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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에 대한 신뢰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 서울시민들과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대도시권 한인들 간의 비교연구 KCI 등재
한국경찰연구학회 한국경찰연구 제12권 제4호 2013.12 pp.411-434
...한인들을 비교한 연구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 연구는 경찰에 대한 신뢰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도구적 인식모형과 표현적 인식모형으로 분류하여 분석의 틀을 구축하고 654명의 서울시민들과 209명의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대도시권 한인들에 대한 설문자료를 토대로 비교 검증하였다. 분석결과 서울시민 또는 디트로이트 한인으로 구분된 시민들의 소속도시가 경찰신뢰도에 대한 16%의 설명력을 보였다. 가설의 방향과 반대로 한 사회의 소수인종인 디트로이트 한인들보다 서울시민들의 경찰에 대한 신뢰도가 매우 유의미하게 낮은 수준이었다. 표현적 인식모형의 설명력이 도구적 인식모형에 비해 괄목할만하게 높았으며, 동네 주민들 간 응집력에 대한 인식이 서울시민과 디트로이트 대도시권 한인들 모두에게 있어서 가장 큰 영향력을 보였다. 도구적 인식모형 중에서는 범죄두려움이 유의미한 효과를 보였는데 흥미롭게도 서울시민들과 디트로이트 한인들 간 그 영향의 방향은 반대였다. 이러한 결과는 경찰이 범죄와 관련된 직접적인 현안에만 집중하기보다는 지역사회의 전통적인 가치와 질서의 보존 등 보다 근원적인 주민들의 삶의 질 관리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줌과 더불어 우리시민들과 외국계 한인들 간 비교연구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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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신뢰도에 대한 다양한 연구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도구적·표현적 인식모형의 이론적 틀 속에서 진행된 연구는 많지 않고 우리 시민들과 재미한인들을 비교한 연구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 연구는 경찰에 대한 신뢰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도구적 인식모형과 표현적 인식모형으로 분류하여 분석의 틀을 구축하고 654명의 서울시민들과 209명의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대도시권 한인들에 대한 설문자료를 토대로 비교 검증하였다. 분석결과 서울시민 또는 디트로이트 한인으로 구분된 시민들의 소속도시가 경찰신뢰도에 대한 16%의 설명력을 보였다. 가설의 방향과 반대로 한 사회의 소수인종인 디트로이트 한인들보다 서울시민들의 경찰에 대한 신뢰도가 매우 유의미하게 낮은 수준이었다. 표현적 인식모형의 설명력이 도구적 인식모형에 비해 괄목할만하게 높았으며, 동네 주민들 간 응집력에 대한 인식이 서울시민과 디트로이트 대도시권 한인들 모두에게 있어서 가장 큰 영향력을 보였다. 도구적 인식모형 중에서는 범죄두려움이 유의미한 효과를 보였는데 흥미롭게도 서울시민들과 디트로이트 한인들 간 그 영향의 방향은 반대였다. 이러한 결과는 경찰이 범죄와 관련된 직접적인 현안에만 집중하기보다는 지역사회의 전통적인 가치와 질서의 보존 등 보다 근원적인 주민들의 삶의 질 관리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줌과 더불어 우리시민들과 외국계 한인들 간 비교연구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Despite numerous studies on confidence in the police, relatively less effort has been made to test instrumental and expressive models of public confidence in policing especially in the Korean context. Even less attempt was made to compare confidence in policing between Koreans and Korean Americans. To fill this void, this study tested instrumental and expressive models of public confidence in policing simultaneously, by using the sample of 654 Seoul citizens and 209 Korean Americans in the Detroit Metropolitan Area, Michigan. Surprisingly nation and city group affiliation (Seoul versus Detroit) explained almost 16% of public confidence in policing. Compared to Korean Americans in the Detroit Metropolitan Area, Seoul citizens expressed significantly lower confidence in policing, which was contrary to the hypothesis. In addition, the expressive model was much better than the instrumental model in explaining confidence in policing. Especially, the variable ‘perceptions of neighborhood cohesion’ in the expressive model was the most powerful variable for both Seoul citizens and Korean Americans. Fear of crime in the instrumental model was significant, but the direction was the opposite between Seoul citizens and Korean Americans. These results show the possibility of comparative studies between Koreans and Korean Americans as well as the promising aspect of community oriented policing and community involvement as strategies in polic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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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 CIS Korean Literature describes the matters of, for example, environment, the aged, marriage between other nations, combine and discrimination between other nations that we have to considerate. CIS Koreans fought for their homeland Russia in the Russia internal war and the second world war as partizan. But 1937 Stalin has forcibly the korean in the Far East move to Central Asia. In the process many koreans are died or pressed. Here racial prejudice acted following Russia ultra-nationalism. Nonetheless CIS Koreans can not speak entirely the discrimination that they have received till 1956 that Stalin has died.. CIS Koreans began to think slowly their past history in 1960's. And after Perestroika and Glasnost in 1986 they can speak openly their deportation that the Soviet Union has had. The novel 'Kumkacman' reconstructs their painful history of deportation. However 'Looking for Dream' shows the discrimination between Russian and Korean, at the same time between CIS Korean and Sakhalin Korean. They equally have interiorized already the Russian's value that the Soviet Union makes a demand. CIS Korean discriminate Sakhalin Korean as Nezichi, and Sakhalin Korean discriminate CIS Korean as Ulmauze(the second Russian). The discord that CIS Korean and Sakhalin Korean show implies with no fetters of the modern history in Korea. Therefore compromise between them can be possible when they recognize exactly their history. And this will be applied to the Korean peninsula.
5.18, 민주주의 위기 그리고 유럽한인의 대응양상 KCI 등재
위기관리 이론과 실천 한국위기관리논집 제9권 제10호 2013.10 pp.6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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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신군부의 등장이후 헌정질서의 위기상황에서 유럽지역을 중심으로 펼친 교민들의 민주화운동과 단체의 활동상을 고찰하였다. 유럽지역 교민들은 미국과 일본과 비교하여 작은 규모이지만 민주화운동을 상대적으로 활발히 전개하였고 그 영향력을 크게 미쳤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5.18 민중항쟁의 좌절이후 한국의 민주주의 위기로 인하여 일반교민들은 사회의식에 눈을 떴으며 민주화운동에 참여하도록 하는 계기를 이루었다. 당시 교민들이 민주주의 위기에 대해 어떠한 활동방식을 전개했는지, 자발적인 민주화운동을 통해 국내의 억압된 정책에 어떻게 대응을 했는지 그 양상을 고찰하였다. 이어진 장에서 교민단체가 국제사회에서 현지정당과 시민단체와 연계하여 한국의 민주화에 관한 여론형성을 현지에서 어떻게 이끌어내었는지 밝히고자 하였다. 끝으로 오늘날 교민사회운동이 약화된 상황에서 구심력의 역할을 맡아온 오월민중제의 의미성을 살피고자 했다.
This research deals with the democratic movement of Koreans in Europe after the 18th May Democratic Uprising. This work tries to describe the democracy movement of the Koreans abroad and the history of Korean groups in Europe. In particular, the ideas of the groups for the democracy of Korea are analyzed and the movements are explained in the framework of international circumstances. Following the announcement of the Gwangju massacre in 1980 many Koreans had taken part in the demonstration in Europe. In the crisis of democracy the Koreans abroad played a leading role against military dictatorship. The demonstration in Europe is evaluated by the three aspects for the evolving democracy in Korea. The first of the three is that the Uprising induced public participation; Second, the Koreans abroad had fought with different groups for democracy at the international level. Third, the Koreans abroad expanded the citizen movement to the unification movement. The 18th May Gwangju Uprising and succession of its sprit could be called as decisive operator to realize the democracy in Korea. Since May 1987, the memorial May Minjungje is continuously held once a year and is organized by the Preparatory Commission of various groups. The spirit of the Gwangju Uprising has resonated with Koreans in the global movement for democracy and human rights. In this paper Lee Jong-hyun, Kim Jin-hyang, Lee Jun-sik, Kim A-il, Kim Jung-suk, Jang Il-Jung, Yun Un-sub, Choi Young-Suk and Choi Hyun-duk are concretely examined and their activities are described. This study of the democracy movement of the Koreans in Europe has the meaning to lay the foundations in this area of re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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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provide basal informations for finding a specific strategy about overseas venture of domestic taekwondo instructors who studied the major and to predict the taekwondo education fluctuation for generation shifting (2 generation) taekwondo market in the USA through analyzing the factors of success that immigrants have been run taekwondo gym. This study is organised as the following results : First, although there are faced with many difficult things such as different languages and different cultures containing with the barrier of communication, the immigrants have been overcomed with the nature of self-esteem as Korean and the great help from neighbors prior to lived in the USA. Second, there are shown to the establishment of the taekwondo identity that has been setted on the basic education philosophy and the reliance and hope to consumers, improved level of taekwondo gym business. In addition, the key of success depends on these things such as rapid language and culture adaptation, disposition of instructor and publicity work of taekwondo gym. Third, the training program for the taekwondo trainees in America was almost same as that of Korea like elementary school students-centered. However, TKD trainees, was gradually increased in every year irrespective of sex, and age. Therefore, we were proposed of adequate system and long-term program development. Furthermore, the management of taekwondo gym was required to have not only excellent program, but also to nurture professional expert.
