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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까지 활약한 간재(艮齋) 전우(田愚)는 낙론(洛論) 계열의 임헌회(任憲晦)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익혔으나, 그는 중국 송나라의 주희(朱熹)의 학문과 이이(李珥) 및 송시열(宋時烈)의 성리학을 면밀히 탐구하였다. 이 글은 ‘조선조 성리학의 낙론(洛論)과 간재성리학의 특징’에 대한 서술이다. 낙론(洛論)은 호론(湖論)에 대한 상대적 개념이다. 호론의 중심 인물은 남당(南塘) 한원진(韓元震)이고 낙론의 중심 인물은 외암(巍巖) 이간(李柬)이다. 이들은 인성과 물성에 대한 치밀한 논쟁을 전개하였는 바, 한원진의 성리설을 따르는 호론은 이론(異論)을, 이간의 성리설을 따르는 낙론은 동론(同論)을 주장하였다. 주지하다시피, 인성·물성에 대한 논쟁의 출발은 중용의 천명(天命)의 성(性)에 대한 해석의 문제에 있었지만 이는 해석 자체에 그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에 따른 인(人)·물(物)의 가치를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 하는 것이 그 관건이 된다. 이 글은 인·물성(人物性)에 대한 논의의 특징과 그 관점은 어떻게 다른가 하는 것을 고찰하면서, 조선조 성리학의 낙론과 간재 성리학의 특징을 세 가지 관점에서 서술하였다. 첫째, 실체 중시의 사고로서 호론의 기질(因氣質)에 의한 인물성이론(人物性異論)을 살폈다. 둘째, 천명중시의 근원적 사고로서 리의 본연성에 의한 기의 현상을 설명하는 낙론의 인물성동론(人物性同論)을 다루었다. 셋째, 간재성리학에서 낙론을 계승하여 인·물(人物)의 존엄성으로서의 존성론(尊性論)의 특징, 그리고 이에 의한 도덕 실천의 문제가 낙론과 어떤 상관성을 지니고 인간의 도덕성을 어떻게 제시하였는지를 간략히 살펴보았다.
艮齋의 朱子經學思想에 대한 繼承發展 - 艮齋論語講說의 朱子論語集註에 대한 보충 -
간재학회 간재학논총 제11집 2011.02 pp.2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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艮齋선생이 朱子의 학문을 계승하여 저술한四書講說은 朱子四書章句集注를 보충함이 대담히 크다. 대체로 간재선생은 朱子의 理氣論과 心性論을 기초로 하여 朱子集注중의 중요한 개념과 핵심 용어들을 검증하고 논술하였다. 본 논문은 간재선생의論語講說부분에서 朱子論語集注에 보충의 공로가 어디에 있는가를 논술하였다. 요약하면, 대략 네 방면이다:첫째는 “주자로 주자를 설명하는 것”(以朱申朱), 즉 주자의 학술로 朱子注釋을 자세히 설명하였다. 둘째는 “주자에서 잘못된 것을 보충하는 것”(裨補朱失), 즉 朱注에 확실하지 못한 곳은 다른 관점으로 검증하여 바르게 보충하였다. 셋째는 “程說의 실마리를 잡는 것”(紬繹程說), 즉 주자는 二程子를 私淑하였고, 集注는 程說을 인용하였으니, 착오가 많은 부분을 간재선생이 대부분 이를 疏解하여 朱注를 검증하였다. 넷째는 “이단을 반박 배척하는 것”(闢斥異端), 즉 佛家와 道家및 陸王學派를 배척하였다. 네 방면을 종합하면, 간재선생의 朱子論語集注보충에 위대한 공헌을 모두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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艮齋先生, 學宗朱子。所著四書講說, 翼助朱子四書章句集注甚大。大抵言之, 艮齋先生乃以朱子之理氣論及心性論為基礎,印證或申論朱子集注中之重要觀念及關鍵詞語。本論文僅就艮齋先生論語講說部分, 論述其於朱子論語集注翼助之功何在。總而言之, 約有四端:一曰「以朱身朱」, 即以朱子之學申論朱注。二曰「裨補朱失」, 即遇朱注有未安處,引證他說以匡補之。三曰「紬繹程說」, 朱子私淑二程子, 集注引程說忒多, 艮齋先生多為之疏解, 以印證朱注。四曰「闢斥異端」, 及闢斥佛、老與陸王學派。總此四端, 俱見艮齋先生翼助朱子論語集注之豐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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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주로 전간재의「淵齋集老洲雜識記疑疑義」에 근거하여 연재와 간재사상의 차이를 토론하였다. 간재의 사상은 이율곡ㆍ송우암을 근본으로 삼고,율곡의 뜻에 따라 朱子를 이해하였으며, 조선조 후기의 주리파와 心을 理로 삼는 견해에 대하여 심도 있는 비평을 가하였다. 본 논문의 토론을 통하여 간재의 중요한 견해들을 살펴 볼 수 있으며, “性爲心宰”라는 문제에 관한 토론에서는 특히 연재와 간재의 사상동이와 간재사상의 특색을 살펴 볼 수 있다. 또한 양인의 吳老洲사상에 관한 토론으로부터 노주의 중요한 견해를 엿볼 수 있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간재의 「연재집로주잡지기의의의」에 근거하여 요점을 토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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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文主要根據田艮齋「淵齋集老洲雜識記疑疑義」一文,討論淵齋與艮齋思想的不同。艮齋的思想以李栗谷、宋尤菴為宗,順栗谷之意以理解朱子,對朝鮮朝後期的主理派,及以心為理的說法作深入之批評。從本文的討論可以看到艮齋一些重要的見解,在關於「性為心宰」一問題的討論上,尤能看出淵齋與艮齋的不同,及艮齋思想的特色。又從二人有關吳老洲思想的討論,可以看到老洲的特別見解,如「心體不隔於理」之說,對理解朱子的思想很有參考價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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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간재학파의 한 사람인 용암 이휘재(龍巖李徽在, 1893~1944)의 생애와 사상을 고찰한 것이다. 용암은 어려서부터 행동이 독실하였고 효성이 깊었다. 일찍이 간재 전우의 문하에서 학문을 했으며, 간재 사후에는 석농 오진영을 종유(從遊)하여 간재사상을 계승하였다. 용암은, 학문이란 평상시의 행위가 사물당연(事物當然)의 법칙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경(敬)’을 실천하는 것이며, 성(性)이 모든 가치판단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이에 간재로부터 전수받은 ‘성존심비(性尊心卑)’설을 지키고 ‘심즉리(心卽理)’설을 비판하였다. 예설(禮說)에 대해서는 선현의 설을 맹종하기보다는, 항상 경전(經傳)을 상고(詳考)하여 의리에 합당하면서 또한 현실과 괴리되지 않게 실천하는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 또 임진왜란 당시의 중봉(重峯)과 제봉(霽峰)의 절의정신에 대하여 재평가함으로써, 일제 강점기의 현실에서 절의정신(節義精神)을 되새기고자 했다. 이와 같이 용암은 외세의 침략에 의해 국권이 상실되고 유교적 전통이 붕괴되는 시기에 살면서, ‘성존심비’의 간재학을 계승하여 유학의 도학정신(道學精神)을 지키는 삶을 살았다.
