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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리즘과 남북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인 디아스포라 KCI 등재후보

정영순

재외한인학회 재외한인연구 제23호 2011.02 pp.45-76

...한인 디아스포라 역시 시대적, 지역적 상황에 따라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되어 왔다. 일제시기를 통한 식민주의적 민족 이산(離散)으로 이해되는 한인 디아스포라를 시작으로 현재는 남한에서의 해외 이주, 북한의 탈북 이민자들을 포한한 다양한 현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민족의식이나 민족정체성도 상황이 바뀌고 있으며, 남북 분단으로 인해 같은 한민족이라 하더라도 북한과 남한의 민족 개념이 상이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통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남북한, 해외 동포를 아우르는 민족 개념을 재정립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볼 수 있으며, 이를 위한 기초 연구로서 한인 디아스포라 연구는 매우 시급한 과제이다. 본고에서는 디아스포라의 다양한 현황을 파악하고, 글로벌리즘이 전개되는 현 상황에서 남북공동체 문제를 어떻게 접근하고 해결해야 하는 가에 대한 해답으로서 한인 디아스포라의 새로운 방향을 어떻게 모색해야 하는 가에 대해 고찰하고자 하였다. 본고에서는 개인으로 자립하는 것과 민족적으로 사는 것이 모순되지 않음을 한인 디아스포라들이 잘 보여주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남북통합을 어떠한 형태로 이룰 것인가는 점진적인 통합 방안을 지향하면서 통일 로드맵을 만들어가야 하겠지만 민족 정체성은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구축해 나가는 것임을 재중 조선족, 재일 한인 등을 통해 확인하였다. 즉 정체성의 다수성과 유연성을 통일 과정에서도 새롭게 정립해야 하는 것이다. 언젠가 실현될 통일 후의 한반도는 글로벌 경제에 통합된 남한이 주도할 가능성이 농후하며 이럴 때 지금까지 살펴본 한인 디아스포라의 문제는 많은 시사점을 던져 준다. 통일 한국을 성취하는 과정에서 한인 디아스포라는 북한 동포를 어떻게 포용하여 함께 살아가야 할 한민족공동체 구성원으로 만드는 가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해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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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는 탈민족이라는 새로운 세계적 조류에 휩싸이고 있고, 지금까지 재외 한인 디아스포라 역시 시대적, 지역적 상황에 따라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되어 왔다. 일제시기를 통한 식민주의적 민족 이산(離散)으로 이해되는 한인 디아스포라를 시작으로 현재는 남한에서의 해외 이주, 북한의 탈북 이민자들을 포한한 다양한 현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민족의식이나 민족정체성도 상황이 바뀌고 있으며, 남북 분단으로 인해 같은 한민족이라 하더라도 북한과 남한의 민족 개념이 상이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통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남북한, 해외 동포를 아우르는 민족 개념을 재정립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볼 수 있으며, 이를 위한 기초 연구로서 한인 디아스포라 연구는 매우 시급한 과제이다. 본고에서는 디아스포라의 다양한 현황을 파악하고, 글로벌리즘이 전개되는 현 상황에서 남북공동체 문제를 어떻게 접근하고 해결해야 하는 가에 대한 해답으로서 한인 디아스포라의 새로운 방향을 어떻게 모색해야 하는 가에 대해 고찰하고자 하였다. 본고에서는 개인으로 자립하는 것과 민족적으로 사는 것이 모순되지 않음을 한인 디아스포라들이 잘 보여주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남북통합을 어떠한 형태로 이룰 것인가는 점진적인 통합 방안을 지향하면서 통일 로드맵을 만들어가야 하겠지만 민족 정체성은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구축해 나가는 것임을 재중 조선족, 재일 한인 등을 통해 확인하였다. 즉 정체성의 다수성과 유연성을 통일 과정에서도 새롭게 정립해야 하는 것이다. 언젠가 실현될 통일 후의 한반도는 글로벌 경제에 통합된 남한이 주도할 가능성이 농후하며 이럴 때 지금까지 살펴본 한인 디아스포라의 문제는 많은 시사점을 던져 준다. 통일 한국을 성취하는 과정에서 한인 디아스포라는 북한 동포를 어떻게 포용하여 함께 살아가야 할 한민족공동체 구성원으로 만드는 가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해 주는 것이다.

Before forming a genuine people's nation, the Korean peninsula has been in the turmoil of a new world trend of the so-called denation. Until now, Korean Diaspora in foreign residence outside the peninsula has developed in widely differing ways, depending on periodic and regional circumstances. Starting with Korean Diaspora, which is regarded as a colonial people's separation caused by the Japanese occupation, currently, the Diaspora has developed in varying forms, including overseas immigration from the south and North Korean defectors. National or national identity can change under different circumstances. Especially, even though South and North Koreans are all Korean, both have totally different national concepts. The north made a new Kim, Il Sung People’s concept, which is totally different from the Korean people’s concept in South Korea. After the collapse of Eastern Europe, the origins of early socialism, North Korea adopted the nationalist concept to maintain the regime centering on Kim, Il Sung. It is a pressing matter for us to reestablish a national concept that encompasses both south and north, and that also includes Korean Diaspora, as we prepare for the peninsula’s eventual reunification. Korean Diaspora studies have the urgent task to achieve this. In this report, we reviewed the various statuses of Diaspora and considered how to seek a new direction for Korean Diaspora as an answer to how we might approach and resolve the problems of the southern and northern communities in the current situation, accompanied by an increasing pace of glob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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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한인 청년의 정치의식과 정치참여: 로스앤젤레스 설문조사 결과를 KCI 등재후보

