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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overing a lost Genealogy : Taw Sein Ko and the Colonial Roots of ‘Myanmar Studies’
부산외국어대학교 아세안연구원 수완나부미 제3권 제2호 2011.12 pp.1-30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또세인꼬는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 식민지 버마의 지적 발전 에 지대한 영향을 남긴 중요한 인물이지만 잊혀졌던 인물이다. ‘미얀 마 연구’의 몇몇 뿌리가 식민지 시대에 있음을 고려할 때, 또세인꼬의 저작은 미얀마를 연구하고 이해하려는 오늘날의 노력에 의미하는 바 가 크다. 그는 고고학적 저술로 잘 알려져 있긴 하지만, 그의 저작과 경력을 검토해 본 결과 그는 식민지사회에서 공적 지식인으로 활약했 음을 알 수 있었다. 아시아 연구(특히 버마 연구)의 발전이 제국주의 적 틀 속에서 이루어질 때, 또세인꼬는 식민지 버마에 존재했던 혼성 적 저술전통을 따라 저술했다. 또세인꼬는 버마인의 관점이나 가장 공감할 수 있는 언어로 도회지 독자들에게 호소하는 방법과 같은 그 어느 길에서도 벗어났던 스콧, 오코너, 그리고 필딩-홀과 같은 영국학 자들의 그룹에 속한다. 또세인꼬의 저술을 연구하는 것은 식민지적 지식과 버마에 관한 영국인의 저작에 관한 연구가 유용하게 재개념화 될 수 있는 기초를 갖추는데 도움이 된다.
부산외국어대학교 아세안연구원 수완나부미 제3권 제2호 2011.12 pp.31-77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식민지하 동남아 천년왕국 운동에 대한 오늘날의 해석들은 그 주체 인 농민들을 식민주의를 개념화하고 저항하는 동기와 조건 그리고 상 징을 제공하는 토착 지식의 전수자로 간주한다. 종말론과 저항에 대 한 관심의 대부분은 농민연구나 지역연구 학자들로부터 유래하며, 이 들은 봉기에 대한 과거의 묘사들이 토착의 정신세계를 간과했거나 국 가이념을 저항세력들의 결집원리로 과대 포장한 것에 주의를 기울인 다. 천년왕국 봉기에 관한 글들에서 제공하는 해석들은 동남아 신념 체계에 관한 독립적인 관점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인식론적 측면에 서 식민지국가들을 이와 같은 전통에서 단절시키고 있다. 영국 식민 지하에서 최대의 농민반란인 서야쌍 봉기(1930-1932)는 오늘날 이와 같은 천년왕국 운동의 정수를 보여주는 사례로 간주된다. 학자들은 수천 명의 농민들로 하여금 버마인의 권위를 되찾고, 불교를 회복시 키며, 식민통치로 인해 낳은 사회-경제적 부조리를 일소시킬 그들의 왕으로 믿게 만든 한 농부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묘사하고 있다. 일련 의 반란이 미신에 의해 추동되었다고 간주한 식민지 관찰자들과는 달 리 이후의 역사가들은 그 반란이 불교를 재건하고 태평성대로 인도할 미래부처인 미륵불의 현신에 대한 믿음의 표현이라고 해석했다. 이러 한 학자들에게 서야쌍 봉기는 어떻게 동남아 사람들의 감수성이 식민 지의 사회-경제적 압력 속에서도 지속되었으며, 상좌불교의 예언이 토착의 문화적 토양에 얼마나 깊이 내재해 있는지를 말해주는 사례였 다. 경험적 관점에서 본 글은 서야쌍 봉기의 근원을 재해석함으로써 천년왕국 봉기에 관한 글들이 대부분 식민지적 문서화 작업과 종교를 과장되고 세속화된 화술로 믿게 하려고 지역연구자들의 산물임을 밝 히고 있다. 개념적 관점에서 본고는 버마에서 일어난 천년왕국 운동 의 역사적 구성에 대한 식민주의의 역할을 보다 면밀히 관찰하였다. 또한 식민지법, 학문, 그리고 식민지하 버마 농촌에서 발생한 종교적 저항에 대한 우리들의 이해를 상호 연결하는 인식론적 관계를 탐구했 다. 그리하여 본고는 천년왕국 해석이 이 시기에 공존했던 다른 유형 의 불교정치적 형태를 어떻게 왜곡했는가를 밝히고 있다.
