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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 디아스포라 네트워크와 국내 사회과학계의 함의: 한인 지식네트워크의 두뇌순환(Brain Circulation)을 위한 일 고찰 KCI 등재후보
재외한인학회 재외한인연구 제27호 2012.06 pp.129-176
...한인연구를 함에 있어서 재외한인단체 및 재외한인공동체에 관한 우수한 연구들은 매우 많지만 한인 지식인 네트워크나 한국계 인재의 현황에 대한 기초조사를 다룬 연구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이공계 쪽에서는 재미과학자협회 등을 통해 해외에서 자리 잡고 있는 학자들간의 활발한 활동도 엿볼 수 있으나, 특히 사회과학관련분야에서 도 크게 두드러지게 지식인 네트워크에 관해 연구한 것은 찾아 볼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기존 “한국학”의 범주에 속한 학술정보 외의 기타 사회과학분야 범주에 관한 정보는 전혀 정리되어있지 않은 점에 착안하여, 본 논문은 점증하는 글로벌 인구이동의 흐름 안에서 지식인사회의 인구이동과 그 영향에 대해 주목하고, 특히 유네스코 사회과학보고서에서 도 언급하고 있는 지역간 지식격차를 줄이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서 두뇌순환의 한국적 맥락을 생각해보고자 하는 시도이다. 유네스코 세계사회과학보고서의 내용을 비판적으로 천착하되, 우선 수집 가능한 자료를 토대로 한미경제학회, 한국사회학회, 한국문화인류학회 및 한국연구재단, 한국학중앙연구원으로부터의 관련 자료협조를 얻어 한국사회 과학계의 지식인 네트워크 내지는 지적교류의 특징을 정리, 분석하고, 사회과학자의 이동에 대한 전략적 접근을 통해 사회과학적 분석기술과 자료면에서 보다 충실한 비교연구가 가능한 차세대 사회과학자를 양성하기 위해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접근할 것을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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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한인연구를 함에 있어서 재외한인단체 및 재외한인공동체에 관한 우수한 연구들은 매우 많지만 한인 지식인 네트워크나 한국계 인재의 현황에 대한 기초조사를 다룬 연구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이공계 쪽에서는 재미과학자협회 등을 통해 해외에서 자리 잡고 있는 학자들간의 활발한 활동도 엿볼 수 있으나, 특히 사회과학관련분야에서 도 크게 두드러지게 지식인 네트워크에 관해 연구한 것은 찾아 볼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기존 “한국학”의 범주에 속한 학술정보 외의 기타 사회과학분야 범주에 관한 정보는 전혀 정리되어있지 않은 점에 착안하여, 본 논문은 점증하는 글로벌 인구이동의 흐름 안에서 지식인사회의 인구이동과 그 영향에 대해 주목하고, 특히 유네스코 사회과학보고서에서 도 언급하고 있는 지역간 지식격차를 줄이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서 두뇌순환의 한국적 맥락을 생각해보고자 하는 시도이다. 유네스코 세계사회과학보고서의 내용을 비판적으로 천착하되, 우선 수집 가능한 자료를 토대로 한미경제학회, 한국사회학회, 한국문화인류학회 및 한국연구재단, 한국학중앙연구원으로부터의 관련 자료협조를 얻어 한국사회 과학계의 지식인 네트워크 내지는 지적교류의 특징을 정리, 분석하고, 사회과학자의 이동에 대한 전략적 접근을 통해 사회과학적 분석기술과 자료면에서 보다 충실한 비교연구가 가능한 차세대 사회과학자를 양성하기 위해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접근할 것을 주장한다.
Most researches on Korean diaspora were mainly focused on overseas Korean communities and their settlement processes. This paper is more geared towards the newly emerging researches on the knowledge diaspora network, which developed in line with development programs of international organizations. Using the recent issue of World Social Science Report from UNESCO (2010) as a basic comparative framework, this paper examines the current status of Korean knowledge diaspora from the viewpoint of brain circulation in order to find a better way to tap the potentials of overseas Koreans.
다문화 호주사회의 문화적응과 민족의 고유한 스포츠문화 참가 : 한인 1.5-2세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KCI 등재후보
재외한인학회 재외한인연구 제27호 2012.06 pp.7-59
...한인 1.5-2세대 청소년들의 문화적응(Acculturation) 유형과 이와 관련된 인적 특성, 민족문화 정체성, 사회적 지지도(Social support) 요인에 따른 민족의 고유한 스포츠문화 참가 정도와 환경에 대한 차이에 알아보고자 하였다. 호주 시드니에 거주하는 458명의 한인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질문지 조사를 통해 수집된 자료는 빈도, 백분율, 평균, 표준편차, t검정, 일원변량분석, 위계적 다중회귀분석, 다중회귀분석, Pearson의 적률상관계수를 사용하여 분석하였다. 연구결과로 첫째, 문화적응 유형(동화, 통합, 분리, 주변화), 인적 특성(성별, 나이, 거주기간, 언어 구사력), 민족문화 정체성, 사회적 지지도는 부분적으로 유의한 상관관계를 나타냈다. 둘째, 응답자의 민족적 배경의 스포츠참가 빈도는 성별, 나이, 거주기간, 한국어 구사력(남자의 경우)과 한민족문화 정체성(여자의경우)에 따라 유의미한 차이가 있었다. 셋째, 응답자의 민족의 고유한 스포츠문화 참가 빈도는 동료 지지도(Peer support)에 따라 유의미한 차이가 있었으며, 문화적응 유형 추가 시 사회적 지지도 유의성은 사라지고 동화 정도에 따라 유의미한 차이가 있었다. 넷째, 응답자의 민족의 고유한 스포츠문화 참가 빈도와 참가 환경은 문화적응 유형에 따라 부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가 있다. 연구 결과는 호주 한인 1.5-2세대 청소년들의 한민족공동체 스포츠문화양식에 대한 이해와 주류문화와 자민족문화 적응에 대한 국내외 다문화스포츠문화 정책 수립에 활용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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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호주 한인 1.5-2세대 청소년들의 문화적응(Acculturation) 유형과 이와 관련된 인적 특성, 민족문화 정체성, 사회적 지지도(Social support) 요인에 따른 민족의 고유한 스포츠문화 참가 정도와 환경에 대한 차이에 알아보고자 하였다. 호주 시드니에 거주하는 458명의 한인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질문지 조사를 통해 수집된 자료는 빈도, 백분율, 평균, 표준편차, t검정, 일원변량분석, 위계적 다중회귀분석, 다중회귀분석, Pearson의 적률상관계수를 사용하여 분석하였다. 연구결과로 첫째, 문화적응 유형(동화, 통합, 분리, 주변화), 인적 특성(성별, 나이, 거주기간, 언어 구사력), 민족문화 정체성, 사회적 지지도는 부분적으로 유의한 상관관계를 나타냈다. 둘째, 응답자의 민족적 배경의 스포츠참가 빈도는 성별, 나이, 거주기간, 한국어 구사력(남자의 경우)과 한민족문화 정체성(여자의경우)에 따라 유의미한 차이가 있었다. 셋째, 응답자의 민족의 고유한 스포츠문화 참가 빈도는 동료 지지도(Peer support)에 따라 유의미한 차이가 있었으며, 문화적응 유형 추가 시 사회적 지지도 유의성은 사라지고 동화 정도에 따라 유의미한 차이가 있었다. 