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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한인문학회임원진 (총 72명, 가나다 순)/휘보/회칙/『국제한인문학연구』연구윤리규정
국제한인문학회 국제한인문학연구 제6호 2009.12 pp.177-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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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아무르주의 한인사회와 정교회 선교활동(1872~1916) - 블라고슬로벤노예(Благословенное) 마을을 중심으로
재외한인학회 재외한인연구 제20호 2009.08 pp.47-91
...한인들의 러시아화를 유도해내고자 했다. 한인교육의 성장 원동력은 세속당국 및 정교회 선교부의 적절한 활동과 교구교육을 받은 젊은 한인세대의 협조 속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또한 블라디보스톡 주교구 설립(1899), 그리고 그해 설립된 동방대학과 포드스타빈(G.V. Podstavin)의 한국학 연구도한인의 기독교화 및 러시아화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세속당국과 정교회의 블라고슬로벤노예 마을 한인의 기독교화 및 러시아화 정책은 가시적인 성과들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인 문제와 계 속에서 수행되었음을 엿볼 수 있다. 우선은 20세기에 들어서까지 이어진 한인의 고립적인 조선식 생활방식의 유지를 들 수 있다. 또 하나는 정교신앙을 통한 한인들의 삶이 여전히 비기독교적인 상황에 머물러 있었다는 점이다. 그 외에도 한인들의 러시아화가 낮은 수준에 있었다는 점과 마지막으로 한인들의 행정적인 자치권한도 한인들의 기독교화 및 러시아화의 진행을 더디게 만들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결과적으로 20세기에 들어서까지 한인들의 만족스럽지 못한 내적인기독교화 및 러시아화의 요인은 지방당국의 관심과 노력이 지속되지 못한 것에서 찾아볼 수 있다. 러시아 정부는 자신들의 발의로 이주시킨한인들에 대해서조차 지속적인 관심과 충분한 지원을 하지 않았으며, 이는 결국 한인들의 낮은 러시아화라는 불만족스러운 결과를 낳았다. 즉 러시아 정교회의 아무르주 한인선교 활동은 세속당국의 적은 관심과 한계 속에서 수행되어 왔으며, 그로 인해 한인들의 러시아화 상태 또한 마을의 형성배경에 비해 만족할 만한 수준 가운데 있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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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세속당국과 정교회 지도부는 정교신앙과 학교교육을 통해서 아무르주 블라고슬로벤노예 마을(사만리) 한인들의 러시아화를 유도해내고자 했다. 한인교육의 성장 원동력은 세속당국 및 정교회 선교부의 적절한 활동과 교구교육을 받은 젊은 한인세대의 협조 속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또한 블라디보스톡 주교구 설립(1899), 그리고 그해 설립된 동방대학과 포드스타빈(G.V. Podstavin)의 한국학 연구도한인의 기독교화 및 러시아화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세속당국과 정교회의 블라고슬로벤노예 마을 한인의 기독교화 및 러시아화 정책은 가시적인 성과들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인 문제와 계 속에서 수행되었음을 엿볼 수 있다. 우선은 20세기에 들어서까지 이어진 한인의 고립적인 조선식 생활방식의 유지를 들 수 있다. 또 하나는 정교신앙을 통한 한인들의 삶이 여전히 비기독교적인 상황에 머물러 있었다는 점이다. 그 외에도 한인들의 러시아화가 낮은 수준에 있었다는 점과 마지막으로 한인들의 행정적인 자치권한도 한인들의 기독교화 및 러시아화의 진행을 더디게 만들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결과적으로 20세기에 들어서까지 한인들의 만족스럽지 못한 내적인기독교화 및 러시아화의 요인은 지방당국의 관심과 노력이 지속되지 못한 것에서 찾아볼 수 있다. 러시아 정부는 자신들의 발의로 이주시킨한인들에 대해서조차 지속적인 관심과 충분한 지원을 하지 않았으며, 이는 결국 한인들의 낮은 러시아화라는 불만족스러운 결과를 낳았다. 즉 러시아 정교회의 아무르주 한인선교 활동은 세속당국의 적은 관심과 한계 속에서 수행되어 왔으며, 그로 인해 한인들의 러시아화 상태 또한 마을의 형성배경에 비해 만족할 만한 수준 가운데 있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In the past, Blagoslovennoe in Amurian oblast' of Priamurian region was one of the model settlements established and designed by the Russian government which would cost 15,271 ruble to immigrate people. The authorities and Russian Orthodox Church were trying to russianize Koreans through Russian schooling and mission work in the long run. For this, the first cathedral was built in memory of Aleksander Nevski in September, 1871 and a school for Koreans was established in Blagoslovennoe, in May 1872. In the 20th century, a boy’s and a girl’s school were newly established and education for Koreans continued to thrive with the effort of the authorities and Russian Orthodox Church. With the authorities and Russian Orthodox Church’s efforts and cooperation of young generation of Korea resulted in such growth. Additionally, establishment of the Vladivostok main parish church in Siberia, 1899 