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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금강정경』에서의 오상성신관을 살펴보고, 그에 대한 수행의 소연경을 살펴보았다. 그 과정에서 오상성신관의 각 단계에서 행해지는 관법에 따라 자심관, 월륜관, 금강관, 아입입아관이라고 명명하였다. 자심관, 월륜관, 금강관은 근본적으로 행자의 자심을 관찰하는 것이 중심 내용이며, 아입입아관은 행자의 심신을 불신으로 확증하는 관법이었다. 먼저 행자는 무식신평등지라고 불리는 아사파나가삼마지로부터 깨어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이 삼마지는 『금강정경의결』에서 말한 것과 같이 공적함을 애락하여 지혜의 작용이 없는 어리석음의 그물인 것이다. 그리하여 행자는 자심을 여실하게 관찰하는 자심관을 행한다. 자심관을 통하여 행자는 심심소는 실체가 없는 본불생임을 깨달음과 동시에 지혜의 본질임을 깨닫는다. 이러한 깨달음을 바탕으로 하여 청정하고 청량한 지혜와 자비의 광명이 증장되어가는 과정을 월륜관으로 나타내었다. 월륜관은 행자가 외경의 달을 관찰하고 상상하여 분명히 해가는 것이 아니라 자심 가운데 지혜와 자비광명이 증장되어감을 관하는 것을 월륜을 관하는 것으로 비유한 것이다. 또한 금강관은 증장된 利他의 자비심과 五智의 佛智가 본래부터 스스로 갖추고 있다고 확신하고 확증하는 것을 오고금강저를 관하는 것으로 비유하고 있다. 그러므로 경전은 心智를 견고하게 하기 위함이며, 보리를 견고하게 하고 견고하게 잘 머물게 하기 위하여 심진언을 전수한다고 하고 있다. 진언행자는 오고금강저의 모습을 관상한다고 하기 보다는, 본 단계의 진언을 외움과 동시에 佛智가 행자의 자성에 본래부터 내재되어 있다 라고 관념함으로써 확인하고 확증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이어서 아입입아관은 행자의 심신이 부처의 심신과 다르지 않음을 아입입아관을 통하여 성취하는 것이다. 먼저는 일체여래의 가지력에 의해 행자의 삼밀이 일체여래의 삼밀과 상응하여 하나가 됨으로써 금강살타가 된다. 이것은 관상과 관념을 통해 획득된다고 하기보다는 행자의 어묵동정행주좌와의 일상생활이 일체여래의 삼밀과 상응하여 다르지 않다고 매 찰나 확인되는 상태라고 생각된다. 이러할 때 행자는 이미 금강살타인 것이다. 이 단계에서 『진실섭경』은 금강대관정법을 베푼다고 설하고 있다. 이것은 스스로의 관상법에 의하거나 의례를 통하여 이루어질 것이다. 다음 단계는 자신의 몸조차도 부처의 몸과 다르지 않다고 관하는 것이다. 『진실섭경』은 행자 스스로에서 이치에 맞게 부처의 영상을 관한다고 하였고, 행자 자신 즉 불신을 원만하게 하기 위해 일체여래의 가지를 청하여 가지를 입는다고 설하고 있다. 또한 『제불경계섭진실경』은 오방의 부처가 자신의 몸으로 들어오는 것을 관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행자 스스로 불신임을 확신하고 불신으로서 행하는 일체의 사업이 불사임을 확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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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부법이란 자신의 열반에 이르러서 제자에게 전하는 법을 말한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도 열반에 즈음하여 ‘자등법 법등명’이라는 부법을 전하였다. 곧 부법이란 사회에서 말하는 유언에 해당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본 연구에서는 회당이 부법을 통해 전하고자 한 가르침의 방향을 이원원리로서 해석해 보았다. 대한불교진각종의 종조 회당은 자신의 열반에 즈음하여 3차례의 부법을 전하였다. 본 내용에서는 그 중에서 3번째에 해당하는 일명 ‘약불 서남법’에 대한 내용을 중심으로 전래의 해석을 살펴보았으며, 이를 이원원리에 의해 해석해 보았다. 전래의 해석은 다음과 같다. ‘약불법이란 스승이 되어서는 불공 중에 약을 먹지 않아야 내 법을 이어 받을 수 있다’라고 해석하였고 ‘서남법이란 중생교화 방향이 서남쪽이 되도록 심인당을 건설하는 법’ 이라고 해석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약불 서남법을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다. 먼저 약불법과 서남법을 하나의 문장으로 설 정하였는데 약불법은 물(物)로서, 서남법은 심(心)으로서 상징화된 용어인 것으로 해석하였다. 그리고 약불서남법을 이원원리 즉, 둘 다 중요시하되 하나를 따로 세움으로서 다른 하나인 상대를 바 루게 되는 원리에 의해 해석해 보았다. 곧 물질시대에는 물(物)에 마음이 기울어지므로 따로 심(心)을 세우는 법이라고 해석하였다. 그리하여 ‘약불 서남법이란 스승이 되어서는 물질에 의존하는 마음을 끊고[약불] 따로 마음공부하는 법[서남법]을 세우는 자라야 내 법을 받을 수 있다’라고 해석하였다.
