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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와 사상』 교과서의 유교 윤리 서술 개선을 위한 분석과 제언 - 주자와 왕양명, 퇴계와 율곡 윤리 사상을 중심으로 - KCI 등재

강보승

한국윤리교육학회 윤리교육연구 제61집 2021.07 pp.55-89

...이기론과 사단칠정론을 두고 퇴계와 율곡 상호가 논쟁한 것처럼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논쟁 당사자는 퇴계와 고봉, 율곡과 우 계이다. 따라서 “16세기 후반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이기론, 사단칠정론 을 주제로 윤리 사상에 있어 중요한 논쟁을 하였는데 대표적인 것이 이황과 기대승, 이이성혼 간의 논쟁이다.”라고 별도의 설명을 제시 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주자 윤리사상에 이기ㆍ심성론이 잘 기술되어 있으므로 퇴계와 율곡의 윤리사상에서는 이기ㆍ심성론 기술을 줄이고, 퇴계ㆍ율곡 사상의 특징을 명확히 할 수 있도록 수양론 중심으로 서술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퇴계의 『성학십도』와 율곡의 『성학집요』의 내 용 체계를 활용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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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윤리와 사상』 교과서에서는 성리학을 ‘사물의 이치 규명’, 양명학을 ‘주체의 도덕성 회복’이라는 소제목 하에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사물의 이치 규명’과 ‘주체의 도덕성 회복’은 성리학과 양명학이 공통 적으로 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학습자의 피상적 이해를 방지하기 위 해 중단원 제목을 ‘사랑[仁]에 기반을 둔 질서 있는 세상을 어떻게 실 현할 수 있을까?’로 설정하고, ‘이치 탐구’와 ‘도덕성 회복’에 대한 성리 학과 양명학의 관점을 비교하여 제시하는 것을 제안한다. 또한 교과서의 주자와 왕양명 사상 서술에서 지(知)에 대한 정의가 빠짐으로 인해 선지후행, 지행병진, 그리고 지행합일을 이해하기 어렵 다. 그러므로 “주희는 논리적으로는 앎이 먼저라고 보았고, 앎 보다는 실천이 더 중요하다고 보았으며, 앎과 실천이 같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이상적인 앎과 실천의 관계로 보았다.”로 서술을 고치고, 양지의 지(知)를 기반으로 치양지와 결부하여 지행합일을 말한 것으로 왕양명 의 사상을 설명할 것을 제안한다. 퇴계의 이(理)․기(氣)에 대한 관점이 ‘이는 귀하고 기는 천하다’로 획일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이는 귀하고 기는 천하다’는 퇴계의 언급 은 그의 종지(宗旨)가 아니다. 또한 ‘이는 장수이고 기는 병졸이다’는 말도 이와 기에 관한 퇴계의 지배적 견해로 보기 어렵다. 따라서 교과 서의 ‘이귀기천(理貴氣賤)’, ‘이수기졸(理帥氣卒)’이라는 표현의 적정성 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교과서에는 이기론과 사단칠정론을 두고 퇴계와 율곡 상호가 논쟁한 것처럼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논쟁 당사자는 퇴계와 고봉, 율곡과 우 계이다. 따라서 “16세기 후반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이기론, 사단칠정론 을 주제로 윤리 사상에 있어 중요한 논쟁을 하였는데 대표적인 것이 이황과 기대승, 이이성혼 간의 논쟁이다.”라고 별도의 설명을 제시 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주자 윤리사상에 이기ㆍ심성론이 잘 기술되어 있으므로 퇴계와 율곡의 윤리사상에서는 이기ㆍ심성론 기술을 줄이고, 퇴계ㆍ율곡 사상의 특징을 명확히 할 수 있도록 수양론 중심으로 서술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퇴계의 『성학십도』와 율곡의 『성학집요』의 내 용 체계를 활용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In ethical textbooks, it compares Neo-Confucianism with Yang Myung-hak in two points of view: ‘Identifying the Reason of Things’ of Neo-Confucianism and ‘Recovering the Morality of the Subject’ of Yang Myung-hak. Both Neo-Confucianism and Yang Myung-hak, however, seek to establish the reason of things and restore the morality of the subject. Therefore, the title of the unit should be set as “How can an orderly world be realized by Jen (仁)?” and consistently present the process of developing ideas from Confucius to Yulgok to restore the morality of the subject. There is no definition of “Ji(知)” in the ideological narrative of Juja and Yangmyung. Therefore, it is difficult to understand the theory of the two leaders. Therefore, the textbook must explain that Juja said ji(知) means knowledge, and Yangmyung said Ji(知) is The Innate Moral Wisdom. The textbook states that Toegye said, “Li(理) is precious and Ki (氣) is vulgar.” However, Toegye did not refer “Li(理) is precious and Ki(氣) is vulgar” in the literal sense of the world. Also, the phrase “Li(理) is Leader and Ki(氣) must obey Li(理).” is not a reference from Toegye. Therefore, the expressions such as “Li(理) is precious and Ki(氣) is vulgar” should be removed from textbooks. Additionally, the textbook also describes Toegye and Yulgok as arguing with each other. However, the parties involved in the dispute are Toegye & Kobong and Yulgok & Ugyae. Thus, In the late 16th century, Joseon Neo-Confucianists had an important debate on ethics. The textbook should refer a separate explanation that a representative argument is the one between Lee Hwang and Kobong, Yiyi and Ugyae. Finally, the textbook, which describes as Ontology, Psychological theory, should be improved to the theory of cultivation.

