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문화는 생명문화에 대한 기도를 통해 생활문화의 안녕을 유지하려는 생존의 集會문화이다. 제사 중에는 천지와 산천에 대한 제사나 금수, 巨石, 古木과 같은 자연생명에 대한 제사와 인간생명을 낳아준 조상에게 대한, 그리고 문화생명을 낳아준 聖賢에게 드리는 제사 등이 있다. 이른바 釋奠은 文廟라는 學宮에서 행해지는 제사의식이다. 따라서 고대 학교는 문화적으로 존현의식과 양현의식의 두 가지 기능을 겸하고 있다. 예물과 예절, 歌樂과 舞蹈등의 예술적 활동이 종합적으로 이루어지는 문화행사이다. 또한 유교의례로서 석전대제는 祭壇이 되는 祠堂을 설치하고, 그 곳에 신앙의 대상을 位牌로서 現身하도록 하여, 인간에게 時空的인 제약을 초월하여 생명의 문화와 생활의 문화를 享有하도록 해준 데 대하여 그 고마움을 기리는 祭祀儀式이다. 문묘 석전의 典禮는 예악무의 종합적인 문화예술에 의해 행해진다. 그 대강을 보면, 석전은 廟宇에 先聖先師의 位牌를 모시고 時食의 祭羞를 진설하고, 笏記의 禮順에 따라 獻爵하며 歌樂舞로 그 德業을 칭송하는 문화적 제사이다. 우리나라의 <釋奠儀註>는 迎神, 奠幣, 初獻, 亞獻, 終獻, 撤籩豆, 送神, 飮福, 望瘞등으로 되어 있다. 또한 석전은 陽氣가 시작되는 仲春과 陰氣가 시작되는 仲秋의 각 上丁日에 樂正에게 무도를 익혀 釋菜를 하게 했다. 처음에는 祭羞를 나물류만을 썼으므로 석채라 하고, 반궁을 芹宮이라고도 한다. 祭器로는 籩豆俎爵을 쓰고, 희생물로는 牛羊을 썼다 하여 釋奠이라 한다. 이른바 時祀를 지내는 것은 음양의 기운이 처음 시작하는 때를 택한 것이요, 가장 훌륭한 음식은 時饌이다. 제철 음식은 음양의 기운을 完備한 음식이기 때문이다. 樹木도 때에 맞추어 時伐해야 하고 禽獸도 때에 맞춰 時殺해야 한다. 한 나무를 자르고 한 짐승을 잡더라도 그 때로 하지 않으면 孝가 아니다. 이것은 仁者가 인간답지 못한 것을 미워하여 非孝라고 한 것이다. 효의식은 근본이 생명의식이다. 이것은 時中之道가 인간다움을 행하는 도로서 그 생명의식을 기준으로 殺生해야 함을 말해 주기도 한다. 석전에서 행해지는 가악무는 인간다움을 표현하는 예술적인 미학이다. 樂章의 송가, 器樂의 연주, 佾舞의 연희 등은 文武의 음양대대로 나누어 행해진다. 또한 악장은 八句로, 雅樂은 八音으로, 일무는 八列로 이루어진다. 이것은 천하에 천지자연과 인간의 소리와 몸짓으로 성현을 받들고 그 敎化가 팔방으로 퍼지게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팔구체는 四言고체시의 형식으로 자연적인 음률에 맞게 노래하는 것이요, 팔음체는 金石絲竹과 匏土革木등 천지 속에서 나는 자연물로 만든 악기의 조화로 연주되는 것이요, 팔열체는 내외, 전후, 좌우, 상하의 팔방으로 춤사위를 펼치는 것이다. 이러한 의식에서 느낄 수 있는 감성미학은 바로 인간문화의 생명미라고 할 것이다. 또한 樂歌와 奏樂은 인간의 심지를 八音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온 천하에 政敎가 잘 행해지고 있는가를 가늠하는 소리인 것이다. 堂上, 堂下두 개의 음악으로 나누 것은 오로지 천지조화에서 상징을 취한 것이다. 고대 문화가 集成된 하은주 삼대 제사악은 영신에 당상의 노래와 당하의 연주를 合樂하여 일시에 아울러 신령이 상제 곁에 계신 곳에서 성음을 듣고 강림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리고 樂舞는 천지의 도를 인간이 ‘裁成輔相’하여 인사에 펴는 것이다. 문무를 통하여 겸양을 수련하고 무무를 통하여 일의 순발력을 키우는 용맹함을 단련하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천지자연의 음양의 待對에 맞추어 舞具를 드는 것도 모두가 덕성을 갖추어 생활의 화동함을 누리기 위한 것이다. 춤사위의 동작 또한 세 번 읍양하고 세 번 진격하는 것도 덕성을 함양하기 위한 것이다. 여기서 인간사회가 조그마한 서운함과 시샘이 없는 ‘無怨不爭’하는 安樂함과 和同의 미감을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문묘의 제례악과 제례무는 성현의 德業과 함께 어울리기 위하여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작용을 한다. 