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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기 慶州 集慶殿 太祖御眞의 피난 경로 고찰
A Study on the Evacuation Path of Taejo-Eojin, Jipgyeongjeon during the Imjin War
임진왜란기 경주 집경전 태조어진의 피난 경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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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전북사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전북사학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77호 (2026.07)바로가기
  • 페이지
    pp.103-129
  • 저자
    김철배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489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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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Jipgyeongjeon Hall in Gyeongju is the place where Taejo-Eojin was enshrined during the Joseon Dynasty and is one of the five Taejo-jinjeon Hall in the country. Taejo-Eojin was enshrined in 1398, and in 1410, it became a model of Taejo-Eojin in Jeonju and Gyeonggijeon. During the Imjin War, it took refuge in the war and was moved from Gyeongju to Gangneung via Yean. It is presumed that the Jipgyeongjeon Hall was newly built after 1612, and in 1628, Gangneung Jipgyeongjeon Hall and Taejo-Eojin were repaired, but all were destroyed by the mistake of restoration in 1631. After that, the Gyeongju signers requested the Taejo-jin Moosa and Gyeongju Hwanan, but it was not accepted. The escape route of Taejo-Eojin in Jipgyeongjeon, Gyeongju, referred to Imjin Ilrok(壬辰日錄) of Jeong Sa-seong, who was the peak of Jipgyeongjeon at the time, Son Yeop's Youngsailgi(龍蛇日記), and Jo Mok's Wolcheonjip(月川集). Taejo-Eojin, who left Gyeongju on April 16, 1592, arrived in Yean through Sinryeong – Uiryeong – Andong – Danyang – Jecheon – Wonju – Pyeongchang – Yeongwol – Bonghwa - Andong. It was preserved until July 17, 1592, in Toegye-Seodang, Cheongnyangjeongsa, and Unhyeon's Unsanjoung, and after August 1592, it was enshrined in Suunjeong and Yi Yeongdo’s Seodang, and after May 1595, it was moved to Baekdongseodang and later transferred to Gangneung in September 1597.
한국어
경주 집경전은 조선시대 태조어진을 봉안한 곳으로 전국 5개 태조진전 중에 하나이다. 1398년 태조어진을 봉안하였으며, 1410년 전주 경기전 태조어진의 모본이 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피난길에 올라 경주에서부터 예안을 거쳐 강릉으로 옮겨 모셔졌다. 1612년 이후 집경전을 신축하였던 것으로 추정되며, 1628년에는 강릉 집경전과 태조어진을 수리하였는데 1631년에 수복의 실수로 모두 소실되고 말았다. 이후 경주 사인들의 태조어진 모사 및 경주 환안을 요청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경주 집경전 태조어진의 피난 경로는 당시 집경전 참봉이었던 정사성의 『임진일록(壬辰日錄)』, 손엽의 「용사일기(龍蛇日記)」, 조목의 『월천집(月川集)』 등을 참조하였다. 1592년 4월 16일 경주를 떠난 태조어진은 신령-의령-안동-단양-제천-원주-평창-영월-봉화-안동을 거쳐, 예안에 도착하였다. 이후 1592년 7월 17일까지 퇴계서당, 청량정사, 운현의 운산정 등지에서 보존되었고, 1592년 8월 이후 수운정, 이영도의 서당에 봉안되었고, 1595년 5월 이후 백동서당으로 옮겨진 후 1597년 9월 강릉으로 이안된 것이 확인된다.

목차

1. 머리말
2. 조선시대 태조진전 건립과 경주 집경전 태조어진
3. 임진왜란과 집경전 태조어진의 피난
4. 집경전 태조어진의 강릉 이안과 소실
5. 맺음말
<국문초록>

<참고문헌>

저자

  • 김철배 [ Kim, Chul-bae | 문학박사, 임실군청 문화유산팀장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전북사학회 [The Jeonbuk Historical Society]
  • 설립연도
    1977
  • 분야
    인문학>역사학
  • 소개
    본 학회는 "역사학의 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이바지한다"는 목표하에 도내의 역사학자들을 주축으로 1976년에 창립된 이래 30년 이상의 연륜을 이어온 정통 역사학회이다. 수차례의 학술대회를 개최하였을 뿐 아니라, 학술지 '전북사학'을 30호까지 발간하면서 지역 사학 발전의 토대를 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본 학회는 현재 약 240여명의 회원을 두고 있으며, 격월로 임원회의와 월례발표회를 개최하고 있다. 매 발표회에 실제로 참여하는 인원이 항상 30명이 넘는다. 대부분의 역사관련 학회가 주로 대학교수나 강사들로 구성되어 있는 데 비해 전북사학회는 대학교수, 강사는 물론 학예사, 연구원, 중등학교 역사담당교사 등 역사와 관련된 다양한 구성원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대학에서 연구한 역사학에 관한 이론을 중등학교 교육 현장에 올바로 적용하여 이론과 실제를 하나로 만들려는 것이 향후 전북사학회의 지향점이다.

간행물

  • 간행물명
    전북사학 [JEONBUK SAHAK ; The Jeonbuk Historical Journal]
  • 간기
    연3회
  • pISSN
    1229-2001
  • 수록기간
    1977~2026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911 DDC 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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