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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평화연구학회 학술회의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대회
  • 발행기관
    한국평화연구학회 [The Korean Association of Peace Studies]
  • 간기
    부정기
  • 수록기간
    2011 ~ 2016
  • 주제분류
    사회과학 > 정치외교학
  • 십진분류
    KDC 340 DDC 320
많이 이용된 논문 (최근 1년 기준)
No
1

본 논문은 오늘날 동북아시아 국제 정세에 있어서 동아시아 공동체 실현이 대두되고 있는 상황에서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이 지니고 있는 가치와 중요성의 인식을 바탕으로 앞으 로의 동아시아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을 중점적으로 연구하였다. 안중근은 환경적 요인과 시대 적 배경상황을 통해 본인만의 이상향적인 평화사상을 제시하였는데 이는 안중근이 살았던 당 시 제국주의 침략자인 일본의 또 다른 ‘동양평화론’을 반박할 수 있었고, 더 나아가 오늘날 지 역평화 공동체인 유럽연합과 동아시아 공동체에 있어서 커다란 시사점과 이와 비교・분석적 연구를 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제시하였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안중근의 ‘동양평화론’과 청취 서 등 여러 안중근의 평화사상이 깃들여진 자료들에서 동아시아 삼국의 평화공동체 실현목적 과 구체적 실현방안까지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어떻게 동아시아 공동체가 진행될 것 인지에 대해 관심 있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밝히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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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수:20회 유교와 동아시아문화공동체

邢麗菊

한국평화연구학회 한국평화연구학회 학술회의 2012 하계 국제세미나 2012.06 pp.347-353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동아시아공동체는 동아시아의 제 나라가 어떠한 공동 조건과 공동 이익 하에 결성되는 단체적 조직이며, 역사적 문화전통을 바탕으로, 각 나라 내부의 다양성과 차이성을 전제로 이루어진 창조적, 통합적 체제라고 한다. 문화는 인간이 환경에 적응되는 산물이니, 각 지역공동체가 나름대로의 환경 하에 자기의 문화를 창출하고, 문화의 지역적 차이를 형성하였다. 동아시아의 주요 나라인 한중일 삼국은 地緣관계로 옛날부터 밀접한 무역왕래와 문화교류를 유지해왔으며, 그들 간의 문화가 서로 수용, 침투하여 이 땅에서 특색 있는 문화전통을 형성하였다. 유교문화가 동아시아문화의 바탕이다. 廣義적 유교문화는 중국 본토에서 자라나 일본과 한반도 등 동아시아 나라에 유입되어 수용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동아시아문화는 유교문화의 복제가 아니다. 유교문화는 동아시아 각국의 주도적 문화로 발전되는 시기가 많이 차이난다. 중국의 경우, 기원전 2 세기 漢武帝가 “파출백가, 독존유술”의 施行을 기점으로 하였다. 한국의 경우, 14 세기에 조선왕조가 주자학을 국가의 통치이념으로 만들 때부터이고, 일본은 17 세기에 도쿠가와 막부가 주자학을 관학을 높일 때부터이다. 이러한 유교문화공동체는 14-15 세기부터 점차 형성되어 19 세기까지 존재하였다. 동아시아유교문화공동체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고 있다. 첫째, 유교윤리를 일상생활의 윤리로 삼는다. 둘째, 가정의 가치를 중시한다. 셋째, 단체정신을 강조한다. 넷째, 사회질서를 강구하여 사회의 和合을 추구한다. 동아시아문화공동체의 구축에 있어 유교의 和諧사상은 철학적 기반을 제공해 주고 있다. 和諧는 中和와 適度의 상태이며, 和而不同과 求同存異를 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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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수:12회 변증법 : 발전의 논리학 --통일의 특징이 변증법이다--

한국평화연구학회

한국평화연구학회 한국평화연구학회 학술회의 2011 하계 국제세미나 2011.06 pp.142-149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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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수:12회 안중근의 생애와 <동양평화론>의 현대사적 의미

