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백재(老柏齋) 최명희(崔命喜)는 충청도 태안(泰安) 출신으로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문인이다. 그는 서구열강과 일인(日人)들의 침략 속에서 의연히 안빈호학(安貧好學)의 정신을 지키며 주경야독(晝耕夜讀)을 몸소 실천하였다. 특히 그는 독서와 경작을 리(理)와 기(氣)의 관계에 비유하여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라고 하였으니 이는 그가 독서와 경작을 성리학적 이론에 적용하면서 자신의 입지를 현실에서 충실히 실천하고자 한 것이다. 이는 당시 어려운 환경에 처한 향촌사회에서 사인(士人)들로 하여금 독서를 통해 항심(恒心)을 배양시키고 경작을 통해 항산(恒産)을 갖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그의 정신은 궁벽한 향촌사회의 사인들에게 귀감이 되었으니, 태안일대에 간재학파가 형성된 것이 모두 그의 학문적 영향에서 연유한 것이었다.그의 학문은 주경주리(主敬主理)의 경향이었다. 그는 학문의 기본적 마음 자세를 ‘경’에 두었고, 이를 토대로 한 그의 성리설은 리를 주로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전에 논쟁이 되었던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이나 인물성동이론(人物性同異論)에 대해 자신의 논지를 피력하지 않고, 주희나 전우의 성리설을 따르고자 하였다. 또한 그는 교육에 있어서는 학문론을 기초로 하여 지행양진(知行兩進)을 추구하였다. 최명희 자신 또한 앎과 실천을 양진하면서도 항상 자신을 속이거나 거짓됨이 없는 진실무망(眞實无妄)의 성(誠)을 배양하여 하늘을 아는 단계로 나아가고자 하였다. 이는 하늘과 마주하여 떳떳한 마음을 지니고자 한 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자세는 ‘예(禮)’를 중시하는 경향으로 드러났으니, 그는 ‘예’의 실현을 통해 사람의 도를 극진히 하면서 천리(天理)를 구현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실천성 중시는 최명희 자신이 처한 현실에서 유교적 도덕을 실천하면서 향리의 사람들을 교화시키고 향촌사회의 도덕적 질서를 유지하고자 한 것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