to secure. And while members of Korean dance groups in Germany recognize as part of leisure activities through stable economic life as nurses, North Korean defectors consider as a livelihood or sideline economic activ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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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문헌자료에서 한인(韓人) 김만겸에 관한 사실 고증과 김만겸의 중국내 공산주의운동 KCI 등재

조대호

원광대학교 한중관계연구원 한중관계연구 제9권 제2호 2023.06 pp.129-157

...한인 가운데 중국 공산주의 운동에 참여한 한인 들의 수는 꽤나 적지 않다. 그 중 중국 문헌 중에 자주 등장하는 김만겸은, 김만겸이라 는 한국이름으로 기록된 경우는 적고 그를 별칭하는 세레브리아코프(謝列勃里亞科夫) 와 스테파노비치(斯托揚諾維奇) 등으로 기재되어있다. 중국학계에는 단순히 러시아 국 적을 가진 한인이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의 생애에 대해서 알려진 바가 없다. 게다가 세레브리아코프와 스테파노비치가 어떠한 사료적 근거를 통해서 김만겸과 동일인물이 라고 말할 수 있는지, 김만겸이 언제 어떠한 경로를 통해 누구와 함께 중국에 어느 도시로 들어왔는지, 그리고 중국에서 중국인과 한국인의 공산주의 운동을 어떻게 원조 했는지에 관해 중국과 한국 모두 이를 단독주제로 한 연구가 없는 실정이다. 본문은 중국어, 러시아어, 한국어 및 일본어 사료를 이용하여 연구를 진행하였으며 중국학계 의 김만겸에 대한 정보의 부족을 채워주고 그동안 잘못 기록된 내용들을 바로 잡아내 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발견한 중국과 한국 초기 공산주의 운동이 어떻게 서로 발전 해 유기적인 관계를 맺어 나갔는지에 대한 여러 사실들이 지금까지 주목하지 못했던 기존 연구 공백을 메울 것이라고 사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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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공산당 건당 전후로 중국에 온 한인 가운데 중국 공산주의 운동에 참여한 한인 들의 수는 꽤나 적지 않다. 그 중 중국 문헌 중에 자주 등장하는 김만겸은, 김만겸이라 는 한국이름으로 기록된 경우는 적고 그를 별칭하는 세레브리아코프(謝列勃里亞科夫) 와 스테파노비치(斯托揚諾維奇) 등으로 기재되어있다. 중국학계에는 단순히 러시아 국 적을 가진 한인이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의 생애에 대해서 알려진 바가 없다. 게다가 세레브리아코프와 스테파노비치가 어떠한 사료적 근거를 통해서 김만겸과 동일인물이 라고 말할 수 있는지, 김만겸이 언제 어떠한 경로를 통해 누구와 함께 중국에 어느 도시로 들어왔는지, 그리고 중국에서 중국인과 한국인의 공산주의 운동을 어떻게 원조 했는지에 관해 중국과 한국 모두 이를 단독주제로 한 연구가 없는 실정이다. 본문은 중국어, 러시아어, 한국어 및 일본어 사료를 이용하여 연구를 진행하였으며 중국학계 의 김만겸에 대한 정보의 부족을 채워주고 그동안 잘못 기록된 내용들을 바로 잡아내 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발견한 중국과 한국 초기 공산주의 운동이 어떻게 서로 발전 해 유기적인 관계를 맺어 나갔는지에 대한 여러 사실들이 지금까지 주목하지 못했던 기존 연구 공백을 메울 것이라고 사료된다.

Amongst Koreans who came to China before and after the founding of the communist party of china, participated in the movement. Even fewer still are those Korean who appears in Chinese literature whom use their Korean names, such as Kim Man-kyum more widely known as Serebryankov or Stepanovich. In Chinese literature nothing significant is known about him except his identity as a Korean-Russian nationality. There is no professional study in China or Korea which proves Serebryankov/Stepanovich is indeed Kim Man-kyum, or any record of when he entered China, or how he helped the Communist movement of China. Although there is no content related to this in Chinese literature or research papers, there are many cases where it is not detailed and only mentioned or evidence is insufficient. In addition, the cited literature data may indicate incorrect information. Using Japanese, Korean, Chinese and Russian historical materials, it is possible to fill in the dearth of academic material concerning Kim Man-kyum, as well as correct falsely recorded or inconsistent reco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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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독한인들의 생애사로 본 5·18정신의 재해석 사회통합과 미래지향적 열망이라는 사회적 송금

