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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1836년에 울릉도를 불법으로 침탈한 혐의로 일본 상인과 하마다번의 관료들이 처벌을 받은 사건의 진술서인 『죽도 도해 일건기』를 중심으로 사건의 본질과 독도 영유권에 대한 일본 측의 인식을 분석한 것이다. 일본 측은 이 사건을 근거로 삼아 독도에 대한 영유권 을 주장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명확한 반증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사건은 1833년과 1834 년에 일본 하마다 지방의 상인 하치에몬 일당이 울릉도에서 벌목 등을 자행하여 영리를 취한 것에 대해 당시의 일본 정부가 불법행위로 판단하여 처벌한 것이다. 두 번에 걸쳐서 한국의 영토인 울릉도를 침탈하여 목재와 해산물을 불법으로 약탈한 일본 상인들은 그 자체가 일본 의 국내법을 어긴 불법 도항이었으며, 그들의 불법행위를 묵인하거나 방조한 하마다번 관료 들의 행위 또한 에도막부의 금령을 어긴 불법행위였다. 이 사건으로 인해 하마다번의 전 번 주조차도 주민 및 가신들에 대한 관리와 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아 당시 일본의 상류사회에도 큰 충격을 준 사건이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일본 측은 하치에몬 의 진술서를 근거로 하여 독도로 건너가는 것은 불법행위가 아니었다고 주장하며, 독도에 대 한 영유권을 주장하는 근거로 삼고 있다. 그러나 이 연구를 통해 당시의 판결문에는 독도로 건너가는 것을 정당한 행위라고 용인하고 있지 않았으며, 오히려 울릉도 뿐만 아니라 독도도 한국의 영토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명확하게 입증했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이 이미 17세 기 후반에 형성된 것이었다는 것도 분명하게 했다. 그러므로 일본 국내법에 따라 처벌을 받 은 범죄자 하치에몬 일당의 진술을 토대로 한 일본 측의 주장은 그 근거를 상실한 억지 주장 일 뿐으로, 독도 영유권에 대한 일본 측의 주장은 부정당해 마땅할 것이다.

This study focuses on the Japanese perception of the sovereignty of Dokdo, focusing on the affidavit of a case where Japanese merchants and officials of the Hamadaclan were punished for illegally invading Ulleungdo in 1836. Through an analysis of this case, we can see that the Japanese claims of sovereignty over Dokdo which are currently based upon this case are precarious. In the years between 1833 and 1834 merchants from the Hamada region of Japan were making profits by logging in Ulleungdo, the Japanese government judged this as illegal and through the Hachiemon, punished them for profiting from it. The Japanese merchants who invaded Korea's territory on Ulleungdo, illegally plundered timber and seafood and on two occasions were themselves charged with illegal acts that violated Japanese domestic laws. The actions of the Hamadaclan officials who tolerated or aided their illegal activities were of the Edo Shogunate. This was an illegal act that violated the prohibition of this case. Even the former lord of the Hamadaclan was punished for failing to properly manage and supervise his residents and vassals. It was an incident that shocked Japanese high society at the time. However, Japan currently argues that it was not illegal to cross into Dokdo based upon Hachiemon's statement, and is using it as a basis for claims of sovereignty over Dokdo. Through this study, it is clear that the judgment at the time did not tolerate crossing into Dokdo as a legitimate act. Instead, it clearly proves that Ulleungdo and Dokdo were recognized as Korean territory. This study makes it clear that this perception had already been formed in the late 17th century. Therefore, Japan's claim based on the statements made by Hachiemon's party (who was punished under Japanese domestic law), is only a compelling claim and it has lost its legitimate basis, therefore Japan's claim upon Dokdo's sovereignty should be den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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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제국기의 독도/竹島 선행연구 분석 - 독도 영토문제의 본질규명을 위한 시도 - KCI 등재

崔長根

동북아시아문화학회 동북아 문화연구 제13집 2007.10 pp.509-530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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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의 학명(scientific name)으로 본 다케시마(takesima)의 실체

