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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및 동아시아 인문학

プロパガンダの道具としての李香蘭
Li Xianglan as a Propaganda Tool
プロパガンダの도구としての리향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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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한중인문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한중인문학연구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22집 (2007.12)바로가기
  • 페이지
    pp.343-370
  • 저자
    谷川建司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6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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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As an actress under the contract with Manchuria Motion Picture Corporation (Manei), Li Xianglan appeared on so-called “Continental Trilogy”-Song of White Orchid (Byakuran no Uta, 1939), China Night (Shina no Yoru, 1940), Vow in the Desert (Nessa no Chikai 1940), co-produced by Manei and Toho Studio.
Amongst these films, Li Xianglan, who was originally born as Japanese Yoshiko Yamaguchi, played Chinese Girl who used to have Antipathy against Japan, but changed her mind by knowing sincerity of a Japanese man, then fell in love with and started to follow him obediently. These roles became symbol to visualize concept that Japanese extension to China will lead Chinese People happiness. Tough Yamaguchi herself kept regretful feeling toward the fact that
she had acted in these films, she kept running as top Japanese actress and Hollywood Actress, as a Journalist, as a politician throughout postwar period.
Interesting fact is that there are slight differences of meaning of “Li Xianglan” between Yamaguchi and scholar, or audience. For Yamaguchi, it is just one of her former identity as human being with fresh and blood. For scholar and audience, “Li Xianglan” is a code which became capable to understand its function and its historical situation relatively, after the passage of time of more than 60 years. Yamaguchi denies former one’s propagandistic nature, but aware
of the latter’s function as a propaganda tool.
Li Xianglan’s propagandistic nature is proved still effective after administering a questionnaire from 74 college students who doesn’t know about Li Xianglan at all after the screening of China Night. What I found important is that we should divide “Li Xianglan” and “Ri Koran”, a Japanese pronunciation of Li Xianglan. In another word, “Li Xianglan” is Yamaguchi’s former identity and “Ri Koran” is the code for the scholar and audience.
The beginning of mythologizing process of Li Xianglan started on the last sequence of Toho production Woman of Shanghai (Shanhai no Onna 1952). The heroine of the film whose career is as like as two peas to Yamaguchi herself, dies an unnatural death. This is just like the ritual to bury “Ri Koran” as a propaganda tool in a fake way, for the purpose of dividing “Li Xianglan” as
Yamaguchi’s other self from its propagandisticnature. Naturally, it required the next process of rebirth of “Li Xianglan” to complete this mythology.
The rebirth of “Li Xianglan” was realized by Yamaguchi’s appearance on Hong Kong film Tenjo Ningen(1953), which was followed by 3 other Hong Kong films.
Yamaguchi named her old stage name again, but it was read as Lee Hsinag Lan as the Hong Kong way.
