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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추만( ) 정지운( )의 「천명도설( )」이 어떠한 내력 을 지녔으며, 「천명도설」에는 어떠한 내용이 담겨 있는가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러나 이황과 비교해 볼 때, 성리학적인 내용이 좀 덜하다는 느낌이 든다. 정지운은 선조들이 고양( , 지금의 경기도 고양시)으로 이주해 오면서 그곳에 살았고, 죽기 전에 고향인 고양의 강위에서 밭을 갈기를 희망했던 53 세를 일기로 죽음을 맞이한다. 이러한 정지운은 사화기( )를 거쳤다. 정 지운이 조용했던 삶이 그의 「천명도설」이 후에 다른 사람의 저술로까지 여겨 지는 부침을 겪기도 하였다. 정지운의 「천명도설」의 ‘천명( )’이라는 말은 『중용( )』 1장에서 따온 것으로 천명( )과 인성( )이 같아짐을 나타낸 것이다. 즉, 하늘의 이치가 인간의 이치임을 말한 것이다. 하늘의 운행은 원( )⋅형( )⋅이( )⋅정( )이 라고 하는 4가지의 덕이 존재한다. 이러한 사덕( )을 바탕으로 하여 리기( )가 나뉘고 음양( )과 오행( )이 나뉘게 된다. 정지운은 사람과 사물이 다르게 되는 것은 기( )의 정( )⋅통( )⋅명( )⋅편 ( )⋅색( )⋅암( )의 다양한 차이점으로 보고 있다. 성( )과 정( )의 문제에 있어서는 사단( )과 칠정( )의 문제를 끌어들여 설명을 하고 있다. 그러 나 이러한 인간의 사단( )⋅칠정( )은 하늘의 사덕( )⋅오행( )과 합치된다고 한다. 정지운은 심( )이 발( )하기 전에는 선( )⋅악( )의 나뉨이 없다가 발( ) 한 이후에 선( )⋅악( )으로 나뉜다고 말하였다. 그렇다면 심( )이 발( )하게 되는 ‘의지 ’가 중요하게 된다. 인간은 바름 을 받아 태어났지만 기( ) 에는 청( )⋅탁( )⋅수( )⋅박( )의 차이에 따라 상지( )⋅중인( )⋅하 우( )로 나뉜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대로라면 인간의 모든 것은 정해져 있다는 결정론( )에 빠지게 되어 수양( )할 필요가 없어진다. 정지운은 모든 것은 자질의 문제만이 아니라고 한다. 또, 수양의 방법으로 존 양공부( ), 성찰공부( ), 경공부( )를 말한다. 그러나 이 부 분 역시 초보적인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였다. 정지운의 사상을 이황과 비교해 보면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렀다. 그러나 정지운이 그의 동생 정지림( )을 가르치기 위해 만들었던 「천명도설( )」은 퇴계철학의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This paper examined the history of “Explanation of the Diagram of Heavenly Mandate(「」)” what it contained. However, compared to the basic level of Yi Hwang( ), it did not surpass the basic level of Yi Hwang( ). He died at the age of 53, when his ancestors moved to Goyang( ), where they lived and hoped to plow the fields on the river of his hometown, Goyang ( ) before he died. These quacks have gone through. A quiet life suffered from the ups and downs of his life, which were later regarded as the writings of others. Jeong Ji-Woon( )'s ‘Tianming( )’ is derived from “Explanation of the Diagram of Heavenly Mandate(「」)” The Mean( ) chapter 1, which indicates that ‘Tianming( )’ is similar to ‘Renxing( )’. There are four different types of operation: Yian( )⋅Heng( )⋅Li( )⋅zhen( ). Based on this example, the pub is divided into two parts, and the pub is divided into two parts. Jeong Ji-Woon( ) said, “Before the dawn of Xiuyang( ), there was no Goyang( ), but after the fall of Xiuyang( ), it was divided into Shan ( ) and E( ).” Then, ‘Yi( )’ becomes important. Human beings were born by the name of the deceased, but in the name of the deceased, they were divided into two parts according to the difference between the two. However, this logic eliminates the need to be disconcerted by the determinism that all human beings are set. But it's not all because it's feng. In addition, it refers to Cunyanggongfa( ), Shengchagongfa( ), and Jinggongfa( ). However, this part has not exceeded the elementary level either. Jeong Ji-Woon ( )'s ideas remained rudimentary compared to Yi Hwa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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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실(實)’ 담론에 나타난 유교 패러다임의 변화

