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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호남지역 민간고문서 현황과 과제 - 디지털 아카이브를 중심으로 - KCI 등재

김영준

전북사학회 전북사학 제67호 2023.03 pp.5-28

...고문서의 현황과 이를 활성화하기 위한 앞으로의 과제를 살펴보았다. 고문서 현황은 2000년 이후에 여러 기관에서 구축한 디지털 아카이브의 탑 재DB를 통해서 약 50,000여 건을 확인할 수 있었다. DB화된 고문서는 박물관 및 기관 소장이 60%, 민간 소장이 40%를 차지한다. 시기적으로는 1800년대에 생산된 문서가 70%를 차지한다. 원소장처를 기준으로 했을 때 약 600여 곳의 문서이다. 매매문서와 호적문서의 비중이 전체 40% 이상을 차지하는데 이는 호남의 특화콘텐츠로서 집중하여 구축하였기 때문이다. 호남지역 고문서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신규 소장처 발굴, 각 기관에서 추 진했던 아날로그 사업 결과물 취합, 고문서 외의 연관 자료 조사도 필요하다. 또, 사업 중단으로 인해 이미 폐쇄되었거나 곧 폐쇄될 위험에 처한 디지털 아카이브의 통합이 시급하다. 이 과정은 정보화를 고려하여 일정한 지침을 마련하여 자료들이 서로 연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예전처럼 고문서의 이미지나 해제를 보여주는 것에서 발전시켜 고 문서를 활용한 웹툰, 동화, 영상과 같은 멀티미디어 형태로 스토리텔링하여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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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호남지역 민간 고문서의 현황과 이를 활성화하기 위한 앞으로의 과제를 살펴보았다. 고문서 현황은 2000년 이후에 여러 기관에서 구축한 디지털 아카이브의 탑 재DB를 통해서 약 50,000여 건을 확인할 수 있었다. DB화된 고문서는 박물관 및 기관 소장이 60%, 민간 소장이 40%를 차지한다. 시기적으로는 1800년대에 생산된 문서가 70%를 차지한다. 원소장처를 기준으로 했을 때 약 600여 곳의 문서이다. 매매문서와 호적문서의 비중이 전체 40% 이상을 차지하는데 이는 호남의 특화콘텐츠로서 집중하여 구축하였기 때문이다. 호남지역 고문서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신규 소장처 발굴, 각 기관에서 추 진했던 아날로그 사업 결과물 취합, 고문서 외의 연관 자료 조사도 필요하다. 또, 사업 중단으로 인해 이미 폐쇄되었거나 곧 폐쇄될 위험에 처한 디지털 아카이브의 통합이 시급하다. 이 과정은 정보화를 고려하여 일정한 지침을 마련하여 자료들이 서로 연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예전처럼 고문서의 이미지나 해제를 보여주는 것에서 발전시켜 고 문서를 활용한 웹툰, 동화, 영상과 같은 멀티미디어 형태로 스토리텔링하여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This study reviewed current situations of home-owned ancient documents in Honam area and future tasks to vitalize those documents. By reviewing the situations of ancient documents, the study confirmed around 50,000 documents via the digital archive, established after 2000. Those ancient documents in a data base comprise 60% owned by a museum or an organization and other 40%, by private homes. As per the age, those produced in 1800s amount to 70%. They are around 600 documents based on the original ownership. Over 40% of the total are composed of documents of a transaction or a family register. To vitalize those ancient documents in Honam area, various activities are needed such as discovering a new owner, collection of the results of those analogue projects proceeded by each organization, and researches on related materials other than ancient documents. Also, it is urgent to integrated digital archives that have already been closed or on the verge of being closed soon due to discontinued projects. This process shall be proceeded by preparing a certain guidance considering the digitization so that the materials can be interconnected. And, developing from previous situations where they showed images and/or annotations, it is needed to provide them in a multi-media form such as web comic, fairy tale and video clip for story-tel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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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기사를 통해 본 일제 ‘문화통치기’ 고문치사 사건 (1920~1936) KCI 등재

