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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鶴峯 金誠一 시에서의 ‘屈騷’의 의미 KCI 등재

정일남, 안해숙

동아시아고대학회 동아시아고대학 제34집 2014.07 pp.105-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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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0원

학봉 김성일은 조선조 시기 보기 드문 충신이다. 그만큼 그의 시는 ‘屈騷’와 관련이 밀접하다. 본고는 이와 같은 상황을 감안하여 그의 시문학의 ‘굴소’ 수용 및 그 의미를 굴원 관련 故事를 비롯하여 <離騷>・<漁父> 등 초사 작품의 수용 양상을 통해 고찰하였다. 우선 굴원이 사망한 날을 用事로 사람들이 國界가 없이 충신을 기리고 있음을 묘사하였고, 굴원의 추방을 슬퍼하는 것으로 자신의 심경을 기탁했다. <이소>와 관련해서는 작품에 서린 한과 처절함을 드러냄과 동시에 그것으로 스스로의 심적 갈등을 표출했고, 작품을 읊는 것으로 심중의 고민을 해소하고자 하였다. <漁父>를 언급한 시에서는 굴원의 고결한 인격에 동조했으며, 작품의 요소를 들어 잠시나마 隱居 및 자연 친화 성향을 나타냈다. 기타 작품의 수용에서는 <橘頌>・<卜居>・<招魂>・<九辯> 등을 직간접적으로 거명하면서, 그것을 시인의 사상정서를 표출하는데 이용했다. 평생 우국우민의 삶을 살다 간 학봉이지만 이상의 고찰을 통해 그에게서 가끔씩 나타나는 出處의 갈등과 정치생활에서의 고민을 엿볼 수 있었다. 강하고 방정한 기품, 곧고 꿋꿋한 기질, 민첩하고 호탕한 재주, 비범한 志趣, 정치 고민 등은 학봉이 초사를 수용할 수 있었던 主因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굴소’와 학봉의 인격은 상호 택스트성이 가능하다고 하겠다.

Hakbong(鶴峯) Kimsungil(金誠一) was a rare loyalist in the Chosun(朝鮮) dynasty and also his poetries are closely related to Chu Yuan's Cho-sa(屈騷). This paper is in consideration of that, studies his poetic literature's acceptance aspects and the meanings of Chu Yuan's Cho-sa by studying the uses of Chu Yuan's stories and “Li-sao(離騷)" in his poetries. First of all, he mentions Chu Yuan's death to assert that people are also paying their respects to the loyalists and mainly deposits his mind. He expresses emotional conflicts and tries to solve his inner troubles by using “Li-sao". He also sympathizes Chu Yuan's virtuous personality through “Yu-fu(漁父)", and indicates his tendency of retirement and nature friendship. Through the consideration, we can make the conclusion that Chu Yuan's Cho-sa and Hakbong's personality has intertextuality and can also get a sense of Hakbong's conflicts between official career and retirement as well as his trouble in government position.

2

4,800원

3

홍길주 <숙수념>의 세계 -사대부적 교양의 상상력-

김철범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17집 2003.06 pp.3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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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00원

4

The Landscape Garden Culture of the Hanyang Kyŏng Hwa Sa Jok (京華士族) of Late Chosŏn, as Exemplified by Kim Cho-sun (金組淳)

박희성, 서영애

[NRF 연계] 성균관대학교 유교문화연구소 Journal of Confucian Philosophy and Culture Vol.19 2013.02 pp.5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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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olitical, economical, and social importance of the Capital Hanyang pervaded the late Chosŏn Dynasty. Kyŏng Hwa Sa Jok(京華士族), government officials and intellectuals who lived in Hanyang and suburbs, freely exchanged knowledge regardless of political factions and had tendency to pursue practical and rational cause. Under the influence of China, various literary tastes and collecting culture, which were related to the taste of the Chinese scholars,were in vogue. Garden culture, prevalent among the Kyŏng Hwa Sa Jok, also parallels that of the Chinese scholars, for it represented the desire to be secluded while remaining to be power elites. However, instead of making artificial gardens, Kyŏng Hwa Sa Jok borrowed natural landscape into the garden and appreciated it. And the surrounding landscape of Hanyang, where beautiful landscape harmonized with cityscape, enabled it. At their residences located at the foot of mountains adjacent to the royal palace, they had chance to appreciate various features of landscape and made a rigorous and simple living space based on the Confucian order. The life of Kim Cho-sun, a representative man of power in the late Chosŏn Dynasty as well as a member of Kyŏng Hwa Sa Jok, reveals this characteristic. He was magnanimous and liberal man to make a friendship regardless of age and political factions. Every part of his residence Okhojŏng reflects Confucian dignity and reveals Taoist seclusion culture.

