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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독문학번역연구소 심포지엄 발표문 [Symposiumsreferate]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대회
  • 발행기관
    한독문학번역연구소 [Institut für Übersetzungsforschung zur deutschen und koreanischen Literatu]
  • 간기
    부정기
  • 수록기간
    2013 ~ 2025
  • 주제분류
    인문학 > 독일어와문학
  • 십진분류
    KDC 701 DDC 410
한독문학번역연구소 제 24 회 정례학술회의 (7건)
No
3

4,300원

대중이 종종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루터는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한 최초의 번역자가 아니다. 하지만 루터의 번역 방식은 중세의 성경 번역자들의 번역 방식과 본질적인 면에서 구분된다. 루터 이전의 독일 성경 번역자들은 성경을 성스러운 텍스트로 간주하여 어순에 이르기까지 가능한 한 똑같이 재현하려고 했다. 그들의 번역은 언어적, 문장론적으로 출발어 텍스트와 너무도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어서 동시대인들이 거의 이해할 수 없을 정도였다. 루터 이전의 독일어 성경 번역들은 예술언어로 되어 있었는데, 독일어의 구어적 일상어나 시적인 문학 언어와도 일치하지 않았다. 반면에 루터는 성경을 번역하면서 라틴어의 문어성이 아니라 독일어의 구어성에 방향을 맞추었다. 그는 번역할 때 보통 사람들의 언어관습을 표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번역을 제대로 하려면 집안의 주부들과 골목의 어린이들, 시장 남자들의 “입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 「번역에 대한 공개편지」에 나오는 루터의 유명한 일상어적 표현이다. 학자들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들도 성경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루터의 핵심 관심사였다. 루터는 성경이 모든 신앙 문제에 있어서 결정적인 권위를 갖는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교황의 권위와 교회 기관들에 대한 전면적인 공격을 의미했다. 성경적 권한을 부여받지 못한 모든 교회 관습과 예식들을 루터는 강하게 비판했다. 그의 견해에 의하면 그 어떤 인간에 의한 기관이 아니라 신의 말씀만이 은총의 중개를 담당한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성경을 이해할 수 있고 구원에 이를 수 있게 성경도 민중의 언어로 번역되어야 했다. 루터는 1521 년 4 월 보름스 제국의회에서 파문당한 뒤 10 개월 동안 아이제나흐 근교 바르트부르크에서 숨어 지내야만 했는데, 바로 그 시기를 성경을 집중적으로 번역할 기회로 생각했다. 1521 년 12 월부터 11 주 만에 그는 신약성경을 전부 다 번역했다. 루터의 번역은 1522 년 9 월 21 일 비텐베르크의 멜히오르 로터 출판사에서 약 3000 부가 나왔고, 1522 년 12 월 재판을 찍어야만 했다. 로마 교회의 신봉자들은 루터 성경의 보급률을 제한하려고 했지만 헛수고였다. 루터의 성경 번역은 근세 초기의 가장 유명하고 성공적인 책이 되었다. 1546 년 그가 죽을 때까지만 약 430 종의 성경의 일부 또는 전체 번역본이 출판되었기에 대략 50 만부가 유통되었다고 추정된다. 가톨릭교회 측은 독자적인 독일어 성경을 시장에 유통시켜야 한다는 것을 금방 알아챘는데, 루터의 번역에 대항해서 로마에 충성스런 대안을 제공하려고 했다. 1527 년 히에로니무스 엠저의 신약 성경이 출판되었고, 엠저는 명백하게 로마 교회의 전통을 근거로 삼아 번역했다. 그런데 이 가톨릭 판본을 루터의 번역과 비교해보면 두 판본 사이에 광범위한 일치가 눈에 띈다. 말하자면 엠저는 결코 독자적인 번역을 완성한 것이 아니라 루터의 표현방식을 광범위하게 받아들이면서 개혁적인 신학적 해석들에 대해서만 해석을 달리한 것이다. 루터는 표절로 인해 매우 분개했는데, 자신의 성경 번역에 대한 로마 신학자들의 비판에 대해 더 더욱 분개했다. 그래서 그는 1530 년 9 월 8 일 「번역에 대한 공개편지」에서 번역작업 및 번역의 난해성에 대해 근원적인 논쟁을 벌였다. 번역에 대한 신학자들의 논쟁에서 가장 중요한 논점은, 루터가 자신의 독일어 번역에서 ‘오직’이라는 부사를 추가한 로마서의 한 구절에 관한 것이다. 사람은 오직 믿음(‘sola fide’)에 의해서만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루터 신학의 근본 원칙이다. 그런데 라틴어 출발어 텍스트에는 그에 해당하는 단어 ‘sola’가 빠져있다. 루터의 적대자들은 성경 번역이라는 영역에서의 개혁주의자를 그 자신의 무기로 때려눕히려고 시도했다. 성경이 모든 신앙 문제에서 결정적인 권위를 갖는다면 성경의 진술이 제멋대로 수정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sola’라는 단어가 빠진다면, 믿음이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 아니게 된다. 