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梶山季之の「朝鮮小説」論 ― 「族譜」の改稿内容を中心に ― KCI 등재
한양대학교 일본학국제비교연구소 비교일본학 제34집 2015.09 pp.31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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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가지야마 도시유키(梶山季之)의 조선소설 「족보(族譜)」의 초고(初稿)와 결정고(決定稿)를 비교분석 하여 그 차이점에 대해 고찰한 것이다. 1952년 5월 당시 가지야마 도시유키가 히로시마 지역의 문인들을 규합하여 창간한 『히로시마문학(広島文学)』에 처음 발표된 「족보」는 이후 두 번의 개고를 거쳐 완성되었다. 본고에서는 초고인 히로시마문학판(広島文学版)과 결정고인고단샤문고판(講談社文庫版)을 텍스트로 삼아, 양고의 차이점에 주목하여 비교분석 하였다. 그 결과 식민지 조선의 풍경 및 일본인과 조선인의 상호인식, 전시하의 일상변화, 조선의 전통과 풍속, 그리고 창씨개명과 더불어 국어상용운동 등 여러 요소들이 추가된 것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이상의 요소들은 초고에서 결여된 역사적 리얼리티를 보강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This thesis is a comparitive analysis focused on the comparison between the first and the final draft of Toshiyuki Kajiyama's Chosun novel “The Clan Records.” His debut novel “The Clan Records” is set during the time of the reformation policy of names to Japanese names to portray the tragedy between a Japanese protagonist and Chosun family. This novel marked as the starting point of Toshiyuki Kajiyama's ‘Chosun literature.’ Toshiyuki Kajiyama first introduced “The Clan Records” in “Hiroshima Literature” he first published the first issue in May 1954 with the support of local writers. He later rewrote the novel two times until his draft was finalized. This thesis is focused on the difference between the two versions of “The Clan Records” based on his first draft (Hiroshima Literature version) and the last draft (Kodansha Bunko version). As a result, changes in the final draft, an improved version of what once was a reality-lacking created theme by the author, confirms that Toshiyuki Kajiyama showed consistent interest about Chosun even resulting him to rewrite the manuscript.
‘전후’ 일본사회와 식민자 2세 문학의 등장 - 가지야마 도시유키(梶山季之) 문학을 중심으로 ― KCI 등재후보
동국대학교 일본학연구소 일본학 제34집 2012.05 pp.215-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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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年8月の日本の敗戦後、「引揚げ」という体験を経て朝鮮から日本へ帰還した在朝日本人の中には、1950年代から日本文壇に登壇して作品を発表する作家たちが存在する。梶山季之、小林勝、後藤明生、五木寛之など、「引揚げ」当時、主に10代半ばの学生であった彼らは、日本の敗戦時まで登壇しなかった植民者二世であり、1950年代から60、70年代に渡って日本文壇で頭角を現わした。彼らには帝国-植民地期にすでに登壇して既成作家として活動していた既存の在朝日本人作家たちとは異なる創作のモチーフと文学的原点が存在したことと思われる。1930年を前後して植民地朝鮮で生れた彼ら作家にとって「朝鮮」は幼少年時代の「原郷」であると同時に、強烈な「傷痕(trauma)」でもあった。自分の国家が過去に朝鮮に対して何を行なってきたかを、成人となった戦後の日本で事後的に悟って感じる罪障意識と、朝鮮での多様な個人的体験とが絡み合いながら、彼らは自分の統合できぬ矛盾と葛藤を文学的表現と創作活動を通じて戦後の日本社会に知らせ、吐露しようとしたことと思われる。本稿では彼ら植民者二世出身の文学が1950年代から登場することとなる脈絡とその時点の意味を、同時代の日本社会と文学界における情況を参照しながら捉えてみた。それからこれに基づいてケーススタディーとして作家の梶山季之の場合を、彼の「朝鮮」素材の作品と広島で被爆された人々の戦後生活を描いた作品を中心に議論した。
일본현대문학자의 식민지 지배인식 연구 - 가지야마 도시유키(梶山季之)의 『이조잔영(李朝残影)』,『족보(族譜)』를 중심으로 - KCI 등재
한국일본근대학회 일본근대학연구 제52집 2016.05 pp.183-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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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가지야마 도시유키(梶山季之)가 식민지 조선을 배경으로 창작한 『이조잔영(李朝残影)』과 『족보(族譜)』라는 작품을 통해 전후(戰後) 일본현대문학자의 식민지지배 인식을 고찰한 것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일본의 본격적인 우경화와 더불어 역사수정주의에 근거하여 과거 일본이 일으킨 전쟁과 식민지지배를 다양한 방식으로 합리화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문학과 영화 등 예술분야에도 강한 영향을 주었으며, 이러한 경향을 반영한 작품이 다수 창작되고 있다. 이에 본 논문에서는 일본의 패전 이후 일본현대문학자들이 전쟁과 식민지 지배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형상화했는지, 그 과정을 추적하는 작업의 일환으로, 식민지 조선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니고 패전 후 일본으로 돌아가 왕성한 문학 활동을 하였던 가지야마 도시유키(梶山季之)통해 전후 일본현대문학자의 식민지 지배인식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본 논문에서 식민지 조선을 배경으로 하여 3.1 독립운동 당시 제암리 학살사건과 1940년의 창씨개명(創氏改名) 문제를 전면적으로 다룬 위의 『이조잔영』, 『족보』을 분석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었다. 첫째, 3.1 독립운동과 창씨개명에 대해 당시 식민지 조선에 거주하였던 일본인들의 인식과 이들 작품의 인식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둘째, 식민지 조선에 거주하였던 일본인들은 전반적으로 3.1 독립운동과 창씨개명 문제를 일본의 식민지 지배 논리에 근거한 주장이 대부분이었지만 가지야마 도시유키의 작품들은 이러한 식민지 지배의 부당함을 고발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셋째, 따라서 가지야마 도시유키는 식민지 조선에서 다양한 체험을 통해 일본의 한국 지배를 고발하고 이를 전후 일본인들에게 적극적으로 이의 부당함을 알리려 했음을 알 수 있다.