After its death and rebirth, “Li Xianglan” became mythology which is capable of playback over and over again. And after Yamaguchi’s autobiography was published, it became musical play, dramatized on TV, and inspired many other media like Manga and continuing to be evolutive character.
한국어
이향란(李香蘭)이라는 야마구치 요시코(山口淑子)는 만주영화협회의 전속여배우로써 일본의 토호영화사(東宝)와 제휴하여 “대륙3부작(大陸三部作)” 즉, <백란의 노래(白蘭の歌)>,<차이나의 밤(支那の夜)>,<열사의 맹세(熱砂の誓ひ)>에 출연하는데 처음에는 일본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으나 차제에 일본남아의 진지한 사고에 생각을 바꾸어 마침내는 일본인을 사모하고 순종하게 되는 시누이역할을 하여 일본의 대륙진출은 중국국민을 행복으로 인도한다고 하는 레토릭을 구현화시키는 시각적 심볼이 되었다. 야마구치 자신도 그러한 작품에 연했던 것에 깊은 후회를 하고 전후에는 일본이나 헐리웃에서 여배우로써 활약한 후, 마침내 저널리스트를 거쳐 정치가가 되어 당대의 유명인으로 활약했다.
하지만 야마구치 요시코에게 있어서의 이향란(李香蘭)과 연구자나 관객에게 있어서의 이향란은 미묘하게 다르다. 그것은 전자가 어디까지나 피가 흐르는 인간으로써 예전의 야마구치 신인 반면 후자에게 있어서의 이향란(李香蘭)은 60년 이상의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거리감을 가지게 되었다고 하는 것을 의식하면서 렇게 해낸 역할을 상대화시켜 “기호”로써 받아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야마구치는 전자가 가진 프로파간다성을 부정하지만 후자가 분명하게 프로파간다의 도구로써 기능하고 있었던 사실에 대해서는 의식하고 있다. 또한, 학생74명에게 <차이나의 밤>을 감상하게 하여 자유기술식 앙케이드조사를 행한 결과, 이 작품의 히어로=李香蘭의 “프로파간다성”은 어떤 의미에서 오늘날 아직 유효하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기호로써의 李香蘭을 ‘李(리)香蘭(코란)’으로 하고, 야마쿠치에게 있어서의 李香蘭을 李(리이)香蘭(샹란)과 구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전후에 있어서 ‘李香蘭’신화화의 과정의 시작은 1952년 영화<상해의 여인(上海の女)>에서 그녀자신을 떠올리게 하는 히어로가 비명의 횡사를 맞이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치 일본의 대륙침략을 정당화하는 것으로써 “프로파간다 도구”였던 ‘李(리)香蘭(코란)’을 의사적(擬似的)인 형태로 묻어버림으로써 야마구치 요시코의 분신인 李(리이)香蘭(샹란)을 그러한 “프로파간다성”에서 떼어내는 의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신화를 완결시키 이향란(李香蘭)이라는 야마구치 요시코(山口淑子)는 만주영화협회의 전속여배우로써 일본의 토호영화사(東宝)와 제휴하여 “대륙3부작(大陸三部作)” 즉, <백란의 노래(白蘭の歌)>,<차이나의 밤(支那の夜)>,<열사의 맹세(熱砂の誓ひ)>에 출연하는데 처음에는 일본
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으나 차제에 일본남아의 진지한 사고에 생각을 바꾸어 마침내는 일본인을 사모하고 순종하게 되는 시누이역할을 하여 일본의 대륙진출은 중국국민을 행복으로 인도한다고 하는 레토릭을 구현화시키는 시각적 심볼이 되었다. 야마구치 자신도 그러한 작품에 연했던 것에 깊은 후회를 하고 전후에는 일본이나 헐리웃에서 여배우로써 활약한 후, 마침내 저널리스트를 거쳐 정치가가 되어 당대의 유명인으로 활약했다.
하지만 야마구치 요시코에게 있어서의 이향란(李香蘭)과 연구자나 관객에게 있어서의 이향란은 미묘하게 다르다. 그것은 전자가 어디까지나 피가 흐르는 인간으로써 예전의 야마구치 신인 반면 후자에게 있어서의 이향란(李香蘭)은 60년 이상의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거리감을 가지게 되었다고 하는 것을 의식하면서 그렇게 해낸 역할을 상대화시켜 “기호”로써 받아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야마구치는 전자가 가진 프로파간다성을 부정하지만 후자가 분명하게 프로파간다의 도구로써 기능하고 있었던 사실에 대해서는 의식하고 있다. 또한, 학생74명에게 <차이나의 밤>을 감상하게 하여 자유기술식 앙케이드조사를 행한 결과, 이 작품의 히어로=李香蘭의 “프로파간다성”은 어떤 의미에서 늘날 아직 유효하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기호로써의 李香蘭을 ‘李(리)香蘭(코란)’으로 하고, 야마쿠치에게 있어서의 李香蘭을 李(리이)香蘭(샹란)과 구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전후에 있어서 ‘李香蘭’신화화의 과정의 시작은 1952년 영화<상해의 여인(上海の女)>에서 그녀자신을 떠올리게 하는 히어로가 비명의 횡사를 맞이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치 일본의 대륙침략을 정당화하는 것으로써 “프로파간다 도구”였던 ‘李(리)香蘭(코란)’을 의사적(擬似的)인 형태로 묻어버림으로써 야마구치 요시코의 분신인 李(리이)香蘭(샹란)을 러한 “프로파간다성”에서 떼어내는 의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신화를 완결시키 기 위해서는 일단 죽은 ‘李香蘭’을 다시한번 부활시키는 것이 필요했다. ‘李香蘭’의 죽음과 재생의 신화, 그것은 이듬해 1953년의 홍콩영화 <天上人間>에 출연으로 실현되었다. 야마구치 시코는 이 작품을 계기로 4작의 홍콩영화에 출연하여 그들 작품에서 다시금 李香蘭’이라는 이름으로 데뷔한다. 다만 여기서는 ‘李香蘭’의 홍콩발음 ‘리홍란’으로 불러졌다.
죽음과 재생을 거친 ‘李香蘭’은 얼마든지 재생 가능한 신화가 되었으며 본인에 의한 자서전 발매를 계기로 뮤지컬이나 TV드라마화 되었고 나아가서는 만화라는 또 다른 미디어에서도 캐릭터로써의 진화를 계속하고 있다.