박선미, 윤창영, 박선주

[NRF 연계] 영남대학교 독도연구소 독도연구 Vol.32 2022.06 pp.317-331

※ 협약을 통해 무료로 제공되는 자료로, 원문이용 방식은 연계기관의 정책을 따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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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독도와 울릉도의 특산식물 학명을 비교·분석하였다. 울릉도와 독도는 역사적으로 울릉도, 무릉도, 우산도 등 시대별 표기가 다양하며, 일본인들은 17세기부터 울릉도를 죽도(竹島, 다케시마)라고 부르고, 독도를 송도(松島, 마쓰시마)라고 표기하였다. 이후 1905년 일본의 독도에 대한 강제적 영토 편입조치 이후 독도의 명칭이 죽도로 변경되었다. 울릉도의 특산식물은 37속 45종 3변종 1품종의 49분류군으로 확인되며, 독도의 특산식물은 3분류군으로 조사되었다. 이중 takesima와 관련된 종소명을 가진 특산식물은 12분류군으로 울릉도에 자생하는 특산식물은 12분류군(100%), 독도에 자생하는 특산식물은 2분류군(16.7%)으로 확인되었다. Takesima와 관련된 종소명을 가진 특산식물 12분류군 중 10분류군은 Nakai에 의해 명명되었다. 그러나 기록에 따르면 Nakai는 1917년 5월 30일부터 약 20일정도 울릉도와 울릉도 주변의 작은 섬인 죽도(竹島, 현재 대섬)을 방문하여 채집하였으나, 독도는 방문하지 않았다. 따라서 일본이 주장하는 타케시마(takesima)는 식물학적으로도 울릉도를 뜻하는 것일뿐이며, 독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This paper compared and analyzed the scientific names of endemic plants of Dokdo and Ulleungdo. Ulleungdo and Dokdo are historically marked by different eras such as Ulleungdo, Mureungdo, and Usando. The Japanese have called Ulleungdo as Jukdo(Takesima), and recorded Dokdo as Songdo(Matsushima) since the 17th century. After Japan's forced territorial annexation of Dokdo in 1905, the name of Dokdo was changed to Jukdo(Takesima). Plants endemic to Ulleungdo were identified as 37 genera, 45 species, 3 variants, 1 variety, and 49 taxa. Among them, 12 taxa were identified for endemic plants with a species epithet related to takesima, 12 taxa (100%) for endemic plants native to Ulleungdo, and 2 taxa (16.7%) for endemic plants native to Dokdo. Of the 12 taxa of endemic plants with scientific name related to takesima, 10 taxa were named by Nakai. However, according to records, Nakai visited Ulleungdo and Jukdo (now Dae Island), a small island around Ulleungdo, for about 20 days from May 30, 1917, but did not visit Dokdo. Therefore, the Japanese claim that takeshima refers only to Ulleungdo botanically, not Dokd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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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의 竹島發見 -『竹島渡海由來記拔書控』의 記錄』

권오엽

[NRF 연계] 한국일본어교육학회 일본어교육 Vol.44 2008.06 pp.217-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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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は独島を領土として編入した1905年の100周年を期して2月22日を「竹島の日」と定める条例を可決し国民と国家の関心を促した。しかし日本は過去において既に同じ主張をしていた。外務省は嘗て漁民たちが幕府の許可を得て渡海し禁止された17世紀の出来事と1905年の侵略行為、終戦以後に連合軍と結んだ条約に歴史的正統性を求めながらその所有を主張しているのである。 しかし于山島と鬱陵島などの島で構成される于山國は513年に新羅により征伐が行なわれて以来朝鮮の領土であったので、そのような正統性は認められない。日本の漁民が竹島を見顕(発見)したということは、日本がその島を朝鮮の領土と認めていた時代的認識と矛盾するものであり、1905年の一方的な領有権宣言は侵略の一環として行われたことであるため、日本が侵略行為を反省したことによりその効力は既に喪失した。今に至って帝国主義の侵略を象徴する1905年の100周年を記念し、そこに正統性を求めるということは正義と秩序を基調とする国際平和を誠実に希求するという日本の憲法の姿勢とも背馳する。そしてこのような矛盾的思考が古代以来の日本の民族精神であるという意見が出される根拠を提供するものである。 1696年に日本人の渡海を禁じた領域に竹島/松島が含まれなかったとの主張も成り立たない。松島は竹島に附属島嶼であったので、松島だけを目的地とする渡海は行われなかった。渡海を禁じられた漁民が松島へ渡海したことが無かったということがそれを立証する。かく日本が主張する全ての正統性は虚構に基づいたもので竹島を領有すべき正統性に成り得ない。またそれは国際的信頼を裏切り、侵略を正当化する恐れのある主張である。変わることなく1905年から正統性を求めることはそれを肯定、称賛することであると同時に、今後の侵略を予告するものであり、警戒を要す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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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협정에 있어서 한국의 독도 주권 확립과 일본의 좌절-일본 비준국회의 의회속기록을 중심으로-