김동규

한국평화연구학회 한국평화연구학회 학술회의 2010 동계 학술세미나 2010.12 pp.415-424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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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수:11회 북한 인권실태와 개선방안

윤여상

한국평화연구학회 한국평화연구학회 학술회의 2008 하계 학술세미나 2008.06 pp.19-36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북한인권 논의는 과거와 현재 북한에서 발생하고 있는 부끄러운 사 건들에 대한 진실을 규명하고 희생자에 대한 명예회복과 구제, 유 사한 희생자 발생을 예방하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다. 따라서 북한 인권운동은 과거청산 운동이며, 진실규명 운동이며, 희생자의 명예 회복 운동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북한인권운동은 향후 남북관계의 개선과 민족 구성원의 삶의 질을 제고시키려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의 미래를 준비하는 미래지향적 운동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 인권문제는 북한의 지배체제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체 제붕괴를 우려하는 북한당국이 자발적으로 인권정책에 의미 있는 변화를 취할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단기간에 획기적인 개선이 이루어지기는 어려울 지라도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국제적 관심과 개선을 위한 요구와 압력이 증대되고 있으므로 점진적인 개선은 이 루어질 것으로 보인다.북한의 정치․경제적 특수성에 대한 고려가 자칫 인간의 기본권 실현이라는 인류의 인도적 가치를 훼손하고, 반인륜적 행위를 묵인하는 결과를 초래해서는 안 될 것이다. 북한 에 대한 장기적인 인권개선 조치를 추구하더라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심각한 사안들에 대해서는 단호히 개선 요구를 해야 한다. 왜냐 하면 북한에는 여전히 지구상 최악의 열악한 인권상황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국제사회의 북한인권 개선 노력의 과정에서 북한의 인권실태에 대한 객관적인 조사와 지속적인 모니터링은 여 전히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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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수:9회 남북한의 분단외교와 통일외교

조철호

한국평화연구학회 한국평화연구학회 학술회의 2012 동계 학술세미나 2012.12 pp.10-18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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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수:8회 중국의 화평발전과 동아국제관계

