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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청년기 시절의 신학적 저술들을 중심으로 헤겔이 자신의 시대를 규정짓는 중심 기호인 분열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다양한 노력들을 추적함으로써 그의 청년기 저술에 나타난 종교문제에 관한 논의들의 주된 의미를 명확히 밝혀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헤겔의 철학적 사유는 종교, 특히 기독교에 대한 비판적 논의로부터 시작한다. 그의 초기 저술들은 종교문제에 집중되어 있는데, 종교에 대한 헤겔의 이러한 관심은 내세와 연관된 신학적인 차원에서 시작된 것이라기보다는 실천철학적인 관심에 의해 추동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청년기 시절 행해진 종교철학적 논의 속에서 헤겔은 근대적인 분열을 극복하고 새로운 통일의 원리를 모색하는 것을 자신의 철학적 과제의 중심주제로 삼는다. 특히 이성과 감성, 현실과 이상, 의무와 권리, 그리고 개인과 사회를 매개함으로써 개인의 자율적 이성에 근거한 새로운 통합의 원리를 모색하려는 철학적 시도는 헤겔 철학의 핵심적인 특징이며 그가 계몽주의적 이성의 영향 속에 있으면서 동시에 계몽주의의 사상적 기획과는 다른 철학적 사유를 할 수 있게끔 만든 결정적인 요소이다.
Bei Hegel geht das philosophische Denken von einer kritischen Diskussion der Religion, insbesondere der christlichen, aus. Die Frühschriften von ihm beschäftigen sich daher vor allem mit den religiösen Fragen. Das Interesse von Hegel für die Religion ergibt sich allerdings nicht aus dem jenseits-bezogenen theologischen Horizont, sondern aus einem praxisphilosophischen Problembewußtsein. In der religionsphilosophischen Diskussion in den jungen Jahren hat sich Hegel es zum Hauptziel seiner philosophischen Bemühungen gesetzt, die Zerrissenheit der Moderne zu überwinden und einem neuen Prinzip der Einheit nachzugehen. Die Hegel‘sche Philosophie zeichnet sich dadurch aus, daß sie versucht, nach einem neuen Prinzip der Vereinigung auf der Grundlage der autonomen Vernunft des Individuums zu streben, indem sie die Vernunft mit den Empfindungen, die Wirklichkeit mit der Idee, die Pflichte mit den Rechten, und das Individuum mit der Gesellschaft vermittelt. Eben dieses Merkmal hat ihm ermöglicht, ein von der Aufklärung unterschiedenes Projekt des philosophischen Denkens zu unternehmen, während er immer noch unter dem Einfluß der Vernunft der Aufklärung st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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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생명공학의 발달로 인해 인간복제 가능성이 제기되고, 이와 관련한 윤리적 문제들이 범세계적으로 쟁점화 되면서 독일연방학술재단(DFG)은 2004년에 전혀 이질적인 문화적 기반 위에서 형성된 생명문화의 전통을 비교해 보는 이른바 “범문화적 생명윤리”(Kulturübergreifende Bioethik) 프로젝트를 수행하였다. 이 글은 “범문화적 생명윤리”의 “한국프로젝트”(Korea- Projekt, “Bioethische Diskurse in Südkorea”)에서 유전공학, 특히 인간복제에 관해 현재 한국에서 유교와 그리스도교의 생명윤리학적 담론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가를 밝힌 것이다. 이를 위해 필자는 먼저 한국사회에서 유교와 그리스도교가 어떻게 이해되고 있는가를 “해석학적 관점”에서 설명했는데, 이는 생명문제와 관련해 보편적 종교로부터 유래하는 윤리적 확신과 인간이해가 우선적으로 작용한다는 인식에 따른 것이다. 물론 유교와 그리스도교가 한국을 대표하는 종교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이 글에서 관점을 인간복제에 대한 한국 유교와 그리스도교의 입장을 밝히는 것에 국한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즉 ① 한국사회에서 현재 논의되고 있는 생명윤리적 문제와 관련해서는 유교적 에토스와 사고유형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점과 ② 실제로 “생명윤리 위원회”의 구성과 각종 생명윤리 논쟁에 있어서는 그리스도교가 가장 적극적·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판단이 그것이다. 이런 평가는 유럽인의 관점에서 판단한 것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한국인이 느끼는 정서와는 약간 차이가 있다. 이 점을 감안하면서 필자는 유교적 인간이해와 그리스도교의 인간론이 인간복제 문제와 관련해 어떤 의미를 부각시키는지를 검토하고, 특히 각각의 인간론이 생명, 인간배아와 그 지위, 나아가 서구 생명윤리의 핵심개념인 인권의 표명과 생명의 존엄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반영하는지를 고찰했다. 그리고 두 종교에서 “규범적 선결정”(normative Vorentscheidungen)을 내포한 핵심개념들이 인간복제에 대한 입장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추적하였다. 유교와 그리스도교로부터 전래된 부분적인 인간이해는 주어진 조건과 상황아래서 언제나 하나의 선입견을 노정한다. 이런 선입견들을 보편화가능성(Universalisierbarkeit), 잠재적 상호성(Potentielle Gegenseitigkeit) 그리고 상호확증관계(Rezipriozität) 등과 같은 윤리적 원칙들 속에서 분석하고 종합했다. 이런 노력은 단순히 인간복제를 화두로 한 찬·반 논쟁을 통해 생명담론에 관한 한국 유교와 그리스도교의 윤리적 입장을 소개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재 다문화(Multi-Kultur) 속에서 형성되고 있는 한국의 생명윤리 담론이 서구 생명윤리 이론과 비교해 볼 때 어떤 독자성(특수성)과 보편성을 지니는가를 규명하려는 것이다.