재일한인작가 이양지 소설에 나타난 모국 이해와 치유의 서사적 재현 KCI 등재
한중인문학회 한중인문학연구 제40집 2013.08 pp.47-69
...한인에게 모국은 상처다. 모국을 밝히는 순간, 정주국에서 배제되는 아픔의 기억은 오 랜 트라우마로 작용한다. 재일한인작가 이양지1) 또한 이러한 트라우마를 갖고 있었다. 일본에 서 여러 겹의 경계 밖에 살면서도 그녀는 자신의 불행을 끌어안고만 있지 않았다. 그녀는 상 처를 방치하지 않았고 자신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적극적으로 그 상처의 기원인 모국에 대한 이해를 예술적으로 승화하기 위해 노력한 작가이다. 치유는 상처를 이해함으로부터 시작된다. 자신의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회피하지 않기란 쉽지 않다. 이양지도 처음에는 자신을 불행하게 하는 상처의 기원을 알고 외면하고 부정한다. 그러나 부정은 치유를 약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자신의 상처에 화해와 용서의 손을 내민 다. 그것은 이해하기의 행위이다. 그녀가 모국을 이해하기 위한 행위는 모국의 소리와 모국의 몸짓에 본능적인 끌림으로 재현된다. 1975년, 이양지는 가야금과 한국춤사위에 매혹당하고 그 소리와 몸짓이 자신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것을 느낀다. 이양지는 이 모국의 감각이 모국에 대 한 상처를 치유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녀는 이 모국의 감각을 직접 모국에서 체득하기 로 결정한다. 이양지는 <해녀>, <각>, <나비타령>과 <유희>에서 그녀가 체험한 모국을 재현한다. 그 녀는 소설에서 자신이 아닌 타자의 시점과 목소리로 자신을 대상화하고 객관화한다. 이러한 시점변화기법은 모국을 이해하고 치유하려는 역지사지, 입장바꾸기의 서사적 재현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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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한인에게 모국은 상처다. 모국을 밝히는 순간, 정주국에서 배제되는 아픔의 기억은 오 랜 트라우마로 작용한다. 재일한인작가 이양지1) 또한 이러한 트라우마를 갖고 있었다. 일본에 서 여러 겹의 경계 밖에 살면서도 그녀는 자신의 불행을 끌어안고만 있지 않았다. 그녀는 상 처를 방치하지 않았고 자신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적극적으로 그 상처의 기원인 모국에 대한 이해를 예술적으로 승화하기 위해 노력한 작가이다. 치유는 상처를 이해함으로부터 시작된다. 자신의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회피하지 않기란 쉽지 않다. 이양지도 처음에는 자신을 불행하게 하는 상처의 기원을 알고 외면하고 부정한다. 그러나 부정은 치유를 약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자신의 상처에 화해와 용서의 손을 내민 다. 그것은 이해하기의 행위이다. 그녀가 모국을 이해하기 위한 행위는 모국의 소리와 모국의 몸짓에 본능적인 끌림으로 재현된다. 1975년, 이양지는 가야금과 한국춤사위에 매혹당하고 그 소리와 몸짓이 자신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것을 느낀다. 이양지는 이 모국의 감각이 모국에 대 한 상처를 치유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녀는 이 모국의 감각을 직접 모국에서 체득하기 로 결정한다. 이양지는 <해녀>, <각>, <나비타령>과 <유희>에서 그녀가 체험한 모국을 재현한다. 그 녀는 소설에서 자신이 아닌 타자의 시점과 목소리로 자신을 대상화하고 객관화한다. 이러한 시점변화기법은 모국을 이해하고 치유하려는 역지사지, 입장바꾸기의 서사적 재현이라 할 수 있다.
Korean-Japanese female writer Yang-Ji Lee is outsider, or minority, that has not been able to settle down in her host country. Lee is a subaltern who has suffered. At the origin of her pain is the fact that she has settled down in Japan as part of a diaspora. She experienced a higher degree of alienation and exclusion in her motherland, which she had visited out of longing. To the diaspora living in a host country, the motherland is a wound that can never be stitched up. However, she overcomes the violence prejudice of those that regard her as an object through efforts to objectify herself through her work. Yang-Ji Lee discovers her identity by reviewing and pondering her status as an 'other'–a status created through the views of the majority. The healing of her trauma is completed inside the novel, which is the space of writing.
글로벌 도시국가 싱가포르의 한인사회 : ‘이주’와 ‘정착’
동덕여자대학교 한중미래연구소 동덕여자대학교 한중미래연구소 학술대회 재중한인 이주와 정착의 재검토 2013.08 pp.9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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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덕여자대학교 한중미래연구소 동덕여자대학교 한중미래연구소 학술대회 재중한인 이주와 정착의 재검토 2013.08 pp.7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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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이주와 현지 한인사회의 형성과 변화 KCI 등재후보
재외한인학회 재외한인연구 제30호 2013.06 pp.77-116
...한인사회의 형성과 변화, 그리고 그 특징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 논문에서는 한인들의 이주 유형과 특성이 이주 시기별로 차이를 보인다는 점에 주목해 ‘한 지붕 아래 두 가족’ 개념으로 멕시코 한인사회를 개괄적으로 살펴보는 데 관심을 두었다. 우리의 해외 이주는 식민지 시기와 그 이후를 비교할 때 이주 시기와 형태, 이주와 현지 정착 경험에서 확연한 차이가 있는 한인 집단이 공존하는 분단적 성격을 띠는 경향이 있는데, 멕시코 사례에서도 마찬가지 양상이 나타났다. 좀 더 구체적으로, 1905년 노끈이나 밧줄 또는 마포를 만드는 재료로 사용된 식물인 에네껜 농장의 계약노동자로 들어간 한인들과 그 후손과 1964년 멕시코와의 수교 이후 멕시코로 이주한 한인들은 그들의 이주 형태와 이주 경험에서 확연한 차이가 있다. 1905년 멕시코 이민은 노동이동형, 1960년대부터는 자유형 디아스포라로 유형화할 수 있으며, 특히 1960년대 이후 자유형 디아스포라는 각자의 동기에 따라 상업적 이주형 혹은 자유이주형 이민으로 유형화할 수 있는데, 남미로 이주했던 한인들이 멕시코로 재이주하는 3각 이주 형태가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멕시코한인 사례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시대에 걸쳐 한인들의 이주 형태와 이주 경험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에 해외한인과 한인사회 구조를 이해하는데 있어서는 한인들에게서 매우 다양한 디아스포라적 속성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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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에서는 멕시코 이주의 시기별 양상과 이주의 유형 변화에 주목해 멕시코 한인사회의 형성과 변화, 그리고 그 특징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 논문에서는 한인들의 이주 유형과 특성이 이주 시기별로 차이를 보인다는 점에 주목해 ‘한 지붕 아래 두 가족’ 개념으로 멕시코 한인사회를 개괄적으로 살펴보는 데 관심을 두었다. 우리의 해외 이주는 식민지 시기와 그 이후를 비교할 때 이주 시기와 형태, 이주와 현지 정착 경험에서 확연한 차이가 있는 한인 집단이 공존하는 분단적 성격을 띠는 경향이 있는데, 멕시코 사례에서도 마찬가지 양상이 나타났다. 좀 더 구체적으로, 1905년 노끈이나 밧줄 또는 마포를 만드는 재료로 사용된 식물인 에네껜 농장의 계약노동자로 들어간 한인들과 그 후손과 1964년 멕시코와의 수교 이후 멕시코로 이주한 한인들은 그들의 이주 형태와 이주 경험에서 확연한 차이가 있다. 1905년 멕시코 이민은 노동이동형, 1960년대부터는 자유형 디아스포라로 유형화할 수 있으며, 특히 1960년대 이후 자유형 디아스포라는 각자의 동기에 따라 상업적 이주형 혹은 자유이주형 이민으로 유형화할 수 있는데, 남미로 이주했던 한인들이 멕시코로 재이주하는 3각 이주 형태가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멕시코한인 사례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시대에 걸쳐 한인들의 이주 형태와 이주 경험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에 해외한인과 한인사회 구조를 이해하는데 있어서는 한인들에게서 매우 다양한 디아스포라적 속성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In this paper, research is the basis for in-depth study of the Koreans and its community in Mexico. This study aims at examining the characters of overseas Koreans as diaspora and constitutional features of global network in view of diasporatic perspectives. We examine changes in the structure and configuration of Korean society in Mexico, and its features to pay attention to changes in the type of time-specific patterns of migration, Mexico and the diaspora. We can see the Koreans who the settlement difference in the two Korean groups that coexist in Mexico. Historically, the migrant type of Koreans to Mexico in 1905 was the labor migration type and has changed to voluntary migration type since 1960s. As can be seen in the case of the Koreans in Mexico, migration patterns and migration experiences of Koreans from throughout the ages were very different. Therefore, it should be taken into account that it can be appeared a mixture of old and new diasporatic characteristics in the structure of overseas Koreans and Korean community.
