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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계(牛溪) 성혼(成渾) 연구의 성과와 전망

강보승

우계문화재단 우계학보 제37호 2019.12 pp.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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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00원

우계 성혼 연구는 1970년대 말 시작되었고 198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연구 성과가 제출되기 시작하였다. 1990년대에 연구 성과 제출이 대폭 증가하였으며 2000년대 이후 현재까지 꾸준히 연구가 이어져 2019년 현재 총 287건의 연구 성과가 축적되었다. 연구 성과들은 절반 이상이 성리학(본체론⋅심성론) 분야이고, 나머지가 생애와 학문 소개, 학파⋅문인, 교육 분야이며, 10명 내외의 주요 연구자들에 의해 연구가 주도되었다. 우계 연구가 단기간에 이루어짐으로 인해 우계 연구의 양적 성과에 비하여 질적 성과가 미흡하였다. 연구 분야가 치중되어있고 체계적이지 않으며 우계의 학문을 대표하거나 규정할만한 개념이나 색깔이 모호하다. 따라서 다음 세 가지가 향후 연구에서 고려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첫째, 우계의 학문에서 ‘보편성’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연구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특히 우계 학문을 ‘퇴계·율곡의 절충론’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지 면밀한 고찰이 필요하고, 성리학, 도학이 가진 보편성의 측면에서 우계를 연구해야 한다. 둘째, 우계 삶의 특수성, 우계가 처한 당대 현실의 특수성의 전제 위에 우계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즉, 우계우계이해해야 한다. 성리학은 ‘실천’을 위한 학문이고 따라서 본체론⋅심성론도 중요하나 수양론·경세론이 더 실질적 의미를 갖는다. 때문에 우계의 학문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계가 어떤 이론이나 학설을 제시했는가보다는 그가 어떻게 수양하고 실천했는가를 살펴야 한다. 셋째, 단편적·산발적 연구가 아닌 집중적이고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본체론·심성론을 구심점으로 잡고 수양·경세론 및 교육·문학·역사 분야를 균형 있게 연구해야 할 것이다. 단순히 분야 간 균형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우계 연구의 방향성이나 기조를 세워 우계 학문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Research on Ugyae Seong-Hon began in the late 1970s, and concrete results have flown from the late 1980s. In the 1990s, research results increased significantly. As of 2019, there are a total of 287 research results. Among the research, more than half of the studies are about Ugyae's Confucianism, and the rest introduce his life, academic acheivement, school, and education. Only about ten researchers did most of the research. Since the research on Ugyae has a short history, the quality of research is insufficient compared to quantity. The subjects of research are limited, and the research process is not systematic yet. Moreover, the main topic or symbol that represents or defines the meaning of Ugyae studies is still ambiguous. For these reasons, researchers should consider the following three points in future studies. First, it is necessary to change the research perspective to make a universal standard on Ugyae. Especially one should carefully examine whether Ugyae can be defined as 'the eclectic between Toegye and Yulgok's theory.' Also, One should study Ugyae under the aspects of Confucianism. Second, researchers should consider Ugyae's life and the specificities of his time. Neo-Confucianism puts stress on practice; thus, the theories of self-cultivation or statecraft are essential. To fully understand Ugyae's academic works, one should study how Ugyae cultivates and practices rather than which theory he presents. Third, researchers should do study intensively and systematically rather than fragmentarily and sporadically. The Benti'lun(本體論, ontology) and Xin'xinglun(心性論, the theory of mind) are fundamental, but one also should focus on the subjects as follows: self-cultivation, statecraft, education, literature, and history. It is not merely a quantitative balance between issues; it is necessary to establish the direction or basis of Ugyae research to clarify the identity of Ugy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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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계 성혼과 우계학의 재조명 KCI 등재

최영성

우계문화재단 우계학보 제47호 2024.12 pp.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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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00원

우계(牛溪) 성혼(成渾: 1535∼1598)은 율곡 이이와 함께 동국십팔현(東國十八賢)의 한 사람으로 받들어지고 있다. 그런데 조선조는 물론 지금까지 우계는 율곡의 그늘에 가려 그 진면목이 제대로 드러나지 못하여 왔다. 우계는 율곡과의 성리학 논변을 통해 조선 성리학사를 의미 있게 장식하였음에도 그의 주장들은 율곡의 주장에 가려지거나 묻혀서 조명을 받지 못하였다. 또 우계의 학맥은 조선 후기까지 연면히 계승되어 율곡학파와 대비될 정도로 뚜렷한 학파를 이루었고, 나아가 조선 후기 사상사에서 영향력이 상당하였음에도, 율곡학파와 그 후예들에게만 초점이 맞추어져 우계의 학문 전통이 소홀하게 다루어져 왔다. 본고에서 ‘우계우계학 다시 보기’ 차원에서 우계 성혼의 성품과 학문 태도를 고찰하고 이를 기초로 우계학과 우계학파를 재평가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현재 학계에서는 ‘우계학’이란 명칭이 통용되고 있지만, 그 학문적 특성은 잘 드러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우계학파의 사상사적 의의’ 역시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본고와 관련하여, 우계학과 우계학파에 대한 재조명-재평가는 조선 후기 학술사와 사상사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본다.

Together with Yoolgok Yi Yi, Ugye(牛溪) Sung Hon (成渾: 1535∼1598) is one of the eighteen Confucian scholars representing Korea. Under the shadow of Yoolgok, however, Ugye has not yet been disclosed of his real worth till now as well as during the period of Chosun dynasty. Through the academic dispute of Neo-Confucianism with Yoolgok, Ugye meaningfully made the history of Chosun Neo-Confucianism. His arguments, however, have not been lighted up only because they were eclipsed or pressed by Yoolgok’s arguments. In addition, Ugye school’s scholarly lineage had been succeeded ceaselessly to the age late in Chosun dynasty, so that it grew up to a school clear enough to be contrasted with Yoolgok school. Furthermore, it largely influenced the history of thought late in Chosun dynasty. However, Ugye’s academic tradition has been little dealt with only the tradition and successors of Yoolgok school focused on. For such reasons set forth above, this study looks into the personality and academic attitude of Ugye Sung Hon in the dimension of ‘Reviewing of Ugye and Ugye Learning’ based on which this study further reassesses Ugye learning and Ugye school. Today the name ‘Ugye Learning’ is commonly used but its relevant academic characteristics is little exposed. ‘The meaning of Ugye school in the history of thought’ is also not yet fully studied. Based on this study, reexamination and reassessment of Ugye learning and Ugye school are required to understand the history of academy and thought.

3

우계(牛溪) 성혼(成渾)의 산야의 경물 KCI 등재

유육례

우계문화재단 우계학보 제48호 2025.06 pp.6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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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00원

이 연구의 목적은 우계 성혼이 쓴 『우계집(牛溪集)』에 서술된 자연 이미지를 분석해 보고자 한다. 그는 성리학의 도와 삶의 지혜를 자연 이미지로 표현했다. 『우계집』의 자연시는 그가 개인 수양의 결과로 군자로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인생의 길을 제시한 시이다. 그는 자연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이러한 결과를 완성했다. 우계의 자연시는 산의 경물, 시냇가의 경물, 파산의 경물로 구성되었다. 산의 경물에서는 산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수양과 절개, 도학적 지향을 구현하는 상징적 공간으로 묘사된다. 시냇가의 경물에서는 맑고 고요하게 흐르는 시냇물이 선비가 지향한 청렴한 삶과 순수한 마음가짐을 상징화한다. 파산의 경물에서는 파산에 대한 정겨운 감정을 담아 경치를 묘사하고, 육체적 고통을 이겨내며 정신적 성장을 이루는 공간이다. 우계는 조선시대 선비와 군자의 삶을 존중하면서도,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성리학의 원리를 바탕으로 한 현실적 지혜를 추구했다. 그의 학문은 가정에서 비롯되었으며, 타고난 자질은 도(道)에 가까웠다. 그가 존경한 인물은 조광조와 이황이었다. 그는 군주를 사랑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을 지녔으며, 성리학적 사유를 통해 삶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얻고 이를 실제 삶에서 실천했다. 우계는 치인을 통해 얻은 지혜를 깊이 이해하고, 그것을 일상에 녹여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삶을 살았다. 그는 성리학적 사유와 실천을 결합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삶의 방식을 창조하였으며, 이를 『우계집』에 기록함으로써 자신의 삶과 위기지학(爲己之學)을 실천할 것을 후세에 전하고자 했다. 그는 자연을 사색의 대상과 인간의 도를 실천할 수 있는 공간으로 여겼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analyze the natural imagery described in The Collected Works of Ugye (Ugyejip) by Seong Hon (Ugye). He expressed the principles of Neo-Confucianism and practical wisdom for life through representations of nature. Ugye's nature poetry reflects his moral cultivation, presenting the path of life in harmony with nature as a virtuous scholar. His profound engagement with nature formed the foundation for these literary expressions. Ugye’s nature-themed poetry can be categorized into three groups: the scenery of mountains, streams, and Mount Pasan. The mountain imagery not only portrays natural beauty but also serves as a symbolic space for self-cultivation, integrity, and Confucian ideals. The stream imagery represents purity and tranquility, symbolizing the clean and upright life sought by a Confucian scholar. The scenery of Mount Pasan conveys Ugye’s deep affection for the place, while depicting it as a space where physical suffering is overcome and spiritual growth is achieved. While respecting the traditional lives of Joseon-era Confucian scholars and gentlemen, Ugye also pursued a unique perspective grounded in Neo-Confucian principles and practical wisdom. His intellectual foundation began at home, and his innate character aligned naturally with the Way (dao). He revered thinkers such as Jo Gwang-jo and Yi Hwang, and was deeply committed to serving his country and its ruler. Through Neo-Confucian thought, he attained profound insight into life and faithfully practiced those ideals. Ugye internalized the wisdom gained from governance and applied it effectively in his daily life. By integrating Neo-Confucian theory and practice, he forged his own distinctive way of living, which he recorded in Ugyejip to convey his philosophy and way of life to future generations. Nature, for Ugye, was a subject of contemplation and a space where the Way could be realized—a realm in which the virtues of a true Confucian gentleman were lived and embodied.