In diesem Beitrag wird der Versuch unternommen, die grundstzlichen Einstellungen des Konfuzianismus und des Christentums zur Gentechnik, im Speziellen zur Klonierung des Menschen, darzustellen. In Sdkorea, wo zum ersten Mal ein Mensch geklont werden sollte (das Experiment soll allerdings vorzeitig abgebrochen worden sein), sind die mgliche Klonierung des Menschen und ihre Implikationen eines der wichtigsten Themen der gegenwrtigen bioethischen Diskurse. In diesem Zusammenhang versuchen die religisen Gruppen (Konfuzianismus und Christentum), die eigene Stellungnahme im Blick auf das Klonen des Menschen vorzustellen, da sie feststellen, daß die aus Klonierungsexperimenten hervorgehenden Ergebnisse ihre eigenen ethischen berzeugungen und Menschenbilder tief berhren. Jedoch will sich dieses Kapitel auf die konfuzianische und christliche Stellungnahmen zur Klonierung beschrnken: Zum einen sind das konfuzianische Ethos und seine Denkrichtungen in Sdkorea offenbar mit den bioethischen Problemen tief verbunden. Zum anderen bringt sich die koreanische christliche Ethikkommision zudem ffentlich und direkt in eine aktuelle bioethische Debatte ein. Zu fragen ist aber, welche Rolle die konfuzianischen und christlichen Schlsselbegriffe, die meist normative Vorentscheidungen enthalten, in ihren Positionen zur Klonierung spielen.
참된 그리스도인은 무신론자여야 하는가? -에른스트 블로흐의 『그리스도교안의 무신론』과의 대질- KCI 등재
한국가톨릭철학회 가톨릭철학 제18호 2012.04 pp.159-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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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에른스트 블로흐의 후기저서인 『그리스도교안의 무신론』에서 개진된 무신론적인 성서해석과 대질함을 목적으로 삼고 있다. 블로흐는 성서를 ‘지하의 성서’와 ‘공적인 성서’로 구분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성서가 전하는 본래적인 메시지는 지하의 성서에담겨 있는데, 그것은 신 없는 하늘나라를 희망하는 무신론적 휴머니즘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편집사적으로 사제계급에 의해서 왜곡되어서 신정주의적인(theocratic) 신관을 표방하는 ‘공적인 성서’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블로흐가 성서를 이렇게 해석하는 원리들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성서의 묵시록인데, 이에 근거해서 그는 현존하는 사악한 이 세상과 그 창조주에 대한 신앙이 새 하늘과 새 땅의 도래를 예고하는 메시아사상과 양립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다른 하나는 아리스토텔레스 좌파로부터 물려받은 형이상학적 물질개념인데, 이로부터 그는 신 없는 인간적 자유의 왕국을 연역하고 있다. 필자는 블로흐의 성서해석의 원리가 종교사적으로는 고대 페르시아종교의 중재되지 않은 이원론에서 연유한다는 연구결과를 소개하고, 이어서 블로흐 철학의 중심개념들인 희망과 자유의 개념들을 그리스도교 철학 내지 신학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고찰하였다. 필자는 블로흐의 희망개념이 미래적 연관만을 갖는 데 비해서, 그리스도교가 이해하는 희망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세 차원에 걸쳐 있는 성사적 표징들이 그 토대가 되고 있음을 해명하였다. 아울러 블로흐의 자유개념이 순전히 인간학적인 의미를 갖는 데 비해서, 그리스도교가 이해하는 자유는 신적인 은총에 의해서 가능하게 된 자유임을 켄터베리의 안젤무스의 대속이론을 통해서 해명하였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사회변혁을 위한 블로흐적인 실천방식에 내재된 위험을 지적하였다.
This paper aims at examining the notion of freedom and hope in Ernst Bloch’s Atheismus im Christentum from a Catholic perspective. The existing literature on Bloch does not have dealt with his atheism in Korea, and thus this paper can contribute to this gap. It first illustrates Bloch’s atheistic interpretation of the Bible and examines his principle of interpretation. In this, it reveals that his principle is based on the Revelation in the New Testament on the one hand, and on the concept of material, drawn from the Left Aristotelian, on the other. His principle can be evaluated as being guided by the Manichean dualism in terms of history of religion. It then critically examines the central concepts of his philosophy, that is hope and freedom. It argues that Bloch’s hope is oriented toward future, but discontinued from the past, whereas the Christian perspective on hope is grounded in the sacramental signs which connect the past, the present, and the future. It also argues that Bloch’s freedom is purely remained within the anthropological dimension, whereas the freedom in the Christian perspective is constituted on the divine grace. This critique explicates why Bloch’s way of praxis for social change cannot be supported.