This study reviews the awareness of colonial control by a Japanese contemporary writer Kajiyama Doshiyuki (梶山季之) after the war through his works ‘Yijojanyeong(李朝残影: The traces of Lee dynasty)’ and ‘Jokbo(族譜: The genealogy) which background settings are the colonized Joseon. After the mid 1990s, Japan has made diverse attempts to rationalize their past war and the colonial control based on the historical revisionism with full-fledged turning to the right side. Such tendency also has strongly influenced the field of art including literature and film, and many works reflecting this inclination are being created. Therefore, this study reviews how contemporary Japanese writers specifically embodied the war and colonial control after they were defeated. As a part of tracing this process, I looked into Kajiyama Doshiyuki’s awareness of colonial control as a post-war contemporary Japanese writer who went to elementary and middle schools in the colonized Joseon and returned to Japan after the defeat in war and then wrote many literatures. In this study, I analyzed ‘Yijojanyeong’ and ‘Jokbo’ which fully dealt with the Jeamri massacre during the 1919 Independence Movement on March 1st and the Name Changing Program in 1940 around the colonized Joseon and found some results. First, there were substantial differences between the awareness by the Japanese people who had lived in the colonized Joseon and the awareness in literatures about the March 1st Independence Movement and the Name Changing Program. Second, the Japanese people who had lived in the colonized Joseon mostly had agreed on the logic of Japanese colonial control about the March 1st Independence Movement and the Name Changing Program. However, the literatures by Kajiyama Doshiyuki accused the injustice of colonial control. Third, Kajiyama Doshiyuki tried to accuse the Japanese colonization based on his diverse experiences in the colonized Joseon and actively let the Japanese people know about such injustice after the war.
[NRF 연계] 일본어문학회 일본어문학 Vol.38 2007.08 pp.405-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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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사이드, 기억, 죄책감 - 가지야마 도시유키(梶山季之)의 「이조잔영(李朝残影)」에 재현된 제암리 교회 학살의 의미 -
[NRF 연계] 성신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人文科學硏究 Vol.43 2021.02 pp.125-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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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가지야마 도시유키의 「이조잔영」과 이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한 한국 영화 「이조잔영」에 재현된 제암리 교회 학살 사건의 의미를 분석하는 데 목적을 둔다. 이를 위해 가지야마가 1953년에 발표한 소설 「무지개 속」과 이 작품을 개작하여 발표한 소설 「이조잔영」의 차이를 분석했다. 또한, 가지야마의 방한 사실을 보도하는 한국의 신문 기사를 분석하여 한일국교정상화의 흐름 속에서 작가의 죄책감을 부각하는 정치적 의도를 살폈다. 이를 토대로 동명의 소설과 영화를 비교하여, 소설가가 계획했던 한일 남녀의 결합이라는 해피엔딩이 1965년 한국에서 불가능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밝혔다. 가지야마 도시유키가 소설 「이조잔영」에서 ‘제암리 교회 학살 사건’을 중심에 둔 것은, 패전 후 본토에 돌아간 귀환자들을 향한 일본인의 부정적 시선과 식민화에 대한 억압적 기억에 대응하는 방법이었다. 또한, 그것은 한일협정의 정치적 분위기 안에서 식민지 체험과 속죄의 글쓰기로 작가가 문학적 입지를 마련하기 위한 전략이기도 했다. 제암리 학살 사건을 공공의 기억으로 끌어들이는 문제는 한국에서 1967년에 발표된 영화 「이조잔영」에도 나타난다. 감독 신상옥과 각색자 마츠야마 젠조는 영화를 제작하며 소설에 없던 학살 장면을 삽입하고, 일본인의 죽음을 보여준다. 그들은 소설가가 기획했던 해피엔딩의 작위성을 우회해, 일본인의 자살로 두 국가의 감정적 상처를 일시적으로 봉합하는 방법을 선택한다. 그러나 이는 일본의 역사적 책임을 심문하고, 고통의 기억 위에서 한국과 일본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관해 숙고할 시간을 박탈했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닌다.
