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은 만주국의 건국 이데올로기인 ‘민족협화’를 선전하는 데 이용된 도시였다. 하얼빈은 또한 제정 러시아 시대에 만들어진 도시로, 만주국 시대에는 백계 러시아인이 많이 거주했다. 이들을 포함해 다양한 민족들이 어울려 산다는 이미지 구현과 국제성을 널리 알리는 데 하얼빈은 항상 이야기되는 도시였다. 그렇다면 이러한 선전처럼, 재만 중국인 작가들의 시각에도 하얼빈은 그럴까. 만주국의 대표적 작가의 하나인 爵靑의 작품을 통해서 재만 중국인에게 보여진 하얼빈은 어떠한 양상이었는지를 본고는 살피고자한다. 재만 중국인 작가가 그린 하얼빈은 근대화․도시화의 명암이 분명한 곳이다. 네온사인으로 유명한 埠頭區는 중국인 밀집 지구 傅家甸의 슬럼(‘狹街’․‘陋巷’․‘쓰레기더미’라는 용어로 말해지는)과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 민족별․계급별로 분할된 하얼빈. 누구보다도 더 예리한 시선으로 爵靑은 근대적 도시의 어두운 면을 그리면서, 당시의 하얼빈을 선전하던 국제성과 이국정조에 대해서 비판적 재해석을 시도한다. 하지만 1940년대 하얼빈을 배경으로 한 작품에서 爵靑은 민족협화에 대한 기대를 보여주는 작품을 남겼는데,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평가할 것인가가 앞으로의 과제라고 할 수 있다.
哈尔滨是一个白系俄罗斯人建立的都市, 所以都市裏面有很多俄罗斯的风趣.比如中央大寺院․art nouveau样式建筑等等. 满洲国打着“王道乐土"和“民族协和"的口号出台, 满洲国政府利用这样哈尔滨的风光, 宣传满洲国的‘民族协和’的口号和自己的国际性. 那麽, 哈尔滨是真的搞好民族协和的空间吗? 在满中国人作 家们也都想过这样吗? 通过满洲国代表的作家爵青所写的小说, 本稿要分析在满作家们来描写的哈尔滨都市的特性在哪儿. 那个特徵到底是意味着什麽? 在满中国人作家们通过对被惨无人道的统治阶级压榨的农民·女性·城市底层民众·贫穷的人等的赤裸裸的描写,如实地揭露出了满洲国所主张的“王道乐土"的虚伪性。本稿的分析对象即爵青小说也是这样. 他所创作的都市意象很鲜明. 他常常把中国人密集地区用 ‘狭街’ ․ ‘陋巷’ ․ ‘垃圾堆’等辞儿来形容了. 这个表现是跟埠头区的霓虹灯光景很反差, 对比太甚了. 对于哈尔滨的描写, 如此不同, 不是民族协和的都市空间. 这样的创作形态就是根据他创作上的倾向和经验上的差异来演展的.
기존연구의 재만조선시인의 범주에는 기준 없이 윤동주, 이학성, 함형수, 송철리, 천청송, 윤해영 등을 다루었다. 본 연구에서는 한반도에서 태어나 거류 목적으로 만주로 건너 가서 일정기간을 체류하면서 조국이 광복되면서 다시 한반도로 돌아온 거류형 시인들을 재만조선시인 범주에 추가 포괄시켰다. 그들로는 김조규, 유치환, 백석, 박팔양, 김달진, 서정주, 백석, 이육사 등이 있다. 거류형 시인들의 시작품에서 나타난 만주는 중층적이면서도 다의적인 의미로 해석된다. 서정주에게 만주는 기대가 무너져 내리는 하늘뿐인 텅 빈 공간으로, 유치환에게는 거칠고 외롭고 암담하고 절망적인 광야이자 절명지이고 절도로, 김조규에게는 식민지 이주민들의 비극적인 삶의현장과 공간으로, 이육사에게는 조국 광복을 꿈꾸며 기상을 드높이는 훈련터전이자 사상 실천지로, 박팔양과 윤해영에게는 오족협화와 낙토만주로, 유치환, 김달진, 윤해영에게는 고토의 공간으로, 백석에게는 자연과 합일하고 여러 종족이 어울러 화합하는 축제적 신시의 깊은 뜻을 내포하고 있는 공간이었다.