아른트의『참 기독교에 관한 4권의 책』(Vier Bücher vom wahren Christentum)에 나타난 하나님의 창조
[NRF 연계] 한국교회사학회 한국교회사학회지 Vol.26 2010.05 pp.10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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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ch der Reformation erscheint ein eingenartiger Pfarrer auf der Buhne in der Zeit der lutherischen Orthodoxie. Er ist Johann Arndt(1555-1621), der im Gegenteil zur Tendenz der lutherischen Orthodoxie auf die Ansicht der Mystik umfangreich eingeht. Sein Hauptwerk, Vier Bucher vom wahren Christentum(1605-1610), zeigt in einigen Maßen die Neigung fur die Mystik und ist ein weitgehend lesendes Erbauungsbuch nach der Bibel in Deutschland im ganzen 17. Jahrhundert und in den folgenden Generationen weiter. Besonders druckt das letzte Buch des wahren Christentums, Liber Naturae,als zwei starke Beweise fur Gott grosse Welt und kleine Welt, als Mensch aus. Arndt wollte das Ziel auf die Schopfung der grossen Welt durch Gottes sechs Tage Schopfung im ersten Buch Mose zum Ausdruck bringen: zu loben, preisen und kennen Gott. Arndt macht uns die Schopfung der kleinen Welt durch die Schopfung der grossen Welt zu sehen. Er zeigt das Licht der kleinen Welt im Menschen durch die Schopfung des Lichtes in der grossen Welt. Bei ihm ist die sichtbare Welt von der unsichtbaren Welt nicht getrennt, sondern verbunden. Deswegen sondert nicht die Bewahrung der Schopfung Gottes von die Existenz der Menschen ab. Die Seligkeit des einzelnen Menschen steht mit der Bewahrung der Schopfung in Verbindung. Da der Sunder, d.h. der das Bild Gottes Verlorene, seine eigene kleine Welt verderbt, mußte die grosse Welt verderben. Daher ist es keineswegs denkbar die Trennung der Wiederherstellung der Schopfung Gottes von der Wiederherstellung des ursprunglichen Menschen. Die Zerstorung der Schopfungswelt beruht auf die Verderbnis des Menschen, weil der Mensch sein ursprungliches Bild verloren hat. Deswegen ist die Seligkeit bei Arndt, das ursprungliche Bild des Menschen in der Schopfung wiederherzustellen, weil der urspungliche Mensch nicht verderbt, sondern gut war.
[NRF 연계] 한국괴테학회 괴테연구 Vol.38 2025.12 pp.5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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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제국의 패망 이후 역사학자 프리드리히 마이네케는 괴테 문화의 재건만이 독일의 살길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법학자 칼 슈미트는 20세기 전반기의 독일 정신사를 “괴테에서 횔덜린으로의 이행”으로 규정하면서 이 결정적인 이행에 동참하지 않은 독일 유대인을 비판한다. 이렇듯 상반된 두 관점을 배태시킨 역사적 맥락과 문화적 함의를 자세히 궁구하는 것이 이 글의 목표다. 슈미트는 괴테를 숭앙하는 “낡은 교양”의 대변자로 유대 신학자 프란츠 로젠츠바이크를 지목한다. 그런가 하면, 슈미트가 보기에 과거 같은 나치당원이었던 마르틴 하이데거는 비록 “낡은 교양”으로부터는 탈피했지만, 그럼에도 “새로운 교양”으로 넘어가지 못한 채 그저 횔덜린의 시에 매몰되어 있었다. 그 원인은 하이데거가 “1840년경 발견된, 그러나 또한 새롭게 인식된 기독교”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슈미트는 키에르케고르와 브루노 바우어에 의해 개시된 “새로운 기독교”를 괴테적 “낡은 교양”의 실질적 대안으로 간주했다. 그래서 슈미트는 1960년대 후반 유대 철학자 한스 블루멘베르크와 논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다신교적 권력 분립이 아니라 일신교적 “적대”가 세계의 궁극적인 원리라는 사실을 괴테는 알고 있었으며, 그가 라틴어로 지은 경구에서 이에 대한 증거를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슈미트가 생각한 “새로운 교양”은 야콥 타우베스가 제시한 사랑의 원리, 즉 ‘적대를 향한 적대’에 의해 정당성을 크게 상실한다.