Rethinking Cultural Identity and its Drivers in Present-Day Indonesia : A Case Study of the Dayak
부산외국어대학교 아세안연구원 수완나부미 제3권 제2호 2011.12 pp.79-123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문화정체성은 실로 구성적 성격을 지닌 개념으로, 문화정체성의 구 성은 상황 (그리고 역사)과 상념 사이에서 발생하는 역동적인 상호작 용의 결과에서 비롯된다. “다약인”이라는 개념의 형성 및 구성에 있어 서도 서로 다른 다양한 힘이 작용해왔다. 식민 지배기에 탐험가들과 학자들은 서구적 방식으로 “다약인”의 구성을 구체화시켰고, 이것은 해방 이후 인도네시아 국가의 향방에 순차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다 약인 정체성의 구성과 그 동인에 관한 논의는 머리사냥, 긴 형태의 가 옥들, 종교 등과 같이 다약인을 그려내는 특정한 이미지에 다만 집중 하고, 다약을 그려내는 이러한 이미지들이 오늘날 다약인 정체성과 어떠한 연관성을 지니는가에 관한 논의이다. 과거 머리사냥 풍습에 관해서도 다약인에게 있어서 머리사냥의 의미와 관례를 충분히 설명 할 수 있는 분석이 현재 전무하다. 다약인 사회의 또 다른 주요 특징 은 독특한 주거양식에서 찾을 수 있다. 주거양식은 대부분의 문헌에 서 추정해온 것처럼 독특한 것이 아니라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다약인 은 껜야인처럼 종종 연립가옥(라민)을 그들의 중심문화로 여긴다. 깔 리만딴 동부에 위치한 롱메카에서 문화와 청년축제가 개최되었는데 이 축제의 전체 진행은 자문화의 재건과 밀접하게 연관되어있다. 2006년에 끄라얀에서 개최된 이와 유사한 한 문화축제는 페뭉 에라 우 펜제라니(Pemung Erau Pengerani)라고 불린다. 종교 역시 다약인 의 인류학적 설명에 있어서 주요 특징으로, 다약인은 보르네오에 거 주하는 비(非)무슬림교도들로 정의된다. 과거에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 들이 정령신앙을 숭배했으나, 다약인들 사이에서 기독교로의 대규모 개종이 일어나면서 다약인은 기독교도와 일반적으로 동일시되었다. 깔리만딴 지역의 무슬림은 다약인이 될 수 없다는 게 일반적인 생각 이다. 실로 다약인이 된다는 것은 수많은 힘들의 집합체로부터 그 구 성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Nature, Love and Enlightenment in Modern Thai Poetry
부산외국어대학교 아세안연구원 수완나부미 제3권 제2호 2011.12 pp.125-142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본 논문은 불교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태국 근대시에 표현된 자연, 사랑 그리고 계몽사상의 조화를 연구하였다. 연구주제로 태국 근대시 를 선택한 이유는 태국문학의 유산에 끼친 불교의 지속적인 영향을 조명하기 위함이다. 본 연구를 위하여 선택한 시들은 현대에도 많이 읽혀지고 있는 안칸 칼라야나퐁, 나오와랏 퐁파이봄, 파이와린 카옹 감, 그리고 삭시리 메솜수엡 등과 같은 작가의 작품들이다. 이 작가들 의 시에 표현된 공통적인 특성은 자연, 사람, 그리고 계몽사상이라는 주제들 간의 조화이다. 모든 주제들이 절묘하게 엮여져서 본래 불교 시였던 것이 인간의 보편적인 시로 변화되는 결과를 낳는다. 아라칸 칼라야나퐁은 종종 자연을 지혜와 연민을 표상하는 것으로 묘사하고, 자연에 대한 사랑을 계몽사상에 대한 도구로 주창한다. 삭시리 메솜 수엡은 자연의 단순함과 고요함을 계몽사상의 지혜를 쌓을 수 있도록 유도하는 명상적 각성을 제공하는 자아발전의 수단으로 바라본다. 이 들 근대 작가들의 교훈적인 시에 나타나는 자연, 사랑 그리고 계몽사 상의 조화는 다양성 속의 지속적인 통합으로 상징되는 동남아 문화의 불교적 유산에 대한 명백한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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