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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계 성혼의 경세 사상 : 임란 전후의 경세관을 중심으로 KCI 등재

김인규

우계문화재단 우계학보 제46호 2024.06 pp.3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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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00원

이 논문은 우계(牛溪) 성혼(成渾)의 경세사상을 고찰한 글이다. 주지하다시피 성혼은 율곡(栗谷) 이이(李珥)와 1572년부터 6년 동안 9차에 걸친 사칠리기(四七理氣)에 대한 논쟁으로 인해, 우리에게 성리학자로 더욱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우계집』을 보면, 권2, 3이 임금에게 올린 장소(章疏)로, 문집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물론 대부분의 장소(章疏)가 사직(辭職) 상소이기는하나, 이 가운데, <기묘봉사(己卯封事)>, <신사봉사(辛巳封事)>, <경인봉사(庚寅封事)>, <상왕세자차(上王世子箚)>, <시무편의십오조(時務便宜十五條)>, <행조상편의시무(行朝上便宜時務)>, <편의시무획일계사(便宜時務畫一啓辭)> 등이 성혼의 경세관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글이며, 편지글 가운데서도 그의 경세관을 엿볼 수 있는 글이 많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혼을 경세가(經世家)보다 성리학자(性理學者)로 여기게 되는 결정적인 이유는, 이이(李珥)와의 9차례에 걸친 논쟁 외에도 그에게 수많은 벼슬이 내려졌음에도 이를 사양하고 나아가지 않은 것도, 그를 경세가와 거리가 먼 인물로 오인하게 하였다. 이에 이 논문에서는 앞에서 언급한 봉사(封事)와 계사(啓辭)를 중심으로 성혼의 경세사상을 임란 전의 ‘군주수신(君主修身)’, ‘군신공치(君臣共治)’, ‘목민윤리(牧民倫理)’ 등 도학적 경세관과 임란 후의 ‘민심 안정’, ‘인재 등용’, ‘군의 기강확립’과 ‘군비 확충’ 등 현실적 경세관으로 나누어 살펴 보았다.

This thesis is about Ugye Sung Hon’s thought of politics and economy. As many know, Sung Hon had carried out the dispute of SaChilRiGi(四七理氣) against Yulgok Lee Yi through 9 times for 6 years since 1572, which gave him a big name as a Neo-Confucian scholar. Seeing the collections of his literatures UgyeJip, however, the 2nd and 3rd book of the collection are appeals to the king, which account for a big amount as big as one third of the collection. Most of the appeals were written for his retirement. Among them, however, such appeals as GiMyoBongSa(己卯封事), ShinSaBongSa(辛巳封事), Gyeong- YinBongSa(庚寅封事), SangWangSeJaChi(上王世子箚), SiMuPyeonEuiSipOhJo(時務便宜十五條), HaengJoSangPyeonEuiSiMu(行朝上便宜時務) and PyeonEuiSi- MuHoikYilGyeSa(便宜時務畫一啓辭) are representative showing us Sung Hon’s idea of politics and economy, which appear also in some of his letters Even if he wrote much about politics and economy, he is considered a Neo-Confucian scholar rather than a political economist. He had carried out 9 times of philosophical dispute against Lee Yi and he did not take the positions of king’s servants, which were given to him many times, so that he was misunderstood as a figure far away from a figure of politics and economy. Focusing on BongSa(封事) and GyeSa(啓辭) set forth above, therefore, this thesis sorts out Sung Hon’s idea of politics and economy into such Neo-Confucian type idea of politics and economy as GunJuSuShin(君主修身), GunShinGongChi(君臣共治) and MokMinYunRi(牧民倫理) emerging before Imjin Japanese invasion and such realistic idea of politics and economy as stability of public sentiment, engagement of talent, establishment of army’s discipline and expansion of military preparedness emerging after Imjin Japanese invasion.