독일 한인간호사들의 간문화성에 대한 연구 : 베를린 한인간호사들의 문화 활동을 중심으로 KCI 등재
한독사회과학회 한독사회과학논총 제23권 제1호 2013.03 pp.123-156
...한인 간호사들의 문화 활동 그 중에서도 무용단 활동에 주목하고 있다. 왜냐하면 한인 간호사들은 무용단 활동을 통해 독일과 한국의 문화를 소통시키는 문화적 교량 역할을 수행하여 간문화성의 특징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은 베를린 한인간호사들의 문화 활동에 잠재되어 있는 이주노동자로서의 구체적인 삶을 이해하기 위해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총 4차례 9개월간 베를린에 체류하면서 현장연구를 수행하였다. 현장연구 과정에서 수집한 자 료와 심층면접을 통해 한인간호사들의 간문화성을 강화시키는 요인과 약화시키는 요인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특히 연구자들은 한인간호사들이 문화 활동을 하면서 무용단과 결합되는 다양한 사회적 관계망과 시간이 한인 간호사의 간문화성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한 요인임을 강조하였다. 이를 통해 연구자들은 간문화성의 특징인 구성적, 과정적 그리고 역동적 차원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마지막으로 올해는 한인 간호사들이 독일에 온지 5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 연구를 통해 보다 심층적인 한인간호사들에 대한 후속 연구가 나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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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지금까지 간문화성에 대한 추상적인 논의에서 벗어나 구체적인 행위자인 파독 간호사에 초점을 두고 있다. 파독 간호사들은 길게는 50년 짧게는 30년 이상 독일에서 이주 생활을 해 오고 있다. 따라서 파독 간호사들은 간문화성의 구체적인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연구자들은 한인 간호사들의 문화 활동 그 중에서도 무용단 활동에 주목하고 있다. 왜냐하면 한인 간호사들은 무용단 활동을 통해 독일과 한국의 문화를 소통시키는 문화적 교량 역할을 수행하여 간문화성의 특징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은 베를린 한인간호사들의 문화 활동에 잠재되어 있는 이주노동자로서의 구체적인 삶을 이해하기 위해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총 4차례 9개월간 베를린에 체류하면서 현장연구를 수행하였다. 현장연구 과정에서 수집한 자 료와 심층면접을 통해 한인간호사들의 간문화성을 강화시키는 요인과 약화시키는 요인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특히 연구자들은 한인간호사들이 문화 활동을 하면서 무용단과 결합되는 다양한 사회적 관계망과 시간이 한인 간호사의 간문화성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한 요인임을 강조하였다. 이를 통해 연구자들은 간문화성의 특징인 구성적, 과정적 그리고 역동적 차원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마지막으로 올해는 한인 간호사들이 독일에 온지 5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 연구를 통해 보다 심층적인 한인간호사들에 대한 후속 연구가 나오길 바란다.
This study gets out of abstract discussion of Interculturality and then discusses interculturality with the focus on korean nurses' cultural activities in Berlin. Korean nurses have been living in Germany short as long as 30 years, 50 years as immigration. Thus korean nurses in Berlin are specific target of interculturality studies. pecifically, researchers are payung attention to korean nurses' activities. Activities of dance team is the thing that researchers pay attention most of all. Because, korean nurses palyed a role as cultural bridge between Germany and Korea through activities of dance team and it can explain well about interculturality. Researchers have visited to Germany four times and have stayed for 9 months till 2010 since 2007 to understand their specific lives which is latent under the cultural activities as migrant workers. Researchers try to investigate each of the factors that could strengtgen or weaken Korean nurses' interculturality through data n in -depth interviews of field studies. Especially, the resesarchers emphasis that form a network of dance teams and time in korean nurses' culture activities are some of the major factors that could affect interculturality through this, redearcher exhibit constitutive process and the dynamic aspects of interculturality, which are the key features of interculturality. Finally, this year is the 50th anniversary of which korean nurses have been in Germany. Through this study, I hope korean nurses lives get studied more in -depth.
