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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내 성지의 교회사적 의의
The historical significance of Mirinae Shr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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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수원교회사연구소 바로가기
  • 간행물
    교회사학 KCI 등재후보 바로가기
  • 통권
    제5호 (2008.12)바로가기
  • 페이지
    pp.7-46
  • 저자
    정종득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99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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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The word Mirinae is originated from the village name Meecheonri(彌迤川里) which appeared in the provincial geography book of Yang-seong(陽城) county in 1840s, and the village was belong to Geum-gok(金谷) subcounty at that time. Mirinae shrine is a famous and historic holy place which has been closely connected with St. Rev. Kim Dae-geun Andreas. Here is the tomb of priest Kim Andreas who was the first native priest in Korean Catholic Church and was martyred in 1846. Besides this fact, it seems likely that father Kim Andreas has visited to this Kongso(公所) the secondary station whose master was catechist Choi(崔) during 4 months from January to April in 1846. And Mirinae has two more famous tombs, and the masters of them are all contemporary connected with priest Kim Andreas. One of them is Mgr. the 3rd Apostolic Vicar of Choseon, another Go Ursula the mother of priest Kim. Mgr. was the spiritual leader of priest Kim and was like his father as his senior, so we can see priest Kim's obedience to Mgr. Ferreol through the tomb. And we can also feel priest Kim's filial piety to his mother Go Ursula he tried to serve devotedly though the time was no more than about 4 months. Therefore we can say that These tombs makes the meanings of reverence for priest Kim more distinguished. Mirinae was not only the ministry base for priest Callais during one year from October in 1862, but also was priest 's one during one year from October or from November in 1864, and here they retired and have a good slack, writing letters, pastoral reports, doctrine publications, regular praying to God, being absorbed in meditation about 2 months long. And so they were able to prepare themselves for the next journey for ministry and to build up their physical strength. For these reasons, Mirinae was the safe selter and encouraging place for French priest during the persecution period. Mirinae had 17 anonymous tombs had been moved from neighboring Mirinae such as Eungdarani, Sooji, Handeokgol maybe in the Byeong-in persecution period. One of them from Handeokgol was known as the tomb of St. Lee Yoon-il John, and it was moved to the Archdiocese of Daegu in 1986, and there are 16 anonymous tombs remained in Mirinae now in 2008. And so very humble and devotional spiritual fragance of the anonymous martyrs is smelled in the Mirinae shrine, and consequently many pilgrims come here are able to find the example of their faithful lives. Mirinae has become to ones of the most honorable shrine because of the tomb of martyr priest Kim Andreas. And after that continuously the ones of Mgr. Ferreol who contributed decisively the 82 Korean martyrs' declaration of Venerables and Rev. Gang Do-yeong who made mirinae Holy Place by 33 year’s devotion also came to here, so the meaning of reverence was more strengthened and enlarged. Moreover the anonymous tombs moved to this place makes us pilgrims glance over the history of Korean church and the streams of reverence for martyrs, therefore Mirinae shrine became the representative holy place and became the most important origin of reverence for martyr in Korea.
한국어
‘미리내’는 은하수를 뜻하는 순우리말로 1840년대 경기도 양성현(陽城縣) 읍지(邑誌)에서 금곡면(金谷面)에 속한‘미이천리(彌迤川里 )’라는 동네 이름으로 그 명칭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곳은 1846년 병오박해 직후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방인성직자 김대건 신부님의 시신이 묻혔던 곳일 뿐만 아니라, 병오박해 직전인 1846년 1~4월 약 4개월간 김 신부님이 용인 은이 지역을 중심으로 사목활동을 할 당시에 이곳 미리내의 최 회장 댁에 설정되었던 미리내 공소에도 사목순방을 왔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김대건 신부님과 매우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유서깊은 성지이다. 또한 김대건 신부의 장상으로서 신학생 김대건에게 부제품과 사제품을 차례로 손수 부여한 제3대 조선대목구장 페레올 고(高) 주교의 무덤과 김 신부의 어머니 고 울술라의 무덤도 함께 묻혀 있는데, 페레올 고 주교는 김대건 신부의 영적인 지도자로서 아버지 신부님과 같은 분이시며, 김 신부가 철저하게 순명하고 정성을 다해 보필한 분이셨기에, 교회 장상에 대한 김 신부의 순명의 정신을 잘 보여주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고 울술라는 김대건 신부가 1846년 입국 이후 약 4개월간의 짧은 기간이나마 함께 모시고서 그동안 자식으로서 못다한 효성을 바치고자 했던 친어머니이므로 김대건 신부의 효심과 성직자를 아들로 둔 어머니의 자애심을 동시에 드러내주는 분이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분들의 무덤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김대건 신부 현양의 의미를 더욱 잘 드러내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미리내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미리내는 또한 병인박해 직전인 1860년대 초부터 내한 프랑스 선교사 칼레 신부의 1862년 10월부터 1863년 10월까지 사목활동의 거점이었다. 또 뒤이어 내한한 오메트르 신부의 1864년 10~11월부터 1865년 11월까지 여름철 은거지 겸 사목활동 보고서와 서한을 작성한 곳으로서, 오메트르 신부님의 사목활동 거점이기도 했던 곳이었다. 이곳에서 박해시기의 프랑스 선교사들은 신심 깊은 교우들의 보호를 받으며, 공소순방 후의 피로를 풀고, 정기적인 기도생활과 묵상, 저술, 서한 작성 등의 여가활동을 통하여 다음 공소순방에 필요한 체력을 보강하고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이런 점에서 미리내는 박해시기 선교사의 안전한 은신처이자, 공소순방에 필요한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쉼터와 같은 곳이었다. 미리내 성지에는 병인박해기로 추정되는 시기에 인근의 수원 및 광주 유수부 관아에서 순교하여 미리내 인근의 응다라니, 수지, 한덕골 등지에 그 시신이 묻혔다가 이곳으로 이장된 순교자 17위의 무덤이 위치해 있던 곳으로서, 이윤일 성인으로 밝혀진 한덕골에서 이장된 묘를 제외하고 16기가 지금까지도 무명 순교자 묘역에 모셔져 있다. 그러므로 미리내 성지에는 세속적인 부귀영화는 물론이고 자신들의 이름조차 남기지 않고 하느님께 당신들의 모든 것을 온전히 봉헌하신 수많은 무명 순교자들의 겸손과 봉헌의 정신이 묻어나고 있다. 그리하여 이곳을 찾는 순례객들은 이들 무명순교자들로부터 진실한 신앙생활을 귀감을 발견하고 본받을 수 있게 된다. 미리내는 김대건 신부님의 안장으로 인해 한국 순교자 현양의 근원지중 하나가 되었고, 뒤를 이어 기해·병오박해 순교자 82위의 가경자 선언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신 페레올 주교님의 안장, 1896년부터 1929년까지 33년간 미리내 본당에서 사목하면서 미리내를 성지로 가꾸고 김대건 신부 경당 등을 건립한 강도영 마르코 신부의 무덤으로 순교자 현양의 의미가 더욱 확대되고 굳어졌다. 여기에 무명순교자들의 묘소까지 이장됨으로써 박해시기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한국 천주교회의 순교역사와 순교자 현양의 흐름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게 함으로써,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순교성지, 순교자 현양의 대표적 근원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목차