2

우계 성혼의 실학 정신에 관한 고찰 KCI 등재후보

최일범, 림관헌

우계문화재단 우계학보 제43호 2022.12 pp.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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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00원

이 논문의 목표는 16세기 대표적 성리학자 중 한 사람인 우계(牛溪) 성혼(成渾)과 관련된 기존 연구 중에서, 우계사상이 성리학(性理學)뿐 아니라 실학(實學) 정신도 포함한다는 주장에 동의하면서, 이와 관련하여 또 다른 관점과 방법을 보탬으로써, 개혁가요 실학 정신이 충만한 사상가로서 우계를 조명하는 데 있다. 우계와 실학을 연계한 연구가 소수의 논문에 불과한 것은 우계에게, 율곡(栗谷)의, 『동호문답(東湖問答)』이나, 『만언봉사(萬言封事)』와 같은, 개혁론과 경세론을 적극적으로 피력한 저술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가 선조에게 올린 「시무편의(時務便宜) 15條」 등 장소(章疏)에 보이는 시무론⋅개혁론을 유의미하게 분석한 연구가 적거나, 연구자들의 관심이 집중되지 않는 것도 하나의 요인이기도 하다. 이 논문은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기존의 연구를 정리하는 한편, 우계의 성리학 사상에서 현실성, 현장성, 주체성 등의 특성을 논의하고자 한다.

The goal of this thesis is to agree with the argument that Woogye's thoughts include not only Neo-Confucianism but also the spirit of Silhak among the existing studies related to Woogye Seong-hon, one of the representative Neo-Confucian scholars in the 16th century, by adding another perspective and method in this regard, It is to illuminate Woogye as a reformer and a thinker full of the spirit of Silhak. The reason why there are only a handful of studies linking Woogye and Silhak is probably because there are no writings by Yugye that actively express the theory of reform and governance, such as Yulgok's Donghomundap or Maneonbongsa. However, one of the factors is that there are few studies that have significantly analyzed the theory of reform and the theory of reform that can be seen in places such as 「15 posts of Simu convenience(時務便宜)」 posted by him to King Seonjo, or that researchers are not paying attention. . In order to overcome these problems, this thesis aims to discuss the characteristics of reality, realism, subjectivity, etc. in Woogye's Neo-Confucian thought, while arranging existing studies.

3

朝鮮時代의 法制 고찰 : 法治와 福治

文孝男

우계문화재단 우계학보 제39호 2020.12 pp.123-158

...사상으로 무장한 조선의 건국자들과 입법자들은 인간에 대해 어떤 ‘올바른 존재양식( )’을 상정하면서 법제도를 수립해왔는지, 그리고 법치( ) 와 예치( )의 조화를 달성하려는 그들의 의도와 노력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 것이다. 조선시대는 통일법전시대라고 일컬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건국 초부터 말기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통일법전 제, 개정 등 편찬사업을 계속하였다. 조선시대 법제를 대표하는 경국대전( )은 유교적 예치국가를 건설 하고자 한 조선 전기의 경세가들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외유내법적( )인 경국대전 체제의 특성으로 말미암아, 조선은 점차 예( )보다는 치( ) 중심의 사회로 변질되어 간 것으로 판단된다. 예치와 법치의 양 측면에서 조선시대 법제를 고찰해본 결과, 오늘날에 있 어서도 인간의 존엄이 보장되는 바람직한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인간의 행 위와 실정법의 판단기준으로서 유가 자연법사상이 갖고 있는 유가( )적 가치가 최고의 기준이 되고, 법가( )적 가치가 보완이 될 때, 가장 지혜롭고 조화로운 사회를 이룰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즉, 유가의 자연법사상 이 형식적 의미의 법치주의를 보완하여 실질적 의미의 법치주의로 이끌어 나 가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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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00원

