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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학보 [書誌學報]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지
  • 발행기관
    한국서지학회 [The Bibliography Society of Korea]
  • pISSN
    1225-7338
  • 간기
    반년간
  • 수록기간
    1990 ~ 2012
  • 주제분류
    복합학 > 문헌정보학
  • 십진분류
    KDC 010 DDC 010
제39호 (16건)
No

기획특집 1 : 新羅寫經과 日本所在 8-9世紀 華嚴經

1

日本所在の八ㆍ九世紀の華厳経及びその注釈書の加点

小林芳規

한국서지학회 서지학보 제39호 2012.06 pp.5-23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日本に現存する八世紀と九世紀の華厳経及びその注釈書の加点本を、年次順に並べて、その加点内容を比考すると、次のことが知られる。一、現存する華厳経の加点本の最も古いものは、古代韓国語(新羅語)を角筆で書き入れた東大寺蔵本である。その加点の内容は、真仮名(一部に省画仮名を交える)と、梵唄譜と縦長線合符であって、語順符とヲコト点(点吐)は用いられていない。二、梵唄譜と縦長線合符は、日本の八․九世紀の白点 ․ 朱点では使われず、縦長線合符は十世紀以降も使われない。これに対して、古代韓国語では角筆加点に見られ、日本の八世紀の奈良写経の角筆加点にも見られるのは、影響関係が考えられる。三、語順符とヲコト点は、訓読(釈読)を反映する符号であり、日本で本文の校正に使った白書․朱書を訓点の加点に流用するようになった勘経を契機に始まったと考えられ、凡そ神護景雲(七六七〜七七〇)の一切経書写の頃から見られる。語順符は韓国で用いられた符号であり、ヲコト点も古代韓国語の点吐の影響の可能性がある。四、真仮名(一部に省画仮名を交える)は、古代韓国語を角筆で書き入れた東大寺蔵華厳経を始め、八世紀の奈良写経に角筆で用いられている。更に白点 ․ 朱点でも用いられる。九世紀の仮名字体によると、東大寺僧の使用した仮名が新羅語の仮名に親密性を持っている。

2

日本 所在 8ㆍ9世紀 華嚴經 및 그 注釋書의 加點

小林 芳規

한국서지학회 서지학보 제39호 2012.06 pp.25-44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일본에 현전하는 8세기와 9세기의 『華嚴經』및 그 주석서의 加點本을 연대순으로 정리하여 그 加點 내용에 대해 비교, 검토해 보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1. 현존하는 『華嚴經』의 加點本 중 가장 오래된 것은 고대 한국어(新羅語)를 角筆로 기입한 東大寺 소장본이다. 그 加點 내용은 眞假名(省劃假名도 일부 포함됨)과 梵唄譜 및 縱長線[긴 수직선]의 合符이며 語順符와 ヲコト點(點吐)은 사용되지 않았다. 2. 梵唄譜와 縱長線[긴 수직선]의 合符는 8․9세기 일본의 白點․朱點으로는 사용되지 않았고 10세기 이후에도 사용되지 않았다. 이에 반하여 고대 한국어에서는 角筆 加點에서 발견된다. 8세기 일본 奈良 寫經의 角筆 加點에서도 발견되는 점을 감안하면 그들 사이에 영향관계가 있었음을 상상할 수 있다. 3. 語順符와 ヲコト點은 訓讀(釋讀)을 반영하는 符號로 일본에서는 본문에 대한 교정을 위해 사용하던 白書․朱書를 訓點 加點으로 유용한 勘經을 계기로 시작된 것으로 생각되며, 대략 神護景雲(767~770) 시기의 一切經 書寫 무렵부터 나타나기 시작한다. 4. 眞假名(省劃假名도 일부 포함됨)은 고대 한국어를 角筆로 기입한 東大寺 소장 『華嚴經』을 비롯하여 8세기의 奈良 寫經에서 角筆로 기입되었다. 또한 白點․朱點으로도 사용되었다. 9세기의 假名 字體를 고려할 때 東大寺 스님들이 사용하던 假名이 新羅語 假名과 친밀성을 지녔음을 알 수 있다.

3

日本における新羅写経の発見と古代日本ㆍ朝鮮写経

山本信吉

한국서지학회 서지학보 제39호 2012.06 pp.45-59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正倉院に伝えられる聖語新羅経は以下のように要約できる。「聖語新羅経」は「新訳八十巻花厳経」(于闇国三蔵実叉難陀(六五二~七一〇)訳)の巻第七十二から第八十までの九巻を一巻に書写した一部合巻経である。しかしその本文は各巻の本文の一部を省略し、全体の約46%しか書写していない著しい本文省略経である。省略の仕方は便宜的で各巻の本文の途中および巻末を任意に省略している。その理由は不明であるが、新訳の八十巻花厳経は巻数が多い経典であるため、写経の巻数を八巻もしくは一〇巻に縮小するため本文を省略したと思われる。本文の料紙は白の楮紙(ちょし)で、表面に丁寧に打ち紙が施されている。中国․唐では写経の料紙に麻紙(まし)を用いるのが通例で、日本の官立写経所は料紙に唐経に準じて麻紙を用いている。一部に穀紙を用いた例はあるが楮紙を用いた例は稀少で、白楮紙の例はない。これに対して古代朝鮮では写経の料紙は楮紙が一般的であるといわれている。「聖語蔵新羅経」が料紙に上質の楮紙を用いていることはこの写経が新羅で書写されたことを示す有力な根拠となると思われる。なお「聖語蔵新羅経」の料紙の寸法は縦二六․0センチメートル、一紙の幅は平均五六․二センチメートルで唐および日本の通例の麻紙の寸法と大差はない。「聖語蔵新羅経」は巻首の首題下に「用紙布 五十四張」と料紙の紙数を注記している。写経の料紙の紙数の単位の表記に「張」字を用いるのは日本と朝鮮両国に共通である。しかし日本での用例は「正倉院文書」の文中では「紙」と共に「張」字を併用しているが、写経の奥書中に用いられているのは「紙」が殆んどで「張」を使っているのは極めて稀れである。本文は本文料紙の一紙に行数三十二行で書写されている。日本の奈良時代の官立写経所が書写した華厳経が一紙二十六行前後であったことに比べると大差はない。ただし「聖語蔵新羅経」には界線が施されていない。本文の筆跡は楷書で、一点․一画をゆるがせにしない端麗な書法を示している。筆線は鋭く、力強く、のびのびとした筆法を示し、格調が高く、整った書体を現しているのが特徴である。 なお、「聖語蔵新羅経」の本文には字画の筆線の運筆の変化の動きを示す「遊糸(ゆうし)」の筆法がある。この遊糸の線は日本の写経では天平十二年(七七四)光明皇后発願一切経からみえる筆法である。