윤인진

재외한인학회 재외한인연구 제23호 2011.02 pp.129-161

...한인 청년의 정치의식과 정치참여의 실태를 파악하는 것이다. 본 연구의 자료는 2004년 로스앤젤레스 광역지역에서 20~40세의 한인을 포함한 여러 인종·종족집단 청년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로스앤젤레스 광역지역에서의 이민과 세대 간 이동 조사”에서 수집되었다. 조사 결과 20~40세의 한인 청년들은 1.5세 비율이 높은 이유로 다른 인종·종족집단의 청년들에 비교해서 부모 모국의 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은 편이다. 그리고 거주국인 미국의 정치에 대한 관심과 참여 수준도 대체로 높은 편이다. 이들의 정치 성향은 중도적 정치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가장 많고, 보수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진보성향을 가진 사람들보다 약간 많다. 이들이 지지하는 정당은 민주당이 공화당보다 약간 우세이지만 유권자 등록자 중에서는 공화당을 지지하는 비율이 더욱 높았다. 한인 청년들의 높은 교육수준과 주류화 수준, 그리고 높은 정치의식과 참여 수준으로 인해 향후 재미한인의 정치 참여와 세력화는 더욱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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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의 목적은 재미한인 청년의 정치의식과 정치참여의 실태를 파악하는 것이다. 본 연구의 자료는 2004년 로스앤젤레스 광역지역에서 20~40세의 한인을 포함한 여러 인종·종족집단 청년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로스앤젤레스 광역지역에서의 이민과 세대 간 이동 조사”에서 수집되었다. 조사 결과 20~40세의 한인 청년들은 1.5세 비율이 높은 이유로 다른 인종·종족집단의 청년들에 비교해서 부모 모국의 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은 편이다. 그리고 거주국인 미국의 정치에 대한 관심과 참여 수준도 대체로 높은 편이다. 이들의 정치 성향은 중도적 정치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가장 많고, 보수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진보성향을 가진 사람들보다 약간 많다. 이들이 지지하는 정당은 민주당이 공화당보다 약간 우세이지만 유권자 등록자 중에서는 공화당을 지지하는 비율이 더욱 높았다. 한인 청년들의 높은 교육수준과 주류화 수준, 그리고 높은 정치의식과 참여 수준으로 인해 향후 재미한인의 정치 참여와 세력화는 더욱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The purpose of this research is to examine the situation of political consciousness and participation of Korean American young adults. The primary dataset for this research came from the survey called "Immigration and Intergenerational Mobility in Metropolitan Los Angeles (IIMMLA)", conducted in 2004 by a group of researchers at the University of California. The survey target group was young adults aged 20 through 40 from various racial and ethnic groups including Koreans who lived in the Los Angeles metropolitan area. Main findings are as follows. Korean American young adults have a high rate of the 1.5 generation and hence they have a high level of interest in the politics of their parents' home country than their counterparts of other racial and ethnic groups. Also, they have a high level of interest and participation in the U.S. politics. Their political ideology is widely spread with the greatest number of people having a moderate political ideology and people with conservative ideology are slightly more numerous than people with liberal ideology. They are more likely to support the Democratic Party than the Republican Party, but among those who register to vote people supporting the Repulican Party are slightly more numerous than people supporting the Democratic Party. When we consider their high rates of education and participation in U.S. mainstream society, they are more likely to get involved in U.S. politics and increase their political empowerment in the fu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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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한인사회와 디지털콘텐츠 KCI 등재후보

