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paper focuses on the concept of the henad introduced by Proclus to address the core problem of Neoplatonic metaphysics: ‘how the transcendent One relates to the multiplicity of beings.’ Although Plotinus established the ‘One,’ which negates all determination, as the supreme source of all things, he left a logical void by failing to elucidate the ontological structure through which the multiplicity is produced from the ‘One.’ To fill this gap, Proclus introduced the concept of the henad, which possesses both transcendence and immanence, in his commentary on Plato’ s Parmenides. However, as evidenced by the differences in interpretation - which view the henad as a participable intermediate term, reduce the ‘One’ to individual henads, or eliminate it into transcendence due to differing perspectives - the difficulty of ‘how the unrelated produces something’ remains unresolved and repeatedly runs aground. The fundamental cause of this recurring shipwreck lies in the method of inquiry in the second part of the Parmenides. The negativity of the first hypothesis is not a transcendent attribute of the object(One itself), but a conclusion reached by our thought when we inquire about the ‘One’ solely through the fact that it is ‘One.’ The determinations of the second hypothesis is also merely a mode of thought that results from separating the inseparable ‘One and Being’ and treating each as a separate term. However, Neoplatonism relocated the negations left by the limitations of thought to a transcendental status, and thereby imposed the burden of sole production upon the ‘One’ thus relocated. However, the philosophical significance of ‘henad’ of Proclus is revealed precisely at this point. For Plato, the compatibility of the one and the many was recognized only at the level of the individual thing, and at the level of the ‘One itself’ , it remained merely an object of ‘wonder’ that could not be accounted for. By contrast, by treating this compatibility as a situation attributed to the transcendent cause itself, Proclus finally made it possible to ask a question in what structure it is possible. This is because the compatibility, which had remained a limitation of thought, becomes a situation demanding clarification the moment it becomes a determination of reality; in this respect, Proclus’ s ‘henad’ can be considered an answer submitted to the task left by Plato.
한국어
본 논문은 신플라톤주의 형이상학의 핵심 난제인 ‘초월적 하나가 어떻게 다수의 존재와관계 맺는가’를 다루기 위해 프로클로스가 도입한 henad 개념에 주목한다. 플로티노스는모든 규정을 부정하는 ‘하나’를 만물의 최고 근원으로 삼았으나, ‘하나’로부터 다수가 산출되는 존재론적 구조를 해명하지 못한 채 논리적 공백을 남겼다. 프로클로스는 이 틈을 메우기 위해 『파르메니데스』 주해에서 초월성과 내재성을 동시에 지닌 henad 개념을 도입한다. 그러나 henad를 분유 가능한 중간 항으로 보거나, ‘하나’를 개별 henad로 환원하거나, 관점의 차이를 통해 henad를 ‘하나’의 초월 속으로 소거하는 해석들은 모두 ‘무관계적인 것이 어떻게 무엇인가를 산출하는가’라는 난점 앞에서 반복하여 좌초한다. 이 반복되는 좌초의 근본적 원인은 『파르메니데스』 2부의 탐구 방식에 있다. 첫 번째가설의 부정성은 대상의 초월적 속성이 아니라, ‘하나’가 오직 ‘하나임’만을 통해 탐구될때 우리의 사유가 도달하는 귀결이다. 두 번째 가설의 규정 역시 사유가, 결코 분리될 수없는 ‘하나와 존재’를 분리하여 각각 하나의 항으로 취함으로써 귀결되는 사유의 방식에불과하다. 그런데 신플라톤주의는 사유의 한계가 남긴 부정들을 초월적 지위로 옮겨 놓았고, 그렇게 옮겨진 ‘하나’에 단독 산출의 부담을 지웠던 것이다. 그러나 프로클로스의 henad가 지니는 철학적 의의는 바로 이 지점에서 드러난다. 플라톤에게 하나와 여럿의 양립은 개물의 층위에서만 인정되었고, ‘하나 자체’의 층위에서는감당할 수 없는 ‘놀라움’의 대상으로만 남아 있었다. 반면 프로클로스는 그 양립을 초월적 원인 자신에게 귀속되는 사태로 다룸으로써 그것이 어떤 구조에서 가능한가를 비로소 물을 수 있게 하였다. 사유의 한계로 남아 있던 양립이 실재의 규정이 되는 순간 해명을 요구하는 사태가 되기 때문이며, 이 점에서 프로클로스의 henad는 플라톤이 남긴 숙제에 대해 제출된 하나의 대답이라 할 수 있다.