Ⅰ. 머리말 - 미리내 성지 역사 개관 -
 Ⅱ. 선교사들의 사목 거점지 미리내
  1. 김대건 신부•페레올 주교와 미리내
  2. 박해시대 선교사들의 사목 활동과 미리내
 Ⅲ. 무명순교자 16위와 미리내
  1. 미리내 무명순교자 묘
  2. 무명순교자 묘 미리내 이장 증언자
  3. 음다라니에 묻혀있던 12기의 무명순교자
  4. 시봉마을에 묻혀있던 4기의 무명순교자
 Ⅳ. 맺음말 - 영성의 샘, 미리내 -
 참고 문헌
 abstract

키워드

미리내 성지 김대건 신부의 무덤 순교자 현양 페레올 주교 고 울술라 강도영 신부 무명순교자 무덤 순명 효도 겸손 헌신 칼레 신부 오메트르 신부 Mirinae shrine the tomb of St. priest Kim Dae-geon Andreas reverence for martyr Mgr. Ferréol Go Ursula anonymous tombs obedience filial piety humility devotion priest Callais priest Aumaitre Rev. Gang Do-yeong

저자

  • 정종득 [ Jong-deuk Paul | 천주교 수원교구 수원교회사연구소장(Director, Suwon Research Institute of Catholic Church History)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수원교회사연구소 [Suwon Research Institute of Catholic History Ha-nam, Korea]
  • 설립연도
    2003
  • 분야
    인문학>기독교신학
  • 소개
    ◎ 설립취지 "수원교회사연구소"는 천주교 수원교구 설정 40주년을 맞이하여 수원교구와 한국교회의 역사를 연구하고, 신앙 선조들의 삶과 순교영성을 발굴하여, 이를 널리 알리고 후대에 전함으로써 한국 가톨릭 교회의 신앙과 문화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2003년 1월 1일 교구장 최덕기 바오로 주교님이 설립하셨습니다. ◎ 연구소 현황 초대 연구소장은 구산성지 주임신부인 정종득 바오로 신부가 맡게 되었으며, 연구소의 위치는 구산성지 내에 있습니다. 원활한 연구소 운영을 위해 2006년 2월 현재 7명의 연구위원과 6명의 운영위원으로 구성되어 소장의 업무를 보좌하고 있으며, 3명의 연구원이 교회사연구의 실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 향후 연구소의 운영방침 교구 내 순교성지 및 순교자의 생애, 각 성지의 신앙적 유산을 발굴하고 이를 정리하며, 아직 개발되지 않은 교회사적지 및 순교자를 발굴하여 순교영성에 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아울러 신임 연구원들과 동호회원을 대상으로 매월 둘째주 토요일 한국천주교회사 월례 강좌를 실시한 후 신앙적 나눔을 가지고, 년 1~2회 학술심포지엄과 성지순례, 특별강연 등을 실시하여 순교신심을 고취하고자 합니다. 앞으로 교구 내 각 본당이나 공소, 성지의 역사를 편찬하도록 연구소에 위탁하여 오는 작업도 수행할 것입니다.

간행물

  • 간행물명
    교회사학 [Research Journal of Catholic Church History]
  • 간기
    반년간
  • pISSN
    1738-5377
  • eISSN
    2713-6027
  • 수록기간
    2004~2026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236 DDC 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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