변은진

순천대학교 남도문화연구소 남도문화연구 제47권 2022.12 pp.7-46

...고문치사 사건’의 전 체적인 현황과 성격을 검토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고문, 특히 ‘고문치사’는 현존 체제에 강력히 저항한 ‘정치범’ 또는 ‘사상범’에게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는 평범한 조선인 누구나 고문치사 당할 가능성을 갖고 있었던 점이 특징이다. 「태형령」의 惡習은 폐지 이후 오히려 자백을 얻어내기 위한 심문 과정에서 폭행과 고문의 강화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문치사 사건의 빈발은 조선 안팎에서 비난과 비판 여론을 불러일으켰지만, 1930년대 중반까지 고문치사 사건은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군국주의적 성격을 강하게 띠고 출발한 후발자본주의 국가 일본의 한계가 자리 잡고 있었다. 비록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다이쇼 데모크라시가 확대되었다고는 해도, 천 황제 이데올로기하에서 교육받고 성장한 일본인 일반의 한계와 후진성, 미성숙한 인권 의식과 폭력성 등을 보여준다. 신문 기사(1920.4~1937.6)를 통해 확인된 ‘문화통치기’ 고문치사 사건은 총 40건이 다. 이 사례들을 통해 사건 발생 이후의 처리 과정을 보면, 대체로 ‘조사(가해자측) → 부검(公醫) 및 시신 인도 / 고소(피해자측) / 탄원서 제출 → 판결 → 항소(양측) → 판결 및 처분’의 순으로 나타난다. 고문치사자의 연령은 20~30대 청년층이 압도적으로 많았으며, 발생 지역은 함경도와 평안도 등 북부지역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고문치사로 의심되는 경우 피해자 측에서는 대부분 부검을 신청했는데, 문제는 그 결과를 유족이 쉽게 받아들이느냐 였다. 받아들이지 못할 경우 고소 제기, 탄원서 제출, 주재소 습격 등의 행동으로 이어졌다. 가해자 가운데 일부는 휴직, 감봉, 전근, 파면, 恩給 취소, 징역 형(집행유예 포함) 등의 처벌을 받았다. 그런데 총 40건의 사례에서 고문치사 피해자의 ‘범죄’ 혐의의 유형을 보면, ‘절도죄’나 법규 위반 같은 경범죄가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 이 점에서도 당시 일제 경찰이 조선인 일반을 인권을 지닌 자유롭고 평등한 인간으로 보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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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일제 ‘문화통치기’에 ‘보통경찰’에 의해 자행된 조선인 ‘고문치사 사건’의 전 체적인 현황과 성격을 검토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고문, 특히 ‘고문치사’는 현존 체제에 강력히 저항한 ‘정치범’ 또는 ‘사상범’에게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는 평범한 조선인 누구나 고문치사 당할 가능성을 갖고 있었던 점이 특징이다. 「태형령」의 惡習은 폐지 이후 오히려 자백을 얻어내기 위한 심문 과정에서 폭행과 고문의 강화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문치사 사건의 빈발은 조선 안팎에서 비난과 비판 여론을 불러일으켰지만, 1930년대 중반까지 고문치사 사건은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군국주의적 성격을 강하게 띠고 출발한 후발자본주의 국가 일본의 한계가 자리 잡고 있었다. 비록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다이쇼 데모크라시가 확대되었다고는 해도, 천 황제 이데올로기하에서 교육받고 성장한 일본인 일반의 한계와 후진성, 미성숙한 인권 의식과 폭력성 등을 보여준다. 신문 기사(1920.4~1937.6)를 통해 확인된 ‘문화통치기’ 고문치사 사건은 총 40건이 다. 이 사례들을 통해 사건 발생 이후의 처리 과정을 보면, 대체로 ‘조사(가해자측) → 부검(公醫) 및 시신 인도 / 고소(피해자측) / 탄원서 제출 → 판결 → 항소(양측) → 판결 및 처분’의 순으로 나타난다. 고문치사자의 연령은 20~30대 청년층이 압도적으로 많았으며, 발생 지역은 함경도와 평안도 등 북부지역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고문치사로 의심되는 경우 피해자 측에서는 대부분 부검을 신청했는데, 문제는 그 결과를 유족이 쉽게 받아들이느냐 였다. 받아들이지 못할 경우 고소 제기, 탄원서 제출, 주재소 습격 등의 행동으로 이어졌다. 가해자 가운데 일부는 휴직, 감봉, 전근, 파면, 恩給 취소, 징역 형(집행유예 포함) 등의 처벌을 받았다. 그런데 총 40건의 사례에서 고문치사 피해자의 ‘범죄’ 혐의의 유형을 보면, ‘절도죄’나 법규 위반 같은 경범죄가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 이 점에서도 당시 일제 경찰이 조선인 일반을 인권을 지닌 자유롭고 평등한 인간으로 보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This article reviews the overall status and character of the ‘Torture homicide’ committed by the ‘ordinary police’ in the Japanese ‘cultural rule’. In general, torture, especially ‘torture homicide’, often occurs to ‘political prisoners’ or ‘thought criminals’ who strongly resisted the existing system. However, it is characterized by the possibility that any ordinary Korean could be tortured and killed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This is because that led to the reinforcement of assault and torture during the interrogation process to obtain a confession after the abolition of the Flogging Act. The frequent occurrence of torture homicide caused criticism both inside and outside the colonized Joseon, but torture homicide continued to occur until the mid-1930s. And in the background, there was a limitation of Japan, a late capitalist country that started with a strong militaristic character. Even if the Taisho Democracy expanded after the World War I, it shows the limitations, backwardness, immature human rights awareness and violence of the Japanese general, who were educated and grown under the emperor system ideology. There are a total of 37 cases of ‘torture homicides’ under ‘cultural rule’ confirmed through newspaper articles (1920.4~1937.6). Looking at the process of handling after the incident through these cases, it is generally shown in the order of ‘investigation (the perpetrator’s side) → autopsy and delivery of the body / complaint (the victim’s side) / submission of a petition → judgment → appeal (both sides) → judgment and disposition’. The age of victims of torture homicide was large among young people in their 20s and 30s, and it occurred overwhelmingly in northern regions such as Hamgyeong-do and Pyeongan-do. Most of the victims applied for an autopsy, but the question was whether they would easily accept the results. In this case, it led to actions such as filing a complaint, submitting a petition, and attacking police substations. Some perpetrators were punished with leave of absence, salary reduction, transfer, dismissal, cancellation of pension, and imprisonment (including suspension of execution). However, in a total of 37 cases, when looking at the type of ‘crime’ of victims of torture homicide, misdemeanors such as ‘theft crime’ and violation of laws account for almost a half. In this regard, it can be confirmed that the Japanese police did not view the general Korean people as free and equal human beings with human righ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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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 과정에서 완성된 윤세복 종사의 삼법(三法) 수행