4

日本에 있어서 新羅寫經의 發見과 古代日本ㆍ朝鮮寫經

山本信吉

한국서지학회 서지학보 제39호 2012.06 pp.61-75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正倉院에 전해지는 聖語新羅経은 다음과 같이 要約할 수 있다. 「聖語藏新羅經」은 「新譯80巻花嚴經」(于闐國三藏實叉難陀(652~710)譯)의 巻第72부터 卷第80까지의 9巻을 1巻에 書寫한 一部合巻經이다. 그러나 그 本文은 各巻의 本文의 一部를 省略하고, 全體의 約 46%밖에 書寫하고 있지 않은 현저한 本文省略經이다. 省略의 방법은 便宜的으로 各巻의 本文 途中 및 巻末을 任意로 省略하고 있다. 그 理由는 不明하지만, 新譯의 80巻花嚴經은 巻數가 많은 經典이기 때문에 寫經의 巻數를 8巻 혹은 10巻으로 縮小하기 위해서 本文을 省略하였다고 생각된다. 本文의 종이는 하얀 楮紙(ちょし)로 表面에 정성스럽게 두들겨 광택을 낸 종이가 붙어 있다. 中國․唐에서는 寫經의 종이에 麻紙(まし)를 사용하는 것이 通例이며, 日本의 官立寫經所는 종이를 唐經에 준해서 麻紙을 사용하고 있다. 一部에 穀紙를 사용한 例는 있지만, 楮紙를 사용한 예는 매우 적고 白楮紙의 例는 없다. 이에 대해서 古代朝鮮에서는 寫經의 종이는 楮紙가 一般的이라고 알려져 있다. 「聖語藏新羅經」이 종이에 上質의 楮紙를 사용하고 있는 것은 이 寫經이 新羅에서 書寫된 것을 나타내는 有力한 根據가 된다고 생각한다. 또한 「聖語藏新羅經」의 종이의 크기는 세로 26.0cm, 한 장의 幅은 平均 56.2cm로 唐 및 日本의 일반적인 麻紙의 수치와 별 차이가 없다. 「聖語藏新羅經」은 巻首의 首題 아래에 「用 五十四張」이라고 종이의 紙數를 注記하고 있다. 寫經 종이의 紙數에 대한 單位 表記에 「張」字를 사용하는 것은 日本과 朝鮮 兩國에 共通된다. 그러나 日本에서의 用例는 「正倉院文書」의 文中에서는 「紙」와 함께 「張」字를 倂用하고 있는데, 寫經의 奥書 중에 사용되고 있는 것은 「紙」가 대부분이며, 「張」을 사용하고 있는 것은 매우 드물다. 이에 비해서 朝鮮에서는 高麗寫經을 포함해서 「張」, 「丈」이 一般的이며, 「紙」의 使用 例는 未見이다. 本文은 本文 종이의 한 장에 行數 32行으로 書寫되어 있다. 奈良時代의 官立寫經所가 書寫한 華嚴經이 한 장에 26行 前後였다는 것에 비교하면 큰 차이는 없다. 단 「聖語藏新羅經」에는 界線이 기입되어 있지 않다. 本文의 筆跡은 楷書로 1點․1劃을 소홀히 하지 않은 端麗한 書法을 나타내고 있다. 筆線은 예리하고, 강하고 유연한 筆法을 나타내고, 格調가 높고, 정연한 書體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 特徴이다. 아마도 官立寫經所의 優秀한 寫經生이 書寫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聖語藏新羅經」의 本文에는 字劃의 筆線에 대한 運筆의 變化의 움직임을 나타내는 「遊糸(ゆうし)(아지랭이)」 筆法이 있다. 遊糸의 線은 日本의 寫經에서는 天平 12年(740) 光明皇后發願一切經에서 보이는 筆法이다.

5

日本古代の紙 - 正倉院の文書ㆍ経巻を中心に -

杉本一樹

한국서지학회 서지학보 제39호 2012.06 pp.77-90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本稿は、宮内庁正倉院事務所が2005~08年におこなった正倉院の紙の特別調査(第2次)の成果を紹介し、日本古代の紙を、古代東アジアの紙の歴史のなかに位置づけることを試みるものである。この調査は,実物の科学的調査に基づく実態究明を目指し,日本古代製紙技法の意義と変遷について大きな成果を上げた1960~62年の第1次調査に続く。正倉院に存在する、書記のための紙は,大きく文書․経巻の二系統にわけられるが,両者を合わせれば,現存する日本古代(主に8世紀)の紙資料の大半がその中に包摂される。今回の調査の成果は以下のようにまとめられる。材質の点では,正倉院の紙の原料として,マユミ、苧麻、苦参、楡など、文献上の名称として知られていた植物繊維の使用がはじめて実例で確認された。また紙の特徴から,当時の製紙技術としては、粘剤を使用し、上桁のある漉簀を使用するのが標準的であると考えられる。ここには均質性と多様性との両面がみられ,8世紀という年代幅の中では、この間に急激な技術の進歩があったとは考えにくい。技術が正倉院の水準に達する前の段階で,大きく進んだ場所として,7世紀以前の韓半島が想定される。正倉院には,8世紀前後の新羅製の紙製品なども存在する。東アジア古代の書記文化という視点から,紙については総合的に考える必要がある。