4

16세기 도학파의 인간 이해와 한국유학의 과제

이상성

우계문화재단 우계학보 제39호 2020.12 pp.103-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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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한국철학 및 한국유학은 우리 학계의 주류에서 밀려나 있다. 21세기 한국의 학자들은 거의 대부분 서구에서 비롯된 학문이나 내용을 전공하거나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서구 학문 중심의 한국 현실에서 전통철학이나 사상, 종교 등에 관심을 가지기라도 하면 시간과 노력의 낭비로 여기는 분위기다. 우 리 학문 풍토는 갈수록 서구 일변도로 고착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은 여전히 유교적인 생활 방식이나 의식 세계 속 에 살고 있다. 유교 혹은 전통철학은 청산해야할 과거가 아니다. 역사적으로 유교는 이론 보완의 과정을 거쳐 왔다. 이론 보완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조선조의 정치와 교육의 이념이 되었던 성리학을 들 수 있다. 성리학은 인간의 심성에 대해 고도의 철학적 논리를 보완하였다. 특히 조선조의 성리학자들은 세계 역사상 인간의 본질에 관해 가장 빛나는 철학적 탐구 성과를 이룩해 내었다. 우리는 다른 나라가 갖지 못한 보물 같은 철학자들을 갖고 있는 것이다. 정암 조광조, 퇴계 이황, 율곡 이이, 우계 성혼 같은 성리학자들이 가장 대표적인 이론을 제시하였다. 16세기 이들 한국의 도 학파 학자들은 철학적으로 인간의 본성과 감정에 대해 세계 최고 수준의 담 론을 도출해 낸 바 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최고 지도자를 완성된 인격체로 인도하였고, 자기 집안일을 하듯 국가를 위해 헌신하였다 . 무엇보 다 이들은 인간의 덕성에서 진리의 보편적 가치를 찾아냈다. 이들은 한결같이 성숙된 인간의 완성을 최고의 학문적 가치로 여기고 추구하였다. 이들은 또한 이들은 공통적으로 모든 인간이 개인의 현실적 욕구보다는 타고난 선한 본성 을 믿고 확충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들은 우리 역사상 가장 자각적인 삶의 길을 걸었다. 유학 성리학 은 지금도 한국인의 혈맥을 흐르고 있다. 성리학이 완전한 사상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이룬 학문적 성취는 무엇보다 현대인들이 당면하고 있는 많은 과제에 대해 좋은 해결책을 제시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현대사회는 ‘인간’ 자체가 심각한 위기에 직 면해 있다. 인간 자체의 본질과 가치가 물질에 의해 심각하게 훼손되거나 소 외를 받고 있다. 정상적인 인간관계가 무너지고 가족도 해체되는 속도가 빠 르다. 현대 문명의 흐름을 주목해 볼 때, 한국 성리학의 빛나는 성과는 미래 적 가치가 있다. 그것에 대한 새로운 접근 재조명 이 중요한 과제로 부상할 날이 멀지 않았다.

Today, Korean philosophy and Korean Confucianism are pushed out of the mainstream of our academic world. This is because almost all Korean scholars in the 21st century are majoring or teaching academics or contents that originate from the West. In the reality of Korea where Western academics prevail, having interest in traditional philosophy, thoughts or religion is considered a waste of time and effort. Our academic climate is getting more and more solidified to become wholly devoted to the West. Nevertheless, Koreans are still living in a Confucian way of life and consciousness. This Confucianism or traditional philosophy is not the past that has to be put behind. Historically, Confucianism has been going through a process of theoretical supplementation. The most representative example of this the theoretical supplementation is Neo-Confucianism, which had become an ideology of politics and education during the Joseon Dynasty. Neo-Confucianism complemented the highly philosophical logic for human mind. Particularly, Neo-Confucian scholars of the Joseon Dynasty have achieved the most brilliant results of their philosophical exploration on human nature and emotions in world history. It can be said that Korea have philosophers like treasures that no other country has. In the 16th century, Neo-Confucian scholars such as Jeong-am CHO Gwang-jo, Yul-gok YI I, and Woo-gye Seong Hon suggested the most representative theories. In common, they assisted the supreme leader (king) to become a man with complete personality and devoted themselves as if they were doing their housework ( , Patriotism through Loving People and Caring for Homeland). Most of all, they found the universal value of truth in human virtue. Thus, they regarded the completion to a mature human being as the highest value of learning. In addition, they also emphasized that all humans must believe in their innate good nature rather than individual’s realistic desire and live a life that expands such nature. These figures have lived the most self-aware lives in our history. Confucianism (Neo-Confucianism) still runs in the blood of Koreans. Although it is difficult to say that Neo-Confucianism is a complete body of thoughts, its academic achievements can provide some quality solutions to many challenges that we contemporary people are facing now. Above all, in modern society, ‘human’ itself is facing a serious crisis where the nature and value of mankind are severely damaged and marginalized by material. Normal human relationships are collapsing and families are disorganized at a rapid pace. Given the trend of modern civilization, brilliant achievement of Korean Neo-Confucianism possesses potential future value. It won’t be long before a new approach to it emerges as an important task.

5

율곡의 인간 이해에 대한 일고찰 KCI 등재

임헌규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24집 2012.08 pp.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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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00원

조선조에서 16세기는 성리학의 이론적 정착기였다. 그런데 성리학을 이론적으로 완성하는 데에 있 어서는 사단-칠정, 인심-도심과 같은 개념에 대한 이기론적 정초가 요구되고 있었다. 이 문제에 대 해서는 우선 퇴계와 고봉이 ‘四端七情論爭’을 통해 그 실마리를 제공했다. 퇴계와 고봉의 논쟁을 지 켜본 우계는 이제 인심과 도심의 문제를 이기론과 연관하여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율 곡에게 제기하였다. 우계의 질문에 대해 율곡은 화담의 主氣論, 퇴계의 互發說 및 主理論, 그리고 整菴의 理氣渾淪說 등을 비판적으로 극복하고, ‘理通氣局說’, ‘氣發理乘一途說’, ‘人心道心終始說’, ‘ 心性情意一路說’ 등을 내세우며, 주자의 이기론 및 인심도심설을 창의적으로 재구성하여 제시하였 다. 이러한 율곡의 인심도심설에 대한 이기론적 정립과 그 의의를 살펴보려는 이 논문은 우선 문제의 인심도심논쟁이 있게 된 배경으로 주자의 인심도심설이 지니는 한계와 우계의 질문을 살펴보는 것 으로 출발하여, 율곡의 이 문제에 대한 이기론적 해명과 정당화를 살펴보았다. 그런 다음 우리는 율 곡의 인성론이 지니는 철학적, 인성론적 의미를 탐색해 보았다. 여기서 우리는 율곡의 이론을 인간 본성에 대한 이론은 1) 인간 본성의 내용, 2) 보편적 인간 본성과 현실적 인간의 차이 규명, 3) 인간 의 내적 갈등, 그리고 4) 인간본성과 인류의 관계(政體) 등에 대한 해명으로 확대하여 살펴보면서 그 해석을 시도하였다.

This article discusses Yulgok's' Theory of Mind-Body Relation and Theory of the human mind and moral mind. The Counsels of the Great YU of The Shoo King written : the Human mind is restless, - prone to err, the Moral mind small. Be discriminating, be undivided, that you may sincerely hold fast the Mean. ChuHsi(1130-1200)'s the Theory of the human mind and moral mind is based on Tradition of Tao. ChuHsi insists that the human mind is to be controlled by the moral mind. Yulgok(1536- 1584) had developed and advanced ChuHsi's the Theory of the human mind and moral mind on the bases of Li-Ki. Yulgok argument that the human mind and moral mind coexist as a servant and a master. Yulgok's's account, each concrete event and thing falls under two level, called LI and KI. mind & body are two aspects of a single event and thing. Mind as distinguished KI is difined by it's intentionality and presidency. Yulgok's theory of mind & body relation differs from the R. Descarete's theory of two subst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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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溪 性理學의 哲學的 脈絡과 指向點