넷째, 응답자의 민족의 고유한 스포츠문화 참가 빈도와 참가 환경은 문화적응 유형에 따라 부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가 있다. 연구 결과는 호주 한인 1.5-2세대 청소년들의 한민족공동체 스포츠문화양식에 대한 이해와 주류문화와 자민족문화 적응에 대한 국내외 다문화스포츠문화 정책 수립에 활용될 것으로 기대한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investigate whether there is (i) a correlation among acculturation modes (assimilation, integration, separation, marginalization), demographic characteristics (gender, age, length of residence, language proficiency), ethno-cultural identity and social support (family, peer and general social support); (ii) difference in the frequency of ethnically-based sport participation according to demographic characteristics, ethno-cultural identity, social support and acculturation modes; and (iii) difference in ethnically-based sport participation environment according to acculturation modes. A questionnaire-based survey was carried out among 458 young Koreans who were staying in Sydney, Australia. The statistical method adopted for the data analysis were frequency, percentile, mean, standard deviation, t-test, one-way ANOVA, hierarchical multiple regression analysis, multiple regression analysis, and Pearson’s correlations. Major findings were as follows: 1) There was a partially significant relationship between acculturation modes, age, length of residence, language proficiency, ethno-cultural identity and social support factors. 2) There was a significant difference in the frequency of ethnically-based sport participation according to gender, age, length of residence, Korean language proficiency (male subjects only), and Korean-cultural identity(female subjects only). 3) There was a significant difference in the frequency of ethnically-based sport participation according to friend support, however, assimilation was the best predictor when social support factors were controlled. 4) There was a significant difference in the frequency and environment of ethnically-based sport participation according to assimilation, integration, and separation.
미국 한인여성 이주민의 인터넷이용 분석 : 온라인커뮤니티(MissyUSA)를 통한 정보공유와 트랜스내셔설 미디어문화 형성
한국소통학회 한국소통학회 세미나자료 다문화사회 소통과 인터넷의 역할 2012.06 pp.3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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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The Identity and Direction of Korean Literature in Canada Song, Myung-hee This article looks over where Korean literature in Canada tried to find their literature’s identity from Lee Seokhyun, Park Chungdo, and Park Minkyu’s reviews. In the earlier times of immigration, Korean literature in Canada could not get out of Korea and Korean literature, so called filiation. The reviews urge Korean literature in Canada to find new affiliation, Canadian literature, instead of Korean literature, filiation. By the way, it is faced with difficulties, like language barrier and power between Canadian mainline literary world, and Korean literary world as ethnic minority’s. Park Chungdo suggested a solution to the problems that was to have Korean Canadian who can speak English help them to create literature in English. But Park Minkyu realized that it was not just a linguistic problem. Because of the power between major white society and minor colored society, he thought, although Korean literature is created in local language, they can’t overcome easily glass ceiling. Anyways, Korean Canadian writers have found literary identity to pursue as a subcategory by getting out of Korean literature gradually. But is that desirable? Canada has a mosaic society, a multicultural society which ethnically, linguistically, and culturally diverse people live in harmony keeping their uniqueness. Therefore, they need harmony more between filiation and affiliation than cutting off with filiation. Especially, to make a mosaic society, complete cutting off with filiation is not desirable. Because many races in Canada should have their own uniqueness. Korean Canadians have already twofold identities. That is, they belong to two countries, Korea and Canada, but they can’t belong to the mainstream of any nation. From a marginal man’s position which Korean Canadians have, they can embody the problems that they can’t create works in Korean diaspora’s life, and consolidation and assimilation of two cultures. I think it is the direction of identity that Korean literature in Canada should pursue.