김윤경

[NRF 연계] 한국철학사연구 한국철학논집 Vol.75 2022.11 pp.71-110

...사상의 대응과 변화를 고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조선 후기 ‘실’ 담론 연구는 ‘실학’을 하나의 학술 사조로 이해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 근대의 실학 규정 내용을 재검토하고, 최근 실학 관련 개념사 연구를 발전적으로 확장시키는 의미를 지닌다. ‘실’ 담론의 변화양상은 일차적으로 정량적 분석, 즉 ‘실(實)’과 관련된 용어 사용 빈도의 분석으로 확인할 수 있다. 본 논고에서는 실학(實學), 실심(實心), 실사(實事), 실용(實用), 실리(實理), 실행(實行), 실덕(實德), 실정(實政), 실효(實效), 실업(實業)을 ‘실’ 담론의 주제어로 보고, 이 용어들이 국가기록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 과 개인 문집에 사용된 빈도를 검토하였다. 숙종 대 이후 국가기록에서는 실심, 실사, 실용, 실리, 실효, 실업의 사용 빈도가 눈에 띄게 증가했고, 이들은 시대 상황에 따라 의미 변화를 보였다. 이때 다른 용어에 비해 실학의 사용 빈도가 낮은 것은, 고종 연간에도 보수적인 주류 담론 내에서는 실학이 보편개념으로서 경학, 성리학의 의미로 사용되었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순종 연간 기록에서는 신학(新學)과 연동된 실학 개념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국가기록에 나타난 ‘실’ 담론의 분석과정에서 확인한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은, 각 개념의 용례가 상호 연동되기 때문에 교차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개인 문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개인 문집에서는 ‘실’ 담론을 주로 제기한 인물들을 학파별 ‧ 시대별로 배열하고, 각 저술 내 ‘실’ 담론의 사용 빈도를 비교하였다. 그 결과 학파나 시대에 따라 주로 논의한 ‘실’ 담론의 비중이 비슷한 형태로 나타난 것을 알 수 있었다. 퇴‧율 절충파나 우계 계열은 실심(實心)과 실사(實事)를, 성호학파와 북학파는 실사(實事)와 실용(實用)을, 퇴계학파와 율곡학파는 실심(實心)과 실리(實理)를 중시한 것이다. 특히 실리(實理)의 중시는 정학(正學)이나 사학(邪學)이라는 용어 사용과 함께 후기 퇴계학파와 후기 율곡학파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는 이들이 학파 간 차이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대상-서구의 물질문명-에 대응하는 논리를 구축할 필요성에 절감했음을 드러낸다. 조선 후기 ‘실’ 담론의 변화는 당대 보편이념인 도학(道學)이나 정학(正學)의 ‘수호’ 혹은 ‘재정립’의 필요에 따라, 실사구시(實事求是), 정덕이용후생(正德利用厚生)과 같은 그 하위개념의 재해석과 함께 나타났다. 이는 전환기 유교 패러다임의 변화를 반영하며, 실학을 실(實) 중시의 학풍 으로 본 관점이 단순히 자의적인 설정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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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고는 조선 후기 ‘실’ 담론의 추이와 함의 변화를 검토함으로써 전환기 유교 사상의 대응과 변화를 고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조선 후기 ‘실’ 담론 연구는 ‘실학’을 하나의 학술 사조로 이해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 근대의 실학 규정 내용을 재검토하고, 최근 실학 관련 개념사 연구를 발전적으로 확장시키는 의미를 지닌다. ‘실’ 담론의 변화양상은 일차적으로 정량적 분석, 즉 ‘실(實)’과 관련된 용어 사용 빈도의 분석으로 확인할 수 있다. 본 논고에서는 실학(實學), 실심(實心), 실사(實事), 실용(實用), 실리(實理), 실행(實行), 실덕(實德), 실정(實政), 실효(實效), 실업(實業)을 ‘실’ 담론의 주제어로 보고, 이 용어들이 국가기록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 과 개인 문집에 사용된 빈도를 검토하였다. 숙종 대 이후 국가기록에서는 실심, 실사, 실용, 실리, 실효, 실업의 사용 빈도가 눈에 띄게 증가했고, 이들은 시대 상황에 따라 의미 변화를 보였다. 이때 다른 용어에 비해 실학의 사용 빈도가 낮은 것은, 고종 연간에도 보수적인 주류 담론 내에서는 실학이 보편개념으로서 경학, 성리학의 의미로 사용되었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순종 연간 기록에서는 신학(新學)과 연동된 실학 개념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국가기록에 나타난 ‘실’ 담론의 분석과정에서 확인한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은, 각 개념의 용례가 상호 연동되기 때문에 교차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개인 문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개인 문집에서는 ‘실’ 담론을 주로 제기한 인물들을 학파별 ‧ 시대별로 배열하고, 각 저술 내 ‘실’ 담론의 사용 빈도를 비교하였다. 그 결과 학파나 시대에 따라 주로 논의한 ‘실’ 담론의 비중이 비슷한 형태로 나타난 것을 알 수 있었다. 퇴‧율 절충파나 우계 계열은 실심(實心)과 실사(實事)를, 성호학파와 북학파는 실사(實事)와 실용(實用)을, 퇴계학파와 율곡학파는 실심(實心)과 실리(實理)를 중시한 것이다. 특히 실리(實理)의 중시는 정학(正學)이나 사학(邪學)이라는 용어 사용과 함께 후기 퇴계학파와 후기 율곡학파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는 이들이 학파 간 차이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대상-서구의 물질문명-에 대응하는 논리를 구축할 필요성에 절감했음을 드러낸다. 조선 후기 ‘실’ 담론의 변화는 당대 보편이념인 도학(道學)이나 정학(正學)의 ‘수호’ 혹은 ‘재정립’의 필요에 따라, 실사구시(實事求是), 정덕이용후생(正德利用厚生)과 같은 그 하위개념의 재해석과 함께 나타났다. 이는 전환기 유교 패러다임의 변화를 반영하며, 실학을 실(實) 중시의 학풍 으로 본 관점이 단순히 자의적인 설정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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