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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수:22회 唐代의 한ㆍ중 불교교류 - 7세기 후반~8세기 초, 唐皇室의 法門寺 사리공양을 중심으로 -
회당학회 회당학보 제10집 2005.06 pp.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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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역과 티베트역 대장경에는 다수의 육자진언 관련 경전이 수록되 어 있다. 그러나 그들 경전은 내용상으로 보면 육자진언의 공덕성취 와 관련이 있을 뿐, 육자진언의 진언명과 함께 진언 자체가 등장하는 경전은 『대승장엄보왕경』 이외에 발견되지 않는다. 그리고 『대승장엄보왕경』을 근간으로 해서 티베트에서는 육자진 언교전인 『마니칸붐』, 한국에서는 『육자대명왕경』이 찬술되었다. 이들 경전 중에는 육자진언의 시원을 분명히 하고, 아미타불과 관 세음보살, 또한 육자진언의 관계를 설정할 수 있는 몇 가지 내용들이 발견된다. 즉, 광명의 불인 아미타불에서 관세음보살이 화현, 관세음 보살은 아미타불의 광명을 머금고, 자신의 몸에서 육색육종의 광명을 발산, 그 한 줄기, 한 줄기의 광선에서 육자의 진언을 출현시켰던 것 이다. 그것은 음성을 가지고 표현하는 단순한 진언으로써 뿐만이 아니라 그 이상의 공능을 부여한 육자대명왕진언의 출현을 의미하고 있는 것 이다. 이와 같은 육자대명왕진언은 한국에서 진언독송을 중심으로 하는 진언수행 뿐만이 아니라 전각, 기와의 장엄, 법구의 제작 등에 폭 넓 게 활용되고, 불교문화적인 차원에서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여기서 우리들은 몇 가지 진언표현의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즉 그들 장엄에는 육자진언을 중심으로 그 이외의 몇 가지 종류의 진언이 병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천수다라니, 삼종실지진언, 준제진언, 반야심주 등과 함께 쓰여 진언독송의 효과를 극대화시키고 있다. 다음으로 육자진언을 표현할 때, 아미타불과의 관계를 다양한 형 태로 나타내고 있다. 즉 『대승장엄보왕경』 성립 이후, 아미타불과 관 세음보살과 육자진언은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다. 그래서 육자진언을 전각, 기와의 장엄 등에 활용할 때, 그들의 관계를 염두에 두면서 몇 가지 표현방식을 활용하고 있다. 그것은 중심에 옴자, 람자, 흐리히자, 반원구형, 연화문, 만자 등을 나타내고, 그 주위에 육자진언을 표현한 것이다. 여기서 중심에 위치하는 각각의 표현은 아미타불을 직접적으로 상 징하고, 형용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람자의 경우, 불을 의미하기 위해 서 화광을 나타내고, 반원구형은 태양이나 달과 같이 광채를 발산하 는 광명의 근원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한편 우리들이 주목해야 할 것은 아미타불을 상징하는 종자자가 표현되어 있는 경우와 육자진언만을 표현한 경우, 각각 그 의미가 다 르다는 것이다. 그것은 육자진언을 관세음보살의 본심미묘진언의 의미로 쓸 경우 에는 장엄의 중심에 아미타불을 상징하는 문자를 나타내고 있다. 나아가서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의 영역으로부터 벗어나 육자대명왕진언으로 분화된 경우에는 장엄의 중심 에 광명을 나타내는 상징이나 연 화문을 가지고 표현하고 있다. 또한 옴자를 중심에 두는 경우에는 이미 오불과 금강보살의 교리가 반영 되어 육자대명왕진언의 새로운 영역으로 전개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漢訳とチベツト訳の大蔵経には多数の六字真言関聯の経典が収録 されている。しかしながらその経典らは內容の上から見ると六字真言 の功徳成就と関聯があるだけであり、六字真言の真言名と共にその 真言自体が登場する経典は 『大乗荘厳宝王経』 以外に見当らない。 そして 『大乗荘厳宝王経』 を根幹とし、チベツトでは六字真言の敎 典である 『マニカンブム』, 韓国では 『六字大明王経』 が撰述されたの である。 これらの経典の中には六字真言の始原を明かとし、阿弥陀仏と観 世音菩薩、また六字真言の関係を設定することができるいくつかの內 容が見当るのである.すなわち光明の仏である阿弥陀仏より観世音菩 薩が化現され、観世音菩薩は阿弥陀仏の光明を含み、自分の身から 六色六種の光明を発散させ、その一筋一筋の光線から六字の真言を 出現させたのである。 それは音声を持って表現する単なる真言だけではなく、それ以上の功能を与えた六字大明王真言の出現を意 味しているのである。 