재일한인작가 정승박 소설에 나타난 ‘태평양 전쟁체험’과 ‘내셔널리티’ KCI 등재
한중인문학회 한중인문학연구 제38집 2013.02 pp.21-43
...한인이 발생한 기원은 전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전쟁의 발발로 동아시아인의 대 이 주, 재일한인의 디아스포라가 발생되었으며, 그들의 혼곤한 삶이 시작되었다. 전쟁이라는 사 건 속에 내던져진 운명으로 인해 재일한인의 정체성은 지금까지 미결정되어 있으며 이들은 여전히 부유하고 있다. 재일한인은 자신의 내셔널리티를 전쟁을 통해 최초로 인식하였고, 결 과적으로 전쟁 속에서 모호해지는 자신의 非내셔널리티를 각성하게 된다. 전쟁은 재일한인의 내셔널리티의 실체를 각성하게 되는 사건적 계기로 작동하는 것이다. 정승박의 소설에서는 작가 자신의 표상인 주인공 ‘승덕’이 유동적 주체로 자신을 자각하고 스스로 비국민에서 초국민이 ‘되어’ 가는 과정적 주체의 진행형 서사를 목도할 수 있다. 처음 에는 자신이 비국민이며 무국적의 인간이라는 것에 공포와 분노를 느끼지만, 이러한 공포와 분노로 인해 그는 탈주할 기획을 수립한다. 비국민의 위치에 대한 공포는 탈주에 대한 기획을 세우고 수행하게 된 계기를 마련하며 이러한 과정적 서사의 발현은 재일한인의 저항적 수행 성이 시작되는 지점인 것이다. 재일한인작가 정승박은 ‘포로 수용소’라는 이질적 공간 속에서 함께 전쟁을 경험하는 아시 아적 신체들과 자신을 대칭적으로 위치해 보면서 자신의 내셔널리티를 변증법적으로 구축하 게 된다. 이러한 과정적 인식은 전쟁 포로의 체험과 탈주라는 서사로 재현된다. 전쟁을 함께 경험하는 포로로서 재일한인은 중국군이라는 타자와의 교섭적 사고작용을 통 해 자신을 국가적, 민족적으로 재위치화 한다. 그리고 화자인 ‘나’는 비국민이라는 과정적 사 고를 거쳐 이념과 인종, 민족을 초월한 초민족적 내셔널리티, 트랜스내셔널리티의 신체를 획 득한다. 인간의 유한성은 내셔널리티에 의해 불멸성을 보장받는 것이 아니라 인류애라는 초내 셔널리티로 획득되는 휴머니즘을 통해 극복되는 것이라는 인식의 확장을 정승박의 소설에서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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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한인이 발생한 기원은 전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전쟁의 발발로 동아시아인의 대 이 주, 재일한인의 디아스포라가 발생되었으며, 그들의 혼곤한 삶이 시작되었다. 전쟁이라는 사 건 속에 내던져진 운명으로 인해 재일한인의 정체성은 지금까지 미결정되어 있으며 이들은 여전히 부유하고 있다. 재일한인은 자신의 내셔널리티를 전쟁을 통해 최초로 인식하였고, 결 과적으로 전쟁 속에서 모호해지는 자신의 非내셔널리티를 각성하게 된다. 전쟁은 재일한인의 내셔널리티의 실체를 각성하게 되는 사건적 계기로 작동하는 것이다. 정승박의 소설에서는 작가 자신의 표상인 주인공 ‘승덕’이 유동적 주체로 자신을 자각하고 스스로 비국민에서 초국민이 ‘되어’ 가는 과정적 주체의 진행형 서사를 목도할 수 있다. 처음 에는 자신이 비국민이며 무국적의 인간이라는 것에 공포와 분노를 느끼지만, 이러한 공포와 분노로 인해 그는 탈주할 기획을 수립한다. 비국민의 위치에 대한 공포는 탈주에 대한 기획을 세우고 수행하게 된 계기를 마련하며 이러한 과정적 서사의 발현은 재일한인의 저항적 수행 성이 시작되는 지점인 것이다. 재일한인작가 정승박은 ‘포로 수용소’라는 이질적 공간 속에서 함께 전쟁을 경험하는 아시 아적 신체들과 자신을 대칭적으로 위치해 보면서 자신의 내셔널리티를 변증법적으로 구축하 게 된다. 이러한 과정적 인식은 전쟁 포로의 체험과 탈주라는 서사로 재현된다. 전쟁을 함께 경험하는 포로로서 재일한인은 중국군이라는 타자와의 교섭적 사고작용을 통 해 자신을 국가적, 민족적으로 재위치화 한다. 그리고 화자인 ‘나’는 비국민이라는 과정적 사 고를 거쳐 이념과 인종, 민족을 초월한 초민족적 내셔널리티, 트랜스내셔널리티의 신체를 획 득한다. 인간의 유한성은 내셔널리티에 의해 불멸성을 보장받는 것이 아니라 인류애라는 초내 셔널리티로 획득되는 휴머니즘을 통해 극복되는 것이라는 인식의 확장을 정승박의 소설에서 발견하게 된다.
It is the period to call the area of category which is East Asia. Its purpose is seemed to cope with monolithic globalization by calling Korea․China․Japan with the substitute word of East Asia since the late 1970s rather than the name to call East and West. As for the solidarity of East Asia, common fundamental experience to form a connection with historical experience without geological calling precedes. This ‘common denominator of fate of East Asia’ is the memory of daily waywardness and damage of national violence. This East Asia is the calling derived from fundamental experience of pain of war and separation. In the origin of shared memory of East Asia, war and conquest and violence are located rather than peace. And to remember this experience can be worked as very significant standard in the present to form new solidarity of East Asia. As records of war from the point of view of the subjugated, there is a series of novels “A Naked Captive” of Jeong, Seung Bak, the Korean writer in Japan. Experimental novel “A Naked Captive” received the fifteenth award of peasant literature of Japanese Agrarian Literature Association in 1972, and it wrote the suffering of forced labor with Chinese captive in the Nigata concentration camp. The novel of Jeong, Seung Bak recorded the war experience that Korean in Japan experienced. However, by reproducing a marginal man of breakaway as ‘Seung-Deok’, the young man with pure soul who practiced humanity not a minority who was stricken with a victim mentality and helpless, the ethical consciousness of humanity and philanthropy that are never broken by war was inspired. In the novel of Jeong Seung Bak which was constructed by experiencing the war by Korean in Japan, it is possible to confirm the belief toward humanity arrived by transcending cognition for nation and people and nation-state. Historical narrative of new East Asia should be constructed on the basis of these realizations. Records experienced by each nation in the war that the whole East Asia went through together should be read and combined from the point of view of individual main agent. By doing this, it is possible to reflect how the territory setting so-called nation and war, which is the biggest violence committed by crashing nation-states worked as a regulation to lose humanity.
사할린 한인디아스포라의 민족문화정체성 형성과 변천과정 연구 : 설문조사를 중심으로 KCI 등재후보
재외한인학회 재외한인연구 제29호 2013.02 pp.113-152
...한인들은 1938년에 한반도의 남쪽에서 당시 일본의 영토였던 러시아 남 사할린으로 강제징용을 당했던 사람들의 후손들이다. 그들은 2~3 세대로 구성되어 있으며, 현재 사할린에는 약 24,993 명이 살고 있고, 약 12,000명은 러시아와 CIS 국가들의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다. 사할린 한인은 식민지체제와 냉전체제의 역사적 복합요소에 의해서 생성된 러시아 연방의 대표적인 한민족 집단이다. 본 연구는 사할린 한인사회의 이주역사의 특성과 민족 정체성 형성과 그 변화, 그리고 특히 최근에 젊은 한인 세대가 겪었던 민족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들을 살펴보는데 있다. 이를 위해 필자는 2012년 7월에 사할린주의 수도인 유즈노사할린스크시에서 연령, 계층, 직업 등의 구별 없이 사할린 한인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남한 출신 이민 1세대에 비해 러시아에서 태어난 2세와 3세대들이 가지는 본국과의 동질성은 매우 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으로 고향으로서 한국을 그리워하는 1세대와는 달리 2~3 세대의 대부분은 경제적인 상황을 해결하거나 러시아에서 보다 더 좋은 삶을 찾기 위해 한국으로 가고 싶어 했다. 러시아에서 태어난 한인 2~3 세대에게 고향은 러시아이고 한국은 조상의 고향일뿐인 것이다. 또한 사할린 한인 4세대 중에는 자신을 한인이 아닌 러시아인으로 인정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사할린 한인의 민족 정체성에 상당한 변화가 생기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2~3세대들이 비록 한국어를 구사하는 능력이 제한되고, 한민족의 역사, 문화에 관한 지식은 부족한 반면, 한인으로서의 민족 정체성과 애착은 강하게 표출되고 있었다. 젊은 세대의 대부분은 러시아 국민으로 살아가면서도 자신이 한인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또한 그들은 후손들이 민족어와 한민족의 문화 및 풍습을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해외한인은 어디에서 살든 한민족의 민족의식을 지지하고 지원한다는 믿음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특히 최근 다문화 국제교류의 시대에 해외한인들은 한국의 국제 교류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중요한 집단이 되고 있다. 넓은 러시아에서 유일하게 한국으로의 귀환(영주귀국)과 정신적으로 가까운 유대관계를 유지해온 사할린 한인들의 경우도 한국과 러시아의 정치·경제·문화 등의 교류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해외의 민족적 자원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과 러시아 간에 적극적인 교류와 통일한국을 지향하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도 사할린의 한인 젊은세대에 주목해야 하며, 앞으로도 한인들의 현재 모습과 전망을 구체적으로 접근해 나갈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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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러시아 사할린 섬에 거주하는 한인들은 1938년에 한반도의 남쪽에서 당시 일본의 영토였던 러시아 남 사할린으로 강제징용을 당했던 사람들의 후손들이다. 그들은 2~3 세대로 구성되어 있으며, 현재 사할린에는 약 24,993 명이 살고 있고, 약 12,000명은 러시아와 CIS 국가들의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다. 사할린 한인은 식민지체제와 냉전체제의 역사적 복합요소에 의해서 생성된 러시아 연방의 대표적인 한민족 집단이다. 본 연구는 사할린 한인사회의 이주역사의 특성과 민족 정체성 형성과 그 변화, 그리고 특히 최근에 젊은 한인 세대가 겪었던 민족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들을 살펴보는데 있다. 이를 위해 필자는 2012년 7월에 사할린주의 수도인 유즈노사할린스크시에서 연령, 계층, 직업 등의 구별 없이 사할린 한인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남한 출신 이민 1세대에 비해 러시아에서 태어난 2세와 3세대들이 가지는 본국과의 동질성은 매우 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으로 고향으로서 한국을 그리워하는 1세대와는 달리 2~3 세대의 대부분은 경제적인 상황을 해결하거나 러시아에서 보다 더 좋은 삶을 찾기 위해 한국으로 가고 싶어 했다. 러시아에서 태어난 한인 2~3 세대에게 고향은 러시아이고 한국은 조상의 고향일뿐인 것이다. 또한 사할린 한인 4세대 중에는 자신을 한인이 아닌 러시아인으로 인정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사할린 한인의 민족 정체성에 상당한 변화가 생기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2~3세대들이 비록 한국어를 구사하는 능력이 제한되고, 한민족의 역사, 문화에 관한 지식은 부족한 반면, 한인으로서의 민족 정체성과 애착은 강하게 표출되고 있었다. 젊은 세대의 대부분은 러시아 국민으로 살아가면서도 자신이 한인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또한 그들은 후손들이 민족어와 한민족의 문화 및 풍습을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해외한인은 어디에서 살든 한민족의 민족의식을 지지하고 지원한다는 믿음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특히 최근 다문화 국제교류의 시대에 해외한인들은 한국의 국제 교류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중요한 집단이 되고 있다. 넓은 러시아에서 유일하게 한국으로의 귀환(영주귀국)과 정신적으로 가까운 유대관계를 유지해온 사할린 한인들의 경우도 한국과 러시아의 정치·경제·문화 등의 교류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해외의 민족적 자원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과 러시아 간에 적극적인 교류와 통일한국을 지향하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도 사할린의 한인 젊은세대에 주목해야 하며, 앞으로도 한인들의 현재 모습과 전망을 구체적으로 접근해 나갈 필요가 있을 것이다.