정진헌

한국구술사학회 한국구술사학회 학술대회 냉전의 기억과 구술의 역할 2023.06 pp.4-24

...한인들은 베를린을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 광주민주화운동의 희 생자를 기리고 고국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거리 시위를 진행하였다. 그 이후로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사십 년 이상 매년 재유럽오월민중제를 개최하며 5·18정신의 확대와 재생산을 위 해 노력하고 있다. 본 연구는 현재까지 재유럽오월민중제를 주최 주관해온 주요 활동가들속에 서 진행한 인류학적 참여관찰과 심층 인터뷰를 바탕으로 독일에서 발현되는 5·18 민주화운동 의 의미를 고찰한다. 유럽 냉전체제의 최전선이자 분단국가였던 서독에 국가 재건을 위한 이 주노동자로 파견되었던 전 광부와 간호사 출신의 한인들은 어떻게 광주민주화운동을 간접 체 험했으며, 그로 인한 정서적 반응과 가치관 및 정체성 변화를 경험했는지, 그리고 새롭게 형 성된 신념을 통해 실천해온 독일과 한국을 잇는 초국가적 활동들은 어떤 함의를 지니는지 서 사적으로 분석한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5·18민주화운동은 기념되는 것으로 머무는 과거 의 역사가 아니라, 그 속에 내재해있는 “주먹밥”정신이 글로벌 코리안 공동체 형성을 위한 정 서적 연대, 즉 미래지향적 사회통합의 열망으로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음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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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당시 서독 거주 한인들은 베를린을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 광주민주화운동의 희 생자를 기리고 고국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거리 시위를 진행하였다. 그 이후로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사십 년 이상 매년 재유럽오월민중제를 개최하며 5·18정신의 확대와 재생산을 위 해 노력하고 있다. 본 연구는 현재까지 재유럽오월민중제를 주최 주관해온 주요 활동가들속에 서 진행한 인류학적 참여관찰과 심층 인터뷰를 바탕으로 독일에서 발현되는 5·18 민주화운동 의 의미를 고찰한다. 유럽 냉전체제의 최전선이자 분단국가였던 서독에 국가 재건을 위한 이 주노동자로 파견되었던 전 광부와 간호사 출신의 한인들은 어떻게 광주민주화운동을 간접 체 험했으며, 그로 인한 정서적 반응과 가치관 및 정체성 변화를 경험했는지, 그리고 새롭게 형 성된 신념을 통해 실천해온 독일과 한국을 잇는 초국가적 활동들은 어떤 함의를 지니는지 서 사적으로 분석한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5·18민주화운동은 기념되는 것으로 머무는 과거 의 역사가 아니라, 그 속에 내재해있는 “주먹밥”정신이 글로벌 코리안 공동체 형성을 위한 정 서적 연대, 즉 미래지향적 사회통합의 열망으로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음을 강조한다.

In May 1980, Koreans living in West Germany held street protests in Berlin and other major cities for democracy and human rights in their home country in honor of the victims of the Gwangju Democratization Movement. Since then, they have organized the May People's Festival in Europe every year for more than 40 years, striving to expand and reproduce the May 18 spirit. This study examines the meaning of the May 18 Democratic Movement articulated in Germany based on anthropological participation observation and in-depth interviews among major activists who have hosted the May People's Festival in Europe so far. It explores the ways in which the former Korean miners and nurses who were dispatched as migrant workers to West Germany, the front line of the European Cold War, indirectly experienced the Gwangju Democratization Movement, what changes they experienced in emotions, values, and identity, and further what kinds of transnational activities they have practiced between Germany and Korea through newly formed beliefs. Ultimately, the May 18 Democratic Movement is not celebrated as an event of the past, but it emphasizes that the "rice ball" spirit inherent in it is constantly reproduced as an emotional solidarity for forming a global Korean community, that is, a desire for future-oriented social integ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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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대 중국 심양 이주 한인의 삶과 문학 KCI 등재