최윤수

국학연구소 국학연구 제26집 2022.12 pp.179-221

...고문과 감옥생활로 생사의 기로에 서게 된 그는 배달겨레 고유의 도의 절멸을 우려하여 삼법회통을 저술했다. 그는 이 책에서 사람 내부 의 세 가지 참인 성품과 명과 정기를 닦는 수행법을 각각 지감법, 조식 법과 금촉법의 삼법으로 새롭게 체계화하고 이 삼법은 고유의 도에서 파 생된 유불선의 수행법들을 모두 포함한다고 했다. 또한, 삼법을 병행하여 회통하면 일신의 안락을 얻을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자비한 마음으로 세 상을 구제하면 하느님을 뵙고 영원한 쾌락을 누릴 것이라 하여 내부 수 행을 하면서 한편으로 인민들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도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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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화를 중시한 윤세복은 대종교의 수장이 되면서부터 수행법의 체계화를 구상했으나 교무에 쫓겨 집필하지 못했다. 일제 말기에 강제 구금되어 가혹한 고문과 감옥생활로 생사의 기로에 서게 된 그는 배달겨레 고유의 도의 절멸을 우려하여 삼법회통을 저술했다. 그는 이 책에서 사람 내부 의 세 가지 참인 성품과 명과 정기를 닦는 수행법을 각각 지감법, 조식 법과 금촉법의 삼법으로 새롭게 체계화하고 이 삼법은 고유의 도에서 파 생된 유불선의 수행법들을 모두 포함한다고 했다. 또한, 삼법을 병행하여 회통하면 일신의 안락을 얻을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자비한 마음으로 세 상을 구제하면 하느님을 뵙고 영원한 쾌락을 누릴 것이라 하여 내부 수 행을 하면서 한편으로 인민들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도를 설명했다.

As the head of Daejonggyo, which revived traditional Korean religion, Yoon Se-bok emphasized indoctrination and devised a systematization of the method of meditation, but he could not organize the method of meditation because he was chased by the school affairs during the Japanese oppression. At the end of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he innocently was put in prison and was at the crossroads of life and death due to harsh torture and prison life. He systematized the three methods of cultivating the true nature, virtue, and spirit into the three methods of jigam method, joshik method, and geumchok method, and explained that these three methods should be used in parallel. He also said that the three methods are a combination of the meditation methods of Confucianism, Buddhism, and Taoism. If you realize you will find your own comfort, and furthermore, if you save the world with compassion, you will see God and enjoy eternal pleas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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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개척의 희망 고문 : 달 착륙 50주년을 맞아