5

韓國의 ‘楚辭’ 受容 樣相 硏究

신두환

[NRF 연계] 한국한문고전학회 한문고전연구 Vol.32 No.1 2016.06 pp.25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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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중국 2014년 중국 남통대학 초사연구중심에서 개최한 국제학술대회에서 한국 역대의 초사 수용 양상에 대해 발표해 주기를 요구받고 작성된 논문이다. 이 논문의 목적은 한국의 한문학 작품 속에 다양하고 폭넓은 楚辭의 수용 양상을 고찰하여 우리한문학의 위상을 해외에 소개하고 정립하고자 한 것이다. 초사는 세계문학사로 볼 때 동아시아의 고대 시가의 근원이 되는 시가문학의 보고이다. 초사는 옛날 초나라 중국 남방 문학의 고결한 선비정신과 忠臣戀主의 관료의식은 한국 선비들의 귀감이 되었고 이소를 비롯한 초사는 한국 선비들의 필독서였으며 한국 고대의 교육과정 중에 필수 교과목에 들어 있었다. 한국의 문사들은 어려서부터 초사를 잘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었다. 楚辭는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한반도에 소개되어 인용되기 시작했다. 楚辭는 『文選』, 『史記』, 『朱子大全』, 『古文眞寶』 등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하여 한반도에 유입되었으며 삼국시대부터 근세에 이르기 까지 오랜 기간 동안 楚辭는 한국한문학 장르 전반에 걸쳐서 다양하게 수용되고 있었다. 초사에 대한 탐독의 범위는 「이소」, 「천문」, 「원유」, 「구장」, 「구가」 등 초사의 25편 전편에 까지 미치고 있었으며 초사의 전편의 용어들이 조선의 시가에 다양하게 그 향기를 발하고 있는 것에서 그것이 증명된다. 그 수용의 양상은 주로 시구를 찾아 인용하기도 하고, 초사를 바탕으로 琢句하는 방법으로 새로운 시어를 재창조하기도 하고, 초사의 형식에 가탁하여 아예 새로운 초사를 짓기도 하였다. 조선의 문사들에게 초사는 문학의 방편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한국에서 굴원을 비롯한 초사의 작가의식은 유교적인 사상의 기초 위에 이해되었고, 굴원처럼 고결하게 行吟澤畔하며 자기의 울분을 자연에 가탁하여 자유롭게 구사한 비유와 상징은 조선사인의 강호가도와 산수시가에 많은 영향을 주었으며, 조선 사인들의 유배시가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조선의 문예작품에는 초사의 주옥같고 향기로운 언어들이 앙금처럼 녹아 있었다.

6

楚辭 <招魂>의 文化的 位相과 朝鮮의 受容樣相

신두환

[NRF 연계] 국제언어문학회 국제언어문학 Vol.44 2019.12 pp.9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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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屈原이 지은 초사 <초혼>에 나타난 문화적 위상과 조선의 수용 양상을 중심으로 연구한 논문이다. 이 작품 속에는 영혼이 향유하는 사후세계의 다양한 문화가 독특하게 소개되고 있어서 흥미롭다. 초사 <초혼>은 문화의 원형과변주의 시각에서 자세히 관찰하면 동양 고대의 문화연구의 보고요 심연이다. 이것은 대부분 중국 전국시대의 생활상을 반영하는 풍부한 상상력이라서 더욱 의미가 있어 보인다. 초사 <招魂>은 초나라의 샤머니즘을 비롯한 당대의 주거문화, 음식문화, 음악문화, 놀이문화 등, 중국 고대의 문화가 풍성하게 소개되어 있어서 인간의 죽음과 관련된 문화의 기원이 되고 있다. 이것은 동양 역사상 사후세계 다양한 문화 향유에 대한 최초의 창의력이었으며 사의 찬미에 대한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 주었다. 이것은 후대로 오면서 상례문화로 발전하였으며 한국을 비롯한 동양의 세계로 퍼져 나갔다. <초혼>은 후대 동아시아 문인들에게 흥미로운 작품으로 읽히면서 최근까지도 초혼의 주제의식은 다양한 장르의 문학작품을 비롯하여 영화, 대중가요 등 엔터테인먼트의 다양한 문화콘텐츠로 확산되고 있다. 초사 <초혼>은 碑銘과 祭文을 비롯한 인간의 죽음과 관련된 다양한 문화와 문학 작품 속에 수용되고 확산 되면서 동아시아의 碑誌類 등 다양한 예술 작품 속에 투영되어 있다.

