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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재학회는 1989년에 설립되었다. 당시의 이름은 간재사상연구회였다. 2000년 간재학회로 재편되면서, 학회지의 이름도 『艮齋思想硏究論叢』에서 『艮齋學論叢』으로 바뀌었다. 전자의 경우, 간재 한 사람에 연구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후자의 경우에는 ‘간재학’이라는 명칭에서 보듯이 간재는 물론 간재문인 전반에 관한 연구로 시야가 확장된다. 지금까지 간재학회지에 발표된 것을 보면 艮齋사상에 대한 논문이 50여 편, 艮齋 門人 19명에 대한 21편의 연구 논문이 있고, 그 외 간재의 스승 全齋 任憲晦에 대한 것 3편, 주자학 국제학술대회 관련 논문 12편이 있다. 이 글은 이 연구 성과를 중심으로 간재사상이 어떻게 艮門에서 계승되고 전개되는가를 살펴보는데 목적이 있다. 그 작업을 통해 우리는, 艮門 弟子들의 사상은 창의적이라기 보다는 스승 艮齋의 설을 충실히 계승하고 발양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 이는 양면적인 특징을 지닌다. 긍정적 요인은 전통을 온전하게 보존하는데 기여했다는 점이고, 부정적 요인으로서는 지나친 보수성과 도그마에 빠지기 쉽다는 점이다. 요컨대 간재학파의 사상 전개의 歷程은 그런 의미에서 ‘發展’이라기보다는 ‘墨守’적 의미가 더 강하게 클로즈 업 된다. 간재학의 창의적 계승과 현대화를 위해 艮門과 동양철학 연구자들이 매진해야할 차례인 것 같다.
The Gan-Jae Academy was organized in 1989, with the name 'Studies Institute of Gan-Jae Thought' originally. After it is re-established to its current state in 2000, the name of transactions was also changed from 'Thesis on Study of Gan-Jae Thought' to 'Thesis on Gan-Jae Philosophy.' The former mainly focuses on the establishment of Gan-Jae himself, while the latter expands its view over Gan-Jae as well as his followers. So far, the academy released 50 transactions about Gan-Jae Thought, 21 about nineteen followers of his, and three about his preceptor, Lim Heon-Hoe. It also read 12 papers for International Congress of Zhuxi Philosophy. This article aims at reviewing how Gan-Jae Thought is succeeded and developed by his followers, through Gan-Jae Academy's achievements made so far. We find out that his followers have been rather faithfully take over their mentor than using their originality. It has both merits and demerits; the virtue being that it has contributed to the preserve the integrity of tradition, while the shortcoming being it is vulnerable to be led into the hidebound philosophy, or dogmatism. In short, the history of development of Gan-Jae Philosophy has been rather inclined toward conservation than advancement. It is high time that the followers of Gan-Jae and the Eastern Philosophers struggled on the creative succession and modernization of Gan-Jae Philoso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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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간재 전우(艮齋 田愚, 1841~1922)의 예학사상에 대하여 고찰한 것이다. 간재는 19세기의 외세의 침략과 국권상실의 시대상황에서 도학의 계승을 자신의 책무로 생각했던 인물이다. 간재는 심성론(心性論)에서 악(惡)으로 흐를 가변성이 있는 심이 항상 순선(純善)한 이치인 성을 배워야 한다는 ‘성사심제(性師心弟)’를 주장하였다. 이러한 간재의 심성론은 인간의 내면적인 주체성을 중심으로 하는 윤리실천 주체의 확립을 통해 유학의 정통성을 지키고 도(道)를 수호하려는 신념에서 나온 것이다. 간재 예학사상은 이러한 인간이해에 기초하여, 인간의 도덕적 주체성을 확립하고자 하는 측면으로 전개되었다. 간재의 사상에서 예는 인간됨의 행위준칙이면서 국가의 기강(紀綱)과 풍속(風俗)을 바로잡는 기준이 되며, 나아가 문명(文明)과 반문명(反文明)을 구별하는 기준이 된다. 이에 간재는 전통적의 유가(儒家)의 예법(禮法)을 회복하고자 하였는데, 이는 단순한 복고적(復古的)인 태도에서 나온 것이라기보다는 전통적인 예법의 고수를 통하여 무너져 가는 국가와 민족정신의 재건을 추구한 것이었다. 이와 같은 예학의 기본정신에 입각하여, 간재는 구체적인 예설(禮說)에 있어서도 남녀(男女)와 적서(嫡庶)를 차별하지 않으려는 보편지향적 관점을 보이고 있으며, 가례와 고례를 중심으로 세속(世俗)의 잘못된 습속(習俗)을 합리적으로 바로잡고자 하였다.이러한 점에서 간재의 예학사상은 기본적으로 국가 존망(存亡)의 위급한 시기에, 유가의 예제(禮制)를 올바르게 확립함으로써 도학(道學)을 수호하고, 나아가 인간됨의 기준이 되는 도리(道理)로서의 문명사회 건설을 지향한 것이었다고 하겠다.