2

成渾과 李珥의 理氣論

안은수

우계문화재단 우계문화재단 단행본 우계성혼의 학문과 사상 2009.01 pp.161-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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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조선시대 해주 소현서원의 운영과 위상

이경동

[NRF 연계] 한국사상사학회 한국사상사학 Vol.61 2019.04 pp.241-286

...이이(李珥, 1536~1584)가 해주에 건립했던 강학처인 은병정사(隱屛精舍)를 모태로 김장생, 박여룡 등 이이의 문인들에 의해 건립된 서원이다. 이이를 배향한 최초의 서원이며, 지역명을 따서 석담서원(石潭書院)으로 병칭되었다. 은병정사는 1610년 ‘소현’으로 사액되면서 학파의 중심 서원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사액 이후 소현서원은 문인계(門人契)의 제정, 『율곡집(栗谷集)』의 간행과 같은 직접적인 활동을 통해 학파의 중심지로서 위상을 공고히 할 수 있었고, 소현서원의 제향과 강학은 황해도 인근에 건립되었던 서원들의 모델이 되었다. 소현서원은 1586년 이이의 유지를 받들어 문인들이 주자사(朱子祠)를 건립하여 주희, 조광조, 이황을 배향한 이후 이이, 성혼, 김장생, 송시열을 추향하였다. 추향의 과정은 추향인물들의 문묘종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우・율 문묘종사의 과정에서 17세기 중반 성혼이 추향되었고, 김장생과 송시열은 각각 문묘에 종사된 이후 소현서원에 추향되었다. 이러한 과정은 서인・노론계 인사들의 주도로 진행되었다. 17세기 후반 송시열을 중심으로 노론계 문인들은 이이를 ‘동방의 주자(朱子)’로 인식하며 주희-이이-김장생으로 단일화된 도통론을 구축하고자 하였다. 대체로 이러한 과정은 이기론이나 격물설과 같은 성리설(性理說)과 관련되어 있었지만, 소현서원 또한 제향과 이이의 강학처라는 의미로 인해 도통론과 연계되어 있었다. 소현서원은 주희가 강학했던 백록동서원이나 무이정사와 비교되며 조선의 대은병(大隱屛)으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노론계 문인들은 제문(祭文)・시문(詩文)・기행문 등 다양한 문학작품을 남기면서 자신들이 소현서원에 방문하여 느낀 사항들을 기록하였다. 송시열은 17세기 후반 이이의 「고산구곡가」를 차운(次韻)한 「고산구곡시(高山九曲詩)」를 그의 문인들과 함께 작성하며 소현서원과 그 주변의 구곡(九曲)을 관념화시키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이와 함께 「고산구곡도(高山九曲圖)」와 같은 회화 작품도 노론계를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제작되면서 자신들이 관념화한 이이와 소현서원의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구현했다. 이 과정에서 소현서원은 율곡학파계열 인물들이 필수적으로 방문하는 명승지로 정착되었다. 학파 차원 뿐만 아니라 조정에서도 소현서원은 이이를 배향하는 최초의 서원으로서 주목되었다. 소현서원에 대한 국가 차원의 관심은 다른 사액서원과 마찬가지로 치제(致祭)와 서책을 하사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이루어졌으며, 이외에 묘정비(廟庭碑)의 건립 등과 같은 조치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은 17세기 후반 문묘종사 이후 선정(先正)으로서 이이의 위상 확립과 연관되어 있었다. 18세기 영조와 정조를 비롯한 이후의 국왕들은 선정(先正)이나 정학(正學)의 상징으로서 이이의 표상을 강조하며, 소현서원을 이이와 동일시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소현서원은 학파 뿐만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도 위상이 확립되면서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서원의 하나로 자리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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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서원(紹賢書院)은 이이(李珥, 1536~1584)가 해주에 건립했던 강학처인 은병정사(隱屛精舍)를 모태로 김장생, 박여룡 등 이이의 문인들에 의해 건립된 서원이다. 