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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에서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중국 라면시장에 진출한 한국 라면기업 의 성공과 실패 사례를 분석하여 적합한 중국 진출전략을 도출하고자 하였다. 중 국의 라면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중국은 이미 전세계 라면 소비량의 50%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매우 중요한 시장이다. 현재 중국 라면시장은 캉스 푸, 바이샹, 진타이랑, 통이 그룹의 4강 기업이 독과점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이 중 캉스푸는 시장 점유율이 40%에 달하고 있다. 나머지 70개에서 80여개의 중소업체들이 나머지 10%의 시장 점유율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러한 중국 라면시장에 진출한 한국의 라면기업은 삼양, 오뚜기, 그리고 농심 이 대표적이다. 이 중 삼양과 오뚜기는 중국 진출에 사실상 실패하였고, 반면 농 심은 비교적 성공적으로 중국 라면 시장에 진출하였다. 농심은 다른 두 기업보다 비교적 늦은 1995년부터 중국 시장에 진출하였다. 처음에는 중국 기업과 50:50 의 지분으로 합작하였으나, 1998년에는 중국 합작 파트너의 지분을 인수하여 100% 지분의 경영권을 확보하였다. 농심은 대표적인 제품인 辛라면을 본격적으 로 생산하면서 중국사업을 성공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농심의 중국진출 성공전략을 다른 한국기업인 삼양과 오뚜기의 실패요인과 비 교하면 다음과 같은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첫째는 삼양의 실패 요인이 중 국측 합작파트너와의 협력관계 구축 실패였는데, 농심은 합작파트너의 지분을 인 수하여 100% 경영권을 확보하고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중국 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다. 둘째 오뚜기의 경우 사전 현지 조사가 틀려 사업이 적자가 지속되었고 삼양은 현지 상황변화에 맞는 전략을 수립하지 못하였다. 반면 농심은 철저한 사전 현지조사와 현지의 상황변 화에 맞는 단계별 전략을 수립하였다. 셋째, 농심은 오뚜기와 달리 현지 소비자를 고려한 적절한 입지전략을 선택하였고, 현지 법인 의 자율성을 높여 유연한 전략을 추진하였다. 마지막으로 농심은 현지 중국인이 좋아하는 마오쩌뚱의 어록을 이용한 적절한 마케팅 전략을 추진하여 중국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삼양과 오뚜기의 한국 시장에서의 성공요인을 분석하고 왜 이러한 한국 시장에서의 성공요인이 중국에서 활용되지 못하였는지를 분석하였다. 삼양 과 오뚜기는 모두 한국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교우위가 있었지만 중국 라면시 장과 라면소비자들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중국내 라면시장 경쟁자와의 차별화된 전략 수립이 부족하였다. 이는 다른 산업에 종사하는 한국기업의 중국시장 진출 에서도 많은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This paper analysised Korean companies’ success and failure cases and draw a successive entering Chinese market strategies. Chinese Ramen market is growing very fast. Chines market already occupies 50% of world Ramen market so is very important market. Now, Chinese Ramen market is oligopolistic market, and main companies are KANGSHIFU, BAISHANG, JINTAIRANG, TONGYI. Especially, KANGSHIFU has over 40% of market share. Other 70 to 80 small companies are competing to survive in residual 10% of market shares. Korean Ramen companies have been entering in this Chinese Ramen market, and SAMYANG, OTTOGI, NONGSHIM are representative companies. But SAMYANG and OTTOGI failed in entering Chinese market, only NONGSHIM successively entered Chinese market. NONGSHIM entered Chinese Ramen market in 1995, lated other two companies. And NONGSHIM took over control power of companies acquiring share of partner Chinese companies in 1998. And then NONGSHIM has produced SIN Ramen which is the representative products of NONGSHIM. This paper found the differences comparing the failure of SAMYANG and OTTOGI to the success of NONGSHIM. First, SAMYANG had difficult to making good relationship with Chinese partner company, but NONGSHIM acquired 100% share which made the more offensive business strategy. Second, OTTOGI was wrong pre-investigation of Chinese market so had deficit and SAMYANG had no conditional strategy preparing to changing situations. But NONGSHIM had good pre-investigation and phased strategies. Second NONGSHIM choose good position strategy considering Chinese consumer, and gave autonomy to the Chinese local corporation which enable more flexible strategy. Last, NONGSHIM used the MAO’s quotation which was loved of Chinese.