루터는 자신의 개혁적인 신념에 대한 이런 공격을 방치해둘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자신의 번역 원칙을 공개한 것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루터의 번역작업을 특징짓는 여러 원칙들을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루터는 목적어와 목적어 문화의 관습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 점에서 그는 중세 후기의 성경 번역자들과 구별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터 생각에 고대의 원전 텍스트는 결정적인 권위를 갖고 있기에 그의 번역은 둘째로, 출발어 텍스트에도 초점을 맞추어야만 했다. 셋째, 그의 성찰에 의하면 번역가의 개인적인 성향이 번역에서 모종의 역할을 하게 된다. 번역가는 올바른 내적 입장을 견지해야만 하는데, 말하자면 경건하고 독실하며 하나님을 경외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번역가는, 루터의 견해에 따르면 해석학적으로 도무지 성경 텍스트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상황에 놓여있지가 않는 것이다. ‘오직 믿음’이라는 논쟁점과 관련하여 루터는 무엇보다도 독일어가 이 부가어를 요구하고 있다고 논증한다.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루터는 일상어의 예들을 몇 가지 제시한다. 하지만 그것들의 신뢰성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없지 않다. 그 외의 논증과정에서 루터에게는 독일어의 특성 보다 신학적 인식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루터는 사도 바울의 서한들에 근거해서 믿음만이 구원에 이르게 한다는 확신에 도달했기 때문에 내용적인 이유에서 ‘오직’이라는 단어를 포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루터는 결코 중립적인 번역가가 아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을, 번역하는 신학자로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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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is generally said that one of the most important effects of the Reformation in Germany was Bible translation into German. The Bible translation made a huge influence upon the development of German language. The Bible translation into Korean also had a significant effects on the spread and the development of Korean language, called Han-geul. Han-geul is a spoken language of Korean people but King Se-jong invented Korean scripts for written language of Han-geul in 1443. Han-geul had been almost used by lower class and women but the Bible translation into Han-geul was a watershed. Explaining the brief history of the Bible translation into Korean language, this paper deals with the major effects of Bible translation into Han-geul on the development of Hangeul. Let¡¯s start with the brief history of the Bible translation into Korean. First of all, two excerpt Bibles in Korean, called Seong-Gyeong-Gik-Hae and Seong-Gyeong-Gik-Hae-Gwang-Ik, were translated from Chinese excerpt Bible between 1790-1800. The first complete New Testament in Korean, Holy Teaching by Jesus, called Je-Su-Seong-Gyo-Geon-Se, was published by John Ross and his colleagues and Korean helpers in 1887. And then, the first complete Holy Bible including the Old and the New Testaments, called Seong-Gyeong-Jeon-Se, was published by the Bible translation committee including H. G. Underwood, J. S. Gale, H. G. Appenzeller, W. B. Scranton, M. N. Trollop, and W. D. Reynolds in 1911. When the committee translated the Bible, they used Hebrew and Greek Bible as their original scripts and made it a rule to translate literally, as possible as they could. And the Holy Bible was revised in 