helped the education for Koreans to gain further attention and support. And G.V. Podstavin’s study on the ways to develop the education for Koreans encouraged the Priamurian authorities to continue to support the russianizing education for Koreans. However, although the authorities and Russian Orthodox Church’s policy for mission and russianization for Koreans in Blagoslovennoe produced some visible results, there were still substantial matters and limitations to be solved. One of the problems was in the Korean way of life, which is isolated. Although almost 20 years had passed after Koreans moved into Blagoslovennoe, they still lived in the same way they used to in Korea and the Estern Orthodox Church, which Koreans believed, made it hard to successfully Christianize Koreans. Also, the state of russianization of Koreans was at a low level and there was no resident priest until early of 1880’s(there were no resident priests not later than 1890’s). Lastly, Korean’s administrative autonomy hindered the russianization and mission for Koreans. The reason that russianization and mission for Koreans could not make success was resulted from the authorities and Russian Orthodox Church’s discontinuous concerns and insufficient efforts. Furthermore, the Anti-Korean policy conducted under the domination of P.F. Unterberger, who was the General-governor of Priamurian, had negative effects on the russianization and mission for Koreans. Considering the backgrounds of movement and settlement of Blagoslovennoe, the Russian government regarded it one of the best regions satisfies the required condition for assimilation and russianization. However, discontinuous concerns and insufficient support brought about unsatisfactory results. In other words, despite all the formative features, the Russian Orthodox Churches’ efforts for Christianize Koreans could not make a great success with the Priamurian authorities’ unsustained attention and considerable limitations.
GHQ의 반공정책과 재일한인의 민족교육 : 제2차 조선인학교 폐쇄조치를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일본비평 창간호 2009.08 pp.166-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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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이주민과 이중언어 교육 - 러시아의 이주 한인을 예로
한중인문학회 한중인문학회 국제학술대회 제23회 한중인문학회 국제학술대회 2009.07 pp.230-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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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치산업의 종단적 교차비교를 통해 본 재미 한인경제의 변화 추이(1990~2000)
재외한인학회 재외한인연구 제19호 2009.02 pp.87-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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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한인총연합회의 네트워크 특성 KCI 등재후보
한국시민윤리학회 한국시민윤리학회보 제21집 2호 2008.12 pp.235-258
...한인들의 대표단체인 한인회의 네트워크는 첫째, 산하단체를 포함해 여러 한인단체와 활성화 된 강한연대를 갖고 있었다. 둘째, 외국인 단체 네트워크는 주로 친선, 의료, 봉사 차원에서 교류하고 있었지만, 연대단체가 소수에 불과하며, 약한연대이다. 셋째, 정부기관의 네트워크는 한국 대사관, 필리핀 이민청, 경찰청에 집중되어 있으며, 강한연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넷째, 재외동포재단과 강한연대를 구축하고 있는 반면 모국의 단체와는 단기성 교류가 많은 약한연대이다. 다섯째, 모국의 중앙 정부기관, 지방정부와 네트워크가 있었지만, 약한연대로 평가할 수 있다. 한인회의 네트워크를 분석한 결과, 단체 간 네트워크는 강한연대 또는 약한연대가 혼재(混在)되어 있었다. 강한연대의 형성 요인으로 민족적 동질성, 신뢰의 구축, 이해관계의 일치, 편익의 증대 등이며, 약한연대는 형식적 교류, 지리적 제약 등으로 나타났다. 한인회의 네트워크 발전을 위한 함의는 첫째, 네트워크의 확산이다. 한인단체에 집중된 네트워크에서 탈피하여 지역의 주류단체와의 네트워크 확대에 적극성을 보여야 한다. 특히 필리핀에서 반한감정을 해소하고 차단하는 방법의 일환으로 네트워크 확산에 집중하여야 한다. 둘째, 지속적인 네트워크의 유지이다. 