This thesis examined Ganjae Jeon-Woo(艮齋 田愚, 1841~1922)'s Li-thought. Ganjae was a person who thought of the succession of moral philosophy as his duty under the times of foreign power's invasion and loss of the national sovereignty. In A theory that explains philosophically the human mind(心性論), he insisted on SungSaShimJe(性師心弟;If the nature is the master, the mind is the follower) meaning the mind, which is changeable toward the evil, should learn the nature that is the reason of pure goodness at all times. Such his theory came from his faith in keeping the orthodox of the Confucianism and guarding the morality through establishing the subject of conducting morality centering on the interior identity of human. Ganjae's Li-thought, based on such understanding of human, developed in the side that established the moral identity of human. In his idea, 'Li(禮)' is the rule to action of humanity; it is the standard to straighten the fundamental principle and customs of the country and to distinguish the civilization from non-civilization. For this, he tried to restore the courtesy of the Confucian scholars. This was aimed at pursuing the re-construction of the country and national spirit that were collapsing through adhering to the traditional courtesy rather than coming from the ordinary reactionary attitude. Based on such fundamental spirit of the Li-thought, Ganjae showed universal-oriented perspectives trying not to discriminate between male and female, and legitimate and illegitimate sons and attempted to correct the wrong folkways in the secular world focusing on Zhuzijiali(朱子家禮;the book of the customary formalities of a family, written by Sung) and old courtesy.For that reason, Ganjae's Li-thought can be said that it sought to guard the moral philosophy, and to build a civilized society as a duty of being the standard for humanity by straightening the courteous systems of Confucian scholars at the urgent moment of the country's existence at sta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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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조선말의 대유학자인 간재 전우의 경학(經學)을 검토하여 그 사상사적 의의를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간재는 율곡(栗谷)을 비롯한 기호학파 및 낙론계 입장을 자신의 기본 입론으로 하고, 이를 후대에 전해야 할 사명을 자임하여, 경전해석에 매우 엄정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주희의 고전 해석과 기호학파 낙론 계열의 학문 전통을 바탕으로 하였지만, 맹목적으로 추종하거나 고증을 위한 고증은 거부하였다. 그의 경학은 사서를 중심으로 하여 오경에 대해서는 그다지 언급하지 않았다. 그의 사서해석은 자신의 성사심제설에 근거하여 “사서” 전체를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그의 성리학을 보조하도록 짜여있다. 텍스트를 유기적, 정합적으로 분석하고 있으며, 다양하고 엄밀하게 전거를 제시하고 있다. 그가 경전을 해석하는 근거는 주로 주자어류나 혹문이다. 그가 언해(諺解)에 대해 주목하는 것은 그의 엄밀한 경전해석방식이나 전도자로서의 사명과 연결하여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간재의 이러한 태도는 모두 일관된 역사의식을 전제로 한 것이다. 이런 면에서 “간재는 경학자로서 보다는 한 성리학자로서의 모습으로서 접근하는 것이 간재사상의 전모를 파악하기에 더 용이하다”는 평가가 있기도 하다.