이용수:37회 페르시아 관점에서 본 실크로드의 의미와 주체적 해석
동덕여자대학교 한중미래연구소 한중미래연구 제2호 2014.02 pp.115-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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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페르시아권은 지금의 이란에서부터 중앙아시아,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과 중국의 신장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을 포함한다. 고대 동·서 아시아에서 대문명을 형성했던 중국과 페르시아 간에는 물질문명뿐만 아니라, 학문을 포함해 다양한 분 야에서 교류가 이루어졌다. 이 교류에서 고대 페르시아 문명은 중국에 커다란 영향 을 끼쳤는데, 국내에서 이에 대한 논의가 그리 활발하게 진행되지 못했다. 중세 들 어서도 교류는 지속되었는데, 시안을 비롯해 중국 전역에 걸쳐 페르시아어로 된 비 문과 석판이 즐비하게 흩어져 있는 것이 이를 잘 반영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실 크로드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주체적 입장에서 시도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이글은 동양 내에서 고대 페르시아와 중앙아시아, 중국․한국과의 오랜 역사 속에서 맺은 종교와 문화 등의 교류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물론 각 문명 간에는 상보적인 관계를 전제로 하며, 많이 알려지지 않은 페르시아학(Persian Studies) 과 문명이 중국과 한국에 끼친 영향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한국과 중국 문명이 실크로드를 통해 거대한 페르시아학과 그 문명 속에서, 수혜를 받았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동서양의 학문과 문명을 담아내는 용기로서 이제 실크로드 학은 교류차원의 연구를 한 단계 높여, 세계 인문학의 왜곡과 오류를 바로 잡아 야 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Although the term of Silkroad has been used for the first time by the geographer Richthofen in 1877, Silkroad has been existed as the way of exchange between the ancient Persia and China from the ancient times. In the East & West Asia, ancient China and Persia had formed two great civilizations. The ancient Persian civilization had affected greatly that of China, even though we have known its fact and knowledge on the contrary. For instance, it is revealed in the process of formation of term 'China'. The realm of ancient Persia had been extended from the mainland Iran, Central Asia, Afghanistan and Pakistan to the Xinjiang province in Western China. This paper is consisted of the four chapters. Except for the prologue and conclusion, it is dealt with Silkroad between the ancient Central Asia and Korea, and religious & cultural exchange between Persia and China. Through the Silkroad, ancient Persian studies had had a great impact on that of China and Korea. In the ancient era China and Korea had been laid under the influence of Great Persian World in the name of Zoroastrianism.
이용수:37회 다문화 사회의 언어 정책 - 중국의 소수민족 언어정책을 중심으로 -
동덕여자대학교 한중미래연구소 한중미래연구 제7호 2016.08 pp.11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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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 시대인 오늘날 한국 사회도 외국인 노동자, 결혼 이민자 등의 증가로 다문화 시대를 맞이하였다. 특히 언어 문제는 다문화 사회의 가장 큰 특성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다문화 현상을 가장 직접적으로 실감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다언어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교육에 반영하지 않을 수 없다. 본고에서는 오랜 시간동안 다문화 사회로 많은 다문화 정책을 펼치고 있는 중 국의 정책 특히 언어정책을 중점적으로 살펴보고, 이를 한국 사회에서의 다문화 가정 자녀들에 대한 이중 언어정책과 간단히 비교해 봄으로써, 한국의 현실에 맞 는 다문화 정책을 어떻게 교육에 반영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았다. 비록 중국과 한국의 다문화 정책 대상과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중국의 다문화 언어정책을 한국에서 그대로 적용시킬 수 없고, 또 중국의 정책에도 한계가 있지 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언어정책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제공하였다. 한국도 한국 특성에 맞는 다문화 언어 정책을 정립하고 더욱 체계적으로 실행할 필요가 있겠다.