유양, 한길로

국제한인문학회 국제한인문학연구 제35호 2023.04 pp.71-92

...한인들이 이주 및 정착을 시도했다. 이제 이곳은 ‘관찰이나 기행’의 대상이 아닌 ‘이주와 정착’이라는 삶의 공간으로 변하 게 된다. 최초의 이주민은 기근과 혹정(酷政)을 피해 도강을 선택한 ‘기민(飢民)’ 과도 같았던 농민들이 중심이었다. 이곳에 또 다른 층위의 성격이 부여된 것은 ‘한인 유림’들의 집단 이주로부터였다. 이들은 유교의 부흥을 도모하고 독립운동을 보조할 근거지를 확보하여, 한인들의 안정적인 정착과 삶의 지속을 기대하 며 이곳에 도착했다. 하지만 지리에 대한 미숙, 정치적 혼란 속에서 그들의 계 획은 온전히 진행되지 못하고 좌절되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창작된 작품들은 주 체성을 잃어가던 근대기 국내의 한시와는 차별된 작품 색을 드러냈고, 불의 앞에 꺾이지 않는 ‘의기(義氣)’로 대응했던 선현들의 문학적 전통이 계승되어 있 었다. 동시에 이들 작품은 근대 이민자들의 곡진했던 삶의 일면과 우수 가득한 내면을 담고 있는, 한국 근대 이산문학의 ‘수장(首章)’과도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줬다. 요컨대 이들 작품은 심양이라는 지역이 국경 너머의 한 도시 가 아니라 근대기 한국 이민사의 유의미한 지점이자 중요한 문학적 공간으로서, 한민족의 삶과 문학의 전개된 ‘이역 아닌 이역’으로 재인식되어야 하는 공간임을 웅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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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청 왕조의 발상지로서 매우 중요한 정치적· 문화적 상징성을 가졌던 중 국 심양은 근대전환기에 이르러 중국 동북 일대의 도시 중 가장 빠르게 도시화 · 공업화· 현대화 되었다. 교통의 발전으로 접근이 용이하고 또 넓은 평원을 보 유한 이곳에는 1910년 이후 수많은 한인들이 이주 및 정착을 시도했다. 이제 이곳은 ‘관찰이나 기행’의 대상이 아닌 ‘이주와 정착’이라는 삶의 공간으로 변하 게 된다. 최초의 이주민은 기근과 혹정(酷政)을 피해 도강을 선택한 ‘기민(飢民)’ 과도 같았던 농민들이 중심이었다. 이곳에 또 다른 층위의 성격이 부여된 것은 ‘한인 유림’들의 집단 이주로부터였다. 이들은 유교의 부흥을 도모하고 독립운동을 보조할 근거지를 확보하여, 한인들의 안정적인 정착과 삶의 지속을 기대하 며 이곳에 도착했다. 하지만 지리에 대한 미숙, 정치적 혼란 속에서 그들의 계 획은 온전히 진행되지 못하고 좌절되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창작된 작품들은 주 체성을 잃어가던 근대기 국내의 한시와는 차별된 작품 색을 드러냈고, 불의 앞에 꺾이지 않는 ‘의기(義氣)’로 대응했던 선현들의 문학적 전통이 계승되어 있 었다. 동시에 이들 작품은 근대 이민자들의 곡진했던 삶의 일면과 우수 가득한 내면을 담고 있는, 한국 근대 이산문학의 ‘수장(首章)’과도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줬다. 요컨대 이들 작품은 심양이라는 지역이 국경 너머의 한 도시 가 아니라 근대기 한국 이민사의 유의미한 지점이자 중요한 문학적 공간으로서, 한민족의 삶과 문학의 전개된 ‘이역 아닌 이역’으로 재인식되어야 하는 공간임을 웅변하고 있다.

Shenyang in China, which had a very important political and cultural symbolism as the birthplace of the Qing Dynasty, became the fastest urbanization, industrialization, and modernization among the cities in northeastern China around the 20th century. The development of transportation makes it easy for people to access the city which has a wide plain, and since 1910, numerous Koreans have attempted to relocate and settle here. At first, most of the migrants were not only farmers but also many Confucian intellectuals. Therefore, the symbolism of this place became more diverse, which became the base of the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and the center of the cultural movement. Although their plan was unsuccessful, their literature is significant. The characteristics of their literature are that it differs from domestic works and that past traditions are inherited. The works express their lives and inner feelings at the time, which is a meaningful text not only in Korean literary history but also in modern history and immigration history. Now Shenyang is more than just a foreign city. This was the stage of Korean history and a meaningful literary creation space. In other words, it is necessary to re-recognize it as an important space for national history rather than recognizing it as a foreign 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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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대~1920년대 재미 한인의 국어 교과서 연구 : 『유년필독』⋅『국민독본』⋅『초등국민독습』⋅『국어독본』을 중심으로 KCI 등재

