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00원
艮齋田愚(1841~1922)는 조선 말기에서 근대까지 활약한 朱子學者로서 李 栗谷등 전대 주자학자들의 연구 성과를 기초로 하여 한편으로는 주자사상을 계승하고, 한편으로는 시대적 요구에 호응하여 진일보하여 朱子學을 명백하 게 밝혔다. 그래서 艮齋朱子學중에는 과거 몇 백 년간 조선 주자학자들의 각종 朱子學에 대한 해석과 朱子思想에 관한 논변을 모두 흡수ㆍ소화ㆍ여과 ㆍ비판하고, 나아가 艮齋朱子學의 비옥한 사상 토양을 형성하였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들은 아마 간재주자학은 조선 주자학의 集大成이라고 할 수 있 을 것이다. 간재주자학 중, 역대 조선시대에 출현한 여러 주자학 관련 중요 주제를 모두 새롭게 엄격한 분석과 토론 및 논술을 거쳤다. 본고는 바로 艮齋 朱子學과 朱子思想, 특히 그중 理氣論ㆍ心性論방면에 집중하여 비교 연구를 전개하였다. 艮齋가 제공한 주자사상에 대한 해석, 특히 朱子의 理氣論ㆍ心性論에 대한 전석 탐구는 그 이론 구조가 상당히 선영하고 합리적이다. 필자는 간재가 전 개한 이러한 朱子思想의 해석은 현대학자들이 제시한 견해 보다 더욱 심도가 있고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 결론적으로 우리들이 확정할 수 있는 점 은 艮齋朱子學은 朱子思想을 충실히 계승ㆍ천명한 부분이 있고, 또 별도로 간재자신의 창립을 전개하여 朱子思想에 진일보한 발전의 부분이 있다는 점이다.
艮齋先生田愚(1841~1922)乃是一活躍於朝鮮末期到近代的朱子學者, 他 以李栗谷等前輩朱子學者的研究成果爲基礎, 一方面繼承朱子思想, 一方面呼 應時代需求而進一步闡發朱子學。因此, 在艮齋朱子學中, 過去歷史中幾百年 來的朝鮮朱子學者之各種朱子學詮釋, 以及各種有關朱子思想之論辯, 都被進 一步吸收、消化、過濾、批判, 進而形成艮齋朱子學的肥沃思想土壤。在這 個意義上, 吾人也許可以說艮齋朱子學是朝鮮朱子學的集大成。在艮齋朱子 學中, 歷來朝鮮時代所產生的各種朱子學相關重要議題, 都被重新加以嚴謹分 析、探討並論述。本文就艮齋朱子學與朱子思想, 特別聚焦於其理氣、心性 論方面, 加以比較研究。 艮齋所提供的對朱子思想的詮釋, 尤其是對朱子理氣論、心性論的深入 詮釋, 其理論結構相當清晰且合理。筆者認爲艮齋所開展出的此等朱子思想 之詮釋, 似乎比現代學者所提供的看法更有深度以及更具說服力。總之, 我們 可以確定的是, 艮齋朱子學中有忠實繼承、闡明朱子思想的部分, 也有附加進 艮齋個人自身之創見, 而使朱子思想獲得進一步發展的部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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田愚(1841~1922)의 학문과 평생 사업은 ‘明天理正人心’ㆍ‘尊中華攘夷狄’과 ‘尊王攘夷’의 정신을 바탕으로 추진했던 ‘衛正斥邪’로 요약되며, 이를 위해 正 學(주자학) 수호, 後進교육 등에 매진했다. 간재는 宋時烈(1607-1689)을 존경 하고, 송시열이 병자호란 이후 자임하고자 했던 바와 마찬가지로 朱子의 學問 과 春秋의 義理를 世道로 삼고 이를 自任하고자 했다. 간재와 우암이 자임하 고자 한 세도는 동일한 맥락의 학문과 사상이었다. 그들은 仁義의 德을 숭상 하고 不義한 暴力을 반대하는 도학 정신을 실천한 것이다. 우암과 간재는 모 든 세상이 오랑캐 천하가 되어도 우리나라와 자기 자신은 결코 오랑캐가 될 수 없으며, 결코 오랑캐 세상을 용납할 수 없다는 ‘尊中華攘夷狄’의 정신을 추구했다. 우암과 간재는 이를 위해 朱子學을 수호하고 後進을 교육하여 세상 사람들이 華夷를 구별하게 하며, 자신의 心性을 바르게 하도록 하는 일이야 말로 가장 중요한 자신의 사명이라고 여겼다. 우암과 간재의 ‘尊朱子․闢異端’ 의 학문과 사업은 ‘尊中華․攘夷狄’, ‘尊王攘夷’를 행하려는 사업이며, 간재가 행하고자 한 衛道와 行道또한 이와 같은 사업이었다. 이처럼 우암이 17세기 이후 국란 극복의 방도를 ‘明天理․正人心’이라는 世道를 학문의 핵심으로 삼고, ‘尊君父․攘夷狄’을 사업의 핵심 으로 삼았듯이, 간재 또한 그의 학문과 사 업 역시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明天理․正人心’을 위한 학문과 ‘尊中華攘夷 狄’하는 사업을 行道의 핵심으로 삼았다. 이러한 정신을 바탕으로 국가의 독 립과 평화를 도모하고자 했다.