6

일본 고대의 종이 - 正倉院의 文書ㆍ經巻을 중심으로 -

杉本一樹

한국서지학회 서지학보 제39호 2012.06 pp.91-104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본고는 궁내청(宮內廳) 정창원(正倉院) 사무소가 2005~2008년에 행한 정창원의 종이 특별조사 (2차)결과를 소개하고, 일본 고대의 종이를 고대 동아시아 종이의 역사 속에 자리매김을 하려는 시도이다. 이 조사는 실물의 과학적 조사에 근거한 실태 규명을 목표로 일본 고대 제지 기술의 의의와 변천에 큰 성과를 거뒀다. 1960~1962년 제1차 조사의 뒤를 잇는 것이다. 정창원에 존재하는 서기(書記)를 위한 종이는 크게 문서․경권(經卷) 두 계통으로 나뉘는데, 양자를 합치면 현존하는 일본 고대(주로 8세기) 종이 자료의 대부분이 그 안에 포섭된다. 이번 조사 결과는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재질의 면에서, 정창원의 종이 원료로 화살나무, 모시풀(苧麻), 고삼(苦蔘), 느릅나무 등 문헌상의 명칭으로 알려져 있는 식물 섬유의 사용이 처음으로 실례(實例)로서 확인되었다. 또한 종이의 특징에서 당시의 제지 기술로는 점제(粘剤)를 사용하여 가로 댄 나무가 있는 녹책(漉簀)을 사용하는 것이 표준적인 것으로 생각된다. 여기에는 균질성과 다양성의 양면이 보이고, 8세기라는 연대의 폭 가운데에서는 그 사이에 급격한 기술의 진보가 있었다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기술(技術)이 정창원의 수준에 도달하기 전의 단계에서, 크게 발전한 장소로서는 7세기 이전의 한반도가 상정(想定)된다. 정창원에는 8세기 전후의 ​​신라제(新羅製) 종이제품 등도 존재한다. 동아시아 고대의 서기문화(書記文化)라는 관점에서, 종이에 대해서는 종합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7

東大寺 『華嚴經』卷第12-20의 節略 樣相

金星周

한국서지학회 서지학보 제39호 2012.06 pp.105-130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東大寺와 正倉院에는 『華嚴經』의 本文을 생략하여 만든 『華嚴經』이 있다. 東大寺에 所藏된 『華嚴經』은 80권본 주본 『화엄경』의 권제12-20에 해당하고 正倉院 『華嚴經』은 권제72-80에 해당한다. 山本信吉(2006), 小林芳規(2008)은 각각 이들 문헌들이 신라에서 만들어진 新羅寫經임을 밝혔다. 東大寺 『華嚴經』에는 角筆로 기입된 符號, 梵唄譜, 文字口訣 등이 있고, 東大寺 『華嚴經』과 正倉院 『華嚴經』은 本文의 節略 形態, 종이, 書寫 形式 등으로 볼 때 僚卷이 분명하므로 이들이 신라사경임은 틀림이 없다. 그런데 山本信吉(2006), 小林芳規(2008)은 이들 문헌들이 節略된 樣相에 대해서는 任意的 내지 恣意的으로 省略되었다는 見解를 피력하였다. 이 글은 山本信吉(2006), 小林芳規(2008)의 견해 중 東大寺 『華嚴經』과 正倉院 『華嚴經』의 節略이 任意的 내지 恣意的으로 절약되었다고 보는 부분에 대해서는 그 견해를 부정하고 동대사 『화엄경』과 정창원 『화엄경』은 의도적인 계획 하에서 절약하여 이루어진 문헌임을 밝히려는 글이다. 이들 문헌이 의도적인 계획 하에서 절약된 것이라는 근거는 첫째, 동대사 『화엄경』의 절약된 각 품의 절약율 또는 게재율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동대사 『화엄경』의 편집자가 일정한 의도 하에서 이 문헌을 편집하였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제11 淨行品의 141수의 게송은 1수만 절약되어 99%의 게재율을 보이는데 평균 30%의 게재율을 보이는 문헌이 정행품의 게송에 관해서는 이와 같이 높은 비율로 게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동대사 『화엄경』의 편집자는 계획된 편집 의도를 가지고 동대사 『화엄경』을 편집하였음을 말해 준다. 둘째, 山本信吉(2006)은 정창원 『화엄경』의 끝부분이 ‘亦不能及是’로 끝나 있기 때문에 이 문헌의 마지막 部分이 “本文의 途中에 突然히 끝나 버린다”고 언급하였으나 新修大藏經을 제외한 國譯一切經, 한글대장경, 月精寺 所藏 『화엄경』음독구결, 呑虛스님의 『花嚴經 懸吐本』, 無比스님의 『懸吐科文 花嚴經』은 모두 ‘亦不能及’으로 句讀를 떼고 있기 때문에 분명히 정창원 『화엄경』의 끝부분이 ‘돌연히 끝난’ 것은 아니다. 한편 동대사 『화엄경』에 각필로 기입된 부호, 범패보, 문자구결 등의 존재를 생각하면 이 경은 供養用 또는 裝飾經이라기보다는 實用的 目的으로 만들어진 寫經이라고 할 수 있다.