이이를 배향한 최초의 서원이며, 지역명을 따서 석담서원(石潭書院)으로 병칭되었다. 은병정사는 1610년 ‘소현’으로 사액되면서 학파의 중심 서원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사액 이후 소현서원은 문인계(門人契)의 제정, 『율곡집(栗谷集)』의 간행과 같은 직접적인 활동을 통해 학파의 중심지로서 위상을 공고히 할 수 있었고, 소현서원의 제향과 강학은 황해도 인근에 건립되었던 서원들의 모델이 되었다. 소현서원은 1586년 이이의 유지를 받들어 문인들이 주자사(朱子祠)를 건립하여 주희, 조광조, 이황을 배향한 이후 이이, 성혼, 김장생, 송시열을 추향하였다. 추향의 과정은 추향인물들의 문묘종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우・율 문묘종사의 과정에서 17세기 중반 성혼이 추향되었고, 김장생과 송시열은 각각 문묘에 종사된 이후 소현서원에 추향되었다. 이러한 과정은 서인・노론계 인사들의 주도로 진행되었다. 17세기 후반 송시열을 중심으로 노론계 문인들은 이이를 ‘동방의 주자(朱子)’로 인식하며 주희-이이-김장생으로 단일화된 도통론을 구축하고자 하였다. 대체로 이러한 과정은 이기론이나 격물설과 같은 성리설(性理說)과 관련되어 있었지만, 소현서원 또한 제향과 이이의 강학처라는 의미로 인해 도통론과 연계되어 있었다. 소현서원은 주희가 강학했던 백록동서원이나 무이정사와 비교되며 조선의 대은병(大隱屛)으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노론계 문인들은 제문(祭文)・시문(詩文)・기행문 등 다양한 문학작품을 남기면서 자신들이 소현서원에 방문하여 느낀 사항들을 기록하였다. 송시열은 17세기 후반 이이의 「고산구곡가」를 차운(次韻)한 「고산구곡시(高山九曲詩)」를 그의 문인들과 함께 작성하며 소현서원과 그 주변의 구곡(九曲)을 관념화시키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이와 함께 「고산구곡도(高山九曲圖)」와 같은 회화 작품도 노론계를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제작되면서 자신들이 관념화한 이이와 소현서원의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구현했다. 이 과정에서 소현서원은 율곡학파계열 인물들이 필수적으로 방문하는 명승지로 정착되었다. 학파 차원 뿐만 아니라 조정에서도 소현서원은 이이를 배향하는 최초의 서원으로서 주목되었다. 소현서원에 대한 국가 차원의 관심은 다른 사액서원과 마찬가지로 치제(致祭)와 서책을 하사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이루어졌으며, 이외에 묘정비(廟庭碑)의 건립 등과 같은 조치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은 17세기 후반 문묘종사 이후 선정(先正)으로서 이이의 위상 확립과 연관되어 있었다. 18세기 영조와 정조를 비롯한 이후의 국왕들은 선정(先正)이나 정학(正學)의 상징으로서 이이의 표상을 강조하며, 소현서원을 이이와 동일시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소현서원은 학파 뿐만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도 위상이 확립되면서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서원의 하나로 자리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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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보는 두 개의 시선, 구봉성리학과 양명심학