以往的在满朝鲜诗人范畴的研究只包括了在满洲出生的尹东柱,在满洲生长定居的沈连洙、李旭等诗人。但本文包括了从韩半岛移住到满洲,在满洲住到韩半岛被解放,再回到韩半岛的诗人。这里包括柳致环、徐廷柱、金朝奎、朴八阳、尹海荣、金达镇、白石等移住诗人。本文针对这些移住诗人进行了对满洲的认识。他们的满洲认识分为亡命和生存的生活空间和概念性的象征空间。
적어도 지난 400년 동안, 만주는 투쟁의 공간이었다. 漢族과 만주족, 청과 러시아의 갈등이 있었고, 중국은 러시아를 비롯한 유럽 여러 열강과 이곳에서 충돌하였다. 조약을 체결하였다. 유럽의 여러 열강과 일본은 자원이풍부하면서도 인구가 희박하게 분포되어 있는 이 지역에 대한 권리를 요구하였다. 이에 만주에 대한 이권 투쟁이 전개되었는데, 이는 1890년대 하얼빈을 중심으로 한 중국동부철도가 건설되며 절정에 달했다. 한편 하얼빈은 공식적으로는 중국과 러시아가 공동으로 관리하는 행정구역이었지만, 1917년 러시아 혁명이전까지 러시아가 지배하고 발전시킨 도시이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기 러시아의 유산이 적지 않다. 하얼빈 20세기 역사는 도시의 정체성과 식민지 유산에 대한 통제로 인해 발생한 몸부림이기도 했다. 이 논문은 이러한 하얼빈의 정체성에 대한 논쟁이 21세기 초에도 계속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하고자 마련되었다. 다만 이전까지 중국의 중앙 · 지방 정부는 하얼빈 식민지의 역사를 부정하고 제거하고자 했지만, 이제는 그러한 과거를 하얼빈의 경제발전을 위한 포석으로 사용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1990년대의 새로운 추세를 기반으로 하얼빈의 관료들은 세계의 문화적 · 경제적 분야에서 경쟁력을 얻기 위한 도구로 하얼빈의 비중국적인 과거를 재조명하고 있다.
Manchuria has been for at least 400 years a contested land. In the 17th century, it was a zone of contact between Han Chinese and Manchus, who eventually moved south and conquered all of China, and between the Manchus’ Qing dynasty and the expanding Russian empire. The first treaties between a Chinese and a European state were concluded in the region, establishing the Sino‐Russian border. Two hundred years later, China, Russia, and Japan competed to claim this resource‐rich, sparsely populated region. Russian influence and interest in the region reached a peak in the construction of the Chinese Eastern Railway, centered on the virtual colony of Harbin, founded in the 1890s. Although technically a joint administration of the Chinese and Russian states, Harbin existed in its first two decades―until the Bolshevik revolution of 1917―was ruled and developed by Russians, and the legacy of that era remains. Much of Harbin’s 20th‐century history revolved around struggles over the city’s identity, and also struggles for control of the city’s colonial legacy. This paper suggests that the competition over Harbin’s identity continues to evolve in the early 21st century. After many decades of denying and dismissing Harbin’s colonial past, local, regional, and national Chinese governments are now exploiting that past as an asset for the city’s economic development. Building on trends that first emerged in the 1990s, Harbin’s Chinese rulers are now turning to the city’s non‐Chinese past as a means of competing in a global cultural and economic environment.
본고에서는 광개토왕과 장수왕대 요동지역의 고구려 불교가 어떠하였는 를 밝혀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우선 고구려가 요동지역을 확보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그런 다음, 요동성에 세워진 육왕탑 관련 기록을 검토하였다. 그런 속에서 ‘고려’라는 국명에 담긴 의미와 함께 ‘성왕’이 갖는 역사적 의미도 제시하고자 하였다. 나아가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광개토왕과 장수왕대를 지나면서 발전했을 요동지역의 불교계 동향이 갖는 고구려적인 의미도 제시하려고 하였다. 이러한 검토는 광개토왕대 평양에 9사를 창건한 것이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도 함께 제시하면서 설명되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분석 이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국내성을 중심으로 한 고구려 불교계 동향과 평양지역을 중심으로 한 불교계 동향이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밝혀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다음의 연구에서는 이러한 부분을 밝히는데 주안점을 두고자 한다.