이은선

경기대학교 인문학연구소 시민인문학 제44호 2023.02 pp.69-91

...한인의 국어 교과서를 분석 대상으로 선정하여, 교과서의 표기법, 교과서 출판의 인적 구성, 교과서 사이의 연속성과 차이점에 주목하였 다. 기존 논의에서 『유년필독』과 『국민독본』의 중간(重刊)은 이미 언급된 바 있다. 그러나 『유년필독』의 ‘범례’가 순한문으로 기술되어 있는 반면, 『국민독본』의 ‘범례’는 순한글로 변화한 지점 등은 충분히 논의되지 않았다. 『국어독본』과 학 부형 통신문, 표어 등을 통해 상항의 삼일(三一)국어학교의 교재와 운영의 일면 을 검토하였다. 이 교사용 자료를 통해 『초등국민독습』과 『국어독본』이 『유년필 독』·『국민독본』과 달라진 지점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또 삼일국 어학교의 국어 교육이 어떠한 목표를 지니고 있었는가를 살펴보았다. 이상의 논의를 통해 재미 한인의 국어 교과서와 국어 교육의 궁극적 목표를 더욱 깊이 이 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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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에서는 재미 한인의 국어 교과서를 분석 대상으로 선정하여, 교과서의 표기법, 교과서 출판의 인적 구성, 교과서 사이의 연속성과 차이점에 주목하였 다. 기존 논의에서 『유년필독』과 『국민독본』의 중간(重刊)은 이미 언급된 바 있다. 그러나 『유년필독』의 ‘범례’가 순한문으로 기술되어 있는 반면, 『국민독본』의 ‘범례’는 순한글로 변화한 지점 등은 충분히 논의되지 않았다. 『국어독본』과 학 부형 통신문, 표어 등을 통해 상항의 삼일(三一)국어학교의 교재와 운영의 일면 을 검토하였다. 이 교사용 자료를 통해 『초등국민독습』과 『국어독본』이 『유년필 독』·『국민독본』과 달라진 지점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또 삼일국 어학교의 국어 교육이 어떠한 목표를 지니고 있었는가를 살펴보았다. 이상의 논의를 통해 재미 한인의 국어 교과서와 국어 교육의 궁극적 목표를 더욱 깊이 이 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In this study, Korean textbooks for Koreans in America were selected as the subject of analysis, and attention was paid to the notation of the textbooks, the human composition of textbook publications, and the continuity and differences between textbooks. In the previous discussions, the reissue of Yunyeonpildog and Gugmindogbon has already been mentioned. However, the point that while the ‘Legend’ of Yunyeonpildog is described in pure Classical Chinese, the ‘Legend’ of Gugmindogbon has been changed to pure Korean has not been sufficiently discussed. Through Gug-eodogbon, school parent correspondences, and slogans, one aspect of the textbooks and management of Samil Korean Language School in San Francisco was reviewed. Through these materials for teachers, it was confirmed that Chodeung-gugmindogseub and Gug-eodogbon share the point that became different from Yunyeonpildog and Gugmindogbon. In addition, what goals Korean language education at Samil Korean Language School had, was examined. Through the above discussion, it is expected that the ultimate goal of Korean textbooks and Korean language education for Koreans in America will be understood more de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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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한인문학에서 징용 기억의 재현과 확산 ― 일본과 인니 지역을 중심으로 KCI 등재