이정규

우리신학연구소 가톨릭 평론 제22호 2019.07 pp.169-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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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지능투자고문의 법률규제에 관한 연구 KCI 등재

오엽, 장자전

한중법학회 중국법연구 제38집 2019.05 pp.19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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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인 인공지능과 로봇기술이 결합된 지능형 로봇이 다. 최근 화두로 등장한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중 하나인 로봇기술은 제조업 분야뿐만 아니라 금융 서비스 또는 개인 서비스를 위한 핵심 요소기술 및 융복 합 기술을 활용하여 다양한 금융산업 분야에 파급력을 펼치고 있다. 금융기관 은 데이터 스토리지, 알고리즘 모델 등을 통해 고객의 개성화된 금융 요구를 충족할 수 있다. 로보어드바이저(Robo-Advisor)는 자동화된 지능형 투자자문 서비스제공 시스템이다. 로보어드바이저는 투자자의 위험 성향과 투자목적을 분석하는 투자자 프로파일링은 물론, 투자권유, 자산관리, 트레이딩까지 담당 하는 전문인력 기능을 수행한다. 중국 현행법은 로보어드바이저를 활용해 비대면으로 투자일임 서비스를 제 공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해외의 로보어드바이저와 비교해 보면, 중국의 로보어드바이저는 많은 면에서 다르다. 그중에서 가장 큰 차이점은 중국 로보 어드바이저에서 AI 기술은 투자권유 단계에서만 활용된다는 점이다. 어떤 측 면으로 보면, 중국 로보어드바이저는 “자산관리계획(资产管理计划)”이란 금융 상품을 투자권유하기 위한 업무라고 할 수도 있다. 중국에서 로보어드바이저나 투자자문업무에 대한 전문적인 입법은 아직 없 다. 그렇기 때문에 자산관리(资产管理)에 관한 법률로 규제하는 것만으로는 효과적인 금융감독을 이루기 어렵다. 따라서 중국 로보어드바이저의 본질적 기능에 따른 유형화 분석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로 중국 시장에 있는 로보어드 바이저는 컨설팅형 로보어드바이저, 자산관리형 로보어드바이저 및 혼합형 로 보어드바이저의 세 가지 타입으로 나눌 수 있다. 이 기초 위에는 유형별로 서 로 다른 법률규정을 적용된다. 이는 다층적인 규제 체계를 통해서 금융감독을 회피하는 행위를 방지함으로써 금융 시장의 질서를 유지하고 궁극적으로 금융 혁신의 건전한 발전을 촉진할 것이다.

Today, with the rapid development of new technologies represented by artificial intelligence and robots, our human society is entering the new era of AI. AI technology and financial services business are gradually integrated into one. Financial institutions, relying on algorithm technology, could meet the personalized financial needs of customers. Fintech has become the forefront of global financial services. At the same time, AI technology also provides a new path for investment advisory business, which deviates from the traditional mode of pure investment consulting, to the form which take the asset management as the core business. The advent of modern Robo-Advisors has completely changed that narrative by delivering the service straight to consumers. After a decade of development, Robo-Advisors are now capable of handling much more sophisticated tasks, such as tax-loss harvesting, investment selection and retirement planning. AI technology allows Robo-Advisors to break out of the traditional mode of “one to one”, but enter into a new mode of “one to more”. This new mode is prone to the widespread fraud, manipulation and other illegal behaviors, and have a negative impact on the order of financial market. Under China's current financial supervision system, there are regulatory arbitrage and other problems. Therefore, how to improve the legal transparency, how to coordinate the relationship between administrative intervention and market freedom, how to balance the relationship between administrative supervision and self-regulation? All of these questions has become the legal focus of China's Robo-advisors business.