해외입양 한인 디아스포라 : 한국 내 주요 신문보도의 내용분석을 중심으로 KCI 등재후보
재외한인학회 재외한인연구 제26호 2012.02 pp.77-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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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의 목적은 해외입양인에 대한 신문보도의 내용분석을 통해 해외입양인에 대한보도태도를 파악하고 당면과제와 실태를 고찰하여 시사점을 도출하는데 있다. 연구방법은 2000년부터 2011년까지 약 10년간 2대 주요 신문인 조선일보와 경향신문들이 한국인의 시선에서 해외입양인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내용분석을 통해 살펴보았다. 분석대상은 두 신문의 해외입양인에 관한 논조와 주장이 담긴 논설 및 칼럼이었다. 기존연구의 검토를 통해 도출된 해외입양인에 관한 발생적 원인, 뿌리찾기와 정체성, 해외입양과 국내입양이라는 3가지 차원에서 개념화하여 분석을 시도하였다. 두 신문의 내용분석을 통해 산출된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해외입양인의 발생적 원인에 대한 논조를 살펴보면, 한국사회의 혈연중심의 문화와 남아 선호사상 때문에 여자아이와 장애아가 해외로 입양하는 사례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해외입양인은 90년대 중반 이후부터 2000년대에 걸쳐 한국사회에서는 고아수출이라는 부정적인 국제적 시선과 맞물려 대부분의 논조는 국내입양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또한 해외 입양인들이 겪고 있는 청소년기 한국사회에서 뿌리찾기와 정체성 혼란에 대한 해결책으로 한국사회의 관심과 정부지원, 이중국적부여와 적극적인 인재활용을 강조하는 주장이 많았다. 셋째, 2007년도에 해외입양인 제도가 국내입양우선제로 바뀌면서 국내외입양에 관한 논의들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특히 해외입양에서 국내입양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논조들이 등장했으나, 조선일보는 해외입양의 불가피성, 경향신문은 국내입양 분위기조성을 위한 미혼모문제 해결, 장애아에 대한 사회적 편견 줄이기, 국내입양에 대한법적 제도적 보완 등을 주장하였다. 시사점은 90년대 중반 이후 해외입양인들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면서 한국정부에서도 해외입양인에 대한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개발되었지만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한국정부의 시선차원이지 해외입양인 입장에서의 적용이나 활용이 부재하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This study aims to draw implications by understanding Koreans’ attitude toward overseas adoptees and considering their facing problems and actual conditions through an analysis of the reports of The Chosun Ilbo and The Kyunghyang Shinmun, nation’s major news media. In actual fact, the number of overseas adoptees to visit Korea has increased gradually since the mid-1990s although overseas adoptees has grown very attentive to Korea after 1988 Seoul Olympic Games. This is the reason why the research conduced an analysis of both newspapers reports after the 2000s. Since then, the Web site for overseas adoptees has been opened and the news on them have released because the Korean government legislated act on Overseas Koreans Foundation in 1997 and started to formally include overseas adoptees in the global Korean community. The interest in overseas adoptees is growing in Korea because of the rapid economic growth of Korea, Korean government continued interest in overseas Koreans, etc. In the research method, it compares and analyzes how The Chosun Ilbo and The Kyunghyang Shinmun speaking for conservative press and progressive press respectively look at overseas adoptees during about ten years, from 2000 to 2011. The objects of analysis are the tone of two newspapers, an editorial, and a column regarding overseas adoptees. Based on earlier studies, it shows differences between two newspapers’ reports and argument in three respects: causes of overseas adoptees, seeking their roots and identities, and international adoption and domestic adoption. The results of the research are as follows. First, in regard to causes of overseas adoptees, baby girls and children with disability have been sent overseas because of blood ties-oriented culture and the preference for male offspring in Korean society. Second, overseas adoptees are facing a negative international reputation which Korea is a orphan exporting country from the mid-1990s to the 2000s. In addition, overseas adoptees are seeking their roots in Korean society and experiencing identity confusion in adolescence. To handle the matter, it is emphasized Korean society interest, Korean government support, granting dual nationality, and making use of talented people. Third, the matter on international adoption and domestic adoption is under discussion in Korea since the domestic adoption priority system was imposed in 2007. In particular, the need for change international adoption into domestic adoption came to the fore. While The Chosun Ilbo asserts necessariness of international adoption, The Kyunghyang Shinmun asserts the solution of the unmarried mother problem, overcoming biases against children with disability, and legal institutional supplement policies on domestic adoption in order to produce an atmosphere of domestic adoption. In conclusion, Korean government has developed and executed various programs, such as follow-up management of overseas adoptees, homeland visiting experience program, overseas adoptees project, etc since 2000. But it could be pointed out a lack of a true understanding on overseas adoptees in these programs.
한국의 차세대 한인네트워크 사업에 대한 비판적 검토와 개선방안 KCI 등재후보
재외한인학회 재외한인연구 제26호 2012.02 pp.207-252
...한인사회와 주류사회의 연계성을 강화해야 한다. 셋째, 오프라인 대회가 지속적으로 관리되고 활용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온라인상의 네트워크로 연결되어야 한다. 온라인 매체에 친숙한 차세대의 선호를 반영하여 지역별, 직능별로 온라인 커뮤니티를 확대시켜야 한다. 마지막으로, 차세대 네트워크 발전을 위한 단계별 접근을 통해 차세대의 역량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차세대 사업을 현지화 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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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한국정부의 재외동포 차세대 네트워크 사업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네트워크 활성화를 위한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목적이다. 연구자는 느슨한 연결과 복잡계 네트워크로 대표되는 사회적 네트워크 이론의 관점에서 현재까지 진행된 한국정부의 재외동포 차세대 네트워크 사업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을 검토한다. 한국정부의 차세대 네트워크사업이 갖는 문제점으로는 초청행사 위주의 프로그램 운영, 참가자 사후관리 등 후속 프로그램의 부재, 신규네트워크 발굴 미흡, 분야·국가별 편중현상, 후속 조직화 미흡등을 지적할 수 있다. 향후 차세대 네트워크의 발전과 확산을 위해서 다음과 같은 개선방안이 필요하다. 첫째, 정부는 유기적인 사업추진이 되도록 하고 현지성을 강화해야 한다. 둘째, 느슨한 연결(weak ties)을 보이는 차세대 네트워크의 유연한 특성을 활용하여 현지한인사회와 주류사회의 연계성을 강화해야 한다. 셋째, 오프라인 대회가 지속적으로 관리되고 활용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온라인상의 네트워크로 연결되어야 한다. 온라인 매체에 친숙한 차세대의 선호를 반영하여 지역별, 직능별로 온라인 커뮤니티를 확대시켜야 한다. 마지막으로, 차세대 네트워크 발전을 위한 단계별 접근을 통해 차세대의 역량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차세대 사업을 현지화 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This paper aims at analysing on the Korea government’s policies on building network for overseas Korean second generations in terms of complex network and weak ties based on social network theories. Thus it is to draw the government’s policy alternatives for managing and supporting the networks. Korean government’s policies for building overseas young Korean networks show some limitations such as one-off thing invitation program, lack of follow ship programs for participants, failure in seeking and organizing new members, and over-concentration of network participants from the Americas. In this context, the author insists following measures for improvement of network projects. Firstly, the government should seek to reinforce localization of future generation networks and organically link the older generation Koreans to younger ones as well as Korean government and the next generations abroad. Secondly, as Granovetter supposed, the ‘weak ties’ networks shown among overseas Korean young peoples can play important roles in linking the older Korean societies to mainstreams ones. Thirdly, it is important to build the online networks as a hub of global Korean future generations who closely familar to IT and strengthen each communities based on their own business and interests. Finally, the government is to strengthen the competition powers of future generation in the world through stage by stage approaches and gradually transform the policies to local-oriented.
