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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근대 만주의 도시공간과 문화정치

爵靑 소설에 나타난 하얼빈의 도시 이미지
작청 소설에 나타난 하얼빈의 도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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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만주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만주연구 바로가기
  • 통권
    제9집 (2009.12)바로가기
  • 페이지
    pp.7-36
  • 저자
    최정옥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119162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원문정보

초록

한국어
하얼빈은 만주국의 건국 이데올로기인 ‘민족협화’를 선전하는 데 이용된 도시였다. 하얼빈은 또한 제정 러시아 시대에 만들어진 도시로, 만주국 시대에는 백계 러시아인이 많이 거주했다. 이들을 포함해 다양한 민족들이 어울려 산다는 이미지 구현과 국제성을 널리 알리는 데 하얼빈은 항상 이야기되는 도시였다. 그렇다면 이러한 선전처럼, 재만 중국인 작가들의 시각에도 하얼빈은 그럴까. 만주국의 대표적 작가의 하나인 爵靑의 작품을 통해서 재만 중국인에게 보여진 하얼빈은 어떠한 양상이었는지를 본고는 살피고자한다. 재만 중국인 작가가 그린 하얼빈은 근대화․도시화의 명암이 분명한 곳이다. 네온사인으로 유명한 埠頭區는 중국인 밀집 지구 傅家甸의 슬럼(‘狹街’․‘陋巷’․‘쓰레기더미’라는 용어로 말해지는)과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 민족별․계급별로 분할된 하얼빈. 누구보다도 더 예리한 시선으로 爵靑은 근대적 도시의 어두운 면을 그리면서, 당시의 하얼빈을 선전하던 국제성과 이국정조에 대해서 비판적 재해석을 시도한다. 하지만 1940년대 하얼빈을 배경으로 한 작품에서 爵靑은 민족협화에 대한 기대를 보여주는 작품을 남겼는데,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평가할 것인가가 앞으로의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중국어
哈尔滨是一个白系俄罗斯人建立的都市, 所以都市裏面有很多俄罗斯的风趣.比如中央大寺院․art nouveau样式建筑等等. 满洲国打着“王道乐土"和“民族协和"的口号出台, 满洲国政府利用这样哈尔滨的风光, 宣传满洲国的‘民族协和’的口号和自己的国际性. 那麽, 哈尔滨是真的搞好民族协和的空间吗? 在满中国人作
家们也都想过这样吗? 通过满洲国代表的作家爵青所写的小说, 本稿要分析在满作家们来描写的哈尔滨都市的特性在哪儿. 那个特徵到底是意味着什麽? 在满中国人作家们通过对被惨无人道的统治阶级压榨的农民·女性·城市底层民众·贫穷的人等的赤裸裸的描写,如实地揭露出了满洲国所主张的“王道乐土"的虚伪性。本稿的分析对象即爵青小说也是这样. 他所创作的都市意象很鲜明. 他常常把中国人密集地区用 ‘狭街’ ․ ‘陋巷’ ․ ‘垃圾堆’等辞儿来形容了. 这个表现是跟埠头区的霓虹灯光景很反差, 对比太甚了. 对于哈尔滨的描写, 如此不同, 不是民族协和的都市空间. 这样的创作形态就是根据他创作上的倾向和经验上的差异来演展的.

목차

국문초록
 1. 들어가기
 2. 하얼빈의 공간구획
  1) 키타이스카야의 네온사인: 근대의 명암
  2) 끝없이 이어진 어두운 슬럼? 혹은 쓰레기더미?
 3. ‘민족협화’의 ‘하얼빈’을 그리다
 4. 나가기
 參考文獻
 中文摘

저자

  • 최정옥 [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연구원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만주학회 [The Manchurian Studies Association]
  • 설립연도
    1998
  • 분야
    인문학>역사학
  • 소개
    만주는 우리들에게 전설의 땅입니다. 19세기말까지 조선의 식자들에게 외면되었던 이곳은 신채호선생에 의해 민족의 발상지로, 한민족 역사의 중심무대로 나타났던 곳이고, 해방전 많은 지사들이 독립운동을 벌인 곳입니다. 또한 남북한 지도자들을 잉태한 곳이기도 합니다. 만주는 어떤 의미에서 한국현대사의 블랙박스에 해당하는 곳입니다. 이 중요한 곳의 많은 부분이 가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만주의 의미는 한국과의 관계를 훨씬 뛰어 넘는 것입니다. 그 동안 만주는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전공자들로부터도 철저하게 외면당했던 학문의 변방입니다. 기실 이 곳은 지난 수백년간 동아시아 변동의 핵이었습니다.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는 여러 융합을 시험했습니다. 유목문화와 유교문화, 혹은 티벳불교와 회교, 유교, 혹은 여러 민족의 접합을 시도, 이것을 토대로 세계최대의 영토를 구축했습니다. 그리고 19세기말 이 곳은 흥기하는 러시아와 기타 서양열강, 그리고 일본 세력이 마주친 접점이었습니다. 특히 일본은 이 곳을 손에 넣으면서 1930년대의 기록적인 번영을 구가했고, 나아가 대동아공영과 서양과의 최종전을 계획했습니다. 당시 일본이 이 곳에 투자한 세계적 수준의 중화학단지는 전후 중국의 중공업단지로 고스란히 이어졌습니다. 만주는 중국 국공내전 최후의 쟁패가 결정된 곳이기도 합니다. 만주에서의 승리가 아니었다면, 오늘날의 중국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19세기 말부터 1945년까지 이곳은 한족, 만주족, 러시아인, 조선인, 일본인, 몽골인들이 같이 거주한 가히 인종전시장이었습니다. 그야말로의 국제도시 하얼빈에는 이들뿐만 아니라, 유태인, 프랑스인, 독일인, 폴랜드인, 우크라이나인, 타타르인들도 섞어 살았습니다. 편협한 민족경계를 넘는 담론이 구사된 곳이었습니다. 제한적인 수준이며, 결국 실패로 끝났지만 오늘날 세계화의 개념 비슷한 것이 제시된 곳이기도 합니다. 이렇듯 만주는 간단하지 않은 곳입니다. 근년에 만주를 전공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주학회를 결성했습니다. 전공배경도 중국사, 일본사, 역사사회학 등에 두루 걸쳐지지만, 만주의 중요성을 받아들이는, 그래서 평생 만주연구에 신명을 바치겠노라고 선언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간행물

  • 간행물명
    만주연구 [Journal of Manchurian Studies]
  • 간기
    반년간
  • pISSN
    1738-3668
  • 수록기간
    2004~2011
  • 십진분류
    KDC 912 DDC 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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