김현수

우계문화재단 우계학보 제39호 2020.12 pp.5-30

...우계 성혼의 성리학을 고찰하는 것이 목적이다. 기존의 많은 연구 물들이 있지만, 아직까지 퇴계와 율곡 성리학에서 벗어나 우계 성리학의 특징 을 확고히 드러내는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이에 필자는 어떻게 하면 우계 성리학의 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두면서, 율곡과 논 쟁의 성격과 우계가 추구한 입장이 무엇인지, 우계가 강조한 인심⋅도심의 양 변설에 대한 주자 이후 남송⋅원대 학자들의 입장이 어떠했는지, 율곡과 논쟁 하기 전의 우계가 추구하던 학문의 방향성이 무엇이었는지를 분석하였다. 이러한 접근을 통해서 우계 성리학에 대한 몇 가지 유의미한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첫 번째는 우계 성리학은 남송 이후 성리학의 기본 흐름을 계승하 고 있으며, 도덕적 자아완성에 목표를 두면서 수양론⋅공부론을 중시했다는 특징을 지닌다. 두 번째는 우계는 남송 말⋅원대 정립된 인심⋅도심, 사단⋅칠정을 이기로 분속시키려는 사유를 수용⋅긍정하면서, 퇴계⋅율곡에 의해 부각된 이기론적 세계관과 모순된 철학적 상황에 직면하였다. 세 번째는 이러 한 조선 성리학의 상황에서 우계는 심성론⋅수양론의 영역과 이기론 영역의 상호성을 유지하면서도 도덕적⋅윤리적 측면을 우선하려는 입장을 취하였다. 이 세 가지 점들은 우계 성리학 이해에 중요한 기초를 제공해주며, 향후 학문 의 차별성⋅독자성을 확립하는 데에 주요한 방향성을 제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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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우계 성혼의 성리학을 고찰하는 것이 목적이다. 기존의 많은 연구 물들이 있지만, 아직까지 퇴계와 율곡 성리학에서 벗어나 우계 성리학의 특징 을 확고히 드러내는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이에 필자는 어떻게 하면 우계 성리학의 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두면서, 율곡과 논 쟁의 성격과 우계가 추구한 입장이 무엇인지, 우계가 강조한 인심⋅도심의 양 변설에 대한 주자 이후 남송⋅원대 학자들의 입장이 어떠했는지, 율곡과 논쟁 하기 전의 우계가 추구하던 학문의 방향성이 무엇이었는지를 분석하였다. 이러한 접근을 통해서 우계 성리학에 대한 몇 가지 유의미한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첫 번째는 우계 성리학은 남송 이후 성리학의 기본 흐름을 계승하 고 있으며, 도덕적 자아완성에 목표를 두면서 수양론⋅공부론을 중시했다는 특징을 지닌다. 두 번째는 우계는 남송 말⋅원대 정립된 인심⋅도심, 사단⋅칠정을 이기로 분속시키려는 사유를 수용⋅긍정하면서, 퇴계⋅율곡에 의해 부각된 이기론적 세계관과 모순된 철학적 상황에 직면하였다. 세 번째는 이러 한 조선 성리학의 상황에서 우계는 심성론⋅수양론의 영역과 이기론 영역의 상호성을 유지하면서도 도덕적⋅윤리적 측면을 우선하려는 입장을 취하였다. 이 세 가지 점들은 우계 성리학 이해에 중요한 기초를 제공해주며, 향후 학문 의 차별성⋅독자성을 확립하는 데에 주요한 방향성을 제공할 것이다.

This paper is research for Ugyae(牛溪) Seong Hon( , 1535∼1598)'s the characteristics of Neo-confucianism. There are many studies of Ugyae's Neoconfucianism, but I think they have not yet reached the stage of research that reveals the identity of Ugyae's Neo-confucianism, away from the structure of Toegye( ) and Yulgok( )'s Neo-Confucianism. Focusing on how to secure the perspective and position of Ugyae independently, I analyzed the nature of the debate with Yulgok and what Ugyae's position, the Southern Song and The Yuan Dynasty's Neo-Confucianist's understanding about theory of dichotomy between Human-Mind and Morality-Mind what Ugyae was emphasizing, and what Ugyae was pursuing before the debate with Yulgok. This approach led to several conclusions, it is as follows. First, Ugyae's Neo-Confucianism has inherited the basic flow of Neo-Confucianism since the Southern Song Dynasty, and he has emphasized the theory of Self-Culture. Second, Ugyae was in a philosophical situation that contradicted Li( ) & Qi ( )'s worldview that emerged after Yi Hwang, accepting and affirming thought Separate Understanding of Four Clues( ), Seven Emotions( ) and Human-Mind( ), Morality-Mind( ) by Li & Qi. Third, it was an important feature of Ugyae's Neo-Confucianism that emphasizing the field of moral and self-culture on the position of maintaining mutuality between The Theory of Self-Culture and The Theory of Li & Q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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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分堂 權逵 가문의 道學 수용과 실천 KCI 등재

김낙진

우계문화재단 우계학보 제47호 2024.12 pp.89-114

...성리학의 수용은 역사적 환경의 조성과 권력의 필요에 의해 이루어졌다. 처음에 과거의 전통에 익숙했던 사람들은 신문명과 모순적인 행태를 보이며 이중인격적인 삶을 살았고, 구문명과 신문명을 습합하는 절충적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점차 성리학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자, 그것에 동의하고 실천하며 인격화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자 착근이 이루어졌다. 단성에 살았던 권규와 그의 후손들은 이 문명의 교체과정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본고는 그들이 성리학의 정신 중 무엇에 공감하고, 세계관 형성의 단서로 삼았으며, 인격의 핵심으로 수용하는지의 과정을 밝히고자 한다. 권규는 타인에 의해 성취가 좌우되는 세속적 가치를 버리고 자기 의지에 의해 실현 여부가 결정되는 인격적 가치를 지향하였다. 그것은 본능적 욕망의 즉각적 충족을 추구하는 대신, 유교가 제시한 문명화된 방식에 따라 욕구를 충족하는 지속가능한 방식이었고, 이에 맞추어 인격을 가꾸고자 하였다. 이것이 안분의 철학으로 표출되자, 이것을 계승한 후손들은 도학의 정신에 침잠하였다. 가풍으로 정착한 이 태도는 권규의 각성과 함께 진주문화권의 우뚝한 인물이었던 조식의 영향에 의해 성립했다. 그 배움을 일상에서 실천하려 하였기에, 생활은 변화하고 지향하는 인격상도 변했다. 도덕성 그 자체를 순수하게 지향하는 도학의 정신이 생활화됨으로써 3세대 8명의 자취로 상징되는, 三綱의 실천자들을 단기간에 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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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학의 수용은 역사적 환경의 조성과 권력의 필요에 의해 이루어졌다. 처음에 과거의 전통에 익숙했던 사람들은 신문명과 모순적인 행태를 보이며 이중인격적인 삶을 살았고, 구문명과 신문명을 습합하는 절충적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점차 성리학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자, 그것에 동의하고 실천하며 인격화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자 착근이 이루어졌다. 단성에 살았던 권규와 그의 후손들은 이 문명의 교체과정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본고는 그들이 성리학의 정신 중 무엇에 공감하고, 세계관 형성의 단서로 삼았으며, 인격의 핵심으로 수용하는지의 과정을 밝히고자 한다. 권규는 타인에 의해 성취가 좌우되는 세속적 가치를 버리고 자기 의지에 의해 실현 여부가 결정되는 인격적 가치를 지향하였다. 그것은 본능적 욕망의 즉각적 충족을 추구하는 대신, 유교가 제시한 문명화된 방식에 따라 욕구를 충족하는 지속가능한 방식이었고, 이에 맞추어 인격을 가꾸고자 하였다. 이것이 안분의 철학으로 표출되자, 이것을 계승한 후손들은 도학의 정신에 침잠하였다. 가풍으로 정착한 이 태도는 권규의 각성과 함께 진주문화권의 우뚝한 인물이었던 조식의 영향에 의해 성립했다. 그 배움을 일상에서 실천하려 하였기에, 생활은 변화하고 지향하는 인격상도 변했다. 도덕성 그 자체를 순수하게 지향하는 도학의 정신이 생활화됨으로써 3세대 8명의 자취로 상징되는, 三綱의 실천자들을 단기간에 배출했다.

The acceptance of Neo-Confucianism was made by the creation of the historical environment and the needs of government power. At first, people who were accustomed to the past traditions showed contradictory behavior with the new civilization, living with a double personality, and sometimes combining the old civilization with the new civilization. As the understanding of the new civilization gradually deepens, the number of people who were purely immersed in the new civilization increased. When the number of people who agree and put into practice and personify increased and formed a group, rooting occurs. Kwon Gyu and his descendants, who lived in Danseong, were a good example of the change of civilization. This article is an attempt to pay attention to the process of sympathizing with the spirit of Neo-Confucianism, taking it as a clue to forming a worldview, and accepting it as a personality. Kwon-gyu abandoned the secular values ​​that depend on the powers and pursued moral values ​​those realization is determined by individual will, and his descendants inherited that spirit. While they still hoped to advance to the official position, the tradition of the family, they tried to live a life suitable for the responsibilities demanded by Tao Xue. This attitude was established under the influence of Cho Sik, who was a prominent figure in the Jinju cultural area, with Kwon Gyu's awakening. Because they tried to put that learning into practice in their daily life, their lives changed and their personality changed as well. As the spirit of Tao Xue, which aims for the purity of morality itself, was brought to life, they produced eight people who practiced Three Fundamental Principles in three generations. As the grains of wheat sprouted, Confucian civilization settled in Dans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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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張載)와 이정(二程)의 학술동이 : 「洛陽議論」의 ‘窮理盡性以至於命’을 중심으로 KCI 등재후보