임영상

재외한인학회 재외한인연구 제23호 2011.02 pp.101-125

...한인사회 연구의 중요성을 제기하려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이를 위해 먼저 재외한인사회의 역사문화자원을 전자문화지도로 구현하자는 것이다. 특히, 독립국가연합 고려인과 중국 조선족 사회의 문화자원은 한민족의 전통생활문화에 기초한 것으로, 신한류 콘텐츠 개발에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은 디지털 기반 재외한인기록관의 설립이다. 재외한인사회의 과거와 현재의 변화를 맥락적으로 포착해 낼 수 있는 재외한인기록관을 설립하여,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현대한국연구소가 수행 중인 현대한국구술사 프로젝트와 유사한 재외한인구술사 사업을 수행하는 일이 시급히 필요하다. 한국 현대사의 증언자들인 원로한인들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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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콘텐츠를 활용한 재외한인사회 연구의 중요성을 제기하려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이를 위해 먼저 재외한인사회의 역사문화자원을 전자문화지도로 구현하자는 것이다. 특히, 독립국가연합 고려인과 중국 조선족 사회의 문화자원은 한민족의 전통생활문화에 기초한 것으로, 신한류 콘텐츠 개발에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은 디지털 기반 재외한인기록관의 설립이다. 재외한인사회의 과거와 현재의 변화를 맥락적으로 포착해 낼 수 있는 재외한인기록관을 설립하여,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현대한국연구소가 수행 중인 현대한국구술사 프로젝트와 유사한 재외한인구술사 사업을 수행하는 일이 시급히 필요하다. 한국 현대사의 증언자들인 원로한인들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arouse the importance of research through digital contents on overseas Korean communities. The first thing to do for this is to embody the communities' historical and cultural resources into the digital cultural map. Particularly, the resources of ethnic Korean communities in CIS and China can be used effectively in developing new Korean Wave contents because they are based on the Korean people's traditional living culture. The next thing for us to do is to establish digital-based archives of Koreans abroad. We should set up archives to grasp the communities' changes of the past and the present contextually, and carry out the project of oral history statement for overseas Koreans like the oral statement project for Korean modern history which is now being performed by Institute for Modern Korea, the Academy of Korean Studies. It is because there is not enough time for senior Koreans, witnesses of Korean modern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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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한인학회 회칙 KCI 등재후보

재외한인학회

재외한인학회 재외한인연구 제23호 2011.02 pp.371-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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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정책과 한인 디아스포라 KCI 등재후보

권희영

재외한인학회 재외한인연구 제23호 2011.02 pp.77-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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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고도성장을 통하여 노동력이 많이 부족하게 되면서 특히 1990년대 이래 외국인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하여 다른 민족들이 한국에 많이 거주하게 되면서 다문화에 대한 관심이 제고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다문화사회의 문제는 전 세계적으로도 비교적 새롭게 대두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거시적인 차원에서 볼 때 대개 인류사회는 타민족과의 관계를 구성하는 정책의 방향에서 볼 때 차별-동화-다문화주의의 역사적 경로를 거쳐 왔다고 생각할 수 있다. 본고에서는 종교에서의 세속주의 국가적 원리를 원용하여 문화에 대하여 이 개념의 적용하다면 다문화주의의 이론적 근거가 확보된다고 보았다. 즉 중심은 있으나 그 내용은 비어있어서 소통이 가능한 그러한 모델을 다문화주의를 실천하기 위한 이론적 근거로 제시하였다. 그러나 다문화의주의는 바람직한 정책방향으로 생각될 수는 있지만 아직 전면적으로 시행하기에는 많은 위험요소를 안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우선 세계적으로 보아 다문화주의를 전면적으로 시행하는 나라들보다는 동화정책을 채택하는 나라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결국 상황에 따른 미세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Korea made rapid economic growth from 1980' and the shortage of labour forces were felt in Korea. Many foreign labourers were invited to Korea and the interest on foreign labourers was increased. The concern on multiculturalism began from that time. It was a relatively new problem and still is an experiment. The theoretical basis of multiculturalism is very different from discrimination or assimilation policy. And it's theory is very closely related to pluralistic society of the post-nationalistic era. The theoretical basis of multiculturalism can be found in secular State theory. In this theory, the secular State can be a center of many religions but State itself have no concrete contents of any religion. This can be a model for the application of multiculturalism in a given State. The multiculturalism can be considered as a desirable policy but it has also it's own risk. Even now, almost all countries adopt assimilation policy and there is no country where multiculturalism is practiced fully in grand scale. This observation makes us to think that micro-level approach according to situation is more practicable. The imagined community can be obtained through the imagination which is called as identity. The most desirable access to this imagined community will be to secure maximum individual choice as well as fortifying this commu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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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없는 디아스포라 : 일본에서 한인되기 KCI 등재후보

윤인진

재외한인학회 재외한인연구 제23호 2011.02 pp.365-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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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한인 유치원 교사들의 교직 생활에 관한 이야기 KCI 등재