This study examines the life and thought of Yongam Yi-Hwijae(1893~1944), one of the inheritors of the Ganjae's thought. He was sincere and devoted to his parents since he was a child. He studied under Ganjae Jeon-Woo from his youth and after Ganjae's death, inherited his thought with Seoknong Oh-Jinyoung. He thought that studying means to practice 'Jing(敬)' not to astray from the natural rules of everything and promoted 'Xing(性)' as the criteria for every judgment. Hence he preserved the theory of 'Sungjonsimbi(性尊心卑;respect the original nature and disregard Mind)' inherited from Ganjae and criticized the theory of 'Simjukli(心卽 理;Mind, that is to say reason). Regarding 'Li(禮)', he concerned about making practice not to lose touch with reality while being proper to the righteousness by constantly contemplating on the words of the Confucius canons. He tried to revive the respect for integrity under the life of Japanese colonization. Like this, He lived the life that kept the Confucius spirit of moral philosophy by inheriting the Ganjae's 'Sungjonsimbi' in the time when the nation was lost and the Confucius tradition was destroyed by the colonial inva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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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암 전원식은 간재 전우선생의 제자로 일제 강점기에는 유민을 자처하여 그 도리를 다했고, 평생 유학과 스승의 진리를 붙잡고 옹호하며, 그것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하기에 매진한 유학자였다. 가암은 현대사회의 여러 문제들이 유학의 가르침을 무시하고 의리를 떠나 이익을 중시하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에서 파생한다고 보고, 그것을 바로잡는 길은 바로 유학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가암은 일상생활에서 유학의 가르침을 따르는 방법으로 기송사장의 폐습을 버리고 사서·오경을 정독하여 그것을 실생활에 활용하는 활독의 방법을 제시하였다. 가암에게 유학과 스승의 설을 옹호하는 것은 다른 한편으로는 이단을 물리치는 것이었다. 율곡, 간재를 이은 기호학자로서 가암은 리기불상리를 강조하여 리생기를 부정하고 리의 능동성도 부정하였으며, 이러한 이론적 토대 위에서 이단을 비판하였다. 가암은 불교가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의무와 도리를 다하지 못한다고 비판했으며, 서양의 학설은 이치를 제시하지 못하는 기예에 불과하다고 비판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학문에 미혹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것을 배워야 한다고 밝혀 그의 현실적 학문론의 일단을 보여주기도 한다. 가암은 문안의 적이라고 지칭하며 특히 심즉리설의 비판에 힘을 기울였다. 그는 여러 경전들에서 전거를 제시하며 성은 리이고 심은 기라는 율곡과 간재의 설이 옳고, 심이 곧 리라고 주장하는 한주 계열의 학자들이 그르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가암은 동문들과의 관계를 매우 중시해서 그들과의 서신 교환을 통해 학문을 연찬해 나갔다. 간재의 성사심제설에 이견을 지니고 있던 행무 이백순과의 토론을 통해서는 스승의 설을 굳게 옹호하였고, 무실재 남진영과의 토론을 통해서는 주자의 지각설 분석을 통해 한주학파의 심즉리설을 비판하고 기호학파의 심즉기설을 옹호하였다. 이상을 통해서 볼 때, 가암의 삶은 기호학파와 스승 간재의 학설을 전수하여 이단, 이설로부터 그것을 지키며, 아울러 현실의 실제적 일상생활에서 그것을 실천한 삶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柯菴田元植(1907~1981)是艮齋田愚先生的弟子. 他在日帝强占期自處遺民而盡其道理, 平生擁護儒學和師的眞理, 而且在日常生活當中實踐其眞理. 他以爲現代社會各種各樣的問題從無視儒學的教導而重視利益的人們的想法派生. 柯菴强調活讀. 活讀是精讀四書五經而在實生活中活用他的內容. 柯菴作爲畿湖學者强調理氣不相離而否定理生氣和理的能動性. 他在這個理論的土臺上批判異端. 柯菴以爲佛敎不盡人間的基本義務與道理, 而西洋學說不過技藝而已. 柯菴特別批判心卽理說. 他主張性是理心是氣之說. 在與李行茂討論中擁護艮齋的性師心弟說, 而且在與南軫永討論中分析朱子的知覺說. 總之, 柯菴受到畿湖學派與艮齋的學說而擁護它, 而且在日常生活當中實踐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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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금재 최병심에 대한 기존연구를 바탕으로 하여 그의 경세사상 부분에 한하여 연구를 한 걸음 더 진행하려고 한 것이다. 본고는 금재의 경세사상과 관련된 것으로 6가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첫째는 그의 경세에 관한 기본입장이 철저하게 주자학파의 그것을 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는 그가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국가의 통치형태는 왕정이었다는 점이다. 셋째는 그가 세계 속의 모든 나라들을 도의와 예제를 가지고 華와 夷둘로 구분하여 조선을 유일한 華의 나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넷째는 그는 국민 개개인으로서 국가를 위하는 길은 각자가 당면한 모든 일에 의리로 대처하는 것이라고 여겼다는 점이다. 다섯째는 그는 조선의 전통적 예제를 고수할 것을 주장했다는 점이다. 마지막은 그는 구체적인 정책 시행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反經의 입장을 취하지만 그렇다고 실학자들이 주장했던 것과 같은 그 시대에 맞는 개혁책을 부정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금재의 경세사상은 오늘날의 입장에서 볼 때 비판할 수 있는 요소들이 없지 않은 것이지만 본고는 가능한 한 금재의 논리를 추적하는 것을 중심으로 하였다.