東大寺と正倉院には、華嚴經の本文を略した華嚴經がある。東大寺に所藏してある華嚴經は、80卷本周本華嚴經の卷第12-20に当り、正倉院の華嚴經は卷第72-80に該当する。山本信吉(2006)、小林芳規(2008)はこれらの文獻は新羅で製された新羅寫經であることを明らかにした。東大寺華嚴經には角筆で書き込まれた符號․梵唄譜․文字口訣などがあり、東大寺華嚴經․正倉院華嚴經は本文の節略形態․紙․書寫形式などから見たとき、僚卷が明らかであるため、これらは新羅寫經であることは間違いない。ところで、山本信吉(2006)․小林芳規(2008)はこれらの文獻の節略された樣相については、任意的乃至恣意的に省略されたとの見解を見せた。本文は山本信吉(2006)․小林芳規(2008)の見解で東大寺華嚴經と正倉院華嚴經の節略が、任意的乃至恣意的に節約されたというところに対してその見解を否定して東大寺華嚴經と正倉院華嚴經は、意圖的な計劃の下で節約してできた文獻であることを明らかにしようとするものである。これらの文獻は、意圖的な計劃の下で節約したという根拠はまず、東大寺華嚴經の節約された各品の節約率または掲載率がそれぞれ異なるため、東大寺華嚴經の編集者が一定の意圖の下で、この文獻を編集したと見ることができる。特に第11の淨行品の141首の偈頌は1首のみ節約され、99%の掲載率が見えるが、平均30%の掲載率を示す文獻が淨行品の偈頌に關しては、このように高い割合で掲載しているという事實は、東大寺華嚴經の編集者は計劃した編集意圖を持って東大寺華嚴經を編集したことを物語っている。第二に、山本信吉(2006)は、正倉院華嚴經の末尾が「亦不能及是」で終わっているので、この文獻の最後の部分が「本文の途中で突然に終わってしまう」と述べられたが、新修大藏經を除いた國譯一切經․ハングル大藏經․月精寺所藏華嚴經音讀口訣․呑虛僧の『花嚴經懸吐本』、無比僧の『懸吐科文花嚴經』はすべて「亦不能及」に句讀が終わっているので、明らかに正倉院華嚴經の末尾が「突然として終わった」わけではない。一方、東大寺華嚴經に角筆で書き込まれた符号․梵唄譜․文字口訣などの存在を考えると、この經は供養用または裝飾經というよりは、實用的目的で作られた寫經である、ということができる。

8

755年 新羅 白紙墨書 『大方光佛華嚴經』의 形態

남유미

한국서지학회 서지학보 제39호 2012.06 pp.131-148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현재 알려진 신라사경의 수는 적다. 그러나 新羅 白紙墨書 󰡔大方廣佛華嚴經󰡕에는 造成記가 적혀 있어서 그 연대가 명확할 뿐 아니라 사경의 제작 과정이 기록되어 있어서 아주 귀중한 자료이다. 본고에서는 신라 백지묵서 대방광불화엄경의 제작배경 및 전래를 살펴보고 사경의 세부형태를 관찰하여 신라사경의 형태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신라 백지묵서 대방광불화엄경은 신라 景德王(경덕왕) 13년(754)에 緣起法師가 간행한 것으로 법화경과 함께 한국 불교사상 확립에 크게 영향을 끼친 불교경전 중 하나로, 화엄종의 근본경전이다. 卷末에 적혀있는 조성기에는 사경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에 대한 정보가 자세히 적혀 있고 제작방법과 그에 따른 의식 절차에 대해서 적혀 있다. 신라 백지묵서 대방광불화엄경은 현재 총 8軸 중 2軸만이 전해져 오고 있는데 第1~10卷으로 구성된 軸은 습기와 충해 등으로 펼칠 수 없는 상태이며 第44~50卷이 쓰인 軸은 앞부분이 잘려져 있으나 비교적 양호한 상태이다. 그리고 이 2軸과 함께 발견된 자색종이 2片은 表紙로 추정되는데 金․銀泥로 겉표지에는 力士像圖, 속표지에는 佛菩薩圖가 그려져 있으며 도침이 잘 되어 있는 닥종이이다. 이 자색종이 2片는 第1~10卷이 쓰인 軸의 표지로 보이는데, 第1~10卷의 손상 형태와 자색종이 2片의 손상 형태가 일치하고 자색종이 2片에 卷緖의 흔적이 보이는 것과 卷紙와의 연결부로 추정되는 곳이 확인된다. 卷紙에 쓰인 종이는 닥종이로 보이며 아주 도침이 잘된 종이로 먹의 번짐이 적으나 시간의 경과와 습기로 인하여 도침이 풀린 곳도 보인다. 신라 백지묵서 대방광불화엄경의 軸木과 軸首는 아주 특이한 형태를 띠고 있는데 축목과 축수가 연결되는 부분의 형태가 서로 다르다. 이것은 시대를 불문하고 그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예에 속한다. 그리고 한 쪽 水晶軸首 안에는 사리가 한 알 들어 있어서 卷末의 조성기의 내용과도 일치한다. 2軸의 卷末에는 각각 조성기가 적혀있는데 그 내용은 동일하나 그 구성은 서로 다르다. 이는 卷紙의 여분에 따른 것으로 보이고 經文보다 작고 낮게 쓰인 것은 經文보다 조성기를 낮춰서 표현한 것으로 생각된다. 軸木과 卷紙가 연결된 부분에서 접착제의 시료를 채취하여 분석한 결과 천연아교임을 알 수 있으며 이 접착제는 卷紙의 연결에도 쓰이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위와 같이 신라백지묵서대방광불화엄경 만의 예를 살펴보긴 했으나 조성기라는 사경제작의 정보를 담은 글이 적혀 있어서 신라사경의 형태를 어느 정도 엿볼 수 있었다. 이는 앞으로 발견될 신라 사경의 연구뿐만 아니라, 사경형태연구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現在知られている新羅写経の数は少ないが、新羅白紙墨書大方廣佛華嚴經には造成記が書かれてあってその年代を明確であることと写経の製作過程が記録されてあることからとても貴重な資料である。本原稿では新羅白紙墨書大方廣佛華嚴經の製作背景および伝来を探って写経の細部形態を観察して新羅写経の形態について調べてみようとする。新羅白紙墨書大方廣佛華嚴經は新羅景徳王13年(754年)に縁起法師が刊行したもので、法華経とともに韓国仏教思想確立に大きな影響を及ぼした仏教経典のひとつとして華厳宗の根本経典である。巻末に書かれてある造成記には写経製作に参加した人についた情報が細かく書かれてあり、制作方法とそれによる儀式手順について書いてある。新羅白紙墨書大方廣佛華嚴經は現在総8軸の中2軸だけが伝来されており、第1~10巻に構成された軸は湿気と虫害などで広げられない状態であるし第44~50巻が書かれてある軸は前の部分が裁たれてあるが、比較的良好な状態である。それからこの2軸とともに発見された紫紙2片は表紙として推定されるが、金·銀泥でおもて表紙には力士像図、裏表紙には佛菩薩図が画かれてあってよく打ってある楮紙である。この紫紙2片は第1~10巻が書いてある軸の表紙に見える。その理由は第1~10巻の損傷形態と紫紙2片の損傷形態と一致すること、紫紙2片に巻緒の痕跡が見られること、それから巻紙との連結部と推定されるところが確認できるからだ。巻紙に使用された紙は楮紙で凄く良い打紙で墨の滲みは少ないが、時間経過及び湿気のため、打紙が元に戻っているところも見える。新羅白紙墨書大方廣佛華嚴經の軸木と軸首はかなり特異な形態を持っていて軸木と軸首が連結している部分の形態が互いに異なってあって、これは時代を問わずにその例を探し難しい。それから水晶軸首の片方の中には舎利が一粒は入ってあって巻末の造成記の内容とも一致する。2軸の巻末にはそれぞれ 造成記が書いてあってその内容は同じだが、その構成は互いに異なる。これは巻紙の余分によるものと考えられて経文より小さくて低く書かれてあるのは経文より造成記を低く表現したものだと考えられる。軸木と巻紙が連結された部分で接着剤の試料を採取し分析した結果、天然膠であることが分かった。この接着剤は巻紙の連結にも使用されているのではないだろうか。上記のように 新羅白紙墨書大方廣佛華嚴經だけの例を調べてみたが、造成記という写経製作の情報を含んだ文章が残ってあって新羅写経の形態をある程度伺える。これは今後発見する新羅写経の研究だけではなく、写経形態研究にもためになると考えられる。