김세정

[NRF 연계] 한국양명학회 양명학 Vol.68 2023.03 pp.63-102

...이이, 성혼 등에 비해 제대로 주목을 받지 못했던 송익필(宋翼弼, 1534~1599)은 2010년대 들어 구봉문화학술원을 중심으로 연구가 활성화되면서 그의 생애와 교우 관계는 물론 성리학, 예학, 수양론, 경세사상, 문학사상, 예술 등 다각도에서 입체적으로 조망되고 있다. 그럼에도 성리학 안에서의 비교연구는 물론 타 학문과의 비교연구가 매우 부족하다. 비교연구는 그 사상이 갖고 있는 특성을 드러내는 데 있어 효과적일 뿐만 아니라, 비교과정에서 두 사상의 융ㆍ복합을 통해 새로운 사유의 길을 열어갈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에 본 논문에서는 송익필의 성리학과 왕수인(王守仁, 1472~1528)의 심학, 즉 구봉성리학과 양명심학을 비교하였다. II장에서는 송익필과 왕수인의 우주관에 관해 고찰하였다. 구체적으로 송익필의 이기론적 우주관과 왕수인의 천지만물일체론적 우주관을 다루었다. 그리고 III장에서는 두 사람의 인간관과 심성론에 관해 논의하였다. 이기론에 근거한 성즉리설을 바탕으로 인간심성론을 펼치는 송익필과 천지만물일체설에 근거한 심즉리설(心卽理說)과 치양지설(致良知說)을 바탕으로 인간심성론을 펼치는 왕수인의 인간관을 다루었다. 마지막 IV장에서는 II과 III장에서 다룬 내용을 중심으로 구봉성리학과 양명심학을 비교하면서 두 사상의 다름과 두 사상이 지닌 의의에 대해 살펴보았다. 사회가 다원화되고 사상의 다양성이 존중되는 오늘날에 있어, 유학사상 안에서의 다양성, 예컨대 구봉성리학과 양명심학과 같이 서로 다름은 유학의 발전에 긍정적 기여를 할 수 있다고 본다. 서로 다름이 만나 과거로의 회귀가 아닌 새로운 창조의 길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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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16세기의 대표적인 성리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면서 이황, 기대승, 이이, 성혼 등에 비해 제대로 주목을 받지 못했던 송익필(宋翼弼, 1534~1599)은 2010년대 들어 구봉문화학술원을 중심으로 연구가 활성화되면서 그의 생애와 교우 관계는 물론 성리학, 예학, 수양론, 경세사상, 문학사상, 예술 등 다각도에서 입체적으로 조망되고 있다. 그럼에도 성리학 안에서의 비교연구는 물론 타 학문과의 비교연구가 매우 부족하다. 비교연구는 그 사상이 갖고 있는 특성을 드러내는 데 있어 효과적일 뿐만 아니라, 비교과정에서 두 사상의 융ㆍ복합을 통해 새로운 사유의 길을 열어갈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에 본 논문에서는 송익필의 성리학과 왕수인(王守仁, 1472~1528)의 심학, 즉 구봉성리학과 양명심학을 비교하였다. II장에서는 송익필과 왕수인의 우주관에 관해 고찰하였다. 구체적으로 송익필의 이기론적 우주관과 왕수인의 천지만물일체론적 우주관을 다루었다. 그리고 III장에서는 두 사람의 인간관과 심성론에 관해 논의하였다. 이기론에 근거한 성즉리설을 바탕으로 인간심성론을 펼치는 송익필과 천지만물일체설에 근거한 심즉리설(心卽理說)과 치양지설(致良知說)을 바탕으로 인간심성론을 펼치는 왕수인의 인간관을 다루었다. 마지막 IV장에서는 II과 III장에서 다룬 내용을 중심으로 구봉성리학과 양명심학을 비교하면서 두 사상의 다름과 두 사상이 지닌 의의에 대해 살펴보았다. 사회가 다원화되고 사상의 다양성이 존중되는 오늘날에 있어, 유학사상 안에서의 다양성, 예컨대 구봉성리학과 양명심학과 같이 서로 다름은 유학의 발전에 긍정적 기여를 할 수 있다고 본다. 서로 다름이 만나 과거로의 회귀가 아닌 새로운 창조의 길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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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봉 송익필 심론의 합리성과 적의성에 대한 연구