Nach dem Zusammenbruch des Dritten Reichs erklarte der Historiker Friedrich Meinecke, die Rehabilitierung des Goethe-Kults sei der einzige Weg fur die Zukunft Deutschlands. Im Gegensatz dazu bestimmte der Jurist Carl Schmitt die erste Halfte des zwanzigsten Jahrhunderts bezuglich der geistigen Situation Deutschlands als Ubergang von Goethe zu Holderlin. Daran anschließend kritisierte er die deutschen Juden, die an solch einem entscheidenden Ubergang nicht teilnahmen. Diese Arbeit zielt darauf, den geschichtlichen Kontext und die Implikationen dieser zwei gegenuberstehenden Positionen zu ergrunden. Schmitt benennt den judischen Theologen Franz Rosenzweig als den Reprasentanten “der alten Bildung,” die Goethe vollig heiligt. Martin Heidegger, der wie Schmitt Mitglied der NSDAP war, scheint zwar, enthoben “der alten Bildung” zu sein, doch konnte er sich auf “die neue Bildung” nicht einlassen. Fur irrig befindet Schmitt, dass Heidegger mit der Holderlin’schen Dichtung lediglich verbleiben wollte. Der Grund dafur war, laut Schmitt, dass Heidegger nicht imstande war, von “dem um 1840 entdeckten, aber auch neu erkannten Christentum” Kenntnis zu nehmen. Fur Schmitt dagegen kommt es darauf an, das von Kierkegaard und Bruno Bauer initiierte neue Christentum als die wirkliche Alternative in Erfullung gehen zu lassen. Deswegen konnte Schmitt wahrend der Auseinandersetzung mit dem judischen Philosophen Hans Blumenberg auf seiner eigenen Goethe-Lekture bestehen: Auch fur Goethe sei das letztendliche Prinzip der Welt nicht die polytheistische Gewaltenteilung, sondern die monotheistische “Feindschaft.” Ubrigens glaubte Schmitt wohl, dass er selber in dem lateinischen Apophthegma von Goethe den Beweis dafur gefunden hatte. “Die neue Bildung,” die Schmitt in Gang setzen wollte, wurde jedoch letztendlich von Jacob Taubes klar widerlegt, der paradoxerweise auf die Feindschaft gegen Feindschaft, d. h. das Prinzip Liebe Anspruch erhob.
[NRF 연계] 한국선교신학회 선교신학 Vol.10 2005.04 pp.295-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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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루디비히 하게만의 책 〈기독교 대 이슬람 실패한 관계의 역사}(Chris tentum kontra Isram: eine Geschichte gescheiterter Beziehungen) 중에서 4- 11 쪽의서론과 ”꾸란에서 이해된 그리스도교"(Das Christentum iro Verstaendnis des Korans) 를 채수일(한신대)이 발훼하여 번역한 것이다루드비히 하게만(Ludwig Hagemann)은 1947년에 태어나, 1 992년 이후 만하임 대학에서 조직신학과 종교사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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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RF 연계]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종교문화비평 Vol.18 No.18 2010.09 pp.136-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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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r christliche Glaube als der Glaube an den einen Gott ist anfallig fur Gewalt? Der Agytologe Jan Assmann stellt die These auf: Der Ursprung des Monotheismus liegt in der auf die Wirkungsgeschichte der biblischen Mose-Figur zuruckgehenden “Mosaischen Unterscheidung” von wahrer und falscher Religion. Diese Unterscheidung” generiert, so Assmann, eine Welt voller Konflikt, Intoleranz und Gewalt. Es ist offenkundig, die Hebraische Bibel i s t ein Buch voller Gewalt. Aber mussten bei diesen Gewaltgeschichten jeweils im Einzelnen deren Entstehungshintergrund und Funktion diskutiert werden. Im Horizont des biblischen Monotheismus wurde von seiner inhaltlichen Konzentration auf Befreiung und Gemeinschaft her den Weltvolkern nicht mit Gewalt aufgezwungen,sondern von diesen nur in Freiheit angenommen. Gewalt widerpricht dem Grundsatz des biblichen Monothesmus und vor allem seinem Bekenntnis zum befreienden Gott. Weil Freiheit ein Gurundprinzip des Christentums ist, konnen und mussen christliche Menschen und Institutionen die Uberzeugungen Anderer unter der Maxime der Religionensfreiheit in ihrer Andersartigkeit respektieren.
유대교와 기독교-바울에게서 시작된 두 종교의 분열에 대한 사회사적 고찰
[NRF 연계] 한국신약학회 신약논단 Vol.13 No.4 2006.12 pp.1055-1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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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유대인과 기독교인이 갔던 갈림길에서 결정적인 인물이었다. 그의 기독교는 인물 카리스마적으로 변형된 유대교였다. 반면 랍비유대교는 율법해석에 있어서 더욱 발전된 유대교였다. 이 두 종교는 동일한 전승의 기초에서 다른 권위구조로 믿음의 형태를 발전시켰다. 바울은 그가 “율법”과 “믿음”의 안티테제를 두 종교의 차이로 설정할 때 그 형태를 인식했다. 그러나 그는 그것에서 어떤 절대적인 대립이 존재할 수 있다고 보지는 않았다. 물론 그는 이 대입을 상대화하려고 노력했다. 그것은 아마 두 종교의 형태는 다른 것이었지만, 직접적으로 대립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기서 제안된 바, 기원후 1/2세기의 기독교와 유대교의 차이의 상대성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사실이 강조되어야 한다. 그것은 유대교가 율법 해석적인 종교, 그리고 기독교가 인물 카리스마적 권위구조를 가졌다면 이것으로 독립된 길을 가고 있는 양 종교의 압도적인 “조직원리”가 파악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유대교에 카리스마적 인물이, 혹은 기독교에 율법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유대교의 카리스마적 인물은 분명히 토라와 그 해석에 종속된다. 랍비 엘리에젤 벤 히르카노스(R. Eliezer ben Hyrkanos)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이것을 보여준다. 그는 할라카적 결정을 지지하기 위하여 세 가지 기적과 이른바 바쓰-콜(Bath-Qol)이라는 하늘의 음성조차 열거할 수 있었음에도 자신의 서기관 동료들 다수에게 굴복했다. 그때 하나님은 하늘에서 웃었고,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의 자녀들은 나를 이겼다. 나의 자녀들이 나를 이겼다.”(bBM 59b). 여기서는 기적의 카리스마가 아니라 비자발적인 율법해석이 가장 높은 권위로 보였다. 반대로 초기 기독교에서 그 카리스마는 곧바로 공동체의 법적인 체제를 배태시켰다. 클레멘스1서와 고대교회의 공동체 규율이 이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단순한 믿음의 관계에 있었다. 나의 견해로는 예수에 대한 인물 카리스마적 관계는 종교들 사이의, 특히 유대교와의 대화에서 결정적인 장애물은 아니다. 문제는 이 인물 카리스마적 연결의 절대화이다. 카리스마적 관계가 매우 불안정하기 때문에 지속되기 위하여 이 관계는 변형되어야 한다. 이른바 “고기독론”(hohen Christologie)의 발전은 한편으로 강화된 인물 카리스마적 관계의 발전이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 관계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교의로 변화되는 것이다. 이 교의는 영적으로 ‘사로잡힌 상태’(Ergriffensein)와는 무관하게 언제나 유효한 것이다.