김남숙

한국교원교육학회 한국교원교육연구 제27권 제4호 2010.12 pp.215-240

...한인 유치원 교사들의 교직생활을 알아보고 교직의 일상 속에서 그들이 가지는 교직의 의미를 탐색 해 봄으로써 향후 해외 유치원 교사들의 교직생활을 위한 기초자료로 제공하고자 하였다. 이에 본 연구는 자카르타 시내 유치원 교사 2명, 원감 2명, 총 4명의 면담, 생활일기, 교직일기, 전화상담 등의 자료를 통하여 유치원 교사의 교직 생활 의미를 질적으로 탐색하였다. 연구 결과 유치원 교사의 교직 생활은 유치원 환경에 따라 서로 다르게 살아가고 있었으며, 교직의 일상에서는 원장, 학부모, 유아, 교사의 관계로 나타났다. 즉, 원장과의 관계적 측면에서는 다중적인 역할의 슈퍼우먼, 학부모와의 관계에서는 부모에게 순응한 도덕 선생님, 유아와의 관계에서는 행복한 선생님, 교사와의 관계에서는 개인주의적 성향의 고독한 연출가로 나타났다. 또한 한인 교사 교직의 일상에서 나타나는 심리적 의미 탐색은 분업화를 이루지 못한 교직생활 봉사자, 교직이 가지는 양면성(낙관론자)이며, 그리고 환경적 요인으로 나타난 의미 탐색은 4대 보험 없고 댕기 모기 있는 환경(2년제 투숙객), 택시타고 나들이 가는 방 지킴이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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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인도네시아 한인 유치원 교사들의 교직생활을 알아보고 교직의 일상 속에서 그들이 가지는 교직의 의미를 탐색 해 봄으로써 향후 해외 유치원 교사들의 교직생활을 위한 기초자료로 제공하고자 하였다. 이에 본 연구는 자카르타 시내 유치원 교사 2명, 원감 2명, 총 4명의 면담, 생활일기, 교직일기, 전화상담 등의 자료를 통하여 유치원 교사의 교직 생활 의미를 질적으로 탐색하였다. 연구 결과 유치원 교사의 교직 생활은 유치원 환경에 따라 서로 다르게 살아가고 있었으며, 교직의 일상에서는 원장, 학부모, 유아, 교사의 관계로 나타났다. 즉, 원장과의 관계적 측면에서는 다중적인 역할의 슈퍼우먼, 학부모와의 관계에서는 부모에게 순응한 도덕 선생님, 유아와의 관계에서는 행복한 선생님, 교사와의 관계에서는 개인주의적 성향의 고독한 연출가로 나타났다. 또한 한인 교사 교직의 일상에서 나타나는 심리적 의미 탐색은 분업화를 이루지 못한 교직생활 봉사자, 교직이 가지는 양면성(낙관론자)이며, 그리고 환경적 요인으로 나타난 의미 탐색은 4대 보험 없고 댕기 모기 있는 환경(2년제 투숙객), 택시타고 나들이 가는 방 지킴이 등이다.

The goal of this thesis is to provide basic materials by investigating Korean kindergarten teachers' teaching life in Indonesia and their daily life at their kindergarten. In this study, the consulting, diary, teaching diary and telephone consulting of two Jakarta downtown kindergarten teachers and two principals were studied. The research shows that kindergarten teachers' teaching life is different because of their different kindergarten environment. It also shows that in the relationships with their principal, teachers are those who are superwomen with multi-roles, with parents they are moral teachers who are very conforming, with children they are happy volunteers, and with other teachers they are lonely directors with individualism. According to the psychological part of the research, teachers regard themselves as volunteers who are not specialized in anything, and they show the good and bad aspects of their job. Considering their environmental conditions, they are having a hard time; they don't have national insurance, they have countless mosquitos, and they are loners who go on a picnic by tax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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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대 만주지역 한인사회의 동향과 한인의 만주이주 KCI 등재후보

황민호

숭실대학교 역사문물연구소(구 숭실사학회) 숭실사학 제25집 2010.12 pp.115-156

...한인들의 만주이주와 한인독립운동세력의 동향에 대해 북간도지역과 남ㆍ북만지역으로 구분하여 그 특징과 성격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리고 각 지역에서의 한인사회의 발전과 성장은 1920년대에 들어 만주지역에서의 항일독립운동이 적극적으로 전개될 수 있었던 배경이 되었음을 밝히고자 노력하였다. 1910년 이후 한인들의 만주이주는 국내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리한 농업여건과 관련이 있었다. 또한 한인들은 만주지역의 불리한 자연환경을 극복하면서 수전개발에 성공하였으며, 한인들은 중국인지주들의 환영을 받으면서 만주 이주를 진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한인 이주민들은 일제와 중국당국의 이중적 통제와 부당한 대우 속에서도 대체로 한인사회를 안정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조선총독부 기관지였던 󰡔매일신보󰡕의 보도 내용을 통해서 보아도 당시 한인들의 만주이주가 농업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으며, 이회영 등이 독립운동지도자들의 경우도 농업의 발전을 통한 한인사회의 형성과 발전을 독립운동의 밑거름으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하겠다. 또한 민족지도자들의 정치적 망명과 이들의 한인들에 대한 적극적인 지도와 후원은 지역적으로 편차를 나타내고 있기는 했지만, 한인사회가 3ㆍ1운동 이후 전개되었던 만주지역 항일무장투쟁에 있어서 민족적인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대부분의 민족지도자들은 만주지역 곳곳에 항일투쟁 의식에 기반을 둔 한인사회를 건설하는 한편, 독립전쟁론에 입각한 새로운 독립운동기지로 삼고자 노력하였다. 그리고 이들의 활동은 궁극적으로 1910년대의 재만한인 사회가 독립운동의 역량강화와 한인사회의 지속적인 발전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일정하게 성과를 거두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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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에서는 1910년대의 한인들의 만주이주와 한인독립운동세력의 동향에 대해 북간도지역과 남ㆍ북만지역으로 구분하여 그 특징과 성격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리고 각 지역에서의 한인사회의 발전과 성장은 1920년대에 들어 만주지역에서의 항일독립운동이 적극적으로 전개될 수 있었던 배경이 되었음을 밝히고자 노력하였다. 1910년 이후 한인들의 만주이주는 국내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리한 농업여건과 관련이 있었다. 또한 한인들은 만주지역의 불리한 자연환경을 극복하면서 수전개발에 성공하였으며, 한인들은 중국인지주들의 환영을 받으면서 만주 이주를 진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한인 이주민들은 일제와 중국당국의 이중적 통제와 부당한 대우 속에서도 대체로 한인사회를 안정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조선총독부 기관지였던 󰡔매일신보󰡕의 보도 내용을 통해서 보아도 당시 한인들의 만주이주가 농업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으며, 이회영 등이 독립운동지도자들의 경우도 농업의 발전을 통한 한인사회의 형성과 발전을 독립운동의 밑거름으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하겠다. 또한 민족지도자들의 정치적 망명과 이들의 한인들에 대한 적극적인 지도와 후원은 지역적으로 편차를 나타내고 있기는 했지만, 한인사회가 3ㆍ1운동 이후 전개되었던 만주지역 항일무장투쟁에 있어서 민족적인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대부분의 민족지도자들은 만주지역 곳곳에 항일투쟁 의식에 기반을 둔 한인사회를 건설하는 한편, 독립전쟁론에 입각한 새로운 독립운동기지로 삼고자 노력하였다. 그리고 이들의 활동은 궁극적으로 1910년대의 재만한인 사회가 독립운동의 역량강화와 한인사회의 지속적인 발전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일정하게 성과를 거두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고 하겠다.