In a globalized world, Korea can also be regarded as multi-cultural society as the number of foreign laborers and marriage immigrants continuously grow. Language problem is one of the main issues of multi-cultural society, because it makes people immediately realize how multi-cultured the society they live in. Therefore, we need to place great emphasis on the multi-lingual situation in multi-cultured families. We need to take this situation very seriously and adjust our education accordingly. In this paper, I tried to explain China’s multi-cultural --- especially multi-lingual --- policies, as China has been multi-cultural society for a long time and developed many relating skills to cope with this matter. Furthermore, I will compare China’s policies to Korean ones, mainly focusing on the language education on the children of the multi-cultural families. The policies of Korea and China have, of course, different context and target, so it would be absurd to directly apply China’s multi-cultural policy to Korea’s multi-cultural families, and it cannot be considered perfect in any aspect, but we Koreans still can learn a lot from it. For instance: train specialized teachers who can speak multiple language, develop teaching materials and methods, make more multi-cultural media which can serve as a channel among migrants, etc. Korea need to establish our own multi-cultural policies that suit our situation and context, and carry them out systematica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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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가족지원센터는 다문화가족의 안정적인 정착과 가족생활을 지원하기 위 해 가족 및 자녀 교육.상담, 통.번역 및 정보제공, 역량강화지원 등 종합적인 서 비스를 제공하여 다문화가족의 한국사회 조기적응 및 사회. 경제적 자립을 지원 하는 사업 목적을 가지고 있다. 다문화가족 지원 사업은 기본프로그램 사업과 별도 지원 사업으로 나누어 운영하고 있다. 기본프로그램 사업은 가족 관계 향상을 위한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는 가족교 육, 배우자부부교육 등을 운영하는 성평등교육, 다문화이해교육, 다문화가족지 원법 및 제도교육 등을 운영하는 인권교육 등이 있고, 별도 지원 사업은 다문화 가족 방문교육 지원 사업, 다문화가족 자녀 언어발달 지원 사업, 다문화가족통번 역서비스 지원 사업으로 나누어 운영한다.
Multicultural Family Support Center was established to provide multicultural families with comprehensive services such as education and counseling for family and children, translation, information provision and capacity enhancement project to support the stable settlement and family life. It aims to support the early adaptation to Korean Society and social & economic independence of multicultural families. The multicultural family support projects are divided into basic program projects and separate support ones. The basic programs include family education which runs programs to improve family relations, gender equality education which operates couples and spouses, and human rights education which deals with a multicultural family support law and institutional education. The separate support project is divided into a education support project for visiting multicultural families, a development support project for children’s language of multicultural families, and a translation and interpretation service support project for multicultural famil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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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오늘날 이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상은 창의적 문제해결능력을 갖춘 인 재상이라 할 것이다. 따라서 창조와 문화의 시대라 일컫는 21세기를 이끌어 나 가기 위해서는 예술융합교육이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 하겠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나라의 교육 현장은 쉽게 융합교육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학부모들이 반 대하기 때문이다. 예술융합교육이 창의적 인재양성의 교육으로써, 전인적 교육 으로써 활성화되려면 이러한 인식구조가 바뀌는 것이 우선 아닐까 생각한다. 또한 요즘 중학교를 중심으로 뮤지컬교육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높아져 가고 있다. 그러나 우려되는 것은 뮤지컬 교육이 단순한 유행처럼 시행되는 교육의 수 단으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술융합 교육에 대한 충분한 숙고와 준비, 그 리고 노력이 있다면 교육 현장에선 반드시 좋은 결과를 얻을 것이라 확신한다. 이것이 학교 현장에서 예술교육을 하는 사람으로서 느끼는 체감의 결론이다.