This study focuses on the ethnic identity of Sakhalin Korean. Nowadays Korean who lives on the Sakhalin Island is the posterity of Korean who was impressed by Japanese to go to the Sakhalin Island from 1938 year, when the South part of the Island was into Japanese possession. They composed of 2~3 generations, from which about 24, 000 are living on the Sakhalin and about 12,000 are living in different parts of Russia and CIS. The Sakhalin Korean in compliance with the historical complex element of colony setup and the cold war system are the representative Korean race group of the Russian Federation. The research pays attention on the Sakhalin Korean, observes their historical immigration quality and ethnic identity characteristic formation, also the recently changes in the Sakhalin Korean's society, especially the changes in Korean young generation’s ethnic identity, and their ethnic identity problems. For this, it was made a question investigation in 2012, on July, took place in Sakhalin’s capital Yuzhno-Sakhalinsk, objected on Korean all age and without distinction by class and the occupational back, who are living now on the Sakhalin Island. The result showed, that in compare with the first generation emigrates, who were born in the South Korea, the second and the third generations, which were born in Russia, have very weak identity with the historic motherland. In difference with the first generation, who missed Korea as their motherland, the most of 2~3 generations want to go to Korea only for solving a difficult economic situation or looking for a better life. In the 4 generation of the Sakhalin Korean there are many, who identify themselves as Russian not as Korean. This fact shows, that there are considerable changes, which are forming in the ethnic identity of the Sakhalin Korean now. But even be the Russian citizen, most of young generation proud of their Korean being. And they think, that the next generations should to maintain Korean language, traditional culture and customs. It is give a definitely believe, that Overseas Koreans, does not matter where they live, safe their ethnic consciousness as Korean. Especially nowadays, the era of cultural and foreign exchanges, Overseas Koreans become an important group, which can help Korea in making different foreign relations. The Sakhalin Korean is only one Korean ethnic group, which could repatriate and have more close relationship with South Korea, than another Korean groups in all CIS and Russia, that is why they can help in making a politic, economic, cultural and etc. exchanges between Korea and Russia and become a future of South Korea's society. The third generation of the Sakhalin Korean, in difference with the first or second generations, shows a characteristic identity and can devote South Korea's development. And for progressive exchanges between South Korea and Russia it should pay attention to the young generation of the Sakhalin Korean and make more concretely analysis of their image and prospect. So there is necessity in researching of the Russian Korean, especially the Sakhalin Korean in different point of view, as it was made about Central Asia Koreans. This study about the Sakhalin Korean's ethnic identity should be considered as a one of such future researches.
다민족 사회, 소수민족, 코리안 아메리칸 : 재미한인사회에 대한 사회인류학적 접근 KCI 등재후보
재외한인학회 재외한인연구 제29호 2013.02 pp.187-193
...한인사회 관련 저술들을 미국사회의 다민족적 현실이라는 틀 속에서 체계화한 저서이다. 재미한인은 이주지인 미국이 지니는 국제적 영향력이라는 점 뿐 아니라, 해외 거주 한인 중 가장 규모가 큰 집단으로서, 가장 활발하게 모국과 교류하며 한국사회의 정치, 경제, 문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에서 재외한인 연구 상 그 중요성과 의의가 주목되며 적지 않은 연구가 진행되어 왔다. 그러나 저자는 그간의 연구가 이민의 역사나 개인적 경험에 대한 서술 또는 실태 조사 등 미국사회의 맥락에서 동떨어진 한국이민 자체에 치우쳐 있었음을 지적하며, 재미한인사회의 “문제점을 미국의 민족문제 및 소수민족정책과 연계하여 살펴보는데(5쪽)” 저서의 목표가 있다고 밝힌다. 이민, 이주민 집단을 포함하여 다민족 사회에서의 민족집단 연구와 관련, 타민족집단과의 관계 속에서 정체성과 집단 경험이 형성, 재형성된다는 프레드릭 바스(Barth 1969)식의 과정론적 접근이 이제 인류학 및 민족관계를 연구하는 사회과학 전반에서 소통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외한인 연구에서 여전히 이주지와 연계된(hyphenated) 현실보다는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에 주목하는 경향은, 한동안 해외에 거주하는 한인에 대해 ‘재미동포’, ‘재일동포’, ‘재중동포’ 등 동포라는 혈연적 어휘를 지배적으로 사용하며 다민족적 상황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한국사회의 현실 및 대중적 정서와도 상통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민의 역사가 비교적 짧아 실제 재미한인 집단이 코리안 아메리칸으로서의 사회적 입지를 확립하는데 적극적이지 않았던 과거에 비해 이제는 현실적으로도 세대가 진전되며 ‘코리안’보다는 ‘코리안 아메리칸’으로 자기정체화를 하는 재미한인의 현실을 적절히 이해하기 위한 시도로서, 또한 이론적으로는 보다 큰 사회적, 역사적 맥락과 다민족적 관계 속에서 한인 집단을 조명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저서는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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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인류학자인 저자가 오랜 기간에 걸쳐 연구 발표해 온 재미한인사회 관련 저술들을 미국사회의 다민족적 현실이라는 틀 속에서 체계화한 저서이다. 재미한인은 이주지인 미국이 지니는 국제적 영향력이라는 점 뿐 아니라, 해외 거주 한인 중 가장 규모가 큰 집단으로서, 가장 활발하게 모국과 교류하며 한국사회의 정치, 경제, 문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에서 재외한인 연구 상 그 중요성과 의의가 주목되며 적지 않은 연구가 진행되어 왔다. 그러나 저자는 그간의 연구가 이민의 역사나 개인적 경험에 대한 서술 또는 실태 조사 등 미국사회의 맥락에서 동떨어진 한국이민 자체에 치우쳐 있었음을 지적하며, 재미한인사회의 “문제점을 미국의 민족문제 및 소수민족정책과 연계하여 살펴보는데(5쪽)” 저서의 목표가 있다고 밝힌다. 이민, 이주민 집단을 포함하여 다민족 사회에서의 민족집단 연구와 관련, 타민족집단과의 관계 속에서 정체성과 집단 경험이 형성, 재형성된다는 프레드릭 바스(Barth 1969)식의 과정론적 접근이 이제 인류학 및 민족관계를 연구하는 사회과학 전반에서 소통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외한인 연구에서 여전히 이주지와 연계된(hyphenated) 현실보다는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에 주목하는 경향은, 한동안 해외에 거주하는 한인에 대해 ‘재미동포’, ‘재일동포’, ‘재중동포’ 등 동포라는 혈연적 어휘를 지배적으로 사용하며 다민족적 상황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한국사회의 현실 및 대중적 정서와도 상통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민의 역사가 비교적 짧아 실제 재미한인 집단이 코리안 아메리칸으로서의 사회적 입지를 확립하는데 적극적이지 않았던 과거에 비해 이제는 현실적으로도 세대가 진전되며 ‘코리안’보다는 ‘코리안 아메리칸’으로 자기정체화를 하는 재미한인의 현실을 적절히 이해하기 위한 시도로서, 또한 이론적으로는 보다 큰 사회적, 역사적 맥락과 다민족적 관계 속에서 한인 집단을 조명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저서는 의미를 지닌다.