When Sakyamuni Buddha(釋尊, BC 624-544) enter into Nirvana, he gave his last Testament(付法) to his disciples. So the meaning of last testament is like a last will(遺言) in general. This study refers to the Hoedang’s last Testament. The founder of Jingak-Buddhism(大韓佛敎眞覺宗), Hoedang(悔堂, 1902-1963), gave his last Testament through 3 times. This study of Hoedang’s last Testament is about the 3rd one which is so-called ‘The law of No medicine and Southwest’(藥不西南法). This paper refers to the understanding of the Hoedang’s last Testament with the existing interpretation and a new interpretation. The existing interpretation consists of two parts. One part is the law of No medicine[藥法] and the other part is the law of Southwest[西南法]. The law of No medicine is believed that the one who wants to be a successor of Hoedang should not take any medicine during his practicing asceticism. The law of Southwest is believed that in order to do the edification of the masses Hoedang’s successor should build the place of practicing asceticism according to the direction of Southwest. A new interpretation is based on Hoedang’s The principle of consciousness dualism(二元 原理). The meaning of The principle of consciousness dualism has two parts. First part is believed that considering one as important as another. The Second part is believed that if one thing is established rightly as separately then another one is supposed to be established as rightly as well. It means that an age of materialism our Mind is so much depend on material, so we should establish our Mind(心) separately from Material(物). So the law of No medicine and Southwest[藥不西南法] is interpreted like that: to be a master/teacher of Jingak-Buddhism he should sever his Mind from Material depend mind [No medicine] and establish the rule of practicing asceticism so-called Mind Study [Southwest].
밀교(密敎) 부법(付法)의 역사와 유형 - 三部三昧耶와 破地獄儀軌 를 중심으로 -
회당학회 회당학보 제19집 2014.06 pp.219-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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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해석학은 불교 고유의 ‘열린 텍스트’ 전통과 ‘방편설’ 전통으로부터 발전해 왔다. 다시 말해 역사 적으로 불설 범주의 무한한 확장 과정 속에서 해석학적 당위성을 추구하려는 노력과 함께 궁극적 진 리인 설법자의 진의를 표면적인 경전언어로부터 해석해내려는 노력들이 이루어낸 결실인 셈이다. 또 한 진의의 해석은 문헌학적 해석과는 달리 깨달음에 이르는 ‘수행으로서의 이해적 행동’이라는 확고 부동한 목표를 내포한 종교해석학적 특징을 갖고 있다. 불교해석학은 반야중관의 경전언어관을 바탕으로 유식학파에 이르러 꽃을 피우게 된다. 유식학파의 전적은 그 보고로서, 불교해석학의 구체적 원칙들은 거의 대부분 유식학파의 논서에서 정리되고 구체 화되었다. 유식학파는 초기에 八因을 통하여 대승비불설에 대한 소극적인 자기 방어에서 출발하였지 만, 후일 적극적인 불설확대를 주장하게 된다. 나아가 그들은 삼시교판이라는 해석학적 정통성과 정법성까지 내세우며 특유의 法相觀에 입각한 釋 大乘道理를 확립하기에 이른다. 즉 연기설, 相의 설명, 교설의 의미 설명이 그것이다. 또한 대승불교 의 경전언어철학인 방편과 진의의 해석학을 여러 방법론으로 발전시키게 되는데, 四量・四意趣・四秘 密은 대표적인 해석학적 장치들이라고 볼 수 있다. 