전성건

[NRF 연계]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유학연구 Vol.62 2023.02 pp.27-50

...성혼, 율곡 이이의 외우(畏友)로서 학문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였던 구봉 송익필의 심론(心論)을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작성된 것이다. 그동안 철학 분야에서의 그에 대한 연구는 태극론과 이기론, 사단칠정론과 인심도심론, 그리고 수양론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이기(理氣)의 발현을 공발(共發)로 볼것인가, 일발(一發)로 볼 것인가 등 다양한 논의가 진행되었고, 율곡의 인심도심종시설(人心道心終始說)을 비판한 구봉의 학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도 함께 진행되었으며, 그의 수양론을 직사상(直思想)으로 이해해도 좋은지 등에 대한 논의도 진행되었다. 본 논문은 이러한 다양한 문제에 대한 논의를 그의 심론을 중심으로 살펴볼 것이다. 기왕의 연구는 이기론과 사단칠정론 그리고 인심도심론과 수양론 등 각각의 관점에서 그의 주장을 고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본 논문에서는 이상의 연구를기반으로 하되, 그의 마음에 대한 이론, 즉 심론(心論)을 중심으로 기왕의 논의를 수렴해서 살펴보려고 한다. 그 결과, 그의 성리학 이해는 통합적 사고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수 있었다. 여기서 통합적 방식이란 합잡(合雜)이란 개념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기(理氣)의 합발(合發), 사단칠정(四端七情)의 유파(流派), 인심도심(人心道 心)의 소장(消長)이 바로 그것이고, 그의 수양론은 직(直)을 기반으로 한 주정주의(主靜主義)적 경사상(敬思想)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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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우계 성혼, 율곡 이이의 외우(畏友)로서 학문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였던 구봉 송익필의 심론(心論)을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작성된 것이다. 그동안 철학 분야에서의 그에 대한 연구는 태극론과 이기론, 사단칠정론과 인심도심론, 그리고 수양론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이기(理氣)의 발현을 공발(共發)로 볼것인가, 일발(一發)로 볼 것인가 등 다양한 논의가 진행되었고, 율곡의 인심도심종시설(人心道心終始說)을 비판한 구봉의 학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도 함께 진행되었으며, 그의 수양론을 직사상(直思想)으로 이해해도 좋은지 등에 대한 논의도 진행되었다. 본 논문은 이러한 다양한 문제에 대한 논의를 그의 심론을 중심으로 살펴볼 것이다. 기왕의 연구는 이기론과 사단칠정론 그리고 인심도심론과 수양론 등 각각의 관점에서 그의 주장을 고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본 논문에서는 이상의 연구를기반으로 하되, 그의 마음에 대한 이론, 즉 심론(心論)을 중심으로 기왕의 논의를 수렴해서 살펴보려고 한다. 그 결과, 그의 성리학 이해는 통합적 사고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수 있었다. 여기서 통합적 방식이란 합잡(合雜)이란 개념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기(理氣)의 합발(合發), 사단칠정(四端七情)의 유파(流派), 인심도심(人心道 心)의 소장(消長)이 바로 그것이고, 그의 수양론은 직(直)을 기반으로 한 주정주의(主靜主義)적 경사상(敬思想)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This paper is written with the aim of examining the Neo-Confucianism of Kubong Song Ik-pil, who considered and discussed academic and political issues together as close friends with Woogye Sung-hon and Yulgok Yi I. Until now, research on Kubong’s Writings in the field of philosophy has been conducted focusing on the Great Ultimate theory, the theory of principle and matter, the theory of four sprouts and seven emotions, the theory of physiological and moral mind, and the theory of cultivation. Various discussions were held, such as whether to view the expression of principle and matter as a common or a single expression, and how to understand Kubong's theory of criticizing Yulgok's physiological and moral mind being the end and the beginning of each other, and whether it is good to understand his cultivation theory as a straightforward idea. As a result, it can be seen that his understanding of Neo-Confucianism is proceeding in an integrated way of thinking. Here, the integrated method can be expressed as the concept of a combination. These are the unity of principle and matter, the school of division seven emotions, and the collection of physiological and moral mind’ rise and fall theory, and his cultivation theory can be said to be a still and awake mind cultiv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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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재 윤증의 성리설 -인심도심론을 중심으로-