[NRF 연계] 한국독일언어문학회 독일언어문학 Vol.30 2005.12 pp.153-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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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lke sah seine Sendung als Kunstler nicht zuletzt darin, ??die Welt als Aufgabe zu ubernehmen??. Das heißt, dass er sich durch sein Schaffen nicht nur um die Weltdeutung, sondern daruber hinaus um das Heil der Welt bemuhte. Hierin erkennt man die Quintessenz der Rilkeschen Dichtung, die sich durch eine uber alles Konfessionelle hinausweisende Religiositat charakterisieren lasst. Bedenkt man, dass Rilke sich nicht nur verschiedene traditionelle christliche Formen schopferisch aneignete, sondern in seiner Kunst auch biblische Motive, Gestalten und kirchlich vorgepragte Rollen immer wieder ubernahm, konnte man behaupten, Rilke sei dem Christentum stark verhaftet gewesen. Angesichts der ernuchternden Selbstaussagen Rilkes, die eine heftige Ablehnung von Christus und Kirche bezeugen, muss man sich jedoch fragen, wie sich dieser Widerspruch erklart, der sowohl Nahe als auch Distanz einschließt. In dem vorliegenden Aufsatz geht es in erster Linie darum, dieser Frage nachzugehen. Dabei wird der Versuch unternommen, zuerst die Wesenszuge der eigentumlichen Religiositat Rilkes zu beleuchten und dann die Gemeinsamkeiten und Unterschiede zwischen Rilkes und der christlichen Religiositat zu konstatieren. Aufgrund seiner unermudlichen Auseinandersetzung mit Daseinsproblemen suchte Rilke danach, ein gultiges Konzept fur das Heil der Welt und die Erlosung des Menschen von seinen existentiellen Noten zu entwickeln. Er musste selbst einen leidvollen existentiellen Wandel seines Schaffens sowie Lebens hinnehmen, um dieses Konzept fur die Erlosung zu verkunden. Das gefundene Konzept stellt sich letztlich als jene Weltsicht dar, die durch eine offene, alles bejahende Haltung gegenuber der Welt, d.h. durch eine absolute Affirmation des Daseins zu kenn- zeichnen ist. Diese Weltsicht kulminiert im ??Offenen??, das sich als eine ganz- heitliche Dimension versteht, in der alle dualistischen Gegensatze aufgehoben sind. Dass Rilke das ??Offene?? mit Gott gleichsetzt, ist zweifellos darin zu begrunden, dass es sich bei beiden um die numinose, letzte Wirklichkeit handelt. Hervorzuheben ist aber: Rilkes Gott ist nicht der ewige Konig, der Geschichte und Geschicke in der Hand halt und mit Gericht und Gnade uber sie herrscht. Er ist auch nicht der Vater Jesu Christi, der durch Menschwerdung, Opfertod und Auferstehung seines Sohnes sich auch denen zum Vater gegeben hat, die an den Sohn glauben. Rilkes Gott ist der Ursprung, der sich da ereignet, wo keine Subjekt-Objekt-Spaltung mehr existiert. Rilke bezeichnet ihn darum als ??eine Richtung der Liebe??und ??keinen Liebesgegenstand?? Es ist deutlich zu erkennen, dass sich Rilke hier vom Christentum verabschiedet. Wie seine zahlreichen Selbstzeugnisse bestatigen, richtet sich Rilke ganz entschieden gegen das Christentum. Rilkes Kritik am Christentum beinhaltet vor allem drei Dimensionen: Erstens, Ablehnung der Christologie. Er verweigert einem Christus, der sich als Gottessohn und Mittler zwischen Menschen und Gott versteht, die Nachfolge. Er sieht durch das Mittlertum Christi die religiose Unmittelbarkeit zu Gott gefahrdet. Zweitens, Verurteilung des Jenseitsglaubens, der alle irdischen Erfullungen verdachtigt und den Sinn des Lebens um der Erlosung nach dem Tode willen fur nichtig erklart. Rilke sieht darin die Ausbeutung des Lebens und die Gefahr, das Verhaltnis zur Welt zu verfalschen. Drittens, Zuruckweisung der christlichen Lebenshaltung, die er als moralische Verleugnung des Lebens versteht. Sein Protest wendet sich gegen Evangelium und Kirche, die den Menschen als Sunder verstehen.