In this paper I wished to disclose some more than that previous studies did on ChoiByungSim's political thought only. Six subjects about it were certificated. His fundamental viewpoint of political thought was as same as JuJa school's. He thoght of monarchism as an ideal. He valued all the countries in the world with moral and courtesy, so divided them into two kinds, Hwa and Yi, and recognized that only Korea was the country of Hwa. He insisted that a people's way for the country was to realize justice. He thought that Korean had to observe Korean traditional courtesy ever. As for the concrete execution of policy, basically he insisted on BanGyung, but he didn't deny the reformation of policy. Today, there are many points to be criticized in his political thought. Nevertheless I didn't try to criticize them, but pursued his opinion on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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裕齋宋基冕(1882~1956) 당시 자신이 처한 시대상황을 극복하는 방안의 하나로 舊體新用이란 묘합적 사유를 제시한다. 역사적으로 고와 금의 논쟁은 변화된 현실에서 더욱 치열한 논의를 요구한다. 유신에서 신은 고와 금의 문제에서 금의 문제이다. 전통적으로 고를 중시하는 사유에는 고는 좋고 금은 나쁘다는 의식이 잠재되어 있다. 이것은 변화된 상황에서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없는 한계성이 있다. 그렇다고 신, 금만을 강조하고 고를 무시한다면 그것 또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 유재의 진단이다. 古가 體로서 임금, 도덕, 仁, 義, 經道라면 今은 用으로서 臣, 百姓, 利益, 權道에 해당한다. 여기서 유재가 이처럼 금에 해당하는 신 자체, 이익 자체, 백성 자체를 문제삼고 고민한다는 것은 변화된 현실에 대한 적극적 반응이다. 따라서 유재는 일단 구체를 말하지만 그 구체는 고답적인 구체는 아니다. 신을 행함에 있어 그 신을 어떤 방식으로 행해야 하는 가에 대한 조심스런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라 이해된다. 백성을 위하고 백성을 사랑하라는 위민과 애민 정신이 유재 경세론의 핵심이다. 이런 사유에서 임금과 백성의 관계를 설정하고 바람직한 정치가 무엇인지를 밝힌다. 그 정치론은 결국 경세론의 다른 모습이다. 유재는 변화된 시세 속에서 궁극적으로 백성을 위하고 사랑하는 것을 어떤 방식으로 행해야 할 것을 고민한다. 그것의 구체적인 큰 틀은 유체신용이고 작은 틀은 상법과 변법의 관계이고 의와 리의 관계에 대한 언급이다. 백성을 위하는 정치에서의 시중적 형평성과 공정성을 요구하는 점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런 과정에서 유재는 임금이 사리사욕을 채우는 것과 임금의 군권남용에 관한 것 등을 암암리에 비판하고 있다. 즉 백성을 사랑하는 것이 임금의 본연의 임무라고 하는 것, 과거의 현명한 임금은 백성을 위해서 노력했다는 것 등은 모두 당시 현실에서의 임금에 대한 인식이나 잘못된 정치에 대한 반성적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王權神授說이나 天授說및 君權至上主義적 사유는 들어설 곳이 없다. 尊君重民論을 강조하는 것은 당시 군주의 무능함과 잘못된 권력 남용에 대한 유재의 일침으로 역시 오늘날에도 여전히 설득력을 갖는다.