当今,以人工智能、物联网、机器人为代表的技术,正在催生下一个 崭新时代——人工智能时代. 以人工智能为代表的新技术与金融服务深度融 合,依托于数据信息、算法模型,实时满足客户的个性化金融需求,在 拓展金融服务广度和深度的同时,重塑金融价值链和金融生态. 科技金融 成为全球金融发展的前沿课题,与此同时,智能技术亦为投资顾问业务 提供了新路径,使其偏离了单纯的以“投资咨询”为内容的传统模式,转而 形成了以“资产管理”为核心的新型复合业务. 智能技术令投资顾问突破了传统“一对一”而转变为“一对多”模式,极易 滋生广范围的欺诈、操纵等违法行为,危及金融市场的秩序. 在中国目前 的分业监管模式之下,难免存在监管套利、违背信义义务等问题. 在贯彻 功能监管理念时,既要秉持保护投资者和客户利益的立场,又要受制于 分业监管的现实,因此,如何增强法律和监管的透明度,如何协调行政 干预的及时性和谦抑性,如何平衡行政监管与自律监管的关系,遂成为 中国智能投顾业务的规制重点. 然而,中国却尚未形成针对智能投顾或投资顾问的高位阶统一立法, 仅依靠目前的资产管理法律规定难以形成对其的有效规制. 故,有必要从 智能投顾的功能定位出发,将市场中资质不一、规模不等、业务不同的 智能投顾进行类型化分析,通过咨询型智能投顾、资管型智能投顾以及 混合型智能投顾三大类型分别分析并提出具有针对性的规制方法,通过 多层次的、宽严相济的规制体系,以期有效治理目前“一放就乱、一管就 死”的智能投顾市场乱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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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고문’과 고투(苦鬪) - 산업체 학교 제도와 여성 노동자들의 생애사적 경험 : 1980년대 대구경북 지역의 사례를 중심으로 KCI 등재

김상숙

한국구술사학회 구술사연구 제9권 2호 2018.09 pp.107-142

...고문’이었고 지금은 ‘잊고싶은 상처’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향학열의 미충족, 계급상승 욕구의 미실현 때문이라기보다는, 아직도 여성 노동자 일반 및 산업체 학교 노동자를 낮춰 보는 사회적인식이 변하지 않은 상황에서 그들의 ‘생존을 위한 고투’와 ‘일상적 저항’이 제대로 평가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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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정부가 산업체 부설학교 제도를 시행한 이래 1980년대까지 산업체 부설학교 진학은 한국에서 도시 빈민층이나 농어촌 가정 자녀(특히 딸)를 교육하는 중요한방식이었고, 경공업 부문의 노동집약적 산업에서 저임금-장시간 노동체제를 유지하는주요한 축이었다. 산업체 부설학교는 단순한 교육기관이라기보다는 노동통제 장치였다. 국가와 기업은 가족의 성차별적 교육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여성 노동자를 통제했다. 이 글에서는 여성, 노동자, 학생, 청소년이라는 다중적 정체성을 가진 노동자집단이 국가/기업/가족에게 소외되었던 현실을 이겨내기 위해 어떻게 생존하고 적응했는가 하는 점을 살펴보았다. 한국 사회에서는 10대 여성이 노동자 신분인 것보다는 학생 신분인 것을 주류이자, ‘정상적인 것’으로 보았다. 산업체 학교 노동자들은 노동과학업을 병행하는 것에 따르는 심신의 긴장과 고통도 기꺼이 감내하면서 취학을 통해이 사회의 비주류인 노동자가 아닌 학생이 됨으로써, 사회에 정상인으로 소속되어 주류 청소년문화에 편입되고 싶어 하는 욕구를 제한적으로나마 실현하고자 했다. 이러한 과정은 국가, 가족, 기업에 의해 계급적 측면뿐 아니라 가부장적 측면에서도 소외된 현실을 이겨내기 위한 생존방식으로서, 불완전하지만 일종의 일상적 저항의 성격을 지닌 것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일상적 저항’ 과정은 자본에 대한 포섭과 순응의 양상으로도 나타났다. 그러나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산업체 학교노동자들이 주류였던 사업장에서 있었던 노동조합 운동 사례를 보면, 산업체 학교를 통해 노동자들이 집단화하여 노동조합 조직의 토대 역할을 한 경우도 있다. 이 연구에참여한 구술자들은 과거의 산업체 학교 취학 경험을 ‘희망 고문’이었고 지금은 ‘잊고싶은 상처’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향학열의 미충족, 계급상승 욕구의 미실현 때문이라기보다는, 아직도 여성 노동자 일반 및 산업체 학교 노동자를 낮춰 보는 사회적인식이 변하지 않은 상황에서 그들의 ‘생존을 위한 고투’와 ‘일상적 저항’이 제대로 평가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Since the government implemented the school system attached to industrial corporations in 1977, these schools served as important means to educate urban poor and rural children in Korea until the 1980s. In the labor-intensive industries of the light industry, it was the main axis of maintaining a low-wage-long-time labor system. These schools were labor control facilities rather than just educational institutions. The state and corporations controlled women laborers based on the family's gender discrimination educational ideology. This article delves into how 'labor-students' with multiple identities of women, laborers, students, and youth, survived and adapted to overcome the reality of alienation from the state / corporation / family. In Korean society, the student status rather than laborer status was considered to be “majority” and “normal” for teenage girls. 'Labor-students' were willing to endure the stress and suffering of physical and mental labor that accompanies work and study. By doing so, they aimed to fulfill the desire to become a normal person in society and become a part of the mainstream youth culture by becoming a student, not a laborer who could be called a minority group of society. This process needs to be interpreted as a way of survival to overcome the alienated reality not only in terms of class, but also patriarchal aspect by the state, family, and corporation. Although somewhat incomplete, it should be seen as a kind of daily resistance. This 'routine resistance' process also appeared in the aspect of inclusion and compliance with capital. However, in the case of the trade union movement in the workplace where the 'labor-students' were the majority after 'Laborers' Great Struggle in 1987', there were cases where the laborers were grouped through the schools attached to industrial corporations and served as a foundation of union organization. Oral research participants in this study now refer to the past school experience of the school attached to the industrial corporation as "a torture in hope" and "a wound to forget". It is not because of lack of desire for education and desire for class ascension. It is rather because of their painful struggle and daily resistance for survival are not properly evaluated in a situation where the social perception that despises women laborers and industrial school laborers has no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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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정 법률고문 퍼글러(Charles Pergler)의 생애 - 퍼글러 페이퍼를 중심으로 - KCI 등재

