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裕齋宋基冕(1882~1956) 당시 자신이 처한 시대상황을 극복하는 방안의 하나로 舊體新用이란 묘합적 사유를 제시한다. 역사적으로 고와 금의 논쟁은 변화된 현실에서 더욱 치열한 논의를 요구한다. 유신에서 신은 고와 금의 문제에서 금의 문제이다. 전통적으로 고를 중시하는 사유에는 고는 좋고 금은 나쁘다는 의식이 잠재되어 있다. 이것은 변화된 상황에서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없는 한계성이 있다. 그렇다고 신, 금만을 강조하고 고를 무시한다면 그것 또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 유재의 진단이다. 古가 體로서 임금, 도덕, 仁, 義, 經道라면 今은 用으로서 臣, 百姓, 利益, 權道에 해당한다. 여기서 유재가 이처럼 금에 해당하는 신 자체, 이익 자체, 백성 자체를 문제삼고 고민한다는 것은 변화된 현실에 대한 적극적 반응이다. 따라서 유재는 일단 구체를 말하지만 그 구체는 고답적인 구체는 아니다. 신을 행함에 있어 그 신을 어떤 방식으로 행해야 하는 가에 대한 조심스런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라 이해된다. 백성을 위하고 백성을 사랑하라는 위민과 애민 정신이 유재 경세론의 핵심이다. 이런 사유에서 임금과 백성의 관계를 설정하고 바람직한 정치가 무엇인지를 밝힌다. 그 정치론은 결국 경세론의 다른 모습이다. 유재는 변화된 시세 속에서 궁극적으로 백성을 위하고 사랑하는 것을 어떤 방식으로 행해야 할 것을 고민한다. 그것의 구체적인 큰 틀은 유체신용이고 작은 틀은 상법과 변법의 관계이고 의와 리의 관계에 대한 언급이다. 백성을 위하는 정치에서의 시중적 형평성과 공정성을 요구하는 점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런 과정에서 유재는 임금이 사리사욕을 채우는 것과 임금의 군권남용에 관한 것 등을 암암리에 비판하고 있다. 즉 백성을 사랑하는 것이 임금의 본연의 임무라고 하는 것, 과거의 현명한 임금은 백성을 위해서 노력했다는 것 등은 모두 당시 현실에서의 임금에 대한 인식이나 잘못된 정치에 대한 반성적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王權神授說이나 天授說및 君權至上主義적 사유는 들어설 곳이 없다. 尊君重民論을 강조하는 것은 당시 군주의 무능함과 잘못된 권력 남용에 대한 유재의 일침으로 역시 오늘날에도 여전히 설득력을 갖는다.
YuJae(裕齋), SongGiMyun(宋基冕) was a special disciple among GanJae(艮齋)'s disciples. YuJae's thought is geneally in confucianism. To study his thought, it may be divided various aspect. For example, confucian statecraft, philosophy, proprieties, literature, polities and confucian statecraft etc. His confucian Statecraft is very related his polities and philosophy. This article is especially focus on the confucian statecraft of YuJae SongGiMyun. YuJae’s peculiar thought is in is view on confucian statecraft htat was expressed in his longest work, ManEon(妄言). He thought that the proud political and confucian statecraft tradition Orient was to respect King and to make much of the people, and to value morals and to disregard utility. YuJae insisted that the western political thought was founded on utility disregarded by Orient. The benefit of the people was put up to the most important status. Therefore, the thought that the people are the foundation of country was developed to a new state, and the thinking culture of ancient China reached to a highest level in the history. Ancient China had the people-based tradition to value and love the people. The thinkers realized very early the importance of the people in politics. They hoped the monarch could inform benevolent domination by a benevolent heart. What he pursued was that the emperor should focus on the masses’ interests, and the emperor should make interest for the people. But he had not demonstrated the people’s political right, and the people still were the object of 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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裕齋宋基冕은 간재의 제자들 중 특이한 제자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石亭李定稷의 제자로서 간재의 말년에 그의 제자가 되었다. 그러나 석정으로 부터는 거의 성리학을 배우지 않았었기에 유재의 성리학은 모두 간재로부터 온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재의 사상은 근본적으로 유학사상인데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성리설・예설・문학론・정치론에 관한 것들이 주목된다. 성리설・예설엔 스승 간재의 영향이 절대적이라 할 수 있고 문학론・정치론엔 스승 석정의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유재의 독창적인 사상은 그의 저술 중 가장 장편인 「妄言」에 나타난 정치론에서 보인다고 할 수있다. 동양의 자랑스런 정치적 전통은 君尊民重을 기조로 함과 동시에 방법론적으로 功利를 배척하고 도덕을 중시한 데 있는 것으로 여긴다. 그런데 서양의 정치사상은 바로 동양이 꾸준히 배척해왔던 이 공리사상에 근본해 있다고 한다. 그의 華夷사상이라는 것도 결국 도덕을 높이고 공리를 배척한다는 것의 또 다른 표현에 다름이 아니다.