In the 21st century, a person of talent required by this age is a competent person with creative problem solving abilities. Therefore, in order to lead the 21st century which is called the age of creation and culture, convergence education with art is not an option but an essential one. However, the educational field in Korea is still not easily accessible to the convergence education since parents are opposed to it. I think that it is a priority to change this negative perception structure in order for the convergence education with art to be activated as an all-round education as well as an education for cultivating creative talents. In addition, an interest in musical education has been increasing considerably in junior high schools nowadays. What is worrisome, however, is that musical education can be transformed into a means of education that is implemented as a simple trend. I am confident that there will be good results in the field of education if there are ample consideration, preparation and effort in the convergence education with art. This is what I have felt as an art educator in the education fie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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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는 최근 출산율 저하 등으로 전체 인구 증가율은 감소하고 있으나, 이주민 인구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다문화 인구의 확대는 다양한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으며, 이에 따른 대책마련을 요구하 고 있다. 이중에서도 특히 결혼이주여성과 다문화가정 자녀에 대한 사회 복지적 관심과 지원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다문화 가 족의 욕구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지원방향도 변 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특히 5년 이상 중장기 결혼이민자의 증가는 그동 안 초기 사회적응에 맞추어졌던 정부와 민간 지원책 모두 변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중장기 거주자들의 경우 가족 간의 갈등으로 인한 가족해체, 취 업 등 사회진출, 자녀들의 양육 및 문화차이로 인해 겪는 어려움 등을 최 소화할 수 있는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The growth rate of the local population in Korea is decreasing, but the migrant community is continuously expanding. Thus, a growing multicultural population has led to various problems, and measures must be taken accordingly. In particular, there is a need for social welfare and support among married immigrant women and children of multicultural families. On the other hand, the demands of multicultural families are changing over time, and the direction of support must be revised. Specifically, the increase in the number of married immigrants in the mid to long term or for more than five years calls for flexible government and civil assistance programs, which have been adapted to suit initial social adjustments. In the case of mid- and long-term residents, systematic support is required to minimize disruptions due to family conflicts, advancement in the social environment, such as employment, and difficulties arising from child rearing and cultural differences.
이용수:16회 중국 드라마〈보보경심(步步惊心)〉에 나타난 ‘자기실현’ - 융의 분석심리학을 중심으로 -
동덕여자대학교 한중미래연구소 한중미래연구 제4호 2015.02 pp.85-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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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포스트 사회주의 등장 이후, 대중문화가 점차 주류화 되어 가는 시대에, 대중서사로 변화하고 있는 중국 텔레비전 드라마를 분석심리학(Analytical Psychology)의 틀에서 접근한다. 대중서사로 자리해 가고 있는 텔레비전 드라마 는 중국 사회의 중화제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즉, 포스트 사회주의가 등장 하고 국가와 시장의 모순된 체제 속에서 대중은 사회적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스트레스는 대중의 심리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 이에 대해, 대중서 사로서 중국 텔레비전 드라마를 전제한다면, 응당 사회적 스트레스 속 불안한 대중 의 심리에 대리만족을 제공한다. 이 글은 오늘날 정치선전물에서 대중서사로 변해 가는 중국 텔레비전 드라마의 이러한 기능론적인 변화를 규명해 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2011년 중국 대륙을 떠들썩하게 했던 텔레비전 드라마 〈보보경 심〉을 분석대상으로 선정하였다. 그리고 분석의 초점을 여주인공에 맞추면서, 그 녀가 작품 속에서 이루고 있는 진정한 사랑의 완성과 자기실현의 과정을 추적했다.
This article access to the Chinese television drama that becomes popular narrative in the framework of Analytical Psychology since popular culture has mainstreamed in Post-socialism. As the social corrector, Television drama plays very important roles in the Chinese society. That is to say, So many people in china suffered from social stress after Post-socialism. This kind of stress disturbing people’s mind in this era. In this regard, Television drama as the popular narrative provide vicarious pleasure for counting this stress. This article will examine chinese television drama functional change from the political propaganda to popular narrative. To this end, Television drama 〈Bubujingxin〉 that has been great popularity on 2011 was selected as analysis object. and Focus on actress, Pursued her Love and self-realization in this drama.