최장근

[NRF 연계] 한국일어일문학회 일어일문학연구 Vol.74 No.2 2010.08 pp.269-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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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研究は1965年日本と韓国との間に国交が正常化した際に独島問題がどのように決定されたかを明らかにするものであった。韓国の立場は独島は固有の領土であるから領土問題は存在しないということを明確にした。独島を問題化するなら国交正常化交渉に応じないと強硬な姿勢をもって立ち向かった。にもかかわらず、日本の立場は条約文に独島が紛争地であることを明記しようと努めた。日本は自己の意図を達成するために国際司法裁判所に「竹島問題」を寄託して解決しようと韓国を脅迫することもあった。韓国はそれに応じなかった。その結果、日本は韓国に対して竹島の名称を入れての「紛争解決のための交換公文」を要求した。韓国はそれを拒否した。次に日本政府は竹島または独島という名称を使わないで懸案解決のための交換公文を作ることを要求した。韓国がそれに応じて日本の意図は達成された。それが可能になったのは日本代表と韓国代表との間で政治的妥協で独島密約が作ったからである。にもかかわらず韓国側は独島問題は含まれていないことを貫けた。それが可能であったことは歴史的根源に基づいて韓国が独島を実効支配していたからである。それゆえ日本政府は韓国に対して独島の領有権を強く主張することができない状態であった。この協定は実際独島問題において日本が譲歩したものである。日本政府はこのような事実を隠蔽するために日本国会で嘘をついた。韓国と日本との間に「竹島問題」を平和的に解決することを約束したということ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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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田村清三郎」의 죽도 영유권 조작에 관한 연구 -평화선 선언에 대응한 일본의 논리계발-

최장근

[NRF 연계] 대한일어일문학회 일어일문학 Vol.51 2011.08 pp.327-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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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研究は1952年韓国政府が独島が韓国領土であることを対外に宣言した平和線に対応して田村清三郎が造作した竹島は日本の領土である論理を考察したものである。田村が造作した論理はつぎの通りである。第1に、韓国側の朝鮮が鬱陵島を捨てたことを拾って日本が100余年間支配したといった。しかし、朝鮮は鬱陵島の人民を統治する方法として島を空島化して管理した。それは統治のやり方の問題であって領土を放棄したものではない。第2に、韓国が放棄した鬱陵島を日本が拾って支配していたので鬱陵島より日本よりの竹島は当然日本の固有領土であるといった。しかし、日本が鬱陵島を支配したことがない。朝鮮政府が空島化して管理している島にそっと入ってものを掠奪していったことは実効的管理とはいえない。第3に、日本が竹島を管理していたとき韓国は竹島のことを知らなかったといった。しかし、日本が独島を発見したのは韓国が管理していた時よりも遥かに後のことである。独島は韓国側の領土である鬱陵島から見える距離にあるしまである。第4に、近代になって日本政府は竹島が無主地であるとして国際法に基づいて領土編入措置をとって日本領土になったといった。しかし、韓国は日本より5年も先に勅令41号をもって歴史的権原に基づいて行政的措置をとって管理していた。第5に、日本は竹島にたいして領土的編入措置をとった後、海驢漁業や海驢漁業の免許書取得や漁業行政実施、鉱物採掘権取得などの措置をとったり免許者は国に税金を払ったりして実効的に管理したといった。しかし、そのときは日本が不法かつ強制的に韓国を支配していた時のことで侵略的行為で実効的支配とは言えな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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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島経営者中井養三郎氏立志傳」의 해석오류에 대한 고찰 -죽도문제연구회의 『최종보고서』비판-

최장근

[NRF 연계] 대한일어일문학회 일어일문학 Vol.40 2008.11 pp.275-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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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독도 교육의 현황과 방향성 검토

송휘영

[NRF 연계] 한국일본문화학회 日本文化學報 Vol.64 2015.02 pp.48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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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check the present condition of Japan's Dokdo education and to examine the directionality of the movement of intensified Takesima/Dokdo Education by focusing on The Final Report(2012.3), from which the implications for our Dokdo education will be deduced. The Final Report mentioned above decided to use social studies textbooks in each subject in the field. In addition, for each course ‘Exercise’, and ‘Guideline for Map’, ‘Data /Historical Materials’ including glossary are specifically presented. In addition, Takesima/Dokdo Education of Shimane Prefecture will be good example for others, and increasingly will be used in the field of school education. It is clear that the guideline of Shimane Prefecture is sure to be spread throughout the country and the number of textbooks which defines Takesima/Dokdo belonged to Japan will increase. Qualitatively and quantitatively, this trend will be reinforced in various social studies textbooks. In our side, to respond to these Japanese education based on new teaching guideline, the contents of present auxiliary textbook including description of Dokdo in social studies textbooks need to be reorganized. Reform of Dokdo education appropriate to the student's eye-level will be made in the manner of which students at each level can easily understand and be interested in Dok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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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조선 강점기 성노예제에 대한 국가책임의 해법