The goal of this study is to investigate Ganjae JeonWoo's analysis on confucian classics in history of confucian philosophy. Ganjae is a heir of YulGok and Giho School, especially NakRon. So he had a strong sense of responsibility and tried to have an exactness in hermeneutics of confucian Classics. He adopted traditional interpretation, explantion and method. But he was not a blind follower of Zhuxi nor his senior. His hermeneutics was focused on Four Books, and analysed in the point of his philosophy, Sungsasimje(性師心弟). He linked Four Books as an organic whole for supporting his philosophy. He concluded his analysis on confucian Classics based on Zhuziyulei or Huowen and interested in "Korean translation(諺解)" because of his responsibility as a neo-confucian guider. In this veins, it can be said that there is a historical consciousness in his hermeneutics works. So he is estimated a pure neo-confucianist rather than scholar who majored hermeneu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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艮齋는 문학창작에 있어서도 그의 文道觀을 관철시켰다. 그의 詩文도 지향이 高遠하고 理障이 되지 않아 자못 예술적인 개성을 갖추었다. 그의 詩文에 대해 전체적인 평가를 하려면 그가 지은 梅山金先生(在範)文集序 속의 말을 艮齋 자신에 대한 말로 삼아도 무방할 것이다. 艮齋는 “詩文을 주고받은 것과 雜著 여러 편들은 또 모두 性情을 표현하고 經旨를 강론하며 世道를 걱정하는 뜻이 있었다. 聲調의 清越과 格局의 謹嚴과 議論의 公平은 읽은 이들이 神領心契하는 妙가 있을 것이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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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의 人能弘道 非道弘人은 인간과 도의 관계를 표현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주자는 사람을 인심 도를 도체라고 해석하였고, 장횡거는 전자를 심 후자를 성이라고 해석하였다. 이러한 해석을 근거로 최익한은 간재를 비판하는 편지에서 리와 기로써 해석하였는데 무실재 남진영이 그를 비판하는 글에서 보다 정밀하게 나타난다. 그는 율곡의 심시기 성즉리 그리고 기유위 이무위에 입각하여 사람을 기 도를 리라고 해석하였다. 사람의 본질을 마음이고 그것은 사유하는 것이므로 유위이고 기, 도는 능동성이 없으므로 무위한 것이고 그것은 곧 리라고 해석했던 것이다. 물론 율곡은 심시기 성즉리만을 말한 것이 아니라 심 가운데 리인 성을 언급했으므로 심은 합이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간재에 이르러 심즉기 성즉리로 구분되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성사심제설이 정립되었다. 따라서 무실재의 그러한 해석은 간재의 영향이다. 모든 존재와 가치를 아우르는 리와 기로써 인능홍도를 해석했다는 것은 주자에게서도 나타나지 않는 그들의 특징이다. 물론 이기설은 주자가 정립하였지만 『논어』의 인능홍도를 그 개념으로 해석한 것은 아니다. 이로 미루어 보았을 때 최익한, 무실재와 양재는 오히려 주자 보다 더 이기설에 철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모든 존재와 가치 그리고 보편성과 특수성을 아우르고 있는 이기개념으로서 사람과 도를 해석했다는 것은 그만큼 사상적으로 가치가 있는 것이다. 다만 무실재는 인능홍도의 인을 기, 양재는 호연지기라고 해석한 점이 다르다. 또한 최익한은 인을 리라고 해석한 점이 그들과 다른 점이다.
Man can develop the Tao while the way cannot develop man of Analects is expressed man and the Tao. Zhu Xi analyzed man mind and essence. Zhang Zai analyzed mind and nature. Choi Ik-Han and Nam Jin-Young analyzed that is based on principle and material force theory. Nam Jin-Young analyzed principle and material force that is based on Yi Yi mind is material force and nature is principle. Zhu Xi not analyzed principle and material force theory. But Nam Jin-Young analyzed principle and material force theory and Choi Ik-Han analyzed principle and material force theory. So Kwon Soon-Myoung analyzed principle and material force theory. Nam Jin-Young analyzed material force this man and Kwon Soon-Myoung analyzed all-embracing force this man. Choi Ik-Han analyzed principle this man.