재외한인학회 회칙/재외한인학회 연구윤리규정/재외한인학회 편집위원회 및 논문심사 규정/원고제출, 심사절차 및 원고작성 지침/재외한인학회 학술행사 및 소식/재외한인연구 과월호 차례 KCI 등재후보
재외한인학회 재외한인연구 제26호 2012.02 pp.283-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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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American 1.5세의 독도수호운동과 한인민족주의의 변화 : 워싱턴 디씨 지역을 중심으로
한국구술사학회 구술사연구 제2권 2호 2011.12 pp.55-96
...한인 커뮤니티의 차세대인1.5세대가 결합하면서 한인 민족주의의 새로운 모습이 나타났다. 새롭게 등장한 한인 민족주의는 한국과는 달리 한국 계 미국인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통해 전유되었다. 이때 등장한 유력한 개념이 바로 시민 권이라는 발상이다. 다음으로 2007년에 있었던 미 하원의 군 ‘위안부’ 결의안(H.R. 121)을 통과시키는 과정에서 ‘인권’이라는 담론이 한인 커뮤니티로 편입되었다. 그 결과 이후 추진 되었던 독도수호운동은 시민권의 행사와 보편과 인권이라는 명분 하에 진행 될 수 있었다. 그러나 2011년 중순 들어 한국정부의 조용한 외교 방침에 의해 독도수호운동은 그 동력 을 상실하기 시작했다.그리고 이전 시기 독도수호운동에 매진했던 이들은 그들의 자산인- 시민권의 행사,인권이라는 명분을 가지고 새로운 운동으로의 전이를 생각하고 있다.그 결 과 탈북자 지원 문제가 새롭게 등장했다. 결과적으로 코리안 어메리칸의 정체성을 형성하 는 데 있어 한인 민족주의는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 다.그리고 새롭게 등장한‘인권’이라는 화두 앞에 코리안 어메리칸의 민족주의 역시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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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흔히 재미교포라고 불리는 코리안 어메리칸의 민족주의의 변화를 2008년부터 2011년까지 미국 워싱턴 디씨 지역에서 활발히 전개되었던 독도수호운동을 통해 살펴보고 자 했다.이 글은 당시 운동에 참여했던 분들에 대한 구술을 통해 작성되었고,부족한 부분 들은 문헌사료를 통해 보강했다. 미국 워싱턴 지역에서 활발하게 진행되었던 독도수호운동은 2008년 일본의 망언으로부 터 시작되었다.그리고 이 과정에서 한인 커뮤니티의 차세대인1.5세대가 결합하면서 한인 민족주의의 새로운 모습이 나타났다. 새롭게 등장한 한인 민족주의는 한국과는 달리 한국 계 미국인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통해 전유되었다. 이때 등장한 유력한 개념이 바로 시민 권이라는 발상이다. 다음으로 2007년에 있었던 미 하원의 군 ‘위안부’ 결의안(H.R. 121)을 통과시키는 과정에서 ‘인권’이라는 담론이 한인 커뮤니티로 편입되었다. 그 결과 이후 추진 되었던 독도수호운동은 시민권의 행사와 보편과 인권이라는 명분 하에 진행 될 수 있었다. 그러나 2011년 중순 들어 한국정부의 조용한 외교 방침에 의해 독도수호운동은 그 동력 을 상실하기 시작했다.그리고 이전 시기 독도수호운동에 매진했던 이들은 그들의 자산인- 시민권의 행사,인권이라는 명분을 가지고 새로운 운동으로의 전이를 생각하고 있다.그 결 과 탈북자 지원 문제가 새롭게 등장했다. 결과적으로 코리안 어메리칸의 정체성을 형성하 는 데 있어 한인 민족주의는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 다.그리고 새롭게 등장한‘인권’이라는 화두 앞에 코리안 어메리칸의 민족주의 역시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How 1.5 generation of Korean-Americans construct a discourse on Dokdo and how they act for this cause is different than 1st generation Korean Americans. While they continue to share the same source of information with the previous generation, they also reflect the current trends of local media and political circles in Washington. Moreover, the way they respond to the media and political circles (not emotionally but with reason has earned them respect as being a member of American society. The way in which the discourse on Dokdo is constructed is harmonious with the standard of the American worldview, placing democracy, human rights, universality and other values above other that different nations may value more. In that sense the reason why Korean - Americans were enraged with Japan regarding the Dokdo issue is, after all, because of ‘the loss from the rejection of universal values’. In other words, what Koreans want is to hear from Japan is ““I’m sorry”” with sincerity and to say, ““It’s okay!”” An apology from Japan, showing true thought and forgiveness are what Koreans are expecting as a preliminary stage for rational and peaceful historical reconciliation. Here is a simple question. How about Korean - Americans? Can we not expect the similar spirit and cause from them? Sure, we can. This is where there are both strengths and limitations in historical reconciliation between Korea and Japan. In 2000, the ratio of 1.5 generation Korean Americans constitutes 16-17percent, which is around 210,000 out of 1.2 million Korean – Americans. What about 2nd generation Korean- Americans? I believe that it is easier to expect more universal values from them. However, the issue of Dokdo is not a good starting point for them to help build up ‘their identity’. Since ‘Dokdo’ is an issue between Korea and Japan, it is important for 2nd generation Korean - Americans to keep in step with Korean values that can be very overwhelming for them to actually work together. For the universal value to become a rational alternative, there needs to be a group of people with versatility who can make it happen whom I believe are 1.5 generation Korean Americans. In terms of historical reconciliation between Korea and Japan, they can contribute to this cause. The 1.5 generation Korean - Americans have knowledge from both Korea and the US as a source of self-identification. With such knowledge they blend facts and Koreans’ sentiments, and cosmopolitan values correctly so that hopefully they might be able to suggest an alternative resolution to attaining universal values for Korea. In this respect, the ‘Dokdo protection movement’ started with a series of trends that looked as if it were an expression of ‘territorial nationalism’ that pursues the preservation of territory in an intense form. But upon further review, it has begun a grassroots movement where 1.5 generation Korean Americans have taken the stand against Japan.