사량은 能詮・義意・ 義・無言을, 사의취는 平等意趣, 別時意趣, 別義意趣, 補特伽羅意樂意趣를, 사비밀 은 令入秘密, 相秘密, 對治秘密, 轉變秘密을 말한다. 이 가운데 특히 修所成智와 對治秘密은 ‘수행의 이해적 행동’으로서, 불교해석학의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은 불교해석학은 역사적으로 ‘통일성과 다양성의 역설적인 순환관계’를 이루면서 발전해 왔다 . 불교해석학은 분명 해석학적 통일 원리이므로 무질서하고 다양한 해석을 미연에 방지한다는 차원으 로 출발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일 원리의 포괄적 성격은 도리어 해석의 다양화를 용인하여 본 래의 취지와는 방향이 다른 결과를 도출해 버리고 말았다. 불교의 역사적, 지역적 다양화는 이러한 해 석학적 다양성에 크게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Buddhist hermeneutics has been developed from ‘open text’and upāya traditions. From a historical perspective, it is the result of the efforts in search of hermeneutical validity through infinite extension of Buddhavacanaṁ’s category and the effort to interpret Buddha’s real intention from superficial canonical language. A special characteristic of Buddhist hermeneutics is that the interpretation of Buddha’s real intention is always studied from the perspective of understanding behavior in the context of practice to enlightenment. Buddhist hermeneutics is based on the canonical linguistic attitude of Prajñā-Mādhyamika school and culminates in Yogācāra system. Most of Buddhist hermeneutics principles are arranged and embodied in Yogācāra writings. In the beginning Yogācārins protected themselves passively from the attack that Mahāyāna is not the original message of historical Buddha. But later they advocated more positively that the extension of Buddhavacanaṁ’s category is legitimate. Moreover, they stood by their orthodoxy and authenticity by explaining the three turnings of the wheel of the Dharma in Saṃdhinirmoccana Sūtra, and establishing ‘the principle to interpret Mahāyāna(釋大乘道理)’based on their own view of dharma-lakśaṇa. They also developed the hermeneutics of upāya and artha, which are forms of linguistic canonical philosophy. The ‘Four criteria of interpretation(正四依, 四量)’, ‘four types of intention(四意趣)’, and the ‘four types of hidden intention(四秘密)’are typical of hermeneutical methods in Yogācāra writings. Among these, Buddhist hermeneutics in regards to understanding behavior in the context of practice to enlightenment, is represented by ‘a wisdom arisen from meditation(修所成智)’and ‘therapeutic hidden intention(對治秘密)’. Historically speaking, Buddhist hermeneutics has been developed through the paradoxical circulation between unity and variety in the interpretation of Buddhavacanaṁ. Surely Buddhist hermeneutics started in order to prevent confused interpretation with the goal of finding a unifying principle in Buddha’s teachings. However, the comprehensive nature of unifying principle allowed for a variety of interpretation instead, that deduced a result with a different direction. Variety in Buddhism is due to a variety of interpretation.