기획특집 2 : 고려의 금속활자의 재조명과 세계인쇄사

9

고려 금속활자 연구의 흐름과 새로운 변화

옥영정

한국서지학회 서지학보 제39호 2012.06 pp.149-184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이제까지 연구된 고려 금속활자 연구에 대하여 시기별로 개관하면서 그 흐름을 살펴보고 최근의 증도가자 발굴에 이르기까지 각 시기별 연구의 특징과 성격을 유형화 해 본 것이다. 그 유형은 대체로 1. 고려 금속활자의 초창기 연구, 2. 『백운화상초록직지심체요절』의 재발견과 관련 연구, 3. 연구자료의 확대와 주제의 다양화, 4. ‘증도가자’의 발견과 새로운 변화 등 시기별로 구분된다. 고려 금속활자에 대한 연구는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발견이전과 이후로 크게 구분가능하고 실질적인 많은 연구가 발견 이후에 이루어졌다. 이 글은 증도가자 발견이전의 연구에 대하여 그 연구사적 흐름을 검토하고 앞으로 있을 발견 이후의 연구 과제를 예측해보는 의미에서 작성되었다. 앞으로의 연구는 ‘증도가자’ 발견 이전과 이후로 다시 구분될 수 있을 것이다. 증도가자의 발견으로 예측되는 기원설의 재검토, 실물활자와 인본 조사의 확대, 주조방법, 조판방법에 관한 기술사적 재검토 등 연구과제로 삼을 수 있는 몇 가지 논의를 정리해서 살펴보았다. 이와 같은 연구방식은 고려 금속활자의 연구사적 정리와 더불어 새롭게 발굴된 증도가자의 학술적 검증을 위해 진행되어야할 연구방향을 제시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까지의 연구 경향을 살펴보았을 때 대체로 문헌적 근거를 찾는 노력과 더불어 기술사적인 측면의 연구가 보완되고 실험적인 연구가 좀 더 다양하게 진행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This content, which showed up-to-date research of the Goryeo’s Metal-type Printing by period and was examined by trend with the latest excavation of ‘Jeungdogaza’, is categorized by features and characteristics of timely research. The category is generally divided into four parts. 1. The research of the early Goryeo’s Metal-type Printing. 2. Re-discovery of ‘Baekwunhwasangchorockjickjisimchaiyojeul’ and related research. 3. Variety of the subject and expansion of research data. 4. The Discovery of ‘Jeungdogaza’ and new trend. The Research of the Goryeo’s Metal-type Printing is largely divided into ‘before and after’ discovery of ‘Baekwunhwasangchorockjickjisimchaiyojeul’ and a lot of research was practically made after the discovery. This report was written for examination of the research trend on ‘before-the-discovery of ‘Jeungdogaza’. and also for estimation of research subject being made on ‘after-the-discovery’ in the future. The future research can be divided into before and after the discovery of ‘Jeungdogaza’. Through the discovery of ‘Jeungdogaza’, re-discussion of expected origin theory, the research expansion of practical printing and printed book, historic technical re-discussion of method of type casting and making cast was reviewed and summarized for some research subjects. This approach of research can be helpful of suggesting our research direction for academic evaluation of the latest ‘Jeungdogaza’ as well as for scientific Research summarization of the Metal-type Printing. With checking the latest research trend, generally more efforts should be made to look into literature grounds in addition to adding more historic technical aspect of research and making different experimental re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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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麗 金屬活字 證道歌字의 鑄造法과 印刷技術史的 分析

