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시대(正祖時代 1776년~1800년)는 격동의 시대였다. 조선의 전통적 질서가 동요하고 주자학이 지도이념으로서 한계를 드러내는 가운데 정치적 변화가 일어나고 외래 사상과 문화의 영향으로 전통 사장과 문화가 급격히 변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조시대 격동의 진원지는 서울사회, 그 중에서도 정조 조정이었다. 대도회지 서울과 인근 경기지역을 생활 근거지로 하였던 경화사족(京華士族) 지식인들은 조선사회의 새로운 주도세력으로 등장하였고, 이들이 제시한 새로운 정치론과 사상적 기준이 정조(正祖 1752~1800)에 의해 수용됨으로써 변화와 혁신이 가속화하였다.
정조는 경화사족 일각 청론사류(淸論士類)의 주장을 수용하여 사림정치론(士林政治論)과 의리탕평론(義理蕩平論)을 내세워 정치개혁을 추진하였다. 이런 가운데 정조의 후원을 받았던 일부 지식인들은 북벌론(北伐論) 대신 북학론(北學論)을 제기하면서 북학(北學)을 선도하였고, 일각에서는 서학(西學)을 넘어 서교(西敎, 천주교)까지도 받아들이면서 조선의 사상적 변화를 이끌게 된다.
이에 따라 정조시대 정계와 학계에는 변화와 혁신을 둘러싼 심각한 갈등이 야기되었다. 정조가 학풍(學風)과 문체(文體), 악풍(樂風)과 서체(書體)를 바로잡고자 고심 끝에 제기한 '반정론(反正論)'이나 연암 박지원의 '법고창신(法古創新)'론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포괄적 대안이었다. 화성(華城)신도시를 위시하여 정조시대 문화 예술의 빛나는 성과물들은 이러한 과정에서 창출되게 된다. 이들 문화 유산의 내면에는 갈등을 극복하고자 하였던 당대인들의 다양한 지향성과 모색의 흔적은 물론 새 시대를 향한 역사 발전의 과정이 뚜렷이 각인되어 있다.
그러므로 정조시대 정치와 문화예술의 추이, 그리고 그 이면의 사상적 갈등과 극복의 노력은 200년 후 오늘 우리에게 시사하는바 크다. 다양한 정치세력의 갈등을 지양하는 방안과 신(新) 구(舊) 사상, 그리고 전통문화와 외래문화를 융합하여 사회 발전을 이루는 일은 정조시대 이래 지금까지 여전히 우리의 현안(懸案)이기 때문이다
한림대학교 태동고전연구소 [THE TAEDONG CENTER FOR EASTERN CLASSICS]
설립연도
1963
분야
인문학>한국어와문학
소개
연구소는 한국 및 동양의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기 위하여 한문연수를 통한 연구인력 양성과 연구사업수행을 목적으로 한다. 연구소는 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교육사업으로 한문연수과정을 개설하여 연구인력을 양성하고 고전문헌의 조사연구정리 학술지간행 고전번역출판 학술발표회개최 국내외연구기관과의 교류사업을 추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