이 논문은 조선시대 법제의 내용을 개략적으로 살펴보고 이에 터 잡아 유 학사상으로 무장한 조선의 건국자들과 입법자들은 인간에 대해 어떤 ‘올바른 존재양식( )’을 상정하면서 법제도를 수립해왔는지, 그리고 법치( ) 와 예치( )의 조화를 달성하려는 그들의 의도와 노력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 것이다. 조선시대는 통일법전시대라고 일컬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건국 초부터 말기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통일법전 제, 개정 등 편찬사업을 계속하였다. 조선시대 법제를 대표하는 경국대전( )은 유교적 예치국가를 건설 하고자 한 조선 전기의 경세가들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외유내법적( )인 경국대전 체제의 특성으로 말미암아, 조선은 점차 예( )보다는 치( ) 중심의 사회로 변질되어 간 것으로 판단된다. 예치와 법치의 양 측면에서 조선시대 법제를 고찰해본 결과, 오늘날에 있 어서도 인간의 존엄이 보장되는 바람직한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인간의 행 위와 실정법의 판단기준으로서 유가 자연법사상이 갖고 있는 유가( )적 가치가 최고의 기준이 되고, 법가( )적 가치가 보완이 될 때, 가장 지혜롭고 조화로운 사회를 이룰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즉, 유가의 자연법사상 이 형식적 의미의 법치주의를 보완하여 실질적 의미의 법치주의로 이끌어 나 가야 한다는 것이다.

This study is on the legal system of Chosun Dynasty from a vantage point of the Rule of Courtesy( ) and the Rule of Law( ). In the meaning of annals of legislation, Chosun( ) Dynasty is called ‘The Uniform Code Period’. Through the whole dynasty, Chosun has published “Uniform Codes” such as Gyoun Gug Dae Jeon( ). The founders of Chosun had the ideal purpose and subjecy to establish a new nation which is ruled by the Confucius philosophy( ), especially by the Rule of Courtesy( ) rather than the Rule of Law( ). Gyoun Gug Dae Jeon( ) was a principle Code of Chosun Dynasty and the exemplum virtutis of the Rule by Courtesy( ). However, The tendency of Chosun has changed to prefer Rule of Law( ) than Rule of Courtesy( ). As the conclusion, to guarantee nation’s people their living of the proper and right mode of being( ), Rule by Courtesy( ) should be the basic and top standard of value, and Rule of Law( ) complementary.

4

牛溪先生의 經世思想

趙南國

우계문화재단 우계학보 제6호 1992.06 pp.2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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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0원

5

牛溪의 經世思想

趙南國

우계문화재단 우계문화재단 학술대회 우계사상과 현대사회 1992.04 pp.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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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0원

6

牛溪의 憂患意識과 經世思想

조남욱

우계문화재단 우계학보 제28호 2009.12 pp.125-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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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00원

7

牛溪의 現實認識과 經世思想

황의동

우계문화재단 우계학보 제27호 2008.12 pp.93-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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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00원

8

17,200원

9

魯西 尹宣擧의 삶과 학문 - ‘悔過自新’과 ‘喚醒實心’을 중심으로 노서 윤선거의 삶과 학문 - ‘회과자신’과 ‘환성실심’을 중심으로 KCI 등재후보

최영성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유학연구 제18집 2008.12 pp.1-33