YuJae(裕齋), SongGiMyun(宋基冕) was a special disciple among GanJae(艮齋)'s disciples. YuJae's thought is geneally in confucianism. To study his thought, it may be divided various aspect. For example, confucian statecraft, philosophy, proprieties, literature, polities and confucian statecraft etc. His confucian Statecraft is very related his polities and philosophy. This article is especially focus on the confucian statecraft of YuJae SongGiMyun. YuJae’s peculiar thought is in is view on confucian statecraft htat was expressed in his longest work, ManEon(妄言). He thought that the proud political and confucian statecraft tradition Orient was to respect King and to make much of the people, and to value morals and to disregard utility. YuJae insisted that the western political thought was founded on utility disregarded by Orient. The benefit of the people was put up to the most important status. Therefore, the thought that the people are the foundation of country was developed to a new state, and the thinking culture of ancient China reached to a highest level in the history. Ancient China had the people-based tradition to value and love the people. The thinkers realized very early the importance of the people in politics. They hoped the monarch could inform benevolent domination by a benevolent heart. What he pursued was that the emperor should focus on the masses’ interests, and the emperor should make interest for the people. But he had not demonstrated the people’s political right, and the people still were the object of 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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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근대 전환기 주로 전주 교동에서 활동한 고재 이병은(1877~1960)의 경세론에 관한 것이다. 이병은은 일반 농부들과 똑같이 스스로 농사를 지으며 책에서 배우지 않은 내용을 체득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의 중심철학으로 자리해온 이기론이 일상생활과 관련을 맺지 못하면 무의미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리하여 그는 비록 근대전환기에 오래도록 이론적 중심으로 군림한 주자학적 사유체계 속에서 경세론을 개진하였지만, 이기론에 대하여 지방적 지식을 가지고 현장 중심의 변혁적 적용을 도모하였다. 그는 만 가지로 다른 세상일에 하나의 원칙을 적용하여 살아야 한다는 견해를 제시한다. 그는 제각기 다른 일마다 사물마다 원칙을 적용하고 이치를 체현한 본성(性)이 스승으로 작동하고 인간의 마음은 그것을 따르는 제자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우리에게 아직도 고질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지역주의로서 ‘편색’, ‘색론’에 이병은은 주목한다. 이것은 욕심(인욕, 욕망)으로서 스승 전우의 학설인 성사심제의 각도에서 볼 때, 제자인 마음이 스승인 성을 본받지 않기 때문이라고 탄식한다. 이는 바깥 사물을 향한 이해타산의 근대성 이치(reason)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일정부분 성찰의 공간을 이병은이 제공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결국 이병은은 수시 변혁의 각도에서 주자학적 중심성 이론, 이기론을 접근하고 그의 스승 전우의 견해를 현실에 실천적으로 적용하고 있었는데, 본논문은 이 같은 그의 경세론의 지향점을 접근한 것이다.
This thesis is to approach Lee Byung-en's thought of the administration of nation at Gyodong of Jeonju in turning era to the Modernity, his flexible idea against central theory of beings He worked to make a living as diligently as common farmers, which made him get knowledges that could be gotten in the books. As a result he arrived at conclusion that the idea on pattern and matter with Neo-Confucian logic which may not be related to the real lives would be useless. Though he gave thought of the administration of nation under the Neo-Confucian context at the turning era to the Modernity, he tried apply its principle, as the central logic of beings from long ago on, to the new situation of that times with the knowledge of locality. He suggested that one principle, asserted by Neo-Confucianists, should be applied to all things and affairs including the content, "our nature of our body from the principle is teacher; our mind is disciple." Ultimately Lee Byung-en approached Neo-Confucianism logic of beings and his teacher's theory in view of the real situations, which is considered in this the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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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문화는 생명문화에 대한 기도를 통해 생활문화의 안녕을 유지하려는 생존의 集會문화이다. 제사 중에는 천지와 산천에 대한 제사나 금수, 巨石, 古木과 같은 자연생명에 대한 제사와 인간생명을 낳아준 조상에게 대한, 그리고 문화생명을 낳아준 聖賢에게 드리는 제사 등이 있다. 