최종환

국제한인문학회 국제한인문학연구 제34호 2022.12 pp.67-96

...한인 시에 담긴 징용의 기억을 비교 분석하는 일은 디아스포라 연구 분야에서도 가치가 있다. 이 연구의 목적은 기존 논의의 사각지대를 메움으로써 재외한인 문학의 폭을 확대하는 데 있다. 이 연구에서 는 기존 일본지역에 국한돼 논의돼온 징용의 주제를 적도 지역으로까지 확장하 는 새로운 시도를 진행한다. A·아스만이 '회상'과 관련하여 주장한 기억 활력론에 입각하여 이 사안을 새로이 읽는다. 연구의 과정에서 아래의 결론이 도출 됐다. 첫째, 총련계 재일조선인과 인니 한인 시인은 자신이 발 디딘 상황 속에서 선 세대의 징용을 회상하고 활성화하려 했다. 그러나 그 회상의 기반이 서로 달 랐다. 회상 내용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었다는 뜻이다. 총련계 재일조선 인에게 기억의 가장 큰 동기는 복수였다. 반면 인니 한인에게는 애도나 추모가 더 먼저였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총련계 재일조선인은 기억의 참상을 자주 증언 형식으로 재현했다. 그러나 인니 한인은 신세 한탄이나 연민을 앞세웠다. 둘째, 두 주체에게 징용의 공간은 노예의 공간처럼 기억됐다. 그것은 총련계 재일조선 인에게는 ‘갱도’, ‘다코베야’의 공간으로 인니 한인에게는 ‘무덤’ 등의 자리로 나 타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인니 한인의 시에는 조선인 군무원 이야기가 시작 되는 부분에서 침묵이 감돌고 있다. 그것은 총련계 시와는 다른 내성적 목소리 를 드러내는 순간이다. 이는 총련계 시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살이 찢기고 가정 이 파괴되는 징용 사태에 대한 기억 속에서는, 공화국이나 수령에 대해 맹목적 으로 추종돼 왔다고 알려진 그들의 문학적 관성은 때때로 유예되기도 했다. ‘일본-남양-인니’ 지역으로 건너간 징용자들의 기억을 읽어낸 이 문학적 고찰 은 역사 사료만으로는 잡히지 않는 하나의 목소리를 감지시킬 수도 있다. 그 점 에서, 이 연구는 징용 주제에 대한 문화기억학으로 외연 확장을 가능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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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이하: 인니) 지역 한인 시에 담긴 징용의 기억을 비교 분석하는 일은 디아스포라 연구 분야에서도 가치가 있다. 이 연구의 목적은 기존 논의의 사각지대를 메움으로써 재외한인 문학의 폭을 확대하는 데 있다. 이 연구에서 는 기존 일본지역에 국한돼 논의돼온 징용의 주제를 적도 지역으로까지 확장하 는 새로운 시도를 진행한다. A·아스만이 '회상'과 관련하여 주장한 기억 활력론에 입각하여 이 사안을 새로이 읽는다. 연구의 과정에서 아래의 결론이 도출 됐다. 첫째, 총련계 재일조선인과 인니 한인 시인은 자신이 발 디딘 상황 속에서 선 세대의 징용을 회상하고 활성화하려 했다. 그러나 그 회상의 기반이 서로 달 랐다. 회상 내용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었다는 뜻이다. 총련계 재일조선 인에게 기억의 가장 큰 동기는 복수였다. 반면 인니 한인에게는 애도나 추모가 더 먼저였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총련계 재일조선인은 기억의 참상을 자주 증언 형식으로 재현했다. 그러나 인니 한인은 신세 한탄이나 연민을 앞세웠다. 둘째, 두 주체에게 징용의 공간은 노예의 공간처럼 기억됐다. 그것은 총련계 재일조선 인에게는 ‘갱도’, ‘다코베야’의 공간으로 인니 한인에게는 ‘무덤’ 등의 자리로 나 타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인니 한인의 시에는 조선인 군무원 이야기가 시작 되는 부분에서 침묵이 감돌고 있다. 그것은 총련계 시와는 다른 내성적 목소리 를 드러내는 순간이다. 이는 총련계 시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살이 찢기고 가정 이 파괴되는 징용 사태에 대한 기억 속에서는, 공화국이나 수령에 대해 맹목적 으로 추종돼 왔다고 알려진 그들의 문학적 관성은 때때로 유예되기도 했다. ‘일본-남양-인니’ 지역으로 건너간 징용자들의 기억을 읽어낸 이 문학적 고찰 은 역사 사료만으로는 잡히지 않는 하나의 목소리를 감지시킬 수도 있다. 그 점 에서, 이 연구는 징용 주제에 대한 문화기억학으로 외연 확장을 가능하게 한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fill in the blind spots of existing discussions and expand the scope of Korean humanities abroad by comparatively analyzing the memories of conscription contained in Korean poems in ‘Japan’ and ‘Indonesia’. This study makes a new attempt to expand the subject of conscription which has been discussed only in Japan to the equatorial region. To this end, this study reads this issue anew based on the memory vitality theory that A·Asman argued in relation to ‘reminiscence’. The conclusions drawn from the research process are as follows. First, Chongryon-affiliated Korean poets in Japan and Korean poets in Indonesia recalled and revitalized the conscription of the previous generation in the situation which they stepped in. However, because the basis of the recollection was different, the contents of the recollection did not necessarily coincide. For Koreans in Japan who belonged to Chongryon, the greatest motive for memory was revenge. On the other hand, for Koreans in Indonesia, condolences and memorials were prioritized. Chongryon-affiliated Korean residents in Japan reproduced the misery of their memories in the form of testimony. However, Koreans in Indonesia put priority on lamentation and compassion. Second, to the two subjects, the space of conscription was remembered as a place of slavery. It was described as a space such as a ‘coal mine’ and ‘dakobeya’ for Chongryon-affiliated Koreans in Japan and a ‘tomb’ for Koreans in Indonesia. And there was a political or religious narrative of salvation. Lastly, in the poems of Koreans in Indonesia, an intimate silence flows at the beginning of the story of a Korean military official, revealing an introspective voice different from that of Chongryon poetry. This study reads the memories of conscripts who crossed over to the ‘Japan-Namyang-Indonesia’ region. This literary consideration detects a voice that cannot be captured by historical data alone. In that respect, this study makes it possible to expand the topic of conscription into cultural memory studies. Through this, not only will this study contribute to establishing the identity of Korean literature, but it can also promote communion with world literature or world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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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한인의 종교성 분석 - 가톨릭과 개신교 비교 - KCI 등재후보