황태현

우계문화재단 우계학보 제43호 2022.12 pp.245-272

...성리학의 성립기로 북송도학군체라고 할 수 있는 장재, 사마광, 정호, 정이, 소옹 등을 중심으로 다양한 철학적 논의가 전개되었다. 장재와 이정는 긴밀하게 교류하며 다양한 주제에 대해 토론했다. 『이정유서』 권10의 「낙양의론」은 이들 간의 학술교류 중 『정성서』, 『답횡거선생서』와 함께 문헌으로 남아있는 가장 의미 있는 기록 중의 하나이다. 「낙양의론」에서 논의된 다양한 주제 중 『역』의 “궁리진성지어명”에 대한 토론은 가장 철학적 내용을 담고 있으며, 장재와 정호, 정이 삼자 간의 본체과 공부에 대한 입장차이를 잘 보여준다. 이정의 철학체계에서 천하 만물의 리는 하나의 리이며, 도, 명, 성 등의 본체범주들과 내용적으로 동일하다. 성즉리의 명제는 이정의 이러한 관점을 잘 반영한다. 이러한 관점 위에서 궁리=진성=지어명, 지어명=지천명이라는 이해가 성립할 수 있다. 그러나 장재철학체계에서 리는 사물의 이치(事理), 개별 사물의 고유속성, ‘기화과정 중에 존재하는 고유한 질서’일뿐이다. 따라서 기화과정 속에서 개별 사물이 가지게 되는 특성은 개별사물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만 체득가능하다. 따라서 사물, 사람의 리에 대한 궁구, 나아가 사물과 사람의 본성을 다함의 과정을 통해서만 ‘명’에 이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장재와 이정형제가 “궁리진성지어명”이라는 『역』「사전」의 명제를 두고 진행한 학술교류는 본인들의 철학체계를 더욱 엄밀하게 하는데 그치지 않고, 이후 낙학과 관학이 하나의 흐름 속에서 발전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으며. 또한 여기서 논의된 범주들이 모두 이후 성리학의 핵심적인 범주로 발전함으로써 성리학 발전의 기초를 다졌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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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송은 성리학의 성립기로 북송도학군체라고 할 수 있는 장재, 사마광, 정호, 정이, 소옹 등을 중심으로 다양한 철학적 논의가 전개되었다. 장재와 이정는 긴밀하게 교류하며 다양한 주제에 대해 토론했다. 『이정유서』 권10의 「낙양의론」은 이들 간의 학술교류 중 『정성서』, 『답횡거선생서』와 함께 문헌으로 남아있는 가장 의미 있는 기록 중의 하나이다. 「낙양의론」에서 논의된 다양한 주제 중 『역』의 “궁리진성지어명”에 대한 토론은 가장 철학적 내용을 담고 있으며, 장재와 정호, 정이 삼자 간의 본체과 공부에 대한 입장차이를 잘 보여준다. 이정의 철학체계에서 천하 만물의 리는 하나의 리이며, 도, 명, 성 등의 본체범주들과 내용적으로 동일하다. 성즉리의 명제는 이정의 이러한 관점을 잘 반영한다. 이러한 관점 위에서 궁리=진성=지어명, 지어명=지천명이라는 이해가 성립할 수 있다. 그러나 장재철학체계에서 리는 사물의 이치(事理), 개별 사물의 고유속성, ‘기화과정 중에 존재하는 고유한 질서’일뿐이다. 따라서 기화과정 속에서 개별 사물이 가지게 되는 특성은 개별사물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만 체득가능하다. 따라서 사물, 사람의 리에 대한 궁구, 나아가 사물과 사람의 본성을 다함의 과정을 통해서만 ‘명’에 이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장재와 이정형제가 “궁리진성지어명”이라는 『역』「사전」의 명제를 두고 진행한 학술교류는 본인들의 철학체계를 더욱 엄밀하게 하는데 그치지 않고, 이후 낙학과 관학이 하나의 흐름 속에서 발전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으며. 또한 여기서 논의된 범주들이 모두 이후 성리학의 핵심적인 범주로 발전함으로써 성리학 발전의 기초를 다졌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Northern Song Dynamic was the founding period of Neo-Confucianism, and various philosophical discussions were held around Zhang-Zai, Sima-Guang, Cheng-Hao, Cheng-Yi, and Shao-Yong, which can be called the Northern Song School District. Zhang-Zai and the Cheng brothers interacted closely and discussed various topics. 『Two Cheng's posthumous note(二程遺書)』 volume10's 「Luo Yang's Comments(洛陽議論)」 is one of the most meaningful records remaining in the literature along with 『Ding-Xing-Shu(定性書)』 and 『Reply to Mr. Hengqu』 among the academic exchanges between them. Among the various topics discussed in 「Luo Yang's Comments」 the discussion on “Investigating the Li(理) and fulfill one’s Nature(盡性), reach the mandate of heaven(窮理盡性至於命)" of 『Zhou-yi(周易)』 contains the most philosophical content, and shows the position of thinking-in-its-self-life between Zhang-Zai and Cheng-Hao, Cheng-Yi. In Two Cheng's philosophical system, the "li(理)" of all things is same“li(理)”, and is contentally identical to the "thing-in-itself" categories such as “Dao”, the “mandate of heaven” and “human nature”. The proposition of “Human Nature is Principle(性卽理)” reflects this view of Two Cheng's. From this point of view, an “Investigating the Li(理)”=“Exploitative Innate Nature”=“reach the mandate of heaven” can be established. However, in the Zhang-Zai’s Philosophy System, it means the reason of things, the inherent attributes of individual objects, and the unique order that exists during the ‘functional activity of qi(氣化)’ process. Therefore, the characteristics of individual objects in the functional activity of qi process can be learned only through research on individual objects. Therefore, that “the mandate of heaven(命)” can be reached only through research on the ‘Li’ of things and people, and furthermore, through the process of fulfilling the nature of things and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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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성리학자 趙晟의 養生論

안은수

우계문화재단 우계학보 제37호 2019.12 pp.123-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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儒家지향은 인간이 마땅히 가야 할 길을 걷자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본 성 에 따라 가는 길, 곧 이다. 유학의 수양론은 이 도에 따르는 것을 그 내용으로 한다. 당연히 수양론은 유가에게 가장 중요한 이론이다. 성리학자들 은 이러한 선진유학의 개념을 理氣論으로 설명하였다. 본성은 리’와 일치하고 본성을 내재한 인간의 몸은 기를 대표한다. 이 둘은 서로 떨어지지 않는 요소 로서 인간을 구성한다. 내외가 소통할 수 있는 구조로 인간을 설명하였던 것 이다. 은 이러한 구조를 이해하고 그 소통을 주관할 수 있는 역량이다. 그러니까 심의 강화 를 통해 본성의 확보가 가능하고, 본성에 따르는 삶은 가장 이상적인 현실을 결과할 수 있다. 내적 외적 건강을 보장받는 일이 다. 이것이 성리학자들이 수양의 목적으로 삼는 지점이다. 은 주어진 생 명을 잘 보존하고 회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런데 성리학자들이 말하는 양생은 신체의 건강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본성에 따르는 삶이어야 신체의 건강도 가능해진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따라서 양생을 위한 첫걸음은 마음의 능 력을 강화하는 일이다. 이렇게 보면 성리학자들이 파악한 양생은 단순히 신체의 단련에 중점이 있 는 것이 아니었다. 심신의 수양을 통한 본성의 확인으로 가는 공부 전체를 아우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신체의 건강은 자연스럽게 동반된다. 결국 조성을 포함한 성리학자들이 이해했던 양생은 의 단련을 겸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성리학자들은 늘 을 위한 을 의 골자로 천명한 다. 그리고 심을 단련하는 공부는 정신 뿐 아니라 신체의 건강과도 밀접 한 연관을 갖는다. 그러므로 수양은 곧장 양생으로 직결된다고 보았다. 여기 서 우리는 수양과 양생을 통일적으로 바라보았던 그들의 관점을 읽을 수 있다. 이런 특징을 ‘내외합일의 양생론’이라 표현해 보았다. 이글에서는 특히 16세기 조선의 성리학자인 조성의 경우를 예로 들어서 이 런 맥락을 살펴보았다. 조성(1492∼1555)은 조광조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힌 성 리학자이다. 조성에 관한 많지 않은 기록의 대부분은 그가 의학, 음악, 천문학 등의 다양한 이론에 정통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는 성리학을 공부한 유학자 이며 그 자취는 『養心堂集』에서 확인할 수 있다. 조성은 조선시대 사상사에서 거의 다루어진 적이 없는 인물이나 16세기 조선 지식인의 한 특징을 보여주 는 흥미로운 인물이다. 그의 학문적 위상은 이황과 같은 당대의 거유와 교유 하였던 것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Confucian philosophers aimed for the way which human beings should take. This is the way of human nature ‘In’ , that is to say, Tao ]. Following Tao was the essential of the theory of self-discipline in Confucianism. Self-discipline was naturally the most important to Confucian philosophers. In the later period, Neo-Confucian scholars explained the self-discipline theory of the fundamental Confucianism by Lichi theory . Human nature corresponds to Li, and the human body where the nature inheres represents Chi. Li and Chi are two constituents of a human being inseparable from each other. This scheme was to explain the human being in terms of the communication of inside and outside. Shim is the capacity of understanding and organizing such communication. Consequentially, human nature can be acquired through the training of Shim ‘Yang shim’ , and following the nature may result in the ideal life. This is the way which guarantees inside and outside health, and is the very goal of the self-discipline of Neo-Confucian scholars. The purpose of Yang Shang is to preserve and restore given life. Neo-Confucian scholars did not limit Yang Shang to physical health. They believed that physical health cannot be acquired without living according to nature. Accordingly, the first step towards Yang Shang is strengthening the capacity of Shim. Thus, Yang Shang of Neo-Confucian scholars did not focus on physical training but covered the entire process of learning which aimed for acquiring nature through mental and physical self-discipline. The physical health is naturally included in this process. As a result, Neo-Confucian scholars including Jo Sung understood Yang Shang as training of both inside and outside. For this reason, they always taught that Yang Shim aimed for Yang Sung was the essential of self-discipline . Yang Shim, the training of Shim, is closely related to both physical and mental health. In this context, the self-discipline was regarded as being directly connected to Yang Shang. We can see the unitary perspective of Neo-Confucian scholars for self-discipline and Yang Shang. Such a perspective may be expressed as the theory of physical and mental health uniting inside and outside. This paper has focused on Jo Sung, who is a Neo-Confucian scholar of the Joseon Dynasty in 16th century, to examine the theory of self-discipline. Jo Sung (1492∼1555) was a disciple of Jo Gwang-jo. There are only a few remaining documents that describe Jo Sung. Most of them describe him as well-acquainted with various areas including medicine, music and astronomy. However, he was basically a Confucian scholar in the time of Neo-Confucianism. Yang shim dang gip shows his trace and thought as a Confucian scholar. Although Jo Sung has been little dealt with by the studies in the history of ideas of the Joseon Dynasty, he is a very interesting figure displaying a characteristic of the scholars in 16th century Joseon. His academic status can be estimated from the fact that he held social intercourse with great scholars such as Yi hw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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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봉 민정중의 생애와 예론禮論 연구