7

어촌 심언광의 「차이소경(次離騷經)」에 나타난 ‘초사(楚辭)’의 미의식

신두환

[NRF 연계] 연민학회 연민학지 Vol.41 2024.02 pp.303-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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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study examines the aesthetics of Cho-sa(楚辭), as referenced by Eochon(漁村) Sim Eon-gwang(沈彦光, 1487-1540) in his poem “Cha-IsoKyung(次離騷經).” Sim Eon-gwang was born into a family of hereditary literary officials and was raised with literary education before rising to fame as a poet. He lived during the reign of King Jungjong of Joseon. He was once a young bureaucratic writer who was dismissed for a moment’s mistake when he joined hands with the ruling forces to impeach the loyalists of the royal court and covet power. Eochon Sim Eon-gwang’s poem “Cha-IsoKyung” was modeled on “Iso(離騷)” of Ch’ü Yüan(屈原) and is a penitent piece of writing in which he sincerely regrets the injustices of the era and the mistakes of the court. This work combines rich and strange fantasies, hot passion, and mournful resentment and longing. The poem evokes a sense of passion and melancholy, an aesthetic sense that is characteristic of Chosa in southern China. The content was a truly grand definition of a plan to cultivate the virtues of a monarch, enhance national prestige, develop the spirit of bureaucrats, and distinguish right from wrong. As the work is strong and has experienced change, it is not seen as vulgar or skillful. Evidently, the language and writing of the country’s great period are distinguished from the declining end and the weakening temple. Were it not for Eochon Sim Eon-gwang, there would be no great work like this. The amazing literary talent of Eochon flutters like the wind, and his cheerful and generous repentance and spirit of grief flow high like clouds in the autumn sky. The arrangement that he created was extremely painful and just, covering a vast metaphor, which was a symbol of penance and resentment that stretched endlessly over the Korean territory, not just the Cho Dynasty. That beautiful expression overflowing throughout the 373-gu, 2,400-character giant feature-the amazing form and idea of Ch’ü Yüan’s Iso, reflecting the political reality of the time-was another “Iso” that repented the mistakes of our great Joseon scholar.

8

西厓 柳成龍의 『楚辭』 受容의 美意識

신두환

[NRF 연계] 동방한문학회 동방한문학 Vol.69 2016.12 pp.219-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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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서애 유성룡의 『楚辭』 수용의 미의식을 고찰한 논문이다. 서애는 훌륭한 가문에서 태어나 일찍부터 유가의 학문과 예절을 익혔고 어려서부터 문학수업을 받은 문인이었다. 서애는 퇴계 이황의 고명제자였고, 퇴계로부터 ‘하늘이 낸 인재’라는 평을 받았던 인물이다. 서애는 당파싸움으로 참소와 축출이 난무하던 혼란의 시대를 살았다. 서애는 임진왜란을 진압한 위대한 영웅이자, 유가를 바탕으로 학문을 연구한 성리학자이며 또한 관각의 문예를 담당했던 관료문인이었다. 서애는 과연 『楚辭』를 보았을까? 서애의 시문들을 고찰한 결과 그의 문집 곳곳에서 『楚辭』의 흔적을 발견해 낼 수가 있었다. 서애는 朱熹의 『楚辭集注』를 바탕으로 『楚辭』를 꼼꼼히 읽었으며 그가 인용한 『楚辭』는 전체영역에 까지 미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楚辭』 「遠遊」를 수용하여 창작한 「反遠遊」란 작품은 압권이었다. 서애는 굴원을 유가적 입장에서 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도, 불의와 협잡하지 않는 고결한 의리정신을 흠모하는 정이 있었다. 서애의 『楚辭』 수용은 특별한 미의식이 존재한다. 서애는 굴원의 『楚辭』를 원망의 테마로 인식하고 유가적인 바탕에서 수용하였다. 서애는 『楚辭』에서 비롯되는 초월적인 상상력과 초자연적인 아름다움과 낭만적인 『楚辭』의 풍류를 사랑했고, 굴원의 고결한 인품과 그의 지조와 절개, 충성과 원망을 아우르는 굴원의 초월적인 시상을 예술적으로 수용하였다. 서애의 시가에는 『楚辭』의 시어들이 앙금처럼 녹아서 그 고색창연한 향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9