남권희

한국서지학회 서지학보 제39호 2012.06 pp.185-228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이 연구는 2010년에 발표된 고려 금속활자 증도가자의 형태와 물리적인 특징을 조사하여 그 주조법을 추론하고 실재상에 있어서 어떻게 재구될 수 있는가를 살펴본 것이다. 증도가자는 이미 알려진 ‘복’활자와 마찬가지로 활자의 외형에서 글자면과 하단부로 나뉘어져 주조된 흔적의 어긋난 층이 측면에서 발견된다. 이는 기본적으로 현존하는 조선 후기의 금속활자들에서도 같은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활자의 외부에는 주조 후 연마한 사선형태의 흔적이 있고 하부를 구성하는 홈은 글자의 형태에 따라서 중앙 또는 상하좌우로 치우친 형태를 보이는 것도 나타난다. 또 증도가자와 함께 발견된 네다리형 활자는 숙련된 부자의 조각과 우수한 주조술을 보여주고 있으며 글자의 분포는 漢字의 韻順으로 확인되었다. 금속활자의 주조법상 상하분리된 父字를 이용한 방법이 대부분이지만 조선 후기 1857년의 화재로 다시 주조된 16만자의 활자는 소위 ‘一體型 父字’를 이용한 주조법이 적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This study dealt with the physical form and feature of metal type in Koryo Dynasty, that is called Jeungdoga type(證道歌字) known by the author in the late of 2010. We tried to estimate how to make the type and what aspects should be consider in reproducing at the present time, especially we focused to the aspect of metal casting and methodology. Jeungdoga type(證道歌字) has the same pattern of physical aspect with the metal type Bok(蕧) which was came from seperated mold consisting of upper section and lower section. This means that Jeungdoga type(證道歌字) also has misaligned strata in the body as Bok(蕧) type. This kind of unique feature could be seen at the metal type in the late of Chosun Dynasty as well. The types have polishing trace in the outer part, and lower part of the type has groove whose shape are arranged to the center or biased position in the body. Another metal types investigated at the same time as Jeungdoga type(證道歌字) whose form were pillar-shaped in every 4 edge demonstrates magnificent engraving technology of patrix and excellent casting methodology at that time. The distribution of the types is ordered by the rhyme of the Chinese character. From the point of metal type casting, using the seperated patrix to upper and lower parts is common throughout all period, but exceptionally in 1857 of late Chosun period they used all-in-one shaped patrix in making 16 thousand of metal ty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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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出 금속활자와 고려시대 서예사

이완우

한국서지학회 서지학보 제39호 2012.06 pp.229-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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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최근 공개된 금속활자를 고려시대 석문․사경․대장경과 비교해본 것이다. 石文과의 비교에서 이 활자가 초당 구양순 서풍에서 나온 1125년 <대각국사비>에 가까웠다. 또 일부 자형은 중당 안진경 이후 유행된 것임도 알았다. 따라서 이 활자가 안진경 서풍이 유행한 12세기 이후 또는 <대각국사비>가 세워진 1125년 이후 주조되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또 충렬왕 초 1270~83년 사경과 비교하여 이 활자가 13세기 후반을 크게 넘지 않는다고 보았다. 또 대장경 판본과의 비교에서 재조본이나 寺刊本 불경과 유사한 성격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This study is to compare the metal types recently discovered with stelae, sutra inscriptions, and Tripitaka of Goryeo period. By comparing with the stele for the monk Daegak in 1125, which is come from the writing style of Ou Yang-xun, it could be found that the types and the stele are similar in character style. Also some characters of the types were originated from the style of Yan Zhen-qing. Therefore, it is possible to estimate that the types was produced after 12th century, when the style of Yan Zhen-qing was popular in Goryeo. And by comparing with sutra inscriptions in 1270~83, it could be found that the casting period of the types never exceed after the 13th century. Futhermore comparing with the Tripitaka woodblock-prints, it could be found that the types is very similar with the woodblock-prints which were published by temples before the Second Tripita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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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금속활자인쇄술의 始原과 관련한 鑄字本 「남명송증도가」의 간행년도에 관한 연구