‘9ㆍ18사변’ 직후 중국지역 한인독립운동의 국제정치환경 KCI 등재
숭실대학교 역사문물연구소(구 숭실사학회) 숭실사학 제29집 2012.12 pp.149-169
...한인독립운동세력에게는 중일ㆍ미일전쟁의 개연성이 높아지리라는 기대감을 심어 주었으며, 한인독립운동진영의 단결과 재편성을 촉발시키는 계기로써 기능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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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가을 미국에서 시작된 경제공황으로, 일본자본주의 체제는 위기상황에 직면하였고, 경제적 위기와 이로 인한 사회 불안은 天皇制 전체주의 국가체제를 위협하였다. 자본주의 발달을 배경으로 한 일본의 제국주의 대외팽창 정책도 위기에 봉착하였고,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한 분출구와 희생양이 필요하였다. 이러한 상황을 배경으로 중국동북지방 침략과 괴뢰 ‘滿洲國’의 수립이 현실화되었다. 일본 군부의 중국대륙 침략 의도는 ‘對美決戰’을 궁극적인 목표로 하고, 중국의 통일을 저지하며, 對蘇戰略의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국내정치를 군부가 주도하는 파시즘 체제로 전환시키고자 하였다. 이 같은 군부의 의도가 일본국민 일반으로부터 지지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전쟁을 통해 경제공황을 극복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특히 재계는 만주의 시장 및 자원 독점이 공황 극복에 유리하다고 판단하여, 군부의 대륙침략정책에 적극 동조하였다. 9ㆍ18사변을 통해 중국동북지방을 점령한 일제는 1933년 2월 ‘華北事變’을 도발하였고 이는 중국 관내지역에 설정되어 있던 열강의 이권과 직접적으로 상충되었다. 국제연맹과 열강은 대일 강경입장을 표명하였지만, 일제는 곧 국제연맹을 탈퇴하였고, 화북지방 침략을 중단하지 않았다. 일제와 미ㆍ영의 관계 역시 악화되기 시작하여, 中日戰爭 후 일제침략이 중국 관내지역 및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확대되면서 전면적인 적대관계로 발전하였다. 이에 수반하여, 독일ㆍ이탈리아ㆍ일본의 동맹이 출현함에 따라, 국제정치상황은 파시즘과 반파시즘의 대립 체제로 전환되었다. 후발제국주의 국가들에 의한 선발 제국주의 국가에 대한 도전의 모습을 띠기도 한 이 체제는 제2차 세계대전의 발화점 노릇을 하였고, 궁극적으로는 ‘제국주의시대의 종료’로 귀착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일제의 중국침략에 직면한 중국국민정부는 ‘不抵抗路線’으로 일관하며, ‘先安內後攘外’ 노선에 따라 공산당 토벌전에 주력하는 모순을 자행하였다. 이는 중국동북지역의 군벌세력과 일반민중의 반발을 야기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국면을 전환시킨 것이 1936년 말에 발생한 ‘西安事變’이었다. 이는 중국국민정부가 공산당과의 연합을 통해 적극적인 항일을 선언하는 계기가 되었고, 중일전쟁 발발 후 실현되는 제2차 國共合作의 출발점으로 역할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1930년대 전반기 중국대륙에 드리워진 국제정치상황은 한인독립운동세력에게는 중일ㆍ미일전쟁의 개연성이 높아지리라는 기대감을 심어 주었으며, 한인독립운동진영의 단결과 재편성을 촉발시키는 계기로써 기능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The system of Japanese capitalism faced an economic crisis by the Great Depression from United States in 1929. The economic crisis and social unrest shadowed the totalitarianism of Japanese Emperor system. The foreign expansion of Japanese imperialism based on development of capitalism also faced a crisis, and needed the ventage and scapegoat to change over from the crisis to the opportunity. The intention of Japanese Military to invade the China set an ultimate goal of ‘final war against United States’ and interrupt an unity of China constructing the base of invasion to Soviet Union. Moreover, the Japanese Military tended to convert to system of fascism which military take the lead in internal politics. These intentions of Japanese Military was adopted by Japanese people, because they expected to overcome the economic crisis through wars. The financial circles concluded that the monopoly on the markets and resources in Manchuria is of help to overcome the Great Depression, and actively sympathized with the policy of Japanese Military to invasion to China. The Japanese imperialism which conquered the north-east region of China through 9ㆍ18 Incident provoked the ‘Huabei incident’ in February 1933, and this directly conflicted the vested interest of powers in China. The League of Nations and powers took a strong stance against Japan. But Japan seceded from the League of Nations and continued to invade the Huabei region. The relation between Japanese imperialism and United StatesㆍUnited Kingdom also became worsened, and after the Sino-Japanese war, the spread of invasion of Japanese imperialism to center of China and South-East Asia made their relation outright hostile. Meanwhile, the Kuomintang government in China faced with invasion of Japanese imperialism did not change its ‘line of non-resistance’ and they showed the paradox that concentrated on suppressing the Communist Party according to ‘the first internal security after stabbing outside’. This caused the resist of warloads and people in North-East China. The very Xi-an Uprising in 1936 converted this aspect. It was the chance that the Kuomintang government proclaimed the active anti-Japan through alliance with communist party, and was the starting point of the 2nd Alliance between the Chinese Nationalist and Communist Parties. This international political environment in the first half of 1930 in china gave the expectations to Korean independent parties, which seemed to occur the Sino-Japanese war and US-Japanese war, and was the opportunity to stimulate the cohesion and reorganization of the Korean independent parties.
재미 한인의 삶의 만족감과 문화변용 KCI 등재후보
한국소통학회 한국소통학보 제19호 2012.12 pp.7-37
...한인의 문화변용전략과 만족감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했다. 이를 위해 미국 포틀랜드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 이민자 및 유학생을 모집단으로 하여, 비 확률표본 표집 방법을 이용하여 표본을 선정하였다. 설문지는 영어와 한국어 두 종류를 준비해 응답자가 선택토록 하였으며, 설문지 중 일률적으로 특정 번호를 표시하거나 결측값이 지나치게 많거나 응답자 답변이 비일관성을 띤 표본20개를 제외한 315개를 최종 분석대상으로 했다. 연구결과에 의하면, 재미한인들은 통합 전략(M=4.580)과 분리 전략(M=4.565)을 주로 사용하며 미국의 주류사회로 동화(M=2.882)되는 경향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나아가 재미한인의 만족감(M=5.24)은 비교적 높게 유지되고 있었으며, 문화변용전략 중 통합 전략(β=.554, p<.001)만 재미한인의 만족감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화, 분리, 주변화의 경우 통계적 유의미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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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베리의 문화변용이론을 중심으로 재미한인의 문화변용전략과 만족감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했다. 이를 위해 미국 포틀랜드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 이민자 및 유학생을 모집단으로 하여, 비 확률표본 표집 방법을 이용하여 표본을 선정하였다. 설문지는 영어와 한국어 두 종류를 준비해 응답자가 선택토록 하였으며, 설문지 중 일률적으로 특정 번호를 표시하거나 결측값이 지나치게 많거나 응답자 답변이 비일관성을 띤 표본20개를 제외한 315개를 최종 분석대상으로 했다. 연구결과에 의하면, 재미한인들은 통합 전략(M=4.580)과 분리 전략(M=4.565)을 주로 사용하며 미국의 주류사회로 동화(M=2.882)되는 경향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나아가 재미한인의 만족감(M=5.24)은 비교적 높게 유지되고 있었으며, 문화변용전략 중 통합 전략(β=.554, p<.001)만 재미한인의 만족감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화, 분리, 주변화의 경우 통계적 유의미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The study examined acculturation patterns of Korean American living in Portland, USA and their relationship to life satisfaction. Under the academic guidance of Berry’s acculturation model, the four strategies of acculturation model were extensively inquired that immigrants and sojourner would adopt in host culture: Integration, Assimilation, Separation and Marginalization. Furthermore, how differently the four acculturation strategies have influences on life satisfaction was examined. For this study, the survey questionnaires were administered among Korean Americans in Portland, USA. The total 315 data were collected and analyzed. The result indicated that ① they preferred integration(M=4.580) and separation modes(M=4.565) over assimilation(M=2.882); ② their life satisfaction(M=5.24) was highly evaluated and was significantly related to the length of stay(r=.22, p<.001); and ③ only integration(β=.554, p<.001) had influence on life satisfaction.