楚亭 朴齊家의 ‘屈騷’ 수용과 그 의미

鄭日男, 최유진

[NRF 연계] 한국고전번역원 민족문화 Vol.45 2015.06 pp.285-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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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초정 박제가의 ‘굴소’ 수용 양상과 그 의미를 다루었다. 우선 초정의 이름과 자․호의 유래를 살펴본 결과 중국의 『대학』·「이소」·『시경』과 연관됨을 알 수 있었다. 그중 특히 ‘초정’이란 호는 박제가가 스스로 밝힌 바와 같이 「이소」의 의미에 기탁하여 지은 것이다. 그 동기에 대해서는 굴원과의 同病相憐 및 굴원의 爲人을 이상적인 인격으로 추구하고, 그러한 인격 기준으로 늘 자신을 편달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하였다. 세속의 영향이 미칠 수 없는 ‘백운’을 자주 언급한 것도 ‘초정’이나 ‘정유’와 같은 호의 이미지와 동일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시경』에서 유래된 ‘위항도인’이란 호를 통해 재능을 自信하는 동시에 성취하고야 말겠다는 열정과 여의치 않는 생에 대한 낙관을 읽을 수 있었다. 다음은 초정의 「이소」에 대한 이해를 고찰하였다. 초정은 ‘굴소’를 숭상하여 號를 ‘楚亭’이라 했던 만큼 굴원의 인격은 곧 초정이 지향하는 이상적인 인격이었다. 초정은 「이소」를 『시경』의 비흥수법과 대조시켜 怨慕의 작품으로 보았고, 비분강개한 정서의 작품 및 통곡의 작품으로 인식하였다. 한편 이러한 ‘굴소’를 초정은 약간은 ‘怨而不怒’의 유가적 詩敎에 위배된 것으로 이해하면서도 다른 한편 굴원의 인격과 멀어지는가 싶어서 「이소」를 베끼었고, 「이소」와 같은 작품을 지으려 함으로써 ‘굴소’에 대한 애호를 멈추지 않았다. 초정은 굴원의 인격만이 아니라 그의 시어나 표현수법에도 관심을 가졌다. 그는 초사의 시구를 나름대로 변용하여 나의 시어, 나의 시의 이미지로 승화시켜 시 창작에 일조하였다. 요컨대 초정은 젊은 시절 재주와 포부는 지녔으나 신분의 한계로 인하여 비전이 없는 현실을 고민하였고, 후기에 성은을 입어 致仕는 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항상 大材小用의 유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고 본다. 따라서 평생 이소를 애독함으로써 만강의 수심을 해소하는 동시에 굴원의 고결한 인격으로 자신을 편달했던 것으로 사료된다.

10

象村 申欽의 屈騷 수용양상

정일남

[NRF 연계] 우리한문학회 漢文學報 Vol.24 2011.06 pp.251-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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象村 申欽은 정승의 벼슬까지 했어도 초사와 관련된 다른 문인과 마찬가지로 유배를 비롯하여 생에서 여러 곡절을 겪었다. 이는 상촌이 屈騷를 수용할 수 있었던 요인의 하나로 사료된다. 본고는 屈騷와 관련하여 상촌에 대한 타인의 평을 살펴보고, 그의 詩文에서의 屈騷 수용 양상을 고찰했다. 諸家는 상촌의 인격과 공적을 사마천이 굴원을 贊한 듯 해와 별처럼 빛난다고 칭송했다. 특히 詩, 騷의 여러 體에 십분 터득한 재주를 긍정한 점은 상촌 屈騷 수용의 詩學적 원인으로 볼 수 있다. 상촌은 여러 유형의 산문에서 굴소를 典故로 이용, 언급했던바, 이는 주로 시에서 屈騷를 수용했던 앞선 문인과의 변별점이라 하겠다. 아울러 제반 詩體에서 屈騷 수용 양상을 볼 수 있었다. 이런 양상은 대부분 경우 굴원의 인격을 기리고 그의 불행을 슬퍼하면서도 나름대로 굴소 관련 용어 내지 意象을 만들어 심회를 토로하는데 일조했던 것이다.

