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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논문

두 개의 「합숙소의 밤」과 ‘만주’
二つの 「合宿所の夜」 と 「満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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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만주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만주연구 바로가기
  • 통권
    제9집 (2009.12)바로가기
  • 페이지
    pp.141-182
  • 저자
    유수정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119167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원문정보

초록

한국어
「합숙소의 밤」은 조선의 대표적 프롤레타리아 문학자이자 이론가인 한설야의 초기작품으로 󰡔만주일일신문󰡕(1927.1.26~27)에 일본어로 발표된 텍스트와 󰡔조선지광󰡕(1928.1)에 한국어로 발표된 텍스트가 있다. 문학습작기에 자연주의문학을 모방하여 창작된 일본어판 「합숙소의 밤」은 엿보기를하는 남자 주인과의 거친 성욕을 그린 자연주의계열 소실이다. 그에 반해그 1년 후에 같은 제목으로 투쟁의식을 전면에 내세우고 발표한 한국어판「합숙소의 밤」은 ‘만주’ B시 탄광의 조선인 광부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고발적으로 그리고 있는 프롤레타리아문학이다. 본고에서는 이 두 텍스트가발표된 시기의 정세적, 문단적 상황을 배경으로 같은 「합숙소의 밤」이라는 제목을 붙여, 푸순탄광이라는 같은 장소를 이야기의 공간적 배경으로 하는 두 텍스트가, 그 내용도 표현언어도 완전 다르다는 것을 문제시하였다.
나아가 텍스트에 산재돼 있는 실제의 사건들을 추적하여 작가의 정치적 의도를 보다 명확하게 파악하고, ‘만주국’ 이전, 조선의 프롤레타리아문학자에게 있어서 ‘만주’라는 공간이 갖았던 의미를 밝혔다. 공간적인 배경은 같은 ‘만주’의 탄광촌으로 하면서도 일본어판에서는 그곳이 ‘만주’라 단정할 수 없을 정도
로 ‘만주’라는 토포스가 갖는 의미는 희박했다. 그에 반해 한국어판에서 ‘만주’의 ‘탄광왕국 B시’는 조선인 탄광노동자가 파두제라는 이중착취의 고용제도하의 일본인 감독 밑에서 일하는 억압/피억압의 공간으로 그려지고 있었다. 또한 ‘만주’는 5.30사건에서 시작되어 중국 전토에 퍼진 반자본주의・반제국주의운동이 일어난 현장이었고, 그 속에서 조선인(‘나’)가 지도적 위치를 점해서 활동하는 장이었다. 그리고 펑위샹과 장쭤린이 각각 일본과 소련의 힘을등에 업고 대결하는 전장이었고, ‘불령선인’의 무장독립항쟁과 일본제국군의 ‘토벌’이 펼쳐지는 장이었다. 한설야는 이러한 ‘만주’에서의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민족과 국가의 경계선을 넘어서는 반자본주의・반제국주의의 연대를 한국어판 「합숙소의 밤」 속에 반복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1927년에 발표된 일본어판에서 ‘만주’는 소박한 문학적 모티프에 지나지 않았지만, 1928년에 발표된 한국어판에서 ‘만주’는, 민족・계급투쟁의 장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만주’는 다양한 힘이 모여 길항・영합하면서 교차하고, 다양한 전쟁과 전투가 전개되는 ‘초국가적 공간’이기 때문에야말로 조선에서는 표현・실현할 수 없는 탈국가・탈민족적인 연대, 인터내셔널한 프롤레타리아트(또는 피억압민족의 민중)의 단결과 혁명을 외칠 수 있는 공간으로 존재한다. 이렇게 다양한 힘이 중층적으로 교차하는 ‘만주’라는 토포스는 한설야에게 ‘만주’를 적극적으로 그리게하는 요인이 되었음과 동시에, 조선을 배경으로는 그릴 수 없는, 정치적으로 제약된 한계를 돌파하는 수단으로 기능했던 것이다.
일본어
「合宿所の夜」は朝鮮の代表的なプロレタリア文学者・理論家である韓雪野の初期作品で、󰡔満洲日日新󰡕 [1927年1月26日~27日] に日本語で発表されたテクストと 󰡔朝鮮之光󰡕 [1928年1月] に韓国語で発表されたテクストがある。文学習作期に自然主義文学を模倣して創作した日本語版「合宿所の夜」は、覗き見をする男を主人公に、荒々しい性欲を描いた自然主義系列の小説である。それに対し、その一年後に同じ題目で闘争意識を前面に出して発表した韓国語版「合宿所の夜」は、「満洲」のB市炭鉱の朝鮮人坑夫たちの劣悪な労働環境を告発的に描いているプロレタリア文学である。本稿では、この二つのテクストが発表された時期の情勢的、文壇的状況を踏まえた上で、同じ「合宿所の夜」という題目が付され、撫順炭鉱という同じ場所を物語の空間的な背景にする二つのテクストが、その内容も表現言語も全く異なるということを問題にした。さらに、テクストに散りばめられた、実際の事件・事象を追跡していくことで、作家の政治的な意図をより明確に読み取り、「満洲国」以前、〈朝鮮〉のプロレタリア文学者にとって〈満洲〉という空間がもった意味を明らかにした。空間的な背景を同じく「満洲」の炭鉱街にしながらも、日本語版においてはそこが「満洲」であると確定できないほど、「満洲」というトポスのもつ固
有の意味は希薄であり、ある炭鉱の「合宿所」という具体的な物語の現場として存在するだけであった。
それに対して、韓国語版において「満洲」の「炭鉱王国B市」は、朝鮮人炭鉱労働者が「把頭制」という二重搾取の雇用制度のなか、日本人の監督の下で働く抑圧/被抑圧の空間として描かれている。また、「満洲」は五・三〇事件に刺激され、中国全土に広がった反資本主義・反帝国主義運動が起こっている現場であ
り、そのなかで朝鮮人 [「私」]が指導的な位置を占めて活動する場であった。それにまた「満洲」は、馮玉祥と張作霖がそれぞれ日本とソ連の力を背負って対決する戦場で、「不逞鮮人」の武装独立抗争と日本帝国軍の「討伐」が繰り返される場でもあった。前節で確認したように、韓雪野はこのような「満洲」における歴史的事実を背景に、民族や国家の境界線を越えた反帝国主義・反資本主義の連帯を、韓国語版「合宿所の夜」のなかで反復的に提示している。 このように 「満洲」 という場は素朴な文学的モチーフから民族・階級闘争の場へと、その描かれ方が変化している。韓国語版において、「満洲」は大きな意味をもつ。「満洲」は様々な力が集まり、拮抗・迎合しながら交差し、様々な戦争と闘争が展開する「超国家的空間」であるがゆえに、朝鮮では表現・実現できない脱国家・脱民族的な連帯、インターナショナルなプロレタリアート [または被抑圧民族の民衆] の団結と革命が叫ばれるに相応しい空間なのである。このような多様な力が重層的に交錯する「満洲」というトポスは、韓に「満洲」を積極的に描かしめる要因であると同時に、朝鮮をもってしては描けない、政治的に制約された限界を突破する手段としても機能したのである.