Chun Oo's(田愚) study and lifetime business have focused on 'Lighting the heavenly reason and being pure within the human mind'(明天理․正人心), and 'Protecting the civilization & rejecting the barbarianism'(尊中華․攘夷狄). Thus, he devoted himself to education of his disciples. Chun Oo respected and succeed to Song Si-yeol(宋時烈, 1607-1689) regarding and taking charge of ‘the right way of Human Society’(世道) as Confucius(孔子) and Chutzu(朱子, 1130-1200)'s ‘the right of Chunchu’(春秋義理). Chun Oo and Song Si-yeol's ‘the right way of human society(世道)’ has same meanings. Song Si-yeol practiced spirit of Dohak(道學) for pursuing virtue and removing injustice. Chun Oo and Song Si-yeol persued the spirit of 'Protecting the civilization & rejecting the barbarianism'(尊中華․攘夷狄) even if all the world has become barbarian world, and the country has fallen to barbarians. Chun Oo believed Confucianism should continue to be the standard of justice and righteousness. Thus, Chun Oo and Song Si-yeol considered protecting Neo-Confucianism(Teachings of Chutzu) and teaching disciples as their most important business. By doing those facts they wanted the general public to be able to distinguish civilization from barbarianism and to have their mind be righteous. On the basis of this spirit, Song Si-yeol considered ‘Lighting the heavenly reason and being pure within the human mind’(明天理․正人心) as contemporary ‘the Right way of Human Society’(世道), and ‘Respecting for king and father & rejeting the traitorous subject and undutiful son’(尊君父․攘夷狄) as core of his business. Likewise, Chun Oo has the same goal, and he considered those studies and business as his study and business. Their studies and business were the basis of Chosun Sunbi's spirit, and korean independence and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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艮齋는 全齋任憲晦의 제자로서 梅山洪直弼의 再傳제자이다. 매산은 洛 論의 학자로서 栗谷과 農巖을 계승하였다. 율곡학파가 퇴계학파와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은 純善한 本然之氣이다. 그는 기를 본연지기와 形氣로 구분했던 것이다. 그것이 매산에 이르러 精氣와 粗氣로 나타난다. 이에 대하여 간재는 본연지기를 정기, 형기를 조기라고 정립하였다. 전자는 순선하지만 후자는 선 악이 모두 있는 것이다. 정기는 기질의 본체가 청하다는 氣質體淸설의 근거가 된다. 기질의 본체가 청하기 때문에 심이 未發한 상태가 순선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낙론의 종지이다. 매산은 심이 몸을 主宰할 때 정기라고 여긴다. 心卽氣이기 때문에 심이 몸 을 주재한다는 것은 기가 그러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에 악이 있다면 몸을 제대로 주재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매산은 그 기를 정기라고 했던 것이다. 또 한 敬이 심을 주재하였을 때 몸을 제대로 주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재설은 간재에 이르러 보다 정밀하게 다듬어진다. 간재는 심이 성을 경으로 써 높였을 때 몸을 제대로 주재할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은 심이 제자로서 성을 스승으로 높여야 한다는 性師心 弟설로 정립된다. 이와 같이 매산의 성리설은 간재에게 계승되었다.