이른바 釋奠은 文廟라는 學宮에서 행해지는 제사의식이다. 따라서 고대 학교는 문화적으로 존현의식과 양현의식의 두 가지 기능을 겸하고 있다. 예물과 예절, 歌樂과 舞蹈등의 예술적 활동이 종합적으로 이루어지는 문화행사이다. 또한 유교의례로서 석전대제는 祭壇이 되는 祠堂을 설치하고, 그 곳에 신앙의 대상을 位牌로서 現身하도록 하여, 인간에게 時空的인 제약을 초월하여 생명의 문화와 생활의 문화를 享有하도록 해준 데 대하여 그 고마움을 기리는 祭祀儀式이다. 문묘 석전의 典禮는 예악무의 종합적인 문화예술에 의해 행해진다. 그 대강을 보면, 석전은 廟宇에 先聖先師의 位牌를 모시고 時食의 祭羞를 진설하고, 笏記의 禮順에 따라 獻爵하며 歌樂舞로 그 德業을 칭송하는 문화적 제사이다. 우리나라의 <釋奠儀註>는 迎神, 奠幣, 初獻, 亞獻, 終獻, 撤籩豆, 送神, 飮福, 望瘞등으로 되어 있다. 또한 석전은 陽氣가 시작되는 仲春과 陰氣가 시작되는 仲秋의 각 上丁日에 樂正에게 무도를 익혀 釋菜를 하게 했다. 처음에는 祭羞를 나물류만을 썼으므로 석채라 하고, 반궁을 芹宮이라고도 한다. 祭器로는 籩豆俎爵을 쓰고, 희생물로는 牛羊을 썼다 하여 釋奠이라 한다. 이른바 時祀를 지내는 것은 음양의 기운이 처음 시작하는 때를 택한 것이요, 가장 훌륭한 음식은 時饌이다. 제철 음식은 음양의 기운을 完備한 음식이기 때문이다. 樹木도 때에 맞추어 時伐해야 하고 禽獸도 때에 맞춰 時殺해야 한다. 한 나무를 자르고 한 짐승을 잡더라도 그 때로 하지 않으면 孝가 아니다. 이것은 仁者가 인간답지 못한 것을 미워하여 非孝라고 한 것이다. 효의식은 근본이 생명의식이다. 이것은 時中之道가 인간다움을 행하는 도로서 그 생명의식을 기준으로 殺生해야 함을 말해 주기도 한다. 석전에서 행해지는 가악무는 인간다움을 표현하는 예술적인 미학이다. 樂章의 송가, 器樂의 연주, 佾舞의 연희 등은 文武의 음양대대로 나누어 행해진다. 또한 악장은 八句로, 雅樂은 八音으로, 일무는 八列로 이루어진다. 이것은 천하에 천지자연과 인간의 소리와 몸짓으로 성현을 받들고 그 敎化가 팔방으로 퍼지게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팔구체는 四言고체시의 형식으로 자연적인 음률에 맞게 노래하는 것이요, 팔음체는 金石絲竹과 匏土革木등 천지 속에서 나는 자연물로 만든 악기의 조화로 연주되는 것이요, 팔열체는 내외, 전후, 좌우, 상하의 팔방으로 춤사위를 펼치는 것이다. 이러한 의식에서 느낄 수 있는 감성미학은 바로 인간문화의 생명미라고 할 것이다. 또한 樂歌와 奏樂은 인간의 심지를 八音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온 천하에 政敎가 잘 행해지고 있는가를 가늠하는 소리인 것이다. 堂上, 堂下두 개의 음악으로 나누 것은 오로지 천지조화에서 상징을 취한 것이다. 고대 문화가 集成된 하은주 삼대 제사악은 영신에 당상의 노래와 당하의 연주를 合樂하여 일시에 아울러 신령이 상제 곁에 계신 곳에서 성음을 듣고 강림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리고 樂舞는 천지의 도를 인간이 ‘裁成輔相’하여 인사에 펴는 것이다. 문무를 통하여 겸양을 수련하고 무무를 통하여 일의 순발력을 키우는 용맹함을 단련하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천지자연의 음양의 待對에 맞추어 舞具를 드는 것도 모두가 덕성을 갖추어 생활의 화동함을 누리기 위한 것이다. 춤사위의 동작 또한 세 번 읍양하고 세 번 진격하는 것도 덕성을 함양하기 위한 것이다. 여기서 인간사회가 조그마한 서운함과 시샘이 없는 ‘無怨不爭’하는 安樂함과 和同의 미감을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문묘의 제례악과 제례무는 성현의 德業과 함께 어울리기 위하여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작용을 한다. 가악무는 숭모하는 마음의 소리와 숭앙하는 몸짓의 춤사위로 興起시켜 그 祭儀를 鼓舞시키는 것이다. 歌辭는 頌歌이다. 祝文을 확대한 것이다. 홀기는 다만 예의 절차를 순서대로 부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詩, 歌, 舞는 인간 내심의 지기를 안락하고 화동하게 하는 정감을 밖으로 표현하는 미학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樂舞는 천지의 유행과 형상을 그려내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천지 조화의 유행은 보려 해도 보이지 않고, 만져 보려 해도 형상이 없고, 쓰려 해도 말로 다하지 못하고, 그려내려 해도 그 뜻을 다 표현하지 못한다. 오직 높고 낮은 악음만이 이를 원활하게 형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식은 성현을 모신 사당에서 악장과 악가와 악무를 통해 문화생명을 기리는 축제인 것이다. 문무로 나누어 주악과 무도하는 것은 文舞樂을 통하여 예의를 학습하고 武舞樂을 통하여 신체를 단련하여 활동하는 문화를 상징하여 정교이념을 제시하는 것이다. 옛 성인이 耳目과 心思의 힘을 다해 律管을 만들어 악을 조화시켜 예와 병행하여 예악이라 한다. 또한 국가 풍속의 후박함, 정치의 득실, 국운의 隆替함을 모두 악과 관련시켜 聲音의 도는 정치와 통한다고 말한다. 樂音은 德音으로서 사방팔방으로 퍼져 나가듯이 정치의 교화가 펴져 나아가는 것과 같은 것이다. 문화생명이란 생동하는 活潑性이 있어야 하고 그것은 인간의 정감 가운데 기쁨과 즐거움이 있어야 살아있는 것이다. 음악 절주의 조화를 통해 세상살이의 안락함을 구가하는 일이다. 정교가 잘 이루어지고 있는가는 그 지방의 노래가 편안해야 한다. 바로 마음을 나타내는 소리가 인간문화의 즐거움을 구가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노래와 춤이라는 것은 신체단련을 위해 고대에서부터 추어왔다. 그래서 무예나 양생술과 서로 통한다고 한다. 雅樂舞는 정신수양과 신체단련을 위함이었다. 文舞가 마음자세를 위한 정신수양이고 武舞가 신체단련이었다. 무도는 수렵을 나가기 전에 마음을 단련시키고, 수렵에서는 한번 창을 던져 바로 잡아야 용서가 되는데, 이를 연습하기 위해서 문무와 무무를 함께 연습 시켰던 것이다. 이와 같이 악무는 演戱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명감을 고취시키는 일종의 修身의 敎科目인 것이다. 문화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사람답게 살아가는 삶의 흔적이다. 그것은 나와 남이 함께 문화적 소통을 통하여 삶을 질적으로 승화시켜 나아가는 일이다. 문화생명의 상징성은 인간다움이다. 나와 남이 함께 생명의 기쁨과 생활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인간다움이다. 석전 행사에서 萬世의 宗師로 모시는 공부자 위패의 시호에 大成至聖이란 의미도 世道인심의 인간적 환경 교화를 위해서 유교문화 집대성한 더할 나위 없는 성인이시라는 뜻이다. 유가는 인간 중심의 사고를 바탕으로 문명과 야만을 구별하는 이른바 인간과 금수의 分辨의식을 기본적으로 지니고 있다. 금수는 無禮하여 감정을 제대로 절제하지 못해 제멋대로 행동하지만, 인간은 인간다운 예의를 가지고 있어 세련된 문화생활을 영위한다. 따라서 인간문화는 인심을 음악으로 교화하여 바로잡는 예악사상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문묘석전대제는 단순히 유교제사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고대로부터 행하여진 집회문화로서 문화적 생명을 남겨 준 성현을 모시고, 살아있는 우리들이 문화적 삶을 살아가기 위한 가장 인간다운 의식이기 때문이다.