11

谿谷 張維와 屈騷關聯 硏究

정일남, 류연화

[NRF 연계] 동방한문학회 동방한문학 Vol.46 2011.03 pp.143-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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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관직을 역임했던 谿谷 張維는 초사를 수용한 여느 재능 있는 문인과 마찬가지로 정치 생활에서 역경을 겪는다. 이는 그가 屈騷를 수용할 수 있었던 주요 원인이다. 계곡의 시에 屈騷관련 작품이 대체로 40여 편이 보인다. 본고는 屈騷에 대한 계곡의 태도 및 굴소 제 요소에 대한 계곡 시에서의 수용양상을 살펴보았다. 초사 등을 무척 애독한 동시에 중국의 典故를 자유자재로 이용했던 계곡의 글재주를 당시 문인들은 ‘通’이라 극찬했다. 계곡이 楚辭 등을 깊이 탐구한 것은 그것의 우수한 요소를 수용하기 위해서였다. 계곡이 보기에 굴원의 인격은 독보적이고 그의 작품은 내용과 형식이 고도로 통일된 예술진품이다. 계곡이 수용한 초사의 요소에는 屈子 등 굴원 名과 離騷 등 초사작품, 그리고 澤畔 등 용어와 芰荷 등 향초를 망라한다. ‘屈原’ 意象에는 고결하고 청직한 인격, 憂國의 정서를 들 수 있고, ‘離騷’ 意象을 통해서는 죄 없이 추방당한 문인들의 시름을 풀고자 했고, ‘澤畔’ 意象은 죄 없이 정계에서 축출당하는 모든 불운이 함축되어 있다. ‘芰荷’ 등 향초 意象에는 주로 스스로의 자아수양에 힘쓴다는 의미가 부여되었다.

12

茶山 丁若鏞의 “屈騷” 수용 양상

정일남

[NRF 연계] 한국한문학회 한국한문학연구 Vol.46 2010.12 pp.387-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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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간의 유배경력은 다산의 “發憤著書”의 힘과 情緖를 유발했고 그의 학문을 성취시켰다. 이런 정서와 경력은 다산이 屈騷와 관계를 맺게 된 要因의 하나로도 사료된다. 본고는 다산과 屈騷의 관련양상을 屈騷에 대한 다산의 품평, 산문과 시의 초사 수용 순으로 다루었다. 굴원에 대한 贊에서 굴원의 출중한 재능과 인격을 일월에 비견했고, 진리에 대한 탐구정신과 혼탁한 세속과 타협하지 않는 결백 및 작품의 현묘함을 긍정했다. 「醉夢齋記」에서 굴원은 진실로 깊이 취해있는 사람이고 죽을 때까지 깨어나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原怨」에서는 초왕에 대한 굴원의 원망을 사례로 공적인 “원망”은 충효, 충정을 나타낸다고 해석했다. 「通鑑節要評」에서 「이소」는 기이한 글이고 經書 등과 번갈아 보면 피로를 느끼지 않고 공부에 유리하다고 했다. 「爲尹惠冠贈言」에서 「離騷」등 굴원의 작품은 울적한 회포를 토로한 글이고 읊으면 근심을 해소해준다고 하였다. 이밖에 산문은 초사의 일부 용어를 수용한 흔적이 보인다. 시는 “靈均”, “楚大夫”, “三閭” 등 굴원의 字나 신분 내지 벼슬직함을 지칭하여 용사의 형식을 취한 경우가 있다. 「離騷」·「九歌」·「漁父」·「卜居」등 작품명을 들거나 이런 작품속의 용어, 인명을 시구에 차용 내지 변용한 경우도 보인다. 다산은 산문이나 시에서 “屈騷”의 부분적인 내용과 형식을 널리 수용하여 소재범위를 확대하고 다양한 이미지를 창조하는데 일조했다.