집단미술치료가 사할린 영주귀국한인의 삶의 만족도 및 불안에 미치는 영향 - C군 집단거주자 중심으로 -
한국예술치료학회 한국예술치료학회지 제12권 제2호 통권 제19권 2012.11 pp.169-187
...한인의 삶의 만족도와 불안에 미치는 영향 을 알아보고자 실시하였다. 충북 C군의 사할린 영주귀국 한인 집단 거주 촌에 거주중 인 사할린 영주귀국한인 50명을 대상으로 삶의 만족도 및 불안 사전 검사를 실시하여 12명을 선정하였으며, 중도탈락자를 제외한 나머지 6명을 최종 연구대상으로 하였다. 실험집단을 대상으로 2011년 10월 17일부터 12월 25일까지 전체 16회기의 집단미술치 료 프로그램을 실시하였다. 집단미술치료가 사할린 영주귀국한인의 삶의 만족도와 불 안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서 삶의 만족도 검사, Beck의 불안검사를 사용하였 다. 이에 본 연구에서 밝혀진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집단미술치료가 사 할린 영주귀국한인의 삶의 만족도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쳤다. 둘째, 집단미술치료가 사할린 영주귀국한인의 불안 감소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였다. 이러한 결과는 집단미 술치료가 사할린 영주귀국한인의 삶의 만족도향상에는 영향을 미쳤으나 불안 감소에 는 영향을 미치지 못하였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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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집단미술치료가 사할린 영주귀국한인의 삶의 만족도와 불안에 미치는 영향 을 알아보고자 실시하였다. 충북 C군의 사할린 영주귀국 한인 집단 거주 촌에 거주중 인 사할린 영주귀국한인 50명을 대상으로 삶의 만족도 및 불안 사전 검사를 실시하여 12명을 선정하였으며, 중도탈락자를 제외한 나머지 6명을 최종 연구대상으로 하였다. 실험집단을 대상으로 2011년 10월 17일부터 12월 25일까지 전체 16회기의 집단미술치 료 프로그램을 실시하였다. 집단미술치료가 사할린 영주귀국한인의 삶의 만족도와 불 안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서 삶의 만족도 검사, Beck의 불안검사를 사용하였 다. 이에 본 연구에서 밝혀진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집단미술치료가 사 할린 영주귀국한인의 삶의 만족도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쳤다. 둘째, 집단미술치료가 사할린 영주귀국한인의 불안 감소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였다. 이러한 결과는 집단미 술치료가 사할린 영주귀국한인의 삶의 만족도향상에는 영향을 미쳤으나 불안 감소에 는 영향을 미치지 못하였음을 보여준다.
This study is to find out the effects of group art therapy on life satisfaction and anxiety of Sakhalin returnees. The pretest on life satisfaction and anxiety was conducted for 50 Sakhalin returnees in the settlement for them in C Province in Chungbuk. Out of them, 12 people who felt low life satisfaction and high anxiety and wanted to be subject to art therapy were selected. Some of them dropped out. Finally 6 people remained the subjects of the study. Group art therapy was conducted in a total of 16 sessions from October 17th to December 25th, 2011. SPSS 20.0 Program was used to test it by using Life Satisfaction Test of Yang Ok-kyung(1994) and Beck’s Anxiety Test to find out the effects of group art therapy on life satisfaction and anxiety of Sakhalin returnees. The results of this study are as follows. First, group art therapy had significant effects on life satisfaction of Sakhalin returnees. Second, group art therapy didn’t have effects on reducing the anxiety of Sakhalin returnees.
초국가주의의 시각에서 본 재일한인의 투표권 KCI 등재후보
재외한인학회 재외한인연구 제28호 2012.10 pp.159-185
...한인의 투표권을 사례로 하여 투표권의 기본권적인 성격을 강조하고 한국과 일본에서 그들의 투표권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있다. 투표권이 권리자가 속한 국가에 의해 보장되는 권리라고 하는 점에서는 반론의 여지가 없지만, 그것이 개인의 정체성과 관련된다는 점에서 국가 성립 혹은 헌법 성립 이전의 성격을 가지는 것이며 인권과 같은 성격을 갖고 있기도 하다. 재일한인의 투표권은 한국과 일본을 ‘관통’하는 문제 하나다. 또한 특별영주권자를 중심으로 하는 재일한인에게 있어서 재외국민 투표나 지역주민 투표는 모두 정치과정으로서의 의미보다 정치적 정체성이나 사회적 소속감을 확인하게 하는 행위로서 의미가 훨씬 크다. 그것은 정치권력적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인권적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는 문제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모두 현실적 정치과정을 중시하는 입장에서 재외국민의 투표권 문제를 다루다보니 관련법 개정이 늦어졌고 투표의 편의성을 제고하는 방안을 마련하는데 소극적으로 임해 왔다. 마찬가지로 일본의 중앙 정치권도 정치과정을 중시하다보니 지방선거권 부여 법안에 대해 지극히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왔고 오늘날 민주당 정권에서는 강렬한 사회적 반대에 부딪쳐 관련 법안에 관한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투표권에 한정하여 보면 민족주의 차원을 극복하려는 움직임이 사회적 저항을 받고 있는 가운데 일본사회에서 소수 주민의 인권이 전적으로 무시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2000년대 전반에 일어났던 trans-nationalism 차원의 「공생」 움직임들이 오늘날에는 일본사회에서 전반적으로 위축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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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은 재일한인의 투표권을 사례로 하여 투표권의 기본권적인 성격을 강조하고 한국과 일본에서 그들의 투표권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있다. 투표권이 권리자가 속한 국가에 의해 보장되는 권리라고 하는 점에서는 반론의 여지가 없지만, 그것이 개인의 정체성과 관련된다는 점에서 국가 성립 혹은 헌법 성립 이전의 성격을 가지는 것이며 인권과 같은 성격을 갖고 있기도 하다. 재일한인의 투표권은 한국과 일본을 ‘관통’하는 문제 하나다. 또한 특별영주권자를 중심으로 하는 재일한인에게 있어서 재외국민 투표나 지역주민 투표는 모두 정치과정으로서의 의미보다 정치적 정체성이나 사회적 소속감을 확인하게 하는 행위로서 의미가 훨씬 크다. 그것은 정치권력적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인권적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는 문제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모두 현실적 정치과정을 중시하는 입장에서 재외국민의 투표권 문제를 다루다보니 관련법 개정이 늦어졌고 투표의 편의성을 제고하는 방안을 마련하는데 소극적으로 임해 왔다. 마찬가지로 일본의 중앙 정치권도 정치과정을 중시하다보니 지방선거권 부여 법안에 대해 지극히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왔고 오늘날 민주당 정권에서는 강렬한 사회적 반대에 부딪쳐 관련 법안에 관한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투표권에 한정하여 보면 민족주의 차원을 극복하려는 움직임이 사회적 저항을 받고 있는 가운데 일본사회에서 소수 주민의 인권이 전적으로 무시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2000년대 전반에 일어났던 trans-nationalism 차원의 「공생」 움직임들이 오늘날에는 일본사회에서 전반적으로 위축되고 있는 것이다.