Ganjae is Jonjae Yim Honhoi’s student and Jonjae is Maesan Hong Jikpil’s student. Maesan succeed Yulgok and Nongam. Yulgok school is different from Toegye school because is pure good Original Ki. Yulgok divide Original Ki and Appearance Ki. Maesan divide Clear Ki and Turbid Ki. Ganjae say that consider Clear Ki on Original Ki and Turbid Ki on Appearance Ki. He suppose pure goodness on the former and mixed good and evil on the latter. This develop that is theory of clear substance of Ki. non-Aroused Issuance Mind is goodness. That is idea in theory of Nangnon. Masan suppose Clear Ki when mind govern body. Because Mind is Ki. But if Ki in mind is evil, the mind don’t govern body. Thus, Masan suppose Clear Ki on the Ki. Mind can govern correctly when Mindfulness govern mind. Maesan’s Governing develop to Ganjae. He says that mind can govern correctly body when mind worship Mindfulness. That develop theory of Songsaaimje(性師心弟). After all, Ganjae succeed Mae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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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명에 대한 간재의 비평을 통하여 간재와 양명이 서로 다른 의리 형태임 을 분명하게 드러낼 수 있다. 두 사람의 서로 다름은 정주와 육왕의 다름과 상당히 유사하다. 이처럼 서로 다른 의리 형태이기 때문에 양명에 대한 간재 의 비평은 엄격한 옳고 그름을 논하기 어렵다. 그러나 양명에 대한 간재의 비 평을 통하여 우리는 간재가 강조한 ‘性師心弟’ㆍ‘性尊心卑’의 사상의 요지가 심과 성이 서로 다른 두 존재임을 극력 주장하고자 함에 있음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이 논문에서 필자는 칸트가 말한 ‘자유와 법칙은 서로 포함관계에 있 다’는 것을 인용하여 주자와 양명 두 계통의 학설이 성덕의 가르침에서 모두 유효한 공부로 성립될 수 있음을 해설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필자의 주장은 당연히 주자와 간재가 심과 리의 관계에 대하여 ‘심은 본래 리를 갖추고 있다’ 와 ‘심은 리에 대하여 본래부터 지식을 갖고 있다’는 의미를 긍정하고 있다는 것을 예설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주자와 간재의 이론계통은 결코 義外論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치 지격물은 리에 대한 심의 본래 지식을 근거 로 삼은 것이다. 심이 격물치지를 통하여 리에 대한 인식을 더욱 강화할 때 심은 반드시 천리의 요구에 따라야 한다는 의식이 생겨나기 때문에 실천의 동력을 스스로 제공할 수 있다. 만일 필자의 이러한 예설이 통할 수 있다면, 주자학과 양명학은 성덕의 가르침에서 유효한 두 종류의 工夫論으로 성립할 수 있다. 따라서 서로 간에 高下와 偏正을 논할 필요가 없다.