목차
요약문 1. 들어가는 글 2. 플로티노스의 ‘하나’ 3. 프로클로스의 ‘하나’ 1) 『파르메니데스』 2부 2) 첫 번째 가설: 초월적 실체로서의 ‘하나’ 3) 두 번째 가설과 henad 4) henad를 둘러싼 해석 논쟁 4. henad가 지닌 문제의 근본적 원인 5. 나가는 글 참고문헌 Abstract
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가 처해 있는 국내외적인 많은 어려움 속에서 한국의 철학계가 이제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 보고 새로운 방향을 추구해 나아가야만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들이 더욱 높아져 가고 있습니다.
되돌아 보건대 지난 수십년간 우리 철학인들의 노력으로 많은 발전이 이어져 오기는 하였으나 아직도 한국의 철학계는 일제가 남기고 간 뿌리 깊은 구조적 왜곡의 도식적 틀로 부터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하면,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근래에 진행되고 있는 철학 활동들의 상당한 부분이 외국 철학계의 축소판적 모방 내지는 반복에 그침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현실성에 대하여 역행까지 하고 있다는 사실들이 심각한 우려를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철학은 분명 시대와 사회의 현실적 토양에 뿌리를 둔 자생적이고 종합적인 지적 노력들의 결집장인 것입니다. 이제 한국의 철학계는 지난 날의 왜곡된 도식적 틀과, 주체성을 상실한 타성적 모방을 면밀한 비판적 반성과 함께 철저히 극복하여야 하며 새로운 시야와 태도를 가지고 우리들 현실의 심층부에 놓여 있는 문제들에 가까이 다가가야만 합니다. 진정 우리의 철학계는 근본적인 질적 전환의 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 철학사를 되돌아볼 때, 철학은 어렵고 복잡한 시대적 전환기의 상황에 놓여질수록 더욱더 그 진가를 발휘하여 그 사회의 내면에 은폐되어 있는 총체적 구조 연관의 모습들을 드러내어 밝혀 주고 새로 운 이념과 비젼을 제시함으로써 더 진일보한 인간 실현의 공동체 형성에 기여해 왔음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한국의 현실 상황은 어려운 문제들이 구조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난해한 장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철학의 탄생을 예고하는 풍부한 다양성의 토양인 것입니다.
이 새로운 철학적 종합은, 현재 우리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성의 토양이 아직 성숙한 문화적 종합을 이루지 못한 채 그저 혼재된 상태에 놓여져 있음으로 인해 더욱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의 대학과 사회는 외양상으로는 풍부함에 넘치고 있고, 또 전반적인 사회 발전의 수준이 이미 산업사회의 단계를 넘어 첨단 과학 기술 정보사회에 진입하고 있다고 말해지고 있지만, 그 내면의 문화 적이고 사회적인 과정들은 어느 틈엔가 자각하기 힘들 정도로 기술적 효율성과 자본의 논리라는 획일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지배당하는 일차원적인 단순성의 수준으로 전락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교육과 문화는 이러한 일차원적인 경향에 밀려 비인간화의 황폐한 지대로 내몰리고 있는 것입니 다. 대학에서조차 철학은 잊혀져 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심각한 상황 때문에 철학은 자기 인식의 눈을 다시 떠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오늘날 이 사회에서 어떠한 획일적 논리가 막후에서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가, 그 논리는 각 분야에서 어떠한 지식의 형태로 또 어떠한 문화의 방식으로 보이지 않게 작용하고 있는가를 공개된 담론의 무대에 올려 논의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은 망각되고 왜곡된 우리들 존재의 본질을 다시 일깨우는 일이며, 또한 진정한 자유로운 인간 공동체의 문 화 형성에로 나아가는 길의 시작일 것입니다.
미래의 우리의 철학은 역사적 맥락 속에서 현실 상황의 내면적 구조 연관의 변화하는 역동적 모습을 분명히 드러내어 밝혀 주고 우리들 삶의 본질을 지켜 줌으로써 인간 공동체의 실현을 위한 교육적 문화 적 터전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철학의 과정은 우리의 철학인들 모두가 현실의 문제 의식에 공감하 고 서로의 학식과 구상들을 대화하며 뜻을 함께 모으는 가운데 서서히 결실을 맺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의 이러한 대화와 논의의 과정이 본래부터 국제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은 오늘날 모든 국가들의 사회 생활이 국제적인 상호 교류와 영향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우리의 한국 사회는 동서양의 문화적 교차 지점에서 매우 복잡한 다양성의 현실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을 위시한 세계 여러 나라의 미래 사회를 이끌어갈 새로운 철학은 동서양의 수많은 철학 이론 들이 함께 참여하여 토론하는 집단적인 노력을 통하여 탄생할 것이며, 본 大同哲學會는 그것을 위한 대화의 중심 무대가 될 것입니다.
간행물
간행물명
대동철학 [Journal of the Daedong(Graet Unity) Philosophical Associ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