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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계문화재단 우계학보 제39호 2020.12 pp.5-30
...우계 성혼의 성리학을 고찰하는 것이 목적이다. 기존의 많은 연구 물들이 있지만, 아직까지 퇴계와 율곡 성리학에서 벗어나 우계 성리학의 특징 을 확고히 드러내는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이에 필자는 어떻게 하면 우계 성리학의 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두면서, 율곡과 논 쟁의 성격과 우계가 추구한 입장이 무엇인지, 우계가 강조한 인심⋅도심의 양 변설에 대한 주자 이후 남송⋅원대 학자들의 입장이 어떠했는지, 율곡과 논쟁 하기 전의 우계가 추구하던 학문의 방향성이 무엇이었는지를 분석하였다. 이러한 접근을 통해서 우계 성리학에 대한 몇 가지 유의미한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첫 번째는 우계 성리학은 남송 이후 성리학의 기본 흐름을 계승하 고 있으며, 도덕적 자아완성에 목표를 두면서 수양론⋅공부론을 중시했다는 특징을 지닌다. 두 번째는 우계는 남송 말⋅원대 정립된 인심⋅도심, 사단⋅칠정을 이기로 분속시키려는 사유를 수용⋅긍정하면서, 퇴계⋅율곡에 의해 부각된 이기론적 세계관과 모순된 철학적 상황에 직면하였다. 세 번째는 이러 한 조선 성리학의 상황에서 우계는 심성론⋅수양론의 영역과 이기론 영역의 상호성을 유지하면서도 도덕적⋅윤리적 측면을 우선하려는 입장을 취하였다. 이 세 가지 점들은 우계 성리학 이해에 중요한 기초를 제공해주며, 향후 학문 의 차별성⋅독자성을 확립하는 데에 주요한 방향성을 제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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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우계 성혼의 성리학을 고찰하는 것이 목적이다. 기존의 많은 연구 물들이 있지만, 아직까지 퇴계와 율곡 성리학에서 벗어나 우계 성리학의 특징 을 확고히 드러내는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이에 필자는 어떻게 하면 우계 성리학의 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두면서, 율곡과 논 쟁의 성격과 우계가 추구한 입장이 무엇인지, 우계가 강조한 인심⋅도심의 양 변설에 대한 주자 이후 남송⋅원대 학자들의 입장이 어떠했는지, 율곡과 논쟁 하기 전의 우계가 추구하던 학문의 방향성이 무엇이었는지를 분석하였다. 이러한 접근을 통해서 우계 성리학에 대한 몇 가지 유의미한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첫 번째는 우계 성리학은 남송 이후 성리학의 기본 흐름을 계승하 고 있으며, 도덕적 자아완성에 목표를 두면서 수양론⋅공부론을 중시했다는 특징을 지닌다. 두 번째는 우계는 남송 말⋅원대 정립된 인심⋅도심, 사단⋅칠정을 이기로 분속시키려는 사유를 수용⋅긍정하면서, 퇴계⋅율곡에 의해 부각된 이기론적 세계관과 모순된 철학적 상황에 직면하였다. 세 번째는 이러 한 조선 성리학의 상황에서 우계는 심성론⋅수양론의 영역과 이기론 영역의 상호성을 유지하면서도 도덕적⋅윤리적 측면을 우선하려는 입장을 취하였다. 이 세 가지 점들은 우계 성리학 이해에 중요한 기초를 제공해주며, 향후 학문 의 차별성⋅독자성을 확립하는 데에 주요한 방향성을 제공할 것이다.