從艮齋對陽明的批評, 可以凸顯了艮齋與陽明是分屬不同的義理型態, 此不同相似於伊川朱子與陸王之不同, 由於是不同的義理型態, 故艮齋對陽明 的批評, 是兩種義理型態之不同, 並無嚴格的對錯可講。當然從艮齋之批評可 以使吾人更清楚地了解艮齋所強調的‘性師心弟’、‘性尊心卑’之心性爲二的思 想旨要, 也可以明白艮齋極力主張心性爲二之用心。在本文的論述中, 作者也 引入康德'自由與法則互涵'之說, 希望說明朱子與陽明二系都可以是成德之教 的有效工夫。當然此論須預設朱子與艮齋對於心與理的關係, 是有'心本具理' 及'心對於理本來有所知'之意的。即朱子與艮齋的理論系統並不能被視爲義外 的理論, 致知格物是有對於理的本知作根據的, 而在對於理的認識或加強認識 之時, 可以產生自己的心必須是純乎天理之心的要求, 於是就可以給出實踐的 動力。如果此說可通, 則朱子學與陽明學可以是成德之教的兩種有效的理論 或工夫, 而不必有高下、偏正之區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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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田艮齋《四書講說》중의<大學記疑>를 연구대상으로 艮齋의 《大學》‘明德’의 함의에 대한 해석을 탐구하고, 아울러 艮齋의 해석과 朱子ㆍ 李栗谷의 해석에 대한 同異를 비교하여 그중의 義理의 전향을 지세히 살피고 자 한다. 기본적으로 艮齋의 心性論은 朱子ㆍ栗谷의 ‘心性二分’ 구조를 계승하 였고, 동시에 栗谷學派의 사상을 본받고 계승하여 ‘心’은 虛靈明覺의 氣이며, ‘性’은 조작하지 않고, 활동하지 않는 所以然之理라고 여겼다. 艮齋는《大學》 의 ‘明德’이란 개념에 대해서는 ‘心氣의 虛靈ㆍ明覺ㆍ運化의 능력’에 치중하여 해석을 하고, 心의 성리적인 涵攝運化와 心ㆍ性의 부합일체 방면에 대해서는 비교적 침묵을 하였다. 그러나 후자는 오히려 朱子ㆍ栗谷의《大學》‘明德’ 의 미의 해석에 중점을 두었다. 양자를 비교해 보면, 艮齋<大學記疑>에서 강조 한 ‘明德’의 이미는 ‘氣’의 활동력과 변화능력에 치우쳐서 이론을 수립하였다. 이는 당시 조선학계의 논쟁과 관계가 있다. 당시 화서학파ㆍ영남학파는 朱子 思想중의 ‘性理’는 활동성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性理’를 ‘明 德’의 의미로 여기고, ‘氣發理乘’ㆍ‘理’의 非活動을 주장하는 艮齋는 상대방 이 론을 변박하였다. 때문에 ‘明德’에 대한 경향은 ‘氣’측면으로부터 강조하였으 니, 이는 艮齋의 해석은 무의식 중에 朱子와 栗谷의 원뜻을 벗어났다. 그러나 당시 조선성리학의 논쟁 실황을 반영한 시대적인 의의를 지니고 있다.