This paper aimed to explain the features and characters of Korean immigrant to Mancuria and the tendency of Korean-independent-movement-powers, North-Gan-do and SouthㆍNorth Manchuria. And, It was the development and growth of Korean local communities that in both areas became background which entering the 1920’s, anti-Japan struggle in Manchuria was able to actively spread out. After 1910, Korean immigrant to Manchuria was associated with relatively favorable agricultural condition compared with internal’s. In addition, Korean immigrants were succeed in development of a paddy field against adverse natural condition in Manchuria, and hence their immigrants was welcomed by Chinese. Thus, It was found that Korean immigrations were able to develop Korean local communities mostly in stable, although there were severe dual controls, Japanese and Chinese authorities, and bad treatments. As we known through the contents of the `Maeilsinbo`, Chongdokbu organ, the comtemporary Korean immigrant to Manchuria was closely related with agricultural issues, and the leaders of independent movements, such as Lee hoe Young, were also recognised the fact that the formation and growth of Korean's local communities, through agricultural development, could be the foundation of independent movements. Moreover, political asylum of the national leaders and their positive guidance and support for Korean immigrants, if not regionally equal, were became essential that Korean local communities were made crucial to deliver national capacity for anti-Japan Armed Struggle in Manchuria after the 3ㆍ1 independent movement. While the most national leaders built Korean local communities based on the sense of anti-Japan struggle throughout Manchuria, they sought to make them new independent movement centers rested on the theory of independent-armed-war. And their activities were ultimately saw that Korean local communities in Manchuria were constantly making progress in the two aspects;empowerment of independent movements, and continuance development of their commun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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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재일한인 민족운동의 시론적 재구성 KCI 등재후보