남지만

[NRF 연계] 한국고전번역원 민족문화 Vol.37 No.37 2011.06 pp.63-84

...성혼과 율곡 이이의 학문을 계승한 17세기의 성리학자로, 우계 성혼의 외증손으로 태어나 가학을 통하여 우계의 학문계열에 속했고, 우암 송시열 문하에서 수학하여 율곡-사계-우암계열의 영향을 모두 받았다. 우계는 퇴계의 사단칠정론의 경향을 계승하였기에 윤증은 퇴계-우계-노서 계열의 학문적 역향 속에 있었다. 윤증이 퇴계의 설을 수용하지만, 율곡의 기발일도설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호발설을 계승하는 퇴계학파들의 학자들과는 차이가 있다. 윤증이 理의 주재성을 강조하여 도심은 리가 주도[理爲用事] 한다는 표현을 쓰기는 하지만 율곡학파의 기발일도론은 벗어나지 않고 있다. 이는 퇴계학파는 감정의 발출을 리를 중심으로 설명하여 나가고, 율곡-우계 계열은 기를 중심으로 설명하는 사상의 전개과정에서 우계-율곡 계열의 바탕을 벗어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리의 주재성을 중심으로 학자들을 배열해보면 호발설을 주장하는 퇴계학파의 학자들이 가장 리의 주재성을 강조하고, 다음으로 윤증(소론)이 있으며 그 다음으로 김창협(낙론)이 자리를 차지하고, 한원진(호론)이 자리한다 하겠다. 곧 윤증은 율곡의 이기론을 바탕으로 하면서, 우계를 통하여 퇴계의 사상을 계승한 서인계 성리학자로 위치 지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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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재 윤증은 우계 성혼과 율곡 이이의 학문을 계승한 17세기의 성리학자로, 우계 성혼의 외증손으로 태어나 가학을 통하여 우계의 학문계열에 속했고, 우암 송시열 문하에서 수학하여 율곡-사계-우암계열의 영향을 모두 받았다. 우계는 퇴계의 사단칠정론의 경향을 계승하였기에 윤증은 퇴계-우계-노서 계열의 학문적 역향 속에 있었다. 윤증이 퇴계의 설을 수용하지만, 율곡의 기발일도설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호발설을 계승하는 퇴계학파들의 학자들과는 차이가 있다. 윤증이 理의 주재성을 강조하여 도심은 리가 주도[理爲用事] 한다는 표현을 쓰기는 하지만 율곡학파의 기발일도론은 벗어나지 않고 있다. 이는 퇴계학파는 감정의 발출을 리를 중심으로 설명하여 나가고, 율곡-우계 계열은 기를 중심으로 설명하는 사상의 전개과정에서 우계-율곡 계열의 바탕을 벗어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리의 주재성을 중심으로 학자들을 배열해보면 호발설을 주장하는 퇴계학파의 학자들이 가장 리의 주재성을 강조하고, 다음으로 윤증(소론)이 있으며 그 다음으로 김창협(낙론)이 자리를 차지하고, 한원진(호론)이 자리한다 하겠다. 곧 윤증은 율곡의 이기론을 바탕으로 하면서, 우계를 통하여 퇴계의 사상을 계승한 서인계 성리학자로 위치 지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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