김준태

우계문화재단 우계학보 제38호 2020.06 pp.27-50

...성리학의 형이상학적 문제들을 다루지는 않았지만 예학 분야에 중 요한 발자취를 남겼다. 아버지가 폐질 에 걸려 손자가 할아버지의 상 을 대신 주관할 때 어떤 상복을 입어야 하는지(민신 ‘대복 ’ 사건), 입후 한 뒤에 친자가 태어날 경우 계후자 의 위상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왕비의 상에 왕은 어떤 상복을 입어야 하는지 등 당시 예학 관련 주요 이슈들에 대해 민정중은 본인의 논리를 개진하며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러한 민정중에 대 한 연구는 현재 그에 관한 선행연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 해당 예 문제 에 대한 연구가 미진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아울러 17세기 후반 고위 관 료들의 현실인식과 정책대응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판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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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후반 조선의 정치가 노봉 민정중은 중앙정계와 사림 양쪽에서 모두 큰 비중을 차지했던 인물이다. 탁월한 경세 관료였던 그는 제도개혁과 백성 구휼 업무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또한 그는 송시열과 송준길의 제자로서, 비록 성리학의 형이상학적 문제들을 다루지는 않았지만 예학 분야에 중 요한 발자취를 남겼다. 아버지가 폐질 에 걸려 손자가 할아버지의 상 을 대신 주관할 때 어떤 상복을 입어야 하는지(민신 ‘대복 ’ 사건), 입후 한 뒤에 친자가 태어날 경우 계후자 의 위상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왕비의 상에 왕은 어떤 상복을 입어야 하는지 등 당시 예학 관련 주요 이슈들에 대해 민정중은 본인의 논리를 개진하며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러한 민정중에 대 한 연구는 현재 그에 관한 선행연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 해당 예 문제 에 대한 연구가 미진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아울러 17세기 후반 고위 관 료들의 현실인식과 정책대응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판단한다.

Nobong Min Jeong-jung (1638-1692), a politician of Joseon in the late-17th century has a great importance in both the central political world and the ruling class called Sarim. As an excellent administrator, he successfully led the reform of the system and the relief of the people. In addition, as a disciple of Song Si-yeol and Song Jun-gil, he left important traces in the field of the theory of Li (rites), though he did not deal with the metaphysical problems of Neo-Confucianism. Concerning the important issues related to the theory of Li at the time, such as 1) What mourning dress a grandson should put on when the father cannot supervise the grandfather’s funeral rites; 2) What position an adopted son should take when a biological is born after the adoption for carrying on a family line; and 3) What mourning dress a king should put on when a queen dies, Min Jeong-jung actively participated in the debates, suggesting his own theory. This study of Min Jeong-jun has a significance that there is no preceding study of him and there is insufficient research on the issue of Li. Along with this, this study would be helpful for the understanding of reality in high-rank bureaucrats in the late-17th century and their corresponding polic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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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담 서경덕의 이기론(理氣論) 연구 - 하곡 정제두와 관련하여

최일범

우계문화재단 우계학보 제38호 2020.06 pp.5-25

...성리학의 이기론이 현대에서도 유의미함을 확인하기 위해서 최 근 이태리에서 있었던 교황과 언론인 스칼파리의 대화를 인용한다. 이어서 하곡 정제두의 해석을 통해서 화담의 철학사상을 이기합일(理氣合一) 또는 이기불리(理氣不離)의 본체론으로 해석해야 함을 논증하여, 화담의 철학을 유기 론(論 )이나 기일원론(氣一元論)으로 보는 일반적 해석을 비판하고, 이와 차별화해야 함을 주장할 것이다. 하곡은 의지(志)와 기(氣)가 상호 전화(轉化) 가능한 근거를 “이기불상리지묘”(理氣不相離之妙 ), 즉 이기(理氣)의 일원(=합일)적 구조로 보고, 화담의 본체론(=이기론) 역시 이런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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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화담 서경덕의 이기론에 대한 연구는 기일원론(氣一元論) 또는 유기론(唯氣論)이라는 견해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필자는 이런 견해에 문제를 제기한 바 있는데, 이 논문에서는 조선의 양명학자인 하곡 정제두가 화담의 이기론에 대해서 밝힌 견해를 분석함으로써 필자의 기존 주장을 재확인하고 자 한다. 먼저 성리학의 이기론이 현대에서도 유의미함을 확인하기 위해서 최 근 이태리에서 있었던 교황과 언론인 스칼파리의 대화를 인용한다. 이어서 하곡 정제두의 해석을 통해서 화담의 철학사상을 이기합일(理氣合一) 또는 이기불리(理氣不離)의 본체론으로 해석해야 함을 논증하여, 화담의 철학을 유기 론(論 )이나 기일원론(氣一元論)으로 보는 일반적 해석을 비판하고, 이와 차별화해야 함을 주장할 것이다. 하곡은 의지(志)와 기(氣)가 상호 전화(轉化) 가능한 근거를 “이기불상리지묘”(理氣不相離之妙 ), 즉 이기(理氣)의 일원(=합일)적 구조로 보고, 화담의 본체론(=이기론) 역시 이런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

Until recently, the dominant view of interpreting Hwadam(花潭) Seo Gyeongdeok (徐敬德)’s theory of li 理 (Principle) and qi 氣(material force) is that he argues material force-monism or theory of material force. I have already criticized this view before. This paper tries to refocus my view by analyzing Hagok (霞谷) Jeong Jedu (鄭齊斗)’s view on Seo Gyeong-deok’s theory of Principle and material force. First of all, to show contemporary significance of Neo-Confucian Principle material force paradigm, I review the conversation between Pope Francis and Eugenio Scalfari that took place recently in Italy. And I, based on Jeong Jedu’s interpretation, argue that Seo Gyeong-deok’s philosophy should be interpreted as a view that principle and material force cannot be separated each other. So I will show that Seo Gyeong-deok’s philosophy should not be interpreted as material force- monism(氣一元論). Jeong Jedu thought that the interaction between will(志) and material force is based on the structure that unites principle and material force, and that Seo Gyeong-deok’s theory of principle and material force should also be understood as such a struc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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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溪性理學의 理解(退溪, 高峰, 栗谷과의 比較的 觀點에서)

黃義東

우계문화재단 우계학보 제7호 1992.08 pp.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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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 양명학 관련 문헌의 수용 양상 - 16세기를 중심으로 - KCI 등재