本文以田艮齋《四書講說》中的<大學記疑>爲研究對象, 探究艮齋對 《大學》‘明德’一詞涵義的詮釋, 並比較對此一詮釋與朱子、李栗谷詮釋的異 同, 而細察其中的義理轉向。基本上, 艮齋的心性論繼承朱子、栗谷的‘心性 二元’架構;並祖述栗谷學派的思想, 以‘心’爲虛靈明覺之氣, ‘性’爲無造作、不 活動的所以然之理。艮齋對於《大學》‘明德’一詞, 即側重從‘心氣之虛靈、明 覺與運化的能力’面向加以詮釋, 而在‘心對性理的涵攝運化、心與性的相合一 體’方面則較少著墨;然而, 後者卻是朱子、栗谷對於《大學》‘明德’義的詮釋 重點。相較之下, 艮齋<大學記疑>所強調的‘明德’之義, 較傾向‘氣’的活動力 與運化能力來立論。這與當時朝鮮學界的爭論有關。當時華西、嶺南等學派 主張朱子思想中的‘性理’具有活動性, 故以‘性理’爲‘明德’之義;而主張‘氣發理 乘’、‘理’不活動的艮齋爲了辯駁敵論, 故對‘明德’傾向從‘氣’方面加以強調;這 使得艮齋的詮釋在不覺之間離開了朱子與栗谷原義, 但也反映了當時朝鮮性 理學的爭議實況, 而具有時代意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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陽齋權純命선생은 1891년(고종 28년)에 태어나 1974년 향년 84세로 세상을 떠난 간재 전우의 말년 문인이다. 양재는 19세기 말기에 태어나 인격과 가치 관, 그리고 인생의 지향점이 확립되는 20세까지는 왕조 시대를 살았고, 55세 까지는 일제 식민지를, 그리고 63세까지는 광복과 6.25로 이어지는 역사의 격 동기를 경험하였다. 그리고 노년에는 이질적인 ‘근대화’ 시대를 겪으면서 그가 배우고 추구했던 가치는 역사와 현실에서 철저히 배제되었고, 따라서 그는 한 평생 시대와의 불화를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艮齋田愚는 그의 인생에서 결코 분리하려고 해도 분리할 수 없는 존재이 자 가치였다. 간재, 그리고 간재의 학문은 곧 양재, 그의 삶이었고, 그의 학문 이었다. 시대와 현실, 그리고 가치와 의미가 자신의 것과 어긋나며 돌아가는 세상을 살면서도 그는 결코 그것들을 저버리지 않고, 처사로서의 삶을 고수하 며 일생을 일관하였다. 양재의 성리학은 性師心弟와 心本性說을 종지로 삼고 있다. 이는 性卽理라 는 성리학상의 정통적 견해에 입각한 이론으로서 학맥 상으로는 율곡ㆍ우암, 그리고 간재로 이어지는 기호낙론의 핵심적 관점을 계승한 것이다. 이는 심에 대한 성의 주재적 지위, 도덕본성이자 윤리법칙의 근거인 성의 의미를 극단적 으로 강조한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상대적으로 심의 지위를 성에 종속된 것, 비본질적이고 이차적인 것으로 파악한다. 따라서 心은 氣에 불과하며, 결코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도덕법칙이 될 수 없음을 강조한다. 뿐만 아니라, 이러 한 관점은 도덕주체의 능동성, 적극성, 현실성 보다는 성과 리로 표현되는 보 편적인 도덕법칙의 확립을 통하여 자연세계와 인간세계를 포용하는 하나의 질서체계의 건립을 우선시한다. 崔益翰上艮翁書辨은 당시 호남과 영남의 양대 儒宗인 간재와 면우의 두 제자가 스승과 자신의 학파를 대리하여 전개한 논변이다. 우리는 崔益翰上艮 翁書辨에 대한 분석을 통해 양재 초기 성리설의 대강을 이해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崔益翰上艮翁書辨을 중심으로 양재 성리사상의 핵심이론과 그 이 론의 내용ㆍ의미 등을 분석함으로써 양재 성리사상에 대한 시론적 이해를 시도하였다.