13

沈彦光의 屈原 楚辭에 대한 이해- 「次離騷經」을 중심으로

장종오

[NRF 연계] 한국문학회 한국문학논총 Vol.91 2022.08 pp.119-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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漁村 沈彦光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시인으로, 그의 작품들이 실린 󰡔漁村集󰡕이 남아있다. 심언광의 인생 전반기는 비교적 평탄하였지만, 후반기에는 중종조에 권력을 독점하여 많은 誣獄을 일으켰던 金安老를 조정에 불러들였다는 이유로 강릉으로 귀향하여 말년을 그곳에서 보내다가 1540년에 일기를 마치게 되었다. 심언광은 김안로와 관계를 맺는 정치적인 행적으로 말미암아 부정적인 평가를 받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언광은 학식과 문학적인 능력을 골고루 갖추었으므로 시문에 대하여 인정받고 있었다. 지금까지 심언광에 대한 연구는 어느 정도 진행되어 왔으나 󰡔어촌집󰡕에 실린 훌륭한 辭賦들을 남겼으며 이에 대한 연구는 그리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심언광이 활동했던 조선 중기에는 연산군 때의 무오사화와 갑자사화, 중종 때의 기묘사화 등 커다란 정치적 사건으로 인해 어지러운 시기였다. 심언광이 옥사를 여러 차례 일으컸던 김안로를 재등용한 것이 화근이 되어 탄핵을 받아 삭관당하고 귀향하게 되었다. 이러한 정치적 경력은 屈原의 처지와 마찬가지로 요직에서 소인배의 모함을 받아 좌천당하게 되었으므로 굴원의 초사가 심언광의 마음을 달래주는 중요한 기탁이 되었다. 이어 심언광과 굴원의 사이에는 1800년이라는 시간적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국면이 안정되어 있지 않아 격동한 시대 배경에 처했을 뿐만 아니라 높은 요직에서 임금이나 소인배의 미움을 사서 유배당하게 되었다. 더불어 심언광의 문집에 사부도 여러 편 실려 있어 비교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본고에서는 먼저 심언광 문집인 󰡔어촌집󰡕의 판본에 대해 편제상 어떤 차이가 있는지, 판본마다 실려 있는 사부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나아가 심언광이 지었던 「次離騷經」이 굴원의 「離騷」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에 대하여 고찰할 것이다. 3장에서는 먼저 사부 내용과 연보를 바탕으로 심언광의 「차이소경」이 창작된 시기를 추정해볼 것이다. 또 심언광 이전 시기에 굴원의 「이소」를 본떠 지은 부는 두 편인데, 하나는 金時習의 「擬離騷」이며, 또 다른 하나는 심언광과 동시대 인물인 申光漢의 「和離騷經」이다. 두 작품과 비교하여 심언광이 지은 「차이소경」의 특징을 고찰해보고자 한다. 4장에서 심언광의 「차이소경」이 한국 문학사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14

炯菴 李德懋의 ‘屈騷’ 수용 양상

정일남

[NRF 연계] 동방한문학회 동방한문학 Vol.52 2012.09 pp.213-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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炯庵 李德懋는 품은 뜻은 크고 재주는 뛰어났으나 출신이 천한 관계로 특히 出仕 이전 내심으로 비감에 젖어 있었고 가끔은 屈騷를 읊는 것으로 서글픔을 달래고자 했다. 그런 관계로 형암의 詩文에는 屈騷 요소가 적지 않게 산견되는바 비교문학 영향연구의 방법으로 양자의 관련성을 다루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사료된다. 본고는 형암의 屈騷觀을 비롯하여 그의 詩文에서의 굴소 수용 양상을 고찰하되 형암의 인격과 그의 문학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자 했다. 형암은「鳴蟬賦」와「橘頌」에서 “蘇世獨立”의 인격과 “不染”의 맑은 자질을 수용하여 號를 삼았다. 초사를 향기 넘치는 아름다운 글로 인식, 즐겨 읽어 심신을 수양하고자 했다. 경우에 따라 일부 초사작품의 부동한 심미효과를 감지했다. 「天問」를 이중으로 평가했고, 忠憤을 인정하면서도 「懷沙」를 지나친 충성으로 보았다. 시는 주로 그와 他人이 초사에 경도되어 초사를 읊는 모습을 그렸다. 이는 고결한 인격을 지향하고, 동병상련의 수심을 해소하기 위한 방편으로 보인다. 형암의 경우 초사를 典故로 많이 이용한 특징이 드러나고, 초사 요소를 변용한 사례도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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芥川龍之介と遠藤周作の文