This paper is research for Ugyae(牛溪) Seong Hon( , 1535∼1598)'s the characteristics of Neo-confucianism. There are many studies of Ugyae's Neoconfucianism, but I think they have not yet reached the stage of research that reveals the identity of Ugyae's Neo-confucianism, away from the structure of Toegye( ) and Yulgok( )'s Neo-Confucianism. Focusing on how to secure the perspective and position of Ugyae independently, I analyzed the nature of the debate with Yulgok and what Ugyae's position, the Southern Song and The Yuan Dynasty's Neo-Confucianist's understanding about theory of dichotomy between Human-Mind and Morality-Mind what Ugyae was emphasizing, and what Ugyae was pursuing before the debate with Yulgok. This approach led to several conclusions, it is as follows. First, Ugyae's Neo-Confucianism has inherited the basic flow of Neo-Confucianism since the Southern Song Dynasty, and he has emphasized the theory of Self-Culture. Second, Ugyae was in a philosophical situation that contradicted Li( ) & Qi ( )'s worldview that emerged after Yi Hwang, accepting and affirming thought Separate Understanding of Four Clues( ), Seven Emotions( ) and Human-Mind( ), Morality-Mind( ) by Li & Qi. Third, it was an important feature of Ugyae's Neo-Confucianism that emphasizing the field of moral and self-culture on the position of maintaining mutuality between The Theory of Self-Culture and The Theory of Li & Qi.
牛溪學의 傳承과 그 學風 KCI 등재후보
범한철학회 범한철학 제28집 2003.03 pp.31-58
...철학적 位相이나 儒學史的 位相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였다. 근래 牛溪學에 관한 분야별 연구성과는 刮目할만하다. 이를 바탕으로 牛溪學이 어떻게 계승 발전되어 나갔으며, 그 學風의 특성이 무엇인가를 고찰함에 본 연구의 목적이 있다. 牛溪學은 그의 門人인 尹煌, 黃愼, 金尙容, 申欽, 李貴, 鄭曄, 趙憲, 安邦俊, 金德齡, 姜沆, 崔起南 등으로 傳承되었다. 특히 尹煌은 그의 사위이면서 제자인데, 이후 우계학은 坡平 尹門으로 계승되어 尹煌-尹宣擧-尹拯의 學統을 樹立하였다. 尹拯의 門下에는 朴泰輔, 韓永箕, 鄭齊斗, 權以鎭 등이 있었는데, 우계학은 이후 ‘少論派’라는 政派的 성격을 갖게 되었다.그밖에 張維, 崔鳴吉, 崔後亮, 崔錫鼎, 朴世采, 朴世堂, 權, 趙翼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은 學緣, 血緣, 學風의 同質性, 黨派的 同質性 등 매우 복잡하게 얽혀 소위 牛溪學脈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면 牛溪學脈의 學風的 특성은 무엇인가? 첫째는 開放的 學風에 있다. 朴世采, 趙翼, 林象德 등에게서 보듯이, 이들은 栗谷說에 기반하면서도 退溪學說에 好意的이었으며, 朱子나 栗谷의 說에 대해서도 비판을 서슴지 아니하였다. 또 朴世堂, 張維, 趙翼, 申欽에게서 보듯이 道家, 佛敎, 陽明學 등 제 학문에 대해 폭넓은 受容性을 보여주고 있고, 經典해석에 있어서도 自主的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牛溪學派의 또 하나의 특징은 陸王學에 대한 깊은 관심과 연구라고 볼 수 있다. 이는 張維, 趙翼, 申欽, 崔鳴吉 등 우리 나라 초기 陽明學者들이 거의 牛溪學脈에 있고, 특히 한국양명학을 대표하는 鄭齊斗가 바로 牛溪學脈에 있다는 데서 확인된다.끝으로 牛溪學派의 또 하나의 특징은 脫性理學的 경향에 있다. 그것은 우계학파의 인물 중 朴世采나 權以鎭 정도를 제외하고는 性理學의 思辯的 관심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理氣心性論의 탐구보다는 原始儒家的 관심과 實踐的 道學 그리고 實學 내지 陸王心學에 더욱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계학파는 尤庵과 明齋의 결별이후 정치적으로 少論派가 되어 南人과는 疎通하되 老論과는 갈등하는 양상을 보여주었던 것이다.