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00원
≪文心雕龍≫成于齐末今已成为学术界定说, 但此书得到当时文坛泰斗沈约的好评而行世, 估计是在书成后末未久齐梁王朝的更替时期. 刘勰死后, 陈隋之世, 天下大乱, 历近百年始至唐. 在这段时机内, 文坛, 学界对≪文心雕龍≫的评价和态度如何, 目前缺少可以征信的文献。 宋代以后, 类书, 随笔日益增多, 凡就文章论事立论时, 都不能无视≪文心雕龍≫存在. 明人对≪文心雕龍≫的关心, 可以从别的方面窥知一二. 成化十一年(1475年) ≪楚辞集注≫卷首全文摘录了≪文心雕龍․辨骚≫篇, 万历十四年(1586年) 冯绍祖校刊的≪楚辞笺注≫中 <辨骚>篇外 <声律>․<物色>等 诸篇。 在与≪楚辞集注≫原本最相近的宋端平二年(1235年刊本中就完全看不到这种现象. 明人为楚辞的读者选载了≪文心雕龍≫中有关的部分, 这种态度是非常有趣的. 现在最古的≪文心雕龍≫就是唐代写本. 梅更生作音注, 这是现存最古的注释书. 在此前后王惟俭出版了≪文心雕龍训故≫. 到了清代, 黄叔琳校订原文细加注释及若干评语. 以后又加纪昀评语行世, 直到今年还是流传甚广的≪文心雕龍≫注释。 王惟俭․黄叔琳․纪昀三人竭力使≪文心雕龍≫的理论发扬广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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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文對晩唐詩人杜牧的詠史詩, 通過與李商隱的詠史詩比較的方式, 進行了一次試探性的探討。 杜牧詠史詩的特點如下: 第一、體裁上善於運用七絶的形式, 得到了“二十八字史論”的稱譽。 第二、修辭技巧上有效地活用“飜案法”, 對已有定論的歷史問題, 提起了斬新的看法。 第三、內容上對晩唐許多的現實問題, 進行了針對性的批判, 幷且揭露了晩唐統治集團的腐敗與無能。 我認爲, 杜牧的詠史詩, 不僅是對過去歷史的評論, 而且是對晩唐現實的憤懣與警告。 從這一點, 我們可以發現, 杜牧詠史詩最大的創作動機, 反而是身爲處在動蕩的時代的一個知識分子, 要表達自己“懷才不遇”之悲感。 這就是“小李杜”兩個詩人詠史詩共通的特點之一。 晩唐前期詩壇的風氣, 主要以艶麗的唯美主義風格爲主的。 所以, 在這樣的情況下, 杜牧詠史詩表現出來的强烈的現實主義精神與眞情實感, 可以說難能可貴的。
7,300원
陈献章是明代中期理学家, 同时也是诗人和诗论家, 而且还是一位隐者。 他喜爱喝酒, 对他来说, 饮酒和写诗一样, 是他日常生活中必不可少的一部分。 因此, 在陈献章所写的二千余首诗当中, 与酒有关的约占三分之一以上。 他的饮酒诗主要以隐逸生活为背景, 按内容可以分为两大类:其一是歌咏悠然自得的隐居生活;另一个则是歌咏与知音交游或怀念知音的。 歌咏隐居生活的饮酒诗还可以细分为三个部分。 第一, 在咏菊时, 自然而然地喝酒, 这时, 常常谈及到陶渊明。 第二, 咏梅时自然地出现喝酒的场景。 第三, 歌咏隐逸的悠然自得时, 喝酒是他隐逸生活中的一个组成部分。 陈献章饮酒, 不是为了借酒消愁, 也不是为了解除怀才不遇的郁愤, 饮酒可以使他把“自然”、“自得”为主的哲学思想, 自然地表现在诗歌当中。 他晚年写的诗歌中也有流露出烦恼和孤独的, 不过这样的诗歌为数不多。 陈献章的饮酒诗里, 也有跟官吏交游的。 作为隐者, 跟这些人交游, 可以说是一种间接的社会实践。 此外, 本论文还在第四章里详细地分析了陈献章的<晩酌, 示藏用諸友>十首。 <晩酌, 示藏用諸友>十首以悠然自得为背景, 带有道家的艺术色彩, 讲述了陈献章给弟子们说出自己对文学、哲学、隐居、著述等的看法。
4,900원