김성수

한국서지학회 서지학보 제39호 2012.06 pp.273-301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이 논문은 한국 금속활자인쇄술의 시원(始原)과 관련되어 있는 금속활자본(鑄字本) 「남명송증도가」의 간행년도를 규명하기 위한 연구이다. 연구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목판본 「남명송증도가」의 저본(底本) 금속활자와 「상정예문」 및 「東國李相國全集」의 저본 금속활자는 동일한 금속활자, 즉 13세기 전기(前期)에 주성(鑄成)된 관주활자(官鑄活字)임을 규명하였다. 둘째, ‘금속활자본(주자본) 「남명송증도가」의 간행시기는, 1211년 창복사 담선법회(談禪法會) 당시에 최충헌에 의하여 금속활자로 인쇄되어 간행된 것임을 규명하였다. 이는 특히 13세기 초에 수선사(修禪社) 결사(結社)를 위하여 간행된 「법보단경」 등 7종의 핵심도서들을 집중적으로 분석하여 본 결과, 「법보단경」 등의 간행 및 창복사 담선법회와 가장 밀접한 관련성이 있음을 파악하였다. 그리하여 금속활자본 「남명송증도가」는 1211년 창복사 담선법회와 관련하여 간행되었음을 논증함으로써, 한국 금속활자 인쇄술의 시원(始原) 년도는 1211년임을 주장하였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investigate the publication date of the Nammyongsongjungdoga made by a movable metal type which is closely related to the origin of the Korean movable metal type printing technology. The finding of this study are as follows. First of all, it was proved that the movable metal type of the original of the woodblock printed Nammyongsongjungdoga and the movable metal type of the original of the Sangjeongyemun and Dongguk-yisanggukjeonjip are the same movable metal types which were made in the early 13th century by the government. Secondly, it was also proved that the publication date of the Nammyongsongjungdoga made using the movable metal type is 1211. It was published using the movable metal type by the Choi chung-hyun at Zen Meetings (Damseonbeophwae) at the Changbok Temple. According to the result of concentrated analysis on 7 kinds of critical books including the Beopbodangyeong(Sutra Spoken) which was published for the association of the Suseonsa in the early 13th century, it was found that the publication of the Beopbodangyeong(Sutra Spoken) was closely related to the Zen Meetings (Damseonbeophwae) at the Changbok Temple. Accordingly, it was maintained that the year of origin of the Korean movable metal type printing is 1211 by proving that the Nammyongsongjungdoga made using the movable metal type was published related to the Zen Meetings(Damseonbeophwae) at the Changbok Temple in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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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直指』와 『慈悲道場懺法集解』의 활자분류 비교

이승철

한국서지학회 서지학보 제39호 2012.06 pp.303-344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직지』와 『자비도량참법집해』는 동일한 금속활자로 인쇄한 책이라는 사실은 이미 선행 연구를 통해 밝혀진 사실이다.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연구를 토대로 두 板本의 광곽, 계선, 활자의 종류, 조판상태 등을 좀 더 세밀하게 비교하고자 하였다. 비록 『직지』는 금속활자본으로 『자비도량참법집해』는 飜刻本으로 차이는 있지만, 자세한 연구를 위해 두 原本 자료와 활자를 분류한 데이터는 DB로 구축하여 비교하였다. 그 결과, 먼저 두 책을 인쇄한 활자는 동일한 활자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비교대상이었던 『자비』의 경우는 상하 두 책이 인쇄한 시기가 달라 글자 획의 磨耗 정도가 서로 다른 것(상권보다 하권의 인쇄시기가 빠른 것으로 판단됨)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이 두 권의 동일 글자를 분류하여 비교적 특징이 잘 나타나는 同一 글자의 異體字를 중심으로 『직지』와 비교한 결과 같은 금속활자를 사용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례로 “日”의 경우, 『직지』에서는 거꾸로 植字되어 인쇄된 경우가 세 번 나타나는데 『자비』에도 그러한 경우가 한 번 나타난다. 그러나 판식이나 계선, 조판 등에선 동일함을 찾을 수가 없었는데 이는 인쇄시기와 장소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본 연구의 결과는 향후 진행될 『직지』상권에 대한 복원과 『직지』를 인쇄하는데 사용된 금속활자인 “興德寺字”에 대한 종류를 연구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The existing researches identified that Jikji and Jabidoryangchambeopjiphae(A Variorum Edition of Meditation on Zen Buddhism) were printed using the same movable metal types. This paper tried to compare margins, vertical lines, movable metal types and typesetting of both printings in more details. While Jikji is the printed book and Jabidoryangchambeonjiphae is the reprint wooden copy, data on the classification of movable metal types and data on both original copies were stored in database and compared for more detailed investigation. In accordance with the analysis results, the movable metal types used for both copies were the same. For Jabi to compare, the first and the second volume were printed in different times and so the abrasion of each stroke was different(it is estimated that the second volume was printed earlier than the first volume). The same characters from both volumes were selected and the different shapes from the same characters showing the features relatively well were compared. As a result, it was found that both volumes used the same movable metal types. Let’s take an example. For “日(day)”, it is set upside down in type in Jikji three times. It is also found once in Jabi. However, the same features were not found in typesetting, margins and printing types. It is estimated that it was because of the different printing times and places. The results of this paper will help to investigate the kinds of metal types “Heungdeoksaja” used to print Jikji and the further restoration of the first volume of Jikji.

일반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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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淸凉答順宗心要法門』과 『南明泉和尙頌證道歌』의 비교 고찰

유부현

한국서지학회 서지학보 제39호 2012.06 pp.345-368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고려대학교에 소장되어 있는 고려본 『心要法門』은 1973년 5월 세간에 알려지면서 학계에 적지 않은 주목을 받았고 이 책의 발문 한 장은 금속활자로 찍어내어 오려붙여진 것으로 알려졌었다. 한편 2010년 9월에는 『南明泉和尙頌證道歌』를 찍어내었던 고려활자의 실물이 세상에 공개되어 1239년에 重彫된 목판본 『南明泉和尙頌證道歌』가 고려금속활자본 『南明泉和尙頌證道歌』를 저본으로 해서 覆刻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본고는 『心要法門』 跋文과 고려금속활자본의 覆刻本인 『南明泉和尙頌證道歌』의 版式과 글자를 비교 분석하여 『心要法門』 跋文과『南明泉和尙頌證道歌』의 관련성 여부를 밝혀본 것이다. 그 결과 『心要法門』跋文과 『南明泉和尙頌證道歌』는 판의 형태에 있어서 서로 다르며, 또한 동일한 글자의 형태에 있어서도 상이한 것으로 분석되었다. 따라서 고려본 『心要法門』 跋文이 종래의 주장처럼 금속활자로 조판되어 인쇄되었다 하더라도 고려금속활자인 이른바 “證道歌字”와는 어떠한 관계도 없는 것으로 판단되었다.