황 의 동*攀* 충남대학교 철학과 교수.攀攀이렇게 볼 때, 牛溪學派는 畿湖儒學내에서 栗谷學派와는 구별되는 또 하나의 獨立的 學派의 가능성을 갖는 것이며, 이는 보다 開放的인 學風, 陸王學的 學風, 脫性理學的 學風을 갖는다는 점에서 그 正體性을 인정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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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溪 成渾(1535-1598)은 ‘東國 18賢’의 한 사람이요 畿湖儒學의 중요한 위치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철학적 位相이나 儒學史的 位相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였다. 근래 牛溪學에 관한 분야별 연구성과는 刮目할만하다. 이를 바탕으로 牛溪學이 어떻게 계승 발전되어 나갔으며, 그 學風의 특성이 무엇인가를 고찰함에 본 연구의 목적이 있다. 牛溪學은 그의 門人인 尹煌, 黃愼, 金尙容, 申欽, 李貴, 鄭曄, 趙憲, 安邦俊, 金德齡, 姜沆, 崔起南 등으로 傳承되었다. 특히 尹煌은 그의 사위이면서 제자인데, 이후 우계학은 坡平 尹門으로 계승되어 尹煌-尹宣擧-尹拯의 學統을 樹立하였다. 尹拯의 門下에는 朴泰輔, 韓永箕, 鄭齊斗, 權以鎭 등이 있었는데, 우계학은 이후 ‘少論派’라는 政派的 성격을 갖게 되었다.그밖에 張維, 崔鳴吉, 崔後亮, 崔錫鼎, 朴世采, 朴世堂, 權, 趙翼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은 學緣, 血緣, 學風의 同質性, 黨派的 同質性 등 매우 복잡하게 얽혀 소위 牛溪學脈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면 牛溪學脈의 學風的 특성은 무엇인가? 첫째는 開放的 學風에 있다. 朴世采, 趙翼, 林象德 등에게서 보듯이, 이들은 栗谷說에 기반하면서도 退溪學說에 好意的이었으며, 朱子나 栗谷의 說에 대해서도 비판을 서슴지 아니하였다. 또 朴世堂, 張維, 趙翼, 申欽에게서 보듯이 道家, 佛敎, 陽明學 등 제 학문에 대해 폭넓은 受容性을 보여주고 있고, 經典해석에 있어서도 自主的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牛溪學派의 또 하나의 특징은 陸王學에 대한 깊은 관심과 연구라고 볼 수 있다. 이는 張維, 趙翼, 申欽, 崔鳴吉 등 우리 나라 초기 陽明學者들이 거의 牛溪學脈에 있고, 특히 한국양명학을 대표하는 鄭齊斗가 바로 牛溪學脈에 있다는 데서 확인된다.끝으로 牛溪學派의 또 하나의 특징은 脫性理學的 경향에 있다. 그것은 우계학파의 인물 중 朴世采나 權以鎭 정도를 제외하고는 性理學의 思辯的 관심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理氣心性論의 탐구보다는 原始儒家的 관심과 實踐的 道學 그리고 實學 내지 陸王心學에 더욱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계학파는 尤庵과 明齋의 결별이후 정치적으로 少論派가 되어 南人과는 疎通하되 老論과는 갈등하는 양상을 보여주었던 것이다.황 의 동*攀* 충남대학교 철학과 교수.攀攀이렇게 볼 때, 牛溪學派는 畿湖儒學내에서 栗谷學派와는 구별되는 또 하나의 獨立的 學派의 가능성을 갖는 것이며, 이는 보다 開放的인 學風, 陸王學的 學風, 脫性理學的 學風을 갖는다는 점에서 그 正體性을 인정해도 좋을 것이다.
우계 성혼의 퇴율절충론의 철학적 함의 - 리기일발설(理氣一發說)의 존재론적 해석 KCI 등재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유학연구 제31집 2014.12 pp.117-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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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성혼의 리기일발설(理氣一發說)에 초점을 맞춰 그의 퇴율절충론이 지니는 철학적 함의를 해명하고자 한다. 성혼은 사단칠정논변에 대해 처음부터 기대승의 입장에 동조한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이황의 입장에 선 것도 아니었다. 그가 이황의 호발설을 변호한 것은 단지 표면적인 것일 뿐, 실제로 호발설을 지지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사단과 칠정, 인심과 도심을 리와 기로 나누어 말하는 것은 단지 명목상의 차원에서 가능할 뿐이지, 실제로는 마음의 일반적 작용태로서의 칠정에 사단이 포함되며 양자는 지각상에서 구별된다고 보지 않았다. 성혼의 리기일발설은 리와 기가 일체로 결합된 마음의 발현에서 도덕적인 원리의 비중이 높은 것은 ‘주리(主理)’로, 과불급을 일으키는 기질(氣質)의 비중이 높은 것은 ‘주기(主氣)’로 각각 명목 차원에서만 지목할 수 있다는 것을 함축한다. 도덕적 시비선악의 판별은 지각과는 다른 반성적 헤아림의 능력에 의해 가능하며, 그것은 실천적 수양에 의해서만 길러질 수 있다고 본 듯하다. 성혼의 이와 같은 절충론적 입장은 이황과 이이의 지각론적 두 입장과는 다른 제3의 입장이라 할 수 있으며, 지각론보다는 존재론적 성격을 띤다.