‘족보’와 ‘창씨개명’ -김달수의 「族譜」와 가지야마 도시유키의 「族譜」를 중심으로-
[NRF 연계] 한국일본문화학회 日本文化學報 Vol.42 2009.08 pp.141-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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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稿は、在日朝鮮作家である金逹寿の小説「族譜」と、朝鮮で生まれて幼年時代を過ごした日本作家である梶山季之の小説「族譜」の間に、どんな差が存在するのか、また日帝強占期末日帝の‘創氏改名’がどういう形で展開されているかを考察したものである。. 1940年日帝は、朝鮮人をすっかり日本人で同化させようと‘創氏改名’を強要した。このような時代相を金逹寿は22歳の青年で故郷の昌原で、梶山は13歳の小学校5年生で京城で目撃しながら経験したことを小説「族譜」で形象化した。この二つの作品の共通的な素材である‘族譜’と‘創氏改名’という対立的な主題を通じて、植民地朝鮮の惨澹たる現実を表現したという事実だけでも、高く評価すべきだといえよう。しかし、二つの作品の大した違いは、金逹寿の「族譜」は政治的な背景を削除したまま可能な率直でリアルに描き出しているという点である。主人公金敬泰の目に映った祖国の慘憺たる現実の前に、‘創氏改名’という渦巻きに朝鮮の象徴である‘族譜’が消えゆくようになる惜しさが、作品の中に内在していると言える。 一方、梶山の「族譜」は自分の直接体験ではない新聞や伝言を参考して書いた作品なので、政治的な傾向が強く作用して現われているといえよう。主人公谷の消極的な行動に対する責任を国家の代わりをして個人が償う場面で、日本的な感じがする。特に、この作品は結果をもう決めておいて書いた作品なので、金逹寿の「族譜」とちがって終わりに‘族譜’を京城帝国大学に寄贈することで仕上げる場面は、一番政治的な表現の絶頂を見せてくれている。 特に、両作家の共通的な‘族譜’という題名に決めたところには、‘創氏改名’に対する反対の概念で把握している。一番、朝鮮的な伝統である‘族譜’と日本人で同化の象徴である創氏は、ついに、抵抗しても創氏改名するしかない現実認識で始まる。にもかかわらず、在日朝鮮作家と日本人作家が、この族譜の問題を作品で形象化したことは、昨今の日本政府の‘創氏改名’に対する誤った主張を正しく直すようにいい機会だと考えられる。
일본현대문학자의 식민지 지배인식 연구 - 가지야마 도시유키(梶山季之)의 『이조잔영(李朝残影)』, 『족보(族譜)』를 중심으로 -
[NRF 연계] 한국일본근대학회 일본근대학연구 Vol.52 2016.05 pp.183-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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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가지야마 도시유키(梶山季之)가 식민지 조선을 배경으로 창작한 『이조잔영(李朝残影)』과 『족보(族譜)』라는 작품을 통해 전후(戰後) 일본현대문학자의 식민지지배 인식을 고찰한 것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일본의 본격적인 우경화와 더불어 역사수정주의에 근거하여 과거 일본이 일으킨 전쟁과 식민지지배를 다양한 방식으로 합리화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문학과 영화 등 예술분야에도 강한 영향을 주었으며, 이러한 경향을 반영한 작품이 다수 창작되고 있다. 이에 본 논문에서는 일본의 패전 이후 일본현대문학자들이 전쟁과 식민지 지배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형상화했는지, 그 과정을 추적하는 작업의 일환으로, 식민지 조선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니고 패전 후 일본으로 돌아가 왕성한 문학 활동을 하였던 가지야마 도시유키(梶山季之)통해 전후 일본현대문학자의 식민지 지배인식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본 논문에서 식민지 조선을 배경으로 하여 3.1 독립운동 당시 제암리 학살사건과 1940년의 창씨개명(創氏改名) 문제를 전면적으로 다룬 위의 『이조잔영』, 『족보』을 분석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었다. 첫째, 3.1 독립운동과 창씨개명에 대해 당시 식민지 조선에 거주하였던 일본인들의 인식과 이들 작품의 인식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둘째, 식민지 조선에 거주하였던 일본인들은 전반적으로 3.1 독립운동과 창씨개명 문제를 일본의 식민지 지배 논리에 근거한 주장이 대부분이었지만 가지야마 도시유키의 작품들은 이러한 식민지 지배의 부당함을 고발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셋째, 따라서 가지야마 도시유키는 식민지 조선에서 다양한 체험을 통해 일본의 한국 지배를 고발하고 이를 전후 일본인들에게 적극적으로 이의 부당함을 알리려 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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