본고는 이몽양의 복고문학운동도 성령파의 문학운동과 마찬가지로 어느 정도 상공업과 도시문화의 발달에 따라 발생한 시민문화의식을 반영하고 있는 면이 있으므로 당시의 문학적 인권운동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을 논증하기 위해서 쓴 것이다. 한부(漢賦), 변문(騈文), 제량시(齊梁詩)와 만당시(晩唐詩) 등은 충분히 진지하지 못한 ‘詞勝質’의 문제점을 지니고 있는데, 唐宋代의 고문운동은 이 점을 개선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先秦兩漢散文을 배워서 유가가 숭상하는 ‘達意文學’을 이룩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송대이래로 科擧에서 騈文을 응용한 八股文으로 답안을 쓰게 한 결과 많은 文官들은 ‘詞勝質’ 계통의 詩文을 벗어나지 못한 측면이 다분했다. 李夢陽의 漢、魏와 <騷>, <雅>를 배우라는 주장은 이런 글쓰기를 벗어나려 했던 것이다. 그는 ‘詞’와 ‘情’ 가운데 ‘情’을 중시하고 ‘詞’를 경시했다. 宋詩는 歐陽修와 梅堯臣 등의 平淡運動과 道學者들의 載道運動으로 인하여, 극단적 ‘雅’로 흘렀다고 할 수 있다. 명대 이학자들의 ‘性氣詩’는 송시의 이런 경향을 계승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몽양은 ‘色’론으로써 이런 ‘雅’를 비판했다. 송이래 너무나 雅化된 詩學風尙을 벗어나기 위해서 그는 唐 이전의 시를 배우는 방법을 취했던 것이다. ‘감정에 대한 중시(重情)’와 ‘인간 본연의 감정(色)’을 만족시키는 공통점, 즉 양자의 交集合이 바로 漢、魏古詩와 初盛唐近體詩였던 것이다. 필자는 이몽양이 제기한 ‘色’은 인간 본래의 본능적 심미취향에 호소하는 미적 요소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色’을 중시한 그의 고문운동은 일종의 인간성 해방운동 성격을 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속취’를 꺼리지 않았으며, 분노를 말하는 것을 거리끼지 않았다. ‘擬古’는 학습단계에서 활용한 연습 방법이었다. 이몽양의 복고시운동의 핵심은 지나치게 雅化를 강요한 종래의 대각체 또는 성기시 같은 글쓰기를 지양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불평과 사회적 주장을 힘차게 표현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필자는 ‘의고’, 또는 ‘모방’, 또는 ‘표절’이라는 어휘를 동원하여 이몽양 내지 명대 前後七子의 복고운동을 매도한 公安派 이래의 비판이 지나치다고 생각한다. 긴 안목으로 보면 이몽양과 찰자파의 고문운동은 인간성을 회복하려는 문화적 성격을 띠고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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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驥德(?~1623)은 자가 伯良이며, 절강 회계 출생으로 明代 萬曆 연간의 저명한 희곡이론가이자 희곡 작가이다. 沈璟, 呂失成과 교분이 두터웠으며 湯顯祖를 몹시 추종했다. 이로 인해 그의 희곡이론은 오강파와 임천파의 특징을 겸비했다. 그의 대표작은 <曲律>, <新校注古本西廂記>, <南詞正韻> 등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곡률>은 내용이 매우 광범위하고 종합적인 성격을 갖고 있어 명대 희곡이론의 집대성이라고 평가받는다. 