단체 간 네트워크 필요성이 약화된다면, 이는 일회성 그리고 형식적 네트워크로 종결될 가능성이 많다. 한인회는 일시적인 필요 또는 보여주기 위한 네트워크가 아닌, 단체 간 이해관계가 일치된 네트워크 구축에 전력해야 한다. 셋째, 한인회 중심의 협력 네트워크의 모색이다. 한인사회의 대표성을 지닌 한인회를 중심으로 동포 간 또는 단체 간 유기적인 협력 네트워크의 구축은 단체 발전의 필수 요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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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한인들의 대표단체인 한인회의 네트워크는 첫째, 산하단체를 포함해 여러 한인단체와 활성화 된 강한연대를 갖고 있었다. 둘째, 외국인 단체 네트워크는 주로 친선, 의료, 봉사 차원에서 교류하고 있었지만, 연대단체가 소수에 불과하며, 약한연대이다. 셋째, 정부기관의 네트워크는 한국 대사관, 필리핀 이민청, 경찰청에 집중되어 있으며, 강한연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넷째, 재외동포재단과 강한연대를 구축하고 있는 반면 모국의 단체와는 단기성 교류가 많은 약한연대이다. 다섯째, 모국의 중앙 정부기관, 지방정부와 네트워크가 있었지만, 약한연대로 평가할 수 있다. 한인회의 네트워크를 분석한 결과, 단체 간 네트워크는 강한연대 또는 약한연대가 혼재(混在)되어 있었다. 강한연대의 형성 요인으로 민족적 동질성, 신뢰의 구축, 이해관계의 일치, 편익의 증대 등이며, 약한연대는 형식적 교류, 지리적 제약 등으로 나타났다. 한인회의 네트워크 발전을 위한 함의는 첫째, 네트워크의 확산이다. 한인단체에 집중된 네트워크에서 탈피하여 지역의 주류단체와의 네트워크 확대에 적극성을 보여야 한다. 특히 필리핀에서 반한감정을 해소하고 차단하는 방법의 일환으로 네트워크 확산에 집중하여야 한다. 둘째, 지속적인 네트워크의 유지이다. 단체 간 네트워크 필요성이 약화된다면, 이는 일회성 그리고 형식적 네트워크로 종결될 가능성이 많다. 한인회는 일시적인 필요 또는 보여주기 위한 네트워크가 아닌, 단체 간 이해관계가 일치된 네트워크 구축에 전력해야 한다. 셋째, 한인회 중심의 협력 네트워크의 모색이다. 한인사회의 대표성을 지닌 한인회를 중심으로 동포 간 또는 단체 간 유기적인 협력 네트워크의 구축은 단체 발전의 필수 요건이다.
The results of examination in characteristics of the United Korean Community Association in the Philippines(UKCA) can be outlined as follows: First, it was found that the network of UKCA, a representative Korean community association in Philippines, was in active and strong solidarity with a variety of Korean community associations including their umbrella organizations. Secondly, it was found that foreigner association networks share social relationships with one another primarily in favor of friendship, medical care and community services, but there were just a few and weakly consolidated associations. Thirdly, it was found that governmental agency networking converged mainly on Korean Embassy in Philippines, Bureau of Philippines and Philippine Police, and there was a strong solidarity formed among those agencies. Fourthly, it was found that UKCA created strong solidarity with overseas Korean foundations but maintained weak solidarity with related associations in homeland on the basis of short-term exchanges. Fifthly, it was found that UKCA had a weak network with central and local government agencies in homeland. According to analysis on networking of UKCA, it was found that there was a combination of strong and weak solidarity relationships formed in a network of associations. Notably, it was found that national identity, established reliability, identical interests and higher benefits were contributors to creation of strong solidarity in networking of UKCA, whereas both formal exchanges and geographical limitations were contributors to weak solidarity. In the interest of developing networks of UKCA, this study has the following implications: First, expand the networking. It is necessary to more positively focus on extending networks into local major community associations beyond conventional networks converged on local Korean community. Particularly, it is important to be more committed to extending local networks as a part of relieving and preventing anti-Korean sentiment in Philippines. Secondly, keep networking on regular basis. If networking needs become compromised among local community associations, networking efforts are likely to end up with temporary and formal networking results. It is required for