조사옥

[NRF 연계] 동아시아일본학회 일본문화연구 Vol.21 2007.01 pp.335-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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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타가와 류노스케와 엔도 슈사쿠의 문학 -기리스탄모노와 침묵을 중심으로- 조 사 옥 본 논문에서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기리시탄모노와 엔도 슈사쿠의 작품, 그 중에서도 특히 침묵을 비교하고 근대와 현대 일본문학에서 큰 발자취를 남긴 양작가는, 기독교와 관련이 있는 작품 속에서 무었을 말하고 그리고 있는지, 또한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인지를 고찰하여 다음과 같은 점을 알 수 있었다. 먼저 아쿠타가와의 기리시탄모노와 엔도의 침묵 속에 그려져 있는 그리스도상은, 함께 괴로워하는 그리스도이다. 바로 그 구하고 있는 그리스도상인데, 아쿠타가와는 그리스도 속에 「영원히 초월하고자 하는 것」(성령)과 「영원히 지키고자하는 것」(마리아)의 대립을 보고 있다. 한편 엔도는 침묵 속에서 그리스도에게 모성적인 성령을 구하고 있고 결국은 그리스도에게서 함께 괴로워하고 슬퍼하는 「어머니와 같은 것」을 발견한다. 또한 엔도는 일본의 천주교도들이 가지고 있던 마리아숭배를 보고, 그리스도에게 대한 성모 마리아와 같은 사랑을 가지고 있다면, 일본에서도 기독교를 수용하는 것이 문제가 되자 않을 것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따라서 침묵에서 로드리고가 후미에를 밟으려고 했을 때, 밟아도 좋다고 하는 소리를 들은 그리스도는 「모성적인 그리스도」라고 말하고 있지만, 이는 성서에서 말하는 「성령」의 모성적인 면을 가리키고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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頤齋 曺友仁의 ‘詞’에 대하여

조창록

[NRF 연계] 동방한문학회 동방한문학 Vol.26 2004.06 pp.393-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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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頤齋 曺友仁(1561~1625)의 ‘詞’에 대해 살펴 본 것이다. ‘詞’는 일종의 노랫말로, 문장과 음악의 중간에 있는 韻文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운문 양식은 우리나라에서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으나 중국의 경우 唐代에서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폭 넓게 창작되었다. 조우인은 한글가사의 작가로 알려졌으나, 또한 詞의 주요 작가로 손꼽을 수 있는 인물이다. 그는 詩文과 音樂에 조예가 깊었으며, 그것을 통해 삶의 수심과 울분을 풀어낸 것으로 보인다. 그가 지은 詞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본고는 먼저 조우인의 삶과 ‘詞’의 전반적인 성격을 살핀 다음, 그가 지은 7편의 詞를 감상해보았다. 원래 詞는 서정을 주로 하는 양식이라, 조우인의 작품 역시 소재는 다양하지만 그 주제는 작자 내면의 고독과 그리움, 삶의 근심을 노래한 것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정감들을 표출하는데 있어서 ‘詞’가 제격이었던 것이다. 다만 그것은 진지하지 못한 遊戱와 진부한 永嘆으로 빠지기 쉬운 단점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이러한 점들에 대한 평가와 자리매김은 ‘詞’에 대한 연구가 좀 더 진척된 후일을 기약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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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明舍圖銘의 새로운 理解

강신표

[NRF 연계] 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원 남명학연구소 남명학연구 Vol.14 2002.12 p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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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velopment of the Neo-Confucianism during the Chosen dynasty begun to get attention among international scholars since about three decade ago. Cho Sik (Nammyung, 1501-72) was one of the two most distinguished Neo-Confucian scholars at the sixteenth century with Yi Hwang (T'oegye, 1501-70). However, Cho Sik' scholarly achievements in the Neo-Confucianism had been neglected due to political reason during late Chosen dynasty. It was continued up to late 20th century. Recently his contributions to development of Korean Neo-Confucian studies were rediscovered by new generation. His academic works written in classical Chinese had been newly translated into modern Korean and several research institutes for Nammyung studies had initiated international academic conferences on his works and their contributions to Korean intellectual community. 『 Diagram and Inscription of Shin-myung-sa』 is one of his most important works for understanding of his scholarly world-views. I have examined this work in terms of Dae-dae cultural grammar, my model of analysis on traditional Korean culture. The diagram and Inscription could be seen as the most representative summary of his life long search to understanding Sung and Ming Neo-Confucian traditions and their realization in the Chosun (Yi) dynasty. Two fundamental concepts he focused in the search are kyung and ui . In the diagram and inscription they are neatly explained how to practice in state rule and scholar's daily living. This paper shows that Dae-dae cultural grammar underlie 『 Diagram and Inscription of Shin-myung-sa』consistent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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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희 〈김영일의 사〉에 투영된 식민지 근대의 윤리와 내부 식민지인의 자의식