本稿旨在试说明廣開土王和長壽王代遼東地区高句麗佛敎的存在发展状况。为此, 作者在对高句丽確保辽东地盘的过程作了细查之后, 又检讨了遼東城育王塔的相关记錄, 从而对国名“高麗”和“聖王”这两个词所包含的历史意义提出了自己的意见。在此基础之上, 作者进一步就廣開土王和長壽王代,高句丽对辽东地区佛教发展的影响意义提出了看法,同时认为, 还需提示说明廣開土王代在平壤創建九寺的意义这部分内容,研究才能算作完整。作者相信,以上内容如果能得到圆满的分析,以国内城为中心的高句丽佛教发展和以平壤为中心的高句丽佛教发展的共同點和差異點, 就能够得到很好的阐明。所以, 作者将以阐明此部 分作为以后研究的着眼點。
한국 근대소설에 재현된 만주는 식민지의 외부이면서 조선의 연장인 ‘사건적 장소(site événementiel)’이며, 이주 조선인의 정주에의 욕망과 식민지조선인의 근대 초극에의 열망을 시연해볼 수 있는 가능성의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소설의 주체는 비주권적 존재이면서 주권을 지향하는, 비초극적 식민지인이면서 초극을 지향하는 분열된 정체성으로 인해 갱생되고자하며 만주는 그러한 갱생의 공간, 새로운 주체성 정립의 공간으로 표상된다.
Manju, which represented in Korean modern novels, is 'site événementiel', the outside of a colony and extension of Joseon, and has a meaning a space having possibility that can demonstrates the desire of immigrating Koreans to settle and of colonial Koreans to overcome modernism. The subject of the novels is to be revived by the separated identity, which is an existence having no sovereignty and aiming at sovereignty and which is subjugated colonial people and aiming at conquest, and Manju is represented a space of such revival where new subjectivity is established.
「합숙소의 밤」은 조선의 대표적 프롤레타리아 문학자이자 이론가인 한설야의 초기작품으로 만주일일신문(1927.1.26~27)에 일본어로 발표된 텍스트와 조선지광(1928.1)에 한국어로 발표된 텍스트가 있다. 문학습작기에 자연주의문학을 모방하여 창작된 일본어판 「합숙소의 밤」은 엿보기를하는 남자 주인과의 거친 성욕을 그린 자연주의계열 소실이다. 그에 반해그 1년 후에 같은 제목으로 투쟁의식을 전면에 내세우고 발표한 한국어판「합숙소의 밤」은 ‘만주’ B시 탄광의 조선인 광부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고발적으로 그리고 있는 프롤레타리아문학이다. 본고에서는 이 두 텍스트가발표된 시기의 정세적, 문단적 상황을 배경으로 같은 「합숙소의 밤」이라는 제목을 붙여, 푸순탄광이라는 같은 장소를 이야기의 공간적 배경으로 하는 두 텍스트가, 그 내용도 표현언어도 완전 다르다는 것을 문제시하였다. 나아가 텍스트에 산재돼 있는 실제의 사건들을 추적하여 작가의 정치적 의도를 보다 명확하게 파악하고, ‘만주국’ 이전, 조선의 프롤레타리아문학자에게 있어서 ‘만주’라는 공간이 갖았던 의미를 밝혔다. 공간적인 배경은 같은 ‘만주’의 탄광촌으로 하면서도 일본어판에서는 그곳이 ‘만주’라 단정할 수 없을 정도 로 ‘만주’라는 토포스가 갖는 의미는 희박했다. 그에 반해 한국어판에서 ‘만주’의 ‘탄광왕국 B시’는 조선인 탄광노동자가 파두제라는 이중착취의 고용제도하의 일본인 감독 밑에서 일하는 억압/피억압의 공간으로 그려지고 있었다. 또한 ‘만주’는 5.30사건에서 시작되어 중국 전토에 퍼진 반자본주의・반제국주의운동이 일어난 현장이었고, 그 속에서 조선인(‘나’)가 지도적 위치를 점해서 활동하는 장이었다. 그리고 펑위샹과 장쭤린이 각각 일본과 소련의 힘을등에 업고 대결하는 전장이었고, ‘불령선인’의 무장독립항쟁과 일본제국군의 ‘토벌’이 펼쳐지는 장이었다. 한설야는 이러한 ‘만주’에서의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민족과 국가의 경계선을 넘어서는 반자본주의・반제국주의의 연대를 한국어판 「합숙소의 밤」 속에 반복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1927년에 발표된 일본어판에서 ‘만주’는 소박한 문학적 모티프에 지나지 않았지만, 1928년에 발표된 한국어판에서 ‘만주’는, 민족・계급투쟁의 장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만주’는 다양한 힘이 모여 길항・영합하면서 교차하고, 다양한 전쟁과 전투가 전개되는 ‘초국가적 공간’이기 때문에야말로 조선에서는 표현・실현할 수 없는 탈국가・탈민족적인 연대, 인터내셔널한 프롤레타리아트(또는 피억압민족의 민중)의 단결과 혁명을 외칠 수 있는 공간으로 존재한다. 이렇게 다양한 힘이 중층적으로 교차하는 ‘만주’라는 토포스는 한설야에게 ‘만주’를 적극적으로 그리게하는 요인이 되었음과 동시에, 조선을 배경으로는 그릴 수 없는, 정치적으로 제약된 한계를 돌파하는 수단으로 기능했던 것이다.