UKCA to make its best efforts to build up a united local community network to meet interests of all associations, rather than create any ostentatious local community networking to meet temporary needs. Thirdly, explore possible cooperation networks based on Korean community associations. It is not too much to say that building a coordinated network in local Korean community and society on the basis of UKCA will become prerequisite to development of local Korean socie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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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정부의 재일외국인정책과 재일한인청소년의 민족적 정체성의 변화에 관한 고찰 -1990 년대 이후의 변화를 중심으로-
재외한인학회 재외한인연구 제18호 2007.12 pp.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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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앤젤레스 한인 타운에서의 지신밟기의 의미 -자아 및 한인 공동체의 정체성 표출과 관련하여- KCI 등재후보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25집 2007.06 pp.255-282
...한인 타운에서의 지신밟기는 그 기원은 한국의 지신밟기에 두고 있는 것이지만 달라진 연행 주체, 연행 공간 및 환경 속에서 1990년 이후 17년 동안 진행되면서 자아 및 공동체의 정체성을 대외적으로 표출하는 의미가 강하게 내포되어 있다. 또한 규칙적인 지신밟기의 연행은 그 거리와 공간을 공연자인 한인들의 거리로 인식하게 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로스앤젤레스에서의 지신밟기의 의미에 대해서는 연행자의 입장과 외부적 시각을 통해 살펴보았다. 연행자의 입장을 통해 살펴본 지신밟기는 번영과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 이외에 학생들이 공연과 풍물을 익히면서 찾아낸 자아 및 공동체의 정체성을 대외적으로 표출하는 의미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외부적 시각을 통해서도 지신밟기는 번성, 평화, 공연 및 정체성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연행자의 입장과는 달리 한인 타운에서의 학생들의 지신밟기 연행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와 부정적인 평가가 공존하고 있다. 긍정적인 견해를 보인 사람들은 학생들의 지신밟기는 유용할 뿐 아니라 재미있고 흥미로운 공연이며, 전통 민속을 통해 공동체의 정체성을 대외적으로 드러낸 것에 대해 자긍심을 표현하였다. 반면, 부정적 견해를 드러낸 사람들은 성가실 뿐 아니라 볼거리가 없는 공연이고 한인 공동체의 정체성을 드러내어 타민족 공동체와 구분하는 일을 할 필요는 없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었다.로스앤젤레스에서의 지신밟기의 연행은 한국에서와 같이 지신밟기에 참여한 모든 공동체의 대동 통합을 강조하지 않는다. 공동체의 결속을 강조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신밟기에 익숙할 수 없는 타민족 공동체와의 구분과 병행이 동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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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신밟기는 정초에 지신을 밟아줌으로써 마을의 평화와 풍작 및 다복을 기원하면서 마을 공동체 단위로 벌이는 굿의 하나이다. 지신을 다스린다는 점에서 공간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풍작을 기원한다는 점에서 농촌사회 및 농촌 사회 구성원과 관련이 깊다. 그런데, 로스앤젤레스 한인 타운에서의 지신밟기는 그 기원은 한국의 지신밟기에 두고 있는 것이지만 달라진 연행 주체, 연행 공간 및 환경 속에서 1990년 이후 17년 동안 진행되면서 자아 및 공동체의 정체성을 대외적으로 표출하는 의미가 강하게 내포되어 있다. 또한 규칙적인 지신밟기의 연행은 그 거리와 공간을 공연자인 한인들의 거리로 인식하게 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로스앤젤레스에서의 지신밟기의 의미에 대해서는 연행자의 입장과 외부적 시각을 통해 살펴보았다. 연행자의 입장을 통해 살펴본 지신밟기는 번영과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 이외에 학생들이 공연과 풍물을 익히면서 찾아낸 자아 및 공동체의 정체성을 대외적으로 표출하는 의미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외부적 시각을 통해서도 지신밟기는 번성, 평화, 공연 및 정체성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연행자의 입장과는 달리 한인 타운에서의 학생들의 지신밟기 연행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와 부정적인 평가가 공존하고 있다. 긍정적인 견해를 보인 사람들은 학생들의 지신밟기는 유용할 뿐 아니라 재미있고 흥미로운 공연이며, 전통 민속을 통해 공동체의 정체성을 대외적으로 드러낸 것에 대해 자긍심을 표현하였다. 반면, 부정적 견해를 드러낸 사람들은 성가실 뿐 아니라 볼거리가 없는 공연이고 한인 공동체의 정체성을 드러내어 타민족 공동체와 구분하는 일을 할 필요는 없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었다.로스앤젤레스에서의 지신밟기의 연행은 한국에서와 같이 지신밟기에 참여한 모든 공동체의 대동 통합을 강조하지 않는다. 공동체의 결속을 강조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신밟기에 익숙할 수 없는 타민족 공동체와의 구분과 병행이 동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만주국'의 아편마약 밀매대책과 재만 한인 KCI 등재