祭祀文化是通過對生命文化的祈禱來維持生活文化安寧的生存集會文化。祭祀中有對天地山川或禽獸的祭祀,也有對巨石、古木等自然生命的祭祀,還有對給予人間生命的祖先的祭祀,更有對給予文化生命的聖賢的祭祀。所謂釋奠是在稱之爲文廟的學宮中擧行的祭祀儀式。所以古代的學 校在文化上兼有尊賢儀式和養賢儀式兩大功能。是禮物和禮節、歌樂和舞蹈等藝術活動綜合而成的文化活動。釋奠大祭作爲儒敎儀禮,設立祠堂以爲祭壇,用位牌使信仰的對象現身,讓人們超越時空的制約享有生命文化和生活文化,幷使人們對此表示感謝。文廟釋奠的典禮是隨着禮樂舞的綜合性文化藝術而進行的。大致上,釋奠是在祠堂裏供奉先聖先師的位牌,陳設時食的祭羞,按照笏記上禮的順序獻爵,以歌樂舞稱頌其德業的文化祭祀。 我國的『釋奠儀註』中記載,祭祀分爲迎神、奠幣、初獻、亞獻、終獻、撤籩豆、送神、飮福、望瘞等過程。釋奠分別在陽氣初始的仲春和陰氣初始的仲秋的上丁日,“命樂正習舞釋菜”。因最初以野菜爲祭羞,故名爲釋菜,泮宮也叫芹宮。因以籩豆俎爵爲祭器,以牛羊爲犧牲,故名爲釋奠。所謂時祀,選擇陰陽二氣初始之時,上好的食物爲時饌。因爲時令食物具備陰陽二氣。樹木也要適時砍伐(時伐),禽獸也要適時宰殺(時殺)。卽使砍伐一顆樹,宰殺一生畜,不適時便不是孝。因爲仁者嫌惡非人間化的行爲,所以是非孝。孝意識的根本是生命意識。也就是說,時中之道作爲人間化之道,要以其生命意識爲基準去殺生。 釋奠中的歌樂舞是表現人間化的藝術美學。歌頌樂章、演奏器樂、演戱佾舞等根據文武的陰陽待對分別進行。樂章爲八句,雅樂爲八音,佾舞爲八列。這意味着,以天地自然與人的聲音和體態供奉聖賢於天下,使其敎化傳播到八方。八句體是以四言古體詩的形式符合自然的音律歌唱;八音體是用金石絲竹和匏土革木等生長於天地之中的自然物制成的樂器和諧演奏;八列體是向內外、前後、左右、上下等八方施展舞蹈動作。 從這種儀式中感受到的感性美學,正是人間文化的生命美。樂歌和奏樂是用八音表現人的心志,八音則是衡量政敎是否施行於全天下的聲音。分爲堂上、堂下兩種音樂,只是在天地造化中採用了象徵。集成了古代文化的夏殷周三代祭祀樂,在迎神時合樂堂上之歌與堂下之奏,祈求上帝身旁的神靈聽到聲音而降臨。樂舞是人“裁成輔相”天地之道施於人事。它象徵着通過文舞修練謙讓,通過武舞鍛鍊行事速度的勇猛。符合天地自然的陰陽待對手持舞具,也是爲了使人們具備德性享受生活中的和同。舞蹈動作三次揖讓三次進擊,也是爲了涵養德性。從中能夠體驗到人間社會無一絲一毫怨望和嫉妒的“無怨不爭”的安樂與和同的美感。 文廟的祭禮樂和祭禮舞爲了使我們和聖賢的德業融合爲一體起到感興的作用。歌樂舞通過崇慕之心的聲音和崇仰之身的動作興起,鼓舞其祭儀。歌辭乃頌歌,是祝文的放大版。笏記不過是按照禮的順序依次叫出。 詩、歌、舞是向外表現出使人內心中的志氣安樂而和同的情感的美學。就是說,樂舞能夠勾勒出天地的流行和形象。這種儀式是在供奉聖賢的祠堂裏通過樂章、樂歌、樂舞稱頌文化生命的慶典。分爲文武的奏樂和舞蹈,通過文舞樂學習禮儀,通過武舞樂鍛鍊身體,象徵活動的文化,提示政敎理念。 古代聖人盡耳目與心思之力製造律管調和樂,與禮竝行稱之爲禮樂。國家風俗的厚薄、政治的得失、國運的隆替,都和樂連繫起來,認爲聲音之道與政治相通。樂音作爲德音,政治敎化的展開就像聲音向四面八方傳開一樣。 文化生命要有生動的活潑性。因爲人的情感中有喜悅和快樂才能生存。通過音樂節奏的調和謳歌人世間的安樂。政敎的好壞取決於當地的歌聽着是否舒服。卽是說,表現心靈的聲音在謳歌人間文化的愉悅。 在古代爲了鍛鍊身體已經出現了歌與舞。所以說與武藝或養生術是相通的。雅樂舞是爲精神修養和身體鍛鍊。文舞是調整心態的精神修養;武舞是身體鍛鍊。舞蹈之所以是最初的藝術,是因爲在狩獵之前鍛鍊心靈,狩獵時要一戈捉到獵物才能得到寬恕,爲此要同時練習文舞和武舞。這樣,樂舞就不是爲了演戱,而是鼓吹自己生命感的一種修身的課程。 文化是人在世間像人一樣生活的人生足跡。這是通過我和他人的文化溝通,使生活發生質的昇華的過程。文化生命的象徵性正是人間化。我和他人共同享受生命的喜悅和快樂正是人間化。在釋奠活動中,刻在萬世宗師孔夫子位牌上的諡號“大成至聖”也意味着,他是爲了世道人心的人間環境敎化而集大成了儒敎文化的獨一無二的聖人。 儒家在以人爲中心的思考方式的基礎上,具有區別文明和野蠻的所謂人與禽獸的分辨意識。禽獸無禮,不能控制感情而任意行動,而人因爲具有人間化的禮儀能營衛精練的文化生活。因此將人間文化解釋爲用音樂敎化人心的禮樂思想。 文廟釋奠大祭幷不只是單純的儒敎祭祀。因爲它作爲從古代就進行下來的集會文化,是爲了供奉留給我們文化生命的聖賢,讓活着的我們能夠享有文化生命的最人間化的意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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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연구목적은 중용에 나타난 물아일체의 세계관을 분석하여 극단과 분열의 시대적 현상을 넘어서 균형과 조화라는 중용적 삶의 지평을 강조하는 데 있다. 