목차

국문초록
 1. 들어가며
 2. 습작으로서의 「합숙소의 밤」
 3. 프롤레타리아문학 「합숙소의 밤」
 4. 민족과 제국을 넘는 장, ‘만주’
 5. 일본어와 한국어 사이, ‘만주’와 조선 사이
 6. 맺으며
 參考文獻
 日文抄錄

저자

  • 유수정 [ 고려대 일어일문학과 강사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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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만주학회 [The Manchurian Studies Association]
  • 설립연도
    1998
  • 분야
    인문학>역사학
  • 소개
    만주는 우리들에게 전설의 땅입니다. 19세기말까지 조선의 식자들에게 외면되었던 이곳은 신채호선생에 의해 민족의 발상지로, 한민족 역사의 중심무대로 나타났던 곳이고, 해방전 많은 지사들이 독립운동을 벌인 곳입니다. 또한 남북한 지도자들을 잉태한 곳이기도 합니다. 만주는 어떤 의미에서 한국현대사의 블랙박스에 해당하는 곳입니다. 이 중요한 곳의 많은 부분이 가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만주의 의미는 한국과의 관계를 훨씬 뛰어 넘는 것입니다. 그 동안 만주는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전공자들로부터도 철저하게 외면당했던 학문의 변방입니다. 기실 이 곳은 지난 수백년간 동아시아 변동의 핵이었습니다.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는 여러 융합을 시험했습니다. 유목문화와 유교문화, 혹은 티벳불교와 회교, 유교, 혹은 여러 민족의 접합을 시도, 이것을 토대로 세계최대의 영토를 구축했습니다. 그리고 19세기말 이 곳은 흥기하는 러시아와 기타 서양열강, 그리고 일본 세력이 마주친 접점이었습니다. 특히 일본은 이 곳을 손에 넣으면서 1930년대의 기록적인 번영을 구가했고, 나아가 대동아공영과 서양과의 최종전을 계획했습니다. 당시 일본이 이 곳에 투자한 세계적 수준의 중화학단지는 전후 중국의 중공업단지로 고스란히 이어졌습니다. 만주는 중국 국공내전 최후의 쟁패가 결정된 곳이기도 합니다. 만주에서의 승리가 아니었다면, 오늘날의 중국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19세기 말부터 1945년까지 이곳은 한족, 만주족, 러시아인, 조선인, 일본인, 몽골인들이 같이 거주한 가히 인종전시장이었습니다. 그야말로의 국제도시 하얼빈에는 이들뿐만 아니라, 유태인, 프랑스인, 독일인, 폴랜드인, 우크라이나인, 타타르인들도 섞어 살았습니다. 편협한 민족경계를 넘는 담론이 구사된 곳이었습니다. 제한적인 수준이며, 결국 실패로 끝났지만 오늘날 세계화의 개념 비슷한 것이 제시된 곳이기도 합니다. 이렇듯 만주는 간단하지 않은 곳입니다. 근년에 만주를 전공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주학회를 결성했습니다. 전공배경도 중국사, 일본사, 역사사회학 등에 두루 걸쳐지지만, 만주의 중요성을 받아들이는, 그래서 평생 만주연구에 신명을 바치겠노라고 선언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간행물

  • 간행물명
    만주연구 [Journal of Manchurian Studies]
  • 간기
    반년간
  • pISSN
    1738-3668
  • 수록기간
    2004~2011
  • 십진분류
    KDC 912 DDC 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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