김인덕

숭실대학교 역사문물연구소(구 숭실사학회) 숭실사학 제25집 2010.12 pp.239-274

...한인의 도일은 일본자본주의의 요구에 기초했다. 그리고 도일한 재일한인은 일본 사회의 최하층에 흡수되었다. 특히 이주자가 급속히 늘어난 1920년을 기점으로 조선인 마을이 형성되었고 이곳은 해방구이자, 민족운동의 근거지가 되었다. 생성기인 1910년대에 형성된 재일한인 사회는 유학생이 중심이었고, 재일한인 민족운동은 유학생 중심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1919년 2․8운동을 주도한 중심세력은 이후 국내와 일본에서 민족운동을 견인해 가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발전기인 1920년대 재일한인 민족운동은 노동자와 청년․학생이 투쟁을 선도했다. 특히 1920년대 초반 재일한인은 단체를 통해 조직적 역량을 길러냈다. 특히 1925년 이후 재일한인 민족운동은 조직적 역량에 기초하여 통일적으로 전개되었다. 여기에는 일월회, 조선공산당 일본부, 조선공산당 일본총국의 역할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1920년대 재일한인 민족운동은 당과 대중단체의 유기적 관계 속에서 통일적 조직에 기초해 대중운동이 발전했던 것이다. 재일한인의 민족운동은 방향전환을 통해 자기 발전한다. 재일한인 민족운동 세력은 1930년대 변화기를 두 가지 방향에서 맞이했다. 한 세력은 일본 사회운동의 한 축으로 투쟁을 전개했다. 또 다른 세력은 일본 사회운동과 거리를 갖고 독자적으로 움직였다. 이 변화기의 재일한인 민족운동은 민족문제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요구를 투쟁의 중요한 계기로 채택했다. 그런가 하면 강제연행기와 1940년대를 거치면서 재일한인 민족운동은 강제연행에 대한 저항과 학생․청년단체가 중심이 되어 반일투쟁을 전개했다. 특히 학생․청년들은 소그룹적 형태로 끊임없이 조직을 재건해 갔다. 재일한인 민족운동은 조직운동의 성과에 기초하여 생성․발전․변화되었다. 이러한 재일한인의 민족운동은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었고, 한국 민족운동의 보편적인 성격인 반제․반봉건의 특징을 띠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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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한인의 도일은 일본자본주의의 요구에 기초했다. 그리고 도일한 재일한인은 일본 사회의 최하층에 흡수되었다. 특히 이주자가 급속히 늘어난 1920년을 기점으로 조선인 마을이 형성되었고 이곳은 해방구이자, 민족운동의 근거지가 되었다. 생성기인 1910년대에 형성된 재일한인 사회는 유학생이 중심이었고, 재일한인 민족운동은 유학생 중심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1919년 2․8운동을 주도한 중심세력은 이후 국내와 일본에서 민족운동을 견인해 가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발전기인 1920년대 재일한인 민족운동은 노동자와 청년․학생이 투쟁을 선도했다. 특히 1920년대 초반 재일한인은 단체를 통해 조직적 역량을 길러냈다. 특히 1925년 이후 재일한인 민족운동은 조직적 역량에 기초하여 통일적으로 전개되었다. 여기에는 일월회, 조선공산당 일본부, 조선공산당 일본총국의 역할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1920년대 재일한인 민족운동은 당과 대중단체의 유기적 관계 속에서 통일적 조직에 기초해 대중운동이 발전했던 것이다. 재일한인의 민족운동은 방향전환을 통해 자기 발전한다. 재일한인 민족운동 세력은 1930년대 변화기를 두 가지 방향에서 맞이했다. 한 세력은 일본 사회운동의 한 축으로 투쟁을 전개했다. 또 다른 세력은 일본 사회운동과 거리를 갖고 독자적으로 움직였다. 이 변화기의 재일한인 민족운동은 민족문제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요구를 투쟁의 중요한 계기로 채택했다. 그런가 하면 강제연행기와 1940년대를 거치면서 재일한인 민족운동은 강제연행에 대한 저항과 학생․청년단체가 중심이 되어 반일투쟁을 전개했다. 특히 학생․청년들은 소그룹적 형태로 끊임없이 조직을 재건해 갔다. 재일한인 민족운동은 조직운동의 성과에 기초하여 생성․발전․변화되었다. 이러한 재일한인의 민족운동은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었고, 한국 민족운동의 보편적인 성격인 반제․반봉건의 특징을 띠고 있었다.

National movement of Korean residents in Japan was linked with domestic movement and overseas’ movement as independent agitation. Also, this particular movement had been developed throughout development, alternation, formation since Korean going over Japan. Korean residents in Japan’s emigration to Japan was based on demands of the Japanese capitalism. People who emigrated to Japan were absorbed into the lowest level of Japanese society. Particularly, since the 1920, expansion of massive and rapid colonials, villages of Korean were took shaped where was liberated area and headquarters of national movement. The society of Korean residents in Japan, constituted in 1910s’, was mainly prior to Korean students studying in Japan and naturally movement had been centered on these students. These central forces had played important role in evolving national movement in Korean and Japan; February 8th movement in 1919 was also leaded by these students. In 1920s, progressing and advancing period, Korean residents in Japan’s national movement was preceded by youth, laborer, and students. Especially on the first part of 1920s, they unificatively had grown systematic ability through organization. For this, Korean socialism organization, Korean communism party in Japan, Headquarter of Korean communism party in Japan were took a great part for movement. Korean residents in Japan’s national movement in 1920s could have developed by organic relationship of parties and people and unified system. Korean residents in Japan’s national movement was self-developed by a change of their direction. Influence of national movement faced with two different faces during mutation in 1930. One influence had developed as a part of social movement in Japan. The other influence had progressed with keeping certain distance by themselves. Movement of this mutation did not adopt only national problems but also typical demands as significant moment. On the other hand, resistance of compulsive haul and youth group was crucial role for anti-Japanese struggle via compulsive haul era and 1940s. In particular, students and youth constantly had been rebuilt with a form of small groups. National movement of Korean residents in Japan had been developed, altered, and formed which were based on results from movement. These movements had been progressed with various types of shape and had optical characters; semi-feudalism and anti-imperi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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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한인문학회임원진/휘보/회칙/『국제한인문학연구』 연구윤리규정 KCI 등재후보

국제한인문학회

국제한인문학회 국제한인문학연구 제7호 2010.12 pp.265-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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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다문화사회와 재호 한인동포 KCI 등재후보