このような六字大明王真言は韓国の中で真言読誦を中心とする真 言修行だけではなく、殿閣、蓋瓦の荘厳、法具の製作等に幅広く活 用され、仏敎文化的な次元より多様なる様相に展開されていのであ る。 ここでわれわれはいくつかの眞言表現の特徴を発見することがで きる。すなわちそれらの荘厳には六字真言を中心とし、それ以外の いくつかの種類の真言が併用されているのである。すなわち千手陀羅 尼、三種悉地真言、準提真言、般若心呪などと共に使われ、真言読 誦の効果を極大化させているのである。勿論そのなかには敎理的な內 容が含まれている場合もある。 次に六字真言を表現する時、阿弥陀仏との関係を多様なる形態で 表しているのである。すなわち 『大乗荘厳宝王経』 の成立以後、阿弥 陀仏と観世音菩薩と六字真言とは不可分離の関係にある。それで六 字真言を殿閣、蓋瓦の荘厳等に活用する時、それらの関係を念頭に 置きながらいくつかの表現方式を活用しているのである。 それは中心にoṃ字, raṃ字, hriḥ字, 半円球形, 蓮花紋, 卍字などをあ らわし、そのまわりに六字真言を表現したのである。ここで中心に位 置するそれぞれの表現は阿弥陀仏を直接に象徴し、あるいは形容し たものであるとおもわれる。raṃ字の場合、火を意味するため、火光 をあらわし、半円球形は太陽や月のように光彩を発散する光明の根 源を表しているのである。 一方われわれが注目しなければならないことは阿弥陀仏を象徴する種子字が表現されている場合と六字真言 だけを表わす場合の間に はにはそれぞれ意味が異なるということである。 それは六字真言を観世音菩薩の本心微妙真言の意味として使わ れる場合には莊嚴の中心に阿弥陀仏を象徴する文字をあらわしてい る。 さらに阿弥陀仏と観世音菩薩との領域からはなれ、六字大明王真 言として分化された場合には莊嚴の中心に光明をあらわす象徴、あ るいは蓮花紋をもって表現しているのである。 またoṃ字を中心に置く場合にはすでに五仏と金剛菩薩の敎理が反 影され、六字大明王真言の 新しい領域に展開されていることを表し ているのである。
이용수:17회 콜버그의 도덕발달이론을 통해 본 응화방편문 - 응화방편문으로 조명한 미래 도덕성 교육의 방향 -
회당학회 회당학보 제17집 2012.12 pp.387-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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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수:16회 統一新羅 十二支像 圖像 硏究 - 四天王寺址와 遠願寺 石塔浮彫를 中心으로 -
회당학회 회당학보 제7집 2002.06 pp.222-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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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수:16회 경전들과 존상들 - 9세기 중국 법문사에서 발굴된 금강계 만다라
회당학회 회당학보 제17집 2012.12 pp.262-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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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수:15회 유가행파의 사심사관(四尋思觀)에 관한 연구 - 영상(影像)과 의언(意言)의 함의성(含意性)을 중심으로 -
회당학회 회당학보 제19집 2014.06 pp.309-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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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사(瑜伽師) 또는 유가행(瑜伽行)을 나타내는 Yogācāra는 명상적이고 정신집중적인 실천을 의미 한다. 그만큼 유가행파와 실천수행의 문제는 밀접한 관련성 위에 있다. 이러한 Yogācāra의 수행정신 은 후에 사심사관(四尋思觀)이라는 유식관법으로 정리된다. 사심사관이란 명(名)·의(義)자성(自性)차 별(差別)의 4가지 법으로서 심구사찰(尋求伺察)하여 유식성[Vijñaptimātratā]을 깨닫는 관법(觀法)을 말한다. 이 사심사관은 유식수행의 단계를 설명하는 오위설(五位說) 속에서 가행위(加行位)에 배대된 수행법인데, 이렇게 체계화되어 가는 과정 속에는 사실 전통을 달리하는 많은 이론들이 결합되어 있 다. 그러다보니 실질적 구체적 수행법으로 접근하기는 어렵다. 이에 지관이라는 실천수행의 관점에서 4가지 심사 요소들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4가지 심사 요소들이 거론되는 것은 일체법을 명(名)과 의(義)로서 파악하는 데서 비롯된다. 이는 궁극의 진리와 언설의 관계에 주목했던 불교적 사 유전통이 전제되어 있는데, 이런 사유에는 붓다의 교설, 즉 법으로서의 언설이 기저(基底)에 있다고 여겨진다. 