謙齋 鄭瓘錫의 學問과 思想에 대한 일고찰 - 艮齋의 學的 계승과 실천의 관점에서 -
간재학회 간재학논총 제9집 2009.02 pp.183-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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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반 도학을 이끌었던 핵심적 인물과 학파로는 화서학파, 노사하파, 한주학파를 들 수 있다. 이들 세 주류학파가 시대와 철학 사상계의 중심을 이루는 가운데, 또 다르게 이들 주류 학파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견지한 학파로는 艮齋 田愚(1841〜1922)를 비롯한 그의 제자들을 들 수 있다. 근래 간재의 제자인 石農 吳震泳(1868-1944), 蒼樹 鄭衡圭(1880〜1957), 敬石 任憲瓚(1876-1956) 등에 대한 연구가 전개되고 있다. 본고에서는 같은 간재의 제자로서 영남 창원을 주 근거지로 하여 간 재의 학문과 사상의 계승과 실천에 진력하였던 謙齋 鄭瓘錫(1901~1982)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겸재는 약관의 나이에 繼華島(界火島)에서 艮齋 田先生을 執贄하여 拜謁하고 가르침을 받았다. 겸재는 거기에서 栗谷과 尤菴 선생의 학문적 眞訣을 얻어 듣고, 우리 유학의 도맥이 바로 간재 선생에게 전하고 있음을 깊이 인식하고 유학의 학문 탐구와 求道에 진력하였다. 그는 蒼樹와 교유하며 陰陽太極說을 비롯한 학문적 논변도 가졌으며, 石農과는 禮說과 心性論을 비롯한 유학의 교리 체계에 대해 서신왕래를 통해 열정적인 토론을 펼치기도 했다. 그 외 당시 많은 유학자들과 교유관계를 맺고 있었다. 첫째, 겸재의 ‘敬以約之’의 공부를 통한 ‘心與理爲一’론은 한주 이진상의 ‘心卽理’론을 비판하는 가운데, 孟子의 ‘求放心’, 朱子의 ‘以敬存心’론, 退溪의 ‘心能主宰’론에 근간하고 있는 간재의 ‘敬字以檢束心氣’와 ‘自然心與理一’론을 계승하고 있다. 둘째, 겸재의 ‘心本性’과 ‘性師心弟’說은 天-太極-性을 우주 만물 생성 본체로서의 理로서 보는 정자-주자-栗谷-尤菴의 설에 근거하여, 당시 主心家들의 ‘心卽理’설을 불가의 석씨설과 陸王의 心說에 가까운 것이라고 비판하는 가운데, 특히 주자의 ‘心主乎性’설은 先師 艮翁의 ‘心本性, 小心奉性’설에 전해지고 있음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간재의 ‘心本性’설과 ‘性尊心卑(性師心弟)설은 先聖과 先賢의 본지를 발명하고 本天과 尊性의 眞訣을 밝힌 것으로, 후대 학자들이 釋禪과 陸王과 같은 異端의 해설에 빠지지 않게 한 공로가 지대한 것임을 선양하였다. 셋째, 겸재의 간재 華夷論의 계승과 실천에 있어서, 겸재는 梅山-全齋를 계승한 간재의 華夷論과 義理論을 계승하고 실천하였다. 겸재는 을사년 능약과 경술년 국치일에 華島에 은거하여 도학을 강의한 스승 간재를 따라 유학의 전승과 전파에 전념하였으며, 일제의 剃禍의 烈氣가 번성할 때도 감히 그를 침범하지 못하였다. 이러한 겸재의 義와 利․華와 夷의 분별정신, ‘捨生取義’와 ‘守死善道’의 의리 정신 등은 스승 간재의 義理論과 華夷論 및 忠逆論 즉 ‘乙巳年 賊約과 庚戌年 國恥日에 華島에 은거하여 杜門自靖하였고, 甲戌年 薙亂 사건에서도 의리를 고수하며 실천에 옮긴 것’과 같은 도학적 의리 정신을 계승하여 실천에 옮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보듯, 겸재는 스승 간재의 학문과 사상의 계승과 전개 및 실천에 진력한 진정한 도학자의 삶을 살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Ganjae Jeon Woo (1841~1922) was one of the noted men who led Korean moral philosophy late in the 19th century. He was locally based on Honam to succeed the genuine root of Nakron 洛論 division of Giho Scholar's Sector and form the theory of Seongsasimje 性師心弟說 (the theory of Seongjonsimbi 性尊心卑說), and criticized Hwaseo Scholars' Sector, Nohsa Scholars' Sector and Hanju Scholars' Sector that valued the mind 心 in his period. He deeply recognized the theory of Euiri 義理論, theory of Hwai 華夷論 and theory of Chungyeok 忠逆論, and practiced such recognition. Among a number of his students, Gyeomjae Jeong Gwan Seok (1901-1982) was based on Changwon, Yeongnam to make his efforts on succession and practice of the learning and idea of his teacher's having friendship with many Confucian scholars there. Gyeomjae