김시내, 송정숙

한국서지학회 서지학연구 제71집 2017.09 pp.297-321

...성리학에 대한 이해가 심화되고 다양한 차원의 논의가 시도되던 때이다. 사화와 반정으로 기존의 성리학적 가치관에 대한 반성과 새로운 모색이 시도되면서 양명학 수용이 가능하였고, 동시에 성리학이 국가통치 이념으로 강화됨에 따라 양명학도 비판되었다. 『전습록』을 통한 양명학의 초기 수용에서는 충주 지역 사림들이 큰 역할을 하였으며, 우계학파에 속한 인물이 양명학 전승에 일정한 역할을 하였다. 그렇지만 양명학 문헌은 비판의 대상으로 간주되어 인쇄․출판 되지 못하고 필사되어 유통되었다. 유성룡도 『양명집』을 필사하여 보관해 두고 읽었다. 첨릉(詹陵)의 『이단변정』, 나흠순(羅欽順)의 『곤지기』, 진건(陳建)의 『학부통변』 등 양명학 비판 문헌은 정통 주자학 존숭의 분위기와 맞물려 금속활자 또는 목판으로 간행․배포되어 양명학 비판에 관한 논리가 쉽게 확산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16세기 조선에서 주류의 범주에서 벗어난, 혹은 국가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사유와 학설을 다룬 문헌들이 금서화되어 널리 보급되지 못한 여러 사례 중에 양명학이 해당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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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에서는 명대에 양명학이 발생한 이래로 양명학 관련 문헌이 조선에 어떤 배경에서 유입되고, 학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16세기를 중심으로 초기 수용 양상을 탐구하였다. 왕수인(王守仁)의 『전습록』을 위시한 양명학 문헌의 조선 유입은 16세기에 이루어졌다. 성리학에 대한 이해가 심화되고 다양한 차원의 논의가 시도되던 때이다. 사화와 반정으로 기존의 성리학적 가치관에 대한 반성과 새로운 모색이 시도되면서 양명학 수용이 가능하였고, 동시에 성리학이 국가통치 이념으로 강화됨에 따라 양명학도 비판되었다. 『전습록』을 통한 양명학의 초기 수용에서는 충주 지역 사림들이 큰 역할을 하였으며, 우계학파에 속한 인물이 양명학 전승에 일정한 역할을 하였다. 그렇지만 양명학 문헌은 비판의 대상으로 간주되어 인쇄․출판 되지 못하고 필사되어 유통되었다. 유성룡도 『양명집』을 필사하여 보관해 두고 읽었다. 첨릉(詹陵)의 『이단변정』, 나흠순(羅欽順)의 『곤지기』, 진건(陳建)의 『학부통변』 등 양명학 비판 문헌은 정통 주자학 존숭의 분위기와 맞물려 금속활자 또는 목판으로 간행․배포되어 양명학 비판에 관한 논리가 쉽게 확산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16세기 조선에서 주류의 범주에서 벗어난, 혹은 국가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사유와 학설을 다룬 문헌들이 금서화되어 널리 보급되지 못한 여러 사례 중에 양명학이 해당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This paper aims to study on the initial acceptance pattern of Yangmingxue(陽明学) in 16th century: Focused on how literature on Yangmingxue got into Joseon Dynasty and how scholars reacted to it ever since Yangmingxue appeared in Ming Dynasty. The inflow of Yangmingxue including The Chuan Xi Lu(傳習錄) by Wang Shouren(王守仁) into Joseon Dynasty occurred in 16th century. It is the time when the understanding of Neo-Confucianism got intensified and various levels of discussion had been attempted. The massacre of scholars and antipolitics evoked reflection on existing Neo-Confucian value and exploring new alternatives, and consequently Yangmingxue could be adopted. At the same time, Yangmingxue also got criticized, with Neo-Confucianism strengthened itself as the basis of national ruling order. Scholars of Chungju region played a large role in the initial acceptance of Yangmingxue through The Chuan Xi Lu, and followers of SungHon(成渾) school served a certain role in passing down Yangmingxue. However, literature on Yangmingxue could not be published because it was suspected as a target of criticism. Ryu Seongryong(柳成龍) had to transcribe A collection of Yang-ming’s works(陽明集) by hand and keep it to read. Critical literature on Yangmingxue such as Yi Duan Bian Zheng(異端辯正) by Zhan Ling(詹陵), Kun Zhi Ji(困知記) by Luo Qinshun(羅欽順), and Hsueh Pu Tung Pien(學蔀通辨) by Chen Chien(陳建), published and distributed as metal movable type or woodblock edition, engaging with reverence for original Zhuzixue(朱子學). There-through, the logic of literature on anti Yangmingxue could be easily spread. This phenomenon shows it’s tendency to distinctively accept studies in Joseon Dynasty. Yangmingxue could be one example in many cases which literature about reason and theory differed from mainstream Joseon Dynasty in 16th century got banned and thus couldn’t be widely dissemin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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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계(牛溪) 성혼(成渾) 연구의 성과와 전망

강보승

[NRF 연계] 한국철학사연구회 한국철학논집 Vol.63 2019.11 pp.3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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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계 성혼 연구는 1970년대 말 시작되었고 198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연구 성과가 제출되기 시작하였다. 1990년대에 연구 성과 제출이 대폭 증가하였으며 2000년대 이후 현재까지 꾸준히 연구가 이어져 2019년 현재 총 287건의 연구 성과가 축적되었다. 연구 성과들은 절반 이상이 성리학(본체론⋅심성론) 분야이고, 나머지가 생애와 학문 소개, 학파⋅문인, 교육 분야이며, 10명 내외의 주요 연구자들에 의해 연구가 주도되었다. 우계 연구가 단기간에 이루어짐으로 인해 우계 연구의 양적 성과에 비하여 질적 성과가 미흡하였다. 연구 분야가 치중되어있고 체계적이지 않으며 우계의 학문을 대표하거나 규정할만한 개념이나 색깔이 모호하다. 따라서 다음 세 가지가 향후 연구에서 고려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첫째, 우계의 학문에서 ‘보편성’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연구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특히 우계 학문을 ‘퇴계·율곡의 절충론’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지 면밀한 고찰이 필요하고, 성리학, 도학이 가진 보편성의 측면에서 우계를 연구해야 한다. 둘째, 우계 삶의 특수성, 우계가 처한 당대 현실의 특수성의 전제 위에 우계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즉, 우계우계이해해야 한다. 성리학은 ‘실천’을 위한 학문이고 따라서 본체론⋅심성론도 중요하나 수양론·경세론이 더 실질적 의미를 갖는다. 때문에 우계의 학문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계가 어떤 이론이나 학설을 제시했는가보다는 그가 어떻게 수양하고 실천했는가를 살펴야 한다. 셋째, 단편적·산발적 연구가 아닌 집중적이고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본체론·심성론을 구심점으로 잡고 수양·경세론 및 교육·문학·역사 분야를 균형 있게 연구해야 할 것이다. 단순히 분야 간 균형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우계 연구의 방향성이나 기조를 세워 우계 학문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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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재 윤증의 교육사상 고찰 - 도설(圖說)과 독서법 분석을 중심으로 -

강보승

[NRF 연계]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유학연구 Vol.61 2022.11 pp.27-52

...우계의 영향을 받은 가학의 교육 전통과 기호학파로서 전수받은 율곡의 사상, 그리고 퇴계 수양론의 영향을 모두 받았다. 교육 과정에 있어서는 소학, 사서(四書), 오경, 근사록, 주자가례, 심경, 이정전서, 주자어류, 사서(史書)의 순서로 정밀하게 읽고 반드시 이를 실천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명재가 제시한 초학자를 위한 독서의 순서는 율곡과 우계의 견해를 반영한 것이며, 서원에서의 독서 순서는 퇴계가 제시한 것을 차용하였다. 그리고 명재는 사계, 우암처럼 가례를 별도로 강조하지 않는다. 명재는 논리적 측면에서는 기호학파로서 율곡의 학설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나, 수양에 있어서는 퇴계 심학을 수용하여 통섭적으로 성리학이해하고 실천하였다. 퇴계의 심학을 수용한 명재는 교육에 있어 경(敬)을 강조하면서, 동시(動時)와 정시(靜時)를 경으로 관통하여 심신을 엄숙히 하고 독서를 정밀히 하여 공부 내용을 체인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율곡 성리설과 퇴계 수양론의 융합적 수용으로 명재는 성리학을 인간학적 관점으로 이해하고 교육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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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재는 <초학획일지도>와 <위학지방도>의 두 도표를 통해 초학자들을 위한 교육기조와 교육 과정을 제시하였다. 명재는 이 두 도표에서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지신(持身), 독서, 응사(應事), 접물(接物)의 네 가지를 참되게 실천하여 초학자들이 참된선비의 길을 갈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명재는 초학자에게 입지(立志)로 시작하여무실(務實)로 성취하는 공부의 과정을 지경(持敬)을 중심으로 제시하면서, 존덕성(尊德性)을 중심으로 한 도문학(道問學)의 동시에 추구하도록 교육하였다. 명재의교육 사상은 우계의 영향을 받은 가학의 교육 전통과 기호학파로서 전수받은 율곡의 사상, 그리고 퇴계 수양론의 영향을 모두 받았다. 교육 과정에 있어서는 소학, 사서(四書), 오경, 근사록, 주자가례, 심경, 이정전서, 주자어류, 사서(史書)의 순서로 정밀하게 읽고 반드시 이를 실천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명재가 제시한 초학자를 위한 독서의 순서는 율곡과 우계의 견해를 반영한 것이며, 서원에서의 독서 순서는 퇴계가 제시한 것을 차용하였다. 그리고 명재는 사계, 우암처럼 가례를 별도로 강조하지 않는다. 명재는 논리적 측면에서는 기호학파로서 율곡의 학설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나, 수양에 있어서는 퇴계 심학을 수용하여 통섭적으로 성리학이해하고 실천하였다. 퇴계의 심학을 수용한 명재는 교육에 있어 경(敬)을 강조하면서, 동시(動時)와 정시(靜時)를 경으로 관통하여 심신을 엄숙히 하고 독서를 정밀히 하여 공부 내용을 체인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율곡 성리설과 퇴계 수양론의 융합적 수용으로 명재는 성리학을 인간학적 관점으로 이해하고 교육하였다.