...사상의 특징, 후세에 끼친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찰하는 데 목적이 있다. 윤선거는 우계 성혼의 외손으로서 성혼 집안의 가학(家學)과 율곡 이이의 학통을 계승하여 두 학파의 학풍을 한 몸에 수렴하였다. 그는 이론보다 실천을 중시하는 학문 경향을 보였다. 성리학에 대해서는 이론적인 탐구가 없었으며, 정주(程朱) 이후에는 오직 실천만 남았을 뿐이라는 태도를 취하였다. 그러면서도 율곡학통에서 ‘변통(變通)’을 중심으로 한 경세적 기풍을 이어받았다. 󰡔주역󰡕에 심취하여 변화의 원리를 탐색한 것도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그는 ‘실심(實心)’ 두 글자를 사상적 기반으로 삼고 당대의 학풍과 사풍(士風)을 비판하였으며, 허위와 가식으로 가득 찬 유자(儒者)들을 날카롭게 비판하였다. 그의 ‘실심사상’은 양명학 계열과 독자적인 경전 주해를 주창했던 계열의 학자들과 인적 관계가 있고 학문적으로도 맥락이 통한다. 조선 후기 사상사에서 그의 위치가 제대로 매김될 필요가 있다.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조선 후기의 학자 노서 윤선거의 생애를 통해 그의 학문 연원, 학문 경향, 학문과 사상의 특징, 후세에 끼친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찰하는 데 목적이 있다. 윤선거는 우계 성혼의 외손으로서 성혼 집안의 가학(家學)과 율곡 이이의 학통을 계승하여 두 학파의 학풍을 한 몸에 수렴하였다. 그는 이론보다 실천을 중시하는 학문 경향을 보였다. 성리학에 대해서는 이론적인 탐구가 없었으며, 정주(程朱) 이후에는 오직 실천만 남았을 뿐이라는 태도를 취하였다. 그러면서도 율곡학통에서 ‘변통(變通)’을 중심으로 한 경세적 기풍을 이어받았다. 󰡔주역󰡕에 심취하여 변화의 원리를 탐색한 것도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그는 ‘실심(實心)’ 두 글자를 사상적 기반으로 삼고 당대의 학풍과 사풍(士風)을 비판하였으며, 허위와 가식으로 가득 찬 유자(儒者)들을 날카롭게 비판하였다. 그의 ‘실심사상’은 양명학 계열과 독자적인 경전 주해를 주창했던 계열의 학자들과 인적 관계가 있고 학문적으로도 맥락이 통한다. 조선 후기 사상사에서 그의 위치가 제대로 매김될 필요가 있다.

This study is aimed to comprehensively analyze the origin, tendency, features, influence to the next generation and etc of Noh-Seo Yoon Seon Geo’s learning and idea through his life, who was a scholar late in Joseon era. He was a grandson of U-Gye Seong Hon in his maternal root, so that he succeeded the learning tradition of Seong Hon’s family and Yul-Gok Lee Yee and then collected such learning tradition into himself from them. He tended to value practice more than theory. He showed the attitude that there had not been a theoretical investigation in Sung Confucianism and only action had remained since Jeong Ju (程朱: a scholar in Song Dynasty, China). On the other hand, he succeeded the governing style learning character focused on ‘ByeonTong (變通: working with adaptability)’ from Yul Gok’s school. It is one of the features of his learning that he searched out the principle of change being infatuated with “the Book of Change”. He put the words ‘SilSim (實心: sincerity)’ in his mind as the base of his idea to criticize the learning tendency and scholars’ styles of his times and show his sharp criticism to the Confucian scholars who were full of falsehood and affectation. His idea of ‘SilSim’ linked to the scholars rooted to Yangming Confucianism and the scholars who advocated independent translation of Confucian classics as well both personally and academically. He should be given his own position as it was in the history of idea late in Joseon era.