가악무는 숭모하는 마음의 소리와 숭앙하는 몸짓의 춤사위로 興起시켜 그 祭儀를 鼓舞시키는 것이다. 歌辭는 頌歌이다. 祝文을 확대한 것이다. 홀기는 다만 예의 절차를 순서대로 부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詩, 歌, 舞는 인간 내심의 지기를 안락하고 화동하게 하는 정감을 밖으로 표현하는 미학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樂舞는 천지의 유행과 형상을 그려내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천지 조화의 유행은 보려 해도 보이지 않고, 만져 보려 해도 형상이 없고, 쓰려 해도 말로 다하지 못하고, 그려내려 해도 그 뜻을 다 표현하지 못한다. 오직 높고 낮은 악음만이 이를 원활하게 형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식은 성현을 모신 사당에서 악장과 악가와 악무를 통해 문화생명을 기리는 축제인 것이다. 문무로 나누어 주악과 무도하는 것은 文舞樂을 통하여 예의를 학습하고 武舞樂을 통하여 신체를 단련하여 활동하는 문화를 상징하여 정교이념을 제시하는 것이다. 옛 성인이 耳目과 心思의 힘을 다해 律管을 만들어 악을 조화시켜 예와 병행하여 예악이라 한다. 또한 국가 풍속의 후박함, 정치의 득실, 국운의 隆替함을 모두 악과 관련시켜 聲音의 도는 정치와 통한다고 말한다. 樂音은 德音으로서 사방팔방으로 퍼져 나가듯이 정치의 교화가 펴져 나아가는 것과 같은 것이다. 문화생명이란 생동하는 活潑性이 있어야 하고 그것은 인간의 정감 가운데 기쁨과 즐거움이 있어야 살아있는 것이다. 음악 절주의 조화를 통해 세상살이의 안락함을 구가하는 일이다. 정교가 잘 이루어지고 있는가는 그 지방의 노래가 편안해야 한다. 바로 마음을 나타내는 소리가 인간문화의 즐거움을 구가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노래와 춤이라는 것은 신체단련을 위해 고대에서부터 추어왔다. 그래서 무예나 양생술과 서로 통한다고 한다. 雅樂舞는 정신수양과 신체단련을 위함이었다. 文舞가 마음자세를 위한 정신수양이고 武舞가 신체단련이었다. 무도는 수렵을 나가기 전에 마음을 단련시키고, 수렵에서는 한번 창을 던져 바로 잡아야 용서가 되는데, 이를 연습하기 위해서 문무와 무무를 함께 연습 시켰던 것이다. 이와 같이 악무는 演戱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명감을 고취시키는 일종의 修身의 敎科目인 것이다. 문화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사람답게 살아가는 삶의 흔적이다. 그것은 나와 남이 함께 문화적 소통을 통하여 삶을 질적으로 승화시켜 나아가는 일이다. 문화생명의 상징성은 인간다움이다. 나와 남이 함께 생명의 기쁨과 생활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인간다움이다. 석전 행사에서 萬世의 宗師로 모시는 공부자 위패의 시호에 大成至聖이란 의미도 世道인심의 인간적 환경 교화를 위해서 유교문화 집대성한 더할 나위 없는 성인이시라는 뜻이다. 유가는 인간 중심의 사고를 바탕으로 문명과 야만을 구별하는 이른바 인간과 금수의 分辨의식을 기본적으로 지니고 있다. 금수는 無禮하여 감정을 제대로 절제하지 못해 제멋대로 행동하지만, 인간은 인간다운 예의를 가지고 있어 세련된 문화생활을 영위한다. 따라서 인간문화는 인심을 음악으로 교화하여 바로잡는 예악사상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문묘석전대제는 단순히 유교제사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고대로부터 행하여진 집회문화로서 문화적 생명을 남겨 준 성현을 모시고, 살아있는 우리들이 문화적 삶을 살아가기 위한 가장 인간다운 의식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