Myungjae presented educational methods and educational directions for students at the first stage through two diagrams. In these two charts, Myungjae faithfully practiced four things from dawn to dusk: "Rightening Body," "Reading," "Handling Work," and "Meeting People", so that young students can become true intellectuals. In addition, Myungjae presented young students with a process of study that started with "setting goals" and achieved with "struggling with reality." And Myungjae asked young students to pursue morality and conduct academic research at the same time. Myungjae's educational ideas were formed under the influence of Ugye, Yulgok, and Toegeye. The curriculum presented by Myungjae was presented in the order of Sohak, Four Confucian Classics, Five Classes of Confucianism, Record for Reflection, Master Chu's Family Rituals, and Classic of the Mind-and-Heart. Myungjae stressed the need to read these books deeply and practice the contents of the books. The order of reading for young students presented by Myungjae also reflects the opinions of Yulgok, Ugye, and Togeye. Myungjae accepts Yulgok's theory in terms of logic. However, when it comes to cultivation, he accepts Togeye's theory. So Myungjae understood and practiced Neo-Confucianism in fusion. Myungjae, who accepted Togeye's psychology, emphasizes Gyeong(respect) in education and say that they should maintain a respectful attitude both when they are active and when they are not. Myungjae requests that the body and mind should be reverent and read deeply to experience the contents he studied on his 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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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봉 송익필 심론의 합리성과 적의성에 대한 연구

전성건

[NRF 연계]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유학연구 Vol.62 2023.02 pp.27-50

...우계 성혼, 율곡 이이의 외우(畏友)로서 학문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였던 구봉 송익필의 심론(心論)을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작성된 것이다. 그동안 철학 분야에서의 그에 대한 연구는 태극론과 이기론, 사단칠정론과 인심도심론, 그리고 수양론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이기(理氣)의 발현을 공발(共發)로 볼것인가, 일발(一發)로 볼 것인가 등 다양한 논의가 진행되었고, 율곡의 인심도심종시설(人心道心終始說)을 비판한 구봉의 학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도 함께 진행되었으며, 그의 수양론을 직사상(直思想)으로 이해해도 좋은지 등에 대한 논의도 진행되었다. 본 논문은 이러한 다양한 문제에 대한 논의를 그의 심론을 중심으로 살펴볼 것이다. 기왕의 연구는 이기론과 사단칠정론 그리고 인심도심론과 수양론 등 각각의 관점에서 그의 주장을 고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본 논문에서는 이상의 연구를기반으로 하되, 그의 마음에 대한 이론, 즉 심론(心論)을 중심으로 기왕의 논의를 수렴해서 살펴보려고 한다. 그 결과, 그의 성리학 이해는 통합적 사고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수 있었다. 여기서 통합적 방식이란 합잡(合雜)이란 개념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기(理氣)의 합발(合發), 사단칠정(四端七情)의 유파(流派), 인심도심(人心道 心)의 소장(消長)이 바로 그것이고, 그의 수양론은 직(直)을 기반으로 한 주정주의(主靜主義)적 경사상(敬思想)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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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우계 성혼, 율곡 이이의 외우(畏友)로서 학문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였던 구봉 송익필의 심론(心論)을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작성된 것이다. 그동안 철학 분야에서의 그에 대한 연구는 태극론과 이기론, 사단칠정론과 인심도심론, 그리고 수양론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이기(理氣)의 발현을 공발(共發)로 볼것인가, 일발(一發)로 볼 것인가 등 다양한 논의가 진행되었고, 율곡의 인심도심종시설(人心道心終始說)을 비판한 구봉의 학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도 함께 진행되었으며, 그의 수양론을 직사상(直思想)으로 이해해도 좋은지 등에 대한 논의도 진행되었다. 본 논문은 이러한 다양한 문제에 대한 논의를 그의 심론을 중심으로 살펴볼 것이다. 기왕의 연구는 이기론과 사단칠정론 그리고 인심도심론과 수양론 등 각각의 관점에서 그의 주장을 고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본 논문에서는 이상의 연구를기반으로 하되, 그의 마음에 대한 이론, 즉 심론(心論)을 중심으로 기왕의 논의를 수렴해서 살펴보려고 한다. 그 결과, 그의 성리학 이해는 통합적 사고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수 있었다. 여기서 통합적 방식이란 합잡(合雜)이란 개념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기(理氣)의 합발(合發), 사단칠정(四端七情)의 유파(流派), 인심도심(人心道 心)의 소장(消長)이 바로 그것이고, 그의 수양론은 직(直)을 기반으로 한 주정주의(主靜主義)적 경사상(敬思想)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This paper is written with the aim of examining the Neo-Confucianism of Kubong Song Ik-pil, who considered and discussed academic and political issues together as close friends with Woogye Sung-hon and Yulgok Yi I. Until now, research on Kubong’s Writings in the field of philosophy has been conducted focusing on the Great Ultimate theory, the theory of principle and matter, the theory of four sprouts and seven emotions, the theory of physiological and moral mind, and the theory of cultivation. Various discussions were held, such as whether to view the expression of principle and matter as a common or a single expression, and how to understand Kubong's theory of criticizing Yulgok's physiological and moral mind being the end and the beginning of each other, and whether it is good to understand his cultivation theory as a straightforward idea. As a result, it can be seen that his understanding of Neo-Confucianism is proceeding in an integrated way of thinking. Here, the integrated method can be expressed as the concept of a combination. These are the unity of principle and matter, the school of division seven emotions, and the collection of physiological and moral mind’ rise and fall theory, and his cultivation theory can be said to be a still and awake mind cultiv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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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각의 지평에서 본 율곡의 리기理氣

리기용

[NRF 연계] 한국동서철학회 동서철학연구 Vol.50 2008.12 pp.319-338

...우계의 인심도심논변에서 겸정의兼情意로 확장되면서 성리학적 지각의 문제는 중요한 비중을 가지며 심화되었다. 기존의 연구들에서 정情 중심에서 율곡의 리기론을 조망하면서 마음의 지각知覺 문제는 간과되었다. 이 논문은 율곡의 리기 문제를 지각의 지평에서 조망해 봄으로써 기존의 논의에서 홀시되었던 성리학적 인식과 실천의 문제를 다루어 보았다. 이를 위하여 리기에 대한 정의를 술어나 서식어를 중심으로 전반적으로 재조망하는 한편 기발리승과 리통기국 등 율곡 성리학의 철학적 문제들이 지각의 관점에서 어떻게 이해될 수 있는지를 고찰해 보았다. 이 논의를 통하여 리기 심성론을 감정적 층차가 아닌 지각의 지평에서 조망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한편 앎과 실천의 문제를 합일시킬 수 있었던 율곡 성리학의 특성을 조망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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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와 율곡을 중심으로 리기와 심성 등에 대한 심층적이고 전문적인 문제들이 논구되면서 리기와 심성의 문제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음은 잘 밝혀졌다. 그러나 이 양자의 관계에 대한 해명은 간과되거나 신비적으로 덮여진 채, 이를 전제로 사단칠정이나 인심도심의 문제를 다루면서 양자의 관계는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못하였다. 퇴계와 고봉의 사단칠정논변의 정情 중심에서 율곡과 우계의 인심도심논변에서 겸정의兼情意로 확장되면서 성리학적 지각의 문제는 중요한 비중을 가지며 심화되었다. 기존의 연구들에서 정情 중심에서 율곡의 리기론을 조망하면서 마음의 지각知覺 문제는 간과되었다. 이 논문은 율곡의 리기 문제를 지각의 지평에서 조망해 봄으로써 기존의 논의에서 홀시되었던 성리학적 인식과 실천의 문제를 다루어 보았다. 이를 위하여 리기에 대한 정의를 술어나 서식어를 중심으로 전반적으로 재조망하는 한편 기발리승과 리통기국 등 율곡 성리학의 철학적 문제들이 지각의 관점에서 어떻게 이해될 수 있는지를 고찰해 보았다. 이 논의를 통하여 리기 심성론을 감정적 층차가 아닌 지각의 지평에서 조망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한편 앎과 실천의 문제를 합일시킬 수 있었던 율곡 성리학의 특성을 조망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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宋時烈과 尹拯의 갈등과 학문적 차이