본문에서는 法과 詞, 희곡구조, 희곡언어, 희곡격률, 本色과 當行, 인정 표현 등의 내용을 중심으로 <곡률>의 이론체계에 대해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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元好問(1190~1257), 字裕之, 太原秀容人. 自號遺山山人, 人們都以元遺山稱之. 元好問是一位純然的詩人, 他生在易代之際, 畢生寫詩, 以詩人的性情, 發抒了沈鬱哀怨的歌詠. 現存詩歌1400多首. 元好問的詩歌創作可分爲四個時期, 靑年期大約是十六歲到三十一歲, 這時期的主要作品是<幷州少年行>․<石嶺關所見>․<箕山>․≪論詩絶句三十首≫等等. 官宦期大約是三十二歲到四十一歲, 這時期的主要作品是<虎害>․<穎亭留別>․<宿菊潭>․<歧陽三首>等等. 羈管期大約是四十二歲到四十九歲, 這時期可以說是元好問詩歌創作的巓峰期, 主要作品是<壬辰十二月車駕東狩后卽事>․<癸巳四月二十九日出京>․<癸巳五月三日北渡三首>等等. 這類詩無論紀亂․抒憤, 基點仍在國家興亡, 不妨稱作戰亂詩. 遺民期大約是五十歲到六十八歲, 這時期的主要作品是<雁門道中書所見>․<游龍山>․<湧金亭示同游諸君>等等. 元好問的詩歌藝術成就, 從創作精神看, 元好問努力繼承了中國古典詩歌關心政治, 關懷民生, 關注現實的傳統. 從創作風格上看, 元好問的詩歌旣有李白式的豪放, 又有杜甫式的沈鬱, 也有陶潛․王維式的寧靜致遠. 元好問的近體詩, 特別是七言律詩, 律切精深, 沈鬱剛健. 元好問的古體詩, 主要是七言古體與歌行體, 風格豪放, 神思浪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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揭傒斯(1274~1344)是元代中期的著名詩人, 同虞集、楊載、範梈被評爲元詩四大家. 他在文學史上重視儒家傳統的詩敎思想, 保持溫柔敦厚的思想, 以唐詩爲理想, 强調學習詩法. 尤其特別推崇杜甫, 對杜甫的詩法提出過相當具體的分析. 他的詩廣泛學習杜甫、白居易等的社會詩、李白絶句的平易淸新以及王維、孟浩然山水田園詩的淸淡. 他的社會詩類似於杜甫三吏三別或白居易的新樂府作品, 例如有<臨川女>、<祖生詩>、<大飢行>等. 値得注目的是, 他的詩風有淸新綺麗的一面, 歷來被評爲‘三日新婦’. 似指自然而含蓄濃厚的絶句與律詩. 這類詩有<曉出順承門有懷太虛>、<夢武昌>、<寒夜>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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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文主要介紹了元代回族著名詩人薩都剌(約1280~約1346)的生平以及其作品的內容和風格。 薩都剌的生平難以確指, 衆說紛紜, 但一些基本線索可以畵出來。 字天錫, 號直齋。 答失蠻氏(回族)出身, 一說蒙古族人. 生地爲雁門. 他出身將門, 但生活貧窮. 薩都剌靑年時期奔波吳楚, 1327年進士及第. 歷任江南和河北一代小官, 都是九品至七品。 他的文學創作, 以詩歌爲主。 其內容可分爲社會詩, 宮詞, 山水詩, 懷古詩, 羈旅詩等五類。 其中成就最特出的就是反映勞動人民的生活慘狀和抨擊元代社會的黑暗現實的社會詩, 如<早發黃河卽事>, <鬻女謠>, <徵婦怨>, <過巨庸關>等, 尤其是<紀事>一詩揭露元武宗次子圖帖睦爾的纂兄位之事, 此事爲正史不載, 被稱爲‘詩史’。 在詩歌風格上薩都剌繼承了唐代詩歌的某些手法, 幷具有自己的特点, 鑄成韵味悠远的意境。 他的作品具有的藝術風格可以槪括爲淸新, 豪放, 平淡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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