1938. The Seong-Gyeong-Jeon-Se in 1911, above all, made a huge contribution to the development of Han-geul. The Bible translation into Korean had five significant effects. First, the committee made it rule to adopt exclusive use of Hangeul which contributed to the development of Han-geul and spread Hangeul throughout the whole region. Although other major religions such as Buddhism and Confucianism in Korea did not try to translate their sacred books in Chinese into Korean in active way, Christians were eager to render the Holy Bible into Han-geul. The exclusive use of Hangeul caused Han-geul to develop in the course of the translation. Second, the complete Bible translated in 1911 used spacing words with consistency so that spacing words took root in Han-geul. At that time, East Asian cultural sphere did not use spacing words. The spacing words in Korean was revolutionary in the East Asia. And the spacing words have been still used in Korean language. Third, the unity of speech and writing was established. When the committee translated the Bible, they delved deeply into Korean spoken language and applied the spoken language to translating the Bible into Han-geul. The Bible translation into Han-geul, in a large amount, was the change from written language into spoken language in the development of Han-geul. As a result, the Bible translation into Han-geul had a significant influence upon the establishment of unification of the spoken language and the written language in Han-geul. Fourth, Korean lexicon was expanded. Translation expands lexicon of a target language. Buddhism in Korea provided the Korean lexical inventory with a vast variety of technical terminology. The meaning of technical terminology from Buddhism was bleached later. And the words were used among everyday words. Confucianism supplied a large amount of religious terms to Korean language as well and they were used as everyday words nowadays. The Bible translation into Hangeul also offered religious terms for the Korean lexicon. As a matter of fact, when the committee translated the Bible into Han-geul, they felt difficulty in translating religious concepts because Han-geul was usually used as oral language and the scholarly concepts were discussed in Chinese letter. They adopted Han-geul words in translation and coined words. When J. S. Gale published A Korean-English Dictionary in the first edition in 1897, the total number of the entry words was 35,000 words. But it increased to 50,000 words in the second edition in 1911. The increase of entry words in the dictionary implies that the committee coined considerable new words. Fifth, illiteracy rate decreased. The illiteracy rate of Korea in those days was 90 percent. Korean colporteur sold the Bible pushfully. It is interesting that they often exchanged eggs or rice or straw sandals for the copies when the buyer had no money. The copies of Korean Bible were widely circulated in Korea. According to the report of British Bible society, ¡°[F]rom 50,000 copies in 1904, the total rose to 660,000 in 1910, ... with a maximum of 827,000 copies circulated in 1915, and though the annual totals gradually decline to 483,000 in 1920, these sales, averaging half a million yearly, were probably the highest in the world in proportion to the population concerned.