황의동

[NRF 연계] 한국동서철학회 동서철학연구 Vol.40 2006.06 pp.169-190

...이해하는데 본 연구의 목적이 있다. 그런데 양자의 갈등에는 강화도사건, 황산서원모임과 동학사모임, 두 차례의 禮訟, 墓誌銘사건과 己酉擬書, 辛酉擬書 등이 직접, 간접적으로 작용했다. 특히 윤휴의 존재는 양자 갈등의 핵심이었으니, 윤선거와 윤휴의 우호적 관계가 명재에게도 영향을 미쳤고, 이로 인해 우암과 명재의 갈등이 증폭되었다. 특히 양자의 이념적, 학문적 갈등은 이러한 현상적 갈등의 내재적 요인이었다. 우암과 명재는 같은 기호유학의 뿌리를 두고 있지만, 우암은 율곡에, 명재는 우계에 학문적 연원을 두고 있다. 따라서 이들의 갈등은 율곡학파(우암학파)와 牛溪學派의 分岐이기도 하다.학문적 태도에서 보면 우암학파는 주자학과 율곡학의 계승이라는 입장에서 보수적 성격이 강했고, 명재를 중심으로 한 牛溪學派는 개방적 학풍을 보여주었다. 이는 윤휴의 邪正 是非를 통해서도 입증된다. 또한 우암학파의 가치적 定向은 의리에 있었다면, 우계학파는 실용적인 특성을 갖는다. 이는 병자호란 후 主和, 斥和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며, 北伐義理와 北學派 實學의 계승적 의미를 갖는다. 성리학적 측면에서 보더라도 우암학파는 人物性同異論에서 보듯이 性理의 思辯的 탐구를 중시한 반면, 우계학풍은 敬을 중심으로 한 마음공부를 중시하였다. 이러한 양자의 학문적, 이념적 차이가 현실적 일련의 사건들과 결부되어 갈등을 증폭시켰던 것이다. 따라서 양자의 이념적 차이와 갈등은 학문의 발전을 위해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 다만 사적 감정과 정치적 이해관계로 피비린내 나는 政爭을 했던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양자의 이념적 차이, 학문적 특성의 차이는 상보적 시각에서 이해 가능하며, 이를 통해 양자 갈등을 和解의 場으로 승화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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尤庵 宋時烈(1607~1689)과 明齋 尹拯(1629~1714)은 17세기 조선조에 있어서 정치적, 학문적으로 중심적 위치에 있었다. 양자는 師弟관계이면서 두 가문은 連婚관계를 통해 매우 가까운 사이였음에도 불구하고, 학문적, 정치적 갈등은 매우 심각하였다. 그것은 尤庵과 明齋의 갈등이 조선조 당쟁사의 핵심이며, 조선조 지식인 사회의 대표적인 갈등으로 인식되고 있음에서 잘 알 수 있다. 이러한 갈등의 원인을 분석해 보고, 相補的 시각에서 양자의 학문적 차이를 이해하는데 본 연구의 목적이 있다. 그런데 양자의 갈등에는 강화도사건, 황산서원모임과 동학사모임, 두 차례의 禮訟, 墓誌銘사건과 己酉擬書, 辛酉擬書 등이 직접, 간접적으로 작용했다. 특히 윤휴의 존재는 양자 갈등의 핵심이었으니, 윤선거와 윤휴의 우호적 관계가 명재에게도 영향을 미쳤고, 이로 인해 우암과 명재의 갈등이 증폭되었다. 특히 양자의 이념적, 학문적 갈등은 이러한 현상적 갈등의 내재적 요인이었다. 우암과 명재는 같은 기호유학의 뿌리를 두고 있지만, 우암은 율곡에, 명재는 우계에 학문적 연원을 두고 있다. 따라서 이들의 갈등은 율곡학파(우암학파)와 牛溪學派의 分岐이기도 하다.학문적 태도에서 보면 우암학파는 주자학과 율곡학의 계승이라는 입장에서 보수적 성격이 강했고, 명재를 중심으로 한 牛溪學派는 개방적 학풍을 보여주었다. 이는 윤휴의 邪正 是非를 통해서도 입증된다. 또한 우암학파의 가치적 定向은 의리에 있었다면, 우계학파는 실용적인 특성을 갖는다. 이는 병자호란 후 主和, 斥和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며, 北伐義理와 北學派 實學의 계승적 의미를 갖는다. 성리학적 측면에서 보더라도 우암학파는 人物性同異論에서 보듯이 性理의 思辯的 탐구를 중시한 반면, 우계학풍은 敬을 중심으로 한 마음공부를 중시하였다. 이러한 양자의 학문적, 이념적 차이가 현실적 일련의 사건들과 결부되어 갈등을 증폭시켰던 것이다. 따라서 양자의 이념적 차이와 갈등은 학문의 발전을 위해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 다만 사적 감정과 정치적 이해관계로 피비린내 나는 政爭을 했던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양자의 이념적 차이, 학문적 특성의 차이는 상보적 시각에서 이해 가능하며, 이를 통해 양자 갈등을 和解의 場으로 승화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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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령 성씨 유학자들의 학문과 사상

황의동

[NRF 연계] 한국동서철학회 동서철학연구 Vol.50 2008.12 pp.293-317

...이해할 수 있다. 창령 성씨는 많은 유학자들을 배출하였다. 그 가운데 성삼문, 성담수, 성승, 성희는 충절의리를 지켰고, 성수침, 성우, 성제원, 성운, 성세창 등은 도학으로 명망이 높았고, 성혼, 성만징, 성기운, 성근묵, 성구용 등은 성리학에 밝았다. 특히 성삼문의 죽음은 창령 성씨의 가학을 ‘隱居自守 聖賢自期’로 삼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가학풍은 성혼의 사위인 윤황을 통해 파평 윤씨의 가학으로 이어져갔으며, 17세기 이후 우계학파로 발전해 갔다. 창령 성씨의 시조는 성인보인데, 5세손 성여완은 중요한 위치에 있다. 그것은 성여완의 아들인 성석용(회곡공)과 성석인(상곡공)의 후손에서 대부분의 유학자들이 배출되었기 때문이다. 회곡공파의 유학자로는 성승, 성희, 성삼문, 성담수, 성몽선, 성몽정, 성현, 성기운, 성구용 등이 있고, 상곡공파의 유학자로는 성간, 성현, 성우, 성운, 성수침, 성수종, 성혼, 성문준, 성지선, 성근묵 등이 있다. 대체로 회곡공파는 범 율곡학파에 속하고, 상곡공파는 우계학파에 속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회곡공파의 중심인물은 성삼문이라 할 수 있고, 상곡공파의 중심인물은 성혼이라 할 수 있다. 성혼은 ‘동국 18현’의 하나로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고 도학으로 존경을 받았다. 특히 그의 理氣一發說은 율곡과의 성리 논변을 통해 세워진 값진 학문적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창령 성씨의 가학과 파평 윤씨의 가학이 하나로 연결될 수 있었던 것은 성삼문의 죽음과 윤선거의 江都사건 그리고 성혼의 가학이 사위인 윤황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후 우계학파는 조선조 유학사에서 율곡학파와는 또 다른 학풍을 지니며 발전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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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의 유학은 학연, 지연, 혈연 등 복잡한 배경에서 발전해 왔다. 이러한 점에서 가문을 중심으로 한 문중학문의 연구는 다소 위험성을 내포하지만, 조선조 현실을 고려하면 그 필요성을 십분 이해할 수 있다. 창령 성씨는 많은 유학자들을 배출하였다. 그 가운데 성삼문, 성담수, 성승, 성희는 충절의리를 지켰고, 성수침, 성우, 성제원, 성운, 성세창 등은 도학으로 명망이 높았고, 성혼, 성만징, 성기운, 성근묵, 성구용 등은 성리학에 밝았다. 특히 성삼문의 죽음은 창령 성씨의 가학을 ‘隱居自守 聖賢自期’로 삼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가학풍은 성혼의 사위인 윤황을 통해 파평 윤씨의 가학으로 이어져갔으며, 17세기 이후 우계학파로 발전해 갔다. 창령 성씨의 시조는 성인보인데, 5세손 성여완은 중요한 위치에 있다. 그것은 성여완의 아들인 성석용(회곡공)과 성석인(상곡공)의 후손에서 대부분의 유학자들이 배출되었기 때문이다. 회곡공파의 유학자로는 성승, 성희, 성삼문, 성담수, 성몽선, 성몽정, 성현, 성기운, 성구용 등이 있고, 상곡공파의 유학자로는 성간, 성현, 성우, 성운, 성수침, 성수종, 성혼, 성문준, 성지선, 성근묵 등이 있다. 대체로 회곡공파는 범 율곡학파에 속하고, 상곡공파는 우계학파에 속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회곡공파의 중심인물은 성삼문이라 할 수 있고, 상곡공파의 중심인물은 성혼이라 할 수 있다. 성혼은 ‘동국 18현’의 하나로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고 도학으로 존경을 받았다. 특히 그의 理氣一發說은 율곡과의 성리 논변을 통해 세워진 값진 학문적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창령 성씨의 가학과 파평 윤씨의 가학이 하나로 연결될 수 있었던 것은 성삼문의 죽음과 윤선거의 江都사건 그리고 성혼의 가학이 사위인 윤황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후 우계학파는 조선조 유학사에서 율곡학파와는 또 다른 학풍을 지니며 발전해 왔다.

Confucianism of Korea has developed complicatedly related with schools, regionalism and kinship. Sung family from Changryong has many Confucian scholars. Some representatives of them are Sam-moon Sung, Dan-su Sung, Hee Sung, Su-chim Sung, Woon Sung, Je-won Sung, Hyun Sung, Man-jing Sung and Gi-woon Sung. Sung family from Changryong did not actively participate in politics after Sam-moon Sung died and instead, they devoted themselves to studying and self discipline. These traditions succeeded to the family scholar tradition of Yun Family from Papyung. Sam-moon Sung, Dan-su Sung, Hee Sung, Woon Sung, Je-won Sung, Gi-woon Sung and Gu-yong Sung protested the unjust and were against the foreign powers. Also, Hon Sung, Man-jing Sung, Kun-mook Sung, Gi-woon Sung, Gu-yong Sung were very knowledgeable to Sung Confucianism. However, in general, Sang Gok Gong party of Sung Family from Changryong became Woogye school and Hyo Gok Gong party, Yulgok sch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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