한중인문학회 한중인문학연구 제19집 2006.12 pp.459-490
...한인들이 있었다. 이들 한인들은 외국인으로서 일본, 러시아인과 함께 아편마약 밀매로 주목을 받았다. 재만 한인의 아편마약업 종사는 이중국적에 따른 불안정한 법적지위와 생계유지문제, 그리고 일본 영사관의 암묵적인 묵시 내지 지지와 관련이 깊었다. 전체 만주거주 한인의 수와 비교해 보면 수적으로는 소수이지만 그들의 활동이 일본의 주구로 비춰져 만주지역의 중국인과 중국당국의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만주국 수립 이전 일본정부의 암묵적인 묵인과 지지 하에 아편과 마약밀매 등에 종사했던 재만 한인들은 만주국 수립 이후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되었을까? 즉 만주국의 건국으로 일본의 한인에 대한 태도나 인식이 그 전과 다른 상황에서 재만 한인 아편마약 밀매업자들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만주국 수립 전후 만주의 도시지역을 중심으로 아편마약업에 종사했던 한인들은 만주국 아편전매제도의 확립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이용되었다가 배제되는 운명을 겪었다. 일본의 만주침략 과정에서 만주침략의 도구로 이용되었던 아편마약 밀매업 종사 한인들은 만주국 수립 이후 전매아편의 조속한 확립과 밀매의 단속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필요에 의해 다시 이용되었다. 그러나 중일전쟁 발발 이후 완전한 전매제 시행에 따라 아편업에 종사한 한인들은 다시 배제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일본의 만주침략 과정에서 한인들이 침략의 도구로 이용되었듯이 만주국의 아편전매 과정에서도 역시 비슷한 전철을 겪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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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국 수립 이전부터 만주지역의 주요 도시에는 아편마약의 밀거래와 아편 연관업에 종사하는 한인들이 있었다. 이들 한인들은 외국인으로서 일본, 러시아인과 함께 아편마약 밀매로 주목을 받았다. 재만 한인의 아편마약업 종사는 이중국적에 따른 불안정한 법적지위와 생계유지문제, 그리고 일본 영사관의 암묵적인 묵시 내지 지지와 관련이 깊었다. 전체 만주거주 한인의 수와 비교해 보면 수적으로는 소수이지만 그들의 활동이 일본의 주구로 비춰져 만주지역의 중국인과 중국당국의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만주국 수립 이전 일본정부의 암묵적인 묵인과 지지 하에 아편과 마약밀매 등에 종사했던 재만 한인들은 만주국 수립 이후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되었을까? 즉 만주국의 건국으로 일본의 한인에 대한 태도나 인식이 그 전과 다른 상황에서 재만 한인 아편마약 밀매업자들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만주국 수립 전후 만주의 도시지역을 중심으로 아편마약업에 종사했던 한인들은 만주국 아편전매제도의 확립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이용되었다가 배제되는 운명을 겪었다. 일본의 만주침략 과정에서 만주침략의 도구로 이용되었던 아편마약 밀매업 종사 한인들은 만주국 수립 이후 전매아편의 조속한 확립과 밀매의 단속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필요에 의해 다시 이용되었다. 그러나 중일전쟁 발발 이후 완전한 전매제 시행에 따라 아편업에 종사한 한인들은 다시 배제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일본의 만주침략 과정에서 한인들이 침략의 도구로 이용되었듯이 만주국의 아편전매 과정에서도 역시 비슷한 전철을 겪었다고 하겠다.
Manchuguo's dealing with illict sale of drug and the Koreans in Manchuria Since former times before establishment of Manchukuo there were the Koreans engaged in illicit drug trafficking and management of opium den in the main cities of Manchuria. These Koreans as foreigner were recognized as illicit drug trafficking with Japanes and Russians. Before establishment of manchukuo the Korean residents were engaged in illicit sale of opium and narcotics with the convivance of Japanese government. After establishment of Manchukuo. After establishment of Manchuguo what condition were they placed in? In the process of establishing opium monopoly the Koreans engaged in illicite sale of drug in the main cities of Manchuia were utilized temporary. Soon they were faced with being excluded. Japan used them as the tools of invasion in china. And after establishment of Manchuguo for the purpose of easy keeping opium monopoly on stalilty japan used them again. But occurring the Sino-Japanese War(1937-45), carrying out whole opium monopoly, the Koreans engaged in sale of opium completely were excluded. Finally as they were used as the tools of invasion, the Koreans took the same neckless course in the process of opium monopoly in manchuria.