이택선

숭실대학교 역사문물연구소(구 숭실사학회) 숭실사학 제37집 2016.12 pp.285-317

...고문으로 한국에 파견되었다. 이는 법학자이자 변호사였던 퍼글러가 대륙법과 미국법 모두에 정통하여 일본법과 미국법 사이의 충돌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고 주일 체코 대사시절에는 소련과 외교협상을 담당한 경험이 있어 미군정이 좌우합작을 추진하고 있었던 당시 한국의 상황에 가장 적합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사회민주주의자로 출발하였으나 반소, 반공의 사상적 지향을 지니고 있었던 퍼글러는 미군정과 ‘한미법률협회’를 통해 한국에 미국법률과 자본주의 마인드를 이식하게 되었다. 하지만, 미군정이 적극적으로 일본이 남겨놓은 귀속재산을 처리할 수 없게 되자 이를 법적으로 해결하고 미군 철수 이후에도 한국의 자본주의 발달을 꾀하기 위한 작업이 그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던 홍진기 등을 통해 추진되기 시작하였다. 당시 퍼글러는 실질적인 사법결정권자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으나 1946년 3월과 1947년 7월에 미군정이 한국인들에게 행정권한을 대거 이양하였으므로 그동안 퍼글러의 역할과 작업은 부각될 수가 없었다. 예컨대, 퍼글러의 조언 속에서 미국이 한국에서 철수한 이후에도 한국인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민주주의 국가를 수립할 수 있는 역량이 축적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당시 그와 접촉하고 있었던 유진오를 중심으로 긴박하게 이루어진 제정과정을 통해 나타난 한국의 제헌헌법은 놀랍게도 체코의 제헌헌법과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의원내각제와 대통령 중심제의 성격이 혼합된 독특한 통치체제와 양원제 그리고 위헌법률 심사제도 등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따라서, 제헌헌법과 한국에 이식된 미국법률의 실체에 대한 규명을 위해서는 퍼글러가 판결했었던 판례들에 대해 기존 영인본과 사본들 간의 대조를 통해 살펴보는 한편 퍼글러의 조수로 한국사회에 먼저 소개된 프랭켈의 저작들과 비교하고 직접적으로 비교되고 있었던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미국의 도움을 받아 추진된 체코의 독립론과 제2차 세계대전이후 한반도에서 전개되고 있었던 한국 독립론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한 비교연구가 반드시 후속연구로 수행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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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식민지 지배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었던 체코는 청산리 대첩을 계기로 상해임시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 그리고 해방 직후 청산리대첩 당시 한국 독립군에게 무기를 판매한 체코의 가이다 장군과 정치적 동반자였던 퍼글러가 미군정의 법률고문으로 한국에 파견되었다. 이는 법학자이자 변호사였던 퍼글러가 대륙법과 미국법 모두에 정통하여 일본법과 미국법 사이의 충돌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고 주일 체코 대사시절에는 소련과 외교협상을 담당한 경험이 있어 미군정이 좌우합작을 추진하고 있었던 당시 한국의 상황에 가장 적합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사회민주주의자로 출발하였으나 반소, 반공의 사상적 지향을 지니고 있었던 퍼글러는 미군정과 ‘한미법률협회’를 통해 한국에 미국법률과 자본주의 마인드를 이식하게 되었다. 하지만, 미군정이 적극적으로 일본이 남겨놓은 귀속재산을 처리할 수 없게 되자 이를 법적으로 해결하고 미군 철수 이후에도 한국의 자본주의 발달을 꾀하기 위한 작업이 그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던 홍진기 등을 통해 추진되기 시작하였다. 당시 퍼글러는 실질적인 사법결정권자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으나 1946년 3월과 1947년 7월에 미군정이 한국인들에게 행정권한을 대거 이양하였으므로 그동안 퍼글러의 역할과 작업은 부각될 수가 없었다. 예컨대, 퍼글러의 조언 속에서 미국이 한국에서 철수한 이후에도 한국인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민주주의 국가를 수립할 수 있는 역량이 축적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당시 그와 접촉하고 있었던 유진오를 중심으로 긴박하게 이루어진 제정과정을 통해 나타난 한국의 제헌헌법은 놀랍게도 체코의 제헌헌법과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의원내각제와 대통령 중심제의 성격이 혼합된 독특한 통치체제와 양원제 그리고 위헌법률 심사제도 등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따라서, 제헌헌법과 한국에 이식된 미국법률의 실체에 대한 규명을 위해서는 퍼글러가 판결했었던 판례들에 대해 기존 영인본과 사본들 간의 대조를 통해 살펴보는 한편 퍼글러의 조수로 한국사회에 먼저 소개된 프랭켈의 저작들과 비교하고 직접적으로 비교되고 있었던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미국의 도움을 받아 추진된 체코의 독립론과 제2차 세계대전이후 한반도에서 전개되고 있었던 한국 독립론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한 비교연구가 반드시 후속연구로 수행되어야 할 것이다.