사심사관도 지관(止觀; śamathavipaśyanā)수행 전통 위에 있는 만큼, 지관수행에서 중요하게 다루어 지는 소연(所緣)을 실마리로 하였다. 소연(所緣)이란 지관수행의 대상 즉 지관의 인식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이 영상(影像, pratibimba)과 의언(意言, manojalpa)이라는 술 어이다. 영상과 의언이란 다 같이 소연(所緣)을 나타내고 있지만, 이 술어 속에는 유가행파 교의의 전 개과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인식대상이 영상에서 의언으로 변화해가는 과정에 서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은 다음과 같다. 먼저는 인식대상이 사[事, vastu] 나 물(物) 중심에서 심(心)을 중심으로 논의되어 가는 정을 알 수 있 다. 또 의언(意言, manojalpa)이란 술어가 함의하고 있는 것을 찾아가다보니 명·구문(nāmapadavyañjana)의 언어와의 관계가 자명하게 드러난다. 이는 사심사관의 수행법에 거론 된 4가지 심사 요소의 당위성을 알 수 있다. 사실상 이런 과정 속에는 교법(敎法)의 중요성이 있다. 말 하자면 교법의 문훈습으로 인한 각관(覺觀[尋伺])사유가 정점에 있다. 이는 식(識)에 대한 정치한 분 석과 결합되어 ‘유식성’의 술어를 도출하게 되고, 이 술어는 지관수행 맥락에도 나타난다. 이런 과정 속에서 유식관법으로 드러난 사심사관은 『섭대승론』에 와서는 유식성을 거론하면서 통합정리되어 후대 문헌에 고스란히 계승되어진다. 이렇게 사심사관이 정립되어가는 과정을 영상과 의언의 술어를 중심으로 살피면서 더없이 자명해지는 것이 있다. 소연인 영상과 의언을 통해 지관수행의 설명방식은 변화되었지만, 그 술어가 함의하고 있듯이 수행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진실[진리, 본질]에 대한 것 이라는 사실이다.
We can take a look at formation of Sasimsagwan pointed out as meditative insight method to realize the Vijñaptimātratāof Yogācāra school with two Hypothesis: ‘Pratibimba[profections of consciousness]’ - to explain and ‘Manojalpa [the mental chatter]’ -to explain. And then we can make out as follows: Firstly, Sasimsagwan pointed out as contemplation of consciousness only method is combinated various theories . We have discussed the object is ‘Vastu[a bare entity]’ or ‘Matter’ as the center in the ‘Pratibimba’. But in the ‘Manojalpa’, we have seen the Mind as the center. Seeing the course of change, The concept of Vijñaptimātratābecame drawn. After that, all of the expanations about Yogācāra have seen Vijñaptimātratāas the cener. The method to explain Sasimsagwan is the same. Secondly , The matter of the objects of consciousness is related to the language of nāma・pada・ vyañjana [words, phrases, and syllables]. In the context of śamatha・vipaśyanā[止觀], Sasimsagwan has been discussed in the importance of Buddhist teachings[doctrine] Thirdly, In the context of śamatha・vipaśyanā, ‘adhimokșa(勝解, determination)’ or ‘manasikṛ[作意, focus(ing) attention]’ is focusing attention about śamatha in the ‘Pratibimba’. but in the ‘Manojalpa’, ‘vitarka・vicāra(尋・伺, discursive thought and investigation)’ is focusing attention about vipaśyanā Compared to this, Yogācāra is the focused method of Sasimsagwan. Yogācāra considers observation ,which emphasizes wisdom, is more important than meditative concentration.