지구화와 이주과정에서 발현되는 문화혼성성 - 재독 한인여성과 재한 외국인여성의 문화적응 비교분석을 중심으로 - KCI 등재
한독사회과학회 한독사회과학논총 제16권 제2호 2006.12 pp.191-228
...한인여성들과 한국으로 유입된 외국인 이주여성들이 각기 이주민으로서 타문화에 적응하면서 나타내는 문화혼성성의 양상을 비교 분석하였다. 문화혼성성은 이주민이 떠나온 사회의 문화적 배경, 산업화의 정도에 따라서 다르게 나타나고, 더욱이 이주의 목적과 방식에 따라서 이러한 문화적 차이는 이주한 사회로의 수용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이주한 사회 - 이 연구에서는 독일과 한국 사회 - 의 관용성과 타문화에 대한 탄력적 태도가 얼마나 형성되어 있느냐에 따라 이주민의 문화혼성성의 정도도 다르게 나타난다. 또한 재한 외국인여성의 경우 국제결혼을 통해 여성의 이주가 흔히 결혼이나 가족 형성의 결과를 가져오고 그 과정에서 문화적응이 한쪽 문화의 일방적인 수용으로 나타날 때 이주 여성의 타자성이 극복되지 못하는 결과를 보이고 있다. 이는 재독 한인여성이 독일 남성과 오랜 결혼생활을 하면서도 주체적 삶을 영위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 연구를 통해 그동안 지구화가 필연적으로 가지고 온 문화혼성성 사회가 진정으로 여러 문화가 어울려 문화자원이 풍부한 문화다양성 사회로 발전하려면, 이주해온 사람들의 타자성이 극복되고 일상적 차원의 다양한 문화가 조화를 이루어야 할 것이며 이러한 사회에서 진정한 문화의 힘이 발휘된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이 연구는 이러한 결과를 기초로 하여 다문화 사회로 나가는데 있어 사회적으로 더 많은 성찰의 과정에 대한 필요성이 제고되고 이를 정책적으로 반영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면서 기획되고 수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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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화가 전개되면서 노동력의 전지구적 이동이 가속화되고 있다. 노동력의 이동은 결국 사람이 이동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문화 접변이 이루어진다. 이 연구에서는 한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시작된 인력 송출로 독일로 파견되어 지금까지 거주하고 있는 재독 한인여성들과 한국으로 유입된 외국인 이주여성들이 각기 이주민으로서 타문화에 적응하면서 나타내는 문화혼성성의 양상을 비교 분석하였다. 문화혼성성은 이주민이 떠나온 사회의 문화적 배경, 산업화의 정도에 따라서 다르게 나타나고, 더욱이 이주의 목적과 방식에 따라서 이러한 문화적 차이는 이주한 사회로의 수용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이주한 사회 - 이 연구에서는 독일과 한국 사회 - 의 관용성과 타문화에 대한 탄력적 태도가 얼마나 형성되어 있느냐에 따라 이주민의 문화혼성성의 정도도 다르게 나타난다. 또한 재한 외국인여성의 경우 국제결혼을 통해 여성의 이주가 흔히 결혼이나 가족 형성의 결과를 가져오고 그 과정에서 문화적응이 한쪽 문화의 일방적인 수용으로 나타날 때 이주 여성의 타자성이 극복되지 못하는 결과를 보이고 있다. 이는 재독 한인여성이 독일 남성과 오랜 결혼생활을 하면서도 주체적 삶을 영위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 연구를 통해 그동안 지구화가 필연적으로 가지고 온 문화혼성성 사회가 진정으로 여러 문화가 어울려 문화자원이 풍부한 문화다양성 사회로 발전하려면, 이주해온 사람들의 타자성이 극복되고 일상적 차원의 다양한 문화가 조화를 이루어야 할 것이며 이러한 사회에서 진정한 문화의 힘이 발휘된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이 연구는 이러한 결과를 기초로 하여 다문화 사회로 나가는데 있어 사회적으로 더 많은 성찰의 과정에 대한 필요성이 제고되고 이를 정책적으로 반영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면서 기획되고 수행되었다.
재러한인의 현황과 주요과제 : - 연해주 고려인 농업정착지원 현황과 과제를 중심으로 -
재외한인학회 재외한인연구 제17호 2006.12 pp.137-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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