陽齋權純命(1891~1974年)是艮齋田愚的末年門人. 他生於十九世紀末; 至於二十歲左右, 受敎於王朝時期的傳統性理學, 因此他的人格, 價値觀以 及人生志向都與此有關; 至於六十三歲, 他經歷了艱難的日帝植民支配, 且 光復和韓國動亂等一些歷史激變; 至於老年, 他又經歷了異質的‘近代化’時代. 因此, 他的生平一直與其時代不和, 他所學習、追求的價値也與其歷史不和. 在權純命人生當中, 艮齋是不可分離的重要存在和價値: 陽齋所追求的 就是艮齋的學問而已. 雖然他經歷了與其時代、現實和價値不和的一生, 但 他決不抛棄他所追求的價値和學問, 却拳拳服膺不斷地探索朝鮮性理學, 特 別是他的老師艮齋的學問和思想. 陽齋性理學的宗旨是‘性師心弟’和‘心本性說’: 它是作爲一套性理學上 的正統理論, 以“性卽理”爲前提的學說. 在學脈上, 陽齋繼承由栗谷、尤庵到 艮齋的學術, 一直把它視爲畿湖洛論之核心理論. 它的理論意義則在於極端 地强調性之主宰地位, 且强調作爲道德本性而倫理法則的性之意義. 不僅如 此, 他把心視爲屬於氣的, 所以心幷不成爲普遍必然的道德法則. 如此, 他極 端地强調以‘性’和‘理’爲根據的普遍道德法則, 幷以此確立通貫天人之際的秩 序體系. 「崔益翰上艮翁書辨」是當時湖南和嶺南的兩大儒宗, 艮齋和俛宇的兩 位年輕弟子爲自己所屬的學派所做的辯論. 我們通過對于「崔益翰上艮翁書 辨」的分析, 可以了解陽齋早期性理說的大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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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중엽에서 20세기 초까지 활약한 간재(艮齋) 전우(田愚)는 태극(太 極)․리(理)․도(道)에 근거한 본성을 매우 중시하면서 당시 심(心)을 리(理)로 여기는 근대 학자들의 학설을 치밀하게 비판하고 ‘자정(自靖)’의 측면에서 처 신하며 외세에 대응하였다. 그의 ‘자정’은 일제 침략에 비협력하며 자신의 몸 만 깨끗이 하려는 것이 아니라 유학의 참다운 진리로서의 도를 지키며 국기 를 수호하는 자정론이었다. 그런데 현상윤(玄相允)은 조선유학사에서 전우 의 처신을 지목하여 ‘부유(腐儒)’로 단평하여, 전우와 그 후학은 학계나 일반 지식인들에게 적지 않은 부정적 시각으로 비춰졌다. 본 논문은 현상윤의 서술과 단평을 표리적 측면에서 다루었다. 논문 내용 은 표면적 측면에서 현상윤이 서술한 간재사상을 다루면서 현상윤이 전우의 처신에 대해 ‘부유’로 단평한 것을 고찰하였다. 먼저 그 ‘부유’에 대한 어원적 의미를 간략히 다루고 현상윤이 단평한 측면을 다루었다. 현상윤이 ‘부유’로 단평한 것은 전우가 당시 거유(巨儒)임에도 불구하고 처신에 시대적 사명을 망각하고 현실을 도피한 측면에서였다. 그리하여 과연 전우가 그렇게 처신하 였는지를 표리적 측면에서 그의 행의(行誼)를 살펴보며 그의 의취(意趣)을 다 루었다. 주지하다시피, 전우의 자정적 처신에는 현실을 타개할 수 없는 상황을 직시하고 현실보다는 미래를 도모해야 한다는 수사선도(守死善道) 정신이 포함하고 있다. 그런데 현실 타개에 직접 참여하거나 거의(擧義)하지 못한 관 계로 당시 많은 사람들은 전우를 비판하였다. 그는 그 어떤 비판에도 흔들리 지 않겠다는 대인(大人)의 부동심(不動心)을 보이며 유교의 근본 진리로서의 도를 지키며 후학들에게 배일정신을 고취하였다. 그 후학들의 배일정신 함양 과 전통사상에 대한 애호정신은 현재까지도 계승되어 국학 연구에 많은 도움 을 주고 있다. 때문에 전우의 미래 도모적 처신은 역기능적 측면보다는 순기 능 측면이 더 많았다고 생각한다.