양명득

재외한인학회 재외한인연구 제22호 2010.08 pp.97-137

...한인동포들도 호주사회에 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이글은 호주 백호주의의 등장과 철폐, 다문화주의의 논쟁과 발전, 그리고 그 사회에서 뿌리를 내린 한인동포들의 삶을 조명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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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는 원래부터 다종족 다문화 사회이다. 호주원주민들은 5만 년 전 이상부터 250여개의 종족과 언어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다중의 문화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1788년 앵글로색슨계 영국인들이 호주 땅에 이민 오면서부터(원주민들의 표현은 ‘호주를 식민화 하면서부터’) 호주는 급속도로 백인화 되었으며 원주민들은 주류사회에서 물러나 도시의 변두리나 지역적으로 고립된 사막지역에 정착하였다. 호주정부는 당시 원주민들을 차별하는 정책을 입법화 하여 ‘그들 인종은 결국 지구상에서 사라지거나 호주백인들과 피가 섞여 백인화’되는 동화정책을 실행하였다. 다른 한편으로 호주정부는 1901년 이민제한정책을 발표하므로 소위 백호주의를 본격적으로 시행하였다. 공식적으로 무려 70여 년 동안이나 지속된 이 인종차별 정책은 호주국가를 성공적으로 백인중심의 사회로 발전시키었다. 그러나 1973년 호주정부는 그 백호주의를 폐기하고 다문화 정책을 선포하는데 이후 40년이 채 안된 현재, 세계에서 가장 다문화 된 나라 중의 하나로 인식될 정도로 놀라운 변신을 하였다. 그리고 그 다문화의 한그룹으로 한인동포들도 호주사회에 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이글은 호주 백호주의의 등장과 철폐, 다문화주의의 논쟁과 발전, 그리고 그 사회에서 뿌리를 내린 한인동포들의 삶을 조명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Like other citizens in the global world, Koreans in Australia have been formingtheir multiple identities in the process of unsettlement, travel and resettlement, and connecting themselves with wider multicultural community in search for the better meaning of life. This article attempts to articulate the development of Australian multiculturalism from the White Australian Policy, how the first Koreans came to Australia, what kind of community they are developing, and how they relate and contribute to the multicultural society in Austra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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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조선』(1908〜1911)에서의 ‘가정’의 역할과 ‘한인(韓人)’가정에 대한 인식

송혜경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한림일본학 제16집 2010.05 pp.45-65

...한인의 가정」이라는 제목의 글을 실으며 ‘가정’에 주목하고 있다. 본 논문은 잡지『조선』에서 <가정>란을 설정한 이유는 무엇이며 특히 조선의 가정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살펴본다. 본 논문의 목적은 일본어로 발간된 잡지『조선』에서 조선을 식민지화 하는데 있어 ‘가정’의 역할은 무엇이며 또 조선가정이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지를 고찰하는데 있다. 이제까지 연구의 주변부에 있었던 여성과 가정을 논의의 대상으로 함으로써 새로운 층위에서의 식민지적 실체에 대한 접근이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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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조선』(1908∼1911)은 두 차례에 불과하지만, <가정>란을 두고 있었고, 또 창간호부터「한인의 가정」이라는 제목의 글을 실으며 ‘가정’에 주목하고 있다. 본 논문은 잡지『조선』에서 <가정>란을 설정한 이유는 무엇이며 특히 조선의 가정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살펴본다. 본 논문의 목적은 일본어로 발간된 잡지『조선』에서 조선을 식민지화 하는데 있어 ‘가정’의 역할은 무엇이며 또 조선가정이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지를 고찰하는데 있다. 이제까지 연구의 주변부에 있었던 여성과 가정을 논의의 대상으로 함으로써 새로운 층위에서의 식민지적 실체에 대한 접근이 가능할 것이다.

韓日関係は明治時代以降新たな局面を向かえる。江華島条約のきっかけに居留地を中心にして多くの日本人が移住し、日本人の共同体が作られ、母国語の新聞雑誌が発行されたのである。その中でも『朝鮮』は「時事評論』、「論説」、「雑纂」、「実業資料」、「文芸」、「時論」などのセクションを設け、在朝鮮での日本語の雑誌の役割を担ったのである。特に『朝鮮』には「家庭」欄を設け、家庭に注目している。朝鮮で日本の「家庭」は植民地の基盤としての役割を果すことによって植民地での成功と帝国の膨脹の手段として利用される。また日本の女性には韓人に「見られている」視線を意識させ、宗主国民としての使命感を持たせたのである。日本の女性の積極的な内助によって植民地での日本社会を固めようとしていた。さて、韓人の家庭に対しては、「家屋」という物理的な空間を通して「韓人」を把握している。「精神的な文明化」という名分のもとで悲惨な韓人の「家屋」は日本社会の膨脹の根拠を与えていたのである。また、韓人の家庭の秩序を維持する内面的な要素を儒教主義としてとらえている。儒教主義はすでに日本の明治初期啓蒙者によって日本の近代化の障碍要素として認識されたものである。従って、儒教主義がまだ内面化されている韓人の家庭は韓国社会の時代遅れの表象でもあるといえる。韓人の家庭を通して朝鮮が自らの発展の能力がない実体として認識され、朝鮮の植民地化の正当性を認める手段になったの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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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한인연구의 동향과 과제 KCI 등재후보