중용은 모든 천지만물을 ‘생생불이’하는 유기적 생명체로 인식한다. 천지는 온갖 만물을 기름에 있어서 生化의 원리에 따라 간단없이 창생하고 화육한다. 인간 또한 자연과 더불어서 자연의 질서에 의하여 삶을 이어간다. 그리고 우주의 질서인 자연의 변화는 생명을 낳고 기르며 거두어 간다. 결국 인간생명의 본질은 타자는 물론이고 천지만물과의 유기적이고 연기적인 관계 속에서 근원을 찾을 수 있다. 중용은 천지만물을 독립적이고 고정적인 것이 아닌 상호 유기적이고 보완적인 관계로 인식한다. 그러므로 천지만물의 조화로움 속에 타자와의 긍정적인 화합이 중용에 있어서의 삶의 목표이고 실현해야 하는 과제인 것이다.그리고 중용에서는 만물은 함께 길러져 서로 해치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 구절을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을 비롯한 자연 생태계의 바라는 바의 이상으로서 이해하며 인간과 자연만물의 공생 공존할 수 있는 단초로서 생각할 수 있다. 본고에서는 중용이 대상적 소유보다는 주객합일의 존재를, 인위적인 정복보다는 창조적 조화를, 무한성장보다는 역동적 균형을 지향하는 사상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本文通过分析中庸中体现出的物我一体世界观,要突出超越极端和分裂而形成均衡与和谐的具有中庸特点的生命地平。 在中庸里,天地万物是'生生不息'的有机体。天地滋养万物,缘起原理不断地创造生命、化育生命。人类也随着自然的秩序延续着其生命。宇宙的秩序、自然的变化,生出生命、滋养生命、收减生命,最后不仅是他者,人的生命本质也在于与天地万物有机延续的关系中。从中我们可以寻找到人的生命根源。 在中庸里,天地万物并不是固定独立的存在,而是有机互补的关系来认识的。所以,在天地万物的和谐关系中,与他者的积极和谐关系就在中庸里体现为生命的目的,成为它所要实现的课题。中庸里说,"万物并育而不相害。"此句说明,不仅是生活在险境中的人类,连自然的生态系也期望人类与自然万物的共存共生。 本文认为中庸所向往的思想内容不在于对象的所属关系,而在于主客体合一的存在里;不在于人伪的征服,而在于和谐的关系里;不在于无限的成长,而在于生命的均衡关系里。 所以,天地万物的和谐中,我们可以与他者保持和谐关系。这是中庸里体现出的生命目的,是这一生命所要实现的课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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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王夫之가 讀四書大全說에서중용 머릿장의 ‘中’에 대해 표명한 그의 해석들을 정리한 것이다. 왕부지는 中해석에서 朱子의 입장을 계승하되 몇 가지 점에서 차이를 드러낸다. 주자는 不偏不倚를 中의 體로, 無過不及을 中의 用으로 이해한다. 반면에 왕부지는 不偏不倚를 未發之中의 體로, 無過不及을 已發之中의 體로 파악한다. 왕부지에게 中은 오직 本體로서만 존재한다. 中이 모든 것의 표준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中庸이란 ‘본체인 中의 날로 새로운 쓰임’일 뿐이다. 왕부지는 喜怒哀樂이 각각의 본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희로애락이 아직 발하지 않았을 때 그 희로애락은 흠결이 없는 것이다. 그 흠결 없는 희로애락은 각각 仁義禮智를 본체로 삼는다. 그래서 아직 발하지 않은 ‘不偏不倚’라는 中은 性의 덕을 형용하는 것이 된다. 왕부지는 기쁨·노여움·슬픔·즐거움이 仁義禮智를 본체로 삼아 거기에 뿌리를 두고서 각각의 마땅함에 의거해 발함으로써 절도에 맞게 된다고 본다. 또한 주자가 物性을 말하면서 物道를 인정하는 것과 달리 왕부지는 物에 道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다. 왕부지는 이런 입장을 致中和해석에 적용한다. 왕부지는 物의 道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致中和의 대상을 자기 몸과 관련 있는 것으로만 한정짓는다. 전체 만물에 대해 무차별적으로 中과 和를 지극히 하는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선을 긋는다. 따라서 ‘天地位萬物育’도 이런 제한 아래 인간이 자신의 감정의 발로를 다스리는(存養·省察) 致中和의 과정이 된다.