The Czechoslovakian and the Korean provisional government began to develop a closer relationship, as they both shared difficulties under colonial powers. After the Korean independence from Japan, Charles Pergler, the political companion of general Gaida, was dispatched to the U.S. military government in Korea as a legal consultant for the following reasons: first, he not only had knowledge in the civil law but also was familiar with the American common law; second, he had experiences in diplomatic negotiation with the Soviet Union as he served as the first ambassador of the Czechoslovak Republic in Japan. Hereafter, Pergler introduced the American legal curriculum and ideologies of capitalism into the Korean society through the activities of the Law Society of U.S.-R.O.K. (hanmibŏmnyurhyŏphoe). Pergler worked closely with Yu Jino who was one of the founding Korean members of the Law Society of U.S.-R.O.K. and led the drafting of the constitution. Surprisingly, the first constitution of the Republic of Korea was quite similar with that of the Czechslovak's. For instance, the two constitutions both had 1) unique governance system that had elements of both a presidential system and a parliamentary cabinet system, 2) bicameral system, and 3) standards of review of the constitution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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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과 심리적 외상

임정선

한국입법정책학회 입법정책 제7권 제1호 2013.06 pp.153-172

...고문으로 고통 받았던 피해자들의 심리적 외 상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고문과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심리 적 외상에 대해서 설명하고 치료자가 고문피해자를 치료할 때의 유의할 점을 개요하였다. 또한 고문으로 인한 심리적 외상의 심리 치료 접근 방식 중에 심층심리적인 외상치료 개입을 소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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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군사정권시대와 5⋅18민주화운동 등 한국사회가 민 주화되는 과정에서 고문으로 고통 받았던 피해자들의 심리적 외 상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고문과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심리 적 외상에 대해서 설명하고 치료자가 고문피해자를 치료할 때의 유의할 점을 개요하였다. 또한 고문으로 인한 심리적 외상의 심리 치료 접근 방식 중에 심층심리적인 외상치료 개입을 소개하였다.

This study elaborated the torture and its probable psychological trauma and summarized curer’s attentive notes for the treatment of the victims of torture to help understand psychological trauma for victims of torture in the course of Korea’s democratization including the era of the military governments and 5.18 Democratic Movement. Also, this study introduced intervention of depth-psychological traumatic treatment among psychological treatment approaches for psychological trauma owing to tor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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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문생활사로 본 언간과 한글고문서의 연구 방법 KCI 등재후보