In this article, I will elucidate the philosophical implication of Seong Hon (成渾, 1535~1598, 牛溪)'s compromising thought between Toegye (退溪) Yi Hwang (李滉) and Yulgok (栗谷) Yi I (李珥) focusing on the interpretation of his theory of "the unified manifestation of li and chi" (理氣一發). Concerning the Four-seven debate, Seong Hon did not align himself with Ki Daeseung (奇大升) nor agreeing with Yi Hwang from the beginning. Although he felt Ki's logic was more clear than Yi's, Seong thought that Yi's "mutual manifestation theory" (互發說) had the reasonable basis if considering Zhu Xi (朱熹)'s theory of Human Mind and Moral Mind. However, Seong's advocating Yi Hwang as such was superficial since he actually did not agree on the "mutual manifestation theory". Seong thought that it is possible only in the nominal dimension to separate Four Beginnings (Moral Mind) and Seven Emotions (Human Mind) in terms of li and chi. In reality, Four Beginnings belong to Seven Emotions as the general functions of mind where both are not able to be distinguished. Seong established his position with the theory of "the unified manifestation of li and chi" which implied that the distinction between the two perspectives of juli (主理, regarding mainly as moral principle) and juki (主氣, regarding mainly as temperament) on the functions of mind as the unified substance is possible only in the nominal dimension. In Seong’s thought, moral good and evil could be discriminated by practical deliberation which did not appertain to cognition. He seems to think that such a deliberation is able to be acquired by practical self-cultivation. Seong Hon's compromising thought, characteristics of which are ontological rather than epistemological, can be regarded as the third position different from the two epistemological standpoints in the mainstream of Korean Neo-Confucianism.
우계 성혼의 퇴율절충론의 철학적 함의 -리기일발설(理氣一發說)의 존재론적 해석
[NRF 연계]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유학연구 Vol.31 2014.12 pp.117-139
※ 협약을 통해 무료로 제공되는 자료로, 원문이용 방식은 연계기관의 정책을 따르고 있습니다.
이 논문은 성혼의 리기일발설(理氣一發說)에 초점을 맞춰 그의 퇴율절충론이 지니는 철학적 함의를 해명하고자 한다. 성혼은 사단칠정논변에 대해 처음부터 기대승의 입장에 동조한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이황의 입장에 선 것도 아니었다. 그가 이황의 호발설을 변호한 것은 단지 표면적인 것일 뿐, 실제로 호발설을 지지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사단과 칠정, 인심과 도심을 리와 기로 나누어 말하는 것은 단지 명목상의 차원에서 가능할 뿐이지, 실제로는 마음의 일반적 작용태로서의 칠정에 사단이 포함되며 양자는 지각상에서 구별된다고 보지 않았다. 성혼의 리기일발설은 리와 기가 일체로 결합된 마음의 발현에서 도덕적인 원리의 비중이 높은 것은 ‘주리(主理)’로, 과불급을 일으키는 기질(氣質)의 비중이 높은 것은 ‘주기(主氣)’로 각각 명목 차원에서만 지목할 수 있다는 것을 함축한다. 도덕적 시비선악의 판별은 지각과는 다른 반성적 헤아림의 능력에 의해 가능하며, 그것은 실천적 수양에 의해서만 길러질 수 있다고 본 듯하다. 성혼의 이와 같은 절충론적 입장은 이황과 이이의 지각론적 두 입장과는 다른 제3의 입장이라 할 수 있으며, 지각론보다는 존재론적 성격을 띤다.