영국 한인사회의 형성과 변화: 해외여행 자유화(1989) 이전을 중심으로 KCI 등재후보
재외한인학회 재외한인연구 제25호 2011.10 pp.137-172
...한인 거주지이자 유일한 한인 집거지가 있는 곳이다. 그러나 영국으로 이주한 한인의 역사 및 그 사회에 대한 연구는 사실상 전무한 형편이다. 본 연구는 영국 내 한인 이주자들에 대한 인터뷰 및 구득 관련 기초 자료를 중심으로, 영국으로의 한인의 이주 역사와 초기 한인사회 형성 과정을 규명하고 있다. 먼저 이주 시점 및 구성원의 성격 그리고 거시적 제약요인을 고찰하여, 영국으로의 한인 이주가 왜 제한되었는지를 분석하였다. 특히 한국과 영국의 이민정책은 한인 이주의 제약요인으로 작용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환경 변화는 한인의 영국 이주를 촉진하였고, 기초적인 영국내 한인사회 형성에 기여하였다.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 이전까지, 영국으로의 한인이 주는 크게 세 시기로 구분할 수 있고, 각 시기는 구성원의 변화와 그에 따른 한인사회의 변화가 나타났다. 그 결과 세계의 다른 지역으로의 이주와 구분되는 이주 역사 및 영국 한인사회만의 특이성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러한 독특한 변화를 통하여, 영국 내 한인사회 형성의 기초는 마련되었다. 한인사회가 형성된 후 1990년대 이후 영국 내 한인사회는 급격히 팽창하였고, 이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 시대 이주라 할 1990년대 이후의 영국 내 한인사회 연구는 추후 별도의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하여, 이 논문에서 는 제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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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유럽 최대의 한인 거주지이자 유일한 한인 집거지가 있는 곳이다. 그러나 영국으로 이주한 한인의 역사 및 그 사회에 대한 연구는 사실상 전무한 형편이다. 본 연구는 영국 내 한인 이주자들에 대한 인터뷰 및 구득 관련 기초 자료를 중심으로, 영국으로의 한인의 이주 역사와 초기 한인사회 형성 과정을 규명하고 있다. 먼저 이주 시점 및 구성원의 성격 그리고 거시적 제약요인을 고찰하여, 영국으로의 한인 이주가 왜 제한되었는지를 분석하였다. 특히 한국과 영국의 이민정책은 한인 이주의 제약요인으로 작용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환경 변화는 한인의 영국 이주를 촉진하였고, 기초적인 영국내 한인사회 형성에 기여하였다.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 이전까지, 영국으로의 한인이 주는 크게 세 시기로 구분할 수 있고, 각 시기는 구성원의 변화와 그에 따른 한인사회의 변화가 나타났다. 그 결과 세계의 다른 지역으로의 이주와 구분되는 이주 역사 및 영국 한인사회만의 특이성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러한 독특한 변화를 통하여, 영국 내 한인사회 형성의 기초는 마련되었다. 한인사회가 형성된 후 1990년대 이후 영국 내 한인사회는 급격히 팽창하였고, 이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 시대 이주라 할 1990년대 이후의 영국 내 한인사회 연구는 추후 별도의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하여, 이 논문에서 는 제외하였다.
In Europe, the largest Korean community is found in U.K. and the only Korean town is formed in New Malden, southeast of London. Nevertheless of demographic importance, a systematic research on the history and society of the Korean community has not been conducted yet. This paper is a preliminary research based on the intensive interviews of the 23 first-generation immigrants to U.K. It aims to reveal the socio-economic structure which limited the number of Korean migrants into U.K. Domestic factors such as strict passport release system and preference of ‘collective labour emigration policy’ of the Korean government were the main reason. In addition, immigration policy of the British government was severely strict to Korean immigrants. However, the numbers of Korean resident grew and finally formed an ethnic society. Three periods of history of migration of Koreans into U.K. were focused until 1989. In each period, members of immigrants were changed. At the result, ethnic life in the Korean society became changed, as well. Short-term residents such as business expatriates, overseas students and the government despatches were the main force in forming the immigrants society. Later however, perpetual residents as well as the British passport holders became the main members of the immigrants society. After the ‘liberation of foreign travel’ policy which was released from 1989, the environment of immigration to U.K. was considerably changed, and the ethnic society was also transformed into a very different shape. This paper is mainly focused on the history of the Korean immigration until 1989
미국 내 한인여성의 가정폭력 특징과 유형에 관한 탐색적 연구 : 피해 사례의 내용분석
한국임상사회사업학회 임상사회사업연구 제8권 제3호 2011.09 pp.51-75
...한인가정에서 일어나는 가정폭력의 특징과 유형을 알아보기 위한 것이다. 연구 질문으로 첫째, 미국 이민가족의 한인여성들이 경험하는 가정폭력에는 어떠한 특징들이 존재하는가? 둘째, 이민자로서의 미국 내 한인여성들이 경험하는 가정폭력에는 유형들이 존재하고 있는가? 있다면 각 유형들은 어떤 공통점 및 차이점을 나타내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러한 연구주제를 파악하기 위해서 미국 동부지역의 가정폭력 관련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는 기관에서 가정폭력문제로 도움을 청했던 한인 여성의 48개 사례에 대하여 내용분석과 질적 사례분석을 실시하였다. 분석 결과 언어, 문화, 그리고 이민 지위는 아내 학대와 폭력에 있어서 권력불균형을 이루는데 주요 요인이 되고 있었다. 이민 여성들에게 있어서 영어의 유창성 정도, 문화적 적응 정도, 그리고 영주권과 시민권 등의 이민지위를 획득하는 것은 이민자로서의 삶에 힘을 더하는 매우 중요한 기초가 되는 반면, 가해자들에게는 피해자들을 통제하기 위한 한 권력통제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결혼의 장소와 결혼 상태를 두 축으로 사례를 분류한 결과 미국 내 한인 여성들이 경험하는 가정폭력 사례들은 한국에서 결혼하여 미국으로 이주한 경우와 미국에서 배우자를 만나 결혼 한 경우에 그 특징이나 폭력 양상에 뚜렷한 경향성이 보여 졌으며, 미국에서 결혼한 경우의 초혼과 재혼을 다시 나누어 총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되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본 연구는 탐색적인 연구로서 미국의 한인 여성들이 경험하는 가정폭력의 주요 특징에 따라 가정폭력 부부들의 사례를 유형화 해봄으로써 가정폭력 예방을 위한 고위험 집단을 파악하고, 예방활동을 할 수 있는 기초 자료를 제시하는데 의의가 있으며, 갈수록 증가하는 이민가족들의 가정폭력 문제에 개입하는데 있어 실천적 함의를 제공하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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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의 목적은 미국의 한인가정에서 일어나는 가정폭력의 특징과 유형을 알아보기 위한 것이다. 연구 질문으로 첫째, 미국 이민가족의 한인여성들이 경험하는 가정폭력에는 어떠한 특징들이 존재하는가? 둘째, 이민자로서의 미국 내 한인여성들이 경험하는 가정폭력에는 유형들이 존재하고 있는가? 