[NRF 연계] 한국칸트학회 칸트연구 Vol.15 2005.06 pp.417-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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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가 계시종교인 기독교만을 역사적 종교들 중에서 유일한 도덕적 종교라고 보았다는 것은 그의 친기독교적 성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럼에도 칸트는 자신을 기독교 호교론자가 아닌 "철학적 종교연구가(ein philosophischer Religionsforscher)"로 규정한다.『순수이성비판』에서부터 시종일관된 칸트철학의 방법론적 과제였던 영역설정(Grenzeziehung)문제가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초판 서문 절반과 두 번째 판 서문 전체의 내용을 차지할 만큼 다시 강조되어 다루어진다, 여기서 칸트는 검열관이 된 신학자가 "다른 학문들에 감히 개입하게 되면" "인간이성의 모든 시도들을 파괴해 버릴 것이다"고 경고하며 기독교 쪽의 영역침범에 대해 비판한다. 다른 한편, "철학적 신학"의 형태로 칸트는 비판적 종교철학을 수행한다. '철학적 신학'이란 '종교철학'의 다른 이름이지 신학의 한 유형이 아님에 주의해야 한다. 학문영역은 그 대상과 방법 및 목표에 의해 구획된다. 칸트의 비판적 종교철학의 방법적 특성과 목적에 따르면 철학자는 순수한 이성의 영역만을 선험적 원리와 관련하여 탐구하는 자이기 때문에 모든 경험이 배제된 좁은 영역에 자기를 한정해야 한다. 칸트는 이런 방법적 특징을 강조하기 위해 『종교서』의 제목을 의도적으로 "단순한 이성에 의거한(aus bloser Vernunft) 종교"가 아니라 "단순한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innerhalb der Grenzen der blosen Vernunft) 종교"로 정한 것이다. "순수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를 다룬다는 것은 그러므로 역사적 계시적 부분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제외시킨 채 순전히 이성적인 부분만을 탐구하겠다는 뜻이다.
Kant hat durch den moralischen- praktischen Weg die Metaphysik des Vernuntglaubens begrundet. Er halt diesen fur die einzig mogliche Religion angesichts der antireligiosen Tendenz in Aufklarung. Der Vernunftglaube von Kant erhalt den Vernunftcharakter dadurch, dass er auf dem moralsichen Gesetz, das allein aus reiner Vernunft entspringt, grundet. Er ist auf jeden Fall ein Glaube zu nennen, weil er ein Glaube an Gott ist. Kant hat durch die Erkenntnisvermogenskritik den dogmatischen Glaubensinhalten von Kirche seine eigenen Glaubensidenn des Vernunftglaubens als Glauben und Wissen verbindende Formen entgegenstellt.
악마로 전락한 고대 신들과 기독교 - 하인리히 하이네의 『정령·추방당한 신들』(태경섭 역, 회화나무 2021)에 대하여
[NRF 연계] 서울대학교 독일어문화권연구소 독일어문화권연구 Vol.30 2021.12 pp.315-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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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RF 연계] 한국니체학회 니체연구 Vol.8 2005.10 pp.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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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의 경우, 인간의 타락은 선악을 구분할 수 있는 그의 인식 능력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 능력은 신앙과 비교할 때, 열등한 것, 심지어 악적인 것으로 평가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적인 평가에 대하여 니체는 “신은 죽었다”라는 표현을 통해 다시 한번 사유해 볼 것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신의 죽음에 대한 그의 주장이 곧바로 무신론에 대한 옹호를 뜻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그것은 그리스도교에 대한 일반적이고 도식적인 이해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다양한 그리스도교의 모습과 다양한 니체의 입장들을 통해 그리스도교에 대한 니체의 평가를 성서, 그리스도교 도덕과 교회, 사제, 그리고 구약과 신약의 상이성, 사도 바울과 예수의 비교를 통해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주제에 따라 살펴보았다.“인식은 슬픔, 가장 많이 아는 자들은가장 깊이 숙명적 진리를 탓하지 않으면 안 된다인식의 나무는 생명의 나무가 아닌 것이다”-바이런의 시(인간 126)
Nach dem Christentum ist die Erbsuende des Menschen besonders auf seiner Erkenntnisvermoegen bezogen, das erst ermoeglichen zu erkennen, was gut und boese ist. Dabei ist dieses Erkenntnisvermoegen, vergliechen mit dem Glauben, als niedriges, sogar als schlechtes, entwertet. Im Bezug auf diesen allgemeinen Beurteilen stellt aber Nietzsche eine Frage, was Gott heissen soll. Und er behauptet, Gott sei tot. Dieser Nietzsches Spruch aber koennte zugleich den Gelegenheit geben, von dem allgenmeinen und vulgaeren Verstaendnis ueber das Christentum und Nietzsche frei zu werden. Dafuer werden in dieser Abhandlung folgenden Themen; Bibel, das alte und neue Testament, christliche Moral, Kirche, Priester, St. Paul und Jesus von Nazareth, eroertert.