Jeon Woo played an active role until the early 20th century; he valued the human nature based on taegeuk, or the yin-yang, and reason and carefully criticized the theories of modern scholars which regard the mind as the reason. And his practical activities focused on the aspect of ‘self-suppressing(自靖)’ and took actions against the foreign powers. However, Sangyoon Hyun pointed out the behavior of Jeon Woo in the book of A History of Korean Confucianism and presented a negative view and gave a short criticism by considering him as a ‘buyu(腐儒 : a rotten scholar)’. This study examined the thought of Ganjae described by Sangyoon Hyun and his comment on Jeon Woo’s behavior being a ‘buyu.’ Hyun’s dealing with the Neo-Confucianism of Jeon Woo by regarding it as ‘buyu’ implies that Jeon Woo, despite his status being a great scholar of Confucianism, neglected the mission of the age and escaped from reality. However, Jeon Woo’s ‘self-stabilizing’ aspect of action was the spirit of ‘susasundo(守死善道 : to risk one’s life to observe the way)’ which emphasizes facing the reality with difficulties to overcome and aiming for the future rather than the reality. Many people criticized his action to escape from reality at those times and yet Jeon Woo, with the spirit of heading towards the future, continued to uphold the way of Confucianism and inspired the anti-Japanese spirit into the hearts of younger scholars. His future-oriented action has come down to many intellectuals as well as his junior scholars. For such reason, his behavior should be understood as a positive function rather than an adverse eff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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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곡(玄谷) 류영선(柳永善)은 한말에 출생하여 1960년대 초반까지 생존한 인물로 간재 전우의 문인이다. 따라서 그의 예학(禮學)은 조선시대로부터 이 어지는 전통적 계승 측면과 더불어 현대사회에 시행 적용을 동시에 살펴볼 수 있는 특징을 지닌다. 다만 본고에서는 자료적 제한으로 인하여 『사례제요: 四禮提要』를 중심으로 살폈고, 또한 구체적 분석을 위해『사례편람:四禮便覽』과 비교하였기 때문에 현대적 적용보다는 전통적 예학 계승 및 입장을 주로 살폈다. 『사례제요』는 『사례편람』을 기초로 저술했기에 형식과 내용은 상당히 같지 만, 그 중 차이나는 점들을 살펴보면, 몇 가지 특징을 도출할 수 있다. 우선 율 곡학파의 선현의 정론을 계승하고 적용하려는 특징을 보인다. 특히 매산(梅山) ―전재(全齋)―간재(艮齋)로 이어지는 사설(師說)을 존중하고 계승하려는 입장 이 강하다. 더불어 율곡(栗谷)의 예설도 전거로 많이 인용하여 계승하였다. 이 는 조선사회의 현실을 반영한 율곡 예설을 긍정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다음으 로 현곡은 급변하는 현실 속에서 의절(儀節)을 완벽하고 정확하게 시행 적용하 기보다는, 예를 최소화시키면서 내면적 정서적 측면을 중시하였다. 이를 통해 형식적 적용이 아닌 예의 정신과 본질을 드러내려는 사유를 읽을 수 있다.
Ryu, Yeongseon was born at the end of the Choseon Dynasty and lived until the early 1960s, so his lixue has special feature that are traditional succession and modern application. However data limit, this paper is researched centering around Saryejeyo, and comparing Saryepyeonram, also emphasizes traditional succession. Saryejeyo is similar to Saryepyeonram on structure and contents, but this paper analyzes partly a point of difference and deduces a special feature of Ryu, yeongseon’s lixue. First, He succeeded Yulgok school’s thoery of li. especially he shew respect to his teacher’s thoery(Maesan-JeonJae-Ganjae’s). also he often named authority by Yulgok’s thoery. It takes Yulgok’s thoery reflecting Choseon’s reality kindly. Later he didn't apply all and full of li(ritual) and minimized li(ritual) and emphasized li’s inner and mental things. Thus he expressed li’s essence and true to be important on modern appli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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