¡± The distribution of the Korean Bible was usually made by colporteurs. The colporteur ¡°carries printed copies of the Korean alphabet to give away among illiterate purchasers, many are induced to learn to read by this means – which in itself proves a great asset to Christian progress.¡± The active distribution of the Korean Bible and their teaching of Korean language had a significant effect on the development of Han-geul. In summary, it is said that one of the most significant effects made by the Reformation by Martin Luther in 1517 is to translate Latin Bible into German. The Bible translated by Luther exerted a strong and wide influence on the development of German language. It is not only the Lutheran Bible, but also Korean Bibles had huge influence upon the vernacular language in various ways. The Bible translation into Han-geul made huge effects on the development of Han-ge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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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 시대에는 단일한 독일어가 존재하지 않았다. 독일어권은 음성 면에서 서로 현저하게 구별되는 수많은 방언들에 의해 나누어져 있었다. 때로는 지역적인 편차가 너무나 커서 30 마일 떨어진 곳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도 소통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였다. 그래서 제일 오래된 독일어 성경들은 두 개의 상이한 언어, 즉 고지독일어와 저지독일어로 인쇄되었다. 독일의 언어적 불일치는 오랫동안 라틴어에 의해 극복되었다. 13 세기부터야 비로소 법률 분야에서 점점 민중어가 관철되기 시작했는데, 그 바람에 언어적 균일화 과정이 요청되었다. 15 세기에는 군주의 사무국들에서 초지역적인 독일어 관청 언어가 생겨났고, 루터도 자신의 글에 이 언어를 사용했다고 말한다. 루터는 게다가 이중 언어자로 성장했고, 독일의 북부와 남부지방 모두에서 소통할 수 있었기에 그런 점에서 이득을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지 독일어권에서는 그의 성경번역이 아무런 문제없이 이해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바젤 출신의 인쇄업자 아담 페트리는 신약성경에 주석을 달아서 루터의 중부독일어 개념들을 알레마니엔 방언으로 번역하였다. 루터의 성경번역은 널리 보급됨으로써 초지역적인 단일한 독일어가 형성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한편에서는 인쇄업자들이 개념적인 순응을 시도했고, 다른 한편에서는 수용자들의 언어 지식이 지속적으로 발전했기에, 머지않아 성경을 인쇄할 때 어휘 설명이 필요치 않게 되었다. 루터는 출판 시에 언제나 그 대상에 맞게 민중어 또는 학자어로 결정했다. 1517 년 10 월 루터는 자신의 95 개조 반박문을 당연히 라틴어로 작성했는데, 신학자들과 교회의 면죄부에 대해 토론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경우, 정치적 결정권자들을 설득하거나 광범위한 민중 계층에 접근하기 위해서 루터는 의도적으로 독일어를 사용했다. 자신의 적대자들과는 달리 루터는 독일어가 어떤 영향력을 지니는지 금방 알아챘다. 민중어로 된 전단지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관심사를 공유하게 할 수 있었고, 그들을 종교적으로 각성시키며 정치화 할 수 있었다. 서적 인쇄로 인해서 종교개혁적 여론이라는 새로운 형태가 생겨났는데, 그것은 중세의 필사 문화와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성경 텍스트와 신학 텍스트가 신빙성에 손상을 입지 않으면서 민중어로 작성될 수 있다는 것은 장기적으로 교양어와 학문어로서의 독일어의 가치 상승을 야기했다. 민중어는 라틴어에 비해 항상 열등한 것으로 여겨졌지만 루터는 독일어를 동등한 언어로 취급했다. 