appreciated that the academic essence of Yulgok and Uam had inherited to Ganjae, and then devoted his life to getting the truth. Gyeomjae succeeded the theory of Simseong from Ganjae, so that he claimed ‘Simyeoriwiil 心與理爲一’ based theory of training through the study for ‘Gyeongiyakji(sim) 敬以約之(心)’, so that he said ‘All those who claim the mind is Ri 理 hold the side learning of Seok Seon and Yuk Wang’ to criticize them. In addition, he succeeded the theory of Hwai and Euiri from Ganjae, and made a pledge for Moral Justice under the spirit of ‘Susaseondo 守死善道’ following his teacher Ganjae in the year of Eulsa and Gyeongsul. From this point, we can be sure that he lived a true moralist's life devoting his life to succession, expansion and practice of his teacher Ganjae's learning and id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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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백재(老柏齋) 최명희(崔命喜)는 충청도 태안(泰安) 출신으로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문인이다. 그는 서구열강과 일인(日人)들의 침략 속에서 의연히 안빈호학(安貧好學)의 정신을 지키며 주경야독(晝耕夜讀)을 몸소 실천하였다. 특히 그는 독서와 경작을 리(理)와 기(氣)의 관계에 비유하여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라고 하였으니 이는 그가 독서와 경작을 성리학적 이론에 적용하면서 자신의 입지를 현실에서 충실히 실천하고자 한 것이다. 이는 당시 어려운 환경에 처한 향촌사회에서 사인(士人)들로 하여금 독서를 통해 항심(恒心)을 배양시키고 경작을 통해 항산(恒産)을 갖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그의 정신은 궁벽한 향촌사회의 사인들에게 귀감이 되었으니, 태안일대에 간재학파가 형성된 것이 모두 그의 학문적 영향에서 연유한 것이었다.그의 학문은 주경주리(主敬主理)의 경향이었다. 그는 학문의 기본적 마음 자세를 ‘경’에 두었고, 이를 토대로 한 그의 성리설은 리를 주로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전에 논쟁이 되었던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이나 인물성동이론(人物性同異論)에 대해 자신의 논지를 피력하지 않고, 주희나 전우의 성리설을 따르고자 하였다. 또한 그는 교육에 있어서는 학문론을 기초로 하여 지행양진(知行兩進)을 추구하였다. 최명희 자신 또한 앎과 실천을 양진하면서도 항상 자신을 속이거나 거짓됨이 없는 진실무망(眞實无妄)의 성(誠)을 배양하여 하늘을 아는 단계로 나아가고자 하였다. 이는 하늘과 마주하여 떳떳한 마음을 지니고자 한 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자세는 ‘예(禮)’를 중시하는 경향으로 드러났으니, 그는 ‘예’의 실현을 통해 사람의 도를 극진히 하면서 천리(天理)를 구현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실천성 중시는 최명희 자신이 처한 현실에서 유교적 도덕을 실천하면서 향리의 사람들을 교화시키고 향촌사회의 도덕적 질서를 유지하고자 한 것이라 하겠다.
本論文考察了艮齋田愚之門人老柏齋崔命喜的學問和思想. 他在忠淸南道泰安, 展開了學問活動. 當時在西歐列强和日本的侵掠中, 他依然堅持安貧好學的精神, 還躬踐了晝耕夜讀. 他將讀書和耕作比喩成理和氣, 認爲兩者是一而二二而一的關係. 這樣, 他把讀書和耕作適用于性理學理論, 而在現實世界中充實地實踐了自身的立志. 他的精神使當時士人們通過讀書而培養恒心, 通過耕作而維持恒産.他的學問具有主敬主理的傾向. 他對學問的基本態度是致力于‘敬’, 性理說的主張是以‘理’爲主. 但他對以前人們論爭過的四端七情及人物性同異不披瀝自己的見解, 而想繼承朱熹和田愚的性理說理論. 在敎育方面, 他追求知行兩進. 他不但自己兩進知行, 而且培養眞實无妄的誠而想達到知天的境地. 這的確是面對天而抱持恒心的態度. 這樣的態度表現爲重視禮的傾向. 就是通過禮的實現而極盡人道、體現天理. 重視實踐的這樣的態度, 一方面爲了在他自己處的現實中實踐了儒敎道德, 一方面爲了敎化鄕里的人們而維持鄕村社會的道德秩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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