이용수:16회 ‘조선족’은 누구인가? - 조선족의 정의 및 개관
동덕여자대학교 한중미래연구소 한중미래연구 제1호 창간호 2013.08 pp.11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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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조선족에 대한 정의를 살펴봄과 동시에 이들을 어떻게 호칭해야 되는 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하였다. 현재 중국에는 한국외교통상부가 ‘재중동포’라고 분류한 사람들이 260만 명 거주하고 있다. 한국의 700만 재외동포 중에서 한 나라에 가장 많이 거주하는 숫자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명확한 한국내에서 통일된 호칭을 사용하지 않고 있어 여러 혼란 을 야기하고 있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아울러 2장 조선족의 정의에서는 조선족의 이주경향과 활동상에 대해 정리하 였고, 3장 조선족과 한국계미국인 부분에서는 ‘한국계중국인’이란 호칭과 ‘한국계 미국인’이란 호칭의 상호 관련성을 살펴보았으며 4-5장에서는 조선족사회의 형 성 과정과 현재 당면하고 있는 여러 문제들에 대해 살펴보았다.
本文在考察朝鲜族定义的同时,也考察对他们的称呼。目前,有260万名被韩国 外交通商部归类为‘在中同胞’的人居住在中国。是韩国的700万海外同胞中居住人 数最多的一个国家。尽管在中居住的人口如此之多,但目前在韩国没有统一的称 呼,造成许多混乱。在本文中也指出了这些问题。在第2章中,整理了朝鲜族的移民 趋势和活动情况. 第3章主要区分朝鲜族和美籍韩裔部分里,中籍韩裔和美籍韩裔称 呼的关联性。第4,5章考察了朝鲜族社会的形成过程和现在面临的各种问题。
이용수:15회 고대 한ㆍ중국과 페르시아 지역 간의 문명교류 단상(斷想)
동덕여자대학교 한중미래연구소 한중미래연구 제7호 2016.08 pp.149-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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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오리엔트(근동, 중동)지역의 페르시아권은 기원전부터 오랫동안 교류 를 맺어왔다. 고대 한국 역시 중국을 매개로 하여 페르시아권과 직간접적으로 연 결되어 있다. 고대 한국과 중국은 다양한 학문 분야를 비롯해 페르시아 문명의 혜택을 받았다. 본 논문에서는 고대 페르시아권의 발크(아프가니스탄의 북부) 지역에서 발견 된 틸리야 테페 금관이 신라 금관의 기원이라는 점을 다양한 경로를 통해 밝히면 서 고대 한국에 대한 페르시아 문명의 직접적인 영향을 거론하고 있다. 고대 페 르시아권은 아프가니스탄을 비롯해 이란, 파키스탄,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구성되 어 있는데, 아프가니스탄 서부의 헤라트 지역과 더불어 발크 지역은 고대 페르시 아인들의 보금자리였다. 신라의 고승 혜초 또한 페르시아 불교의 중요한 터전이 었던 발크를 순례한 바 있다. 한 문헌에 그의 이름은 푸낙티예(Fu nak ti yeh)라 고 언급되어 있다. 한중과 고대 페르시아 지역과는 상고 시대부터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는데, 세 시풍속과 신화의 영향관계에서도 잘 드러난다. 세시풍속과 신화는 학문의 근간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분야 중의 하나로서 상호간에는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이란 고원의 원주민, 수메르 민족은 메소포타미아로 건너가서 인류 최초의 문명을 성 립시켰고, 이후 바빌로니아-앗시리아-신바빌로니아로 전개되는 셈족의 위대한 문명의 토대가 되었다. 페르시아의 세시풍속과 신화는 아리안족이 이란 고원에 유입되기 이전의 수메르와 엘람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The exchange of civilization has been accomplished from the ancient times between China and the realm of Persia. The ancient Persia had been consisted of Iran, Afghanistan, Pakistan and central Asia. The ancient Korea was connected with realm of Persia in the medium of China, in particular Western Region. Persian civilization had given a great impact on China and Korea in the various spheres of academics including material civilization. Compared with the Crown of Tiliya Teppe in Afghanistan and Silla Crown, the influence of Persian civilization is shown and written in this article. The Crown of Tiliya Teppe had been excavated in the territory of Balkh called Bactria in ancient era. The Silla Crown is true of evidence of exchange between two