최철영, 송휘영

[NRF 연계] 한국일본문화학회 日本文化學報 Vol.63 2014.11 pp.387-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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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head the 50th anniversary of the Korea-Japan Settlement Agreement in 2015, the joint statement of 1,139 intellectuals of Korea and Japan proclaimed the Japan-Korea Annexation Treaty was originally "null and void" based on the 'historic justice' in 2010. And in August 2011, the Constitutional Court of Korea recognized the existence of unresolved disputes under Article 3 of the 1965 Korea-Japan Settlement Agreement. On May 24, 2012, the Korean Supreme Court reversed and remanded the original trial court’s rule that recognized the effect of a Japanese court decision, which viewed Japan’s colonial rule over Korea was legitimate and which therefore ran against the essential values of the Korean Constitution. Japanese government, however, still deny the illegality of its colonial rule and historical wrongful acts despite increasing calls from the international community. Japan's denial is against historical justice and poses a frontal challenge to the universal value of human rights. Recently, Korea and Japanese governments take steps for diplomatic negotiation. At this point, this article suggest the 'Korea-Japan Commission for Truth and Reconciliation' as a hybrid tribunal which assist the process of solving historical issues based on transitional justice. The hybrid tribunal will be helpful to start new discourses for the redress of the colonial rule in Korea and prosecution of the serious human rights crimes committed by Japan during 1910-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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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관련 외무성 홈페이지 비판 -1905년의 「무주지선점론」-

권정

[NRF 연계] 동아시아일본학회 일본문화연구 Vol.46 2013.04 pp.3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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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研究は日本外務省のホームページに掲載されている竹島領有権が果たして妥当な 史料の研究に基づいたものなのかを考察したものである。日本はこの問題に対して無主地 先拠の立場を固守している。当時どこにも所属していなかった竹島を日本が領土に編入 させたまでだという立場である。本当に当島は無主地だったのか。当時竹島での海驢漁 のためリャンコ島貸下願をだした中井養三郞がリャンコ島を朝鮮領と思っていたことから わかるように17世紀において日本政府は竹島松島は朝鮮の領土だとおもっていた。その 中井の考えを変えさせたのは肝付兼行水路部長である。かれはロシアとの戦争で戦略的に 重要な位置にあるリャンコ島を緊急日本の領土に編入させる必要にかられていたのであ る。それなのに現在日本政府は1905年の竹島編入は当時の日本の侵略主義とは何ら関 係がないと主張している。それに1905年当時すでに獨島は韓国江原道の統治下にあった という史料があるにも関わらずその存在自体を無視している。1906年3月27日竹島を視察 していた神西由太郎一行は風波によって鬱陵島に避難し、そこで訪問した郡守沈興澤に 竹島を日本領土に編入したことを一方的に告げた。これに驚いた沈は政府にこのことを報 告するが、その報告書に本郡所屬獨島との文句がはっきりと記載されている。つまり獨 島という名称で竹島はすでに韓国江原道の統治下に属していたのである。この報告書は 当時の新聞にも引用されておりたしかな史料であるが、川上健三をはじめとする日本政府は その存在自体を否定している。日本外務省の主張はこのような偏った史料選択に基づいた ものに過ぎな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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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龍福의 活動과 竹島(陵島)渡海禁止令

송병기

[NRF 연계]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동양학 Vol.43 2008.02 pp.325-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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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기 ‘「죽도 문제에 관한 조사연구」 중간・최종보고서’의 비교

김호동

[NRF 연계] 동아시아일본학회 일본문화연구 Vol.47 2013.07 pp.12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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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島根県議会では、2005年3月16日に、2月22日を「竹島の日」と定める条例を制定した。島根県は、この‘竹島の日’制定の直後の6月に「竹島問題研究会」を組織した。そのような点からみて、「竹島竹島の日」制定の直後に設けられた「竹島問題研究会」の場合、「無主地先占論」に関する理論的根拠を備えるために組職されたものと見られる。ところが、竹島問題研究会では現在、無主地先占の代わりに、独島を日本の固有領土と言いながら独島領有権が17世紀中葉に確立されたと主張する。これは「竹島問題研究会」のスタート直前の5月、村上家から「元禄九丙子年朝鮮舟着岸一巻之覚書」が公開されたため、「竹島問題研究会」ではこの新しい資料の解釈に集中するしかなかった。『第1期中間報告書』と『第1期最終報告書』における資料の収集と研究は、特にその時期に集中されており、結局のところ1905年の無主地先占論をあきらめ、17世紀中葉領有権確立説を主張するようになった。『2期中間報告書』と『第2期最終報告書』の場合、まず、江戸時代に関する研究はあまり扱うことなく、‘明治時期の竹島問題’と‘戦後の竹島問題’を全面に出して集中的な解明を試みている。第二に、固有領土論と独島の無主地先占の論理との矛盾をとり除こうとする試みが一つの特徴であるといえ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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