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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논문

광개토왕 장수왕대 요동지역의 고구려 불교
廣開土王和長壽王代遼東地区的高句麗佛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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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만주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만주연구 바로가기
  • 통권
    제9집 (2009.12)바로가기
  • 페이지
    pp.93-116
  • 저자
    남무희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119165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원문정보

초록

한국어
본고에서는 광개토왕과 장수왕대 요동지역의 고구려 불교가 어떠하였는 를 밝혀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우선 고구려가 요동지역을 확보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그런 다음, 요동성에 세워진 육왕탑 관련 기록을 검토하였다. 그런 속에서 ‘고려’라는 국명에 담긴 의미와 함께 ‘성왕’이 갖는 역사적 의미도 제시하고자 하였다. 나아가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광개토왕과 장수왕대를 지나면서 발전했을 요동지역의 불교계 동향이 갖는 고구려적인 의미도 제시하려고 하였다. 이러한 검토는 광개토왕대 평양에 9사를 창건한 것이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도 함께 제시하면서 설명되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분석
이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국내성을 중심으로 한 고구려 불교계 동향과 평양지역을 중심으로 한 불교계 동향이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밝혀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다음의 연구에서는 이러한 부분을 밝히는데 주안점을 두고자 한다.
중국어
本稿旨在试说明廣開土王和長壽王代遼東地区高句麗佛敎的存在发展状况。为此, 作者在对高句丽確保辽东地盘的过程作了细查之后, 又检讨了遼東城育王塔的相关记錄, 从而对国名“高麗”和“聖王”这两个词所包含的历史意义提出了自己的意见。在此基础之上, 作者进一步就廣開土王和長壽王代,高句丽对辽东地区佛教发展的影响意义提出了看法,同时认为, 还需提示说明廣開土王代在平壤創建九寺的意义这部分内容,研究才能算作完整。作者相信,以上内容如果能得到圆满的分析,以国内城为中心的高句丽佛教发展和以平壤为中心的高句丽佛教发展的共同點和差異點, 就能够得到很好的阐明。所以, 作者将以阐明此部
分作为以后研究的着眼點。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고구려의 요동지역 확보
 3. 광개토왕의 육왕탑 건립
 4. 요동지역의 불교계 동향
 5. 맺음말
 參考文獻
 中文摘要

키워드

고구려 불교 승랑 육왕탑 성왕 高句麗佛敎 僧朗 育王塔 聖王

저자

  • 남무희 [ 南武熙 | 국민대학교 국사학과 강사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만주학회 [The Manchurian Studies Association]
  • 설립연도
    1998
  • 분야
    인문학>역사학
  • 소개
    만주는 우리들에게 전설의 땅입니다. 19세기말까지 조선의 식자들에게 외면되었던 이곳은 신채호선생에 의해 민족의 발상지로, 한민족 역사의 중심무대로 나타났던 곳이고, 해방전 많은 지사들이 독립운동을 벌인 곳입니다. 또한 남북한 지도자들을 잉태한 곳이기도 합니다. 만주는 어떤 의미에서 한국현대사의 블랙박스에 해당하는 곳입니다. 이 중요한 곳의 많은 부분이 가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만주의 의미는 한국과의 관계를 훨씬 뛰어 넘는 것입니다. 그 동안 만주는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전공자들로부터도 철저하게 외면당했던 학문의 변방입니다. 기실 이 곳은 지난 수백년간 동아시아 변동의 핵이었습니다.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는 여러 융합을 시험했습니다. 유목문화와 유교문화, 혹은 티벳불교와 회교, 유교, 혹은 여러 민족의 접합을 시도, 이것을 토대로 세계최대의 영토를 구축했습니다. 그리고 19세기말 이 곳은 흥기하는 러시아와 기타 서양열강, 그리고 일본 세력이 마주친 접점이었습니다. 특히 일본은 이 곳을 손에 넣으면서 1930년대의 기록적인 번영을 구가했고, 나아가 대동아공영과 서양과의 최종전을 계획했습니다. 당시 일본이 이 곳에 투자한 세계적 수준의 중화학단지는 전후 중국의 중공업단지로 고스란히 이어졌습니다. 만주는 중국 국공내전 최후의 쟁패가 결정된 곳이기도 합니다. 만주에서의 승리가 아니었다면, 오늘날의 중국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19세기 말부터 1945년까지 이곳은 한족, 만주족, 러시아인, 조선인, 일본인, 몽골인들이 같이 거주한 가히 인종전시장이었습니다. 그야말로의 국제도시 하얼빈에는 이들뿐만 아니라, 유태인, 프랑스인, 독일인, 폴랜드인, 우크라이나인, 타타르인들도 섞어 살았습니다. 편협한 민족경계를 넘는 담론이 구사된 곳이었습니다. 제한적인 수준이며, 결국 실패로 끝났지만 오늘날 세계화의 개념 비슷한 것이 제시된 곳이기도 합니다. 이렇듯 만주는 간단하지 않은 곳입니다. 근년에 만주를 전공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주학회를 결성했습니다. 전공배경도 중국사, 일본사, 역사사회학 등에 두루 걸쳐지지만, 만주의 중요성을 받아들이는, 그래서 평생 만주연구에 신명을 바치겠노라고 선언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간행물

  • 간행물명
    만주연구 [Journal of Manchurian Studies]
  • 간기
    반년간
  • pISSN
    1738-3668
  • 수록기간
    2004~2011
  • 십진분류
    KDC 912 DDC 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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