Goryeobon Shimyobeopmoon owned at Korea University has got a great attention from an academic circles with great fanfare since May, 1973. And the epilogue of it was known for being cut out and attached after it was printed with a metal type. Meanwhile, the original size of Goryeo type which has printed Nammyungcheonhwasangsongjeungdoga in September, 2010 was revealed into the public and the wooden plate, Nammyungcheonhwasangsongjeungdoga reprinted in 1239, was reprinted with Nammyungcheonhwasangsongjeungdoga, Goryeo metal type, as a jeobon. The study focused on comparing and analyzing the epilogue of Shimyobeopmoon with the pansik and letters of Nammyungcheonhwasangsongjeungdoga, the bokgakbon of Goryeo metal type. And then, it showed the relations the epilogue of Shimyobeopmoon and Nammyungcheonhwasangsongjeungdoga. As a result, it is analyzed that the epilogue of Shimyobeopmoon and Nammyungcheonhwasangsongjeungdoga is different in the form of a piece of paper and identical letters. Therefore, even though the epilogue of Goyeobon Shimyoubeopmoon was typeset and printed as an existing assertion, it is judged that it has nothing to do with so-called “Jeungdogaja”, Goryeo metal ty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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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랍을 이용해 주조된 금속활자와 거푸집의 재료학적 특성

윤용현, 조남철, 이병훈

한국서지학회 서지학보 제39호 2012.06 pp.369-388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밀랍주조법에 의해 금속활자를 주조하는 방법은 최근까지 거푸집 재료의 사용에 있어 관련 분야의 논의가 지속되고 있는 분야이다. 지금까지는 이암과 석비레, 주물사를 주재료로 하고 황토와 모래를 적절하게 혼합하여 사용한 결과 금속활자 주조를 성공해 낼 수 있었다. 특히 석비레를 주재료로 사용한 경우 활자의 주조과정이나 鑄成率에 있어 성공정도가 높아 가장 적합한 재료로 판단되었다. 본 연구는 밀랍을 이용해 금속활자를 주조하기 위해 석비레, 황토 등을 섞어 거푸집을 제작하고 이들의 재료학적 특성을 XRD, 실체현미경, SEM, TGA-DTA 등을 이용하여 분석한 것이다. 거푸집에 대한 광물분석 결과 燒成하지 않은 거푸집(No.1)에서는 原材料와 유사한 석영, 장석, 운모, 녹니석 등이 검출되었으나, 소성한 거푸집(No.2와 No.3)에서는 녹니석이 검출되지 않았다. 검출된 성분으로 미루어 소성시 온도가 약 850℃내외에서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결과는 TGA-DTA 분석결과와도 일치한다. 또한 실체현미경과 SEM 등을 이용하여 각 거푸집의 미세조직을 관찰한 결과 No.1의 경우는 소성이 이루어지지 않아 性質이 치밀하지 못하였으며, 일부 석영이 빠져 나간 곳에는 미세한 광물 입자들이 치밀하지 못한 채 남아 있었다. No.2와 No.3의 경우에는 내부에서 소성이 이루어져 No.1에 비하여 성질이 치밀하게 유지하고 있음을 관찰할 수 있었다. 특히 No.3의 경우에는 금속활자 용융액과 접한 표면부의 경우 아주 작은 깊이로 외부에 비하여 소성온도가 더 높았었기 때문에 기질이 더 치밀하고 색상에서도 차이가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번에 주조실험에서 복원된 금속활자는 대략 Cu 75.93wt%, Sn 9.18wt%, Pb 8.92wt%로 이루어진 Cu-Sn-Pb 합금이며 임의적인 열처리나 가공흔적이 관찰되지 않은 일반적인 주조 조직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연구에서는 석비레, 황토의 비율을 일정한 6.5 : 3.5로 제작하여 실험에 이용하였지만, 이에 대한 비율을 다양하게 한다면 거푸집에 대한 더욱 유익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Casting movable metal types using beeswax casting has been a controversial debate topic since mould was used as a material. Until now, main materials for successfully casting movable metal types have been mudstone, saprolite and moulding sand well mixed with red clay and sand. Especially when saprolite was used as a main material, in whole process of mixing saprolite with red clay and rate of casting success, was most succeeded. This research was carried out by mixing saprolite with red clay and mudstone to create a mould and analyze their characteristics as a material through XRD(X-Ray Differentiation), stereoscopic microscope, SEM(Scanning Electron Analysis) and TGA-DTA(Thermogravimetric Analysis Differential Thermal Analysis). When mineralogical analysis was done on moulds, mould(No.1) without firing was detected with quartz, feldspar, mica and chlorite similar to raw materials. However, moulds(No.2 and No.3) with firing was not detected with chlorite. Concluding from detected components, firing was done on moulds around 850℃. This result perfectly matched with TGA-DTA analysis. Moreover when each mould's microstructures were analyzed with stereoscopic microscope and SEM, it was found that mould(No.1)'s quality was not elaborate and meticulous due to absent of firing process and some places where quartz were detached were left with mineral particles. In cases of moulds(No.2 and No.3), internal firing maintained the quality if components very fine and elaborate compared to that of mould(No.1). Particularly in the case of mould(No.3), the firing temperature was slightly higher internally where the mould was adjacent to melted metal type thus substrates were more elaborate and showed colour difference compared to other ones. Movable metal types restored through this casting experiment was an Cu-Sn-Pb alloy composed of Cu 75.93wt%, Sn 9.18wt%, Pb 8.92wt% and any evidence of artificial firing and manufacturing was not found. Constant ratio, 6.5:3.5 of saprolite and red clay were used in this research however, if the ratio is varied more useful and interesting information about mould could be obtain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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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지학회 회칙/한국서지학회 편집위원회 규정/논문투고규정/논문입력세칙/한국서지학회 논문심사규정

한국서지학회

한국서지학회 서지학보 제39호 2012.06 pp.389-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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