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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熙朝軼事』는 高宗 3년(1866) 李慶民이 편찬한 중인층의 전기물이다. 『熙朝軼事』는 이경민이 직접 쓴 것이 아니라 기존의 서적 가운데 인용한 것이다. 각 전기의 끝에 그 출처가 밝혀져 있다. 대부분은 본문을 요약하여 옮겼지만 자신이 직접 더한 부분도 발견하였다. 이 부분에서 이경민이 어떤 의식을 가지고 『熙朝軼事』를 편집하였는지 알 수 있다. 연구결과, 이경민은 당대인들의 “天機論”, “개인의 발견”, “사상의 개방성”에 영향을 받았다. 『희조일사』는 『이향견문록』의 補遺的 차원에서 집필되었음이 분명함을 확인하였다. 『희조일사』의 편집방식 특징을 찾아보면, 크게 내용의 압축, 인명의 삭제, 본관과 지역 삭제, 원저자의 개인적 경험이나 느낌 삭제, 논찬 삭제, 『이향견문록의 補遺를 들 수 있다. 충성과 관련된 인물의 전을 살펴보면 『희조일사』는 忠과 관련된 인물들의 전에 있어서 차별화된 모습을 보인다. 『희조일사』는 『이향견문록』에는 빠진, 국가를 위해 헌신한 인물을 적극적으로 입전하였다. 또 기존에 입전된 인물이라 할지라도 그의 애국적 행위를 추가적으로 기록함으로써 이경민의 『희조일사』 입전의식이 어디에 있는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熙朝軼事" is a biography of the middle class compiled by 高宗3 years (1866). The book was not written by Lee Kyung-min himself, but was cited among existing books. At the end of each biography the source was identified. Most of them were transcribed in summary, but they also found more of their own. In this part, we can see what ritual Lee had in editing the book. According to the study, Lee was influenced by the "天機論", "discovery of individuals" and "openness of ideas" of his contemporaries. "HuijoIlsa" clearly confirmed that it was written at the level of supplement. Looking at the editorial features of "HuijoIlsa," there are many examples of compaction, removal of human names, removal of family clan and region, removal of the original author's personal experiences or feelings, removal of the editorial, and supplement of the "Ihyaungkyunmoonrock" Looking at the history of loyal characters, 'Huijo Ilsa' is differentiated in the past of the characters involved in 'Loyalty.' "Hijo Ilsa" actively participated in the role of a person who was not included in "Ihyaungkyunmoonrock," and devoted to his country. In addition, even if he is a legitimate person, his patriotism is additionally recorded to clarify where Lee Kyung-min's ceremony for entering the "HuijoIlsa" is.
[NRF 연계] 진단학회 진단학보 Vol.119 2013.12 pp.171-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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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그동안 유재건이 편찬했으나 일실된 것으로 알려진 『古今法語』라는 문헌이 일본 東洋文庫에 소장되어 있음을 확인하고, 그 편성방식을 살피고 나아가 여항문화 편집자로서의 유재건의 편찬의식을 고찰하였다. 유재건은 역대 중국의 문헌 25종과 조선 여항인의 문집 3종에서 총 357조목의 처세훈 성격의 아포리즘을 뽑아 10개의 편목으로 나누어 배치하였다. 이 편제에서 가장 중요한 특징은 『고금법어』의 10개 편목 구성이 명대 『昨非庵日纂』의 것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편제 뿐 아니라 내용 구성 면에서도 『고금법어』는 『작비암일찬』을 가장 비중을 두어 인용하였다. 인용문헌 28종은 크게 세 부류로 구분되는 바 중국 역대의 諸子書, 명청대 격언류 문헌, 그리고 18~19세기 여항인 문집으로 크게 분류된다. 유재건은 명청대의 격언류 문헌을 중심에 놓으면서도 역대의 제자서와 조선 여항인의 문집을 앞뒤로 배치하였다. 그리하여 중국뿐 아니라 조선의 목소리를 배치하는 한편 古와 今을 망라하여 다원성을 강조하는 모자이크적 彙集의 편성 방식을 취하였다. 유재건의 『고금법어』 편찬 의식은 크게 다음의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역대 제자서의 망라적 인용에서 그가 지녔던 非儒家的 언어와 새로운 사유에 대한 깊은 관심을 확인할 수 있다. 새로운 사유에 대한 유재건의 주목은 홍석주 등 19세기 경화사족이 지식의 다원성을 추구하며 제자서에 관심을 기울였던 풍조와 일정하게 조응된다고 판단된다. 다만 역대 제자서를 두루 망라하는 유연한 포용성과 아울러 『묵자』 등 비주류 제자서에 뚜렷한 선호를 보인다는 점이 유재건의 독특한 시각이라고 해석된다. 둘째, 명청대 處世訓을 집중적으로 선발함으로써 유재건이 새로운 모럴을 모색하는데 깊은 관심을 표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조선 지식인에게 존재감이 전무했던 『채근담』을 포착하고 여러 조목을 뽑은 것은 『고금법어』 편집의 중요한 특징의 하나이다. 그것은 『채근담』의 儒佛渾融的 처세관에 유재건이 공명한 결과일 것이다. 셋째, 중국 역대의 ‘法語’와 함께 조선 여항인의 진지한 인생훈을 편입시켜 나란히 배치함으로써 편집자의 주체성을 지키고, 아울러 18-19세기 여항문화의 역량을 현양시키려는 의도를 지녔다. 이런 의도는 여항문집 3종이 모두 유재건 자신과 직접적인 친분이 있는 인물의 것이라는 점에서 애초부터 면밀한 기획 하에 이뤄졌다고 판단된다. 유재건은 편집자로서 자신의 역할을 분명하게 인식했으며, 그만의 편집 스타일을 일관되게 유지했다고 평가된다. 그는 『고금법어』에서 ‘古’와 ‘今’을 휘합하고, 중국 역대의 격언과 여항인의 인생훈을 선별 편집하는 방식을 통해, 여항문인이 추구한 모럴이 일정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음을 간접적 방식으로 드러내었다. 요컨대 『고금법어』의 편찬 의도에는 오늘날의 여항문화[今]가 중국의 옛 전범[古]과 같이 더불어 竝置될 만한 것이라는 침중한 문제의식이 작용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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