있다면 각 유형들은 어떤 공통점 및 차이점을 나타내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러한 연구주제를 파악하기 위해서 미국 동부지역의 가정폭력 관련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는 기관에서 가정폭력문제로 도움을 청했던 한인 여성의 48개 사례에 대하여 내용분석과 질적 사례분석을 실시하였다. 분석 결과 언어, 문화, 그리고 이민 지위는 아내 학대와 폭력에 있어서 권력불균형을 이루는데 주요 요인이 되고 있었다. 이민 여성들에게 있어서 영어의 유창성 정도, 문화적 적응 정도, 그리고 영주권과 시민권 등의 이민지위를 획득하는 것은 이민자로서의 삶에 힘을 더하는 매우 중요한 기초가 되는 반면, 가해자들에게는 피해자들을 통제하기 위한 한 권력통제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결혼의 장소와 결혼 상태를 두 축으로 사례를 분류한 결과 미국 내 한인 여성들이 경험하는 가정폭력 사례들은 한국에서 결혼하여 미국으로 이주한 경우와 미국에서 배우자를 만나 결혼 한 경우에 그 특징이나 폭력 양상에 뚜렷한 경향성이 보여 졌으며, 미국에서 결혼한 경우의 초혼과 재혼을 다시 나누어 총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되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본 연구는 탐색적인 연구로서 미국의 한인 여성들이 경험하는 가정폭력의 주요 특징에 따라 가정폭력 부부들의 사례를 유형화 해봄으로써 가정폭력 예방을 위한 고위험 집단을 파악하고, 예방활동을 할 수 있는 기초 자료를 제시하는데 의의가 있으며, 갈수록 증가하는 이민가족들의 가정폭력 문제에 개입하는데 있어 실천적 함의를 제공하여 주고 있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identify the characteristics of domestic violence in Korean American community. Research questions are 1) which factors place main roles to onset of domestic violence in Korean American community? 2) Are there any prevalent types of domestic violence in immigrant community? To identify critical factors, we analyzed cases who received victims' assistance intervention programs. 48 domestic violence victims' case records were analyzed and categorized systematically by content analysis and qualitative methods. The victims sought help, participated in intake interviews and received victims' assistance services anytime between years 2005 to 2006 through local ethnic community center. The result of this study shows that are: interaction of language proficiency, cultural adjustment, and secured immigrant status is considered as strong foundation to gianl power to live as immigrants, while for the abusers utilized as weapons to control and to exploit the victims. And also male dominance is also addressed as a main role for domestic violence in Korean American. Through comparative analysis, three major types of domestic violence are categorized; ‘patriarchal traditional couples’, ‘young married couples with imbalanced power’. ‘hasty remarried couples’ can be identified in accordance with place of marriage and marital status. This study suggests a in-depth understanding of risk factors and types of Korean American victims of domestic violence. It further suggests that practical and sensitive helping strategies reflecting unique conditions of Asian victims in various immigrant communities are needed based on the different types and characteristics of each group. The study helps to create prevention and intervention applicable to risk groups in order to end domestic violence.
북미 한인교회의 공동체 형성과 예배와 설교의 역할에 관한 연구 KCI 등재
한국실천신학회 신학과 실천 제28호 2011.09 pp.111-141
...한인사회에서 그 중심 역할을 해왔으며 이민역사와 애환을 함께 하면서 구심점 역할을 해왔다. 이는 종교적 측면뿐만 아니라 민족성과 고유문화의 공유와 다음 세대에 전하는 문화 창달의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다른 공동체에서도 그렇지만 특히 이민교회에서는 공동체를 형성하고 발전시켜 온 원동력이 예배와 설교였다. 교회는 설교와 함께 서기도 하고 무너지기도 하며, 예배는 교회의 생명의 강수를 공급해 주기 때문이다. 북미 한인교회는 한인 사회의 공동체 형성에 중요한 해 왔으며, 그것을 통해 위로, 격려, 비전과 사명을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역할을 해왔다. 그러한 공동체 형성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예배와 설교였다. 표본으로 정한 교회를 참여관찰방법을 통해 살펴본 바로는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인 설교와 교회의 자기표현이자 영광의 찬송인 예배를 통해 그리스도인 됨의 사명을 고취하고, 공동체의 체질의 변혁을 가져왔으며, 이민생활에서 오는 애환을 치유하고 회복하며, 서로 돕는 공동체의 모습을 이루어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예배와 설교는 신앙공동체로 하여금 지속적 혁신을 통해 그 사명을 수행하도록 하는 동인이 되고 있었다. 북미한인교회가 민족공동체를 형성하여 고국을 떠나 생활하는 디아스포라 이민자들에게 조국의 문화 창달뿐만 아니라 개인의 신앙 형성과 그곳의 주류 문화에 적응하고 진출할 수 있도록 지대한 역할을 해왔지만 작금에 들어서 분열과 갈등의 양상이 적지 않음을 감안할 때 공동체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해온 예배의 설교는 분명한 방향성을 가져야 한다. 그것은 예수 중심 목회 지향성, 복음과 삶의 변혁 지향성, 디아스포라 사명 지향성, 복음의 이야기 나눔과 돌봄 사역 지향성을 견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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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앙은 떠나라는 명령으로부터 시작되어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의 모임인 공동체를 통해 형성되고 발전된다. 성삼위 하나님께서는 창조 사역을 통해 공동체를 세우시고, 그것을 확대하고 발전시킬 것을 명령하셨다. 인간의 타락 이후 십자가를 통해 공동체를 회복하셨고 초대교회는 아름다운 공동체의 모습을 세상 가운데 세워간다. 하나님은 교회를 세상을 향한 ‘대안 공동체’로 부르셨으며, 그 부르심의 여정에서 ‘하나님의 말씀’이었으며, 모든 여정은 언제나 부르신 분께 경배와 영광을 올려드리는 ‘예배’로 연결된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임인 공동체는 그것이 가지는 실재를 깨우치고, 그것을 형성, 발전, 유지하는데 있어서 예배와 설교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이러한 표식과 실재는 고국을 떠나 디아스포라 공동체로 살아가고 있는 이민교회에서 선명하게 찾아볼 수 있다. 그동안 북미의 이민교회는 이미 초기부터 한인사회에서 그 중심 역할을 해왔으며 이민역사와 애환을 함께 하면서 구심점 역할을 해왔다. 이는 종교적 측면뿐만 아니라 민족성과 고유문화의 공유와 다음 세대에 전하는 문화 창달의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다른 공동체에서도 그렇지만 특히 이민교회에서는 공동체를 형성하고 발전시켜 온 원동력이 예배와 설교였다. 교회는 설교와 함께 서기도 하고 무너지기도 하며, 예배는 교회의 생명의 강수를 공급해 주기 때문이다. 북미 한인교회는 한인 사회의 공동체 형성에 중요한 해 왔으며, 그것을 통해 위로, 격려, 비전과 사명을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역할을 해왔다. 그러한 공동체 형성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예배와 설교였다. 표본으로 정한 교회를 참여관찰방법을 통해 살펴본 바로는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인 설교와 교회의 자기표현이자 영광의 찬송인 예배를 통해 그리스도인 됨의 사명을 고취하고, 공동체의 체질의 변혁을 가져왔으며, 이민생활에서 오는 애환을 치유하고 회복하며, 서로 돕는 공동체의 모습을 이루어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예배와 설교는 신앙공동체로 하여금 지속적 혁신을 통해 그 사명을 수행하도록 하는 동인이 되고 있었다. 북미한인교회가 민족공동체를 형성하여 고국을 떠나 생활하는 디아스포라 이민자들에게 조국의 문화 창달뿐만 아니라 개인의 신앙 형성과 그곳의 주류 문화에 적응하고 진출할 수 있도록 지대한 역할을 해왔지만 작금에 들어서 분열과 갈등의 양상이 적지 않음을 감안할 때 공동체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해온 예배의 설교는 분명한 방향성을 가져야 한다. 그것은 예수 중심 목회 지향성, 복음과 삶의 변혁 지향성, 디아스포라 사명 지향성, 복음의 이야기 나눔과 돌봄 사역 지향성을 견지해야 한다.