그의 성경번역은 독일어를 거룩한 언어의 목록에 수용될 수 있게 했다. 그의 신봉자들이 보기에 루터는 하나님의 언어를 독일어로 종이에 옮기는 하나님의 도구로 여겨졌다. 자신의 성경번역이 구두의 영감 같은 것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 원전과의 장기간의 수준 높고 고된 연구 작업에서 출발했다는 점을 루터는 「번역에 대한 공개편지」에서 분명히 했다. 루터는 「번역에 대한 공개편지」에서 번역을 농사에 비유했는데, 농사를 지으려면 먼저 땅을 경작할 수 있게 돌멩이들을 제거해야만 하는 것처럼 번역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자신의 번역작업의 첫 결과물에 대해 루터는 결코 만족을 표하지 않았다. 그는 계속해서 보다 적확한 개념들을 찾아 나섰고 표현을 다듬었으며 번역을 수정했다. 구약성경의 번역을 위해 특별히 비텐베르크 대학의 해당 전문가들로 구성된 위원회를 창립했다. 성경 위원회에는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지식 면에서 루터보다 우수한 회원들이 있었다. 하지만 출발어의 메시지를 분명하고 알기 쉬우며 이해하기 쉬운 독일어로 전환시키는 점에서는 어느 누구도 루터에 비견될 수 없었다. 독일어에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아 현재에도 통용되고 있는 수많은 어법들과 언어적 창조물들이 루터에게서 기원한다. ‘vergeben und vergessen’(용서와 잊기) 같은 두운법과 “등불을 켜서 나무통 아래에 두다” 같은 속담, “Morgenland”(동방의 나라), “friedfertig”(화평케 하는) “Lästermaul”(비방하기 좋아하는 사람) 같은 표현들이 그것이다. 루터가 성경을 얼마나 시적으로 번역했는지는 4 세기의 히에로니무스의 라틴어 판본이나 1475 년 아우구스부르크의 귄터 자이너가 출판한 옛 독일어 번역과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선배 독일어 번역자들과는 달리 루터는 시편 23 편에서 문맥상의 의미와 시구의 문학적 형식을 존중했다. 루터는 언어적 비유를 이용했고, 시적, 리듬적인 면에서 독자적인 악센트를 구사했다. 루터가 독일어에서 가지는 의미에 대한 연구자들의 평가는 매우 상이하다. 많은 사람들이 루터를 독일어의 창시자라고 칭송하는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오늘날의 독일어 형성과 관련하여 그 어떤 의미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이런 불일치는 루터의 번역가적 역량보다는 그의 신학적 테제와 연관된다. 오늘날의 많은 연구에서도 저자의 신앙적 특성이 그들의 학문적 논증에 녹아든다. 가톨릭 학자들은 번역자 마틴 루터에 대해 프로테스탄트적-루터적 동료들보다 훨씬 더 거리를 갖고 의견을 개진하곤 한다. 루터의 동시대인들도 이와 유사하게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교황의 신봉자들은 루터의 독일어 성경이 미신을 확산시킨다며 집요하게 경고했는데, 동시에 루터의 성경 언어의 커다란 매력을 두려워했다. 그와는 달리 프로테스탄트들은 루터의 수사학적 언어 능력을 칭송했고 독일어와 관련한 그의 업적을 부각시켰다. 루터는 군주의 사무국들에서도 문체 면에서 따라가야 할 독일의 키케로로 통했다. 루터의 성경번역은 언어적-문학적 표본 텍스트로 통했고 문법 수업에 사용되었다. 이런 문법 수업 덕에 학생들은 독일어가 어떻게 기능하는지, 어떤 문법 규칙들에 주의해야 하는지 배우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독일어 수업에서 루터가 거의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 반면에 그의 성경번역은 종교 영역에서 한 번도 그 중요성을 상실한 적이 없다. 수백 년 동안 개신교회는 루터의 표현들에 교조적일 정도로 매달렸기에 그 어떤 변경도 시도하지 않았다. 그로 인해 역설적이게도 루터의 성경은 예전의 독일어 번역들과 비슷한 입장에 처하게 되었다. 독일어가 그 사이에 계속 발전해왔고 보다 나은 이해를 위해서는 언어적 수정을 포기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철자에 이르기까지 루터를 충실하게 뒤따르려 했다. 1892 년에야 비로소 교회 당국에 의해 텍스트에 대한 개정이 이루어졌고, 2016 년까지 세 번 더 개정이 이루어졌다. 종합적으로 볼 때 루터는 독일어를 창조한 것도 아니고 성경을 최초로 번역한 것도 아니다. 그는 상이한 전제조건들에 근거를 두었고, 서적 인쇄라는 새로운 매체의 득을 보았는데, 이 매체로 인해 그의 생각들과 표현들이 대대적으로 확산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이유에서 루터에게 근세 초기의 독일어사와 독일문학사에서 핵심적인 의미가 부여된다. 첫째, 그의 수많은 출판물들은 초기 신고지 독일어의 단일어가 형성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둘째, 루터의 민중어 사용은 장기적으로 신학언어 및 학문언어로서의 독일어의 가치 상승을 야기했다. 셋째, 루터의 성경번역의 시적 특성의 진가를 인정할 수 있다. 루터는 여전히 최고의 문학적 요구를 충족시키는 독일어 성경언어의 창시자이다. 넷째, 수백 년에 걸친 수용사를 통해 루터의 성경은 온전히 독일의 문화유산에 속하는 고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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