YuJae(裕齋), SongGiMyun was a special disciple among GanJae(艮齋)’s disciples. He had been SeokJeong(石亭)'s disciple and became GanJae's disciple when Ganjae was already too old. YuJae first learned philosophy from GanJae, for he had never been taught from SeokJeong. YuJae's thought is generally in Confucianism. To study his thought, it may be divided into four fields : philosophy, proprieties, literature and politics. Two fields in front are much influenced by GanJae, and two fields behind are much influenced by SeokJeong. YuJae's peculiar thought is in his view on poiltics that was expressed in his longest work, ManEon(妄言). He thought that the proud political tradition of Orient was to respect King and to make much of the people, and to value morals and to disregard utility. He insisted that the western political thought was founded on utility disregarded by Orient. So HuaYi(華夷) referred by him merely means that Hwa is to value morals and Yi is to value utility.
[NRF 연계] 우리한문학회 漢文學報 Vol.23 2010.12 pp.50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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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근대 호남의 문인이었던 유재 송기면(1882~1956)의 『유재집(裕齋集)』을 통해 그의 선비적 삶과 한시 작품을 고찰한 것이다. 그의 일생은 역사적 격변기에 처해 고단한 삶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는 밀려오는 문명화의 흐름 속에서 세속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고고한 선비 정신을 견지하였다. 유재의 생애는 ‘성장기(1882~1893)’ - ‘수학기(1894~1910)’ - ‘발전기(1911~1922)’ - ‘완성기(1923~1956)’를 거쳤다. ‘성장기’는 유재가 출생하여 성장한 유년기이다. ‘수학기’는 석정(石亭) 이정직(李定稷, 1841~1910)에게 나아가서 본격적으로 수학하던 청년 시기이다. 유재는 이 시기에 석정에게 경전을 비롯하여 시문과 서화, 천문과 의학 이외에도 폭넓게 공부를 하였다. ‘발전기’는 스스로 학문적 자양에 힘쓰다가 간재(艮齋) 전우(田愚,1841~1922) 에게 나아가 도학을 물었던 시기이다. 이 시기는 유재에게 학문적 발전기였다. 마지막으로 ‘완성기’는 간재선생이 죽고서 유재가 노력하여 독자적인 학문과 예술 세계를 이룩한 시기이다. 이 시기에 유재는 ‘심성(心性)’과 ‘의(義)’에 대한 학설을 바로잡고 글씨에 대한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이룩하였다. 유재의 학문과 예술세계는 스승이었던 석정 이정직과 간재 전우를 빼놓고 생각할 수 없다. 한 마디로 유재의 유학 사상은 간재 전우의 학통을 계승하여 자신의 사상을 완성하였고, 예술 세계는 석정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유재의 시적 특질은 다음과 같다. 첫째, 유재는 곧은 선비정신과 불의의 현실에 타협하지 않는 지절 의식을 시로 형상화하였다. 둘째, 유재는 틈틈이 국토를 유력하며 식민지 치하의 망국적 유민의식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것은 그의 민족의식과 함께 일제에 대한 저항의식을 표출한 것이다. 셋째, 그가 남긴 전체 작품의 절반 정도가 교유시(交遊詩)였다. 게다가 그것은 석정 이정직, 간재 전우의 문하생들과 관련을 맺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 대부분은 근대시기 호남의 문사들인데 근대 호남의 지성사를 복원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문학사적으로도 유재는 한문학이 소멸해가는 시기에 수준이 높은 한시 작품을 남겼다. 그가 남긴 작품들은 일제강점기에 나온 어느 국문 시가보다 민족의식이 깨어있는 시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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