기독교대학의 교수 채용 시 종교 관련 조건의 적법성 여부
[NRF 연계] 중앙법학회 중앙법학 Vol.11 No.4 2009.12 pp.105-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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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e 86% von der Hochschulausbildung in Korea wird von den Privatsuniversitaeten betrieben. In diesen Privatsuniversitaeten gibt es viele christlichen Universitaeten. Sie haben einen bestimmten Zweck der Universitaetsbegruendung, das Evangelium verkuendigen und ausbilden zu koennen. Um diesen Zweck zu verwirklichen wollen Sie die Christen als Professor aufnehmen. Der Satz und die inenen Regelungen an der fast allen christlichen Universitaeten enthalten die mit dem Christentum zusammenhaengende Bedingung beim Aufnahmen des Professors. Wegen dieser Voraussetzung haben die Bewerber ein Gesuch der 'National Human Rights Commission of Republic of Korea' einreichen, die beim Aufnahmen des Professors nicht bewerben konnten oder keine Erfolge hatten. Daher hat 'National Human Rights Commission of Republic of Korea' das Gesuch bewilligt. Die Begruendung der Bewilligung ist wie folgt: Die mit dem Christentum zusammenhaengenden Bedingung beim Aufnahmen des Professors an der christlichen Universitaet hat keine Richtigkeit, das durch die Verfassung garantierte Gleichheitsrecht unterschiedlich behandeln zu koennen. 'National Human Rights Commission of Republic of Korea' hat diesen christlichen Universitaeten ein Ratschlag gegeben, die rechtswidrige Handlung zu verbessern. Der Ratschlag der 'National Human Rights Commission' wird mit dem Gleichheitsrecht im Verfassungsrecht und der Rechtswidrigkeit im Gesetz der 'National Human Rights Commission' entscheidet. Aber es gibt so die verschiedenen Problemen in dieser Entscheidung. Zuerst ist das Gleichheitsrecht ein relatives Recht. Deswegen kann man das Gleichheitsrecht auf der Grundlage der Vernuenftmaessigkeit unterschiedlich behandeln. Die Richtlinie der Vernuenftmaessigkeit ist der Grundsatz der Chancegleichheit und des Willkuersverbotes. Die Anstellung des Professors an den Privatsuniversitaeten ist nur der privatrechtliche Dienstvertrag. Deswegen ist der Dienstvertrag mit dem Prinzip der Vertragsfreiheit abgeschlossen. Weitergehend wird das Prinzip des Tendenzunternehmens im Arbeitsrecht dem Dienstvertrag auch getroffen. Die Bittsteller und seine Unterstuetzer haben behauptet, dass die mit dem Christentum zusammenhaengenden Bedingung beim Aufnahmen des Professors an der christlichen Universitaet der Vertragsfreiheit und der guten Sitte sowie sozilalen Ordnung entgegenstand ist. Nach meiner Meinung ist die Hauptung nicht richtig. Die mit dem Christentum zusammenhaengenden Bedingung beim Aufnahmen des Professors ist die Vorstufe des Vertragsabschlusses und verbindet mit der Inhaltsentscheidungsfreiheit. Zusammenfassend gesagt ist der Ratschlag der 'National Human Rights Commission' nicht richtig. National Human Rights Commission ist den christlichen Universitaeten den oben erwaehnten Ratschlag nicht mehr zu geben.
[NRF 연계] 한국교회사학회 한국교회사학회지 Vol.52 2019.05 pp.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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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티누스와 기독교의 연관성에 대한 연구는 부족한 1차 자료로 인해 여전히 많은 논란 가운데 있다. 그가 기독교인이 된 과정은 오랜 기간에 걸친 전환이었다. 그러나 일시적 회심이 아니라고 해서 그의 통치 시기가 기독교에 가져온 의미조차 퇴색 되어져서는 안 된다. 물론 정치적 의도를 배제하고 생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부륵하르트의 주장처럼그 나름의 종교적 이해 혹은 신앙적 가치관 없이 오로지 정치적 목적에서만 기독교 우대 정책들을 펼쳤다거나, 기독교가 국가 종교가 되는 발판을마련했다고도 보기 어렵다. 그의 정치적 의도 가운데는 분명히 로마의 옛종교가 지녔던 공공의 안녕(salus publica)을 비는 역할을 기독교가 대체해주길 바란 의도가 있었다고 여겨진다. 그의 기독교적 윤리성 혹은 신앙인으로서의 자세가 옳은지 그른지를 떠나 그의 시대가 기독교에 열어준 종교적 자유와 발전 가능성은 그 전 황제들과 비교했을 때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사학자들의 주장처럼 분명 그의 삶 후반기에 저지른 근친 처단은기독교 윤리적으로는 허용될 수 없는 사건이다. 또한 그가 직접 지시하진않았지만 후대에 발생한 정치와 종교의 밀착으로 인한 부정적 영향 또한분명하다. 분명한 것은 콘스탄티누스는 로마의 옛 종교를 기독교로 대체하고자 했으며 그러한 종교 정책을 펼쳤다는 것이다.