This paper emphasizes characteristic of voting right as human right, giving an example of Koreans in Japan, and investigates how they have been guaranteed from the governments of Korea and Japan. I want to argue that the voting right has a basic attribute prior to the nation and state in the community of Koreans in Japan even though I don’t deny that it cannot help being assured by political intention of the nation. The voting right of Koreans in Japan is an affair transcends nationalism both Korea and Japan. To the Korean permanent residents under historically special treatment, the voting right has deeper meaning of conforming their identities and social senses of belonging than political procedure as election. So we should understand the voting right as something like a human right rather than a political activity. But in the case of Korea, having serious consideration of political procedure, related laws were lately revised and they are now reluctant about improving the convenience of voting participation in the overseas Korean communities. Similarly, Japan has now negative policy to foreigner’s voting right because she has been putting emphasis on its political influence. Today, the Liberal Party’s regime is not at all debating whether to make it legal bending her neck to social opposition. She ignores the humanities of social minors limiting to the voting right under the circumstances that activities trying to overcome nationalism are suppressed by dissents. Activities of transnational coexistence risen at beginning of 2000’s is now overall shrinking in the Japanese society.
국제한인문학회임원진/휘보/회칙/『국제한인문학연구』연구윤리규정 KCI 등재후보
국제한인문학회 국제한인문학연구 제10호 2012.08 pp.345-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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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아리랑은 한민족을 대표하는 상징적 노래로 널리 알려져 있다. 아리랑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아리랑은 19세기 중기에 불렸다고 Homer. B. Hubert 는 Korean Repository( 1896)에 기록하고있다. 20세기 초에는 <아라렁>, <아령타령> 또는 <아리랑 타령>이란 노래제목으로 불리기 시작하였다. 아리랑이 널리 알려진 것은 1926년에는 나운규의 영화 주제곡으로 탄생한 영화주제곡 아리랑이 편사편곡되면서 부터이다. 나운규의 영화주제곡 아리랑은 서양음악의 영향을 받은 민요풍의 유행가로 현존하는 아리랑 노래 가운데 가장 대표적 아리랑으로 재구성 되었다는 역사적 의미가 있는 아리랑이다. 본 논문은 다양한 기록에 나타난 아리랑 노래의 가사, 선율구조, 리듬, 박자와 부점의 유무를 분석함으로 시대별 지역별 아리랑노래 특성을 연구함으로서 아리랑 노래의 음악적 변천을 연구 하고자 했다. 필자는 아리랑의 변천 과정과 계보를 구성하기 위해서 오늘날까지 다양한 형태를 가지고 있는 조선족아리랑과 고려인, 그리고 북한 아리랑 노래를 중심으로 연구․조사 하였다. 또한 시대적 아리랑 변천사를 사회적 변화구조에서 쉽게 이해 할 수 있도록, 1926년 나운규가 제작한 영화 주제곡이었던 영화주제곡 아리랑 까지를 전기 아리랑 시대로, 1926년에서부터 그 이후의 아리랑은 후기 아리랑 시대라고 나누었다. 노동요, 유희요의 성격을 띄웠던 전기 아리랑과 비교할 때 후기 아리랑의 특성은 독립과 애국이라는 사회적 욕구를 표출하는 두 단어가 가사의 주된 주제라는 점이다. 특히 한반도의 분단 이 후 중국,연해주와 중앙아시아에 흩어져 살아가게 된 한국인들이 불렀던 아리랑을 채보하고 분석함으로서 다아스포라 음악으로서 변천한 아리랑을 보존하고자 했다. 결론적으로 이 논문은 현존하는 다양한 아리랑 노래에 나타나는 한국인의 정서와 정체성을 음악인류학적으로 분석하였다. 전기 아리랑 시대에는 어떻게 전통선율과 리듬이 서양음악과 접목 되었나를 밝히고, 후기 아리랑 시대에는 서로 다른 사회적 환경에 따라서 변화한 아리랑의 음악이 어떻게 한민족의정체성에 진화를 가져왔는가를 살펴보았다. 또한 이러한 연구 과정에서, 필자는 경상도 아리랑의 한 종류로 알려진 <영천아리랑>이 전라도지역 아리랑에서 유래하였다는 사실을 선율 분석을 통해서 밝혀내었다. 즉 <영천아리랑>은 <진도아리랑>의 원형에 가깝다는 것을 밝혔다. 아리랑이란 노래 연구는 음악사적 연구 가치 이외에 민속학적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필자는 계속해서 본 논문에서 다루지 못하였던 1945년 이후 냉전시대 종식이전까지 남한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한 아리랑 연구를 강원도 전라도경상도 아리랑을 대상으로 계속 정진하고자 한다.
This paper attempts to investigate different musical features of Arirang songs that prevailed in various regions. On the basis of lyrics, the melodic structure, rhythms and beats as well as the existence of dotted notes I explored the changes made in a variety of Arirang songs popular in the places where a group of Koreans had been living in separation from South Korea between the peace treaty of the Korean War in 1953 and the end of Cold War in the early 1990s. In order to reconstruct the archetype of various Arirang songs and to investigate its development over time, I focused on studying the musical forms and their characters appeared in the regional Arirang songs including Diaspora Arirangs that have been singing in the current resident areas of the Korean descendents such as Joseonjog, Goryeoin and North Koreans because several different versions of various relatively old Arirang songs were able to be well preserved in these areas. These Arirang songs can be certainly used as valuable academic sources that provide clues needed to reconstruct the original Arirang songs. Moreover, in an attempt to promote readers’ understanding of the development of Arirang songs over time in the frame of social changes, I divided the time line into two periods in light of genre: The earlier Arirang period before the 1926’s movie theme song “Arirang”: the time of Taryeong; the later period after 1926: the time of popular songs. The most distinguished messages contained in the lyrics of the later Arirang songs are about “Independence and Patriotism”. To preserve the old forms of Arirang songs to which little attention was paid I recorded the Arirang songs that were once popular and are still sung in the areas of Yeonbeon, the Marinetime Province of Siberia and Central Asia where numbers of Korean descendents have been living scattered from their respective hometowns. In conclusion, this paper explored a wide range of versions of Arirang songs in light of musical changes to investigate the role of the Arirang song that naturally led to forming the Korean cultural identities through the ethno-musicology approach. In the earlier Arirang period, I attempted to reveal how traditional Korean melodies were integrated into western music by comparing two different Arirang songs documented while in the later Arirang period, I thoroughly examined several different versions of Arirang songs to depict the musical changes in light of social environments, and to find how these characters contributed to finding ethnographic factors that led the evolution of Korean ethnic identities. More importantly, I found that <Yeongcheon Arirang> which was known as one of Gyeongsang-Do Arirang is in fact originated from Jeonlla-Do Arirang. This is proved by the musical analysis that shows that <Yeongcheon Arirang is similar with the archetype of <Jindo Arirang>. It has been noted that studies about Arirang from the ethno musicological perspective are beneficial for those who endeavor to re-construct the history as well as musical tradition. Further research on the South Korean Arirang songs that have independently developed between the end of the Korean War and the end of Cold War era (1945~1991) will be followed by a study documenting the Arirang songs prevailed in the three different regions of South Korea: Gwangwon-do, Jeonlla-do and Gyeongsang-do.
재외한인학회 회칙/재외한인학회 연구윤리규정/재외한인학회 편집위원회 및 논문심사 규정/원고제출, 심사절차 및 원고작성 지침/재외한인학회 학술행사 및 소식/재외한인연구 과월호 차례 KCI 등재후보
재외한인학회 재외한인연구 제27호 2012.06 pp.223-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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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한인작가 정승박 소설에 나타난 트랜스내셔널리티 내러티브의 과정적 구축
한중인문학회 한중인문학회 국제학술대회 개혁개방, 한중수교 그리고 중국 조선족 사회 2012.06 pp.439-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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