这篇论文对王夫之在读四书大全说中对中庸首章“中”的解析进行了整理。虽然王夫之对“中”的解析继承了朱熹的立场,但和朱熹的立场也有几点差异。朱熹认为“不偏不倚”是“中”的体,“无过不及”是“中”的用。与之相反,王夫之认为“不偏不倚”是“未发之中”的体,“无过不及”是“已发之中”的体。即王夫之认为“中”只不过是作为本体而存在。因为“中”可以成为所有事物的标准。因此中庸只是“‘中’作为本体的一种创新使用”。 王夫之认为喜怒哀乐都具有他们各自的本体。在喜怒哀乐尚未表露时,喜怒哀乐是没有欠缺的。这个没有欠缺的喜怒哀乐将仁义礼智作为本体。 所以“不偏不倚”的“中”尚未表露时是形容性之德的东西。王夫之认为,喜怒哀乐根深蒂固地将仁义礼智视为本体的基础之上,依据各自的合理状况表露,从而做到适度有节制。 此外,与朱熹在言及“物性”的同时也承认“物道”不同,王夫之不承认物中有道。王夫之的这种立场适用于对“致中和”的解释。因为王夫之不承认物的道,所以只把“致中和”的对象限定为与自己身体相关的事物。并鲜明指出,并不是对于世界万物都无差别地诚心对待“中”与“和”。因为,“天地位,万物育”也成为在这种限定之下人类控制自己感情表露的“致中和”的过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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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율곡의 순언에서 핵심 개념인 ‘嗇’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율곡은 순언을 저술할 때 노자를 해체한 뒤 재구성한다. 재결합․재배치의 원칙은 철저하게 유가의 ‘수기’와 ‘치인’이다. 율곡은 순언 가운데 ‘수기’와 ‘치인’의 핵심으로서 ‘嗇’을 꼽는다. ‘색’은 ‘수기’적인 측면에서는 ‘거경’으로써의 수렴의 의미가 있으며, ‘치인’적인 측면에서는 ‘절용’의 뜻을 지닌다. 율곡은 ‘수기’적 측면의 ‘색’의 방법과 ‘치인’적 측면의 ‘색’의 방법을 나누어 설명한다. 개인수양적인 측면에서의 ‘嗇’의 구체적인 방법은 순언의 편차 순서에 따라 ‘극기복례’와 ‘자애’, ‘검약’, ‘겸허’의 ‘삼보’와 ‘重靜’이다. 인간의 본성이 善하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 본성을 가리고 구속하는 사욕을 제거하는 것이 ‘극기복례’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삼보’는 만물을 포용할 수 있는 ‘자애’를 바탕에 두고 ‘검약’으로써 자신을 절제하며, ‘겸허’를 통해 자신을 비움으로써 ‘道體의 本然’에까지 이를 수 있다는 것을 말하였다. ‘重靜’은 마음이 외부의 사물에 쉽게 흔들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스스로를 굳게 지키는 방법으로 설명했다. 치인측면에서의 ‘색’은 사사로운 자기가 없는 ‘無我’, ‘無私’로써 천하를 다스리는 법을 삼았다. ‘수기’와 ‘치인’이 분리되어 따로 존재하는 영역이 아닌 것처럼 ‘수기’로서의 ‘嗇’의 방법과 ‘치인’으로써의 ‘색’의 방법 또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색’의 방법을 통해 얻게 되는 공효 또한 수기와 치인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수기’적 측면에서의 공효는 자신의 命을 온전히 보존할 수 있다는 正命의 차원에서 볼 수 있으며 더 나아가서는 천지의 道와 더불어 짝하게 되는 天人合一의 경지까지 올라갈 수 있다. ‘치인’적 측면에서의 공효는 인간사회의 개개인이 각자의 본성을 밝히게 되는 ‘敎化’의 단계로부터 만물 각자가 자리를 잡게 되는 ‘天地位萬物育’에까지 이르게 된다.
在这篇文章我们把栗谷《醇言》的核心概念-‘啬’设为了重点观察对象。当粟谷编写《醇言》时他先完全解析《老子》后重新组成了架构。并且重新组成․重新架构的原则彻底遵从了儒家的‘修己’和‘治人’。 粟谷在《醇言》内,把‘啬’主张为‘修己’和‘治人’的核心。‘啬’在‘修己’上具有‘居敬’和收敛之意,在‘治人’上具有‘节用’之意。 粟谷把‘啬’的方法各分为‘修己’方面和‘治人’方面而进行了说明。‘啬’在个人修养方面上,其具体方法按照《醇言》的编次可定为‘克己復禮’,包括‘慈愛’、 ‘儉約’和‘謙虛’的‘三寶’,‘重靜’。 他把人所禀赋的本性原本为极善的儒家思想作为前提,指出清除蔽束本性的私欲为‘克己復禮’的方法。‘三寶’为包容万物的‘慈爱’作为底子,通过‘儉約’节制自己,通过‘謙虛’虚己,说道能从此达到‘道体的本然’。‘重静’是为得到不动心而能坚定地守住自己的方法。‘啬’在治人方面上是由没有自己的‘无我’,‘无私’而统治天下的方法。 就如‘修己’和‘治人’是不可分离的事项,‘修己’和‘治人’上各说明的‘啬’的各种方法也是不能分离的。 通过‘啬’的方法能得到的功效也可分为修己和治人而说明。‘修己’方面的功效可说明为能保全自己的命的‘正命’侧面,而且甚至能达到天地和道互相配合的天人合一境界。‘治人’方面的功效可说明为能标明社会构成人员各个本性的‘教化’侧面,而且甚至能达到世界万物回到各自位置的‘天地位万物育’境界。
改革開放이래 中國大陸에서 개최된 儒學學術會議상황 - 1978년에서 1999년까지 -
간재학회 간재학논총 제11집 2011.02 pp.369-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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