Die Forschungsergebnisse zum Verhaltnis zwischen Kaiser Konstantin I und dem Christentum sind noch immer umstritten, da weiterhin ein eklatanter Mangel an verlaßlichen Quellen besteht. Als gesichert gilt aber, dass Konstantin nicht schlagartig Christ geworden ist, denn dies ist vielmehr ein langfristiger Prozess gewesen; nicht umstritten ist auch seine Forderung des Christentums und sein Engagement fur die Einheit der Kirche angesichts drohender Schismen durch Dogmensstreitigkeiten, denen er durch das Konzil von Nicaa ein Ende zu setzen versuchte. Schwierigistes zudem zwischen personlicher Frommigkeit und seiner Religionspolitik klare Abgrenzungen zu vollziehen. Im Vergleich zu seinen Vorgangern ist die Religionsfreiheit in seiner Zeit sehr groß gewesen, was dem Christentum enorme Entwicklungsmoglichkeiten verschafft hat, was aber nicht bedeutet, dass das Christentum die einzig legitime Religion darstellt. Allerdings durfte es wohl sein langfrisiges Ziel gewesen sein, dass das Christentum die offentlichen Funktionen der traditionellen Religion Roms ubernimmt. Betrachtet man hingegen sein Leben unter dem Aspekt der christlichen Ethik, so ware gegen seine Lebensfuhrung und manche politische Entscheidung massive Kritik zu uben. Zu beachten ist ferner auch, dass die Einheit von Politik und Religion als Staatskirchentum, die sich im allgemeinen Bewusstsein immer mit seiner Person verbindet, sicherst in spaterer Zeit durchgesetzt hat.
참된 그리스도인은 무신론자여야 하는가? -에른스트 블로흐의 『그리스도교안의 무신론』과의 대질-
[NRF 연계] 한국가톨릭철학회 가톨릭철학 Vol.18 2012.04 pp.159-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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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에른스트 블로흐의 후기저서인 『그리스도교안의 무신론』에서 개진된 무신론적인 성서해석과 대질함을 목적으로 삼고 있다. 블로흐는 성서를 ‘지하의 성서’와 ‘공적인 성서’로 구분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성서가 전하는 본래적인 메시지는 지하의 성서에담겨 있는데, 그것은 신 없는 하늘나라를 희망하는 무신론적 휴머니즘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편집사적으로 사제계급에 의해서 왜곡되어서 신정주의적인(theocratic) 신관을 표방하는 ‘공적인 성서’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블로흐가 성서를 이렇게 해석하는 원리들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성서의 묵시록인데, 이에 근거해서 그는 현존하는 사악한 이 세상과 그 창조주에 대한 신앙이 새 하늘과 새 땅의 도래를 예고하는 메시아사상과 양립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다른 하나는 아리스토텔레스 좌파로부터 물려받은 형이상학적 물질개념인데, 이로부터 그는 신 없는 인간적 자유의 왕국을 연역하고 있다. 필자는 블로흐의 성서해석의 원리가 종교사적으로는 고대 페르시아종교의 중재되지 않은 이원론에서 연유한다는 연구결과를 소개하고, 이어서 블로흐 철학의 중심개념들인 희망과 자유의 개념들을 그리스도교 철학 내지 신학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고찰하였다. 필자는 블로흐의 희망개념이 미래적 연관만을 갖는 데 비해서, 그리스도교가 이해하는 희망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세 차원에 걸쳐 있는 성사적 표징들이 그 토대가 되고 있음을 해명하였다. 아울러 블로흐의 자유개념이 순전히 인간학적인 의미를 갖는 데 비해서, 그리스도교가 이해하는 자유는 신적인 은총에 의해서 가능하게 된 자유임을 켄터베리의 안젤무스의 대속이론을 통해서 해명하였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사회변혁을 위한 블로흐적인 실천방식에 내재된 위험을 지적하였다.
This paper aims at examining the notion of freedom and hope in Ernst Bloch’s Atheismus im Christentum from a Catholic perspective. The existing literature on Bloch does not have dealt with his atheism in Korea, and thus this paper can contribute to this gap. It first illustrates Bloch’s atheistic interpretation of the Bible and examines his principle of interpretation. In this, it reveals that his principle is based on the Revelation in the New Testament on the one hand, and on the concept of material, drawn from the Left Aristotelian, on the other. His principle can be evaluated as being guided by the Manichean dualism in terms of history of religion. It then critically examines the central concepts of his philosophy, that is hope and freedom. It argues that Bloch’s hope is oriented toward future, but discontinued from the past, whereas the Christian perspective on hope is grounded in the sacramental signs which connect the past,the present, and the future. It also argues that Bloch’s freedom is purely remained within the anthropological dimension, whereas the freedom in the Christian perspective is constituted on the divine grace. This critique explicates why Bloch’s way of praxis for social change cannot be suppor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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