김진호

한국평화연구학회 한국평화연구학회 학술회의 2014 춘계 학술세미나 2014.03 pp.27-47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본 논문의 연구목적은 중국이 후진타오 집권 시기 정부와 학자들이 주장하던 ‘화평굴 기’에서 ‘화평발전’으로 개명된 중국의 대외전략의 핵심이 어디에 있는가를 따지는데 그 목적이 있다. 중국의 발전이 주변국이나 경쟁국에 위협이 된다는 일본과 서구의 주장이었 던 ‘중국위협론’에 대응하기 위해 ‘화평굴기’라는 말이 나왔다는 전략적 분석도 있지만, 중 국의 대외적 발전 단계가 ‘도광양회’, ‘유소작위’에 이어 조금 더 자신감 있는 중국의 모습 을 주변에서 긍정적으로 인식하게 하려는 의도로 ‘화평굴기’라는 수사가 나왔다고도 하다. 그러나 인접국을 포함한 외부세계나 혹은 강대국을 성장하려는 중국의 경쟁국가에게 부 정적인 중국의 이미지를 줄 수 있다는 담론에 따라 ‘화평발전’이라는 말로 수정됐다는 얘 기도 있고, 혹은 지도자 그룹간의 이견의 차이로 이 ‘화평굴기’가 관철되지 못했다는 얘기 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후진타오 집권 초기 중국 중앙방송국(CCTV)에서 기획한 강대국 의 흥망성세를 중국에 맞게 설명해 가는 ‘대국굴기(大國崛起)’라는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중국의 부흥과 발전에 대한 담론을 갖은 적도 있다. 또한, 이와 관련된 책으로 ‘대국굴기’, ‘부흥지로(復興之路)’라는 서적들도 맞이했었다. 그리고 2008년 북경올림픽의 개막식을 통 해 중국이 원하는 세계의 모습을 중국 신화시대에서 진시황의 통일, 중국의 4대 발명 및 명대 정화의 아프리카 원정선단 등을 통해 중국의 부흥에 대한 중국정부의 의도가 있는 중국인들의 꿈을 이해할 수 있었다. 사실, 중국이 19세기중엽부터 외세의 침략으로 어려 운 시기를 겪으며 근대를 맞이했고, 또 많은 사상가들과 정치가들의 투쟁으로 만주족 정 부에 대한 혁명적 타도와 외세의 침략에 대한 전쟁도 치르고, 또한 내전까지 치르면서 중 국인들이 선택한 국가를 선택하는 과정과 국가 성립 후의 체제가 안정되어가는 일정기간 중원을 위주로 한 중국의 영토에서 참으로 힘든 역사의 소용돌이를 거쳤다. 대외 전쟁과 내전, 식량문제 그리고 사상문제 등으로 중국인들은 자신들이 인고의 역사를 겪으며 지내 왔다. 아편전쟁이 시작된 1840년에서 만청정부가 붕괴하고 중화민국이 성립된 1912년까 지, 그리고 일제가 만주를 침략하고 다시 북경을 침략한 1931년을 시작으로 1937년 본격 화된 항일전쟁, 또 1921년 상해에서 공산당이 창당된 후부터의 국민당과 공산당의 암투와 혈전 그리고 일본이 패전한 후에 중국 중원의 맹주를 놓고 벌어진 지방군벌세력을 흡수 하며 밀고 당기는 전투로 민족끼리의 전쟁으로 변한 국민당과 공산당의 내전, 게다가 사 회주의 중국 성립 이후의 국가 체제성장과정에서의 경제적 빈곤과 가뭄 그리고 문화대혁 명 등등……. 이제 중국이 잘 살게 된 것은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이 시작되기로 정한 1978 년 후, 다시 1992년의 덩샤오핑의 ‘남순강화’를 통해서이다. 즉, 저자의 기억으로 북경과 상해 광주를 1989년부터 오가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중국인들이 잘살게 되기 시작한 것 은 2000년 이후의 일로 기억된다. 아마도 2008년 올림픽을 전후하여 그 경제성장의 과실 을 본격적으로 얻게 된 것으로 본다. 저자가 북경대학을 졸업하던 1998년에도, 대만에서 취업하여 중국을 오가던 2003년까지고 중국 대도시의 변화는 크지 않았다고 본다. 올림 픽 전후로 중국 대도시들의 발전과 그 경제성장의 결과는 몸으로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달라지고 있다. 즉, 중국인이 이제 어는 정도 자신감을 찾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와 흐름을 같이하는 ‘화평발전’은 중국인들이 근 170년이나 기다리다 한 그들의 염원 이라고 본다. 이제 중국의 발전은 더욱 견고하고 선명해지고 있다. 중국의 인구나 시장규 모는 중국발전에 긍정적인 효소로 작용하고 있다. 과거 대만 금문도(金門島)에서 장교로 근무하던 대만 동부해안 이란(宜蘭) 출신 시카고대학교 경제학 박사이자 학자인 북경대 학의 린이푸(林毅夫)가 중국발전을 긍정적으로 얘기할 때 그리 믿은 사람들은 별로 없다. 그러나 그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세계은행 부총재를 역임했고, 북경대학을 나와 북경대학 부총장 겸 교육부 차관을 하던 하오핑(郝平)은 UNESCO 총재로 발령을 받았다. 하드웨 어적인 측면이나 소프트웨어적인 측면으로 봐도, 중국 경제의 규모, 소비시장의 규모, 경 제력, 군사력 그리고 전 세계에 분포한 중국의 인재 그리고 강인한 통치력을 갖고 있는 집권당이자 정부이자 군대인 공산당을 보더라도 중국이 발전하리라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단지, 이것이 평화적인 발전인지 군사력에 기반을 둔 무력적인 발전인지는 미리 장담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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