The church is the community of God’s people gathered by God to worship and work. The Christian faith began with the calling of God and has been developed by the community of people who has been called by God. God calls it as an alternative community to the cold and barren world. The calling of God includes “imperative and promise, summons and assurance.” God speaks his powerful word directly to the people of God and they followed the Word. On the way they worshiped God―the call for building the community connected worship. The Korean American church has played an important role forming the national community in foreign lands. Historically, the Korean church in the North America has provided a wide range of support to the newly arrived immigrants. It has been immigrant centers for physical and spiritual aid to immigrants. In particular, preaching and worship has played an important role for providing vision and motivation to build a faithful community in the Korean immigrant society of North America. According to ethnograpical studies about some Korean churches we found that preaching and worship has played a central role for forming the community and finding their mission as diaspora community. They helped and influenced the renovation of the church as God’s missional community and vision for a biblically functioning community. The church as a community has reached out to some people in need as in spiritual confusion, and problems in foreign land as an immigrant and helped them properly. The Korean church in the North America should contribute to the other racial community and participate into multi-cultural settings in order to share its asserts.
국제한인문학회임원진/휘보/회칙/『국제한인문학연구』연구윤리규정 KCI 등재후보
국제한인문학회 국제한인문학연구 제8호 2011.08 pp.365-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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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 한인의 한국으로의 재이주와 정착분석: 제도 및 운용실태를 중심으로 KCI 등재후보
재외한인학회 재외한인연구 제24호 2011.06 pp.279-301
...한인들의 영주 귀국 및 정착 과정에서 운용하고 있는 법제도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데 있다. 9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사할린 한인들의 영주 귀국 사업에 의해 2010년까지 약 3,700명이 한국에 정착하였다. 한국 측의 시각은 대체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할린 한인들에게 따뜻한 동포애를 보여준다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그러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실제 상황은 크게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느끼는 큰 문제는 한국에서의 경제적인 어려움과 자손들에 대한 그리움이다. 이 두 가지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사할린 한인 문제의 법제화가 절실하며, 한인 1세와 그 자손들이 함께 생활하거나 자유롭게 사할린과 한국을 오갈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이 문제는 ‘사할린 한인 지원에 관한 특별법’의 제정과 이중국적제의 도입 혹은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의 유연한 적용을 통하여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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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의 목적은 현재 한국정부가 사할린 한인들의 영주 귀국 및 정착 과정에서 운용하고 있는 법제도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데 있다. 9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사할린 한인들의 영주 귀국 사업에 의해 2010년까지 약 3,700명이 한국에 정착하였다. 한국 측의 시각은 대체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할린 한인들에게 따뜻한 동포애를 보여준다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그러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실제 상황은 크게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느끼는 큰 문제는 한국에서의 경제적인 어려움과 자손들에 대한 그리움이다. 이 두 가지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사할린 한인 문제의 법제화가 절실하며, 한인 1세와 그 자손들이 함께 생활하거나 자유롭게 사할린과 한국을 오갈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이 문제는 ‘사할린 한인 지원에 관한 특별법’의 제정과 이중국적제의 도입 혹은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의 유연한 적용을 통하여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examine the problems of legal frameworks concerning the Sakhalin Koreans’ re-immigration and settlement and to figure out possible solutions. Thanks to the re-immigration and settlement programme of Korean government about 3,700 Sakhalin Koreans came back to their mother country. According to a recent survey conducted in Sakhalin Koreans’ settlement, they suffer from financial difficulties and loneliness. To solve these two problems Korean government must allow them to live together with their descendants and to visit freely Sakhalin island by adopting laws concerning these problems. Two legal frameworks are worthy of notice. The one is to adopt “Special Law on Providing Sakhalin Koreans with Support” and the other is to make partial amendment to “Act on the Immigration and Legal Status of Overseas Koreans.”
