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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더니즘의 包越로서 詩書畵 修行論에서의 象徵性의 역할 KCI 등재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23호 2013.12 pp.235-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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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모더니즘의 데카르트적 觀點(Cartesian Perspective)의 자기중심적 二元論에 의하여 분리되었던 인식들을 극복하기 위한 代案으로서 동아시아 삼국이 공유하고 있는 一元論的 世界觀을 詩書畵 修行論 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이는 文人들을 위한 傳統 敎育의 특성을 몸과 마음을 연결하는 수행론으로서 의 시서화의 현재적 회복을 도모하는 일이다. 이를 위하여 문화적 교육적으로서 모더니즘, 포스트모더 니즘, 동양학을 각 문화와 시대를 반영하는 시각언어인 시각미술 작품의 내용과 형식을 중심으로 비교 하고 東洋學에서 自然/神과 조화로웠던 상징성을 볼 수 있는 ‘선한 눈’의 훈련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 요약하면, 전통교육을 시서화 수행론으로 보고 자연과 인간을 분리하지 않는 일원론적 세계관 안에서 상징성을 볼 수 있는 시각의 훈련을 교육의 기본으로서 제시하고자 하였다.
The role of symbolism in Shishuhua-Poetry, Calligraphy and Painiting- Meditative Practice as Envelopment of PostmodernismThis paper researched the monistic perspective shared in East Asia centering on Shishuhua-Poetry, Calligraphy and Painiting- Meditative Practice as an alternative to overcome self-centered dichotomy of Cartesian perspective. It seeks to recover the characteristic of traditional education for East Asian literati as a theory of practice connecting body and mind in present text. For this, it compares visual arts of Modernism, Postmodernism and East Asian study reflecting the cultures of each times centering on their contents and forms. It is necessary to teach ' good eyes' in East Asian study which is harmonious with nature/spirit. In short, it proposes that the traditional education of shishuhua practice is a way to discipline in order to recover meanings of symbolic layers in visible world as a basic education.
[NRF 연계] 한국문화교육학회 문화예술교육연구 Vol.15 No.3 2020.06 pp.187-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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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유럽 남성의 데카르트적 관점은 이성적 논리를 중심으로 이분하는 사고로 인하여 자기중심적 시각의 한계를 강화한다. 동양의 근대화는 서양화에 따라 주변화되고 전통적 관점을 잃었다. 거기에 근대 교육은 문자와 청각 중심의 좌뇌적 시각의 개념화를 초래하여 좌뇌편측화된다. 본고는 시각을 중심으로 현대 한국 교육의 문제를 비판하고, 이의 극복은 오히려 전통문인교육을 시서화의 시각 훈련적 특성에 있다고 보았다. 이는 일원론적 세계관 안에서 1) 상징적으로 의미를 전달하는 가시세계와 비가시세계의 합일성, 2) 시각적 자기표현, 3) 문학, 철학 미술의 융합, 4) 매체적 특성, 5) 우뇌적 시각과 창조성으로 찾았다. 이러한 시서화는 작업 과정에서 몸과 마음이 합일하며 통관하는 특성을 시서화 수행으로 보았다. 이의 통관적 작용은 우뇌적 시각을 활용하여 이미지를 보고 그리며 모든 것을 아우르는 체현화 훈련을 한다. 이것이 이미지를 보고 활용할 줄 아는비주얼리터러시로서 시각훈련의 역할이다. 끝으로 시서화 수행의 현대적 역할은 비주얼 리터러시를 목표로 하는 “과정 중심 시각교육”이 기초교과로서의 역할을 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우리는 결코 “코기토”였던 적이 없다 : 포스트휴먼주의 관점에서 다시 보는 데카르트 이원론
[NRF 연계]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철학사상 Vol.86 2022.11 pp.87-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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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기토” 명제로 잘 알려진 데카르트의 철학은 흔히 근대적 인간 주체를 발명한 선구적인 사상으로 이해되어왔지만, 최근에는 정확히 같은 이유로 혹독한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특히, 포스트휴먼주의 사상가들은 이러한 데카르트 이원론이 인간과 비인간, 주체와 객체, 마음과 몸을 이분법적으로 또 위계적으로 구별함으로써 서구 근대의 여러 폐해를 낳았기에 이를 극복하는 것이야말로 21세기 철학의 과제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데카르트 연구자들은 이 철학자를 단순히 ‘데카르트 이원론자’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고 말하는데, 이 논문에서는 이를 받아들여 포스트휴먼주의 관점에서 데카르트를 읽는 방법을 모색해 본다. 나는 데카르트의 인간학이 통속적인 이원론보다는 포스트휴먼주의자들의 체현된 주체 개념과 더 잘 어울린다는 점을 보여주고, ‘동물 기계’에 관한 데카르트의 서술이 인간중심주의보다는 오히려 인간과 동물 그리고 기계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데 일조한다고 해석할 수 있음을 주장하면서 데카르트를 휴먼주의의 기원으로 보아 일방적으로 비판하는 것이 포스트휴먼주의 기획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상기의 논의를 종합해 나는 포스트휴먼주의가 “우리는 결코 코기토였던 적이 없다”라고 선언할 때 비로소 그 과제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으리라는 결론을 내린다.
Rene Descartes has been widely accepted as a pioneer of modern philosophy who invented the modern concept of the human subject with his famous cogito argument. Indeed, posthumanists have criticized Descartes for that it was he who brought about the disastrous consequences of modernity by forging the hierarchical dichotomies between mind and body, subject and object, and human and nonhuman. Yet, recent commentators of Descartes claimed that it is unlikely that the philosopher viewed himself as a “Cartesian dualist.” Appreciating this new approach to Descartes, I attempt to reconcile posthumanism with Cartesianism. The argument is as follows. First, Descartes’ anthropology is compatible with the embodied subject theory that posthumanists advocate. Second, the Cartesian figure of bete-machine can blur the boundaries between humans, animals, and machines. Third, blaming Descartes is of no help to the construction of an affirmative posthumanist theory. Therefore, we can say that “we have never been cogito,” rephrasing Bruno Latour’s famous the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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