김춘수

재외한인학회 재외한인연구 제59호 2022.11 pp.135-175

...한인들의 종교 생활에 관한 연구로,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 309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실시하여, 같은 신적 대상을 믿음의 주체로 여기고 있 는 개신교와 가톨릭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는 신도들이 종교에 참여하는 동기 분석 과 신앙 성숙에 미치는 요인이 무엇인지를 비교 분석하여 재미 한인들의 종교 생 활에 대해 알아보고, 종교성을 분석하기 위해 렌스키(G. Lenski)의 척도를 사용 하여 비교 분석하였다. 주된 결과로써는 가톨릭 신앙인이 종교 공동체에 참여하는 요인은 언어 소통이, 개신교 신앙인은 생활교류가 가장 높은 동기로 분석되었다. 전반적으로 렌스키의 척도에서 형식적인 측면인 신앙연수, 신자로서의 만족도, 축일에 대한 이해와 같은 형식적인 측면이 종교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되 었고, 개신교의 경우는 사회참여와 같이 실천적이고 활동적인 실천적인 측면이 종 교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재미한인 사회에서 종교는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 기 때문에, 더 활성화되고, 결속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각 종파에 맞는 새로운 방안 을 모색할 필요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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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인간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종교에 대한 연구로써, 종교는 하나의 믿음을 중심으로 모인 집단이지만, 단순히 신앙적인 부문만을 목적 으로 형성된 집단은 아니다. 특히 이주자에게 종교는 이주지에서 새로운 사회자본 을 형성할 수 있는 중요한 집단이다. 본 연구는 재미 한인들의 종교 생활에 관한 연구로,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 309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실시하여, 같은 신적 대상을 믿음의 주체로 여기고 있 는 개신교와 가톨릭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는 신도들이 종교에 참여하는 동기 분석 과 신앙 성숙에 미치는 요인이 무엇인지를 비교 분석하여 재미 한인들의 종교 생 활에 대해 알아보고, 종교성을 분석하기 위해 렌스키(G. Lenski)의 척도를 사용 하여 비교 분석하였다. 주된 결과로써는 가톨릭 신앙인이 종교 공동체에 참여하는 요인은 언어 소통이, 개신교 신앙인은 생활교류가 가장 높은 동기로 분석되었다. 전반적으로 렌스키의 척도에서 형식적인 측면인 신앙연수, 신자로서의 만족도, 축일에 대한 이해와 같은 형식적인 측면이 종교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되 었고, 개신교의 경우는 사회참여와 같이 실천적이고 활동적인 실천적인 측면이 종 교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재미한인 사회에서 종교는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 기 때문에, 더 활성화되고, 결속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각 종파에 맞는 새로운 방안 을 모색할 필요성이 있다.