civilizations. A famous monk from Silla, Hyecho, had gone on a pilgrimage to the Balkh region where was the important site in Persian Buddhism. According to the document, his name was written in Fu nak ti yeh. The exchange of East and West Asia had been accomplished in the field of seasonal customs and myth for ages, as well. Two fields are true of the basis of academics. The Iranian plateau had been the home of Sumer before entering the Mesopotamia originated from the first myth. Seasonal customs and myth in Persia date back to the Sumer Era alongwith the myth of Elam situated at western region of I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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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로부터 중국 요동지역에서 흥기한 여러 부족(민족)들은 중국대륙을 지배 하고자 끝임 없이 군사를 일으켰다. 그들은 물리적인 힘으로 상대방을 정복하고 강역을 확대하여 나갔다. 이와 같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전란 속에서 수많은 백성 들은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전쟁‘포로’로 취급되어 무참히 학살되거나 강제로 정복자들에게 끌려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고구려와 발해의 유민들이 그 대 표적인 사례이다. 중국의 요․금․원 시기에도 한반도내의 적지 않은 고려인들이 요동지역으로 이주하게 되는데 이 시기의 이주형태도 전 시기와 마찬가지로 대부 분이 전쟁에 의한 강제적 이주였다. 그리하여 당시 요동이나 요서일대에는 새롭 게 고려인 부락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원말명초 시기에도 수많은 고려인(조선 인) 유민들이 이 지역으로 이주하였다. 이 시기 조선인들이 요동으로의 대량 이 주는 전쟁 외에도 명나라의 세금 및 병역에 대한 우대정책과, 요동 東八站일대의 비옥한 토지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그러나 이 시기 요동일대로 이주하였던 고려인이나 조선인들은 혹자는 한반도로 돌아가고 혹자는 당지에 남아 여진과 한 족을 비롯한 기타 민족들과 잡거하면서 점차 기타 민족에게 동화되어 자취를 감 추었다. 1616년 여진족의 누르하치는 赫圖阿拉에 후금을 세운 후 팔기제도를 바탕으 로 신속히 세력을 확장하면서 전 요동지역을 장악하였다. 한편 이 시기 조선에 서는 “인조반정”에 의해 대권을 잡은 서인 “척화파”들이 공개적으로 “親明排金”의 외교정책을 펼쳤다. 결과 1627년과 1936년 후금은 두 차례에 걸쳐 “친명배금” 을 고집하는 조선을 침략하였다. 그들은 군인은 물론이고 수십만에 달하는 무고한 조선인 백성들까지도 이른 바 전쟁“포로”로 취급하면서 강제적으로 만주로 끌 고 갔다. 1645년 10년간에 걸쳐 진행된 조선인 포로속환은 조선세자와 봉림대 군의 환국으로 종결되었으나 청조의 소극적인 송환정책으로 말미암아 송환된 인 원수는 전체 “포로”의 10분의 1에 불과했다. 두 차례의 전쟁에서 후금군에 잡혀 간 조선인 포로들 중 일부는 팔기군에 편입되었으나 대부분은 “전리품”으로 취급 되어 청조의 왕공귀족과 팔기군 관병의 家奴나 농장 농노(포이)로 전락되었다. 1644년 청조는 북경으로 천도한 후 팔기병은 물론이고 만주지역의 모든 백성들 까지도 전부 관내로 이동시켰다. 그리하여 만주팔기에 편입된 조선인이나 각 농 장에 팔려가 포이로 전락한 조선인들 모두가 팔기병과 주인을 따라 관내로 들어 갔다. 그후 청조가 중국대륙을 통일한 후 일부 조선인 포이들은 청조의 왕공귀족 을 따라 재차 만주로 이주하여 대대손손 농업에 종사하면서 생계를 유지하였다. 1982년 중국에서 실행된 제3차 전국인구보편조사에서 河北省 靑龍縣의 八家 子鄕 塔溝村과 大杖子鄕 孟家窩鋪, 平泉縣의 七溝鎭 朴杖子村, 그리고 遼寧省 蓋 縣의 陳屯鄕 朴家溝와 本溪縣 山城子鄕 朴堡, 久才, 化皮 등 村의 천여 명의 “漢 族”들이 자신들은 원래 고려의 후손들이었으므로 본 민족의 족적을 한족에서 조 선족으로 회복해줄 것을 요구하였다. 그리하여 당지 정부에서는 충분한 역사고찰 과 사회조사를 거친 후 상술한 박씨촌 “한족”주민들을 조선족으로 족적을 회복해 주었다. 상술한 박씨들은 이주초기 신분이 비록 비천하였지만 상대적으로 안정된 생활공간에서 생활을 영위하면서 자기들의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지켜나갈 수 있 는 기반을 마련하였던 것이다. 비록 그들은 신분이 낮은 코리안 디아스포라로서 다른 민족과 더불어 생활하는 가운데서 본 민족의 문화를 제대로 전승할 수 없었 던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박씨 후예들은 360여년이 지 난 오늘까지도 화석처럼 남아서 중국지역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시점을 증언해주고 있다.