김남석

[NRF 연계]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대동문화연구 Vol.132 2025.12 pp.307-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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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조명희의 희곡 〈김영일의 사〉를 식민지 조선 청년이 처한 현실적 조건 속에서 다시 읽고, 인물과 공간의 구성을 통해 당시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살피는 데 목적이 있다. 이 작품은 유학생 김영일이 낯선 타국의 도시에서 겪는 빈곤과 좌절,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내적 갈등을 그린다. 표면적으로는 가난한 청년의 비극이지만, 그 이면에는 식민지 지식인이 근대라는 이름의 질서 안에서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하기 어려운 현실이 반영되어 있다. 작품 속 전석원과 장성희는 제국 일본의 문화를 모방하며 권력을 상징하는 인물로, 언어와 복식, 태도를 통해 중심의 위치를 점한다. 반면 김영일과 그의 친구 이춘희, 박대연은 일본 사회의 경계에 머무는 인물로, 그들의 하숙방과 ‘소구삼림’은 배제된 이들의 삶의 공간으로 설정된다. 이러한 대비는 제국과 식민, 중심과 주변의 관계를 시각적으로 드러내며, 인물 간의 대화와 침묵, 죽음으로 이어지는 장면을 통해 식민지 조선 청년이 처한 현실의 단면을 선명히 보여준다.

This study reinterprets Jo Myeong-hui’s play Kim Yeong-il-ui Sa within the lived conditions of colonial Korean youth and examines how the composition of characters and spaces exposes the structural contradictions of the time. The play portrays the struggles of a Korean student, Kim Yeong-il, who faces poverty, despair, and the effort to preserve his human dignity while living in a foreign city. On the surface, it depicts the tragedy of a poor student, but beneath that lies the reality of an intellectual from the colony who finds it nearly impossible to affirm his own existence within the order of modernity. The characters Jeon Seok-won and Jang Seong-hee embody power through their imitation of Japanese imperial culture; their speech, attire, and manners mark their position at the center of authority. In contrast, Kim Yeong-il and his companions Lee Chun-hee and Park Dae-yeon remain at the margins of Japanese society. Their lodging room and the “Small Hill Forest” symbolize the spaces of exclusion inhabited by those pushed to the periphery. This contrast between figures and spaces visually reveals the relationship between empire and colony, center and periphery, while the dialogues, silences, and the scene of death vividly reflect the fragmented reality faced by colonial Korean you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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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사의 한시 「晩登東山」과 「酒暖興餘」 - 그의 두 돌기둥, 石正 윤세주와 石艸 신응식

도진순

[NRF 연계] 한국근현대사학회 한국근현대사연구 Vol.76 2016.03 pp.217-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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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though there are only three remaining Chinese Poems by Yi Yuk-sa, each of the poems are exceedingly important. The remanent of Yi Yuk-sa is a window which enables one to look into the inner depths of Yi Yuk-sa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fascist oppression period. Plus, the three Chinese poems are the key factors in comprehending over 30 Korean poems written by Yi Yuk-sa. However, there is hardly any developed study on the Yi Yuk-sa’s Chinese Poems, even lacking in a basic interpretation. This study analyzed two Chinese poems by Yi Yuk-sa, “ManDeongDongShan(晩 登東山)” and “JuNanHeungYeo(酒暖興餘)” as follows: 1) Identified the inaccuracy of the existing translation, with a new translation of the poems. 2) Revealed the writing period of the poems was not during the spring of 1943 as known so far, but in fact near the Summer Solstice(夏至) of 1942. 3) Two poems; “ManDeongDongShan” and “JuHanHeungYeo” was to dedicate Shin Seok-cho(申 石艸) and Yun Se-ju(尹世胄) respectively. 4) The existence of Shin Seok-cho and Yun Se-ju to Yi Yuk-sa is comparable to a cornerstone of the two world Yuk-sa adhered to; the revolutionary movement for the liberation of the nation, and the poetic liter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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