백두현

국어사학회 국어사연구 제10호 2010.04 pp.41-72

...고문서를 어문생활사적 관점에서 어떻게 연구할 수 있는지 그 방법론에 대해 논하였다. 2장에서 ‘어문생활사’와 ‘국어생활사’라는 두 용어를 비교 분석하여 각 용어가 갖는 특성을 논하였다. ‘어문생활사’를 일반적 용어로 쓰고, 지역을 명시한 ‘한국어문생활사’라는 용어를 설정하였다. 그리고 후자를 줄여 국어교육의 차원에서 ‘국어생활사’라는 용어가 적절하다고 보았다. 그리고 어문생활사의 연구 대상은 어문생활의 여러 요소 중 생활과 밀착된 요소가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어서 어문생활사의 연구 방법에 대해 논하고, 연구 대상과 연구 방법을 결합하여 실제적 연구에 적용할 때 어떤 양상으로 실천될 수 있는지를 검토하였다. 3장에서는 언간과 구별되는 한글 고문서의 특성을 지적하였다. 그리고 한글 고문서에 대한 연구 절차 및 방법론을 논하였다. 한글 고문서에 대한 선행 연구 업적을 요약하고 몇몇 연구 사례에 대해 논하였다. 한글 고문서에 관한 연구는 매우 드문 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필자는 선행 연구 사례를 검토하여 앞으로의 한글 고문서의 연구 방향을 모색해 보려 하였다. 언간과 한글 고문서에 대한 국어사적 연구와 어문생활사적 연구가 앞으로 더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자료 정리와 방법론 수립이 절실히 요구된다. 이런 노력은 기존의 국어사 성과를 재창조함은 물론 한민족의 어문생활사 연구를 개척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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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이 논문에서 한글 편지(언간)와 한글고문서를 어문생활사적 관점에서 어떻게 연구할 수 있는지 그 방법론에 대해 논하였다. 2장에서 ‘어문생활사’와 ‘국어생활사’라는 두 용어를 비교 분석하여 각 용어가 갖는 특성을 논하였다. ‘어문생활사’를 일반적 용어로 쓰고, 지역을 명시한 ‘한국어문생활사’라는 용어를 설정하였다. 그리고 후자를 줄여 국어교육의 차원에서 ‘국어생활사’라는 용어가 적절하다고 보았다. 그리고 어문생활사의 연구 대상은 어문생활의 여러 요소 중 생활과 밀착된 요소가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어서 어문생활사의 연구 방법에 대해 논하고, 연구 대상과 연구 방법을 결합하여 실제적 연구에 적용할 때 어떤 양상으로 실천될 수 있는지를 검토하였다. 3장에서는 언간과 구별되는 한글 고문서의 특성을 지적하였다. 그리고 한글 고문서에 대한 연구 절차 및 방법론을 논하였다. 한글 고문서에 대한 선행 연구 업적을 요약하고 몇몇 연구 사례에 대해 논하였다. 한글 고문서에 관한 연구는 매우 드문 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필자는 선행 연구 사례를 검토하여 앞으로의 한글 고문서의 연구 방향을 모색해 보려 하였다. 언간과 한글 고문서에 대한 국어사적 연구와 어문생활사적 연구가 앞으로 더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자료 정리와 방법론 수립이 절실히 요구된다. 이런 노력은 기존의 국어사 성과를 재창조함은 물론 한민족의 어문생활사 연구를 개척할 수 있다.

A research methodology for studying Korean old letters(Eongan) and old documents was discussed in this paper from linguistic life history's point of view. In chapter 2, the two terminologies, 'linguistic life history' and 'life history of Korean language' were compared and analyzed. For general cases, the 'linguistic life history' was used, however, in local-specific cases, the term 'life history of Korean language' was used. The latter, 'life history of Korean language' is suitable for the aspect of Korean language education. The subject of linguistic life history research should be linguistic elements those are closely related to everyday life. Then the research methodology of linguistic life history and the investigation of practical aspects the methodology's application was discussed. In chapter 3, the characteristics of Korean old documents were distinguished from Korean old letters(Eongan). A research process and a methodology on Korean old documents were developed. Achievements of several selected previous studies on Korean old documents were summarized and examined. Now there are a few number of studies on Korean old documents. In respond to this situation, this paper tried to review these previous research and provide direction for future research on Korean old documents. Collecting research materials and establishing research methods on Korean language history and linguistic life history are seriously needed for studying Eongan and Korean old documents. We can expect the foundation of linguistic life history including the Korean language history can be established through these attemp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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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론역주(班固文論譯註)

이장휘

한국중국문학이론학회 중국문학이론 제10집 2007.08 pp.109-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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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고문피해 실태

변주나, 정남옥, 김윤태, 유양경

재외한인학회 재외한인연구 제16호 2006.07 pp.8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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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 해독에서 보이는 음운 분석 차이 고찰

전병철

개신어문학회 개신어문연구 제23집 2005.09 pp.99-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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