이용수:13회 욕망의 주체에 의한 ‘심상(心像, saṃjña)’의 언어화 - 유식불교 ‘변계소집성’과 라캉의 ‘상징계’를 중심으로 -
회당학회 회당학보 제18집 2013.10 pp.349-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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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유식불교의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과 라캉의 ‘상징 계(the Symbolic)’가 ‘심상(心像, saṃjña)’이 언어화되는 양상을 설명 하는 주요 개념이라는 점에 주목하여, 문화를 형성하는 메커니즘에 있어서 인간의 욕망은 어떤 역할을 하며 그 양상은 어떠한지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욕망의 극복을 통해 해탈에 이르고자 하는 유식불교와, 욕망 그 자 체의 활약을 분석함으로써 심리현상을 설명하고자 하는 라캉의 이론 은 인간의 욕망에 대해 각기 다른 관점을 보이고 있다. 유식불교는 기 본적으로 욕망에 의해 형성된 모든 결과를 번뇌로 규정한다. 따라서 이것을 소멸시키기 위한 방법으로써 수행을 제안한다. 반면 라캉은 인간이 태어나서 성장하는 과정을 상상계에서 자연스럽게 상징계로 진입하는 것으로 본다. 상징계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상상계에 머물러 있을 때 건강하지 못한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이 때 정신분석가의 역 할이 요구된다. 인간의 욕망은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 중요한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 자신의 욕망과 타인의 욕망을 조율하면서 공동체의 규칙 및 문화를 형성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두 이론이 보여 준 바와 같이 욕망의 본성을 간파하지 못하고 욕망의 결과에 집착하 거나 고착화되어 있을 때 번뇌가 생겨나고 병적인 상태에 이르게 된 다. 인간은 자신의 언어로 표현된 욕망의 내용을 스스로 분석할 수 있 을 때, 그는 자신의 욕망을 조율하여 타인과 조화로운 삶을 살 수 있 게 될 것이다. 이것이 유식불교가 제시하는 수행의 효과이며 라캉이 보여준 바와 같이 상징계 속에서 건강한 언어생활을 할 수 있는 방법 일 것이다.
This article is a study analyzing the role and aspect of desire forming the culture. For that I focus on the concept of Yogācāra Buddhist ‘parikalpita-svabhāva’ and J. Lacan’s ‘the Symbolic’ explaining how the image(saṃjña) is verbalized. There is difference in perspective between Yogācāra Buddhism showing the way to nirvana by overcoming desire and the theory of J. Lacan explaining the phenomenon of mind by analyzing the activity of desire itself. All the results of desire are regarded as affliction in Yogāgacāra Buddhism. So Yogāgacāra Buddhism suggest the practice as way to extinct affliction. On the other hand J. Lacan thought the process in which man is born and develops as that in which man goes from ‘the Imaginary’ to ‘the Symbolic’ naturally. When man stays on the ‘the Imaginary’ without receiving ‘the Symbolic’, he comes to be unhealthy. So he needs psychoanalyst’s help. I think that the desire can be a driving force for ordinary life of human beings. Harmonizing the desire between himself and others, man makes living with forming the culture and rule of community. However when man does not look into the nature of desire and clings to the result of that, he comes to be a diseased sate as two theories show. When man is able to analyze the content of desire expressed by his own language, he may live with other people harmoniously. I think that this is the effect of practice as shown by Yogāgacāra Buddhism and this is the way to make healthy language life in ‘the Symbolic’ by J. Lac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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