自古以来,中国辽东地区兴起了诸多部族(民族),他们为了统治中国大陆,在不 断增强自身军事实力的同时,彼此间为扩大疆域而征伐不断。然而,在频发的战乱 中,无辜的诸多百姓沦为“俘虏”,他们或被惨杀,或被强制掳往他乡,高句丽、渤 海的遗民即是其中的代表性事例。辽、金、元时期,朝鲜半岛内的诸多高丽人先后 迁至辽东地区。这一时期,高丽人的移住形态与之前一样,大多是因战争而引发的 强制性移居,辽东、辽西一带由此开始出现了许多新的高丽人村落。元末明初,高 丽人(朝鲜人)继续大量移居辽东一带,其原因除战争因素外,还包括明朝实行的积 极的税收、兵役等政策,以及辽东东八站一带肥沃的土地等因素。但是,这一时期 移居辽东地区的高丽人(朝鲜人),后来或陆续返回朝鲜半岛,或继续留在当地,与 女真族、汉族等杂居,逐渐被其它民族所同化。 1616年,女真族首领努尔哈赤在赫图阿拉建立后金。以八旗制度为基础,女真 势力迅速扩张,最终掌控了整个辽东地区。这一时期,朝鲜“仁祖反正”政变后,西 人“斥和派”掌握大权,公开推行“亲明排金”的外交政策。结果,1627年和1636年, 后金先后两次入侵朝鲜,数十万朝鲜军民以“俘虏”之名被强行掳至满洲。截至1645 年,在持续10年之久的刷还朝鲜人“俘虏”一事中,由于清朝奉行消极的刷还政策, 仅包括朝鲜世子、凤林大君在内的少数人被刷还,其数目还不足全部“俘虏”的十分 之一,剩下的除少部分被编入八旗军外,大部分则以“战利品”的名义分发给王公贵 族和八旗军官兵,沦为家奴或农奴(包衣)。1644年清朝定都北京后,包括八旗军在 内的满洲地区的所有军民迁入关内,满洲八旗的朝鲜人官兵、各农场的朝鲜人包衣 也随之入关。清朝统一中国大陆后,部分朝鲜人包衣随王公贵族再次移居满洲,世世代代以农为生。 1982年,在中国政府开展的第三次全国人口普查活动中,河北省青龙县八家子 乡塔沟村和大杖子乡孟家窝铺、平泉县七沟镇朴杖子村,辽宁省盖县陈屯乡朴家沟 和本溪县山城子乡朴堡、久才、化皮等村的千余名村民认为他们是高丽人的后孙, 要求将他们的族籍由汉族恢复为朝鲜族。于是,当地政府在进行了充分的历史考察 和社会调查的基础上,将上述朴氏村民的族籍恢复为朝鲜族。上述朴氏的先祖在移 住初期虽然身份卑贱,但由于其生活空间相对比较稳定,这就在某种程度上为其民 族文化的保存和延续提供了有利条件。尽管他们曾被视为低微的朝鲜离散移民,在 与其他民族的共同生活中无法很好地传承其民族文化,但上述朴氏后裔们在历经 360余年的沧桑之后,其民族文化依然得以存续的事实,有力地证明了中国朝鲜族 的历史上限是17世纪20-30年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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