This study is a study of religion, which is an important part of human life, and religion is a group gathered around one faith, but it is not a group formed solely for the purpose of the religious sector. In particular, for migrants, religion is an important group that can form new social capital in the migration site. This study surveyed 309 Koreans living in the United States to find out about the religious life of Koreans in the United States by comparing the motivational analysis of Protestants and Catholics who consider the same divine object as the subject of faith and what factors affect religious maturity. As the main result, language communication was analyzed as the factor for Catholic believers to participate in the religious community, and Protestant believers were analyzed as the highest motivation for life exchange. Overall, in the case of Catholicism, formal aspects such as the number of years of faith, satisfaction as a believer, and understanding of holidays were analyzed to affect religion, and in the case of Protestantism, practical and active aspects such as social participation affect religion. Since it is a self-evident fact that religion is an important part of the Korean-American society, it is necessary to find new ways to suit each sect in order to become more active and increase solidar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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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한인 ‘차세대’ 논의의 문제점과 제언 KCI 등재후보

주동완

재외한인학회 재외한인연구 제59호 2022.11 pp.53-86

...한인사회에서 2000년대 이전에는 ‘한인 2세’라는 말이 많이 사용되었다. 2000년대를 넘어서면서 ‘차세대(next generation)’란 용어가 ‘한인 2세’를 대체 해왔다. 보통 ‘차세대’는 ‘다음 세대’를 말한다. 그러나 그 용어가 지칭하는 연령 계 층이 너무 광범위하고 애매모호하다. 이 글은 미국의 뉴욕 현지에서 40년 가까이 살아온 한 학자의 ‘차세대’에 대한 참 여관찰을 통한 기록이다. ‘차세대’와 관련된 최근의 몇몇 신문기사를 사례로 하여 그동안 ‘차세대’에 관한 논의들의 문제점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그리고 그 문 제점들의 해결을 위해 필자 나름대로의 제언을 시도해보고자 한다. 재미 한인사회에서 ‘차세대’ 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해 먼저 인구학적인 면 에서 ‘차세대’의 등장과 그들이 누구인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차세대’ 의 문제점들로는 가장 중요한 문제인 그들의 정체성 문제를 중점적으로 살펴보고 그 밖의 여러 문제를 뭉뚱그려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이 글에서 제시되는 필자의 제언은 하나의 시도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시도가 가치 있다고 여겨지는 것은 ‘차세대’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통해 재미 한인사회의 미래와 발전을 기대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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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한인사회에서 2000년대 이전에는 ‘한인 2세’라는 말이 많이 사용되었다. 2000년대를 넘어서면서 ‘차세대(next generation)’란 용어가 ‘한인 2세’를 대체 해왔다. 보통 ‘차세대’는 ‘다음 세대’를 말한다. 그러나 그 용어가 지칭하는 연령 계 층이 너무 광범위하고 애매모호하다. 이 글은 미국의 뉴욕 현지에서 40년 가까이 살아온 한 학자의 ‘차세대’에 대한 참 여관찰을 통한 기록이다. ‘차세대’와 관련된 최근의 몇몇 신문기사를 사례로 하여 그동안 ‘차세대’에 관한 논의들의 문제점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그리고 그 문 제점들의 해결을 위해 필자 나름대로의 제언을 시도해보고자 한다. 재미 한인사회에서 ‘차세대’ 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해 먼저 인구학적인 면 에서 ‘차세대’의 등장과 그들이 누구인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차세대’ 의 문제점들로는 가장 중요한 문제인 그들의 정체성 문제를 중점적으로 살펴보고 그 밖의 여러 문제를 뭉뚱그려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이 글에서 제시되는 필자의 제언은 하나의 시도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시도가 가치 있다고 여겨지는 것은 ‘차세대’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통해 재미 한인사회의 미래와 발전을 기대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Before the 2000s, the term ‘second generation Koreans’ was used a lot in the Korean American community. Beyond the 2000s, the term ‘next generation’ has replaced ‘second generation Koreans’. “Next generation” usually means “next generation”. However, the age group to which the term refers is too broad. This article is a record of a scholar who has lived in New York, USA for nearly 40 years, through his participation in observation of the ‘next generation’. Taking some recent newspaper articles related to 'next generation' as an example, I would like to think about the problems of discussions about 'next generation'. And I would like to try my own suggestions to solve those problems. In order to point out the problems of the discussion of ‘next generation’ in the Korean American community, first of all, I would like to examine the emergence of ‘next generation’ in terms of demographics and who they are. In addition, I would like to examine some of the problems I want to point out in the discussion of ‘next generation’. As for the problems of the 'next generation', I would like to focus on their identity problem, which is the most important problem, and look at other problems together. The suggestions presented by the author in this article are only an attempt. Nevertheless, these attempts are considered valuable because the development of the Korean American community can be expected through a correct understanding of the ‘next gene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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