[NRF 연계] 한국동서철학회 동서철학연구 Vol.40 2006.06 pp.169-190
...우계에 학문적 연원을 두고 있다. 따라서 이들의 갈등은 율곡학파(우암학파)와 牛溪學派의 分岐이기도 하다.학문적 태도에서 보면 우암학파는 주자학과 율곡학의 계승이라는 입장에서 보수적 성격이 강했고, 명재를 중심으로 한 牛溪學派는 개방적 학풍을 보여주었다. 이는 윤휴의 邪正 是非를 통해서도 입증된다. 또한 우암학파의 가치적 定向은 의리에 있었다면, 우계학파는 실용적인 특성을 갖는다. 이는 병자호란 후 主和, 斥和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며, 北伐義理와 北學派 實學의 계승적 의미를 갖는다. 성리학적 측면에서 보더라도 우암학파는 人物性同異論에서 보듯이 性理의 思辯的 탐구를 중시한 반면, 우계학풍은 敬을 중심으로 한 마음공부를 중시하였다. 이러한 양자의 학문적, 이념적 차이가 현실적 일련의 사건들과 결부되어 갈등을 증폭시켰던 것이다. 따라서 양자의 이념적 차이와 갈등은 학문의 발전을 위해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 다만 사적 감정과 정치적 이해관계로 피비린내 나는 政爭을 했던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양자의 이념적 차이, 학문적 특성의 차이는 상보적 시각에서 이해 가능하며, 이를 통해 양자 갈등을 和解의 場으로 승화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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尤庵 宋時烈(1607~1689)과 明齋 尹拯(1629~1714)은 17세기 조선조에 있어서 정치적, 학문적으로 중심적 위치에 있었다. 양자는 師弟관계이면서 두 가문은 連婚관계를 통해 매우 가까운 사이였음에도 불구하고, 학문적, 정치적 갈등은 매우 심각하였다. 그것은 尤庵과 明齋의 갈등이 조선조 당쟁사의 핵심이며, 조선조 지식인 사회의 대표적인 갈등으로 인식되고 있음에서 잘 알 수 있다. 이러한 갈등의 원인을 분석해 보고, 相補的 시각에서 양자의 학문적 차이를 이해하는데 본 연구의 목적이 있다. 그런데 양자의 갈등에는 강화도사건, 황산서원모임과 동학사모임, 두 차례의 禮訟, 墓誌銘사건과 己酉擬書, 辛酉擬書 등이 직접, 간접적으로 작용했다. 특히 윤휴의 존재는 양자 갈등의 핵심이었으니, 윤선거와 윤휴의 우호적 관계가 명재에게도 영향을 미쳤고, 이로 인해 우암과 명재의 갈등이 증폭되었다. 특히 양자의 이념적, 학문적 갈등은 이러한 현상적 갈등의 내재적 요인이었다. 우암과 명재는 같은 기호유학의 뿌리를 두고 있지만, 우암은 율곡에, 명재는 우계에 학문적 연원을 두고 있다. 따라서 이들의 갈등은 율곡학파(우암학파)와 牛溪學派의 分岐이기도 하다.학문적 태도에서 보면 우암학파는 주자학과 율곡학의 계승이라는 입장에서 보수적 성격이 강했고, 명재를 중심으로 한 牛溪學派는 개방적 학풍을 보여주었다. 이는 윤휴의 邪正 是非를 통해서도 입증된다. 또한 우암학파의 가치적 定向은 의리에 있었다면, 우계학파는 실용적인 특성을 갖는다. 이는 병자호란 후 主和, 斥和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며, 北伐義理와 北學派 實學의 계승적 의미를 갖는다. 성리학적 측면에서 보더라도 우암학파는 人物性同異論에서 보듯이 性理의 思辯的 탐구를 중시한 반면, 우계학풍은 敬을 중심으로 한 마음공부를 중시하였다. 이러한 양자의 학문적, 이념적 차이가 현실적 일련의 사건들과 결부되어 갈등을 증폭시켰던 것이다. 따라서 양자의 이념적 차이와 갈등은 학문의 발전을 위해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 다만 사적 감정과 정치적 이해관계로 피비린내 나는 政爭을 했던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양자의 이념적 차이, 학문적 특성의 차이는 상보적 시각에서 이해 가능하며, 이를 통해 양자 갈등을 和解의 場으로 승화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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