「合宿所の夜」は朝鮮の代表的なプロレタリア文学者・理論家である韓雪野の初期作品で、満洲日日新 [1927年1月26日~27日] に日本語で発表されたテクストと 朝鮮之光 [1928年1月] に韓国語で発表されたテクストがある。文学習作期に自然主義文学を模倣して創作した日本語版「合宿所の夜」は、覗き見をする男を主人公に、荒々しい性欲を描いた自然主義系列の小説である。それに対し、その一年後に同じ題目で闘争意識を前面に出して発表した韓国語版「合宿所の夜」は、「満洲」のB市炭鉱の朝鮮人坑夫たちの劣悪な労働環境を告発的に描いているプロレタリア文学である。本稿では、この二つのテクストが発表された時期の情勢的、文壇的状況を踏まえた上で、同じ「合宿所の夜」という題目が付され、撫順炭鉱という同じ場所を物語の空間的な背景にする二つのテクストが、その内容も表現言語も全く異なるということを問題にした。さらに、テクストに散りばめられた、実際の事件・事象を追跡していくことで、作家の政治的な意図をより明確に読み取り、「満洲国」以前、〈朝鮮〉のプロレタリア文学者にとって〈満洲〉という空間がもった意味を明らかにした。空間的な背景を同じく「満洲」の炭鉱街にしながらも、日本語版においてはそこが「満洲」であると確定できないほど、「満洲」というトポスのもつ固 有の意味は希薄であり、ある炭鉱の「合宿所」という具体的な物語の現場として存在するだけであった。 それに対して、韓国語版において「満洲」の「炭鉱王国B市」は、朝鮮人炭鉱労働者が「把頭制」という二重搾取の雇用制度のなか、日本人の監督の下で働く抑圧/被抑圧の空間として描かれている。また、「満洲」は五・三〇事件に刺激され、中国全土に広がった反資本主義・反帝国主義運動が起こっている現場であ り、そのなかで朝鮮人 [「私」]が指導的な位置を占めて活動する場であった。それにまた「満洲」は、馮玉祥と張作霖がそれぞれ日本とソ連の力を背負って対決する戦場で、「不逞鮮人」の武装独立抗争と日本帝国軍の「討伐」が繰り返される場でもあった。前節で確認したように、韓雪野はこのような「満洲」における歴史的事実を背景に、民族や国家の境界線を越えた反帝国主義・反資本主義の連帯を、韓国語版「合宿所の夜」のなかで反復的に提示している。 このように 「満洲」 という場は素朴な文学的モチーフから民族・階級闘争の場へと、その描かれ方が変化している。韓国語版において、「満洲」は大きな意味をもつ。「満洲」は様々な力が集まり、拮抗・迎合しながら交差し、様々な戦争と闘争が展開する「超国家的空間」であるがゆえに、朝鮮では表現・実現できない脱国家・脱民族的な連帯、インターナショナルなプロレタリアート [または被抑圧民族の民衆] の団結と革命が叫ばれるに相応しい空間なのである。このような多様な力が重層的に交錯する「満洲」というトポスは、韓に「満洲」を積極的に描かしめる要因であると同時に、朝鮮をもってしては描けない、政治的に制約された限界を突破する手段としても機能したのである.
러일, 만몽, 몽몽의 대결 - 노몬한(할힌 골) 전투 70주년 기념 학회 참관기 -
만주학회 만주연구 제9집 2009.12 pp.24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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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학회 회칙/만주학회 연구윤리 및 연구윤리위원회 규정/심사 및 간행규정/투고 요령/임원명단/편집위원회/만주학회 연구윤리위원회/학회 소식
만주학회 만주연구 제9집 2009.12 pp.254-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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