생존자의 회상을 통해서 본 스탈린 탄압의 비극: 최초의 한인 해군장교, 최 파벨 페트로비치(최선학) 가족을 중심으로 KCI 등재후보
재외한인학회 재외한인연구 제24호 2011.06 pp.117-171
...한인 해군장교였던 최 파벨 페트로비치(Choi Pavel Petrovich, 최선학, 1900∼1938)와 그 가족구성원들의 가족사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필자는 연구과정에서, 첫째는 최 파벨의 1917년 러시아혁명 이후 내전기(1918∼1922) 동안의 항일 빨치산투쟁과 1920∼30년대 스탈린 시기 해군장교로서의 활동 과정을 살펴 보았다. 둘째는 최 파벨의 부모와 10형제들의 행적 역시 살펴보았다. 필자는 이를 위해 주로 최 파벨의 생존가족들이 작성한 다량의 가족사 회상수기(回想手記)와 러시아국립 해 군기록보존소에 있는 해군당국의 최 파벨 복무관련 원자료들을 일부 활용했다. 최 파벨은 내전기에 한인빨치산 투쟁을 전개해 나가며 극동 항일운동의 대부였던 아 버지 최재형의 항일정신을 계승해 나갔다. 이후 그는 1926년 레닌그라드 푸룬제(Frunze) 해군군사학교 졸업 후 소비에트 군대 최초의 한인 해군장교가 되어 소련전역의 바다를 누비며 활동했다. 하지만 내전기 전투에서 큰형이 전사하고, 1920년에는 아버지 최재형 이 비명횡사하며 가족의 비극이 시작되었다. 최 파벨 또한 해군장교로서 스탈린 정권의 탄압으로 1938년 10월 17일에 카자흐스탄에서 죽음을 당했다. 비슷한 시기에 그의 10명 의 형제들과 매제, 자형들도 스탈린 정권의 탄압으로 대부분 죽거나 일부만이 겨우 목숨을 건졌다. 최 파벨의 비극적인 가족사는 ‘항일의병-빨치산투쟁-스탈린 탄압’으로 이어지는 20세기초 극동한인의 삶의 한 단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또한 증언과 회상기록 자료를 활용한 미시사적인 연구를 통해서 스탈린 정권의 전형적인 소수민족 탄압정책의 일면들 (잔악성, 부당성, 불법성)을 생생히 살펴보는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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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본 논문에서 근현대 시기 극동에서 비극적인 삶을 살아가야 했던 소비에트 붉 은군대 최초의 한인 해군장교였던 최 파벨 페트로비치(Choi Pavel Petrovich, 최선학, 1900∼1938)와 그 가족구성원들의 가족사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필자는 연구과정에서, 첫째는 최 파벨의 1917년 러시아혁명 이후 내전기(1918∼1922) 동안의 항일 빨치산투쟁과 1920∼30년대 스탈린 시기 해군장교로서의 활동 과정을 살펴 보았다. 둘째는 최 파벨의 부모와 10형제들의 행적 역시 살펴보았다. 필자는 이를 위해 주로 최 파벨의 생존가족들이 작성한 다량의 가족사 회상수기(回想手記)와 러시아국립 해 군기록보존소에 있는 해군당국의 최 파벨 복무관련 원자료들을 일부 활용했다. 최 파벨은 내전기에 한인빨치산 투쟁을 전개해 나가며 극동 항일운동의 대부였던 아 버지 최재형의 항일정신을 계승해 나갔다. 이후 그는 1926년 레닌그라드 푸룬제(Frunze) 해군군사학교 졸업 후 소비에트 군대 최초의 한인 해군장교가 되어 소련전역의 바다를 누비며 활동했다. 하지만 내전기 전투에서 큰형이 전사하고, 1920년에는 아버지 최재형 이 비명횡사하며 가족의 비극이 시작되었다. 최 파벨 또한 해군장교로서 스탈린 정권의 탄압으로 1938년 10월 17일에 카자흐스탄에서 죽음을 당했다. 비슷한 시기에 그의 10명 의 형제들과 매제, 자형들도 스탈린 정권의 탄압으로 대부분 죽거나 일부만이 겨우 목숨을 건졌다. 최 파벨의 비극적인 가족사는 ‘항일의병-빨치산투쟁-스탈린 탄압’으로 이어지는 20세기초 극동한인의 삶의 한 단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또한 증언과 회상기록 자료를 활용한 미시사적인 연구를 통해서 스탈린 정권의 전형적인 소수민족 탄압정책의 일면들 (잔악성, 부당성, 불법성)을 생생히 살펴보는 기회가 되었다.
This study looked into the tragic life of the first Korean Naval Officer in the Soviet Union, Choi Pavel Petrovich(Seon-Hak Choi, 1900-1938), and his family history living in modern and contemporary period in the Far East. The research looked through Choi Pavel’s partisan struggle against Japan during the civil war(1918-1922) after the Russian Revolution and his activities as a naval officer in the Stalin government(1920-1930) as well as Choi Pavel’s family members including his parents and ten brothers. To conduct this research, it referred the family memoirs written by living family members and some data from the Russian State Naval Archive. Choi Pavel inherited the resistance spirit to Japan from his father, Jae-Hyung Choi, who was the leader of anti-Japanese movement. After graduating from the Leningrad Navy Academy named Frunze in 1926, he became the first Korean naval officer in the Soviet Union and played active parts throughout seas of Russia. However, the tragedy comes to his family with his eldest brother’s death at the battle during the Russian civil war followed by his father’s sudden death in 1920. Moreover, in October 17, 1938, Choi Pavel died by Stalin’s terror at Kazakhstan. And in the same period, his brothers, elder and younger brothers-in-law also died and only some of his family members survived from Stalin’s terror. Choi Pavel’s tragic family history provides a look at the face of the life of Koreans who lived in the Far East in the early 20th century, which is characterized by resistance to Japan, partisan struggles and Stalin’s terror. And through the research using testimony and recorded reminiscences, we could see vivid examples of Stalin government’s repressive measure(cruelty, iniquity, and illegality) to minor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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