유가행파의 사심사관(四尋思觀)에 관한 연구 - 영상(影像)과 의언(意言)의 함의성(含意性)을 중심으로 -
회당학회 회당학보 제19집 2014.06 pp.309-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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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사(瑜伽師) 또는 유가행(瑜伽行)을 나타내는 Yogācāra는 명상적이고 정신집중적인 실천을 의미 한다. 그만큼 유가행파와 실천수행의 문제는 밀접한 관련성 위에 있다. 이러한 Yogācāra의 수행정신 은 후에 사심사관(四尋思觀)이라는 유식관법으로 정리된다. 사심사관이란 명(名)·의(義)자성(自性)차 별(差別)의 4가지 법으로서 심구사찰(尋求伺察)하여 유식성[Vijñaptimātratā]을 깨닫는 관법(觀法)을 말한다. 이 사심사관은 유식수행의 단계를 설명하는 오위설(五位說) 속에서 가행위(加行位)에 배대된 수행법인데, 이렇게 체계화되어 가는 과정 속에는 사실 전통을 달리하는 많은 이론들이 결합되어 있 다. 그러다보니 실질적 구체적 수행법으로 접근하기는 어렵다. 이에 지관이라는 실천수행의 관점에서 4가지 심사 요소들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4가지 심사 요소들이 거론되는 것은 일체법을 명(名)과 의(義)로서 파악하는 데서 비롯된다. 이는 궁극의 진리와 언설의 관계에 주목했던 불교적 사 유전통이 전제되어 있는데, 이런 사유에는 붓다의 교설, 즉 법으로서의 언설이 기저(基底)에 있다고 여겨진다. 사심사관도 지관(止觀; śamathavipaśyanā)수행 전통 위에 있는 만큼, 지관수행에서 중요하게 다루어 지는 소연(所緣)을 실마리로 하였다. 소연(所緣)이란 지관수행의 대상 즉 지관의 인식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이 영상(影像, pratibimba)과 의언(意言, manojalpa)이라는 술 어이다. 영상과 의언이란 다 같이 소연(所緣)을 나타내고 있지만, 이 술어 속에는 유가행파 교의의 전 개과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인식대상이 영상에서 의언으로 변화해가는 과정에 서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은 다음과 같다. 먼저는 인식대상이 사[事, vastu] 나 물(物) 중심에서 심(心)을 중심으로 논의되어 가는 정을 알 수 있 다. 또 의언(意言, manojalpa)이란 술어가 함의하고 있는 것을 찾아가다보니 명·구문(nāmapadavyañjana)의 언어와의 관계가 자명하게 드러난다. 이는 사심사관의 수행법에 거론 된 4가지 심사 요소의 당위성을 알 수 있다. 사실상 이런 과정 속에는 교법(敎法)의 중요성이 있다. 말 하자면 교법의 문훈습으로 인한 각관(覺觀[尋伺])사유가 정점에 있다. 이는 식(識)에 대한 정치한 분 석과 결합되어 ‘유식성’의 술어를 도출하게 되고, 이 술어는 지관수행 맥락에도 나타난다. 이런 과정 속에서 유식관법으로 드러난 사심사관은 『섭대승론』에 와서는 유식성을 거론하면서 통합정리되어 후대 문헌에 고스란히 계승되어진다. 이렇게 사심사관이 정립되어가는 과정을 영상과 의언의 술어를 중심으로 살피면서 더없이 자명해지는 것이 있다. 소연인 영상과 의언을 통해 지관수행의 설명방식은 변화되었지만, 그 술어가 함의하고 있듯이 수행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진실[진리, 본질]에 대한 것 이라는 사실이다.
We can take a look at formation of Sasimsagwan pointed out as meditative insight method to realize the Vijñaptimātratāof Yogācāra school with two Hypothesis: ‘Pratibimba[profections of consciousness]’ - to explain and ‘Manojalpa [the mental chatter]’ -to explain. And then we can make out as follows: Firstly, Sasimsagwan pointed out as contemplation of consciousness only method is combinated various theories . We have discussed the object is ‘Vastu[a bare entity]’ or ‘Matter’ as the center in the ‘Pratibimba’. But in the ‘Manojalpa’, we have seen the Mind as the center. Seeing the course of change, The concept of Vijñaptimātratābecame drawn. After that, all of the expanations about Yogācāra have seen Vijñaptimātratāas the cener. The method to explain Sasimsagwan is the same. Secondly , The matter of the objects of consciousness is related to the language of nāma・pada・ vyañjana [words, phrases, and syllables]. In the context of śamatha・vipaśyanā[止觀], Sasimsagwan has been discussed in the importance of Buddhist teachings[doctrine] Thirdly, In the context of śamatha・vipaśyanā, ‘adhimokșa(勝解, determination)’ or ‘manasikṛ[作意, focus(ing) attention]’ is focusing attention about śamatha in the ‘Pratibimba’. but in the ‘Manojalpa’, ‘vitarka・vicāra(尋・伺, discursive thought and investigation)’ is focusing attention about vipaśyanā Compared to this, Yogācāra is the focused method of Sasimsagwan. Yogācāra considers observation ,which emphasizes wisdom, is more important than meditative concent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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