목차

국문개요
 1. はじめに
 2. ディ-トリッヒ、リ-フェンシュタ-ル、そして李 香蘭
 3. トップ․ランナ-としての山口淑子
 4. 二人の李香蘭--リコウランとリィシャンラン
 5. 山口淑子による李香蘭の“プロパガンダ性”の否定
 6. 李香蘭を知らない世代は「支那の夜」をどう観たか
 7. 3人目の李香蘭としてのリホンランと再生産される 神話
 8. おわりに
 ◆ 参考文献
 Abstract

키워드

만주영화협회 이향란 프로파간다 만화 영화Manei Li Xianglan propaganda Manga Movie. 満映 李香蘭

저자

  • 谷川建司 [ Takeshi Tanikawa | 早稲田大学政治経済学術院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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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한중인문학회 [The Society of Korean & Chinese Humanities]
  • 설립연도
    1996
  • 분야
    인문학>중국어와문학
  • 소개
    한중인문학회는 대우재단과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지원으로 중국 대학의 한국연구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한국학 연구를 활성화시킬 목적으로 결성되었다. 한국에서는 서울대, 고려대, 아주대, 성균관대, 동국대, 연세대, 방송대, 과기대, 정문연, 순천향대, 남서울대, 울산대, 전남대, 충남대, 숭실대, 한남대, 경북대, 부산대, 영남대 등을 중심으로 전국의 각 대학의 인문학 전공 교수들이, 중국에서는 북경대, 남경대, 복단대, 절강대, 산동대, 요녕대, 화동사대, 중앙민족대, 북경어언문화대, 중국사회과학원, 남개대, 중앙민족대, 낙양외국어대, 서북대 등을 중심으로 중국의 각 대학의 인문학 전공 교수들이 회원으로 가입하였다. 여기에 중국과 한국의 언어문화 및 관계사에 관심이 많은 일본, 대만, 미국, 러시아의 학자들이 참여하여 동아시아의 정체성을 밝히는 작업에도 전념하고 있다. 1) 한국, 중국에서 매년 한 차례씩 한국, 중국, 대만, 일본, 미국, 러시아의 학자들이 학술 세미나를 열어서 양국의 인문과학에 편재되어 있는 보편성을 탐색한다. 2) 학술 세미나에서 논의된 내용을 중심으로 논문집을 발간하여 양국 학자들의 관심 사항을 널리 알리고, 그러한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협조한다. 3) 양국의 문화 유산을 답사하는 작업이다. 중국의 항주 일대와 고려 시대의 유적과 유물, 중국의 동북 지방과 고구려의 유적과 유물, 상해와 독립 운동 등에 대한 답사를 통하여 중국과 한국의 문화의 뿌리를 직접 확인한다. 4) 양국 문화에 뿌리 내리고 있는 보편성을 추출하여 세계 문화의 한 축인 동아시아 문화의 정체성을 확인한다.

간행물

  • 간행물명
    한중인문학연구 [Studies of Korean & Chinese Humanities]
  • 간기
    계간
  • pISSN
    1598-0383
  • 수록기간
    1996~2026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001 DDC 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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