윤인진

재외한인학회 재외한인연구 제21호 2010.02 pp.326-356

...한인 관련 문헌들을 검색하고 분석하여 재외한인연구의 동향을 파악하고, 기존 연구의 문제점 또는 한계점을 진단하고, 앞으로의 발전 방향을 모색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연구방법은 학술연구정보서비스 (www.riss4u.net)에 등록된 석박사 학위논문들과 전문학술지 논문들을 대상으로 재외한인 관련 검색어를 사용해서 검색하고, 출판연도, 학문분야, 주제어, 동포집단별로 데이터베이스화하고, 통계분석과 내용분석을 통해 재외한인연구의 특성과 경향을 분석하였다. 분석 결과, 재외한인연구는 1960년대부터 시작되었으나 1990 년대에 들어서 본격적으로 활성화되었다. 1960~1970년대에는 재일한인에 관한 연구가 주류를 이루었고, 1980년대에는 재미한인에 관한 연구가 활발했고, 1990년대부터는 조선족에 대한 연구가 폭넓게 진행되었다. 특히 국내에 체류하는 조선족에 대한 연구는 다문화연구의 시각에서도 진행되어 재외한인연구의 경계를 확장하였다. 하지만 중앙아시아와 러시아, 유럽, 남미, 오대양 지역의 재외한인에 대한 연구는 극히 미미하여 지역 간 불균형이 심하다. 앞으로 재외한인 연구가 발전하려면 선행연구가 미진한 지역에 대한 적극적인 연구활동이 필요하며, 다양한 분야의 재외한인연구자들간의 소통과 학제 간 연구가 활성화되어야 하며, 교육, 신학, 문학 분야의 연구자들을 재외한인연구의 영역을 끌어들이는 ‘아웃리치’(outreach)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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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국내에서 출판되었거나 간행되었던 재외한인 관련 문헌들을 검색하고 분석하여 재외한인연구의 동향을 파악하고, 기존 연구의 문제점 또는 한계점을 진단하고, 앞으로의 발전 방향을 모색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연구방법은 학술연구정보서비스 (www.riss4u.net)에 등록된 석박사 학위논문들과 전문학술지 논문들을 대상으로 재외한인 관련 검색어를 사용해서 검색하고, 출판연도, 학문분야, 주제어, 동포집단별로 데이터베이스화하고, 통계분석과 내용분석을 통해 재외한인연구의 특성과 경향을 분석하였다. 분석 결과, 재외한인연구는 1960년대부터 시작되었으나 1990 년대에 들어서 본격적으로 활성화되었다. 1960~1970년대에는 재일한인에 관한 연구가 주류를 이루었고, 1980년대에는 재미한인에 관한 연구가 활발했고, 1990년대부터는 조선족에 대한 연구가 폭넓게 진행되었다. 특히 국내에 체류하는 조선족에 대한 연구는 다문화연구의 시각에서도 진행되어 재외한인연구의 경계를 확장하였다. 하지만 중앙아시아와 러시아, 유럽, 남미, 오대양 지역의 재외한인에 대한 연구는 극히 미미하여 지역 간 불균형이 심하다. 앞으로 재외한인 연구가 발전하려면 선행연구가 미진한 지역에 대한 적극적인 연구활동이 필요하며, 다양한 분야의 재외한인연구자들간의 소통과 학제 간 연구가 활성화되어야 하며, 교육, 신학, 문학 분야의 연구자들을 재외한인연구의 영역을 끌어들이는 ‘아웃리치’(outreach) 노력이 필요하다.

This study aims at reviewing and analyzing the literature on Koreans abroad published in South Korea, finding trends and characteristics of studies of Koreans abroad, diagnosing problems and limitations of the current research, and exploring directions for future development. I reviewed dissertation theses and articles of professional journals on Koreans abroad listed in the database of the Korea Education and Research Information Service (www.riss4u.net) and examined trends and characteristics of studies of Koreans abroad by using statistical analyses and content analyses. Results show that studies of Koreans abroad began in the 1960s and began to flourish in the 1990s. Koreans in Japan were the main target of research focus in the 1960-70s, Koreans in the United States received big attention in the 1980s, and Koreans in China, commonly called Chosunjok, began to be studied extensively in the 1990s. Expecially the Chosunjok in South Korea in South Korea are studied in the context of multicultural studies, expanding the boundary of studies of Koreans abroad. Studies on Koreans in Central Asia and Russia, Europe, Latin America, and Oceania, however, are very limited and thus the regional imbalance in research outcomes is serious. To develop studies of Koreans abroad further, we need to conduct active research on Koreans abroad in regions that have not received sufficient attention, invigorate communication and interdisciplinary research among scholars in various research fields, and expand the outreach to scholars in fields of education, theological and mission studies, and literature who have not been active members of studies of Koreans abro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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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소도시 한인사회와 한인들의 삶 : 인디애나폴리스 올드타이머를 중심으로 KCI 등재후보

김선정

재외한인학회 재외한인연구 제21호 2010.02 pp.399-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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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프리아무르 한인사회와 정교회 선교활동(1865-1916) KCI 등재후보

이병조

재외한인학회 재외한인연구 제21호 2010.02 pp.409-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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