10

우계 성혼의 권도론 연구

김준태

[NRF 연계] 한국유교학회 유교사상문화연구 Vol.79 2020.03 pp.31-49

※ 협약을 통해 무료로 제공되는 자료로, 원문이용 방식은 연계기관의 정책을 따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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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16세기 조선을 대표하는 성리학자로서 특히 서인(西人) 경세가(經世家)들에게 큰 영향을 준 우계(牛溪) 성혼(成渾)의 권도론(權道論)을 검토하였다. 권도는 보편적 가치규범인 경도(經道)가 현실 상황에 맞게 실현될 수 있도록 하는 임시변통의 방법이다. 공자가 처음 언급하고 맹자가 구체화하였으며 주희(朱熹)도 그 필요성을 인정하였기 때문에 누구도 권도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권도는 주관적 판단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자칫 경도에서 어긋날 가능성이 있다. 주희가 권도란 성인(聖人)만이 실천할 수 있다고 제한을 둔 것은 그래서이며, 주희의 학문을 계승하는 조선의 성리학자들도 대부분 권도의 행사를 비판적으로 보았다. 그런데 예외적인 것이 17세기 초반이다. 대내외적으로 다양하고 강력한 도전을 맞고 있던 그때, 이정귀․이귀․장유․최명길 등의 경세가들은 권도를 적극적으로 개진하면서 국정을 개혁하고 민생을 안정시키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본 논문은 이들에게 영향을 준 것이 바로 성혼이었음에 주목하고, 성혼의 권도론을 분석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성혼은 임진왜란 당시 왜와 화친하라는 명나라의 요구를 부득이 수용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 바 있는데, ‘정치가의 책임윤리’라는 차원에서 권도를 따른 판단이었다. 또한, 권도의 관점에서 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여러 정책들을 제안하였다. 본 논문은 이와 같은 성혼의 권도론과 권도에 입각한 정책, 그리고 성혼의 권도론이 끼친 영향에 대해 살펴보았다.

11

魯西 尹宣擧의 삶과 학문 -‘悔過自新’과 ‘喚醒實心’을 중심으로-

최영성

[NRF 연계]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유학연구 Vol.18 2008.12 pp.1-33

...사상의 특징, 후세에 끼친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찰하는 데 목적이 있다. 윤선거는 우계 성혼의 외손으로서 성혼 집안의 가학(家學)과 율곡 이이의 학통을 계승하여 두 학파의 학풍을 한 몸에 수렴하였다. 그는 이론보다 실천을 중시하는 학문 경향을 보였다. 성리학에 대해서는 이론적인 탐구가 없었으며, 정주(程朱) 이후에는 오직 실천만 남았을 뿐이라는 태도를 취하였다. 그러면서도 율곡학통에서 ‘변통(變通)’을 중심으로 한 경세적 기풍을 이어받았다. 『주역』에 심취하여 변화의 원리를 탐색한 것도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그는 ‘실심(實心)’ 두 글자를 사상적 기반으로 삼고 당대의 학풍과 사풍(士風)을 비판하였으며, 허위와 가식으로 가득 찬 유자(儒者)들을 날카롭게 비판하였다. 그의 ‘실심사상’은 양명학 계열과 독자적인 경전 주해를 주창했던 계열의 학자들과 인적 관계가 있고 학문적으로도 맥락이 통한다. 조선 후기 사상사에서 그의 위치가 제대로 매김될 필요가 있다.

※ 협약을 통해 무료로 제공되는 자료로, 원문이용 방식은 연계기관의 정책을 따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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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조선 후기의 학자 노서 윤선거의 생애를 통해 그의 학문 연원, 학문 경향, 학문과 사상의 특징, 후세에 끼친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찰하는 데 목적이 있다. 윤선거는 우계 성혼의 외손으로서 성혼 집안의 가학(家學)과 율곡 이이의 학통을 계승하여 두 학파의 학풍을 한 몸에 수렴하였다. 그는 이론보다 실천을 중시하는 학문 경향을 보였다. 성리학에 대해서는 이론적인 탐구가 없었으며, 정주(程朱) 이후에는 오직 실천만 남았을 뿐이라는 태도를 취하였다. 그러면서도 율곡학통에서 ‘변통(變通)’을 중심으로 한 경세적 기풍을 이어받았다. 『주역』에 심취하여 변화의 원리를 탐색한 것도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그는 ‘실심(實心)’ 두 글자를 사상적 기반으로 삼고 당대의 학풍과 사풍(士風)을 비판하였으며, 허위와 가식으로 가득 찬 유자(儒者)들을 날카롭게 비판하였다. 그의 ‘실심사상’은 양명학 계열과 독자적인 경전 주해를 주창했던 계열의 학자들과 인적 관계가 있고 학문적으로도 맥락이 통한다. 조선 후기 사상사에서 그의 위치가 제대로 매김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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